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기획
Home >  기획  >  절기이야기

실시간 절기이야기 기사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청명 즈음해 드는 명절이 한식입니다. 명절은 대부분 음력으로 따지는데 한식만 예외로 양력으로 따집니다. 동지 105일 후를 한식으로 하거든요. 근데 하필 왜 105일일까요? 맞습니다. 이게 15일 정도 간격으로 오는 절기에 맞추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동지 이후 청명까지 7개 절기가 드니 15일 곱하기 7개하면 105일이 되거든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 산에 숨어살며 나오지 않는 개자추라는 충신을 끌어내기 위해 불질렀다가 그 불에 타죽어 왕이 그날만은 불을 지르지 않고 찬밥寒食을 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게 한식날입니다. 근데 그 고사는 중국 얘기이니 잘 모르겠고요, 제가 볼 때는 봄에 농사 준비로 불 테우는 일을 한식과 청명 전에는 끝내고 조상 산소에 찾아가 잘 올라온 잔디를 밟아주거나 뗏장을 가져다 입혀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소까지 테워서도 안되지만 또 그 때되면 봄비도 오기 시작해 불 태울 일도 없을테니요. 청명과 관계된 음력 명절로는 3월3짓날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을 명절로 삼아 동네 잔치를 벌였답니다. 우리는 1월1일 설날, 3월3일 삼짓날, 5월5일 단오날, 7월7일 칠석날, 9월9일 중구절 등을 길한 날이라 해서 명절로 삼았어요. 이 날들이 전부 양(+)을 뜻하는 홀 수가 겹치는 날이라 길하게 본 겁니다. 양이 겹쳤다는 의미의 중양절이라고도 하죠. 그래 3월3짓날은 1월에 시작한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했습니다. 삼짓날이 그만큼 날씨가 봄답게 온화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래서 씨앗 파종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게 중요하죠. 말하자면 씨앗 심고 싶은 철인데요, 사람들에겐 사랑을 나누기 딱 좋은 철이기도 합니다. 아마 바람둥이 제비족이란 말도 이와 관련있을 법한데요, 그렇지만 마구 씨를 뿌려대면 쭉정이만 나올 수 있으니 제비족 같은 바람둥이는 경계하란 뜻이 담겨 있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봄과 관계된 것으로 바람이 있지요. 생각할수록 바람이란 말은 참 재밌습니다. 옛날엔 바람을 하늘님의 숨이라 했어요. 그래 하늘님이 노하시면 태풍 같은 무서운 바람이 불고 하늘님이 기분 좋으면 살랑살랑 사랑의 봄바람이 불지만 인간이 오버해 미혹한 바람을 일으키면 사단이 났던 거지요. 성경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은 다음 코에다 사랑의 숨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비슷한 얘깁니다. 청명이 되니 모든 봄꽃이 만개를 하네요. 옛날엔 순서대로 꽃이 폈는데 요즘은 경쟁하듯 한꺼번에 핍니다. 거의 제일 먼저 피는 개나리가 보통보다 일주일 늦게 피더니 곡우 즈음해서 피는 조팝꽃이 벌써 폈어요. 벗꽃은 자기 순서 기다린 듯 개나리 피기 무섭게 피네요. 올해는 음력이 늦어 개나리가 늦게 핀 듯 한데, 벗꽃 조팝꽃은 일찍 피니 늦은 음력 탓하기가 힘듭니다. 음력이 늦어 감자나 봄 채소들은 늦게 심으려는데 벗꽃 조팝꽃 일찍 핀 걸 보면 벼와 곡식들은 늦게 심는 게 능사는 아니겠어요. 문제는 서리에 약한 고추 같은 과채류들입니다. 음력이 늦은 올해 같은 경우 늦서리가 올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되도록 늦게 심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여전히 저희 밥상엔 나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늘 대용인 달래는 기본이구요, 돌나물, 씀바귀, 부지갱이도 늘 올라오는 밑반찬이지요, 잠깐잠깐 요 때만 먹을 수 있는 눈개승마 나물도 입맛을 돋구는 데 모자람이 없더만요. 제가 울릉도 미나리라 이름 붙인 전호나물도 생채로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는데 그 맛이 그만입니다. 요즘엔 원추리 나물과, 머위나물이 핫 이슈입니다. 머위나물은 살짝 비린내 같은 게 있지만 들깨가루에 무치니 그 맛은 사라지고 머위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나대요. 원추리 나물은 독이 있어 망설이다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감동이더이다. 독을 제거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대쳐야죠. 식감과 우러나는 단맛이 끝내주고 입맛을 돋구는 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어요. 청명이 다가오니 이젠 나무 순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올라온 두릅에서부터 다음 주부터는 나무 순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또 군침이 도네요. 구 기자 순, 엄나무 순, 화살나무 순, 다래 순, 오가피 순, 가죽나무 순이 순서를 기다릴 겁니다. 나무 순 중에서 최고라는 옻나무 순만 먹어보질 못했어요. 나물을 이렇게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옻순처럼 독이 있는 나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없을 겁니다. 한 번은 옻닭 백숙 먹으러 갔더니 식당에서 옻독 오르지 않게 약을 주대요. 약이라면 손사래치는 체질이라 걸리면 걸리라지 하며 약 먹지 않고 먹었는데 멀쩡했어요. 아마 이것저것 나물 많이 먹으며 내성이 생긴 것 아닌가 싶었죠. 청명엔 아무거나 심어도 싹이 잘 나지만 그래도 파종하는 날은 음력 삼짓날과 양력 절기인 청명과의 관계를 잘 살펴 잡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청명과 음력 삼짓날 사이에 파종날을 잡는 게 좋다고 보시면 됩니다. 청명은 절節이고 곡우는 중中이어서 청명은 2월에 들 때도 있고 3월에 들 때도 있어요. 곡우는 중이어서 꼭 3월에 들지만요. 그래 청명이 어느 달에 드느냐에 따라 파종 시기가 달라집니다. 방금 청명과 삼짓날 사이에 심는다 했죠. 그러니까 청명이 2월에 들면 삼짓날 전에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일찍 심고, 청명이 3월에 들면 삼짓날 지나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늦게 심습니다. 그렇지만 양력으로 보면 반대에요. 음력으로 빠르면 양력으론 늦게 심고 음력으로 늦으면 양력으론 빨리 심는다는 거죠. 말로 하니 헷갈리지만 손으로 달력 메모장에 써가면서 하면 금방 파악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명 농사일정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4-1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마늘과 함께 만물이 부활하는 춘분
    해의 길이가 밤낮이 같은 춘분부터는 음보다 양이 세지는 본격적인 양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겨울을 나고 새싹, 새움들이 입춘에 꿈틀거리기 시작해 드뎌 춘분에 얼굴을 드러냅니다. 겨울 되기 전 추워 죽은 것 같던 생명들이 부활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때 부활하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생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양의 시대이니 부활하시기 딱 좋은 철인거에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부활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실제로 예수님이 언제 부활했는지 기록도 없고 진짜로 부활하셨는지도 알 수는 없어요. 만물이 부활하는 춘분에 온생명을 대표하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걸로 보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겁니다. 한 번은 춘분 직전 어느 성당에서 절기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강의 전 여는 말씀을 하신 신부님이 곧 다가올 부활절의 의미를 얘기해주시는데,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부활하는 삶 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지요. 맞습니다. 일일신우일신은 아니어도 적어도 춘분이 되면 부활하는 새삶을 계획하면 어떨까 싶어요. 이게 괜한 얘기가 아닌 게, 예컨대 사람도 춘분이 되어 목욕을 하면 때가 더 나옵니다. 몸이 먼저 부활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매일 목욕하는 경우가 많아 춘분이 돼도 우리 몸에 내재된 달력이 작동하지 않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희집 마당의 삽살개도 춘분이 되면 몸에 진드기가 생기기 시작하죠. 온생명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겁니다. 동양에선 춘분이 되면 용이 하늘로 승천한다 했어요. 용은 하늘의 메신저로 여겨 임금은 용이 새겨진 용포를 입었지요. 임금은 천자, 곧 하늘의 아들로 여겼으니 기독교와 비슷하죠. 춘분에 승천한 용은 여의주 물고 비를 뿌려주며 만물의 성장을 돕다 추분이 되면 하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이젠 성장을 멈추고 이삭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불을 뿜으며 만물을 죽이는 서양의 드래곤과 대조되죠. 사실 이건 날씨의 차이를 닮은 겁니다. 우리의 여름은 비 많이 오는 것과 반대로 서양의 여름은 건조하고 따갑기만 하니 다 죽는 거죠. 용이 문제는 아닌 거에요. 작물 중 춘분에 부활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늘입니다. 우리는 마늘 먹고 인간이 된 후예답게 마늘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고 좋아하죠. 사실 마늘은 참 희한한 작물이에요. 한 쪽 심어 여섯쪽 수확을 하니, 한 알 심어 몇천알 이상 거두는 곡식에 비하면 한심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몇 천알의 기운이 여섯쪽에 집약된 것으로 본다면 완전히 얘기는 달라지죠. 그것도 추운 겨울을 견디며 춘분에 지 스스로 부활한 것을 보면 저는 마늘이야말로 성聖스런 기운을 품은 작물이라 봅니다. 그런 마늘을 먹고 버텼으니 곰이 인간될 만하고 드라큘라가 마늘 보고 도망 갈 만 하지 않겠어요? ㅎㅎ 근데 재밌는 것은 곰이 먹은 마늘은 지금의 마늘과 다르다는 거에요. 지금 마늘은 이집트나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 그걸 먹지는 못했을 거라는 거죠. 제 생각엔 아마 달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 땅에서 오랜 세월 자생한 원조(야생) 마늘이거든요. 아니면 산마늘이라고 하는 명이일지도 모르겠어요. 달래는 20년도 더 전에 다섯뿌리 얻어다 심은 게 지금 우리 밭엔 지천입니다. 어제부터 달래장 만들어 밥에 비벼먹으니 봄이 입안에 한 가득이더이다. 요즘은 명이가 또 한참 올라오고 있어 아내가 오늘은 명이에 달래장을 비벼 두부와 치즈를 넣어 국적 불명의 샐러드(겉절이)를 비벼 주는데 반주를 걸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암튼 제가 사는 안산 같은 중부지방에선 겨울되기 전 씨마늘을 심고 얼지 않게 볏짚 덮어주면 춘분에 싹이 올라옵니다. 그러다 꽃샘추위가 가시는 청명 즈음해 볏짚 벗겨주고 웃거름을 줍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소한 전까지 따뜻한 날이 많아 마늘 싹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그러다 소한 대한 추위, 입춘 후 꽃샘추위까지 이어져 마늘의 동해 피해가 클까봐 걱정도 컸지요. 다행히 얼어죽거나 동상을 입은 애들은 많진 않아 겉으론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데 속은 안보이니 어떨지 모르겠어요. 수확해 봐야 정확한 건 알겠죠. 그냥 하던대로 웃거름 주고 남은 꽃샘추위 걱정되어 약간 흩어진 볏짚 잘 덮어주고 왔습니다. 하늘은 늘 농부를 전적으로 도와주진 않는다는 걸 떠올리면서 말이죠. 어쩌겠습니까. * 대문 사진 : 춘분 한 참 전에 캐 본 마늘, 겨우내 잠만 잔 게 아니었습니다. 거의 뿌리 없는 마늘을 심었는데 겨우내 땅 속을 파고 들어 이만큼 뿌리가 자랐아요. ** 마늘은 우리나라에서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나뉜다. 필자 안철환 선생이 농사짓는 안산은 한지형으로 겨울이 오기 전 싹을 거의 내밀지 않고 땅속에서만 성장한다. 반면에 남쪽에서 재배하는 난지형 마늘은 푸른 잎을 낸 상태로 겨울을 난다.(편집자)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3-2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경칩, 흙일하기 딱 좋은 때
    경칩은 대개 음력 2월에 듭니다. 음력 2월은 12지지의 묘卯월로 절기로는 경칩과 춘분이 들지요. 인월의 호랑이가 음양에서 양인 이유는 계란의 껍질을 갑자기 갈라서 올라오듯 땅을 갑자기 갈라서 올라오는 기운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2월은 음으로 그 생명의 기운이 점점 퍼져가는 형국을 표현한 것으로 토끼의 은근하지만 빠른 번식력을 빗댄 것이죠. 토끼도 이 때가 되면 초목의 새싹들을 뜯어 먹으며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하니 적당한 비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경칩이 1월에 들 때도 있습니다. 올 해 특히 일찍 들어 1월 17일이 경칩날입니다. 입춘이 아직 추운 섣달에서 시작했듯, 경칩이 됐다고 해도 너무 빨라 봄이 토끼처럼 활발하게 퍼져가긴 이를 때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쉽게도 아직 냉이가 보이질 않네요. 지칭개는 벌써 나와 힘을 쓰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명이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밀, 보리, 호밀, 시금치도 경칩을 아는지 푸른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봄 꽃으로 예쁜 수선화도 싹을 올리고 있고요, 상사화도 까꿍하듯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이틀 전엔 목련 나무 잔가지를 쳤는데요, 작년 논둑 보수하면서 너무 자라 논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놈을 죽이려다 버들강아지처럼 앙증맞게 피어있는 목련솜강아지들이 살려달라 하는 것 같아 도저히 베지 못한 나무에요. 논 옆 둠벙엔 산개구리들이 짝짓기하느라 개굴개굴(사실 산개구리 소린 다릅니다. 그 표현을 몰라 그냥 썼는데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가 가르쳐주네요. '호로롱호로롱~'하고 노래하는데 참 예쁜 표현이지요? ㅎ) 노래하는 소리가 참 이쁩니다. 비발디 4계의 봄 악장이 저만큼 예쁠지 생각해봤습니다. 가까이 가서 엿들으려 스쿠터 살살 몰고 가 보니 연애하느라 정신 판 놈들이 둠벙 물 텀벙텀벙 거리며 노는 게 여느 청춘남녀의 "나 잡아봐요." 희롱 못지 않네요. 짖궂은 샘일까요. 저도 괜히 헛기침 해보니 일제히 침묵으로 숨어버리더만요. ㅎ 정월 대보름이 경칩 이틀전이어서 찰밥과 나물을 먹었습니다. 설날에 고기 많이 먹어 대보름엔 고기 먹지 않고 견과류와 찰곡식과 나물을 먹는다지만 제가 볼 때는 고기보다는 찰 곡식 먹기 위해 그런 건 아닐까 상상해봤습니다. 설날에 고기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습니까. 특히 부유하지 못한 농가에서 탈 날만큼 고기 먹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꽃샘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절에 농사일 시작하려면 몸도 데우고 힘도 낼 찰곡식을 먹기 위해 나물을 많이 먹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찰곡식 많이 먹으면 변비에도 좋지 않듯이 몸에 잔류해 여러 대사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그걸 예방하기 위해 섬유질 풍부하고 비타민, 미네랄 풍부한 나물을 먹어주는 것 아니겠냐는 거죠. 저도 허리협착증 생긴 이후 변비가 잦아 불편했는데 나물 많이 먹으니 속도 편하고 변도 좋아져 일할 맛도 나니 또 한번 우리 먹거리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이다. 여전히 세상은 꽃샘추위의 기세가 떠르르하지만 입춘에서 일어난 봄은 우수비를 맞고 경칩을 거쳐 그 기운을 은근히 퍼뜨려 갑니다. 경칩에 밭에 가보면 땅에 금이 가 있음을 볼 수 있어요. 그 금의 정도로 지난 겨울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고 봄 날씨가 어떤 상태인지도 파악할 수 있지요. 금이 강하고 많이 가 있으면 겨울에 눈비가 적당히 내려 흙이 얼었다가 경칩 즈음 봄의 건조한 기운으로 갑자기 흙 표면이 녹으면서 마른 겁니다. 물 먹은 흙이 얼어 부피가 커졌다가 봄 마른 기운에 갑자기 부피가 쪼그라들면서 금이 간 거지요. 그렇지만 토양 내 유기물이 충분하면 스폰지 역할을 해 금 가는 현상은 적어요. 어쨌든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흙은 부드러워지는데 경칩에 흙 표면의 금이 많이 가면 봄 가뭄이 심하거나 토양 내 유기물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 예부터 경칩에 흙 일을 하면 손해가 없다 했습니다. 그만큼 겨우내 얼었던 흙이 풀리면서 부드러워졌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흙은 겨우내 만들어지고 부슬부슬해지죠. 물 먹은 돌멩이가 얼어 부피가 커져 돌이 깨지면서 흙이 되는 거거든요. 돌의 풍화작용으로 흙이 된다고 하지만 저는 빙화작용으로 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옛 석공들이 큰 돌을 깰 때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하지요. 겨우내 땅에 박혀있던 쇠 꼬챙이가 봄이 되면 살짝 튀어올라 오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것도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흙이 얼어 부피가 커져 밀려 올라온 것이에요. 농부는 경칩이 되면 부서진 담벼락 수리를 하든가 밭을 갈기도 합니다. 흙이 부드러워져 쉽게 되거든요. 그래 이 때는 가래로 갈 일을 호미로도 갈 수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흙을 갈지 않고도 작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른바 무경운 농법입니다. 사실 무경운이란 말은 좀 어폐가 있어요, 그럼 호미질도 하지 말라는 건가? 라고 따질 수가 있잖아요. 그래 무경운의 핵심은 무거운 기계로 땅을 짓누르고 고속회전 날로 흙을 밀가루처럼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걸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히려 흙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지요. 암튼 농부는 그렇게 경칩에 밭을 갈며 농사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합니다. 음력 대보름이 보통은 우수 근처에 드는데 올 해는 경칩 이틀 전에 들었습니다. 이번엔 음력이 늦는 꼴이에요. 거꾸로 절기는 양력으로 볼 때 빠른 거지요. 그래 올 상반기엔 양력 기준으로 파종을 할 때는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음력으로 빠른 거겠지요. 올 대보름은 붉은달이었어요. 개기월식 때문인데 태양파 중 긴 파동인 붉은 색만 지구 넘어 통과해 그렇다지요. 암튼 좋은 징후는 아닙니다. 신기한 현상이라고 반길 일이 아니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하늘이 하는 일인 것을요. 하늘이 하는 일에 대해선 좋다 나쁘다 탓할 수가 없어요. 다만 잘 헤아리고 겸손하게 받아들여 조심조심해야죠. 반면 흙은 뿌린대로 거둔다 했으니 농부는 경칩부터 흙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성실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홧팅! * 대문 사진 : 흙 마르지 말라고 덮은 볏짚 사이에 가을에 심어 먹고 남은 시금치가 싱싱합니다. 물 타서 준 오줌으로만 키웠는데 최고로 맛있을 때지요. 소금간만 해도 끝내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3-08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
    입춘에 봄이 일어선다지만 사실 아직은 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몸으로 체감하긴 이릅니다. 요즘 처럼 입춘 이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하죠. 그러다 땅속의 양의 기운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게 바로 우수입니다. 속담에 우수비에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 했어요. 실제로 우수에 비 오는 경우가 많지만 찔끔 오고 마는데 밭에 가보면 제법 온 것처럼 땅이 질퍽하죠. 언땅이 녹아서입니다. 그런데 올 해 우수엔 비는 오지 않았네요. 밭에 가보니 비는커녕 땅에 가뭄기가 제법 느껴집디다. 좋은 조짐이 아니에요. 날은 풀렸지만 언땅이 녹으면 흙이 좀 끈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죠. 흙이 가물면 산불화재도 걱정이지만 봄 농사에도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우수 전 후로 대보름이 옵니다. 추석 보름과 함께 대보름은 달도 크고 밝지요. 그 달이 밝지 않다면 좋은 징후가 아니라 했어요. 대기에 습이 많거나 저기압이란 얘긴데요, 봄이 땅속에서 잘 일어나려면 대기가 맑아야 양의 기운이 많아 흙의 음기운을 더 잘 깨울텐데 말이죠. 옛말에 멀리 일 나간 자식 설엔 못 와도 대보름엔 꼭 온다 했어요. 아무리 늦어도 대보름부터는 농사일 시작해야된다는 뜻이죠. 그만큼 대보름부터는 확실히 날이 풀리니 농한기는 이제 끝이라는 거겠지요. 대보름에 하는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행사는 농사 시작을 알리는 축제 놀이였습니다. 빈 깡똥으로 하는 쥐불놀이는 아마 일제 강점기 이후 통조림 통, 페인트 통이 흔해진 이후 생긴 것으로 원래는 들녘에 솔가지 횃불이나 새끼줄 등에 불씨 담아 불을 놓았답니다. 아무튼 이런 불놀이는 기본적으로 월동한 병해충 살균과 풀씨 제거의 의미가 있었을거구요, 또 불이라는 양의 기운으로 남은 겨울 기운 제압하고 봄 기운 재촉하며 농사일에 사람들 기운 북돋으려는 축제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요즘은 화재 위험 때문에 엄두 못내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요. 올해는 우수가 음력 1월3일이니 대보름 12일 전이네요. 그만큼 대보름이 늦으니 봄도 늦고 꽃샘추위도 기승을 부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농한기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쉴 날이 연장된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에요. 이래저래 바쁠 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하늘은 농부의 게으름을 기달려 주지 않아요. 열심히 한다고 좋은 일만 주지도 않지요. 둘은 주지 않지만 하나는 꼭 준다 하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내 갈 길 가는 수밖에요. * 대문사진 : 밭에 갔더니 손님이 와 있네요. 음력 2월(묘卯)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토끼님이 오셨어요. 행동이 민첩하지 않고 살이 찐 걸로 보아 집토끼 같은데 아래밭 선배에게 전화하니 당신 토끼가 달아난 것 같다 하십니다. 혹 월동 작물들 뜯어먹지 않았나 살펴 봤더니 별 문제도 없구요. 늘 제 일이라면 당신 일처럼 도와주시는 선배님의 토끼이니 좋은 소식일밖에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3-01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농가월령가 첫 시작인 1월령의 1월은 음력의 정월인데요 1월에 입춘과 우수가 든다 했어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입춘은 정월 1월에 들 때도 있고 섣달 12월에 들 때도 있다 해야 합니다. 반면 우수는 꼭 1월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섣달에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다했어요. 올해가 딱 그럴 때입니다. 입춘이 음력 12월 17일이거든요. 입춘인데도 요즘 날씨가 춥고 눈 많이 오는 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 어찌 봄이 오는 입춘일 수 있을까요? 아직도 날은 한겨울인데 말이죠.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반드시 봄이 오는 걸 모르는 건 사실 흙을 떠나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박스에 사는 사람 뿐이라고 저는 강조합니다. 흙을 밟고 사는 농부, 나아가 흙과 자연 속에 사는 미물조차도 입춘에 봄이 온 줄 알게 되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알까요? 사실 입춘만이 아니고 절기 모두는 기온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로 나누죠? 맞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나누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해 그림자로 나누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해시계, 곧 앙부일구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마다 고유의 해 각도가 있고 해 그림자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흙을 밟고 해를 등지고 사는 생명이라면 다 안다는 거죠. 실제로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밭에 가보면 봄이 온 지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정오 근방이 좋죠. 그래서 입춘날엔 꼭 봄맞이 하러 밭에 가자고 역설합니다. 이게 진짜 새해 맞이 일지 몰라요. 동지 다음날 해보다 입춘날 해맞이가 더 새날의 기운을 받는 것이지요. 새벽 일출을 보는 것보다 한 낮 밭에 드리워진 해의 기운을 받는 게 더 새해의 첫 기운이 됩니다. 그 새날의 기운을 듬뿍 담은 게 있으니 바로 입춘 냉이입니다. 입춘 냉이는 지난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애에요. 그래서 저는 입춘 냉이는 산삼보다 보약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튼 입춘 맞이를 새해 맞이로 본 조상들은 그 의례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입춘첩입니다. 새해가 되면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고 그러죠. 거기에다 색깔로 동물을 나눠부르잖아요. 올해는 병오년, 빨간말 또는 적토마의 해라고 호들갑이지만 그건 입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갑자 달력에서 신정은 아직 새날이 아니거든요. 입춘 근방엔 더불어 음력 정월 설날이 옵니다. 입춘에 앞서 오기도 하고 뒤이어 오기도 하죠. 우리의 설날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음력 정월 설날과 양력 입춘 설날이 있는 거죠. 명리학 하는 분들은 어느 게 진짜 설날이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둘 다 우리의 설날인데 다만 선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 달력의 신정 설날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실 이는 동지 설날에 근거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당시의 천문기술 상 동지날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해가 길어지는 걸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동지 열흘 후쯤을 임의로 삼은 거죠. 그럼 왜 우린 입춘을 새날로 삼았을까요? 천문 기준으론 동지가 기준이지만 동지 이후 본격적으로 추워지니 날씨 기준으로는 봄 기운이 시작되는 날, 곧 입춘을 새날로 잡은 겁니다. 입춘은 12지지로 인寅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일년이 아닌 하루에 적용하면 새벽 3시에서 5시까지가 인寅시에요. 이 인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인월에 드는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입춘에 봄이 시작되듯이 인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건 닭이 알려주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었죠. 사실 자시의 자정을 하루 시작으로 한건 좀 그래요. 저 같이 1시쯤에나 잠드는 야행성인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맞이하는 꼴이니 말이죠. 오히려 일출을 알려주는 닭 우는 시간이 하루 시작인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 인월을 정월로 삼은 게 자연스런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가 인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아직 한밤중이니 저는 여전히 섣부른 나일롱 農夫인가 봅니다. 그럼 봄은 왜 닭이 아닌 호랑이(寅)를 상징으로 표현했을까요? 곰처럼 제대로 된 겨울잠은 아니어도 겨울잠처럼 웅크리고 지내다 입춘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질러대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숲 속에 봄을 일깨워 준다고 했어요. 봄이 되면 언 땅이 풀리며 쩍쩍 갈라지는 금들이 마치 호랑이 포효소리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추워도 농부는 입춘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지개 켜며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종자 손질과 거름 준비에요. 씨앗과 흙의 생명을 여는 행위이니 이처럼 성스런 일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2-15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추위가 계속되니 밭에조차 가는 일이 겨우 2,3일에 한번뿐이고 가더라도 일은 아주 적고 둘러보는 것 정도만 하고 집에 오기 바쁘네요. 집에 일 있는 것도 아니고 저야말로 요증 빈둥빈둥 그 자체입니다. TV드라마나 다큐 보고 유투브 쇼츠나 음악 듣고 아니면 같지도 않은 운동이나 아니면 폰으로 게임하듯 글이나 긁적이고 있는데 시간은 왜 이리 잘 가고 밥 먹는 시간은 어떻게 그리 빨리 오는지 참 웃기게도 바쁜 겨울잠(농한기)을 보내고 있네요. 그래도 역시 먹는 일이 제일 좋습디다. 잘 숙성된 김장 김치의 감칠맛은 요즘이 절정입니다. 김치만 있으면 뭘 먹어도 맛 있지 않은 게 없지요. 그렇지만 김치 못지 않은 겨울 채소는 역시 묵나물입니다. 지금은 김치가 세계적인 채소 먹거리가 되었지만 머지않아 묵나물이 뒤를 이을거라 저는 기대하지요. 아마 묵나물처럼 건조한 채소음식을 우리만큼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겁니다. 쳇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말린 채소 먹는 나라는 많은데 대부분 보조재, 첨가재, 양념으로 먹지 우리처럼 나물이라는 독립 반찬으로 해서 일상적으로 또는 제사나 명절 때 주요 음식으로 먹는 나라는 없다네요. 너무 맛있게 먹느라 봄에 올라올 것만 남겨 놓고 다 캐먹은 시금치 기운이 아직 입가에 맴돕니다. 겨울에 먹는 노지 시금치 맛을 아시는지요? 시금치는 추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푸르른 녹색의 채소거든요. 제가 심는 건 토종시금치라 겨울에 더 강합니다. 씨에 가시가 있어 뿔시금치라 하는데 크기는 작지만 담백하면서 은은한 기운, 그리고 겨울을 이기기 위해 만든 깊은 단맛이 아주 울림이 있어요. 채소 싫어하는 애들도 좋아할 맛입니다. 아이들이 채소 잘 먹지 않는 이유 중엔 질소비료를 많이 주고 키운 요즘 채소들의 찝집한 뒷맛도 클 거라 봅니다. 옛날 분들은 이런 맛을 지리다 표현했어요. 시금치는 특히 질소질 비료를 좋아해 이를 많이 시비하면 크기는 크지만 감칠맛보단 지린맛이 많아져 애들은커녕 어른들도 젓가락을 잘 내밀지 않죠. 저는 질소질이 많은 요소비료는커녕 퇴비도 주지 않고 오줌만 주고 키웁니다. 물론 이도 질소비료이긴 한데 과다시비할만큼 줄 수가 없어요. 물타서 두세번 주고마니 줬다고 하기에도 그렇죠. 다만 토종시금치는 늦가을 또는 이른 겨울과 초봄에나 먹을 수 있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것만큼 길게 먹을 수 없는 약점이 있어요. 근데요, 제철이 아닌 건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몸에도 좋다고 저는 믿습니다. 수박은 여름에 먹어야지 아무리 건강하게 키운 수박일지라도 겨울에 먹는 게 무에 좋을까요? 암튼 깊은 겨울의 끝자락인 대한이 되니 마음엔 벌써 입춘이 온 것 같기만 합니다. 대한이 소한 네 갔다 얼어죽었다는 뻥처럼 원래 소한보다 따뜻한데 이번엔 대한 추위가 소한 못지 않게 올 것 같습니다. 애동지 드는 겨울엔 소한 대한 추위가 약하다 했는데 이번엔 조금 모자란 듯 해도 겨울답네요. 가뭄이나 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겨울이 좋은 건 애타게 기다리는 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농한기 절정인 소한~대한 때는 몸과 마음 다스리는 것으로 정중동 놀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소한 때 다 못한 얘길 이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여기에선 놀이를 운동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몸 다스리는 운동은 이름 붙이길 이른바 '쫀쫀한 운동'입니다. 이거 진짜 남이 보면 쫀쫀하기 그지 없어요.제가 몸이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또 누구나 결국엔 불편해지잖아요. 그래 저를 비롯해 누구나 아무데서나 돈 안들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한 건데요, 예컨대 애기 때 배웠던 잼잼, 곤지곤지, 도리도리 운동 같은 거에요. 참 유치하죠? 저는 이중 잼잼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하는 건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몸을 두드리는 겁니다. 손가락 끝을 이용하든가 지압봉 같은 걸로 두드립니다. 저는 나무로 만든 오십견 지압봉을 주로 씁니다. 오십견에 좋게 갈고리 모양이라 몸 어디나 두드릴 수 있구요, 특히 손가락 무릅 등 관절염에 좋아요. 하다못해 편두통에도 좋고 불면증에도 좋고, 혈액순환에 참 좋습니다. 어쨌든 저처럼 몸 불편해 유산소 운동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할 겁니다. 사실 좋다고 추천하는 대부분 운동은 다리운동에 기반한 것들이에요. 이해는 하지만 다리 못 쓰는 사람들로서는 아쉬운 바가 없지 않지요. 근데 그 좋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서 사람들은 으레 뒷풀이로 꼭 술을 즐기는 게 안쓰럽지요. 술 좋아하는 저로서도 이해도 가고 부럽기도 하지만 걱정은 떨칠 수 없어요. 더더욱 꼼지락 운동을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진짜 추천하고 싶은 쫀쫀한 운동은 숨쉬기 운동입니다. 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자다가도 하고 새벽에 잠이 깨 잠들기 힘들 때도 하지요. 하여간 수시로 하니 누구나 아무데서나 언제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다리와 몸을 많이 쓰는 유산소 운동은 한 때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반면 숨만 쉴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숨쉬기 운동이다라는 거지요. 죽을 때까지 말이죠. 제게 숨쉬기 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분 중엔 심장병으로 고생한 선배님이 계셨는데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건 숨쉬기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병에 관해선 도사가 되신 것 같더라구요. 그래 비유하시길 폐는 심장(구들)의 아궁이 같은 건데 구들을 데우려면 장작도 중요하지만 공기를 잘 통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죠. 특히 공기를 잘 통하게 하려면 잔숨을 다 빼내야 한다 했는데 폐속에 남은 잔숨은 일종의 오염된 공기로 이게 심호흡을 방해해 폐한테도 좋지 않고 심장에도 나쁘다 한겁니다. 그래서 숨은 들숨보다 날숨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폐를 쥐어 짜듯이 날숨을 하면 저절로 깊은 들숨이 들어오게 되어 있죠. 제 호흡운동 방식은 명상이나 단전호흡처럼 가만히 앉아 순전히 숨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있고 팔과 어깨를 이용해 근육운동을 같이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절로 허리근육도 강화되고 괄약근 운동 효과도 있어 대장에도 좋지요. 방귀도 잘 나오고 속도 편해지거든요. 숨쉬기 운동은 드러누워서도 할 수 있어 아닌말로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운동하며 삶을 마감하는 셈이지요. 그러면 죽음이 덜 힘들지 않을까 기대해보곤 합니다. 겨울 농한기에 죽음까지 생각해보는 건 슬픈 일이 아니라 삶을 더 진지하게 살도록 하는 동력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겨울의 죽음이 봄의 희망으로 부활하는 농한기가 되길 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1-22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긴긴 겨울의 한복판, 소한 일기
    긴긴 겨울의 한복판, 소한 일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동지 지나자마자 온 이번 추위는 아무리 봐도 동지 추위보다는 소한 추위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애동지라 동지 추위라고 하기엔 어울리지가 않아서지요. 소한인 오늘 지나면 날이 잠깐은 풀릴 수 있으나 또 다시 추위가 와도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어쨌든 소한과 대한은 긴긴 겨울의 한복판이거든요. 다만 지난달 내내 이상하게 따뜻했듯이 온화한 겨울이 올까 걱정은 됩니다. 추위가 일찍 왔으니 일찍 갈 테니까요. 암튼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겨울은 여러모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래도 긴긴 겨올 농한기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지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겨울엔 따뜻한 음식을 먹어 몸에 추위를 버틸 에너지를 비축해 둡니다. 전통농업 취재차 농촌을 다닐 때 한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여름은 거지처럼 나고 겨울은 임금처럼 나야 한다”고 말이죠. 여름엔 배불리 먹지 말고, 겨울에나 배불리 먹으라는 얘길 텐데 왜 그럴까요? 한 번은 시베리아 도시라 불리는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여름에 가 봤습니다. 공원에 가서 신기한 모습을 보았는데요, 참새들이 뚱뚱한 거예요. 우리보다 훨씬 추운 겨울이 6개월이나 되는 지역인데 뭐 먹을 게 많다고 쟤들은 저리 살이 쪘지 하고 한동안 그 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제 괴팍한 여행 취미 중에 하나는 그 지역의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특히 길개, 길고양이, 참새, 파리 등에 관심이 많지요. 이 놈들은 이상하게 어디 가나 다 비슷비슷해요. 특히 참새와 파리가 비슷한 게 신기하죠. 참새는 철새도 아닌 텃새인데 왜 그럴까요? 쳇GPT에게 물어보니 제 추정과 비슷하게 이 놈들은 사람 따라 이주했기 때문이라네요. 한 종인 참새와 달리 파리는 종은 다르지만 형태가 별 차이 없어 다 비슷하게 보인답니다. 어쨌든 우리의 이웃인 거죠. 그렇지만 지역과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점이 있어요. 그 차이를 살펴보면 그 나라를 더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그럼 왜 이르쿠츠크 참새들은 뚱뚱할까요? 눈치챈 분들이 있을 거예요. 맞습니다. 바로 긴긴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진화 전략인 거예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대체로 뚱뚱하고 덩치가 크더라구요. 북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걸 우리에 맞게 적용한 게 앞에서 말한 할머니의 말씀이지요. 여름은 거지처럼 겨울은 임금처럼..... 그래서 찰지고 기름져 맛있는 음식은 여름보다 겨울에 먹으라는 얘긴데요, 그러고 보니 찹쌀떡 장수도 긴긴 겨울밤에 팔러 다녔죠. 요즘은 떡 하면 사계절 모두 찹쌀떡이에요. 매떡이 사라졌어요. 더불어 구성진 “찹 싸~알 떠~억....” 목소리도 사라졌지요. 불과 5년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골목 입구에서부터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얼른 뛰어나가 사 오곤 했는데 말이죠. 또 한 번은 이집트 가서 파리를 살펴보니 크기가 작아요. 똥파리 왕파리는 못 찾겠고 제가 본 것은 집파리 뿐이었어요. 그게 왜 신기하냐 하면, 그 나라는 쓰레기가 많은데요. 그러면 당연히 파리가 득실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거지 뭡니까. 곰곰 살펴보니 아주 건조한 나라라 쓰레기는 많아도 썩는 냄새가 별로 없는 겁니다. 미라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거기는 습한 것보단 건조한 게 문제인 거죠. 사람들도 옷차림이 별로 깔끔하지 않은데 냄새가 거의 없어요. 향수 바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깔끔한 백인들한테서 노랑 내 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참 대조적이죠. 몸은 그렇고, 마음은 어떻게 다질까요? 저는 농한기답게 놀기를 권합니다. 근데 요즘 사람들 보면 노는 일도 바빠요. 매사 모든 게 바쁘죠. 가만히 놀질 못합니다. 술을 먹든, 노래방을 가든, 영화를 보든, 골프를 치든, 여행을 가든 뭔가를 바쁘게 합니다. 저도 여전히 술 좋아하고 여행도 종종 가는 입장이라 뭐라 탓할 처지는 못돼요. 다만 이 긴긴 겨울엔 빈둥빈둥 가만히 노는 재미를 권하고 싶지요. 앞 글 중 대설인가에서 말했듯 겨울잠 자듯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놀이예요. 명상을 하든, 산책을 하든, 음악을 듣든, 책을 읽든, 묵은 청소를 하든, 새해 농사 준비차 종자 정리를 하든, 맛있는 겨울 음식을 해 먹든 말이죠. 정중동(靜中動) 놀이랄까요. 겨울에 단식하는 분들도 있는데, 조심해야 하지만 이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에너지를 비축하라 해 놓고 단식을 권하니 이율배반 같지요. 근데 곰곰 보면 원리는 간단합니다. 이게 진짜 겨울잠 자는 거거든요. 곰이나 뱀이나 개구리처럼 겨울잠 자는 애들 보면 알 수 있지요. 에너지 비축은 잠자기 전에 충분히 해 둡니다. 그리고 단식을 하는 거예요.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거죠. 이게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건강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식을 하며 몸도 비우지만 마음도 비우는 겁니다. 일 하느라 많은 사람들 만나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와 피로를 비웁니다. ‘도 닦으라는 거군’ 하시겠지만 그리 거창한 거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잖아요. 그걸 털어내는 일은 도 닦는 일이 아니라 생존의 일인 겁니다. 근데 보통 사람들에게 단식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맘 때면 단식을 몇 년 하다 결국 포기했거든요. 회복식까지는 잘했는데 꼭 끝나기 무섭게 맛있는 술 먹고 사람들 만나고 하니 도로나무타불이 되곤 했어요. 저는 그냥 외부활동을 줄이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2~3일에 한 번은 밭에 가서 나무 전지도 하고 마무리 못한 퇴비장 정리도 하고 그런 일마저 없으면 그냥 점검 핑계로 밭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단골 길고양이에게도 아는 척하고, 산에서 가끔 먹을 것 찾아 내려오는 너구리 족제비 안 오나 살펴보고, 어쩌다 마주치면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지만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혹여 제가 좋아하는 매나 수리부엉이 오지 않나 하늘도 살펴봅니다. 며칠 전엔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까치 떼들에게 이리저리 쫓겨 결국 도망가는 처지를 보곤 에이 깡패 같은 놈들 하곤 욕만 했어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헛된 꿈이죠. 밤하늘 쳐다보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요, 이곳도 도시라 별들이 뭐 보이겠냐 하지만 그래도 달이나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정도는 잘 보입니다. 그 정도 살펴보는 재미도 그럴싸하지요. 천문 전문가는 아니지만 언제 기회 되면 별들 얘기도 소개하겠습니다. 절기도 다 별들에서 왔거든요. 그리고 점점 사람 관계보단 자연의 생명들과 더 가까워지려 노력합니다. 내 밭의 작물들과 풀들,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 주변 숲에 사는 나무들과 짐승들에 더 관심을 갖는 거죠. 물론 나도 사람이니 사람을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별나게 사람들 좋아하는 성미이니 더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찾은 방법은 새로운 관계는 맺지 않고, 기존 관계는 더 소중히 여기지만 일은 줄이고, 만남도 술자리보다는 줌으로 만나고, 만나도 심각한 얘기보다는 덕담을 많이 합니다. 말하자면 관계도 단식만큼은 아니어도 아끼고 절약하는 거지요. 젊은 사람들은 겨울을 그렇게 보내다 봄부터는 다시 활기차게 활동해야 하겠지만 저는 환갑 지나고부터는 겨울을 핑계로 점점 일도 줄이고 모든 걸 줄여나가려 합니다. 겨울이 길고 추운 건 어쩌면 하늘이 준 특혜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남반구 호주의 시드니를 겨울에 가 본 적이 있어요. 희한한 건 겨울임에도 춥지 않아 온 세상이 여전히 푸르른 거였습니다. 나무들은 얼마나 크고 우람한지 우리로 치면 몇 백 년은 되었을법한 것들이 겨우 50년 정도 된 거랍디다. 함께 간 사람들 다 부러워하는 눈빛이었죠. 저도 마찬가지였지만요. 근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그곳엔 봄 되면 죽었다가 다시 땅 속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의 부활 향연 같은 건 없을 테니요. 잎은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의 이른바 백골(白骨) 미도 볼 수 없지요. 저는 개인적으론 꽃보다 새순을 좋아하고 새순 다음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겨울나무를 좋아합니다. 나무만 보이는 게 아니에요. 맨바닥 흙도 다 보이고 능선과 계곡도, 바위들도 다 보이죠. 눈이 오면 더 멋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살 때는 겨울에 사는 게 좋습니다. 여름엔 다 가려지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은 자연이 준 단련의 기회입니다. 생태적으론 청소의 기회이구요. 그래서 추울 때 추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자연도 사람도 나도 모두 자기다워지니 추운 겨울을 자연의 혜택이라 한 겁니다. 그래도 추위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1-07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한 해 농사 시작은 동지부터
    새해 일출을 보려면 동지 다음날 해를 봐야 합니다.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는 동지 다음날 해가 진짜 새해거든요. 그와 달리 신정 해는 새날의 의미가 없어요. 이미 새날이 온 지 열흘은 지난 거지요. 굳이 말하면 새날이 밝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건 동지 지나 한 열흘쯤 되어야 느낄 수 있어서 일 겁니다. 이 신정 설날의 기원은 로마인데요, 당시 천문 수준으로는 동짓날이 딱 언제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던데다 행정 입장에선 언제가 새날이 시작되는지 정해야 하니 새날의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날을 임의로 정한 게 관습이 된 거지요. 그렇다고 저는 동지 다음날 해도 보러 가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뜨는 동해로 해 보러도 가질 않는데 한번은 간 적이 있어요. 한 30년 전 쯤 신정 새해 보러 속초 갔다가 다시는 해 보러 가지 않기로 한겁니다. 키가 작아서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전날 술 먹은 사람들 냄새 감수하면서까지 안간힘을 써가며 볼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요. 그리고 농사짓고부터는 동해에서 뜨는 해보다는 밭에서 뜨는 해를 보는 게 훨씬 감동이라고 기염을 토하곤 합니다. 그 장관이 대단하거든요. 처음 일출을 본 그 밭이 마침 동남향이었어요. 앞에는 저 멀리 야트막한 구릉 말고는 탁 트여 일출이 괜찮겠다 싶어 밭을 얻고 봄 되자마자 동트기 전에 갔지요. 아~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감동은 뜨는 해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우선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 순간의 깊은 어둠을 뚫고 곧 해가 떠오른다고 팡파레를 울리는 애들이 있었어요. 누굴까요? 맞습니다. 바로 새들이었습니다. 그 새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속으로 그랬지요. “어떤 오케스트라 소리가 저 소릴 흉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알았습니다. 왜 새를 하늘의 메신저라 하고 천사에겐 왜 날개가 달렸는지를요. 그냥 하늘의 메신저가 아니라 태양의 메신저였던 겁니다. 태양이 하늘의 주연배우인 거죠. 배우가 등장하기 전 어두운 장막을 거둬내듯이 여명 직전의 깊은 어둠을 걷는 게 새였던 겁니다. 새벽을 알리는 닭도 새긴 새이지요. 하지만 닭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요. 그 소린 들어본 사람이면 압니다. 성질 같아선 뛰쳐나가 닭 모가지를 비틀고 싶지만 그렇다고 오던 새벽이 돌아가진 않지요. 암튼 저는 그 새소리를 매일 듣고 싶어 마당 있는 집을 얻어 25년째 살고 있습니다. 낡은 집이라 단열창을 설치한 이후 날이 선선할무렵부터 창문을 닫으면 새소리도 닫히고 마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만 한 철 외엔 아침마다 듣는 소리가 천사 소리 같기만 하지요. 팡파레 새소리와 함께 여명이 밝아오고 해의 기운이 땅에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할 즈음의 장면 또한 못지않은 울림이 있어요. 흙에 비친 은은한 빛살과 흙의 요철 모양에 따라 드리워진 해 그림자가 새 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막 떠오른 해는 아직 온 세상을 밝게 비추진 못해요. 그냥 저 멀리 떠 있는 예쁜 조명 전구불 같다고 할까요. 그러다 천천히 퍼져오는 그 빛의 기운이 흙 그림자와 함께 비추는 기운은 참으로 안온해요. 벌레들도 깨어나 꼼지락 거리기 시작하고 봄 기운을 받아 움트는 새싹들의 기운도 참 싱그럽지요. 그래서 일출의 감동은 해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한 것입니다. 해와 함께, 새들과 함께 온 세상의 생명들이 깨어나는 그 기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에서 보는 일출 장관입니다. 대설 얘기와 달리 동지는 참으로 많은 얘길 품고 있는 절기입니다. 아마 이 글도 한번에 끝나지 않고 2탄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지는 동서양 공히 새날의 전야(이브)였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도 동지에서 왔어요,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록은 없지요. 중요한 것은 예수의 탄생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게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동지였던 겁니다. 예수와 태양을 동일시 한 셈이죠. 예수님 머리 뒤로 그려지는 빛나는 원은 바로 태양일 거에요. 그리고 좌우 위로 팡파레 부는 천사들이 있으니 그건 다름아닌 새이겠지요. 동양에서도 동짓달은 정월의 전달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2월 섣달이 있지만 섣달의 섣은 섣부르다의 말처럼 덜 익은 달, 앞과 뒤의 경계 달이라 정월로 삼기에 알맞지 않았어요. 날씨로도 섣달엔 소한 대한이라는 맹추위가 있어 새달로 삼기 적당치 않았지요. 서양엔 섣달에 맹추위가 없더라도 봄이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음력 섣달이 양력으로는 1월인데요 이름을 January라고 했어요. 이는 야누스(Janus)에서 온 것으로 정월의 뜻보다는 이중성을 지닌 경계의 의미로 이름을 단 것을 보아도 일맥상통하는 게 엿보입니다. 동양에선 동지를 12지지 중 자(子)월이라 해서 자(子)를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일년 12달 중 자월(동지달)이 기점이듯 하루 중에도 자시(23~01시)가 기점이어서 그 중 정가운데를 자정이라 하지요. 그래서 제사를 돌아가신 날 자시에 지냈던 겁니다. 지금은 자시보다 일찍 지내는 게 자리를 잡아 돌아가시기 전날 지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조상이 왔더니 지들끼리 먼저 다 먹고 잠 자고 있는 꼴입니다. 죽은 조상이 오긴 뭐 오겠어요. 남은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며 그 핑계로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 다지요. 그런데 우리의 설날은 절기로는 동지가 아닌 입춘이에요. 동지가 태양 기준으로는 설날에 적합하지만 날씨로는 적당치가 않아요. 동지 지나 소한 대한 맹추위가 닥치니 봄날이라 할 수 없었을겁니다. 고대 중국에선 동지 지나 설로 적당한 절기로 대한 입춘 우수 셋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이 위 세 절기 중에 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농경 국가로 알려진 고대 하夏나라 전통을 따라 입춘을 설 절기로 삼았어요. 자세한 거는 입춘 때 말씀 드리는 거로 하구요, 암튼 절기 시작을 입춘부터 읽는 게 그래서입니다. 올해 동지가 음력 11월3일, 곧 11월 초순에 드는 전형적인 애동지입니다. 이런 겨울은 대체로 따뜻하다 했지만 좀 심하다 했지요. 어디는 개나리가 꽃을 피윘다 하고요, 저희 밭에선 내년 춘분에나 싹이 틀 마늘이 벌써 올라와 버렸어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비도 잦고요. 가물면 산불이 걱정이라 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요. 그렇다고 꼭 좋지만은 않을겁니다. 따뜻한데다 습기가 많으면 토양에 곰팡이와 병균이 많아질 수 있지요. 일진으로도 동지 전날이 갑자甲子인데요. 60갑자 중 첫날이니 봄 기운처럼 따뜻하다는 신호이긴 합니다. 애동지와 관련한 재밌는 일화가 적벽대전 영화에 나옵니다. 화공 전략을 쓰려고 제갈량이 고사를 지내 북서풍을 남동풍으로 바꾸는 장면이죠. 신통술을 부린 것 같지만 제갈량은 애동지 때 남동풍이 분다는 걸 안겁니다. 고사 지낼 때 깃발을 꽂았는데 남동풍을 부르기 위해 기에다 갑자甲子 글자를 새겨 놨답니다. 60갑자의 기점이자 따뜻한 남동풍을 부르는 주문이었지요.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저는,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꼈다해서 '갑자기'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 거는 아닐까 상상해봤지만 그건 아니고, 갑작스럽다에서 온 말이라 하네요. ㅋ 암튼 애동지 때는 따뜻해 잘 쉬는 팥죽 먹지 않고 팥밥이나 팥떡을 먹습니다. 영화에도 그 장면이 나와 나름 고증을 잘 했다 했지요. 애동지 말고 동짓날이 음력 11월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했어요. 양력 달력인 절기를 음력으로 나눈 겁니다. 말하자면 절기는 양력이지만 음력과 같이 봐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나아가선 절기는 양력과 음력의 통합이라 할 수도 있을겁니다. 서울 강동구 도시농업 논 썰매장:아이들을 위해 물을 담은 건 아닌데...... 동지 지나면 해가 길어지는데 날은 본격적으로 추워집니다. 이게 이상한 현상이에요. 난로 볼륨을 키운 꼴인데 왜 추워질까요? 비슷한 예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면 추운 현상입니다. 태양에 8천미터나 더 가까이 갔는데 왜 더 추울까요? 맞습니다. 공기입자에 의한 복사열 때문이에요. 우리는 태양빛보다는 빛이 달군 공기 입자로 열을 느끼거든요. 동지 전에 추워진 공기가 동지 이후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태양의 흐름과 그에 뒤쳐지는 지상의 공기 흐름의 관계를 이해하면 날씨 변화의 기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이런 날씨의 특징은 우리가 속한 몬순기후 지대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고 계절로는 한여름의 무더운 장마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에 대해선 하지 때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죠. 최소한 동지 전까지 농부는 겨울 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거는 겨울 한랭건조한 기후로부터 토양을 마르지 않도록 지키는 일입니다. 지금은 온난화로 한랭 문제는 적지만 가뭄 문제는 여전합니다. 그럼 농부는 어떻게 토양을 지켰을까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월동작물을 심는 겁니다. 대표적인 월동 작물, 곧 겨울을 나는 작물로는 보리, 밀, 양파, 마늘, 시금치 등이 있어요. 월동 작물이 겨울 토양을 지키는 것은 피복(멀칭) 효과입니다. 추위와 가뭄으로부터 땅을 보호하는 거지요. 땅을 놀리지 않아 토양의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하고, 사계절 녹색의 농경지를 유지해 주니 탄소중립에도 기여를 할 겁니다. 저는 이걸 작물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실 겨우내 방치되어 있는 농지를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겨울 사막 같아서요. 겨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봄까지 갑니다. 우리의 겨울농사를 높게 평가한 일제 강점기 일본 농학자가 있었어요.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라는 사람으로 조선의 미개한 농법을 개조할 이른바 식민농학을 퍼뜨리려 왔다가 오히려 조선 농민의 지혜로운 겨울농사를 보고 감탄해 사비로 책까지 썼습니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란 책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지요. 단작시스템을 근대농법으로 보는 식민농학이라는 선입관은 전제로 깔고 있으면서도 단작과 배치되는 겨울농사 중심의 2년3기작 윤작시스템을 높게 평가한 것만 해도 안목이 꽤 열린 농학자였습니다. 저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 윤작시스템이 다시 주목받을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봅니다, 두 번째는 동지 전까지 땅을 깊게 가는 겁니다. 대략 20센티까지 갑니다. 우리 쟁기는 속의 흙과 겉의 흙을 뒤집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볏이라는 추가 장치가 있어서 가능하지요. 서양쟁기는 그 볏이 없어 좌우로 훑어 놓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볏 대신에 그들은 무거운 쟁기를 개발해 땅을 깊게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쟁기 개발로 서양은 점토질의 깊고 단단한 땅을 뒤집을 수 있게 되어 2년에 한번 휴경하던 2포식 농법에서 3년에 한번 휴경하는 3포식 농법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무거운 쟁기는 말 4~8마리가 끌만큼 중(重)쟁기였고 지금 트랙터의 원조였던 셈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깊게 갈면 갈린 표토층이 심토를 보호해줍니다. 표토와 심토를 분리시켜 표토까지 이어지는 모세관을 끊어주고 이로써 토양의 건조화를 막아주지요. 저는 이걸 흙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 외엔 풀로 멀칭하거나 녹비 멀칭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해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밭에 난풀로 밭을 다 덮는다는 건 양을 감당할 수 없어요. 녹비도 마찬가지에요. 반면 흙으로 흙을 덮는 건 모자람이 없지요. 세 번째는 물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건 논의 경우인데요, 추워서 이모작이 되지 않는 중부 이북지방에서 많이 했습니다. 벼 수확 후 두 번째처럼 논을 깊게 갈고 바로 물을 담는 겁니다. 겨우내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흙도 고와져 논의 보수력(담수력)을 높여주고 둑새풀 같은 논잡초 씨도 죽이고 벼 밑둥 같은 논 유기물 부숙도 도와주지요. 뿐입니까?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이삭줍기도 하고 벌레도 잡아먹어 똥도 누워주고 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해주는 공생의 현장이 됩니다. 더 재밌는 것은 겨우 내 논의 얼음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썰매장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주는 Agri(땅)-culture(문화)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땅을 가는 일이 농사의 시작이라면 농사의 시작은 봄이 아닌 동지라고 애써 역설합니다. 그러나 요즘 농촌에 가보면 겨울 되기 전에 갈아놓은 땅을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물을 담아놓은 논은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없지요. 김장 작물 수확하고 내팽개치듯 멀칭 비닐 방치해 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으니 참 안쓰럽습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의 현장일 겁니다. 동지 지나면 이젠 바야흐로 농한기입니다. 농한기는 무조건 쉬는 건 아닙니다. 빈둥빈둥 쉬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시기이지요. 한 해 농사를 북돋아 주고 일궈 준 하늘과 땅, 그리고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하려는 이웃들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잘했든 못했든 나를 성찰하고 아무리 기후위기라 해도 한 톨의 씨앗을 즐거운 마음으로 심는 새해가 되길 기원했으면 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5-12-22
  • [안철환의 절기이야기] 겨울 나는 지혜를 생각하며, 대설에
    [안철환의 절기일기] 너무 따뜻한 올해 대설에 결구되지 않는 토종배추와 김장재료들, 평소에 비해 1/3밖에 되지 않는 양이다. 총각김치, 깍두기를 좀 많이 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 보인다. 아마 24절기 중 제일 할 얘기 없는 게 대설일 겁니다. 소설 이후 해야 할 겨울 준비의 연장 정도에요. 아무리 늦어도 동지 전까진 겨울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소설에 첫 추위가 찾아온다면 대설엔 약간 포근한 편이에요. 지난 소설 전후로 영하의 날씨가 그리 매섭지 않은 정도로 왔다가 지난 주 수목금요일에 첫눈과 함께 영하 9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가 왔죠. 그리고 포근한 대설답게 바로 날이 풀려 늦은 김장하는 사람들이 덜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너무 따뜻해요. 애동지가 드는 겨울은 따뜻한 편이라지만 좀 심합니다. 날씨가 제 날씨답지 않으면 자연 생태에 뭔 일이 납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추위가 가져다주는 생태청소 기능이 반감되지요. 추위로 죽어야 할 병해충,균들이 월동을 많이 해 극성을 부릴 수 있구요. 겨울잠을 자거나 활동을 확 줄여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데 춥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게 되고 그러면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을겁니다. 음식의 참맛은 텃밭에서 시작 암튼 저희도 김장을 소설 일주일 지나 했습니다. 물론 소설 일주일 전엔 총각김치와 깍두기도 담갔지요. 오늘은 그 중에 김장배추 얘기 좀 드릴까 합니다. 우선 배추농사부터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얘기가 길어져 간단히 짚고 넘어가지요. 농사 얘길 안 할 수 없는 게 음식의 맛은 주방에서가 아니라 텃밭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음식의 참맛은 흙맛에서 오기 때문이에요. 배추의 진짜 맛은 속잎이 아닌 겉잎에 있는 걸 요즘 사람들은 잘 몰라요. 배추의 조상은 순무입니다. 그래서 진짜 배추의 맛은 순무처럼 쌉싸르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나는데 그게 겉잎에 많거든요. 요즘 결구배추라 해서 양배추 같은 속잎 위주로 키우고 먹는데 미안하게도 이건 얄팍한 맛이에요. 달고 고소하지만 깊은 배추의 맛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달고 고소한 결구배추는 매우 키우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벌레와 병균이 무지 많아요. 약을 많이 쳐야죠. 겉잎 위주의 배추는 강해요. 특유의 배추향과 질긴 섬유질이 병해충균을 막아주거든요. 말하자면 살아있는 흙맛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흙에는 병해충균을 막는 유익한 미생물이 무지 많습니다. 이렇게 원재료가 살아있으면 양념이 많이 필요없어요. 배추 자체의 맛을 느끼려면 양념을 적게 넣어야 됩니다. 음식의 맛은 주방의 양념이 아닌 텃밭의 흙과 퇴비가 만든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김장과 메주 쑤기 요즘 김장 담글 때 보면 얼마나 속을 많이 넣는지 기어코 만두를 만들고 말거야 하는 듯한 기세에요.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화려하고 많지요. 저희는 속에 들어가는 양념이 너무 단촐합니다. 풀도 쑤지 않아요. 풀을 쑤어 넣은 김치는 국물이 시원치 않습니다. 오래가면 묵은내 나지요. 무채에다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그리고 약간의 젓갈 넣는 게 다에요. 아, 풀 쑤는 대신에 다시마 북어대가리 넣고 끓인 육수를 빠뜨렸는데 그러고 보니, 저희의 비장의 무기인 고추씨 넣는 것도 빠뜨렸습니다. 소금과 젓갈만 빼곤 다 저희 텃밭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조미료도 설탕도 그 외 첨가재료 일체 없습니다. 저희는 절인배추에 속을 넣는 게 아니고 좀 과장해서 말하면 스윽 구경만 시켜줄 정도로 묻혀줍니다. 익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익기 시작하면 그 개운하고 감칠맛이 끝내줍니다. 쌉싸르레 하면서 매운 고추가루 땜에 칼칼하고 개운한 그 뒷맛이란.... 이 말 하면서 뒷방에서 익고 있는 김치를 떠올리니 군침이 돕니다. ㅎ 김장 담그는 일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메주 쑤는 겁니다. 부끄럽게도 농사 경력 30년 육박할 때까지 메주를 한 번도 쑤어 보지 못했어요. ㅠㅠ 핑계를 대자면 그 쉽다던 메주콩 농사를 제대로 성공해 본 게 한 번 정도에요. 아무리 못해도 스므번은 심었을텐데 말이죠. 처음엔 고집스럽게 직파(直播)만 하다 심은 콩 쪼아먹는 새들 좋은 일만 했고요, 어느 정도 직파법에 성공할 즈음 노린재가 극성을 부려 또 실패....... 그 다음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계속 실패하곤 했어요. 콩꽃 필 때 비가 많이 온다든가, 너무 뜨겁다든가 등 해서 수정이 되질 않아 콩 코투리가 쭉정이 투성이었죠. 정작 성공했다 싶을 때는 너무 조심하느라 조금 심는 바람에 된장 담글만큼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올해도 콩 농사가 잘된 편이었는데요, 제가 위탁 관리해주는 남의 농장이라 수확물은 제 것이 아니었고, 제 땅엔 아예 심질 않았으니 메주와 된장은 머나먼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먹고 있는 된장은 저희가 담근 것은 분명합니다. 메주 사다가 장 담근 것이긴 하지만요. ㅠㅠ 고구마를 먹으면 착해진다? 내가 고구마를 좋아하는 까닭 겨울의 별식 아닌 별식은 고구마입니다. 고구마는 겨울식량으로 참 좋습니다. 요즘 고구마는 너무 달아 군것질밖에 되질 않아요. 얼마나 달면 이름이 꿀고구마에요 참~, 그러면 꿀을 먹지 왜 고구마를 먹을까요. 저는 백고구마, 물고구마라는 토종 고구마 2종을 심는데요, 참 달지 않아요. 그래서 이게 밥이 됩니다. 물리지 않으니요. 그렇지만 그 구수한 맛은 맛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게 별미입니다. 농한기인 겨울에도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게 어색해요. 세끼 밥을 먹다보면 하루가 다 밥 먹는 일 같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두끼 먹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버릇이 되서 그게 힘들더라구요. 그럴 때 점심을 고구마로 해결하는 겁니다. 김치만 있으면 돼요. 동치미까지 있으면 환상이죠. 제 생각엔 점심은 분명 새참이었을 겁니다. 마음의 한 점을 찍는다는 점심이나 사이에 먹는 참이나 비슷하죠? 힘든 일 할 땐 점심을 꼭 먹더라도 많이 먹으면 식곤증이 와 많이 먹지 말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제가 고구마 심는 이유는 고구마보다는 고구마 줄거리에 있습니다. 그 구수함의 진가는 열매보다 줄거리에 있지요. 토종 고구마일수록 더 끝내줍니다. 저희는 고구마 줄거리 다듬을 때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껍질 째 삶아 간장이나 된장에 졸여 먹지요. 껍질 째 먹어야 아삭함이 끝내줍니다. 일도 적지요. 되도록 가공을 적게 해야 좋거든요. 제가 농반진반으로 한 말인데요, 음식을 하는데 복잡하고 힘든 거는 분명 여성들을 부엌떼기로 붙잡아두려는 속셈이었을 거라고 말이죠. 음식은 쉬워야 합니다. 가공도 적고 양념도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남녀노소가 다 음식 할 수 있어요. 생명이면 누구나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어야지 한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럽지 않고 위험하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고구마 좋아하는 건 이게 농사가 아주 쉽다는 거에요. 같은 땅에 연작을 해도 아주 잘되고 거름도 아주 조금만 줘요. 저는 오줌 한 번 주는 게 다지요. 땅을 망가뜨리기는 커녕 땅을 지켜줍니다. 저는 사막화 방지해주는 미래 식량이라 극찬합니다. 또 건강에도 아주 좋아요. 고구마는 썩을 때 조용한 반면 감자는 썩을 때 시끄럽다 했어요. 보니까 감자는 단백질이 많아 썩는 내가 진동을 하는 반면 고구마는 거의 섬유질에 미네랄이라 썩는 내가 없어 썩는 질 모르거든요. 그래 제가 이런 말도 만들었지요. 고기 많이 먹으면 성질이 사나워지지만 고구마 많이 먹으면 착해진다고요. 왜 그럴까요? 고구마로 밥을 먹으면 힘이 없어 그렇다고 뻥을 치면 사람들이 재밌어 합니다. 근데 전쟁을 많이 한 서양인들은 전투에 나갈 병사들에게 전날 고기를 많이 먹였다고 합니다. 착하면 사람 죽이기 힘들테니요. 겨울을 겨울답게 나는 지혜 아무튼 별 할 얘기 없다 해놓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겨울은 겨울답게 마치 겨울잠 자듯 덜 먹고, 덜 일하고, 지난 날을 반성하고 올 날을 찬찬히 계획하는 그런 시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에 사느라 일년내내 바쁘게 사니 이런 얘기가 한가해 보여 미안키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15년 전인가 겨울에 시골 구석구석을 돌며 토종씨앗 수집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토종박사님 따라 함께 간 후배 한 친구는 저와 나이 차이가 10년 이상 나는 것에 비해 전통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지요. 농사지으며 저 이상으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코드 맞추는 맛을 일찍부터 알았던지, 토종씨앗 때문에 돌아다닌 여독을 표현하길, “겨울잠을 자지 않았더니 몸이 무거워요.” 하는 거지 뭡니까. 참 웃기기도 하여 “겨울잠을 어떻게 자는데?” 하니 “되도록 외출도 하지 않고, 전화도 덜 하고, 일도 줄이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거죠 뭐.” 나 참~ 재밌죠?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5-12-10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첫 얼음 어는 소설
    첫 얼음 어는 소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소설(小雪)에 첫 눈 기다리지 마세요. 대설이나 크리스마스에 첫 눈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함박눈이 아닌 싸리눈 정도 흩날리는 게 보통이에요. 괜히 방송 등에서 첫 눈 기다리게끔 들뜨게 만드는 건데 우리 기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지방에서 만들어져 우리 기후와는 맞지 않는 표현들이 있는데 소설 대설이 대표적이고 소한 대한 추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눈은 대한 입춘 즈음해서 많이 내리고 추위도 대한보다 소한이 더 매섭거든요. 눈도 영동 지방의 경우엔 오히려 봄에 많이 내리지요. 우리 소설의 대표적인 날씨 현상은 첫 눈이 아닌 첫 얼음이 언다는 겁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알람이에요. 그래서 소설이 되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개구리 뱀 곰은 겨울잠 자러 들어가고 모든 생명은 겨울 날 준비에 바쁘지요. 그럼 사람은 뭘 할까요? 맞습니다. 김장과 땔감 준비를 하지요. 그렇게 겨울을 대비하라고 소설엔 반드시 추위가 찾아듭니다. 겨울을 알리는 알람이라고 한 이유에요. 예부터 소설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어요. 하필 이 즈음 대학 시험을 보느라 소설 추위는 다 잊고 입시추위로 착각들 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상이 사람들을 다 철부지로 만들고 있는 꼴이에요. 철을 잊고 사는 세태는 소설추위를 잊은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한겨울에도 런닝바람으로 겨울 나는 게 요즘 모습이잖아요. 뿐입니까? 한여름엔 긴팔 와이셔츠에 폼나는 긴팔 양복 정도 입어주어야 가오(?)가 서는 분위기죠. 저 어릴 때 이런 표어가 있었어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말이요. 근데 이건 순전히 철을 거스르는 철부지 어린이의 표어라는 걸 제가 존경하는 한 한의사 선배의 책에서 배웠습니다. 철 든 나라의 어린이는 여름엔 늦게 자되 일찍 일어나야 하고, 겨울엔 일찍 자되 늦게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막힌 말이죠? 제가 절기 공부하고부터 늘 머리에 담아 둔 구절이었습니다. 그럼 철을 거스르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늘 가로등에 노출되어 있는 가로수를 생각해봅시다. 사계절 밤새 빛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항상 광합성을 하라고 자극하는 것과 같죠. 잠을 못자게 하는 거에요. 겨울이 되었는데 잎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낙엽수도 더러 있답니다. 잠을 못자는 것도 문제이지만 맹추위가 오면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겨울 얘기는 아니지만 밤새 불을 켜두어 잠을 못자게 해서 재배하는 작물이 있어요. 바로 깻잎입니다. 들깨는 단일(短日)식물이라고 해서 빛이 짧아지면 꽃을 피우는 작물이에요. 꽃피고 알곡을 맺으면 양분이 그리로 몰려 잎이 부실해집니다. 깻잎은 잎을 키우는 게 목적이니 꽃피지 못하게 조명을 비춰주는 겁니다. 그런 깻잎이 과연 정상일지 의문이에요. 벼도 단일식물이랍니다. 근데 벼는 알곡이 목적이기에 빛을 쐬어주면 안돼요. 그래서 시골에 큰 건물이 들어서면 농부님들이 싫어하는 거에요. 한번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농업을 좋아해 광화문 광장에 논을 만들기로 했는데 서울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한참 바빴답니다. 거리의 자동차 라이트가 비추는 빛이 벼 이삭 패는 걸 방해할까봐 조도(lux) 조사하느라 그랬다는군요. 다행히 이삭 패지 못하게 할만큼은 아니어서 논을 조성했고 이삭도 잘 팼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쌀나무(?)에서 달리는 줄 아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을 겁니다. 동대구역 앞에도 벼가 익는 논이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철이 들면 뭐가 좋을까요? 철이 든다는 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건데요, 반대로 자연을 거스르면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가령 폭염을 이기려고 에어콘 밑에 살면 전기값이 많이 나오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시원할까요? 실외기 열기로 주변을 덥게 만드니 더 에어콘 의존도를 높이죠. 이게 문명 이기의 패러독스입니다. 철이 드는 일은 자연과 가까워지거나 자연과 하나되는 일입니다. 자연에 가까워지면 에너지도 적게 들뿐더러 삶에 거슬림이 적어집니다. 적당히 더위도 받아들이고 적당히 추위도 받아들일 줄 알면 삶이 순조롭지 않겠어요? 그게 깊어지면 삶에 신명이 날 겁니다. 앞에서 말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과 통하죠. 오늘(11월 22일)이 소설인데 영하의 추위는 18일날 왔어요, 그런데 의외로 별로 춥지 않았네요. 그 추위 때문에 무가 얼까봐 이틀 전 수확해 시래기도 엮고, 김장에 쓸 것 신문지에 싸 두고 남는 건 깍두기 담고 그러고도 남는 건 무밥, 무나물 용 반찬거리로 남겨두었습니다. 물론 내년에 씨 받을 종자용 무는 제일 좋은 걸로 잘 보관해두었지요. 동치미는 놓쳤어요.ㅋ 근데 저도 이번 추위는 그리 춥지 않을거라 보기는 했어요. 일단 아직 음력으로 9월인데요, 이는 12지지 중 술(戌)월로 겨울 달인 10월(해亥月)로 넘어가는 직전이에요, 일진으로 보아도 추울 날씨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이런 철에는 좀 호들갑을 떨어야 합니다. 자칫 한방에 공든 탑 무너질 수 있거든요. 추위 예보에도 굴하지 않고 캐지 않은 이웃의 무를 보니 역시 멀쩡하더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돼요. 일단 무는 자랄만큼 자랐기에 더 놔둘 이유도 없는데다 얼진 않아도 자칫 바람들 우려가 있으니 제 때에 거두는 게 맞습니다. 소설은 음력 10월에 드는 게 정상인데요, 올해는 음력으로 10월 3일입니다, 윤6월 땜에 너무 빠른 겁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소설 지난 다음 주 초에 비오고 추워진다는데 그게 아마 소설 추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을 날씨가 비도 많이 오고 따뜻해 단풍도 늦고 잎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쓰럽다고 했었지요. 늦었습니다만 다행히 단풍 들자마자 떨어지는 낙엽으로 온 세상이 정신없고 쓸쓸합니다. 그렇지만 낙엽들이 쌓이자마자 가물까 걱정입니다. 뉴스를 보니 강원도엔 가뭄이 심해 벌써 큰 산불이 났어요. 저희 동네도 걱정되어 밭 주변 산 숲에 들어가 봤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말라있는 게 한 눈에 들어오네요. 가을 비로 낙엽이 적셔져야 하는데 지난 가을 비는 따뜻하게 내려 낙엽을 못 떨어뜨리게 하더니 정작 낙엽 떨어진 후로 비가 와도 찔끔이에요. 그런데다 산의 나무들은 너무 빽빽해요. 낙엽은 불쏘시개고 빽빽한 나무들은 장작 같이 보이니 제 노파심이 너무 큰 걸까요? 그러길 바랍니다. 원래 숲의 쌓인 낙엽들은 거름이었고, 잡목들은 땔감이었어요. 그렇게 숲을 이용해야 빛도 들어가고 바람과 물이 잘 통해 나물도 잘 자라고 다람쥐가 수북한 낙엽 속에 가려져 도토리 찾지 못하는 일도 없으니 숲은 생명의 보고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부가 숲을 이용하지 않으니 숲이 너무 우거져 산불도 위험하지만 먹을 것도 없어요. 저는 이도 식품사막(Food desert)이라고 봅니다. 저희 밭은 수리산 자락 바로 밑에 있는데 겨울이 되면 산 짐승들이 저희 밭쪽으로 내려옵니다.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에서부터 수리부엉이와 매도 내려와 밭 위로 날아 다니죠. 겨울이 되니 산에 먹을 게 별로 없어서 일 겁니다. 저는 수리부엉이와 매의 위용을 보면 그 포스가 주는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한번은 원두막 너머에서 “끼야~”하는 매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하늘을 쳐다 보았더니, 제가 있는 줄 모르고 낮게 날아오던 매가 제 눈과 마주치자 깜짝 놀라 하늘로 급상승하는 거지 뭡니까? 제가 더 놀랐을 겁니다. 저와 마주친 빛나는 눈매와 급상승하는 포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뒤로 자빠질뻔 했거든요. 근데 요즘 눈에 밟히는 씁쓸한 풍경이 있어요. 제가 매만큼 좋아하는 새로 부부가 쌍으로 날아다니는 수리부엉이입니다. 두 놈이 높은 하늘 위에서 맴도는 위세를 보면 멋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지요. 근데 이 놈이 몇년째 혼자 날아다니는거에요. 이혼을 한 건지, 짝을 못 찾은 건지 모르겠으나 삶이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여 참 안쓰럽기 그지없더이다. 웬지 내 탓 같아 미안하기도 하구요. ㅋㅋㅋ * 대문 사진 : 왼쪽부터_내년에 쓸 볍씨, 무 시래기, 옥수수 씨, 김장 때 쓸 마늘. 볏짚으로 엮은 무 시래기가 영 아마추어 티가 납니다. 멀리서 보니 그럴 듯은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5-11-2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