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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첫 얼음 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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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얼음 어는 소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소설(小雪)에 첫 눈 기다리지 마세요. 대설이나 크리스마스에 첫 눈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함박눈이 아닌 싸리눈 정도 흩날리는 게 보통이에요. 괜히 방송 등에서 첫 눈 기다리게끔 들뜨게 만드는 건데 우리 기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지방에서 만들어져 우리 기후와는 맞지 않는 표현들이 있는데 소설 대설이 대표적이고 소한 대한 추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눈은 대한 입춘 즈음해서 많이 내리고 추위도 대한보다 소한이 더 매섭거든요. 눈도 영동 지방의 경우엔 오히려 봄에 많이 내리지요.
우리 소설의 대표적인 날씨 현상은 첫 눈이 아닌 첫 얼음이 언다는 겁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알람이에요. 그래서 소설이 되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개구리 뱀 곰은 겨울잠 자러 들어가고 모든 생명은 겨울 날 준비에 바쁘지요. 그럼 사람은 뭘 할까요? 맞습니다. 김장과 땔감 준비를 하지요. 그렇게 겨울을 대비하라고 소설엔 반드시 추위가 찾아듭니다. 겨울을 알리는 알람이라고 한 이유에요.
예부터 소설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어요. 하필 이 즈음 대학 시험을 보느라 소설 추위는 다 잊고 입시추위로 착각들 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상이 사람들을 다 철부지로 만들고 있는 꼴이에요.
철을 잊고 사는 세태는 소설추위를 잊은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한겨울에도 런닝바람으로 겨울 나는 게 요즘 모습이잖아요. 뿐입니까? 한여름엔 긴팔 와이셔츠에 폼나는 긴팔 양복 정도 입어주어야 가오(?)가 서는 분위기죠. 저 어릴 때 이런 표어가 있었어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말이요. 근데 이건 순전히 철을 거스르는 철부지 어린이의 표어라는 걸 제가 존경하는 한 한의사 선배의 책에서 배웠습니다. 철 든 나라의 어린이는 여름엔 늦게 자되 일찍 일어나야 하고, 겨울엔 일찍 자되 늦게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막힌 말이죠? 제가 절기 공부하고부터 늘 머리에 담아 둔 구절이었습니다.
그럼 철을 거스르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늘 가로등에 노출되어 있는 가로수를 생각해봅시다. 사계절 밤새 빛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항상 광합성을 하라고 자극하는 것과 같죠. 잠을 못자게 하는 거에요. 겨울이 되었는데 잎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낙엽수도 더러 있답니다. 잠을 못자는 것도 문제이지만 맹추위가 오면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겨울 얘기는 아니지만 밤새 불을 켜두어 잠을 못자게 해서 재배하는 작물이 있어요. 바로 깻잎입니다. 들깨는 단일(短日)식물이라고 해서 빛이 짧아지면 꽃을 피우는 작물이에요. 꽃피고 알곡을 맺으면 양분이 그리로 몰려 잎이 부실해집니다. 깻잎은 잎을 키우는 게 목적이니 꽃피지 못하게 조명을 비춰주는 겁니다. 그런 깻잎이 과연 정상일지 의문이에요.
벼도 단일식물이랍니다. 근데 벼는 알곡이 목적이기에 빛을 쐬어주면 안돼요. 그래서 시골에 큰 건물이 들어서면 농부님들이 싫어하는 거에요. 한번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농업을 좋아해 광화문 광장에 논을 만들기로 했는데 서울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한참 바빴답니다. 거리의 자동차 라이트가 비추는 빛이 벼 이삭 패는 걸 방해할까봐 조도(lux) 조사하느라 그랬다는군요. 다행히 이삭 패지 못하게 할만큼은 아니어서 논을 조성했고 이삭도 잘 팼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쌀나무(?)에서 달리는 줄 아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을 겁니다. 동대구역 앞에도 벼가 익는 논이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철이 들면 뭐가 좋을까요? 철이 든다는 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건데요, 반대로 자연을 거스르면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가령 폭염을 이기려고 에어콘 밑에 살면 전기값이 많이 나오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시원할까요? 실외기 열기로 주변을 덥게 만드니 더 에어콘 의존도를 높이죠. 이게 문명 이기의 패러독스입니다.
철이 드는 일은 자연과 가까워지거나 자연과 하나되는 일입니다. 자연에 가까워지면 에너지도 적게 들뿐더러 삶에 거슬림이 적어집니다. 적당히 더위도 받아들이고 적당히 추위도 받아들일 줄 알면 삶이 순조롭지 않겠어요? 그게 깊어지면 삶에 신명이 날 겁니다. 앞에서 말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과 통하죠.
오늘(11월 22일)이 소설인데 영하의 추위는 18일날 왔어요, 그런데 의외로 별로 춥지 않았네요. 그 추위 때문에 무가 얼까봐 이틀 전 수확해 시래기도 엮고, 김장에 쓸 것 신문지에 싸 두고 남는 건 깍두기 담고 그러고도 남는 건 무밥, 무나물 용 반찬거리로 남겨두었습니다. 물론 내년에 씨 받을 종자용 무는 제일 좋은 걸로 잘 보관해두었지요. 동치미는 놓쳤어요.ㅋ
근데 저도 이번 추위는 그리 춥지 않을거라 보기는 했어요. 일단 아직 음력으로 9월인데요, 이는 12지지 중 술(戌)월로 겨울 달인 10월(해亥月)로 넘어가는 직전이에요, 일진으로 보아도 추울 날씨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이런 철에는 좀 호들갑을 떨어야 합니다. 자칫 한방에 공든 탑 무너질 수 있거든요. 추위 예보에도 굴하지 않고 캐지 않은 이웃의 무를 보니 역시 멀쩡하더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돼요. 일단 무는 자랄만큼 자랐기에 더 놔둘 이유도 없는데다 얼진 않아도 자칫 바람들 우려가 있으니 제 때에 거두는 게 맞습니다.
소설은 음력 10월에 드는 게 정상인데요, 올해는 음력으로 10월 3일입니다, 윤6월 땜에 너무 빠른 겁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소설 지난 다음 주 초에 비오고 추워진다는데 그게 아마 소설 추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을 날씨가 비도 많이 오고 따뜻해 단풍도 늦고 잎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쓰럽다고 했었지요. 늦었습니다만 다행히 단풍 들자마자 떨어지는 낙엽으로 온 세상이 정신없고 쓸쓸합니다. 그렇지만 낙엽들이 쌓이자마자 가물까 걱정입니다. 뉴스를 보니 강원도엔 가뭄이 심해 벌써 큰 산불이 났어요. 저희 동네도 걱정되어 밭 주변 산 숲에 들어가 봤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말라있는 게 한 눈에 들어오네요. 가을 비로 낙엽이 적셔져야 하는데 지난 가을 비는 따뜻하게 내려 낙엽을 못 떨어뜨리게 하더니 정작 낙엽 떨어진 후로 비가 와도 찔끔이에요. 그런데다 산의 나무들은 너무 빽빽해요. 낙엽은 불쏘시개고 빽빽한 나무들은 장작 같이 보이니 제 노파심이 너무 큰 걸까요? 그러길 바랍니다.
원래 숲의 쌓인 낙엽들은 거름이었고, 잡목들은 땔감이었어요. 그렇게 숲을 이용해야 빛도 들어가고 바람과 물이 잘 통해 나물도 잘 자라고 다람쥐가 수북한 낙엽 속에 가려져 도토리 찾지 못하는 일도 없으니 숲은 생명의 보고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부가 숲을 이용하지 않으니 숲이 너무 우거져 산불도 위험하지만 먹을 것도 없어요. 저는 이도 식품사막(Food desert)이라고 봅니다.
저희 밭은 수리산 자락 바로 밑에 있는데 겨울이 되면 산 짐승들이 저희 밭쪽으로 내려옵니다.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에서부터 수리부엉이와 매도 내려와 밭 위로 날아 다니죠. 겨울이 되니 산에 먹을 게 별로 없어서 일 겁니다. 저는 수리부엉이와 매의 위용을 보면 그 포스가 주는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한번은 원두막 너머에서 “끼야~”하는 매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하늘을 쳐다 보았더니, 제가 있는 줄 모르고 낮게 날아오던 매가 제 눈과 마주치자 깜짝 놀라 하늘로 급상승하는 거지 뭡니까? 제가 더 놀랐을 겁니다. 저와 마주친 빛나는 눈매와 급상승하는 포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뒤로 자빠질뻔 했거든요.
근데 요즘 눈에 밟히는 씁쓸한 풍경이 있어요. 제가 매만큼 좋아하는 새로 부부가 쌍으로 날아다니는 수리부엉이입니다. 두 놈이 높은 하늘 위에서 맴도는 위세를 보면 멋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지요. 근데 이 놈이 몇년째 혼자 날아다니는거에요. 이혼을 한 건지, 짝을 못 찾은 건지 모르겠으나 삶이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여 참 안쓰럽기 그지없더이다. 웬지 내 탓 같아 미안하기도 하구요. ㅋㅋㅋ
* 대문 사진 : 왼쪽부터_내년에 쓸 볍씨, 무 시래기, 옥수수 씨, 김장 때 쓸 마늘. 볏짚으로 엮은 무 시래기가 영 아마추어 티가 납니다. 멀리서 보니 그럴 듯은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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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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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동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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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동 소식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보통은 입동이 되면 단풍이 절정이든가 절정을 막 지날 때입니다. 무 배추는 서리 맞아 맛이 깊어지는데 무는 별안간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버려 못 먹기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합니다. 추위 전날 캐서 무청은 엮어 시레기 널고 무는 땅속에 묻습니다. 저는 그냥 신문지로 싸서 종이상자에 넣어둡니다. 곧 김장 담그니 헐하게 싸도 되지만 김장 담고 남은 무들은 낱개씩 꼼꼼하게 싸서 종이박스에 넣고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방구석에 보관합니다.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 두지만 무는 그렇다고 따뜻하면 안돼요. 냉장고는 습기 찰 우려 있어 조심하는 게 좋구요.
배추는 끈이나 볏짚으로 묶어주는데 이는 결구 잘 되라고 하는 게 아닌 보온 때문이에요. 그래서 날 따뜻한데 묶어주었다간 벌레만 꼬일 수 있어요. 한로와 9.9절 사이에 심은 밀, 보리, 호밀 등은 입동 전에 새싹이 나는 게 좋습니다. 옛말에 입동에 보리 뿌리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 풍년들 조짐이라고 했지요. 겉으로 볼 때 잎은 두 갈래로 갈라져 최소 세 치 정도면 좋습니다. 적당히 잘 자란 겁니다. 덜 자라도 웃 자라도 동해 입기 쉽거든요.
입동 지나 배추 김장 담그기 전에 총각 김치를 담급니다. 김장에 채 썰어 속을 만들 무로는 동치미 담지만 그것으로도 남는 무로는 내년 봄에 먹을 무짠지를 담습니다. 소금 물로만 담는 무 짠지를 어른들은 뭐가 맛있다고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 드니 그 깊은 맛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소금에 쩔은 무를 나박나박 썰어 맹물에 담가 채 썰듯 파 띄우면 그 국물 맛과 무 맛이 기똥 찹니다.
입동은 보통 음력 10월 전후로 드는데 올 입동은 윤6월에 영향 받아 음력 9월 18일에 들었습니다. 매우 빠른 거죠. 말하자면 겨울이 빨리 오는 건데 그러다보니 그 겨울이 따뜻한 겁니다. 아마 올 겨울도 온난화니, 이상 기온이니 하며 호들갑이 난리일 것 같습니다. 저는 따뜻한 것보다 가물까봐 더 걱정입니다. 입동 일진이 경진庚辰인데 하필 이 경자가 가문 기운이거든요. 입동은 겨울의 첫단추이고요. 앞의 상강에서 말했듯이 나뭇잎이 단풍 들 새도 없이 겨울을 맞으면 떨켜 만들지 못해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산들의 숲은 무원칙하게 너무 우거져 대형 산불이 잦잖아요.
입동은 말 그대로 겨울의 시작이니 겨울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다음에 오는 소설 전에는 끝내는 게 좋습니다. 소설에 꼭 추위가 오기에 미리미리 해 두어야죠. 겨울 준비의 핵심은 먹을 것과 땔감입니다. 옛날엔 김장 담그고 연탄 들여놓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든든해 하셨어요.
그런데 농부는 더 있어요. 겨울에 대비한 토양 관리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겨울과 여름에 토양이 제일 피해를 봅니다. 여름의 폭염과 장마로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겨울의 추위와 가뭄과 바람으로 망가집니다. 지금은 겨울이 덜 춥지만 가뭄과 바람은 여전합니다. 땅을 말리는 가뭄의 피해는 알 수 있지만 바람이 땅을 망가뜨린다는 것은 잘 모르죠. 그러나 제주도 가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스산한 겨울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걸 보고 결코 제주도가 따뜻한 곳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지요. 그 바람이 흙을 날려 버립니다. 토양 유실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제주도에 많은 돌들이 고마운 겁니다. 흙을 바람으로부터 잡아주니요.
입동 전후로 농부는 참으로 바쁩니다. 여름 작물 수확해야지, 월동작물 파종해야지, 씨도 받아야지, 김장 해야지 등 진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땅 돌보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아졌어요. 시골 가보면 겨울에 그냥 방치되다 시피 한 경작지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아마도 고령화 때문이기도 할 거구요, 기계와 자재가 발달해 덜 신경쓰는 것도 한 몫 할 겁니다.
그런데 겨울을 잘 대비하면 봄이 참으로 축복입니다. 그 부활의 기운이 감동이거든요. 그럼 소설에 뵙지요.
입동 전후 농사 일정:제 개인 일정임을 감안해주기 바랍니다.
볏가리 사진 설명
옛날엔 벼를 바로 탈곡하지 않고 볏가리 쌓아 그때그때 먹을만큼만 탈곡 도정해 먹었습니다. 알곡 달린 이삭을 안쪽으로 해서 원기둥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처럼 이엉을 엮어 얹으면 비도 스며들지 않고 쥐도 들어가지 못했다니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죠? 미리 도정하지 않아 늘 신선한 걸 먹었으니 건강에도 좋았을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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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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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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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상강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가을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상강 추위가 닥치니 곧 겨울이 오는 것만 같습니다. 상강 이틀 전, 일기 예보도 그렇고 일진을 살펴보니 서리가 내릴 것이라는 예감이 강해 서둘러 서리에 약한 애들을 수확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토란, 고구마, 호박, 오이 같이 서리 맞으면 뜨거운 물에 데친 듯 축 늘어져 죽는 놈들에서부터 먹는 데에는 큰 문제 없으나 씨앗으로 쓰려면 서리 맞지 않는 게 좋은 생강, 벼, 조, 수수를 서둘러 거뒀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 고구마 일부는 그냥 낫으로 줄거리만 거둬버렸지요. 줄거리만 제거해주어도 땅 속 고구마 열매에게는 별 문제 없거든요.
제가 심는 벼는 앉은뱅이라는 토종 벼로 키가 작아 그리 이름 붙여졌는데 이게 조생종에 가까워 밀과 이모작하기 딱 좋습니다. 정신은 없죠. 벼 수확하자마자 바로 밀 심어야 되고 봄엔 밀 수확하자마자 바로 물을 대서 써레질 하고 벼 모내기를 해야 하거든요.
올해는 서리나 추위가 일찍 올 것이라 봤습니다. 절기로 소서 즈음 개화하는 무궁화 꽃이 피면 100일 뒤 서리가 내린다 했는데 올해는 무궁화 꽃이 열흘은 일찍 개화했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중복과 말복 사이가 보통은 스므날인데 올해는 열흘밖에 안되어 서리나 추위가 일찍 오겠구나 했지요. 더군다나 윤6월로 음력으로는 여름이 넉달인데다 동지는 음력 11월초에 드는 애동지라 여름은 길고 겨울은 빨리 와 가을이 짧을 수밖에요. 그런 같잖은 가을조차 비가 장마처럼 끊이지 않았으니 겨울은 오히려 가물까 걱정입니다.
사실 저는 기후위기나 기후변화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걸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괜히 사람의 잘못을 하늘 탓하는 것 같아서 그래요. 기후변화는 분명히 진행 중이며 이번 기후변화는 특히 더 클 것이라 봅니다. 지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기후변화이지만 이번엔 인간의 잘못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후위기, 곧 탄소와 온실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주범은 산업현장일 겁니다. 특히 에너지와 자재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요. 그런데 근본을 더 따져 들어가면 과소비 문화가 있어요, 소비를 부추겨야 산업과 경제가 발전할테니요. 그러니까 필요한 소비보다는 요즘 말로 가스 라이팅 된 소비, 즉 부추겨진 소비가 훨씬 클 거라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너무 일상이 되고 만 일회용 용기들, 과도한 청결주의가 빚은 물낭비 문화, 여름은 겨울처럼 겨울은 여름처럼 지내는 에너지 낭비문화, 얼마든지 재활용해 쓸 수 있는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는 비순환 문화 등에서부터 기후위기를 근본에서부터 방어해야 하는 농사에서도 기후위기 재촉하는 문화가 일상화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런 과소비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 한들 문제가 해결될까요? 탄소중립도 불가능한 얘기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한쪽에선 탄소제로이자 청정에너지인 원자력 발전을 늘리자 하지만 자칫 한방에 모두가 끝날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AI니 스마트팜 등을 얘기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물론 불가피한 면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부작용은 애써 외면해요. 근본 문제도 살펴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고 또 회피해요. 선진국이 되면 뭐합니까? 세계 최고 자살율, 밑바닥 맴도는 행복지수, OECD 국가 중 탄소 제일 많이 배출하는 기후악당 국가라는 데 말이죠.
주제넘은 얘기를 했나요?
서리 피해 볼까 봐 정신없이 서둘렀지만 막상 서리는 오지 않았어요. 걱정했던 상강 이틀 전에도, 상강인 오늘도 그냥 지나갔지요. 그렇지만 아침 날씨는 무척 쌀쌀했답니다.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서리 내리기에 딱 맞는 추위였어요. 뉴스를 보니 중부 내륙지방에는 서리가 내렸다는군요.
서리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괜히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에는 호들갑 떨지 않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입니다. 언제 서리가 내릴지, 언제 첫 얼음이 얼지 잘 살펴보고 행동은 아주 민첩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이 철에는 “도둑질하듯 농사짓는다”했겠어요. 거두고 동시에 심고 하는 게 정신이 없어요. 논에서 벼 수확하자마자 밀 심었지요, 모종 키우던 양파도 추위 오기 전에 뿌리 내리라고 서둘러 심었지요, 어제 그제는 보리, 호밀도 심었어요. 사실 보리, 호밀은 먹으려고 심은 게 아니라 종자 보존 차원에서 심었습니다. 꼭 씨앗 찾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서리 오기 전에 오이 노각 거둔 것과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 꺼내 속은 먹고 속껍질로 깍두기 김치도 담갔습니다. 고구마 거두고 난 마지막 줄거리는 장모님이 가져가셔서 김치 담가 주신다니 또 군침이 넘어갑니다.
오늘은 주아마늘 심을 밭을 갈았습니다. 들깨 거두고 남은 들깨 밑그루들 빼내고 풀 제거하며 두둑과 골을 내었지요. 들깨 둥지를 제거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 아내 손도 빌렸어요. 마늘주아는 일종의 종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마늘은 꽃을 피우지 않아요. 오랜 세월 주아만 갖고 재배하다보니 꽃이 퇴화되었답니다. 그래서 육종하려면 마늘 원산지인 이집트나 중앙아시아엘 가서 해야 한다네요. 거기는 꽃을 피우니까요.
주아마늘 심고 나면 먹을 마늘을 위해 씨마늘 밭도 정신없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날은 점점 추워질테니 정말 도둑질이 따로 없습니다.
단풍 익을 틈도 없이 추워지면 단풍이 예쁘지 않은 건 둘째치고 낙엽수 이파리들이 털켜를 만들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이파리들을 그대로 매단 채 겨울을 나다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몇 해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다행이 겨울에 비가 많이 와 산불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와 달리 제 걱정대로 올 겨울이 가물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산불에 대비해 신중하게 숲을 가꾸고 관리한 조상들의 지혜가 다시 생각납니다. 돈이 되든, 경관에 좋든 그저 몇 가지 종류의 나무만 심어버리는 조경 문화가 안타깝지요,
상강이야말로 제대로 된 수확철입니다. 그래서인지 앞의 한로에서 얘기했듯이 상강에 가까운 음력 9월 9일을 명절로 해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중구절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은 걸 보면 곧 닥칠 겨울을 대비해야 할 일이 많아 여유있게 축제를 벌일 틈이 없어서인것 같습니다. 우리를 늘 음주가무를 즐긴 민족이라 한 말을 볼 때마다 우리는 축제가 필요없는 사람들이었겠다 상상하곤 했습니다. 아는 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일을 즐길 수 있다면 일은 또 다른 축제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난 토요일 친구들이 달려 와 벼 탈곡을 도와주었는데 막걸리 먹으며 일하고 일 끝내곤 저녁에 쐬주 한잔과 삼겹살을 즐기니 축제가 따로 없더이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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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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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한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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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 소식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찬 이슬 맺는 한로답게 아침이 제법 차갑습니다. 열대야로 힘들었던 때가 바로 어제 같았는데 오늘은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네요. 이 글도 지금 이불 덮고 폰 화면에 긁적이고 있답니다. ㅎ, 이제 세상은 찬 기운이 지배적이고 더위는 한 낮 잠깐 지나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교차가 꽤 매서운지 어르신들 부고 소식이 많네요. 최근 보름 정도에 세번 문상 갖다왔으니요.
마지막 더위마저 쫓아내겠다는 심보인지 추적추적 가을비는 끊이질 않습니다. 보통 추석엔 비가 오지 않는데 이번엔 아니었어요. 해석이 잘 안되니 이상하긴 이상합니다. 제주에는 아직 열대야라니까요. 아마 윤달로 길어진 여름의 마지막 기운이 질기게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액이 빠져 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를 치고 간다는 말이 떠오릅디다.
그 여운이 길게는 음력 9월9일, 양력으론 10월 29일까지는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은 양이 겹치는 중양절重陽節 중에 마지막인 중구절重九節로 겨울 나는 맥류들 파종 때입니다. 강남 제비와 함께 완연한 봄이 돌아오는 삼짓날과 중구절이 옛날엔 명절이었답니다. 찬 기운의 세상이 도래하니 마을의 노인들 응원 잔치를 벌였다는군요.
맥류는 음력으로 중구절 근방, 양력으론 한로 근방에 심는데요 중구절과 한로의 격차가 큰 해에는 고민도 큽니다. 올해는 양력으로 한로가 10월 8일인 반면 중구절은 10월 29일이니 21일이나 격차가 나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 심어야 할까요? 일찍 심어 웃자라도, 늦게 심어 못 자라도 겨울에 동해 입기 십상이거든요. 저는 그냥 한로와 중구절 사이에 심습니다. 그러다보니 매해 심는 날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심하면 보름 차이 날 때도 있지요. 암튼 파종일은 음력과 양력을 다 보아야 합니다.
한번은 정신없이 그냥 한로만 보고 밀을 심은 적이 있어요. 바깥 일이 있어 외출할 생각에 숙제하듯 파종하고 뛰어나갔죠. 일주일 쯤 지나 싹이 트는데 발아 기운이 꽤 좋아보이대요. 그냥 기분 좋다 생각하고 지나치길 며칠 되어 다시 보니 너무 잘 자라는 거지 뭡니까? 이상하다 싶어 심은 날이 음력 며칠인가 보니 8월 하순인 거에요. 위 기준으로 보아 일주일 이상 일찍 심어 웃자란 겁니다. 야~이러다 겨울 추위에 영락없이 얼어 죽게 생겼네, 어쩌나, 낫으로 벨까, 아님 추위 오기 전에 뭐라도 덮어줄까 궁리만 하는 중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밭 위 산 속에서 동네 분이 키우던 염소 중 한마리가 탈출해 우리 밀을 죄다 끊어 먹은 겁니다. 그 현장을 본 순간 어이 없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소식 듣고 온 염소 주인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담배만 뻐꿈뻐꿈 피고 있네요. 연짱 미안타를 반복하는 그 이웃을 오히려 제가 위로할 수 있었던 건 나름 딴 생각이 퍼뜩 떠올라서 였습니다. 밀이 웃자라 낫으로 벨까 했던 내 생각을 염소가 알아채서 도와 준 꼴이네 했던거지요.
사실 염소나 양, 소 같은 되새김질 하는 초식 동물은 아랫니만 있어 풀을 끊어먹는 것보다 뿌리채 뽑아 먹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염소는 양과 좀 달라 제 밀을 먹은 놈처럼 먹을 게 많으면 끊어먹기도 한다네요. 윗니는 없지만 대신 잇몸이 튼튼해 거기에 바쳐 끊어 먹을 수 있답니다. 반면 양은 어린 풀, 큰 풀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뿌리채 마구 뜯어 먹는 놈이라 초원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목동은 약간의 염소들을 양 무리 속에 집어 넣어 함께 기른다는군요. 양은 남 따라하는 습성이 있어 큰 풀만 뜯어먹는 염소와 같이 있으면 어린 풀을 먹지 않아 초지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뭐합니까? 염소는 절벽도 지 안마당처럼 돌아다니며 나무 껍질도 벗겨 먹어치우는 놈이라 길게 보면 양이나 마찬가지로 사막화 주범이라 할 수 있단 말입니다.
밀 같은 외떡잎 벼과 식물은 생장점이 땅 속에 있어 끊어먹혀도 다시 잘 올라옵니다. 농약이 없던 옛날엔 모판의 벼 이파리가 해충에 큰 피해를 입게 되면 아얘 벼에다 불을 질렀답니다. 벌레나 세균도 죽일뿐만 아니라 벼는 순 질러 준 꼴이 되어 땅속에서 새순이 잘 올라온다는 거지요. 저도 오래 전 밭벼를 잔뜩 심었다가 중국에서 멸강나방이란 놈이 날아와 애벌레를 벼에 낳더니 까만 애벌레놈들이 벼 잎을 다 갉아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꼭 검은 옷 입은 저승사자처럼 보였지요. 농약은 칠 수도 없고 무기력하게 쳐다만 볼 수밖에요. 다 먹고는 그놈들은 고치가 되려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벼는 처참히 목들이 다 베어지고 말았어요. 아, 근데 웬걸요, 새로 순이 올라오는데 감동이 이루 말로 못할 정도였습니다. 더 싱싱해보이더라구요.
저희는 한로 열흘 전에 벼를 2/3는 수확했습니다. 체험하러 오기로 한 아이들용만 남겨두었지요. 추석 밑에는 처서에 심은 무 솎아 물김치 담갔구요. 오늘은 담배상추 따다 마늘 파 다진 된장만 넣고 밥 싸먹으니 가을 상추의 진가를 맛 보았네요. 밤 주워다 디저트까지 먹어 세상 부러울 게 없더이다.
나물로 미역취, 참취, 파드득, 부지깽이도 먹어달라 갖은 폼을 잡고 있어 내일은 아내 얼굴 보며 나물 입맛을 다셔보렵니다. 한로에 익어가는 가을 맛이 깊기만 합니다. 그래도 감기 조심들 하세요. 한로 소식 여기까집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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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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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추석이 드는 추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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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드는 추분 이야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추분이 되면 낮이 밤보다 짧아져 이제 성장을 돕는 양의 기운은 저물고 이삭과 과일의 성숙을 돕는 음의 기운이 지배를 합니다. 벼도 성장을 주도했던 잎사귀는 시들어가고 이삭줄기가 커져 이삭은 누렇게 익고 무거워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런데 올 해는 벼가 빨리 익는데다 가을비가 장마처럼 쏟아져 벼가 일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련 나무 살려보려고 수분 공급 원활한 논둑에 심었던 게 화근이 되었지 뭡니까. 의연하게 살아나 몇년째 우아하게 피운 흰꽃 보길 즐기다 그늘진 그 밑의 벼들이 웃자라 작년부터 쓰러지기 시작한 걸 이제야 깨달은 거에요. 참~, 나무는 함부로 심는 게 아닌데 말이죠. 또 목련을 옮길 생각하니 그 놈의 순탄치 않은 팔자에 미안한 마음만 드네요. 이번에 옮기면 세번째 이사가 될테니 말이죠.
아무튼 추분 지나면 가물어야 돼요. 비는 성장에 필요하지 이삭과 열매 익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거든요. 근데 추분이 든 오늘은 맑았지만 내일은 비가 온다네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 비로 쓰러진 벼 세우느라 애쓴 아내에게 절로 고개 숙여졌는데 또 쓰러질까 조마조마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추분 전후로 추석이 듭니다. 근데 참 궁금했던 건 추석 때 먹는 올벼 쌀이었어요. 토종 씨앗 수집한다고 어느 시골 한 할머니 농부님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소출도 적은 올벼는 왜 심었나요?"
요즘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옛날엔 어느 마을이나 농가에선 다 올벼를 심었거든요.
"추석 차례상에 조상님께 올리려 한 거지~."
조상님이 드시긴 뭘 드시겠어요. 그건 다 핑계일거고, 사람들이 먹으려 한 것이겠죠. 그럼 왜 추석엔 올벼를 먹어야 했을까요? 답을 못 찾아 의문은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한참 지나 우연히 이런 얘길 들었어요. 추석이 되도록 보리밥 먹으면 탈 난다는 말을요. 아~ 그래 알았지요. 찬 기운 돌기 시작하는 추석부턴 따뜻한 쌀밥을 먹어주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 때 먹을 수 있는 건 일찍 익는 올벼 쌀밖에 없잖아요. 맞았어요. 추석은 올벼 쌀 먹는 명절이었던 거에요.
사실 추수 감사 축제를 하기에 추석은 너무 일러요. 수확할 게 별로 없거든요. 미국이나 기독교에서 하는 11월 중순 경의 추수감사절이 제대로 된 수확철일겁니다. 특히 추석이 추분보다 빨라 양력 9월 하순 경에 들 때는 사과조차 귀하죠. 그런 추석이 늘 의문이었던 거에요.
추석이 올벼 먹는 명절이라면 그 다음으로 알게 된 것은 추석 전까지 먹던 보리밥은 먹을 게 없어 먹는 구황곡식이 아니라 여름 철 필수로 먹는 주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리는 찬 음식인데다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소화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은 밥이죠. 여름엔 찰지고 기름진 음식 많이 먹으면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요. 찹쌀떡 장수가 긴긴 겨울 밤에 팔러 다닌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암튼 추석이 우리에겐 제일 큰 명절이지만 먹을거리는 차라리 백중 때보다 못한 면이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의 유일한 토종 명절이자 가장 소중한 명절인 것은 아마도 계절의 가장 큰 전환점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추분과 함께 양의 시대가 음의 시대로 접어드는 극적인 길목이거든요. 명절은 다르게 보면 축제인 셈인데 추석은 설날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먹고 노는 여느 축제와는 사뭇 다르죠. 우리에게 축제 다운 명절은 아마 단오와 백중이었을 거에요. 마을 축제였거든요.
추분과 추석 즈음에 농부의 손을 더 바쁘게 만드는 것으론 씨앗 받는 일일겁니다. 여름 끝무렵에서 백중 즈음 농부의 배를 불리운 각종 여름 열매들의 씨앗들이 영글고 있지요. 오이가 익은 노각오이 씨앗에서부터, 고추,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등 뿐 아니라 조선호박, 수세미, 여주, 목화 등도 씨앗이 잘 익도록 챙겨야 합니다. 폭염을 겨우 버텨낸 농부에게 가을 농사와 더불어 씨 받는 일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시도 쉴틈이 없어보이지만 내년 농사의 희망을 생각하면 시름 거두기에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올해는 윤6월로 인해 6월이 두 번 들어 추분이 8월 2일에 들었어요. 빠른 추분답게 가을도 빨리 온 건데요, 초가을은 여름 폭염에 가려 온 지도 모른 사이에 가을의 피크인 추분이 슬며시 들이닥친 꼴이에요. 며칠 전부터 귀뚜라미 소리는 확 줄어들었고요, 밭을 둘러싼 숲의 나무들 잎에는 녹색의 기운이 약해지고 있더만요.
그렇지만 추분 지나고도 보름 가까이 지나야 추석이 오니 아직 더운 기운은 남아 있을 겁니다. 물론 한 낮에만 그렇구요, 그 시간만 지나면 그냥 가을이에요. 벌써 초저녁 6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요.
사람도 추분 지나면 이젠 음의 시대를 대비하는 게 좋겠어요. 왕성하게 성장하고 활동하는 양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이젠 2세를 준비하고 겨울 날 대비를 하며 희망을 품는 음의 시대에 맞게 사는 거죠. 절기를 알면 철이 들고, 철이 들면 몸이 반듯해지고, 몸이 반듯해지면 마음의 모가 둥글둥글해진답니다. 마음은 둥글둥글한 하늘을 닮고 싶어하거든요.ㅎ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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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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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1] 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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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이야기와 마무리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거름 만드는 일은 밥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란 걸 꼭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유기물이란 그냥 놔두어도 다 썩게 되어 있어요. 냉장고에서도 썩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발효제 없어도 큰 지장 없습니다. 있으면 더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김치, 장 담글 때 발효제 넣지 않잖아요.
다만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같아요. 최종 결과물이 인간에게 해로운 결과가 생기면 부패, 이로운 결과가 생기면 발효라고도 하거나, 좀더 넓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발효, 그렇지 않으면 부패라 할 수 있어서 둘의 차이는 종이 한장 정도라 할 수 있지요. 가령 술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못되어 식초가 생겼으면 부패로 간주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발효라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력을 높여주는 호기발효
거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크게 호기발효와 혐기발효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호기(好氣)발효는 글자 그대로 공기를 좋아하는 발효로 산소발효라 할 수 있고요, 혐기(嫌氣)발효는 반대로 공기를 싫어하는 발효로 무산소 발효라 하지요. 대체로 김치나 장 같은 음식의 경우 혐기발효를 시키는 반면 퇴비는 호기발효 시키는 게 좋습니다.
저는 거름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는 흙이 좋아하는 거름, 하나는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으로 말이죠. 물론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이 좋아하면 작물도 좋아하죠. 다만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을 흙이 싫어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흙이 좋아하는 거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음식물찌꺼기가 됐든 똥(인분, 축분)이 됐든 이런 질소질 성분이 주재료인 것으로 거름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습니다. 질소질 성분은 대체로 단백질이 분해될 때 나옵니다. 그러니까 질소질 성분이란 고기 같은 단백질 성분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이런 질소질 재료를 발효시키기 위해 톱밥을 섞는 게 아니라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질소질 재료를 섞는 것이라고 말이죠. 왜 그럴까요?
하나는 질소질 재료와 톱밥을 섞어 발효시키면 최종 결과물은 발효된 톱밥만 남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재료는 쓰이기만 하고 사라진 거에요.
두 번째는 흙의 지력, 곧 땅심을 좋게 해주는 것은 질소질보다는 톱밥에 많은 탄소질이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성분은 자신의 고향인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작물이 먹지요. 그리고 남은 건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유실되어 수질 오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탄소질이 지력을 좋게 해주는 주인공인 것은 탄소질이 바로 유기물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유기물이란 탄소화합물의 또 다른 표현이고, 그래서 지력이 좋다는 것은 토양에 유기물이 충분하다는 말과 같거든요.
그래서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음식물이나 똥을 섞어주는 겁니다. 비율도 톱밥의 탄소질 성분이 20~30이면 질소질 성분은 1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탄소질이란 거지요. 그래서 저는 탄소질 재료를 밥이라고 하면 질소질은 반찬이라고 합니다. 이를 탄소질 대 질소질 비율이라고 해서 탄질비라고도 하고, 영어도 탄소질carbon의 c, 질소질nitrogen의 n을 따 와서 cn율이라고도 하지요.
톱밥을 섞어주면 톱밥 틈의 공기층 때문에 호기발효가 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톱밥이 밀가루처럼 고운 것보다는 입자가 커서 틈이 많은 거친 게 좋습니다. 톱밥엔 목질부 섬유질인 리그닌이 풍부합니다. 이를 토양 미생물, 그 중에 방선균이란 놈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놈이 리그닌을 먹고 접착 성분을 만들어 토양의 홑알들을 떼알구조로 뭉쳐 줍니다. 이 떼알구조 흙을 입단(粒團)구조 흙이라 하는데 흙 알갱이(고상)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이 물(액상)과 공기 층(기상)으로 이루어지고 유기물은 입단화된 흙 틈 벽면에 코팅되어 약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유기물함량이면 꽤 옥토라 할 수 있어요.
탄질비는 이론적으로 20~30:1이 적당하지만 실제 거름을 만들 때는 부피 기준으로 톱밥 1.5~2에 음식물이나 똥은 1이면 적당합니다. 음식물이나 똥에도 탄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분도 중요합니다. 60%가 적당한데요 실제론 눈으로 볼 때 톱밥과 섞은 상태가 뽀송뽀송하면서 약간 촉촉한 느낌이면 됩니다. 물기가 눈에 보일 정도면 과습입니다.
톱밥과 잘 섞어놓고 발효가 진전되면 부피가 70% 정도로 줄어들 때가 옵니다. 공기가 모자라 호기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위 아래를 뒤집어 줍니다. 공기를 공급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두 세달이면 발효가 완성되는데 일단 원재료 냄새는 사라지고 약간 습하면서 풋풋한 냄새가 나며 색깔은 거무튀튀해집니다.
기후위기 땅심으로 극복하자
스페인의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밀밭, 그렇지만 이 밑밭이 사라지면 사막이 되고 말 위험한 경관이기도 하지요.
기후위기는 하늘이 화가 난 거에요. 그래서 기후재앙이라고도 하지요. 기후재앙의 완결판은 대가뭄입니다. 다른 말로 한재(旱災)라고 하는데 수재, 화재 등 기후재앙 중에서 제일 무서운 재앙입니다. 다른 재앙들은 피할 곳이 있는데 한재는 피할 데가 없어요.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사망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1670(경술년)~71년(신해년)에 대기근이 닥쳐 1천만명의 인구 중 1백만명이 굶어 죽었답니다. 경신대기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가 들이닥쳐 세계 곳곳에 추위와 함께 엄청난 가뭄으로 대기근이 곳곳에 벌어졌지요.
한재 같은 기후재앙이 지나가면 토양이 크게 망가집니다. 심하면 사막화가 일어나지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막지역도 기후재앙의 결과가 많습니다. 이집트 나일강 주변 옥토 넘어 거대한 사막지역도 원래는 초원지대였답니다. 사막국가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도 원래 숲으로 우거진 지역이었다지요. 엄청난 기후위기, 곧 한재가 누차에 걸쳐 들이닥치고 결국 건조한 기후조건이 자리잡으면서 사막지역이 된 것이겠지요. 세계 4대강 문명 지역을 보면 황하를 빼고는 다 사막지역입니다. 사막지역에서 문명의 꽃이 피진 않았을 겁니다. 문명이란 비옥한 지역의 곡창지대가 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테니요. 문명 앞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어느 유명한 학자의 말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저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기후재앙으로 사막이 생겼다는 건 분명 땅심이 고갈되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땅심을 잘 지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문명 발달로 숲이 사막이 되었다는 건 분명 땅심을 지키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땅심 살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죠.
저는 그럴 위험이 있는 곳을 엄청난 단작지역이라 봅니다. 예를들면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포도, 밀, 옥수수, 콩, 목화, 커피, 사탕수수 지역 등입니다. 숲을 파괴해 조성한 경작지이기에 한 종류 작물만 심으면 나중엔 작물마저 병해충 피해 등으로 사라져 결국 사막이 되고 말겁니다. 이미 강, 하천, 지하수는 오랜 단작으로 고갈되고 말았지요. 그외 겨우 남은 초원 지대마저 양들이 먹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제가 가본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의 단작 지역들에서 저는 그 위험을 직감했습니다. 얘기로만 들은 중국의 드넓은 단작지대, 미국과 남미 등에서 숲을 파괴하고 난개발 되고 있는 단작지대들도 큰 위기들을 축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랄해를 말려버린 소련의 목화 단작 농사가 이미 경고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는 땅심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심만 잘 지키면 사막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땅심을 살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면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믿음을 다음의 짧막한 글로 대신하고자 하옵고, 그동안 어설픈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한 말씀 드립니다.
하늘과 흙과, 그리고 사람
하늘색은 뭘까요? 파란색? 하늘색?
ㅎㅎ, 죄송하지만 하늘은 검은색이에요.
왜 그러죠?
하늘천따지 검을현누르황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말이요.
까만 흑이 아닌 검을 현은 좀 달라요. 그냥 새까만 게 아니고 뭔가 아련히 있는 거에요. 뭐가 있을까요?
맞아요, 별이 있지요.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구름 넘어 저 멀리 있을까요?
하늘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어둠을 보고 알았어요.
토종 씨앗 찾아 강원도 깊은 산골 한 할머니 집에 들렀다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어요.
저녁 얻어 먹고 TV도 없는 구석방에서 일찍 잠을 청하려고 침침한 백열전구 불을 껐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대요.
얼마나 어두컴컴한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처음엔 그 어둠이 불안했어요. 조금 무섭기도 했고요.
근데 좀 지나니 편안해지기 시작하대요. 어둠이 이불처럼 느껴졌어요.
한참 지나 알았지요. 그게 나를 감싸준 하늘이란 걸요.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죠.
그리고 숨을 훅 불어넣어 생명을 깃들게 했다잖아요.
뿐입니까? 비도 내려주어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지요.
비는 어두운 하늘의 은하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바로 검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죠.
흙과 하늘 사이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맞습니다. 흙과 하늘은 붙어있어요. 아니 붙어있다 못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하늘은 흙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흙은 생명을 잉태해 하늘을 감동시키죠.
하늘이 노한 기후위기는 하늘이 흙과 멀어져 일어난 거라고 봐요. 흙을 다시 하늘과 소통하도록 제 자리를 잡아주면 기후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흙에 생명을 잉태 해주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게 사람이 할 일 아닐까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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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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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10] 거름, 순환의 필수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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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는 삶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가능한 일임을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 한 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분은 귀농해서 아주 소박하고 예쁜 뒷간을 직접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볼 일을 뒷간에서 보지 않고 밭에 들어가 봤답니다. 한 손엔 호미, 다른 손엔 물 한 바가지 들고 적당한 자리 찾아 호미로 구멍 판 다음 일 보고 물 한 바가지로 비데 하면 끝. 그게 매일 흙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니 재밌죠. 똥은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나의 분신이 매일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 흙 또한 나의 분신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그 흙으로 나를 빚었으니 내가 거꾸로 흙의 분신이기도 하겠죠. 다르게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다음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완성했으니 나는 하느님과 흙의 합작품일 겁니다. 동양에선 하느님을 양(陽)이라 하고 흙을 음(陰)이라 했으니 나는 당연히 하느님인 아버지와 흙인 어머니의 합작품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아무 흙이나 생명의 모태가 되는 건 아니고 하느님의 숨이 깃들 때 생명의 흙이 될 수 있다 했지요. 하느님의 숨이 뭐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바로 따뜻한 바람이자 공기입니다. 생명의 흙에는 물이 있지요. 흙을 기반으로 공기와 물이 만났을 때 비로서 생명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런 생명의 흙에 나의 분신인 똥이 매일 들어가 흙의 양분이 되면 흙에는 하느님의 숨이 더 잘 깃들고 더 많은 생명이 잉태될 겁니다. 그렇게 흙에 살다 결국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간다면, 나뿐이 아니라 나의 조상이 그랬듯이 나의 후손들도 그렇게 흙으로 돌아간다면 흙은 거룩한 생명의 신전이 되는 거라 나는 역설하곤 합니다. 가끔 교회나 성당 가서 농사 얘기 드릴 기회가 있으면 하느님은 콘크리트로 지은 예배당보다는 저 생명의 흙을 더 좋아하실 거라 기염을 토하곤 하지요.
그래서 똥을 비롯해 내 몸과 생활에서 나오는 유기부산물을 거름으로 만들어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단지 먹을거리 생산을 위한 것만이 아닌 흙을 살아있는 생명의 신전으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밭에 먹을거리 작물만 자라지 않고, 온갖 풀과 벌레와 지렁이와 미생물, 꿀벌과 무서운 말벌, 귀여운 새와 두더지와 개구리, 능사와 살모사 같은 뱀 등 갖은 생명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순환의 힘
한 때 무투입순환농법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 거름도 주지 않고 작물을 키워 수확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울만 하죠. 저는 반박했습니다. 내가 먹고 눈 똥을 흙에다 주지 않으면 똥은 어디다 버리나, 내 농장에서 나온 먹거리를 이웃과 나눠 먹으면 이웃의 똥은 또 어디다 버리나, 우주에다 버릴 수는 없는 일, 부득이 내 농장이 아닌 어딘가에다 버려야 할텐데 그러면 내 똥은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이 되는 것 아닌가 했지요. 또 흙에서 나온 걸 흙에다 돌려주지 않고 빼 먹기만 하다 흙의 지력을 다 빼먹게 되면 나중엔 농사조차 되지 않는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했죠.
그런데 제 비판은 나중에 보니 일면적인 이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투입순환농법은 무조건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게 아니고 내 농장에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게끔 하는 게 핵심이라는 걸 나중에 안 거죠. 요즘 말로 예를들면 탄소가 제 농장에서 잘 순환되도록 하면 탄소중립은 절로 이뤄진다는 겁니다. 탄소가 배출된만큼 탄소를 사냥하는 거지요. 탄소배출이란 수확물을 말합니다. 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만드는 게 열매고 이삭이지요. 물론 수확물 외에 낙엽 등 농사부산물도 포함해야겠지요. 농사 부산물과 함께 수확물을 먹고 남은 부산물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바로 이게 농장 순환 시스템인 겁니다.
탄소 순환만이 아닌 질소 순환도 매우 중요합니다. 질소는 단백질의 핵심 원소이고 단백질 부산물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질소는 주로 암모니와 결합을 잘해 냄새가 납니다. 그게 똥 냄새이고 썩는 냄새입니다. 그런데 질소 순환은 탄소 순환과 비슷하면서 조금 복잡한 면이 있어요. 질소는 똥과 오줌에 많지만 빗물에도 있습니다. 대기 중 질소가 제일 많잖아요. 비가 그런 대기를 통과하면서 질소를 머금는 거에요. 번개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질소를 더 많이 머금게 됩니다. 번개의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질소를 더 많이 고정해 비와 함께 내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늘의 비와 햇빛 에너지가 내 농장에 탄소와 질소 비료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것이기에 순환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외부에서 비료를 투입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내 농장에서 흙과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여름 폭염과 폭우, 한 겨울 한파와 가뭄 등이 내 땅의 흙과 양분을 말리거든요. 이걸 예방하는 것도 순환시스템의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농장에서 농사지은 지 25년 동안 경운하지 않고, 모든 걸 순환시켜 퇴비 만들어 주는 농사를 하다보니 지력이 쌓여 몇 년전부터는 밑거름을 주지 않고 오줌으로 웃거름만 주며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밑거름은 옥수수와 호박 같이 다비성 작물에게만 주고 맙니다. 산림과학원 지정 산림생태텃밭(일명 먹거리숲) 조성하며 틀밭을 만든 이후 틀밭이 흙의 유실, 침식을 막아주고 지력을 지켜주어 더 거름을 주지 않게 되었어요. 그 바람에 저희 퇴비장독대에 만들어 둔 퇴비들이 그대로 쌓여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골치거리가 되고 있네요.
암튼 그래도 무투입순환농법이란 표현은 오해가 있어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칫 게으른 농사를 조장할 수 있구요. 그냥 순환농법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거름의 뼈는 탄소, 살은 질소
똥이나 남은음식물로 거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어주어야 합니다. 똥과 남은음식물은 질소가 주 재료이고, 톱밥은 탄소가 주 재료입니다. 이 재료들을 분해하는 미생물에게 톱밥은 밥이고 질소는 밑반찬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탄소질은 뼈이고 질소질은 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생물이 이 재료들을 분해할 때는 적당한 비율의 물과 공기가 필수입니다. 이 중에 공기가 더 중요한 발효를 호기(好氣)발효라 하고,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 발효를 혐기(嫌氣)발효라 합니다. 퇴비 만들기는 호기발효가 좋습니다. 혐기발효는 오줌 같은 액체비료 숙성시킬 때가 적당합니다.
호기 발효를 시킬 때 퇴비의 주 재료는 톱밥 같은 탄소질 재료입니다. 그렇다고 톱밥만 있으면 발효는 아주 지체됩니다. 여기에 질소질 재료가 첨가되어야 발효가 잘 일어나지요. 탄소질과 질소질의 비율은 보통 20~30:1로 이를 탄질비, 탄질율(C/N)이라 합니다. 비율로만 봐도 탄소질이 질소질보다 20~30배는 많아야 발효가 잘 된다는 것인데요, 그러면 탄소질 재료인 톱밥이 너무 많아 퇴비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공장식 축분 퇴비들에는 톱밥이 20%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아요. 그 정도 비율이면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아 강제로 온도를 가해주고 공기도 넣어주며 더불어 미생물 발효제도 넣어주는 겁니다.
저희가 퇴비 교육할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음식물찌꺼기를 질소질 재료로 하고 톱밥을 섞어주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음식물이 아니라 톱밥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땅에 퇴비를 넣어주는 건 땅의 지력(땅심)을 높여주기 위함인데 땅심의 주인공이 바로 탄소질 재료, 곧 톱밥에 많기 때문이에요.
톱밥 같은 목질부에는 리그닌이라는 섬유질이 있는데 이게 바로 땅심을 높여주는 탄소질의 핵심입니다. 낙엽이나 왕겨 같은 초본류에는 셀룰로오즈라는 탄소질이 있는데 리그닌만 못하지요. 리그닌은 토양 속 호기성 미생물들이 아주 좋아해 먹고 난 후 접착 성분을 만들어 흙의 입단화, 곧 떼알구조의 흙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엔 숨구멍, 물구멍이 많아 흙이 푹신푹신해지지요. 이 흙 틈새 벽면엔 미생물이 먹이를 먹고 만든 유기물을 코팅해 놓습니다. 그래서 식물들이 흙 틈새로 뿌리를 뻗고 틈새의 물을 흡수하고 벽면에 코팅된 유기물을 먹이삼아 먹고 사는 겁니다. 당연히 틈새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도 식물 뿌리에 기대 식물이 뿌리로 뱉어내는 배출물을 먹고 뿌리에겐 요긴한 양분도 제공하며 공생하는 거지요.
아궁이 불을 많이 떼던 옛날엔 재가 아주 훌륭한 탄소질 재료였습니다. 거름 대용으로 쓰기 위해 산에서 훑어오던 참나무 갈잎의 잎줄기에도 탄소질 재료가 많았어요. 지금은 재도 별로 없고 참나무 갈잎은 훑어올 엄두도 못 내지요. 그래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가을이면 쏟아지는 낙엽입니다. 잎에는 셀룰로오즈가 많지만 잎줄기에는 리그닌이 풍부하거든요. 더구나 우거지는 산 숲을 정리하기 위한 간벌로 잔가지 우드칩이 처치 곤란일만큼 많아 이 또한 톱밥 대용으로 쓰면 아주 요긴할 것입니다.
탄소질 재료는 골치일만큼 많은데도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쓰질 못하니 저는 주로 목공소의 원목 톱밥을 얻어 씁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의미는 있으나 원목 대부분이 수입산이 많아 아쉬움이 많아요. 기후위기 시대에 하루빨리 자원순환이 생활화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 글에선 퇴비만들기의 실재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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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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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9] 경운, 땅은 왜 딱딱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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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구조와 경운
경운은 왜 할까요? 맞습니다. 땅이 딱딱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럼 왜 땅은 딱딱해질까요? 땅 속 틈새가 메워졌기 때문이지요. 틈새엔 공기가 있고 수분이 있어요. 그 틈새 벽면에 유기물이 코팅되어 있답니다. 그 틈새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틈새의 공기로 호흡을 하고 수분과 유기물을 먹으며 자라는 거거든요. 틈새가 메워지니 흙이 다져져 딱딱해지는건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되면 딱딱해진 것조차 풀어져 사막이 되는겁니다.
원래 부드러워 식물이 살 수 있는 살아있는 흙엔 흙알갱이가 반, 틈새가 반 조금 못되고 유기물층이 5프로 쯤 된답니다. 이 유기물층이 살아있는 흙의 핵심이에요. 여기엔 미생물들이 우주의 별들만큼 많은데 인간이 밝혀낸 게 겨우 5프로도 안된다네요. 살아있는 흙의 주인공이죠. 얘들이 흙을 지켜주고 부드럽게 해주어 식물이 살고 무수한 생명들 또한 그 덕에 사는거에요.
결국 이 유기물 층이 없어져 흙이 딱딱해지는 건데요, 그럼 유기물은 왜 사라질까요? 답은 간단해요. 바로 물이 말라버리면 그래요. 물이 마르면 틈새가 쪼그라들어 흙속 공기도 사라지는 거고 유기물도 타버리고 말죠. 미생물도 생명인지라 숨쉬고 물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럼 물은 왜 마를까요? 당연히 비가 오지 않으면 그리 되겠지요. 그게 요즘 말하는 기후위기의 끝판이자 바로 대기근이에요. 땅속 물이 마르면 틈새에 빨아올리는 압력이 생겨 땅 깊은 속 암반 층의 염류가 따라올라와 땅 표면에 염류를 뿌려놉니다. 염류는 일종의 소금이에요. 마르는 물 따라 올라오는 걸 모세관현상이라 하구요. 염류는 암반, 바위 속 광물질의 미네랄 같은 것으로 무기물이라고도 하고 무기염류라고도 합니다. 바닷물이 짠 게 바로 이 염류 때문이에요.
그래서 거꾸로 땅에 소금을 뿌리면 흙이 딱딱해져요. 소금이 물을 흡수하기도 하고 소금 속 나트륨이 뭉글뭉글한 떼알의 흙을 홑알로 흩어버려 결국 틈새를 없애버리거든요.
흙을 말리는 현대농업
기후위기에 대비해 물을 흙 속에 잘 저장하는 농법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농사는 물 낭비도 심할뿐더러 흙 속의 수분마저 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 선생은 밭도랑을 잘 정비해 밭마다 수분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 치수의 근본이라 했어요. 밭의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를 내리게 하니 가뭄을 예방할 수 있다 했지요. 그래서 강물이 대동맥이라면 밭도랑은 모세혈관인 셈이죠.
근데 지금의 현대농업은 어떻게 흙 속 물을 말리는 걸까요?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경운이 첫째고 화학비료의 사용이 둘째고 단작이 세번째입니다. 마치 밀가루 흙처럼 만드는 기계경운이 흙을 말립니다. 과도한 경운이 많은 공기를 투입시켜 흙속 유기물을 날리고 물마저 말려버리는 거에요. 땅을 말리는 화학비료의 핵심은 요소비료인데 이게 소금처럼 물을 말리고 흙을 딱딱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단작은 밭도랑을 바둑판처럼 만들어 배수 기능만 강화하기 때문에 밭에 수분을 저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무경운과 멀칭
그래서 대안으로 무경운과 퇴비의 사용, 윤작 혼작의 실천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 중 사실 무경운이란 말은 좀 과도한 면이 있어요. 예컨대 풀을 메고 씨를 심기 위한 호미질도 일종의 경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과도한 기계경운을 반대하고 전통식 경운을 복원하자고 합니다. 쟁기질과 괭이질, 호미질은 흙을 밀가루로 만들지 못하거든요. 그걸 감안해 기계도 적절히 사용하면 흙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옛날처럼 소 쟁기질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제게 농사 스승님이신 우리 동네 어르신은 일반 관행농업을 하셨는데 그렇지만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어요. 기계로 땅을 갈 때는 저속으로 하면서 깊지않게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하셨죠. 밀가루처럼 곱게 갈면 땅이 다 망가진다 했어요.
무경운 농법은 생태농업 쪽에서만 주목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행기와 대형트렉터로 농사짓는 데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건데요, 왜일까요? 땅이 너무 넓어 집채 만한 대형 트렉터로도 땅을 제대로 갈기 힘들다는 거죠. 퇴비 주기도 힘들어 화학비료나 주는데 지력 고갈 문제가 점점 커져 지력을 소모시키는 기계 경운이 이래저래 부담되기 때문이랍니다.
한번은 농업 강국 중 하나인 포루투갈 농촌엘 갔다가 트렉터로 땅 가는 장면을 봤는데 작물 심을 자리만 지그재그로 갈더라구요. 땅의 반만 가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엄청 넓은 땅에 퇴비는 줄 수 없고 비행기로 뿌려주는 화학비료는 편하지만 지력 고갈은 피할 수 없어, 지력 보충 방안으로 지렁이 알을 비행기로 뿌려주는 방안을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대요.
무경운 농법에서 중요한 것은 피복(멀칭mulching)입니다. 흙을 보호해 말리지도 말고 유실, 침식도 막자는 겁니다. 그럼 흙을 말리고 흙의 유실, 침식은 왜 일어날까요? 폭염과 폭우, 추위와 가뭄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걸 막기 위해 피복이 필요한건데요, 피복 중 비닐 멀칭도 폭우, 유실, 침식 피해는 막을 수 있지만 부작용으로 지열 상승과 흙속 통풍을 막는 부작용이 있어요. 쓰레기 발생도 큰 문제지요. 그래도 큰 면적에서 상업농사를 위해 단작을 할 경우는 비닐멀칭이 부득이 할 수 있습니다. 무대포로 생태농업 한다고 비닐멀칭을 거부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어요. 상업적인 단작에도 비닐멀칭을 대체할 방법에 대해선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개인이 해결하기는 힘들거구요. 사회적으로 함께 연대해 방법을 찾아야 겠습니다.
요즘엔 썩는 비닐이 나오기는 하지만 비용도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걸 생산하려면 또 에너지를 써야 하니 탄소중립 시대에 적절할 지는 좀 의문이 들어요.
제가 한동안 즐겨 쓰던 멀칭 재료에는 신문지가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세겹으로 해서 밀가루로 풀을 쑤어 두루마리로 이어붙이면 멀칭비닐 못지 않아요. 관리기에도 걸어봤는데 두둑을 만들면서 두둑을 피복하는 데 손색이 없지요. 풀 쑤어 두루마리 만드는 데도 의외로 시간이 안 걸립디다. 그렇게 피복한 후 비를 맞으면 더 바짝 말라 흙에 착 달라붙어 멀칭 효과가 대단합니다. 창호지 붙일 때 물 뿌리면 햇빛에 바짝 마르는 효과와 비슷해요. 장마 지나면 작물은 이제 다 자라 풀에 치이지 않을 때쯤 신문지는 거의 다 삭아 흙에 잘 섞여 들어가죠. 거둘 필요가 없어요. 누구는 인쇄잉크에 독이 있을텐데 걱정하지만 독이란 게 적으면 별 문제 없다지 않습니까.
아무튼 생태멀칭의 방법으로 저는 앞에서 풀멀칭 외 세 가지를 제시했었습니다. 흙으로 흙을 덮는 흙멀칭, 논에 물을 담아 흙을 보호하는 물멀칭, 작물을 심어 흙을 보호하는 작물 멀칭이 그것이죠.
흙을 사시사철 덮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풀멀칭의 경우 사시사철 흙을 덮어둘만큼 풀이 많이 나오기 힘들어요. 아무리 덮어주어도 한 여름 지나면 말라버리기 일쑤죠. 그러니까 흙이 마르고 침식, 유실될 때, 곧 한여름 폭우 폭염과 한겨울 춥고 건조할 때 위주로 해 주면 충분합니다. 풀이 모자랄 때이기도 한 봄과 가을엔 땅에 따뜻한 비와 바람과 햇빛이 잘 닿도록 덮어주지 않는 게 좋습니다. 흙 속엔 햇빛 좋아하는 광합성균 같은 미생물도 많고, 적당한 지온과 공기를 좋아하는 방선균 같은 미생물도 많거든요.
두번 째 퇴비의 사용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고요, 윤작 혼작은 지난 글들에서 많이 다뤘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번 글은 토양에 대한 이론적인 얘기를 하다보니 좀 지루했네요. 양해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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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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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8] 흙을 지키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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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지키는 나무, 나무와 혼작하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사실 나무에 대해선 저는 아직 초보입니다. 막연히 나무가 좋아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긴 했어요. 저희 농장에 심은 나무만 쥐똥나무 같은 관목 포함해 느티나무 잣나무 노나무 무궁화나무 등까지 하면 대략 개수로는 200그루, 종수로는 50종은 심었을 겁니다. 그런데 재배 관점에서 먹거리 나무 곧 유실수와 새순 먹는 특용수를 심은 건 2019년부터이니 잘해야 5~6년 되었지요. 나무는 대표적인 다년생인데다 방치해도 죽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아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공부를 하진 않아 여전히 초보나 다름없는 거지요.
나무 이야기를 쓰기가 영 자신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쓸까말까를 몇 번 망설인 끝에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차피 제 글은 전문적인 글이기보다는 체험담에 가까운 얘기라 좀 어설프더라도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제 글쓰기 버릇 중에 하나는 공부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번 참에 공부를 좀 더 하자는 욕심도 작용했지요. 또 이번 글은 흙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하는 거라 본격적인 나무 얘기는 아니니 부담도 덜 하긴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전에 심었던 나무들은 거의가 조경수라 사실 손 볼 것도 없었던 반면에 새로 심은 유실수와 특용수는 수확을 목적으로 하기에 손 볼 게 적지 않았습니다. 거름 주기는 일반 작물과 별 차이가 없어 어려울 게 없지만 전지(가지치기)는 5~6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리기만 합니다. 다만 이 전지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 작물 재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디다. 바로 전지 작업은 하늘을 보고 일한다는 점입니다. 일반 작물은 쭈그려 앉든, 허리 굽혀 하든, 땅을 보고 하는 일들이죠. 그 때는 몰랐어요. 근데 전지는 하늘을 보고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일단 좋은 점은 허리가 자연스레 펴진다는 겁니다. 보통 촌로 농부님들은 대부분 허리가 꼬부랑이잖아요. 그런데 한참을 하늘을 배경으로 전지 작업을 하다보니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비로소 내가 하늘과 소통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초보자의 소감은 그 정도로 하고요, 어차피 이번 글에선 흙 입장에서 본 나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무를 심으면 흙에 좋을까요, 나쁠까요?
저희 밭 가엔 한 50살은 되어 보이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북쪽 끝에 있어 남향을 하고 있으니 저희 밭엔 나무 바로 아래나 해질녁에 그늘을 드리우지만 나무 넘어 이웃 밭에는 남쪽에 큰 나무가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그늘을 드리우죠. 저희 밭을 구입하곤 경계 측량 후 경계 따라 도랑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작업하는데 그 나무 너머 밭을 빌려 농사짓는 동네 할배가 다짜고짜 포크레인으로 참나무를 죽이라는 거지 뭐에요.
어르신 밭에 그림자 드리우긴 하지만 그리 심해 보이진 않고, 저런 큰 나무는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 지금까지 가만 계시다 왜 이제 와서 나무를 죽이라 하시나, 어쨌든 내 밭에 있는 나무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어르신은 힘들다며 당신 밭을 내게 권리금 받고 경작권을 팔아 제가 직접 그 땅에서 농사지어봤더니 별 문제 없더라구요.
그 다음에 10년쯤 지나니 이번엔 제 밭을 둘러싸고 있는 땅들을 시에서 몽땅 임차해 산림욕장 시설 공사를 하며 또 이 참나무를 죽이려 하지 뭡니까? 경계측량을 해보니 그 나무가 내 땅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서요. 얼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또 참나무를 지켰습니다. 별로 폼새도 나지 않는 나무를 그림자나 드리우는데 왜 저걸 보호하려 하냐며 되레 나를 가르치려 하대요.
큰 나무가 그림자 드리워 피해 주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5년째 이 나무 밑에서 농사지어보니 별 피해도 없어요. 오히려 나는 큰 나무가 땅 밑으로 크게 뿌리를 뻗어 우리 밭 토양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지요. 토양의 물리성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뿌리에 많은 미생물들이 살며 더불어 우리 토양 속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해줄 것입니다. 지상에선 선풍기 역할도 해 줍니다. 큰 나무의 왕성한 증발산 작용으로 주변 기후를 건강하게 청소해주는 것이죠.
옛날엔 논 가에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있었습니다. 시골의 정겨운 경관이었지만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며 다 없애버렸죠. 분명 그림자 탓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 경관은 황량해졌어요. 그 정도의 그림자가 작물 재배에 큰 영향을 주기는 만무한 일이죠. 사실 오랜 세월 나무 밑에서 재배해 온 토종 벼들은 적응해왔는데 통일벼 이후 다수확 종자로 육종된 개량 벼들은 조금의 그림자에도 영향을 받았다곤 합니다.
흙을 지키는 나무
무엇을 심을 때는 꼭 유념할 게 있습니다. 심기 전 그게 내 땅과 맞는지를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겁니다. 나무가 특히 그렇습니다. 나무는 한번 심으면 최소 몇 십년 살기 때문에 한번 심으면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나무는 진짜 욕심낼 게 못 됩니다. 2019년 저희 밭이 산림과학원 지정 민간형 먹거리숲(산림생태텃밭)으로 선정되어 유실수와 산채나물을 많이 식재했는데요, 심고 나서 한 3년 되고 나서야 우리 밭엔 유실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 뭡니까? 열매가 작은 나무들은 어느 정도 버티는 편인데 사과나 복숭아 같이 좀 큰 나무들은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벌레는 엄청나고요, 전체적으로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희 밭이 원래는 논이었던데다 객토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웃들 밭 주변은 다 객토를 했으니 우리 밭만 푹 꺼진 꼴이 되고 만거죠. 물론 배수로는 정성껏 팠기 때문에 습하진 않은데, 그래도 심토는 논흙이라 습했던 모양입니다. 나무가 어릴 때는 잘 자라다가 3년 쯤 되어 뿌리를 깊게 내릴 때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죠.
반면 서울의 가락시장 옥상에 텃밭 만들어주고 상자텃밭에 사과나무 3그루를 심어주었는데 생육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저희 밭 사과나무와 비교가 안될 정도에요. 통풍도 좋고 일조량도 아주 풍부한데다, 콘크리트 바닥의 복사열까지 가세해 광합성 에너지를 확실하게 공급해 준 때문인지 열매도 실하고 벌레도 거의 없었죠. 맛도 기가 막혔어요.
사과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밭 온실에서 과채류 작물 모종을 키워 심어주면 저희 밭보다 훨씬 잘 자라대요. 토마토 가지 고추들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놀랐어요. 옥상텃밭은 여름에 복사열로 작물들이 마르는 걸 조심만 하면 진짜 끝내줍니다. 유실수든 과채류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습기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통풍, 일조량, 높은 기온을 절대적으로 좋아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무는 심을 곳의 토양 상태와 기후 조건을 잘 살펴 심어야 합니다. 1년생 작물이야 실패해도 1년만 고생하면 되지만 나무는 다년생이라 ‘실패하면 다시 심지...’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년생이라 해도 풀하고는 달라요. 풀이야 수틀리면 옮겨 심어도 되지만 나무는 옮겨 심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나무 심을 때는 나무 공부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흙 공부를 강력히 권합니다.
아무튼 먹거리 나무를 심은 지 5년이 넘었어요. 적응할 놈 적응하고 아직도 고생하는 놈도 있고 개 중 잘되는 놈도 있어요. 밤나무는 그 중 참 잘됩니다. 머루나무도 잘 되고요, 다래, 포도, 매실, 두릅, 개두릅(엄나무), 화살나무(홑잎), 구기자 나무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지요.
나무를 심어놓으니 몇 가지 재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한여름 폭염이 덜하죠. 제가 볼 때는 쉬원할만큼 그늘이 많이 드리운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무 그늘로 피해보는 작물들이 많을텐데 거의 피해보는 일은 없어요. 그보다는 나무들의 증발산 작용으로 밭 전체적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적당히 솔솔 바람도 불고요. 제가 위탁받아 관리해 주는 밭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나죠. 우리 밭만큼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진짜 뙤약볕이 보통이 아닙니다.
폭염이 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 삼일 전 비가 적당히 왔는데도 일주일은 넘게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죠. 뜨거운 뙤약볕이 흙에 내리쬐며 흙을 바싹 말려버린 겁니다. 흙이 마르면 흙 속 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공기도 사라집니다. 표토의 물이 마르면 모세관현상에 따라 심토의 염류가 표토로 빨아올려집니다. 공기도 사라지니 토양 내 호기성 미생물이 사라지고 흙이 딱딱해집니다. 그러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죠. 병에도 잘 걸립니다. 그런데 나무가 적당히 심어져 있으면 폭염으로 인한 고온도 완화해주지만 뿌리로 땅 속도 보호해주는 거지요.
게다가 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폭염도 폭염이지만 여름철 폭우로부터 흙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폭우로 인한 타격을 완충해 줄 수도 있겠지만 땅 속에서 뿌리로 흙을 보호하는 효과가 더 의미있을 거라 봅니다.
나무가 아니라도 폭염으로 인한 토양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멀칭(mulching, 덮개)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의 무경운 글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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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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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안철환의 '곡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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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0일 곡우가 지나갔습니다. 이 난의 필자인 안철환 선생이 곡우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절기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뒤늦지만 여기에 올립니다.
곡우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소장)
예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춘분이 아닌 곡우에 부활하셨을 거라 우기곤 합니다. 춘분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거든요.
올해는 곡우비가 일주일 일찍 내렸어요. 음력으로 보름이었지요. 보름엔 비 잘 안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찌뿌리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에 오기로 한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비를 흠뻑 맞았지만 그게 곡우비라는 걸 밤이 되어서야 알았네요. 봄비 잘못 맞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그 비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온화한 기운을 담고 있는 비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산을 보니 일제히 나무들에 새순이 돋은 겁니다. 그 기운이 얼마나 신선하고 상큼한지 꽃이 아무리 예쁜들 새순만 할까 했습니다. 화려한 꽃이라 해도 이내 지고 말 운명이지만 새순은 앞날이 창창한 희망을 품고 있으니 그 기운에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곡우비의 그 기운은 춘분의 기운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역동적이라 한 겁니다. 낮과 밤이 같고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하는 춘분의 기운이야말로 부활의 힘이란 건 분명하나 춘분 뒤 반갑지 않은 불청객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는 게 춘분의 뒤통수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걸 보고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를 후려 갈기며 나간다 했어요. 액이 나간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일겝니다.
곡우비가 가져다 주는 생명의 기운은 매번 감동적이지만 처음 곡우비의 신비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20여년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희 밭은 군포에서 안산 넘어 오는 영동고속도로 밑 토끼굴 지나 산 밑에 있는데 곡우비 그친 다음날 어두운 그 굴을 지나자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온 산 나무들의 새순은 생명들의 팡파레이자 세레모니였어요. 입과 눈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예수님 못지않은 생명들의 부활이라 느꼈지요.
우리나라의 봄의 부활이 감동적인 것은 모든 게 죽는 추운 겨울 때문일 겁니다.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 변함없는 녹색을 자랑하는 호주의 겨울을 보았을 때 부럽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나라의 봄은 별로 부활의 감동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너무 추워 모든 게 죽는 우리의 겨울이 역설적으로 축복이라는 걸 느낀 것도 한 참 나이 들고 나서였죠.
춘분에서부터 부활하기 시작한 기운이 곡우에 와서야 완성되는 셈입니다. 춘분을 기점으로 부활하는 생명들은 아직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꽃샘추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여전히 움추리고 있는 생명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나 곡우 때 따스한 봄비로 이젠 모든 추위가 물러가니 만물이 마지막 기지개를 켜 약동의 계절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올해 곡우는 만만하지가 않네요. 윤6월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든 해는 날이 고르지 않습니다. 양력과 음력의 편차를 억지로 맞추다보니 과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들었다는 것은 음력으로 일년이 13달이라는 건데 그러다보니 계절이 3달보다 긴 3달 열흘 정도 되는 셈입니다. 그럼 봄은 음력 4월초까지로 양력으론 5월 초순까지 봄이 되는 겁니다. 초순이면 여름이 시작하는 입하이지만 음력으론 아직 봄이라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은 곡우 지나면 냉해가 가시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아요. 한 낮에도 날이 쌀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예년에는 춘분 지나면 한낮엔 여름처럼 더웠던 것과 많이 다르죠.
올 여름은 음력 윤6월 중순까지로 절기로 입추 근방이에요 윤6월이지만 가을의 시작이 여름 끝 무렵에 드는 거지요. 그래서 가을이 빨리 오지만 아직 여름에서 빠저 나오지 못해 입추가 가을답지 못할 겁니다.
곡우는 12지지 중 진(辰)에 해당하니 음력으로 3월에 듭니다. 인(寅) 묘(卯)와 함께 진은 봄에 드는 지지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 끝에 들지요. 여름에 드는 사(巳) 오(午) 미(未) 중 여름 끝인 미, 가을에 드는 신(申) 유(酉) 술(戌) 중 가을 끝인 술, 겨울에 드는 해(亥) 자(子) 축(丑) 중 겨울에 드는 축과 함께 환절기 성격이 강한 절기거든요. 그러니까 절기로 미는 대서, 술은 상강, 축은 대한으로 환절기답게 비와 눈이 자주 내려 다음 절기를 준비합니다.
올해 2025년 곡우는 음력으로 3월 23일이었고 일진은 기미(己未) 였습니다. 음력으로 불 때 곡우가 늦게 왔습니다. 그러면 곡우 이후엔 날이 따뜻하고 온화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지요. 입춘이 설 지나 와서 이래저래 봄도 늦은데다 윤6월 들어 늦봄이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곡우(穀雨) 지나면 여름 나는 작물들은 대부분 파종할 수 있습니다. 곡식 심기에 좋은 비가 내린다는 말 그대로이죠. 벼를 비롯해, 옥수수, 수수, 콩 등 곡식에서부터 고추, 오이, 수박, 호박, 참외, 토마토 등 과채류까지 심을 수 있으나 들깨, 조, 고구마, 메주콩, 팥 등은 장마 근방에 심는 게 좋습니다. 일찍 심으면 웃자라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늦게 심는 이런 작물들은 감자나 마늘, 양파, 밀, 보리 등을 6월 중에 수확해 그 자리에 이어심는거지요. 이를 그루작물이라 하는데 앞 작물 수확 후 남는 그루(밑둥)들을 갈아엎어 심는다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앞 그루 갈아엎는 거는 그루갈이라 하지요.
고추나 가지 토마토 등 과채류 모종들은 보통 곡우 지나 심지만 올해는 입하 지나 심는 게 안전합니다. 최저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곡우 근방에 논을 잘 갈아둡니다, 밭은 경칩부터 갈지만 그렇게는 못해도 곡우부터는 갈아둡니다. 보리나 밀과 이모작 하는 논은 갈 수 없겠지요. 곡우 즈음 보리가 이삭 패고 곡우 조금 지나 보리보다 일주일 늦게 이삭 패는 밀을 위해 이삭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이젠 풀들도 억세집니다. 냉이는 벌써 꽃 피고 져서 씨를 맺고 있어요. 날은 아직 춥지만 풀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제 날에 올라와 기세를 부리니, 이래저래 풀을 인간이 이기기는 힘들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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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