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뱀사골 계곡에서

 

지리산 숲해설 대표 김귀옥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탐방안내소를 지나 뱀사골 생태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물고기가 유유히 노니는 커다란 물웅덩이 같은 소가 나타난다. 그 소는 푸른빛이 돈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록빛이 돈다. 소가 잘 바라보이는 곳에서 계곡물 소리와 그 초록빛과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갖곤 한다

그렇게 맑은 물을 바라볼 수 있음에 행복해하면서도 한구석으론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자주 든다. 그 까닭은 청소년 시절 내가 살던 곳인 울주군 궁근정리 개울의 둥글둥글하면서 흰빛으로 빛나던 돌들과 맑게 흐르던 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의 미명 아래 물길이 바뀌고, 호박돌의 색깔이 바뀌고, 물에 비치던 하늘빛마저 바뀌어 안타까운 마음을 추스르느라 몇 년을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그나마 젊은 시절에 동생과 함께 한 지리산 여행길에서 마주했던 뱀사골 계곡의 물은 청소년기의 궁근정리 개울에서 받았던 안타까운 마음을 치유해 주는 고마운 물, 아름다운 물로 다가와 주었다

이순을 넘긴 나이가 된최근에는 뱀사골 계곡에서 살고 있는 수서곤충을 관찰하는 기회가 있었다. 큰 바윗돌 사이 사이에 있는 작은 돌들을 들추면서 작은 생명들을 찾아 물이 든 채집통에 모은 뒤 참여자들과 함께 살펴보았다. 한국강도래, 진강도래, 부채하루살이, 알통하루살이, 물날도래KUa, 바수염날도래로 보이는 맑은 물을 증명해 주는 물 속 주인공들을 만났다. 아직은 뱀사골 물 속에서 잘 살고 있어서 참 고마웠다.젊은 시절에 만났었던 뱀사골 계곡물에 비해 비록 유량은 줄어들고 그 초록빛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뱀사골 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그 아름다움 옆에 공존하는 불길함이 보인다. 깊은 숲속에 도로를 내고, 자동차가 심심치 않게 다니고, 심지어 포크레인을 동원해 주차장을 만들어서 숲이 훼손되고 있음이 보인다. 거기에다 엄청난 숫자로 드나드는 탐방객들이 옮겨 두고 가는 세속의 때가 더해지고, 야영객들이 머물고 간 뒤의 혼탁한 흔적들까지 쌓이면서 물속 산소가 모자라고, 물속의 온도가 올라가고, 유기물의 농도가 자꾸 높아지고 있음을 뱀사골국립공원 입구 다리 아래쪽의 자갈돌, 호박돌의 미끄러움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뱀사골 계곡에서 살고 있던 작고 여린 수서곤충인 강도래와 하루살이와 날도래들의 다양함과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나만 느끼는 걸까? 이네들이 사라지면 낙엽이 떨어져 물속에서 썩어도 치워줄 이가 없게 되고, 물 속 자갈돌 위에 자라는 녹조류를 먹을 이가 없게 되고, 나아가 이들을 먹고 살아가는 물까마귀와 꺽지와 쉬리는 어디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진대, 우리 사람들이 구태여 간섭하여 망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가! 생물들의 서식처를 훼손하는 행위들을 멈출 때 먹이사슬의 고리는 더욱 다양하고 튼튼하게 연결될 수 있다. 뱀사골 맑은물은 물속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먹고 먹히는 길고 긴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얻어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시멘트 도로, 자동차 통행, 넓은 주차장, 손만 뻗으면 물이 닿을 듯한 위치의 견고한 나무 데크, 관광을 위한 편의시설 등이 국립공원에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서식처를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여러 행위들을 멈추어야 한다. 이젠 멈추자.

 

노인이 된 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도 진강도래 애벌레, 바수염날도래 애벌레, 부채하루살이 애벌레가 잘 살아가고, 뱀사골 계곡의 초록빛 물이 위풍당당하게 계속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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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젊은 시절의 뱀사골 소

바수염날도래 애벌레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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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강도래 애벌레

부채하루살이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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