[반달곰1%가게유람기]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파란돌 천연발효빵
하동 악양에 자리한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여는 빵집, ‘파란돌 천연발효빵’을 찾았다. 가게 앞에 ‘빵’이라고 큼직하게 써 둔 간판을 보며 ‘이 곳은 어떤 빵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만드는 빵이라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에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지막 빵을 꺼내는 건해님과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 가니 빵에서 ‘타닥타닥’ 맑고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빵의 뜨거운 표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일까? “빵이 나오고 2분 동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라고 건해님이 덧붙였다. 2019년에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하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건해님은 파란돌 천연발효빵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손님으로 이 빵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동네에 특이한 빵집이 생겼다고 해서 왔는데 빵이 참 맛있었어요.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직접 만들고 싶어 사장님께 부탁해 빵을 배웠는데 그때 배운 빵이 ‘길쭉이’였어요. (바게트 모양의 길쭉한 빵.) 원래 사장님도 빵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해요. 수행을 하시던 분이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그분이 만드신 빵이 ‘수행자의 빵’ 같았어요. 맑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빵이라고 할까요? 빵이 참 고요했어요.
빵을 만들며 알게 된 건데 보통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계속 괴롭히거나 세게 내려쳐서 만들어요. 그런데 이 빵은 살살 다뤄야 해요. 자연이 하는 일을 약간만 손보고 기다리는 게 제 일이에요. 재료도 밀가루와 물 밖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풀리고 발효해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역할을 하죠.”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처음에는 호주산과 미국산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생겨 다른 밀가루를 찾다가 프랑스산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프랑스산 밀을 반쯤 쓰다 보니 벌레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태까지 사용했던 다른 밀가루에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죠. 이곳에 살다보니 대부분의 식재료가 보관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입 밀가루는 배를 타고 한국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습한 바다를 지나 왔을 텐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게 어떤 처리를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때부터 우리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구례에서 제분한 우리밀을 쓰다가 하동에서도 재배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죠. 어느 날 동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밀농사를 다 지었지. 요즘에는 밀 수매를 안 하니 팔 곳이 없어서 안 지어.”라고 하셨어요. 이듬해 이웃 어른께 밀농사 지어주실 농부님을 소개받아 같이 농사를 지었어요. 밀은 겨울을 지나며 크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없어 농사는 쉽지만 6월 수확 이후에 바로 장마가 오니 건조를 잘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보관이 까다로워요.
첫 해에 농사지은 밀은 농부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어 건조를 잘못해 반도 못 쓰고 산패가 되어 그대로 밭에 모두 뿌렸어요. 다음 해는 조금 더 나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그렇지만 두 해 농사를 경험해보면서 밀농사는 전문 농가에 맡기고 나는 우리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빵을 만들며 농사까지 짓는 것은 역부족이더라고요.”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매장에 와도 살 수 있는 빵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과 건해님이 함께 만드는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건해님의 빵 택배 판매는 ‘무료 나눔’이라는 길고도 정성스러운 시간을 딛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어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한데 첫째 날 발효하고 둘째 날 반죽하고 셋째 날 빵을 구워요. 화요일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요일도 나와서 발효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게다가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빵집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영업일을 줄였어요. 그래도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조정을 하다 보니 빵이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죠.
빵은 대부분 택배로 판매해요. 처음 빵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한 건 ‘무료 나눔’ 형태였어요.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예측이 어려워 남은 빵을 필요한 분께 나누면 좋겠다 싶기도 했지만 빵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듣고 싶었어요. 빵집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매일 연습 삼아 빵을 구워 온라인에 ‘무료 나눔’ 소식을 올렸어요. ‘악담이라도 좋으니 진실 된 평가를 듣고 싶다.’는 문자도 빵과 함께 보냈죠. 몇몇 분들이 진심 어린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분들이 지금의 씨앗이 되었어요.
1년에 걸쳐서 100번의 무료나눔을 하고 난 뒤 빵집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빵을 팔고 손님께 돈을 받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 빵은 내가 봐도 미숙한데 돈을 받아도 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지만 빵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 가격이라면 내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을 닮은 빵
일주일에 하루 영업을 하는 것으로 수익이 충분히 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물으니 지금으로써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덤덤한 답변에 돌아왔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팔게 되면 좋겠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빵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요. 만드는 사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빵도 나빠져요. 제가 정신없으면 빵도 정신없이 나와요. 빵은 아주 노동 집약적인 생산물인데 많이 만들면 힘이 더 들고, 그럼 그 힘듦이 빵에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더 많이 만들어서 더 팔고 싶지는 않아요. 수익을 더 내려면 빵을 더 많이 팔거나 재료값을 아껴야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빵을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이 빵을 가장 많이 먹거든요. 그리고 이 빵을 식사로 매일 드시는 분들께 안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 빵을 즐겁게 먹을 사람들을 상상해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빵을 통해 맺게 된 인연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사실 빵은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에 빵집이 얼마나 많아요.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죠. 저희 빵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해요. 달지도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죠. 그냥 집 밥 같은 빵이란 말이죠.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빵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죠.”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달곰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산악열차 반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냥 ‘반달곰 지키는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이 활동을 제안 받았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함께하겠다고 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에는 다양한 생명과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반달곰을 지키는 일이 꼭 ‘반달곰’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니리라 생각해요. 지리산과 하동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일에 작게나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