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정태준 소장의 '흔히 생태라 말하는 분야의 이런저런 이야기'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대상지에 가장 넓게 분포한고 있는 식생보전등급 Ⅲ등급의 소나무군락. 없어져도 되는 숲인가?
몇 해 전, 지리산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인 산청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장 건설은 산림 파괴와 농약 살포로 인한 오염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에 지역 환경단체인 지리산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자를 비롯한 지역의 생태 전문가가 모여서 사업 대상지에 대한 생태 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얼마 전 공식적인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자연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지만, 자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불편함과 답답한 보전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상지의 생태 조사 결과 포유류와 조류 조사 결과에서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삵, 하늘다람쥐, 수달, 담비, 참매, 붉은배새매, 팔색조가 확인되어 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식생, 식물상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상지의 숲은 ‘그저 그랬다’. 전국적으로 흔하디 흔한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슴높이 직경(흉고직경)이 큰 나무가 분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높이 직경이 20cm를 조금 넘는 어린 숲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넓은 지역이 ‘숲가꾸기’란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사업이 시행되어 교목층(가장 큰 키의 나무들)을 제외한 하층 식생이 제거된, 인위적으로 관리된 숲이었다. 이러한 숲은 잘려진 하층에서 식물이 급격히 자라면서 서로 뒤엉킨 듯한 모습으로 복잡하게(안정적인 숲이 아닌 천이 초기의 모습) 자라난다.
국가에서는 식생의 상태에 따라 식생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한다. 이를 식생보전등급이라고 하며, 식생이 가장 좋은 Ⅰ등급에서 가장 좋지 않은 Ⅴ등급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평가한다. 식생보전등급이 Ⅰ,Ⅱ등급으로 평가된 지역은 보전과 복원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외 Ⅲ~Ⅴ등급은 큰 문제 없이 개발이 허가되고 숲은 사라진다. 이러한 평가 방식을 적용한 결과 대상지는 모두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에 분포하기에, 기존의 정책대로라면 숲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분야도 마찬가지다. 법적보호종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되지 않는 숲은 개발의 논리에서 지켜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숲을 보전하기 위해 조사를 하면, 멸종위기종을 찾고, 식생보전등급이 높은 숲을 찾아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상지 일대의 생태‧자연도. 대상지 내 보전 및 복원을 우선하는 1등급 지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의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인 이 숲에 대한 보고서를 조사 결과 그대로 담담히 작성하다보니, 불편함과 답답한 한계가 느껴진 것이다. 좋은 숲은 보전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식생 발달 상태가 좋지 않은 숲은 보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식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간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천이(succession)라 부르고 Clements의 고전적 천이 이론에 따르면 식생은 극상림으로 변해가고, 그러한 극상림(Climax forest)은 구조적 기능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다. 따라서 현재는 식생이 ‘그저 그렇게’ 보이더라도, 이러한 숲이 10년, 20년, 또는 50년, 100년간 보전된다면 국립공원 수준의 울창한 숲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만 좋은 숲을 보전하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숲은 계속 없어진다면 울창한 숲이 지금보다 넓게 확대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상태가 다소 좋지 않다고 그 숲을 보전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어린 나무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울창한 숲 역시 과거에는 모두 식생보전등급이 낮은 ‘그저 그런 숲’ 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평가하고 등급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보전해야할 숲의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희귀한 식물이 살고 있어야 보전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천이 초기에 나오는 ‘그저 그런’ 숲이 우리 곁에 없다면 결국 극상림의 울창한 숲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데도 개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은 땅에 이미 많은 것을 개발해 왔고 많은 숲을 파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숲에 식생보전등급을 매겨 ‘Ⅰ,Ⅱ등급이면 보전, Ⅲ~Ⅴ등급이면 개발 가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보전할 숲과 개발할 숲을 판가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숲을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게 전해 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위기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것도 명확하게 좋다, 괜찮다,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전되어야 할 숲의 조건'을 따져야 할 때는 지났다.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