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가난한 시인의 사회


                                                                                                                                                                    -박두규 시인

 

오래전, 한 시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시인들은 한 시대의 퇴장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상징성이 있는 시인이었다. 1980년대 벽두에 처음으로 노동자 문학이라는 영역을 일궈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문단에서 비중 있는 중견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성과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이념적이고 정치사회적인 시만을 쓰며 투사적 삶을 산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서정성 짙은 본류의 문학을 했고 그런 성과를 이룬 많은 시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랬대서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한 것은 순전히 그의 일상적 삶이 가졌던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부안군 변산 출신이며 전주고 1년을 마치고 중퇴한 박영근이라는 시인인데 그의 일상은 여느 현대인의 일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한마디로 대책 없는 사람이었고 그를 이해하는 시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 시대의 형벌을 대속하는 자와도 같았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형벌이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도 아니고 바로 가난이다. 현대의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굴욕적인 것이며 비속해지는 것이며 비굴해지는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난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인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와 일상의 삶이 그렇게 구조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 박영근은 그 가난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자본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현대라는 괴물에 저항하며 온몸으로 싸우던 전사였다. 무슨 사상과 조직을 가지고 기획된 싸움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의 일상생활이 그랬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돈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고 어쩌면 자유로웠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가난은 두려움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밖에서 행사를 하고 술 한 잔 후에 집에 12시를 넘겨 들어갔었다. 그런데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급히 출두해달라는 것이었다. 박영근이라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이 한밤중에 순천의 파출소에 있는 것일까. 나는 급히 파출소로 갔다. 그는 술 한 잔을 하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내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그는 나의 고등학교 2년 후배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길로 바로 택시를 타고 전남 순천까지 왔던 것이다. 물론 그의 주머니에는 최근에 받은 몇 푼의 원고료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 사는 그로서는 한 달도 더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겠지만 택시비로도 모자란 돈이어서 택시 기사가 파출소에 데려갔던 것이다. 덕분에 나도 그와 밤새워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출근도 하지 못하고 내 일상의 견고한 틀을 한 번 깰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일을 나만 겪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에 있어서 이러한 사건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자본에 길들여져 가는, 그리고 돈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억지를 썼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 그건 분명 억지가 아니라 온몸으로 저항했던 거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이 사회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가 새벽 2시건 3시건 거는 전화도 우리의 일상을 깨는 그의 일상이었으며 우리의 일상을 반대하고 이 세상에 저항하는 이 시대 마지막 순정한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제 그처럼 살아낼 사람도, 그런 저항을 수용해줄 사람도 없는, 참으로 고적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쓴 졸시 하나를 소개한다.

 

늦도록 술에 젖다가/ 전화를 거는 시인이 있다./ 새벽 3시가 넘어 전화를 받은 나는/ 갑자기 이부자리 속 남편에서/ 생뚱맞은 시인이 된다.// 창밖의 희붐한 빛살을 타고/ 취한 시인의 목소리가 건너 왔다./ 20여 년 서울 생활에/ 지금도 갈 곳이 없다는 시인의 말이/예전엔 은유로 들렸던 그 말이/ 이젠 그대로 슬픔으로 온다./ 슬픔의 그림자까지 그대로 따라 온다.// 하지만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이젠 눈물도 아름다운 나이가 되어/ 새벽안개에 젖은 시인의 취한 목소리도/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잠자리에 들어와 눕는다./ 달랑 목숨 하나 걸어 놓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서글픈 것들도/ 이제는 차라리 아름다움으로 온다.// (졸시시인의 전화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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