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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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인.칩코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글. 칩코(지리산방랑단 기획단)


잘 지내시나요? 방랑단이 사라진 숲을 찾아 떠난지 두번째 겨울이 왔어요. 

제가 처음 지리산으로 향했던 그 해는, 지리산을 알프스로 만들겠다는 산악열차 사업이 파도처럼 하동을 덮친 해였어요. 겨우 발등의 불을 끈 산악열차 반대 활동가들이 ‘친구를 만들러 왔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손을 내민 사정도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었겠죠. 저 역시 알프스가 아니라 지리산을 찾아왔기에 손을 덥석 잡았고요.


문제는, 제가 지리산을 지키기엔 지리산과 데면데면한 뜨내기 이주민이라는 점이었어요. ‘지리산방랑단’은 그래서 생겨났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지리산인지, 얼마나 크게 또 어떻게 흐르는 것이 지리산인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지리산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궁리했어요. 그 결과 지리산의 야생동물을 스승삼아, 여섯명의 친구들이 사개월간 지리산을 무전으로 방랑했답니다. 날마다 지리산에게 얻어 먹고, 얻어 자면서요. 지리산의 사라진 숲이야기를 찾아다녔어요.


노숙도 걸식도 처음이라 ‘지리산방랑단’은 제게 장마철의 불어난 계곡물처럼 벅차기도 했지만, 저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떠났어요. 제가 방랑단 이후로 산골짜기에 부는 바람에 대고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물에 걸린 구름처럼 움직이는 하루살이 떼도, 낮에 뜬 조각달도, 솜씨좋은 수달과 물까치도, 낙하산을 타고 비행하는 꽃씨들도... 모두 귀퉁이를 접어둔 동화책을 보는 마음으로 느끼게 됐다면요. 더는 지리산이 제게 겸연쩍은 타인이 아니라, 한없이 다정한 친구가 된 거예요. 


어느덧 방랑단이 사라진 숲을 찾아 떠난지 맞는 두번째 겨울. 하동의 타고 남은 불씨가 남원으로 옮겨간 올해, 매섭게 진군하는 산악열차 사업을 터진 둑을 망연히 바라보는 심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어요. 저는 더는 스스로 뜨내기 이주민이라고 여기지 않았거든요. 지켜야할 지리산의 얼굴을 이젠 선명히 아니까요. 하루에도 몇장씩 자보를 만들고, 문화제를 열어 소란을 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불쑥 서명지를 내밀면서 동분서주했어요. 안타까운 중간발표를 하자면 터진 둑은 끝내 돌이키지 못했고요. 눈물샘도 어딘가 둑이 터졌는지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제가 베인 나무가 된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엄살이라 면박을 줄지 모르지만 분명 저는 힘들었어요. 수취인이 불분명한 선언문들이 왜 그토록 공허했을까요. 누가 들어줄 지도 모르는 말을 쏟아내고 아무나 붙잡고 호소하는 일이요. 환경운동은 때로 이런 기분으로 저를 이끌어요. 물 속에서 도저히 어디에도 닿지 않는 악을 지르는 기분으로. 내 편이라곤 한 줌의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사막에 혼자 있는 기분으로. 텅 비어가는 지역의 목소리를 실감했달까요. 그렇게 올해를 보낸 소감을 자문하자면, 저는 그날로 돌아가있어요. ‘친구를 만들러 왔다’던 활동가들과 마주한 그날. 물론 그 지친 말을 이젠 제가 뱉는 장면으로요.


허우적대던 무렵, 지리산이 머릿속에서 댕-하고 경종을 울렸어요. 저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고요. 방랑을 하면서 지리산에게 배웠더군요. 사실 수취인은 한 명이어도 충분해요. 단 한 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장들이면 충분해요. 허공에다 고래고래 외칠 게 아니라, 하나의 눈동자라도 반드시 마주보면서 외쳐야 한다고요. 방랑하면서 만난 바람과 새와 나무가 제게 그렇게 해주었거든요. 제가 그들을 사진 속에서만 만났다면, 두 해 전 온전히 그들 품으로 뛰어들어 마주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방법으로요.


어김없이 겨울이 돌아오는 건 기적이에요. 마고여신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면 아마 겨울 철새들이 북쪽하늘을 뒤덮겠지요. 방랑단은 이번 겨울에 다시 떠날 거예요. 전국을 편지로 방랑하며 친구를 만드는 거예요. 첫 발자국은 서울의 환경활동가들로 향합니다. 이름하여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는 겨울을 나면 좋겠어요. 지구를 돌보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면, 그 과정마저도 돌봄이 될 수 있도록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네 명의 방랑단과 네 명의 서울의 환경활동가들이 각각 짝을 지어 펜팔을 나눕니다. 서울의 환경활동가들은 12월 중에 익명으로 모집했어요. <참새와 돌>, <유우야와 갈토>, <토토와가로>, <덕복희와 산달> 네 팀의 펜팔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먼 곳에서 서로 닮은 삶을 살아가는 환경활동가들의 우정을 전할게요. 우리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지리산의 소식을 함께 실을게요. 텅 비어있던 수신란에 단 한 사람의 이름을 가득 채운 편지를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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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편지]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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