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붓다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중생을 구제하다가 80세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붓다의 처음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사성제와 연기법으로 정리되어 이야기되는데 그 사성제의 첫 번째가 고苦다. 그리고 불가에서는 苦를 또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치거나 병들어서 오는 육체적인 고통의 괴로움(苦苦)과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덧 늙어 죽음에 이르는 덧없음에 대한 괴로움(行苦)과,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 즐거움이 사라지는 괴로움(壞苦)이 그것이다. 그렇게 보니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단순히 과장된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붓다의 고苦는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단순히 즐거움의 반대 개념만은 아니라고 한다. 고苦는 산티크리스트어로 두크아, 둑카,이며 그것은 깨달음, 해탈, 산티(평화)의 반대 개념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붓다의 고는 단순히 세상살이의 괴로움이라는 개념을 넘어 한 존재의 본질적 인식까지를 포함한, 그런 존재 자체의 근본적 불완전성에서 오는 의미의 괴로움, 고통의 개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인식인 것이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는 태어난 것 자체가 고苦요, 존재 자체가 고苦이며 사는 것 자체가 고苦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당신은 즐거움이라는 것은 1도 없이 살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서 즐겁고,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늑한 방이 있어서 행복하다. 어쩌면 괴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현실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내가 무엇에 집중하며 사느냐에 그 순간 괴로움과 즐거움이 교차 된다. 어쩌면 수상가옥 같은 것이기도 하다. 빠져 죽을 수 있는 깊은 물이지만 그 위에 배를 띄워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다. 죽음 위에 삶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배가 낡아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해도 배를 타고 있는 동안이 삶이며, 삶은 그래서 ‘과정’일 뿐이다. 인생 뭐 별거 있냐고 흰소리 치는 말에는 사는 동안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이나 결론은 없고 단지 ‘과정’일 뿐이라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 어차피 인생의 시작과 끝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한 목숨 얻어 살고 있는 ‘과정’만이 우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순간순간, 하루하루라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