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20(월)
 

언재 한성수 자문위원

 

아이고 노고단아! 외마디 부르짖음과 더불어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장탄식을 토한다. 지리산인 구례 계간지에서 부탁한 짧은 글 하나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쉽게 대답하고 나서 그만 잊어버리기만 3차례, 13일 마감을 약속하면셔 윤주옥님의 전화에 아주 미안하게 또 헛 약속을 날렸고, 오늘 17일 오후에 문득 다시 생각이 떠올라서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글이 이번 호 지리산인에 실리지 못해도 좋으나 일단 자신을 살피는 신세타령이라도 써 놓고 볼 일이다.

미국에서 나그네로 떠돈 30년 세월을 뒤로하고, 구례에 온 지 16년 반이란 세월이 지났고, 사람들이 나의 말투가 좀 다르다고 항상 되묻는 말, “고향이 어디세요?”에 똑같은 대답 충청북도 제천요!” 여러 번 반복하다가 5년 전엔가 그만 구례로 호적을 옮겨버렸다. 이젠 여기서 살다가 전라도 사람으로 죽어갈 심산이었다. 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부산에서 고등학교, 서울에서 대학교,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허망한 세월을 따라 노상 이사를 다녔다. 마지막 이삿짐은 지리산에서 풀게 되겠지....

문제는 그 좋다는 한국의 명산 지리산 자락, 산 높고 물 맑은 구례에 살아온 어즈버 지난 16년이란 세월이 내 육신을 서서히 무너뜨려온 징조가 해마다 새롭게 목록을 더해간다는 점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60대엔 매년이 다르고 70대엔 매달이 다르고, 80대엔 매일이 다르다나? 그 말이 대충 맞는다고 맞장구를 치게 생겼다. 처음 구례에 정착했을 때 너무도 흥분해서 매년 그 좋은 지리산 종주를 6차례나 거듭했고, 매 주일 거의 한 차례씩 구례 화엄 계곡을 허덕이면서도 기어올라 노고단에 가서 노고 할망구에게 절도 많이 했는데, 어느 세월에 무릎이 시큰거리더니, 등산 금지령을 내리는 의사의 입술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그런데 요즘 새로 생긴 증상이 아주 고약하다. 뭔가를 자꾸 잊어버린다. 가까이 지내는 벗님이 여수에 계신데, 그 양반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곧 안타까운 마음에 문병을 가겠노라고 다짐을 하고는, 마이동풍! 그만 귀로 씹어버렸고, 두뇌 속에서 말끔히 청소를 해버렸다. 어떻게 구차한 변명을 한다? 뭔가 새로운 세월이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흉측하고 음산하게 들린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조? 아이고, 노고단아! 산 높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구례에 사는데, 웬 이상한 풍경 소리?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사람들 대하기가 미상불 조심스럽다 못해 끔찍스러운 짓도 거듭하고, 그러다 보면, “그 양반도 이제 그만 삭아가시네. 쯧쯧,” 하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누구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공연히 아는 척하고 수학계의 최고 난제로 여기는 리이만 가설(Riemann)을 설명하면서, 리이만이란 이름이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아 엉뚱한 사람 이름을 대면서 썰을 풀었겠다. 집에 와서 생각이 나는데, 아이고 왜 즉시 손 전화(요즘 손전화는 컴퓨터 축소판)에라도 조회를 하지, 어물쩡 저물쩡 떠들어제끼기는.... 뒤늦게 다시 전화를 걸어 온갖 변명을 해대는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정말 치매(Alzheimer's disease) 가 온거여? 아이고 노고단아! 나 이제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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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고만 잊어버렸구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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