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를 처음 본 것은 무덥던 어느 여름날 불일암 마루에서다. 법정 스님이 타준 차를 마시며 파초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파초가 내게로 와 동면에 들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흙 위로 솟은 푸른 잎을 풀인 줄 알고 뽑아버린 뒤 늦게 찾아온 손가락만 한 파초잎에 물을 주다 불쑥 찾아온 파초가 있다.

 

  파초가 있는 마당, 거동이 불편한 어머이를 부축하는 간호사를 두고 어서 가라고 성화다. 미안해하는 어머이를 현관 안까지 부축하여 거실로 모신다. 노인복지센터에 다녀온 어머이 보고 좋아 야단법석인 강아지. 지팡이와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스타렉스에 오른다. 갖은 풀이 녹색을 뿜어내는 사잇길을 후진하는 사회복지사의 운전실력이 오랜 경력을 말해준다. 사무실에서 말이 없는 그녀는 스타렉스에 타면 말문이 트여 비로소 동료애를 느낀다.

 

파초.jpg

 

  며느리는 집 근방에서 밭일로 바쁘네요. 전라도 말로 어머이어머니 말이에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르는 어머이, 호칭에 며느리 애정이 배어납니다. 어머이 그 발음과 억양을 글로 쓸 재주가 없군요. 불러야만 어머이 호칭이 완성됩니다. 불러도 부르고 싶은 어머이, 먼 기억 속을 걸어옵니다. 파초 잎처럼 너른 품, 어머이는 이제 며느리가 돌봐주어야 할 딸 같은 어머이가 된 것입니다. 어머이를 모시는 며느리는 어머이의 딸입니다.

 

  “어머이가 약을 드셔도 요실금이 좋아지지 않아 기저귀 차고 복지센터에 안 가시려고 해요. 허리가 아픈데 복지센터에 누워있으면 욕할까 봐 안 가시겠대요며느리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이 서립니다. 그 어머이의 애잔한 등, 조절되지 않은 방광, 마당에 선 커다란 파초 잎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감쌉니다. 괜찮아요, 어머이! 숱한 길 걸어 비록 노쇠해도 그 사랑 뿌리 깊이 뻗어가는 파초와 닮았습니다. 날마다 보는 들판은 어머이가 걸어온 시간입니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물러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이! 어머이가 참기름에 무쳐주던 쑥부쟁이나물, 그 쑥부쟁이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 봐요.

 

  오늘도 노인복지센터를 나온 차는 파초가 사는 집에 옵니다. 희멀건 어머이 웃음. 품이 너른 파초 잎 열고 어머이! 그 어머이가 지금 가슴 속에서 옵니다. 밭일을 마친 며느리가 어머이! 하고 부릅니다.

 

 


글쓴이 : 이촉 

_시인.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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