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5(금)
 

최지한 (지리산산악열차대책위 집행위원장)

 

1. 글을 요청받고,

지리산에 지리산 연대기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시 고민을 했다. 고민이란 것은 이렇다. 하나는 국립공원 5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책에 이미 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전지구적인 기후변화 문제이다. 소식지에 실리게 될 이 글이 인쇄와 배포에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기후문제를 입에 올리면서 대량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평소 지역 곳곳에 수십 부씩 배포되지만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고 버려지던 모습을 보며 과연 저렇게 계속 찍어대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더욱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 ‘무릇 진보란 그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J.Nestroy, 피보호자 중에서

마을회관에 가면 행복마을 콘테스트우승 깃발과 상장이 걸려 있다. 그리고 상장의 하단부에는 다음과 같은 직책과 이름이 적혀져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 지난 2017년 겨울,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긴 공방 끝에 들려온 헌법재판관의 판결 선고와 함께 봄은 찾아왔고, 세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감에 들뜬 사람들도 많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지지하던 대통령의 탄핵 소식에 절망했을런지도 모른다.

항상 오는 봄이지만 특별하고 새로운 것만 같은 봄이 찾아왔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통합과 공존’,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국정운영의 기치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노후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지, 남북정상회담,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격적인 정책으로 추위와 맞서가며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의 바램이 실현되고 많은 문제들의 실마리가 풀려가는 듯 하였다. 국민들은 뜨거운 지지로 화답하였고, 정부와 여당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 기나긴 세월 동안 적체되어 있던 폐단들을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 듯 보였다.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듯한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체불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불리는 병원체는 우리 사회와 전세계가 바로 직전까지 믿고 따르던 시스템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경제는 마비되고 전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놓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극단적인 감염 사태가 지나자 우리에게는 경제 문제가 닥쳐왔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규제혁파를 통한 경제 활성화였고 그중에 하나가 관광산업 분야의 산지규제 특례 마련을 통한 산림휴양관광진흥이었다. 지난 봄 나에게 다가온 진보는 무엇이었을까?

3. 4대강 사업과 산림휴양관광진흥구역법 그리고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산림휴양관광진흥구역법 제정을 통한 산악관광활성화 대책을 접하고 난 뒤 불현듯 떠오른 4대강 사업의 모습들. 강을 정비하고 일자리 창출로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나라 곳곳의 하천에 가해졌던 그 폭력의 손길들. 습지와 모래톱을 끊임없이 뭉개고 파내던 수많은 굴삭기들이 이제 산으로 오른다.

산림보호법와 산지관리법으로 겨우 지켜지던 그 숲들이 이제 곧 사라진다. 더군다나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심지어 지금 사는 마을 근처에 정류장이 들어선다. 그리고 해발 1100m 형제봉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기찻길이 놓인다. 형제봉이 자리한 지리산 남부능선을 경계로 마주하는 화개 쌍계사에는 화개 쪽 정류장이 들어선다. 그 둘은 형제봉 정상에서 만나고 그곳에는 관광객이 머물 호텔이 들어선다. 누구의 상상일까, 상상미술관도 들어선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데 여기서 삼성궁을 향해 기찻길이 놓인다. 국립공원 구역을 피해서 7부능선을 훑고 구불구불 삼성궁을 향하여... 산악열차 15km, 모노레일 5.8km. 이게 제정신인가.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곳 하동에서 벌어질 일은 시범사업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산에도 얼마든지 열차가 오르고 호텔이 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글이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누군가에게 읽혀질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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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동군수가 설치한 형제봉활공장 비행안내판에는 이곳이 반달가슴곰 서식지라 적혀있다

 

4. 형제봉 반달곰 프로젝트

2015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대관령 일대의 대대적인 개발을 위해 만들어졌던 산악관광진흥 정책이 산림휴양관광진흥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각종 규제를 풀어준다고 한다. 시범사업의 이름으로 시험대에 오른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발상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진보는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것 같다. 지금 하동에서는 산악열차로 대표되는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사회와 자연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처음 제안한 하동군까지도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 중이다.

우리는 지금 발표된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에는 반대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 이름하여 형제봉 반달곰 프로젝트를 꿈꾼다. 봄이면 정상 아래 북사면 평전을 가득 채우는 박새군락, 능선부 탐방로 주변에 가득 피어나는 철쭉과 노랑제비꽃 그리고 군데군데 군락을 지어 소담한 꽃을 피워내는 산작약 군락지가 숨어 있는 곳. 여름 정상에 서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고, 발아래 짙게 우거진 푸른 숲엔 하늘다람쥐, 담비, , 노루가 뛰어다니는 곳. 가을이면 숲 곳곳에 쓰러진 신갈나무에서 피어나는 온갖 버섯들과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그리고 옛 원강사지 한구석에서 하얗게 빛나는 주춧돌과 일주문의 초석이 있는 곳.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반달가슴곰이 찾아오는 곳. 그리고 그 형제봉에 기대 마실 물과 각종 산나물을 얻고, 위안을 받는 산아래 사람들. 많은 사람들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새로운 시범사업으로 거듭나길, 그리고 새로 제정될 특별법에 반영되어 사람도 자연도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산림휴양관광진흥법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걸음 나아갈것이다. 우리 모두가 선택했던 통합과 공존의 원칙 그리고 그 다짐을 이젠 정부나 기관이 아닌 우리가 실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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