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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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안녕하세요, 갈토! 저는 유우야라고 해요:) 
이름이 좀 낯설지요. 저도 이 이름이 낯설고 저랑 어울리는가 싶어요. 저는 늘 마음이 급하거든요. 특히 도시에서 살 땐 더더욱 그래요. 여유롭고 싶어서 충분히 일찍 외출해도 점점 걸음걸이가 빨라집니다. 그래서 갈토와 편지를 쓰는 순간만큼이라도 여유와 느긋함을 가지고 싶어서 유우야라고 했어요. 일본어를 공부중인데, 공부하다가 느긋함을 뜻하는 한자를 보고 만든 이름이랍니다!ㅎㅎ 갈토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갈색 토끼라는 이름을 듣고 참신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다가 갈색이 되었는지(?) 듣고 싶어요. 갈색은 저한테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갈토에게는 어떤가요?
 
그러고보니 펜팔을 하고 싶었던 이유도 같네요. 편지는 급한 마음으로는 안 써지더라구요. 받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썼다 지웠다 하며 한참 걸려요. 어떻게 제 이야기가 전달될지도 조심스러워서 그런가봐요. 한편으론 기대도 되지만요! 어쨋든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진심이 써지더라구요. 저는 갈토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편지 쓸 때의 여유로움을 실컷 느껴보고 싶어요. 갈토와 진심을 주고 받으면서 몽글몽글 따뜻함도 나누고 싶습니다! 갈토에게 제 진심들이 잘 전해진다면 참 좋겠어요:)
 
갈토는 어떤 마음의 습관이 있으신가요?저는 이 조급한 마음이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나타나요. 밥 먹을때도 누가 볼세라 빨리 먹고.. 청소기를 돌릴때도 요리조리 후다닥 돌리다보니 다 돌리고 나면 팔이 아파요. 설거지할 때도 그렇네요.. 달그닥 달그닥 소리도 무섭게 나고 다하고 나면 물이 사방팔방 난리가 나 있어서 가끔은 저도 웃겨요. 이렇게까지 급할 일인가.. 하고..ㅎㅎ 샤워도 노래 한곡이 채 가기 전에 끝나요. 한 곡 안에 끝내야지 마음 먹고 하는 것은 아닌데, 샤워를 다하고 물을 끄면 노래는 아직 2절 중이에요. 줄줄 말하다 보니 조급한 순간들이 진짜 많네요!
 
때로는 그런 조급함이 전기나 물을 오래 켜놓는 것보다 좋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전 그 마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좀 더 그 습관을 관찰하고 의식해보고 싶어요. 아침에는 주로 과일을 먹는데, 과일을 먹을 때 특히 이 습관을 관찰하기 좋더라구요. 빨리 먹으려 하다가도 실패하지요. 면처럼 후루룩 목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가봐요. 조급함이 찾아 올 때 마다 관찰하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다 보면 제 일상도 점점 느긋해질 수 있을까요? 갈토도 같은 상황에서의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ㅎㅎ
 
제 편지는 여기까지에요.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키워드는 '습관'과 '펜팔의 동기'였답니다! 꼭 키워드를 맞출 필요는 없는 것 알지요?ㅎㅎ 그럼 갈토, 겨울은 안으로 수렴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모든 비인간동물들이 겨울 잠을 자고 인간동물들은 명상하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겨울처럼 포근하고 고요한 나날들 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우야에게>
 

유우야안녕하세요.

저는 갈토입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이지만그저 갈색피부를 귀엽게 표현해서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신 별명이에요제가 귀여운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갈색토끼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저는 진지하고 걱정이 많은 성향이라 편지가 재미없을 것 같아 처음에 신청할 때 고민을 살짝 했습니다. ^^


제가 편지쓰기를 하고 싶었던 건우선 서울 중심을 벗어난 활동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어요몇 년 전부터 서울 중심으로 많은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잠시 경기도 북부로 활동 영역을 옮겨보는 것도 고민했습니다근데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결국 지금까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어쩔 수 없는 저의 여러 조건들로 비록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되고 싶었고 이 프로젝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친구랑 교환일기를 썼거든요친구가 어떤 글을 써서 줄까 기다리던 그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도 편지쓰기의 동기였어요지리산으로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안내를 받고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나를 모르는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준다는게 너무 신나더라고요저의 짝꿍이 어떤 분일지어떤 글을 보내주실지 궁금해서 편지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근데 제 생일 바로 전날 '선물'같이 첫 번째 편지가 도착한 거예요단조로웠던 일상에 반갑게 찾아온 선물이었어요.

 

더욱이제 생일이 참 엉망인 하루였어요마구 일이 꼬이는 날 중 하루였는데하필 그게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이다보니 마음이 좀 상하네요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데도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길 바랬을 뿐인데 말이죠그래서 생일을 잘 마무리 하기 위해서 답장을 쓰기로 했어요올해 받은 생일 선물 중 가장 반가웠던 선물에 대한 답례 인사를 하면서 이 하루를 마무리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답장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유우야저도 조급한 편이라 느긋해지는 방법을 알려드리기가 참 어렵네요하하하. 전 제가 성격이 급한게 하고 싶은게 많은 욕심쟁이라서라고 생각해요호기심이 많다보니보고 싶은 것도 많고 부지런히 이것 저것을 해요그래서 장점은 삶이 풍부해진 거고단점은 여유가 없다는 거에요처음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게 너무 어렵더라고요책을 읽던영화를 보던 무언가 해야될 것 같아서 쉬러 왔는데 뭐하고 쉬지라는 생각에 둘러싸여 쉬지 못하는 저를 보고 한심하고 안타깝고 화도 났던 것 같아요지금은 그런 저에게 꽤 익숙해졌고마음에 여유를 가져보려고 애는 쓰지만이것도 성격인 건지 잘 안되네요그래서 어느 정도는 포기를 했는데 올해 우유야와 함께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같이 찾아봐도 좋겠네요.


근데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가요저는 출근 할 때걸어서 가요대도로의 차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단축길이라 55분 걸리지만공원길로 돌아가면 75분 걸려요그래서 저는 되도록 한 시간 반 전에 집을 나와서 공원 길로 출근하려고 해요날씨가 좋으면 파란 하늘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거든요특히 저는 소설을 귀로 들으면서 걷거든요그러면 귀로는 소설을 듣고눈으로는 경치를 보면서 걸으면 참 힐링이 돼요이게 느긋한 걸까요ㅋㅋㅋㅋㅋ 쓰다보니 느긋한게 아니라 오히려 바쁜거 같네요쉬지 않고 빠르게 다리는 걷고귀는 듣고 눈은 보고여튼 저는 걷는 걸 무지 좋아해요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걸 어릴때부터 좋아했어요.


처음 습관에 대해서 물어보셨을 때생각났던 건 감사일기였어요작년에 친구가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고 저에게 추천을 해줘서 작년 2월달부터 꾸준히 썼어요하루에 세 개씩 감사한 일을 적는 건데요어떤 날은 한 개 채우기도 어려운 날도 있어요그러면 굳이 감사한 일을 찾아내야해요근데 하루에 3가지는 찾을 수 있더라고요오늘같이 일이 꼬여버린 날에도 3가지의 감사한 일은 있어요

 

예를 들면 

1. 오늘 되는 일은 진짜 하나도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아서 감사합니다

2. 비건 꼬치 구이가 너무 맛있어서 감사합니다

3. 순두부두부를 10% 할인으로 구입해서 감사합니다

4. 편지 답장을 쓰며 나의 습관을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참 별거 없죠가끔 감사일기를 밀려서 3-4일치를 한꺼번에 적기도 하는데요하루를 정리할 수도 있고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아무리 엉망인 하루도 감사할게 한가지는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친구들에게 감사일기를 적극 추천한답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안 좋아하는데요예전에 같이 살던 크리스티나는 겨울을 좋아했어요겨울의 깊고 긴 어둠의 고요함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은 안으로 수렴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모든 비인간동물들이 겨울 잠을 자고 인간동물들은 명상하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녀가 떠올랐습니다저는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좋아하고 명상에 성공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지만이번 겨울 편지쓰기를 하며 따숩게고요하게 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좋네요내가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고나의 답장을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게 말이죠.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출근길 사진 몇 장 보내드려요

 

갈토드림

 

2022년 10월의 파란 하늘 1.jpg

 

2022년 10월의 파란 하늘 2.jpg

 

2022년 12월에 만난 토끼.jpg

 

2023.1.5.jpg

 

서울 도시 한복판에 자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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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 12059
유현숙

행동해기전에 생각을 먼저 한다면 느긋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댓글댓글 (1)
윤주옥

유현숙   >   느긋한 시간이 되고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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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일상을 느긋하게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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