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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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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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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