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