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하지 전후로 달궈진 복사열의 정점이자 복더위의 정점은 대서와 중복입니다.장마 끝무렵이자 무 더위 한복판이기도 하죠. 가끔 마른장마가 오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무더위는 피할 수가 없어요. 동남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의 특성입니다. 건기 우기로 나누는 적도 근방 열대지역도 여름인 우기에 습하고 무더운 건 비슷하죠. 반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의 사막지대 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옵니다. 그 밖의 아열대 고원지대와 초원지대도 비슷하죠.

덥고 습한 우리의 장마철은 만물이 극성장하고 풀도 우거져 농부에겐 아주 바쁜 농번기입니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만물이 겨울잠에 들어가니 비로소 농부도 쉬어가는 농한기에 들어갑니다. 봄이 새 학기인 이유고, 유럽에선 가물고 뜨거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여름이 농한기라 가을이 새 학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날씨에 따라 농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치예요.

무더운 장마철은 물과 불이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입니다. 물이 이기면 홍수가 나고 불이 이기면 폭염과 가뭄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거구요, 대개는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장마철은 물과 불의 격렬한 싸움만큼 만물의 성장에너지도 격렬하지요.


암튼 어찌 되었든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물과 불이 만나기만 하면 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올라가려는 물과 내려오려는 불이 만날 때입니다. 그래야 순환이 작동해 생명이 깃들 수 있거든요. 그걸 표현한 게 태극마크입니다. 불은 양(붉은색)이라 위에 있고 물은 음(파란색)이라 아래에 있지만 불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물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물과 불은 지속해서 순환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겁니다.

원래 물은 내려가려 하고 불은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면 잘 만나지지도 않거니와 만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게 장마철이고 태풍이지요. 아니면 폭염과 가뭄이고요. 그러나 이게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망가진 순환 시스템을 고치고자 애쓰는 홍역일 수 있어요. 요즘의 기후변화도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홍역 이후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어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물과 불이 만나는 곳 중 재밌는 곳이 부엌과 밭입니다. 먼저 부엌 얘길 해볼까요.

옛날엔 집에도 신이 있다고 했어요. 그중 부엌신이 원래는 최고였지요. 나중에 성주신이 들어와 최고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 25년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집에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물건 같은 건 아니고요, 굳이 말하면 나를 받쳐주는 무언가였어요. 여독에 감기 걸려 호텔에 누워 있을 때 강하게 느꼈죠. 그때는 그냥 집에 두고 온 또 다른 내 흔적이거나 타지에서 힘들 때 생기는 향수병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만일 붙박이 생활이 강했던 옛날처럼 몇백 년을 조상 대대로 한 집에 살아 조상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였다면 그걸 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상뿐이겠습니까? 함께 살면서 쌓인 생명들의 흔적까지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그중 부엌신, 부뚜막신, 조왕신은 물과 불의 조화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최고의 신이자 어머니 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깨끗한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아궁이 위에 정갈하게 걸어둔 선반 위에 얹어놓고 조왕신께 빌고 나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을 짓습니다. 물과 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만 올라가는 불의 기운을 내려가는 정화수의 기운으로 눌러주어 밥을 태우지 않고 잘 익게 해달라 했을 겁니다. 이런 정성으로 온 식구의 먹을거리를 지었으니 그 밥은 사랑과 정성, 나아가 신이 깃든 생명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제가 급식과 매식을 비판하고 도시락과 집밥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사랑과 정성과 신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아당뇨, 비만, 알러지, 각종 소아 대사질환, 그리고 옛날엔 보기 힘들었던 우울증, 신경발달장애 들까지 생각하면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으나 신이 결핍된 먹을거리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럼 밭에선 어떻게 물과 불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논에선 물을 잘 가둬두는 게 중요한 반면 밭에선 물을 잘 흘러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논은 보수, 밭은 배수가 중요한 거죠. 배수를 강조하니 물이 필요없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물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강물처럼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저수지처럼 마를 때는 가둬두고 습할 때는 배출하는 거죠. 토양의 삼상구조라 해서 흙의 기본은 흙알갱이인 고상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액상과 기상이 반반씩 차지하면서 가물 때와 습할 때에 따라 들쑥날쑥 저수지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흙알갱이 벽면에 유기물이 5% 정도 코팅되어 있는데 비중은 적지만 흙의 삼상구조를 만들고 떠받치는 주역입니다. 땅심이라고도 하고 지력이라고도 하는 게 이 유기물을 표현하는 거고 이게 잘 있어야 흙의 저수지 기능이 작동해서 물이 흐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땅심의 모습은 내면적인 거구요, 배수가 잘되는 외형적인 밭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도랑입니다. 물을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이죠.

배수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가장 큰 거는 밭 둘레의 도랑입니다. 밭의 경사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이 되는 도랑이죠. 대동맥쯤 될 겁니다. 경사가 높은 쪽에서 장마 때 물이 쏟아진다면 도랑을 두 개는 파야 합니다. 이 도랑은 이웃과 경계가 되기도 해서 소홀하기 쉬워 방치하면 병해충의 숙주공간이 되고 잡초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람과 물이 잘 통하도록 관리해 주어야겠지요.

다음으론 본 밭에는 도랑보다 작은 고랑들을 만드는데요, 농부가 드나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론 밭둑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이 아까워 작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초보 때 아까운 마음에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만큼 좁게 했다가 들락거리기 힘드니 역효과만 본 적이 있어요. 이 길은 통풍 배수에도 좋지만 작물에게도 여유 공간이 되어 줍니다. 밭 둘레보다 깊어선 안 되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했다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일 테니까요.

그다음 중요한 고랑은 두둑과 두둑 사이입니다. 물론 길도 되지요. 다만 융통성이 있어 해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작물을 돌려 심고(윤작), 섞어 심기(혼작)를 바꿀 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한 줄로 심은 작물 수확 후 두 줄로 심을 작물을 심는다면 달라지는 게 그려지죠? 이 고랑은 당연히 앞의 길로 쓰는 고랑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 고랑은 씨나 모종을 심는 곳입니다. 호미든 괭이든 줄뿌림할 때 골을 내고 심고는 골을 살려둡니다. 그러면 작물과 작물 사이는 두둑이 되겠죠. 그러다 작물이 자라고 두둑에도 풀이 올라오면 두둑을 뒤집어 작물에 북주기를 합니다. 그걸 한 번 내지는 두 번에 걸쳐서 하고 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의 두둑은 고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를 견종법이라 합니다. 고랑(견畎)에 심는다는 뜻이고 밭의 모양이 바뀐다 해서 대전(代田)법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헛골농법이라 합니다. 골이 곧 없어지니 그렇게 이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곡선이 코사인곡선으로 단면이 바뀐다 해서 사인코사인 농법이라 붙여 봤는데 다들 웃고 말대요.

암튼 이 방법은 두둑을 덮는 비닐멀칭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제초와 북주기를 동시에 하는 첨단 농법이었어요. 게다가 작물이 어릴 때는 마르면 안 되니 골에 심고, 어느 정도 자라선 통풍이 중요하니 두둑 위로 올라가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방에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밭이 크면 소 쟁기를 이용하는데 두둑 없애며 북주기를 할 때는 쟁기날이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고요, 두둑을 뒤집지 않고 좌우로 훑어주기만 해서 훌치기라고도 합니다. 소 주둥이에는 작물을 못 먹게 입마개를 씌우지만, 잘 훈련된 소는 필요 없었답니다. 재밌죠? 어쨌든 이 헛골도 두둑과 두둑 사이의 골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밭에도 물길과 바람길(온화한 불의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쓰신 서유구 선생은 이렇게 밭을 만들면 밭이 저수지 같은 노릇을 해, 가물 때는 습기를 내어주고(또는 물을 가둬두고), 습할 때는 물을 빼주어 농부는 또다른 수자원 관리인이라 했으니 큰 물길 잡아주는 것 못지않은 치수정책이었던 겁니다. 황하의 본류를 잡으려다 실패한 우왕의 아버지와 다르게, 황하의 지류를 잡아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된 우왕과 다르게, 본류 지류가 아닌 물의 모세혈관을 다스리는 일이니 더 근본 방책 아니었겠어요? 기후변화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가뭄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볼 만한 지혜이겠습니다.


방금 말한 도랑과 두둑 및 밭 전체 배수로와 견종법은 다음 그림을 참조해보세요. 통풍 배수가 잘 돼 작물이 건강하고 제초를 따로 하지 않고 한번에 하니 일석이조가 됩니다.


견종법.jpeg


고랑 별 깊이를 잘 조절하고, 작물은 헛골에 심었다가 나중에 북주기 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는 골이 되어 통풍과 배수가 잘 되니 건강하게 자랍니다.

 

대서 농사일정.jpeg

 

** 대문사진 : 대서 되니 벼가 확실하게 그늘을 드리워 풀이 들어올 엄두를 못낼 때 물을 뺍니다. 처서 지나 이삭 패면 다시 물을 넣어주는데 적셔주는 정도로만 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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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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