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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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칩코

 

 

<돌에게>

 

돌, 안녕하세요. 저는 지리산의 참새입니다. 저는 10년 넘도록 사용해온 별칭이 있었는데요 펜팔을 위해 처음으로 새로운 별명을 짓게 되었어요.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것 마냥 설렙니다.

겨울의 참새들이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게 너무 귀엽더라고요. 고양이들도 겨울이 되면 털을 찌워 몸집이 두 배가 되고, 저도 겨울이 되면 볼살이 포동포동해져요. 주변 사람들이 살이 찐 것 같다고 놀라면 ‘여름 되면 알아서 빠질거야!’라고 장담하며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다들 이렇게 겨울을 나고 있으니 저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 뿐이겠죠. 
 
돌은 어떤 이유로 돌이 되었나요? 참새와 돌, 벌써부터 마음에 쏙 드는 조합이에요. 가깝고, 흔한. 그래서 슥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런 존재로 이름삼고 싶었어요. 앞으로 돌과 펜팔을 주고받으면길가의 돌을 보고 어떤 문장을 떠올리게 되겠죠.  그럼 걷는 길이 더 생생하고,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산책을 좋아해요.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건 아직 제게 너무 어려운데요.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그냥 걷다보면 걱정도 불안도 화도 슬픔은 옅어지고, 다음 한 발, 그 다음 한 발만을 떠올리는 그 상태가 너무 황홀해요. 화가 나고 답답할 때는 그 걸음이 빨라져 달리기가 될 때도 있고요. 기분이 좋고, 에너지가 넘칠 때는 산을 오릅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리산에 온 것 같아요. 더 걷기 좋아서요. 탁 트인 하늘과 논밭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요. 고요한 와중에 들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는 마음의 안정을 주고요. 둘레길을 걷다보면 달라지는 오솔길의 풍경은 재미있어요. 초록색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구나 놀랍구요
 
언젠가는 산책을 하다 고라니가 제 눈 앞에서 드넓은 밭을 가로질러 껑충껑충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정말로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는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인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가 정말 딱 맞는 말같아요. 지리산은 늘 그랬듯이 자기 모습 그대로 여기 있어요. 지리산 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도 그저 자기 모습대로 살고 있어요. 관심을 받거나 말거나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지리산에게 배워요. 위로를 받아요.저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또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래서 펜팔을 쓰게 되었어요. 
 
사실 편지를 쓰다보니 이제야 내가 이런 마음으로 지리산에 왔고, 펜팔을 쓰게 되었구나 싶어요.ㅎㅎ 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 우리가 앞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어떤 마음들을 정리하고, 발견하게 될지도요. 그럼 안녕히! 짹짹!
 
 
 
<참새에게>
 

안녕하세요 참새! 는 서울에서 지내는 ‘돌’이에요. 반가워요. 여유있게 도착한 참새의 편지에 저도 여유를 담아 답하고 싶었는데,, 편지의 도착일에도 제 상태이자 소개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네요


저의 원래 별명은 7년쯤 되었는데, 그땐 다른 이들이 편히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지었어요. 다시 이름을 만드려니 좀 더 고유한 저의 의미를 담고 싶더라고요. 근래 저는 흘러다니며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았어요. 주변의 필요와 요구에 잘 반응하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이름처럼요. 그런데 그것이 동시에 제 중심을 잃을 수 있고, 그래서 타자에게 더 많이 신세지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신세지는 것이 꼭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저는더 적극적으로 서로 기대는 삶의 방식을 바래요.그럼에도 제 중심 없이는 서로 기대기가 어렵겠다 싶었어요. 


스스로의 힘이 더 무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을 상상했어요. 참새의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죠. “관심을 받거나 말거나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는 걸 지리산에게 배워요” 아 너무 찾던 문장이에요.누군가는 멈춰있고 고여있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저는 무겁게 그러나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며 이름을 지었습니다.

 

참새와 돌. 구덩이에 쏙 빠져 혼자서는 굴러나오기 어려울 때, 참새가 발견해 꺼내주지 않을까? 참새는 돌을 보고 돌아와야 곳을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상상도 해보네요. 제 상상 속에서는 참새와의 관계에 따라 돌의 크기도 무게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습관은 일기를 쓰는 일이에요. 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 커다란 경험을 하고 난 후 마음이 부풀 때 펜을 들어요. 일기의 형식과 분위기는 자주 바뀌어요. 정리하고 싶은 것이 저일 때도, 바깥일 때도 있기 때문이죠.

 

저는 주로 직접 일기장을 만들어요.공책 자체를 만들어본 적도 있지만 요즘은 여기저기에서 받은 노트 중 적당한 크기와 두께인 것을 골라, 직접 구획을 긋는 쪽이랄까요. 해가 시작하고 끝날 때 새로운 공책을 열어, 채우고 싶은 내용을 생각하며 선을 그려요. 월, 일주일, 한해 등 제목도 적고요. 그중에서도 매일 적는 ‘일기’는 주로 질문 없이 비워두려고 해요. 펜을 들면 가장 선명한 언어가 먼저 툭 튀어나오죠. 일기장은 저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아주 가볍게 사유를 촉발시켜주어요. 게워내기 위해 들었던 펜이, 정리된 후에 결국 무엇을 바랬는지까지 이끌어내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저에게 서울, 도시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꾸려가는 삶은 이렇게 편안하게 펼쳐내기보다는 부담스럽더라도그 책임에 응답하며 쌓아온 시간 같아요. 부당한 것도 많고, 그 요청들이 저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기도 해요. 단절과 효율이 우선되는 공간이니까요. 외면하고 벽 세우지 않고서는 나의 안전이 흔들리는 삶이 많은 것 같아요. 활동가로 산다는 건 이런 삶이 결코 우리를 오래도록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관계를 상상하고 실험하며 동료 시민들에게 제안하는 일 같아요. 


도시에서 다시 연결을 찾아내고 만드는 일은 당연하게도 도시 바깥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요.지리산과 그 속에 사는 이들과 연결되면서 서울이 만드는 단절을 발견하고 싶어요. 회복의 계기를 찾고 싶어서, 펜팔에 함께 하게 되었구나 싶어요. 먼저 말 건네준 참새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바쁘고 지친 와중에 덕분에 회복한 이 에너지을 담아, 소한의 답장을 보냅니다. 데구르르~


,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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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편지 : 참새와 돌] 자기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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