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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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관통도로 공약 철회를 요구하며 열린 2026 생명평화 하지제에서, 내게 온 꽃등에. 때로는 이런 작은 맞닿음이 수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셀 때가 있지요.

 

 

얼마 전까지 저는 350일 채식인이었습니다. 이젠 달걀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서 이렇게 부를 수가 없지만, 전에는 한 해 365일 가운데 350일 정도 채식하고, 보름 정도는 잡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채식하는 날이 349일이 될 수도 있고, 351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날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벌써 채식한 지 열다섯 해가 넘었으니, 이제는 채식하는 일이 저에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건, 어릴 때 고기 맛을 알아 버린 ‘입맛’이란 놈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고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저를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없게 만든 입맛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우유를 못 끊는 입맛이에요. 당신이 키가 작아 두 딸만큼은 꼭 키를 키우겠다고 한을 품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하루에 500리터씩 우유를 먹게 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었는지, 우유를 끊는 일이 고기를 끊는 것보다 어려웠거든요.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치킨을 찾는 입맛, 라테를 원하는 입맛이 제게 찾아오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이나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착취당하는 젖소를 생각해도 그놈의 (우라질) 입맛을 떨쳐내기가 힘드니. 그렇더라도, 날마다 고기를 찾던 제가 350일 채식인이라도 된 걸 보면 입맛을 완전히 못 바꾸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채식하고 채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입맛도 조금씩 바꿀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천천히 조금씩 너무 괴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생각해 350일 채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여도 몸에 밴 습관을 이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채식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 채식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그러니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남의 행동을 고치려 드는 지적질은 정말 못 만든 광고 같아서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끔 못 만든 광고를 또 내보내기도 하니, 이 또한 습관의 폐단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많았고, 덕분에 못된 지적질 습관을 꽤 줄이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순자’를 만난 일입니다. 순자는 자기 핏줄인 나기뿐 아니라 옆방에 사는 아이인 소라와 나나를 위해 날마다 도시락 세 개를 여섯 해나 싸는 인물입니다.

 

“반찬으로 머리 달린 부세 구이가 통째로 담겼다거나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지만을 수북하게 담았다거나 이따금 달걀말이지만 대개는 달걀프라이 혹은 다른 반찬 없이 달걀프라이 한 가지를 밥에 얹고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는 방식으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락이었다.” _『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순자가 싼 도시락은 육식에 가깝습니다. 만약 순자가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런 강요를 당했다면, 아마도 옆방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순자는 늦은 밤까지 과일을 팔고 돌아와야 했고, 뇌경색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빚도 해결해야 했는데, 그런 순자에게 달걀프라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보다 쉽게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도록 도와주었을 거예요. 게다가 싸구려 달걀 한 판이면 싼 값으로 여러 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겠죠. 들여야 하는 노력을 보나, 돈을 보나, 육식 도시락이 옆방 아이들을 위한 순자의 선물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달걀이 어떻게 이렇게 싸게 대량으로 날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순자를 그저 동물복지나 기후위기도 생각 안 하는 악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순자가 어떤 사람인가요, 여섯 해째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옆방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는 인물이면, 그 인품은 말 다했지요. 그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350일 채식하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헤아렸을 겁니다. 다만 먹여 살려야 할 자식과 배고파하는 이웃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선이라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제삼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달픔과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오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어떤 까닭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물을 덜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순자가 제게 가르쳐줬습니다.

 

비건을 선택한 뒤로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벗아,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너를 미워하지도 않지. 네 마음을 이해해. 너를 존중해. 오늘은 네 몸에 들어간 닭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 네가 그간 더 나은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너와 같은 지구인 동료가 있어서 나에게도 큰 힘이 돼. 네가 무얼 먹고, 무얼 사고, 무얼 입든,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라고, 너만의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좋아. 우리가 친구여서 좋아.”

 

‘그냥 될 대로 살다 죽자’ ‘혼자서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하는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비폭력 사랑꾼들을 나는 응원합니다. 내 옆의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그 감수성을 놓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무지개 색깔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도록 빌어 주기를 바라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고민하는 지구 생명체들을 나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_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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