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