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지리산 이야기 (3) 국립공원을 관광지로 만든 주범(성삼재·정령치도로)

도심처럼 국립공원도 교통체증·매연·소음 '몸살'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필름 대표윤주옥 시민기자(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 (webmaster@idomin.com) 20210503일 월요일

 

서울올림픽 맞춰 관광도로 건설 후 연간 차량 약 45만 대 운행2007년 대도시급 미세먼지 측정

당장 아스팔트포장 못 뜯는다면 주민 운영 친환경차량 이용하고 일반차량은 통제하는 도로 돼야

 

 

2003년 가을, 나는 성삼재도로를 처음 걸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른까지 50명 정도가 함께였다.

 

천은사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우리는 심한 굴곡과 급경사지를 달리는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타이어 타는 냄새, 소음에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천은사에서 출발해 약 10를 걸어 올라간 우리는 달궁에서 약 9를 걸어 올라온 분들과 성삼재휴게소에서 만나 지리산에 대한 마음, 성삼재도로를 걸으면서 느낀 점 등을 이야기했다.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는 분도 있었고, 달리는 차량으로 위험했지만 걸을 만했다는 분도 있었다.

 

2003년 이후로 나는 1년에 한 번 이상은 성삼재도로를 걷는다. 성삼재도로를 걸어서 오르자는 캠페인을 할 때도 있었고, 성삼재도로 주변에 사는 나무와 풀을 조사하려고 또는 지리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성삼재도로가 다른 지역의 도로와는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내가 성삼재도로를 걷는다고 하면, 첫 번째 반응은 '몸에 안 좋을 텐데 뭐 하러 걷느냐?'였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맞다, 성삼재도로를 걷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그러면 이곳이 삶의 터전인 반달가슴곰은, 히어리는, 쇠딱따구리는, 그들 모두는 얼마나 힘겨울까.

 

국립공원공단이 2007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성삼재도로 주변의 대기질 농도가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노고단대피소보다 전반적으로 짙은 농도를 나타냈다. 가장 심각한 항목은 미세먼지였는데, 20071026()28() 조사 시 성삼재휴게소는 대기환경기준을 초과했고, 대도시 지역(서울시 월평균 60/)의 평균 농도보다 높은 101/을 나타냈다. 소음 측정 결과도 성삼재도로 주변은 주간 평균 58.665.3로 국립공원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가 아니다. 내가 걸으면서 느꼈던 구토와 어지럼증은 상상이 아니라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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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본 성삼재도로. /김인호 시민기자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성삼재도로를 달려 지리산국립공원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100m 깊고 높은 곳에, 그것도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을 달리는 도로가 어떻게 생길 수 있었을까?

 

구례 천은사에서 남원시 산내면을 연결하는 성삼재도로는 1985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을 포함한 약 68억 원 예산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지리산국립공원을 편하게 관광하도록 건설됐다고 한다.

 

성삼재도로와 함께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와 산내면 달궁을 연결하는 정령치도로를 건설하고, 1991년에는 성삼재주차장을, 1993년에는 정령치주차장을 만들면서 지리산국립공원은 이리저리 잘리고 파헤쳐졌다. 성삼재·정령치도로로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단절되면서 연간 100건 정도의 로드킬이 발생하고, 도로를 건설하면서 심은 외래 수종들로 도로 주변 생태계와 경관은 변화하고 있다.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지리산국립공원의 이용행태를 바꿔 놓아, 도로가 생기기 전과 비교하여 지리산국립공원 탐방객은 2, 노고단 탐방객은 7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화엄사에서 시작해 연기암을 지나 국수등, 집선대, 코재를 땀 흘리며 천천히 걸어야만 오를 수 있었던 1507m 노고단은 성삼재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유흥지가 된 셈이다.

 

1988년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는 지리산국립공원 심장부까지도 아스팔트 도로를 깔아 돈만 벌면 되는 시대였고, 도로가 건설되면 지역에 큰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도로만 건설되면 잘살 수 있다는 '도로 신화'는 지리산자락 마을들을 스쳐 지나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성삼재·정령치도로가 생기기 전, 지리산 아래에서 하루 묵고 지리산에 오르던 등산객들, 밥도 먹고, 차도 마시던 도시 사람들은 이제 물까지 사 가지고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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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재도로에 뒤엉킨 차량들. /윤주옥 시민기자

 

 

이런 지역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비집고, 표면 뭐든지 된다는 정치인과 돈을 따라 움직이는 토건업자들은 지리산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2012년 남원시, 함양군, 산청군, 구례군은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 천왕봉, 노고단에 4개의 케이블카를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모두 부결시켰지만 지금도 틈만 나면, 선거가 가까워지면 지리산 케이블카를 이야기한다.

 

정치인과 토건업자들은 케이블카만이 아니라 산악열차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동군은 형제봉에, 남원시는 성삼재·정령치도로에 산악열차를 깔겠다고 나서고 있다. 4개의 케이블카와 2개의 산악열차,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지리산국립공원일까,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51, 나는 남원시가 계획 중인 지리산 산악열차 1구간인 정령치도로를 걸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 스산하고 싸늘한 날씨였다. 그러나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만난 초록의 향연은 시끄럽던 마음을 위로하고 평화롭게 했다. 3시간쯤 걸어 도착한 정령치엔 우박이 내리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 숲의 냄새, 새 소리, 모두 천천히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함께 걸은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무서웠지만 고추나무 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성삼재·정령치도로가 도로가 아니라 산길이라면 더 좋겠지만, 도로여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삼재·정령치도로를 지금처럼 놔두고, 똑같은 방식으로 이용하면서, 지리산국립공원 보전을, 반달가슴곰과의 공존을, 녹색뉴딜과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호지역 중 보전의 정도가 가장 높다는 국립공원에, 1100m 고지에, 1년이면 45만 대 이상의 차량이 아무런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다는 현실에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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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9일 열린 성삼재·정령치도로 전환연대 출범식. /정결 시민기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성삼재도로의 아스팔트 포장을 뜯어내어 원래 상태로 복원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도로 이용 방식을 바꾸면 된다. 일반차량은 지리산 아래에 놓고,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친환경 차량을 타고, 지리산국립공원의 과거와 지금, 이곳에 사는 야생 동식물에 대해, 지리산 곳곳이 간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가면 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단체들은 지난 429일 국회 앞 산림비전센터에서 '성삼재·정령치도로전환연대'(이하 전환연대)를 출범했다. '전환연대'는 기후위기시대, 탈탄소사회로 가는 길에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장기적으로 모색함과 함께, 당장의 과제로서 일반도로인 성삼재·정령치도로를 국립공원도로화해 일반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구례와 남원의 주민들이 공동운영하는 친환경 전기버스만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전환연대의 활동으로, 전환연대와 같은 뜻이 있는 지역사람들과 국민의 바람으로 지리산국립공원에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 기대한다.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1988년 성삼재·정령치도로 건설, 2004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본격적 시작과 함께 2025, 2030년의 어느 날이,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정의로운 전환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이며 사람과 야생 동식물 모두의 삶터이며, 생명의 산이다. 현 세대가 이 땅을 떠나도 100, 200, 1000년 이곳에 있을 지리산과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들을 위해, 그리고 기후위기시대에 국립공원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기사를 재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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