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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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안녕하세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이 많은 것 같아요. 아직 햇님이 닿지 않은 지붕은 아직도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있어요. 쉬이 녹지 않은 눈들이 여기 저기 묻어있는 겨울이에요. 얼마나 추운지 작년에는 하얀 눈 속에서도 초록 초록했던 마늘 싹들이 올해는 시들해보여요. 새싹에 보랏빛이 돌아서 걱정이에요. 지난 가을에 심었던 마늘이 이대로 괜찮을까 하며 매일 아침 살짝 들여다 봐요.

 

아 참, 마늘은 추위에 강한 친구래요. 가로는 알고 계셨나요? 영하 7,8도의 온도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다고 해요. 뽀록하고 튀어나온 기다란 새싹이 하얀 눈 밭에서 숨구멍을 만든 걸 보면 참 신기하더라구요. 마늘싹 주변으로 마치 따뜻한 온기라도 있는 것처럼 눈이 녹아있는 걸 보면 살아있는 생명의 힘이 느껴져요. 마늘의 매콤하고 알싸한 그 맛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가봐요. 눈도 쉽게 녹지 않는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새싹을 키우는 저 집념! 모든 것이 잠들어있는듯한 이 겨울에도 초록 생명을 잃지 않는 마늘을 보면 내 안에도 생기가 돋아나는 것을 느껴요.

 

저는 지리산에 와서 처음 호미를 손에 잡아봤어요. 그래서인지 밭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는 이 생명들의 위대함이 참 새롭고 신비해요. 정신없이 마늘의 겨울나기 이야기를 하느라 제 소개가 늦었어요. 저는 토마토를 사랑하는 토토에요! 눈치채셨겠지만, 농사지으며 살고 있어요. 아직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한 초보 농부에요. 토마토는 제게 특별한 채소인데요, 직접 심었던 첫 작물이기도 해요. 언젠가 가로에게 토마토의 신비로운 세상도 이야기해드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가로가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하신다면 제가 만난 알록달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마토들도 소개해드릴게요.

 

산달리기와 계절을 통해 위로받는다고 적어준 가로의 글을 보았어요. ‘앗, 내 이야기인가...!’ 싶었지요. 속으로 반가운 마음에 가로와 꼭 펜팔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참 좋았어요. 이렇게 가로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니! 가로는 지금 어떤 겨울을 만나고 있나요? 이 겨울이 어떤 위로를 건네주고 있는지,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과 닮아있을지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요.


아주 어렸을적부터 1월 1일 새해는 가족들과 해맞이를 하러 다녔던 것이 여전히 제 삶에 의식처럼 새겨져있어요. 아마 그때 떠오르는 햇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가족들의 행복한 얼굴이, 다정한 새해 인사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해에는 한번도 빠짐없이 해맞이를 하러 어딘가로 떠났는데 올해는 금강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새해 소원을 빌며 가로와도 그 순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강과 미호천, 두 강이 만나며 자연스레 형성된 습지가 있어요. 신비스러운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모든 것의 시간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은 마법같은 곳이였어요. 나무들은 늘어뜨린 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이 활짝 피어있고, 하얗게 서리가 앉은 갈대들은 흔들릴때마다 반짝거렸지요. 겨울왕국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새벽 안개로 가득한 하늘에 새해 첫 햇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경이로운 풍경에 충분히 축복받는 한해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올 한해는 겨울에게 받은 특별한 선물로 시작했어요. ‘가로와도 이 축복을 나누어야지’ 하고 그 모습을 저장했는데 그 사진을 함께 보내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순간에 가로가 떠오른 것, 아직 얼굴도 목소리도 만나보지 못한 이를 떠올린다는 것이 참 신기했어요. 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 때론 시린 마음들도 나눌 때가 있겠죠? 비행을 하는 느낌같기도 해요. 이렇게 커다란 구름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이 그저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로와 펜팔을 시작하는 것은 설레고 기쁜 마음이에요. 비행기가 도착했을때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처럼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기도 해요. 편지를 쓰는일이 익숙한 일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진 것도 있거든요. 펜을 들고 끄적였던 엽서를 친구에게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서랍에 간직한 일이 종종 있어요. 잘 쓰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게 느낀 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의 깃든 생명의 이야기를 전하고,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가로와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펜팔의 기회를 꼭 붙잡고 싶었어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봐요. 한동안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낯선 공항에서 처음으로 게이트를 걸어나와 느끼는 냄새, 공기, 온도, 풍경들이 주는 신선함 그리고 그 곳에서의 경험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그런 펜팔 여정을 떠나고 싶어요. 왠지 가로가 ‘토토 환영합니다’ 라는 팻말을 들고 나와 서있어줄 것 같아요. 처음 보는 가로를 나는 운명처럼 느낌만으로..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가는 그런 상상을 해보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다시 한번 반가워요!

 

2023년 1월 5일

토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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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에게>

  

토토 안녕하세요! 저는 가로예요. ( )


정성스러운 토토의 소중한 편지를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으면서 토토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지웠다 하며 마음의 부담을 키우다가 약속한 일자를 넘겨 편지를 보내게 되었어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을 토토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커요... 마음과 다르게 하루에 주어지는 개인 업무들과 숙제들은 마음의 많은 여유들을 쉽게 사라지게 하는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편지 한 장 쓰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줄 몰랐네요. 편지가 어려운 건지, 마음을 꺼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건지, 표현에 많이 익숙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담고 싶은데, 숨을 고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기 위해 노력해 볼게요. 토토처럼 정성스러운 편지가 되지 못해도 너그러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네요. 약속날짜를 넘긴 건 정말 미안해요.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럼 진짜 토토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볼게요! 우선 저는 이번 겨울 마늘 친구들이 시들해 보여 걱정이 많았을 토토를 생각하니 토토를 잠시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토토 말대로 마늘은 영하 7,8 도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 강한 친구라고 하니까 씩씩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이번 겨울 토토를 든든하게 지켜줄 마늘 친구들에게 안부인사 전해줄 수 있죠? :) 

 

저는 농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농사를 하는 모습을 계절마다 종종 곁에서 보았던 적이 있어요. 이번 가을즈음에는 함께 무 씨앗도 심었어요 :) 아버지는 농사를 하면 하루가 한 달이 1 년이 정말 쉴 틈 없이 바쁘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직접 기른 나물들로 가득한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하면 어찌나 맛이 있는지, 나중에 토토의 음식들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저는 씨를 심고 기르고 거두는 모든 과정이 마음 밭을 가꾸는 일 같기도 해요. 토토가 씨앗들을 심고 싹을 틔우는 데까지 기다리는 마음을 배우고, 또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느끼며 매일 아침 섬세하게 식물들을 보살피면서 토토 자신의 마음의 밭도 다정하게 보살펴주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 과정이 모두 서툴고 때론 너무 느리고 때론 너무 급하기도 하고 그래요. 내가 바라는 하루의 모양은 토토의 하루인 것 같은데 여기는 늘 정신이 없네요. 새해에는 저도 제 마음의 밭에 소중한 다짐 씨앗들을 뿌렸어요.이 번 겨울 잘 자라주길 바라요. 그 씨앗들 중에는 잃고 싶지 않은 나도 있어요.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꽁꽁 숨어버린 나를 다시 기다려주고 그때는 정말 소중히 아껴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처음 방랑단을 보고 그런 나를 다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토토는 혹시 마늘처럼 추위에 강한가요? 저는 추위에 무척이나 약해요. 많이들 가을을 탄다고 하는데 저는 겨울을 타는 것 같아요. 매년 추운 겨울이 되면 평소보다 체력이 많이 약해지고 계속 잠만 자고 싶고 조금은 무기력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행히도 이번 겨울은 그런 저를 극복하고 싶어서 혹독한 추위에 밖에서 캠핑도 해보고, 산 달리기도 더 열심히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산 달리기는 정말 저에게 특별한 취미인데 다음 번에는 산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제 '가로'라는 이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요! :) 세로 가로 할 때 가로는 아니고요!( ) 괄호를 빠르게 말해서 가로예요! 저는 가로 안이 비어있는 게 참 맘에 들었어요. 언제든 가로 안에 무언가를 넣을 수도 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오랫동안 빈 가로예요. 이름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해 주는 일이기도 한데, 어느 날 내가 규정한 나에 갇혀서 스스로 숨이 막힐 때가 있었어요. 그게 정답도 아닌데... 그래서 뭐랄까, 저 가로 안에 텅 비어 있는 모양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로 안에 오늘은 토토의 따듯한 온기가 채워졌네요. 

 

고마워요 토토,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무리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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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편지 : 토토와 가로] 올 겨울, 잘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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