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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구례 기사

  • 구례를 걷는다구례를 걷는다
    봉북 샛길 가축병원 자리 골무 사태 들어 대장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봉남리로 나가는 샛길, 벽화 따라 걷는 봉동리 더듬어 주욱 이층집 지나 큰길 건너 읍사무소 자리 역사의 거리 지나 성당을 돌아 봉산 쪽으로 간다. 길을 접어 작은 길을 가니 소식다료. 들어서니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 호지차 한잔 주문하여 홀짝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봉산이 금세 내 안으로 쏟아질 듯 하다. 구수하고 따듯한 호지차처럼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은 샛길 같다. 길 안에서 길을 마시는 차의 여백, 찻잎처럼 떠다니는 여백을 떠다니는 생각에 싸여, 걷는다. 봉북샛길 접어드니 샛길이 나를 기웃대며 녹슨 파란 대문이 꿈속으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건든다. 고양이 두 마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후딱 피한다. 가지 마! 나도 몰래 새 나가는 말이 전봇대 아래 멈추고 야옹, 고양이 눈이 맑다. 개울 따라 접어든 구례 샛길이 살갑다. 지나는 사람은 그림이 되고 십자가 뒤로 장미슈퍼가 미소 짓는 저물녘. 장미슈퍼 와상에 메주와 우유를 내놓았다. 먼 날이 불러오는 풍경 한파가 이어지던 영하 10℃ 냉장고를 나온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던 시간 위로 떠 오르는 얼굴 함께 구례를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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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5-16
  • 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최갑순* 할매 철쭉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뭘 보고 있소 서시내 보요 노고단을 보요 할매 독다리 건너던 독다리 보요 꼭 다문 입술 열고 한 잎 한 잎 띄워 보내요 꽃바람에 맨발로 앉은 보따리 꼭꼭 싸맨 가슴 풀어나 봐요 할매 꽃신 어디 두었소 꽃신 따라 건넌 시간 어디 두었소 꽃 대신 울다 피다 울다 철쭉 또 오거든 함께 걸어요 쑥부쟁이 독다리 건너 건너 광의에 가요 오늘은 서시내 깔따구가 따라와 눈을 뜰 수 없어요 할매 철쭉 빛 스카프 바뀌고 또 바뀌면 어둠 머금고 봄은 언제 올까요 * 구례 평화의 소녀상 서시내 가면, 동광 사거리 지나 당산나무가 있고 서시교까지는 포플러가 즐비한 신작로였다. 고흐 사이프러스 길이 생각나는 포플러 길. 신작로, 말만 들어도 구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시내는 뭇 생명과 함께 흐르는 구례 아이들 놀이터였다. 요즘은 섬진강 다슬기로 유명하지만, 구례말은 데사리나 고동이다. 서시내서 잡은 데사리 한 바구니 데쳐 가족들 함께, 옷핀으로 빼먹던 고동, 모래알 같아 퉤퉤 뱉던 그 초록 알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시내 둑방은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몇 해 전 수해로 둑은 더 높아져 지리산을 막고, 밤이면 가로등 번쩍이는 꽃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둑방 아래 조성된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구례 평화의 소녀상 최갑순 할매가 바위에 앉아 있다. 항상 맨발인 할매. 어릴 적 꽃신 사준다고 해 따라나선 길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그 길 가슴에 싸맨 보따리 하나 두고 앉은 할매. 할매 곁에서, 때로는 지나는 사람이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지리산과 서시내도 계절을 갈아탄다. 오늘 할매 이야기 듣다 어두워지고 밤이 온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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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5-01
  •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지리산人』 편집위원들과 함께 피아골로 들어요, 어릴 적 밟던 산 흙을 밟는 걸음이 무거운 것은 두렵기 때문이죠. 앞서는 걸음이 불확실해 품기만 하던 피아골 품에 들어갑니다. 숨은 항시 따라붙는 것이라 숨결처럼 달라붙는 산에서 나는 작아집니다. 쓰러져 있는 신갈나무가 병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우리는 매장에 관해 말합니다. 수목장이 좋을 것 같아요. 조장이 괜찮겠어요. 얼른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품고 기다립니다. 화장, 화장은 한 생애를 태우는 고통이지요.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앞서가는 선재님이 진달래 꽃잎을 따 먹습니다. 꽃 맛은… 진달래가 떨고 있어요. 뒤따르던 지리산도 진달래 몇 잎 따서 먹었답니다. 상추처럼 시원하고 신선한 첫맛? 바람은 듣지 못하여서 흔들거려요. 쓰러진 나무 아래 겹겹이 쌓인 낙엽 위로 이끼긴 바위 아래 돌계단이 휘청합니다. 산에서 산을 꼭 잡고 서요. 입 마른 산수국 꽃잎이 툭툭 말을 겁니다. 시는 산수국 꽃잎처럼 오가며 말을 겁니다. 지리산에 묻어둔 기억은 표고막터 거쳐 그리던 삼홍소에 빠진 산 그림자 한번 보려는데 봄이라고 부슬, 봄이라고 부슬, 비가 내려 쌉니다. 삵의 똥은 까맣게 삵의 흔적을 말합니다. 가던 길 멈추고 힘들다는데, 말하지 않아도 오르막은 힘든 법이랍니다. 진달래 숨결은 보드라운데, 산바람 할퀴고 피는 진달래라고 씁니다.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사방이 지리산이라 나는 피아골 대피소로 피해 숨을 돌립니다. 피아골을 들이마십니다. 비로소 산에 있어요. 멀리서 그리던 산에 왔어요. 하여 넘어져도 가고 넘어져도 산인 지리산에서 오던 길 다시 돌아 산을 또 내려갑니다. 그렇게 『지리산人』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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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4-11
  • 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지천에 꽃들로 어지러운 봄, 꽃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란 후리지아는 폐쇄 병동에서 근무할 때, 생각에 빠져 있던 한 여인의 얼굴, 후리지아는 그녀의 앙다문 입술, 콧방울 따라 고통이 배어나던 눈빛. 그 눈빛은 툭 하면 터질 듯한 아우성, 아니 텅 비어버린 마음, 그녀와 함께 햇빛 내린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만 아는 동굴에서 그녀가 한숨을 쉬면 후리지아가 노랗게 피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목적 없는 배회를 했다. 누가 목적 없는 배회라 했나? 후리지아가 해마다 목적 없이 피어난다고 생각해? 아니, 그 아픔을 가슴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땅속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려고. 문득 생각나는 그녀와 후리지아, 장날 꽃집에서 후리지아를 보았다.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 향이 자꾸 따라왔다. 담장을 넘어 핀 꽃을 보는 일은 특별하다. 구월이면 담 밑에 떨어진 주홍빛 능소화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능소화는 가정간호사 근무 당시 기관절개를 하고 비위관을 통해 밥을 먹던 소녀 같다. 나는 1달에 한 번 능소화 피어있는 집을 방문한다. 안녕, 능소화, 그녀의 목에 걸친 기관 절개관을 교체한 후 가래를 뽑고 비위관을 교체한다. 그리고 능소화에 말을 걸지, 능소화는 누워서 눈으로 답하고 때론 물가래로 말을 걸지. 어쩌면 좋아 퉁퉁 부어버린 물관이 보이는 것 같다. 능소화는 부은 물관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 곁을 견디는 어머니가 있고 함께 견디는 아버지가 있다. 그 그늘에서 저절로 뿜는 물가래를 닦는 손길이 노련해서 마음이 아팠다. 소녀는 외출이 필요할 때 그 시간은 병원으로 옮긴다. 수술실로 옮긴다. 퉁퉁 부어오른 능소화 꽃잎. 나는 오므리고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능소화의 시간에 잠겨 있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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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4-01
  • 고맙습니다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고맙습니다 요양병원에는 조그맣고 예쁜 할매들이 많다. 아름다움이 있다면 나이 들어가는 얼굴이 뿜는 아름다움을 능가할 게 없지 않을까?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릴 적 본 상할매와 닮은 할매를 만났다. 그 할매는 식사를 잘하다가 죽이 입안으로 잘 넘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죽을 받아먹다가 자꾸 기침한다. 넘김이 시원하지가 않다. 천천히 조금씩 삼킴을 확인하고 식사 수발을 한다. 할매는 죽을 잘 삼키지 못해도 식사를 하고 싶어 한다. 비위관 삽입은 원하지 않는다. 죽을 주다가 미음을 주다가 삼킴을 확인하고 수저를 놓을라치면 손을 꼭 잡는다. 더 먹고 싶어 하는 할매의 마음을 알기에 더 천천히 조금씩 죽을 넣어드린다. 그녀의 입 모양을 보며 꿀떡! 한다. 우리는 꿀떡을 함께 삼킨다. “잘 넘어갔어요?” 사레들지 않게 느리게 가는 시간, 살기 위해 애써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다. 오늘은 할매가 미음을 잘 삼키지 않는다. 할매 기운이 떨어진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 튜브를 통해 산소를 주입한다. 미음이 입 밖으로 흘러내린다. 반의반도 못 넘긴 미음 그릇, 수저를 내려놓고 그대로 둔다. 다시 넘김을 시도하려고 놓아둔 미음이 식어만 간다. 요양병원은 어느 날이 자주 요동친다. 어느 날 그녀는 입으로 미음을 받아먹을 힘이 없다. 수액으로 버티고 흡입할 산소의 양은 늘어만 간다. 출근하면 나는 할매 옆에 달린 모니터의 산소포화도와 심장 그래프와 혈압을 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매가 혈압을 재고 있는 내 얼굴을 만진다. 그녀의 손길이 얼굴에 닿는 순간, 그렇게 내 볼을 만지는 그녀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멎을 것 같은 그 말. 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평소 말이 없던 할매는 하필 그때 그 말을 해야 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 후로 할매를 닮은 자녀들이 병원을 자주 방문하였다. 올봄, 잊고 살았던 그 말이 봄 찾아오듯 살아난다. 요양병원은 아다지오가 흐르는 공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클라리넷, 모차르트의 클라리넷으로 아다지오가 흐르듯 삶이 고요히 흘러가는 곳이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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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3-01
  • 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계단을 오르는 일은 숨이 차지만 회전계단을 오르는 일은 보이지 않은 뒤를 돌아보게 한다. 한 발 한 발 발자국 위로 들리는 숨소리가 계단을 오른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요양보호사교육원 강의실. 수강생 나이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수강생들은 나를 강사님이라 부르고 나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제일 뒤에 앉은 여인은 수업 시간 내내 나만 보고 있다. 부인과 함께 앉은 70대 수강생은 수업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쉬는 시간에 찾아와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들 수강생은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갑장이라 나란히 앉은 사람들, 수강생의 시험을 책임지겠다는 반장. 지병을 상담하는 여인, 멀리 옥과서 온 고운 할미는 자작시를 들려준다. 학원 원장은 70대 수강생들이 요양보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그들 마음을 담아 그들 앞에 선다. 어쩌면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리라. 강의실 한편 인체 크기의 실습용 마네킹이 누워 있다. 사람이 누워 있는 줄 알았다며 무섭다는 사람들에게 인체모형임을 설명한다. 우리 몸 안의 심장을, 양쪽 폐와 여러 장기를 보며 신기해하는 눈빛들. 그들에게 임상 사례 하나하나 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나를 거쳐 간 숱한 날들이 찾아와 강의실에 앉아 있다. 요양병원 중환자실 창가에 누워 있던 할미가 있었다. 직사각형 침대 안에 누워 눈으로 웃고 눈으로 말하던 그녀는 천사의 날개를 하고 차창에 드는 햇빛으로 와 그 겨울을 듣고 있을 것이다. 미음 한 그릇 느리게 한 수저 한 수저 넘기던 그녀가 밥인 양 하얀 휴지를 입안에 넣고 하얗게 풀어지던 날이 있었다. 입 모양 보며 저녁 별이 희미한 창가에서 “하늘 좀 봐요” 해놓고 미안해지던 날이 있었는데 작은 체구로 웃어주던 그녀의 나지막한 말이 어느 날 들릴락 말락 귀 대고 듣던 그 말이 크게 들려왔다. 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느티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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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2-15
  • 토요일은 슈케트에 에로스를 마셔요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토요일은 슈케트에 에로스를 마셔요 프랑스 정통 디저트 전문점 <구례 메종타르트31> 봉주르! 여기 들어서면 종이 울려, 종이 울리면 새들이 타르트 위로 구른다. 처음 여기 올 때 꽃비내리던 정오였어. 점심시간 도망치듯 나와 들어간 곳. 카푸치노 한잔에 타르트의 맛이 우울한 기분을 삼켜버릴 듯했어. 여기 들어서면 귀에 익은 봉주르, 내 뒤로 들려오는 소리. 들어서는 사람마다 시옷으로 말하는 새 같아. 뭐지? s로 시작하는 sh? 쉬민케는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인데, 사람마다 약속한 듯 암호처럼 슈케트. 그 정체 모를 슈케트가 하오를 흘러 다녔다. 내 귀에 붙은 소리, 나는 그 어감을 사랑해. 에코처럼 퍼지는 에로스가 겹친다, 오늘 토요일이야, 전화를 받고 나는 부리나케 메종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수요일. 레몬 타르트에 눈이 간다. 지금은 딸기가 당기는 겨울이야. 오우! 혀를 적시며 촉촉하게 찾아오는 너는 뭐지? 처음 만난 비숍의 시처럼 깊은 곳에서 슬며시 오는 너는? 슈케트에 톡톡 눈이 내린다. 톡톡 그 욕망의 알갱이가 울퉁불퉁 너를 휘감는 상처마저 아, 어지러운 달콤인 것을 마샬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 에로스를 마셔요 파울 첼란을 필사하다, 잠에 미끄러질 것 같아. 내 혀가 범접하기 어려운 너를 맛본다. 에로스, 홍차에 빠진 에로스, 입안에 퍼지는 향의 기분, 메종에 흐르는 성악곡은 누군가 배신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같다. 노고단과 왕시루봉이 보이는 곳에 앉은 <메종타르트31>가 온 이유 오일시장을 지나 알록달록한 벽화가 생소한 골목에 다다르면 예쁜 집 <메종타르트31> 프랑스 정통 디저트 전문점이 자리하고 있다. 나의 시선은 파티쉐로 향한다. 그녀를 글로 쓰기를 청한다. 백석과 윤동주, 정호승의 시를 사랑하는 파티쉐. 평생 정호승의 수선화를 품고 살았다는 사람, 시 ‘수선화에게’를 잃을까 두려워 시인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노고단 능선을, 왕시루봉을 바라보며 새처럼 노래하는 사람을 듣고 있다. 구례에서 태어나 구례를 떠났다 다시 구례 오니 참 좋다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구례의 골목을 더듬는다. 동질의 향수 같은 것이 묻어난다. 프랑스에서 25년을 살아온 그녀는 2019년 코로나 시기에 귀향했다. 파리에서 성악을 전공하여 최고 연주자과정을 마쳤으며, 마카롱과 슈케트를 좋아해서 입학한 파리 르 꼬르동 불루 출신 쉐프이다. 외국 여행을 하면 남의 눈치 안 보듯 고향 구례에 오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타국에서 살다 온 그녀에게 간혹 구례가 생소해 어디를 가나 외국인 같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파리는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한, 과거 페이지를 넘겼으니 지금은 현재를 살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거라고……고향은 그래서 고향이고 긴장을 늦추고 돌아갈 가깝고도 먼 곳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맛과 음악이 흐르는 공간 여기 그녀의 노래로 빚은 정통 수제 디저트 한 모금이 형용할 수 없는 미각을 불러오며 아스라이 사라져간 그 무엇이 열리는 듯하다. 계속해서 낫 킹 콜의 ‘아! 너무 아름다운 초록 눈’이 흐른다. 처음에는 직업으로 하지 않고 마카롱으로 유명한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e)에서 인턴을 하고 조카에게 마카롱을 만들어준 것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아이에게 먹이는 심정으로, 최고급 재료로 손이 부끄럽지 않게 디저트 작업을 했다. 그래서 메종을 찾는 사람들이 정통 수제 디저트에 진심인 특별한 파티쉐가 만든 타르트 맛을 잊지 못한다. 다시 방문한 여행자의 타르트 사랑에 대해 들어보자. “유럽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긋함과 고급스러움이 있고, 달지 않고 건강한 맛,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조화로워요.” “타르트가 너무 예쁘고 맛있어요.” 여기 더해지는 여유가 있다. 여행자들이 머물며 나누는 대화와 침묵이 음악 속을 유영한다. 글을 쓰다 보니 에펠탑에 두고 온, 센강을 바라보며 마카롱을 즐기던 여행자의 시간이 아련하다. 이곳은 떠남을 불러들이는 묘한 끌림이 있다. 행복하고 싶을 때 떠오르는 집 “혼자 방문한 여자 손님이 생일이라 해 축하 노래를 불러줬더니 행복해하던 적이 있어요. 하루는 짬뽕을 먹으러 가자는 엄마에게 공주 옷이 어울리는 메종타르트31 가서 차를 마시자고 해 온 예쁜 드레스 입은 여자아이가 핫초코를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같이 행복해졌어요.” “여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해요. 짐이 가벼워지고, 하나쯤 품고 있을 아픔이 짠해 보여요. 짠해서 그 마음을 안아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녀의 슈케트*가 유난히 혀에 감기며 포근하게 입안을 감싸고 도는지 모르겠다. “이곳은 행복하고 싶을 때 떠오르는 집, 생각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봄 햇살처럼 따듯한 집, 햇살이 터지듯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었으면, 방문 리뷰를 보면 드리고 싶은 마음을 받아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음악으로 카미유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에 나오는 ‘카스타 디바’를 꼽는다.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김수영과 보르헤스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구례에 있어 좋다. 이곳 메종타르트31이 디저트와 차 뿐만 아니라 오페라를 통한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저기 지리산이 보고 있다. 오늘따라 지리산 능선이 포근하게 감싸온다. 하물며 문을 열고 나가면 추억어린 서시내가 흐르고……그 아래 카미유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에 나오는 ‘당신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 있다. * 슈케트 : 프랑스에서 오래 전부터 먹었던 국민 간식으로 설탕을 뿌린 속이 비어 있는 작은 빵 4pm이 되면 프랑스 사람들이 슈케트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로 즐겨 먹는다고 한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두 번째 사진은 이촉 시인이 찍은 사진이며, 나머지 사진은 메종타르트31의 사진입니다. * 이 글은 가게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쓴 글입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1-19
  • [활동가들의 새해편지] 1. 구례 : 나를 돌아보게 하신 지리산이여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지리산人』 독자들께 특별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저 날짜 하나 지나가는 것뿐이지만, 우리에겐 흩어지지 않을 희망과 용기가 계속 필요하니까요. 지리산 자락 다섯 개 지역에서 난개발을 막으려고 애써 온 현장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에서 무겁지만 가볍게, 가볍지만 무겁게, 길을 내 온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 주세요.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새해 복은 넉넉히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지리산人』 드림 [활동가들의 새해편지] 1.구례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 지리산이여 지리산이 드리우고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이곳이 지리산 자락의 사포마을입니다. 사포마을의 주된 작물은 다랑논에서 지은 쌀과 한약재의 원료인 산수유입니다. 자연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 이곳에서 골프장과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며 외치는 지자체와 일자리에 목마른 주민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골프장과 케이블카는 우리의 대안이 아니라고 여기던 저는 주민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틀렸다고, 그들의 생각을 고쳐야만 한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골프장 문제가 누그러든 지금, 이제 와 지난 내 모습을 돌아보면 낯이 뜨거워 고개를 들기가 어렵습니다. 마을 분들과 마주할 땐 겸연쩍습니다. 마을을 뜨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하면서 힘이 되던 시민 활동가들이 있는데 마을이 안정되었다고 나의 안주를 위해 이들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산에 나무가 베어져 황토색으로 물들 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윤주옥이 있었고, 골프장 예정 부지인 지리산 자락을 수없이 누볐던 지리산사람들! 우리 곁에 늘 있었지만,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지리산 그리고 그 사람들! 난개발 문제에 부딪히고서야 알았습니다. 늘 있어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큰 덩치의 지리산도 작디작은 우리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산이 산처럼 있어 줘야 인간은 숨을 쉽니다. 강물은 막힘없이 흘러야 우리 몸도 순환합니다. 산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물질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는 길 아닐까요. 글쓴이 : 전경숙 구례 산동면 사포마을 주민,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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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1-01
  • 감천마을 숨은 멋쟁이 구례 '용방면 농악단' 김기춘 고문님을 찾아
    감천마을 숨은 멋쟁이 구례 <용방면 농악단> 김기춘 고문님을 찾아 농악은 전통 민속 음악으로, 농사 관련 의식에서 유래하여 마을 공동체의 결속과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 문화유산이다. 구례 농악은 섬진강을 중심으로 왼편인 임실, 순창, 남원 등과 함께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매년 곡우가 되면 구례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리산 남악제를 지낸 후 각 면 단위별 농악단 공연으로 화합과 축제의 장을 펼친다. 용방면 농악단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다섯 가지 악기로 이루어진 농악단이다. 주로 용방면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과 귀향, 귀촌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2시간 동안 강습이 진행된다. 1시간은 신규 회원을 중심으로 기초 강습을 하고 나머지 1시간은 기존 회원과 신규 회원이 하나 되어 선반으로 강습이 진행된다. 현재 농악단 교육은 김종광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다. 김기춘 고문님은 김종광 선생님의 부친으로 용방면 농악단을 만들고 이끈 인물로서 고문의 소임을 맡고 있다. 감천마을에서 태어나 40여 년 전부터 농악을 시작한 그에게 용방면 농악단의 역사를 들어보기로 한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농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시절 농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례 좌도농악회를 결성하였어요.” “그 당시 마을마다 농악이 있었으나 골목 농악이고, 잠자는 농악이었지요.” “그래서 공무원 퇴직 후에는 감천마을을 시작으로 용방면 농악단을 만들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뭣이든 내 것으로 농악 관련 말씀에 이어 판소리와 붓글씨 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한때는 판소리에 빠져, 흥보가를 완창하고 박양덕 명창에게 배워 수궁가를 완창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붓글씨에 미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썼지요. 남이 뭐라 하든 말든 뭣이든 내 것으로 해야 해요.” 감천마을에 흐르던 소리 몸에 돌던 동편제, 수궁가를 청해 듣고 싶다. “가락보를 보면 때려봐야 알아요. 갠지갠지 입으로 외지 않으면 못 외워요, 산토끼 토끼 노래처럼 외우세요. 악기는 채 잡는 것을 익히세요. 채는 지금 안 잡으면 나중에 못 해요. 궁딱딱 궁딱딱 재미있어요. 가락보를 읽어 머릿속에 넣어 입으로 익혀야 해요. ” 금세 고문님이 쇠를 들고 장구를 치고 소고와 함께 어깨춤을 출 듯, 아니 나는 덩덩, 북이라도 치고 싶다. 먼 산을 바라보며 고문님은 어린 시절로 들어간다. “다른 멀메들은 중학교 가는데 나는 나무 지게 짊어지고 나무하러 갔지요. 그때 성중학교나 재건학교만 갔어도 좋았는데…. 낮에는 나무하고 일해야 하니까, 서당에서 6개월 동안 밤으로만 공부했어요. 소학을 읽으며 명심보감을 들으며 외웠어요. 그런 식으로 노력을 하면 돼요.” 고문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구례 농악이 보이고 구례의 소리가, 한 사람이 살아온 여정이, 그 안에 서린 한이 고였다 내린다. 농악의 가락보 마냥 그 지난 시간이 출렁이며 되살아난다. “음악은 따라 놀아야 해요. 영감들이 장구를 무릎에까지 내려서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혀. 농악에서 소고를 치면, 소고를 어떤 방식으로 치고 놀아야 예쁜가를 배워야 하지요. 소고는 너스레가 좋아야 해요. 소고는 너스레를 못 하면 안 돼.” 명언이다. 좌도농악에서 소고 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너스레를 각자 상상해보자. 하루는 회원이 맨 북을 보고 “줄이 되! 줄이 되!” 되다는 말은 구례 말로 짧아 당긴다는 뜻이다. 북을 어떻게 매는지 줄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자상한 모습으로 북을 고쳐 매 주시던 고문님, 북을 허리에 돌려 매서 넉넉하게 하고 나니 북 치기가 훨씬 수월했던 적이 있다. “우도농악은 보여주는 농악, 무대 농악이에요. 반면 좌도농악은 듣는 농악이고, 몸을 놀리면서 배우고, 박자를 맞추고, 박을 찍고, 돌고 멋있게 춤추면서 천천히 내 것을 만들어서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오세요. 농악 하러 오세요.” 그 말씀이 꽹과리 여운처럼 남는다. 고단함과 시름 잊게 하던 농악, 그 맥 이어가길 바라며 고문님은 아드님을 농악단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아드님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기 전 즈음 3일 저녁을 따라다니더니 3일 만에 어지간한 가락은 다 쳐버릴 정도로 잘했다고 넌지시 아드님 자랑을 한다. “아버님이나 저에게 농악은, 고단하고 힘든 일상 속에서 농악을 통해 심적 위안과 활력을 주는 원동력 같은 것입니다. 아버님이 연로하시면서 저에게 용방면 농악단 강습을 부탁하여 어느덧 15년 세월이 흘렀어요. 용방면 농악단은 3년 전부터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라고 김종광 선생님은 농악하는 이유를 들려준다. 용방면 농악단은 새해 첫날, 산성봉에서 해맞이를 시작으로 정월대보름이면 죽정마을에서 달집태우기를 하고 초여름이면 통일벼 심기 행사에 참여하여 농악으로 풍년을 기원한다. 매년 8월에는 쑥골 계곡에 모여 피서 겸 단합대회로 잔치를 벌이고 지역사회 인사들과 소통의 장을 갖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통일벼 베기 및 각종 마을 축제는 물론 군 내 행사에 공연함으로써 마을 사람들과 하나 되어 농악을 즐긴다. 농악단 회원들은 모이면 다 동네 언니, 오빠, 누님이 되어 금세 가족처럼 어울린다. 김종광 선생님은 북과 장구, 소고, 꽹과리, 징을 가르칠 때면 엄한 스승이 된다. 설명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회원들 보는 선생님 삼정은 오죽할까. 일하다 와서 든 장구와 북이 제대로 쳐지지 않아 한바탕 웃고 또 웃는 사이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게 농악의 매력이다. 박현아 씨는 농악단 회원이자 김종광 선생님의 배우자다. 대학에서 풍물패 선후배로 만나 꽹과리를 가르치고 배웠다고 한다. 그 시절 꽹과리 가락을 못 외우면 꽹과리 대신 머리에 가락을 칠 정도로 엄하게 가르쳤다며 후일담을 들려준다. 그 후일담을 듣던 김기춘 고문님은 애정이 없으면 지적도 하지 않는다며 웃으신다. 농악단 단장은 고문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창이 서울에서 귀향하자, “어이, 나 따라다니세. 장구 치러 와!” 이렇게 농악단에 합류하여 지금껏 장구를 치고 있는 최성옥 단장님의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다. 김종광 선생님은 농악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농악을 남에게 보여주기식이 아닌 잘하든 못하든 회원 스스로가 흥을 느끼고 농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농악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농악단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가고, 젊은 회원들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요.” 라고 전한다. 2대에 걸쳐 제자 육성에 힘쓰는 김기춘 고문님, 김종광 선생님 부자의 농악단이 오래오래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화요일 오후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용방면사무소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들리는 농악 소리를 그 앞에 서 있는 500년 수령 버드나무는 고요히 듣고 있다. 아니, 어쩌면 버드나무 소리로 축원하고 있지 않을까? 덩 더 궁따따궁따따궁 따 덩 더 궁따따궁따따궁 따 덩 덩 더덩 덩 글쓴이 : 이촉 이촉 시인은 구례에 거주하며,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5-12-18
  • 구례의 풍류와 멋을 찾아, 시조창의 맥을 잇는 사람들
    구례의 풍류와 멋을 찾아, 시조창의 맥을 잇는 사람들 구례 동편제전수관, 시우회관에서 완제 팔만대장경이 울려 퍼진다. 계절마다 흘리는 꽃 향이 바람에 실려 머물다간 자리, 유독 금목서 향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목청. 그 자리에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넓은 마루 지나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른들께 절하고 마주하는 자리는 마치 시조창이라는 음악에 예를 올리는 의식처럼 온몸에 스며든다. 이제 시조창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몸속 세포들이 깨어나는 시간 속으로. 이종춘 회장님이 동그란 피치를 불고, 양문석 고문님이 집고를, 곁에서 방부승 부회장님과 신현숙 사무국장님의 장단과 함께 시우회 회원들 사설시조가 시작된다. 여래~~ 보사~~~~~ㄹ지자~~~ㅇ보사~~~~~ㄹ 관세~~~ㅇ~~~~~~ㅁ보사~~ㄹ 나~~~~~무우우우아미~~타~~~~~~~~아아부--------~~ㄹ “계단을 잘 밟고 올라가” “예쁘게 쓰다듬어 갖고” 시조창 배우는 자리에 스승과 제자 사이 오가는 말. 살아나는 입말은 구수하기 그지없다. 푹 빠지는 말맛에 어우러지는 선율이라니. 세월의 굴곡이 저절로 굴러떨어져 물방울처럼 구르는 듯, 내 몸이 함께 액체화되는 기분. 아마 옛사람들도 그랬을까, 시조창은 알 것 같으면서 잘 잡히지 않은 분야였다. 시조창은 조선 후기의 가객 이세춘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시조창은 리듬과 선율이 전하는 감동이 크다. 시조는 평시조, 사설시조는 물론, 남창질음, 여창질음, 엮음질음, 우조질음, 중허리시조 등 다양하다.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음계는 황종, 중려, 임종의 3음의 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계면조와 질음시조는 평시조의 구성음을 중추로 하되 임종, 청황종, 청태주, 청중려 등 4음을 변조시켜 음역대를 넓히고 있다. 다양한 음계와 고저장단과 장구 장단, 단모음과 중모음 변화, 부호 등 생소한 음의 세계는 안개 속에 묻혀 있는 듯 깊기만 하다. 시조창은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 전승되고 있으며, 사라져 가는 시조창의 맥을 잇기 위해 전국적으로 경연대회와 강습회가 열리고 있다. 시조창의 선율이 구례 어른들의 목청에서 가르침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귀하고 소중한 자리는 3일, 8일 구례 오일장이면 어김없이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글로 남겨야 하는 필자는 시간이 서서히 흘러 이분들의 소리와 열정이 구례에 오래 넘쳐흐르기를 바란다. 파리 몽마르뜨언덕에서 한산섬 버스킹을 꿈꾸는 신현숙 사무국장님은 시조창의 좋은 점을 묻자 “우선 단전호흡이 저절로 되어 마음 안정과 심폐기능의 향상으로 건강에 도움이 돼요.”라고 답한다. “시조창은 선비의 전유물이 아니라 선비문화를 흠모하고 지향하는 일반 백성들의 대중문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판소리나 민요와 비교해 채록되어 남아있는 시조창이 월등히 많고 작자층이 광범위하거든요. 이런 시조창이 이어지도록 살려놓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겠지요.” “특히 구례 시우회 어르신들이 점잖고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이 편해요” 그렇다. 고문님은 마치 교장 선생님 같고 회장님은 아버지 같다면 부회장님은 조용히 곁에서 경청한다. 고문님은 장단을 맞추다 “소리가 찢어져” 수업 중 참다못해 직접 들려주는 시조창 역시 맛갈지다. 필자도 그렇게 몸 안에서 소리가 여울지다 흐르다 소리를 묶어 애끓는 소리를 낼 수 있다면 하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바로, 아니야, 아니야, 귀명창, 귀명창, 하며 달랜다. 구십을 살은 어른들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냥 나왔을까! 그 매혹적인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는 그 향기에 취할 수 없다. 양문석 고문님은 94세로 환갑 때부터 시조창에 입문했다고 토로한다. “처음에는 광주 시우회 소속으로 배우다가 토지가 중심이 되어 석낙용 선생이 구례 시우회를 만들었어요. 나는 또 이상술, 정경태 선생에게 시조창을 배웠지 하믄, 구례에서는 석낙용 선생에게 시조창을 배우기 시작했어. 한때 문척에서 시조창 붐이 일고 토지 사람들이 시조창을 많이 했어.” 밤에 깨어 잠이 안 오면 속으로 시조를 하다 보면 잠이 든다고 술회한다. 10년 전 시조창 10곡을 모아 CD로 제작하였다며 필자에게 CD 하나를 건네준다. 방부승 부회장님은 90세로 10년 전부터 시조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보통 사람의 목소리보다 음이 4단계 높고 아름답다. “나는 토지 사는 박판규기 권해 시조창을 하게 되었어요. 젊어서 술 한잔 먹거나, 외로울까 싶으면 노래를 불러 안 나올 때까지 소리를 질렀어. 소리가 단전에서 나와. 소리가 길 때 보면 숨을 쉬어야 해, 들이쉬면서 내뿜으면서. 시조창을 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한가로워지지. 노후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하며 소리 없이 웃는다. 시우회 어른들은 또한 구례 유림이다. 유림회관에서 시조창을 권하자 즉석에서 고문님은 책 두 권위로 손장단을 맞추고 부회장님의 남창 질음이 시작된다. “푸른 산중 백발 옹이 고요 옥좌 향남봉 이로다.” 고음 따라 깊은 산중 신비로운 세계로 끌려간다. 올해 92세인 이종춘 회장님은 스무 살 때부터 시조창을 시작하여 70여 년을 시조창과 함께 살아온 산 증인이다. 아들이 언제까지 시우회 회장은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더 많은 젊은이가 시조창을 배우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구례 시우회 미래에 걱정이 많다. 하지만 시조창에 대한 열정은 청년처럼 넘쳐흐른다. 제자들의 경창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명인, 대상부 장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세심한 격려와 가르침, 끈끈한 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시 선율보 앞에 모여 앉은 수업 시간, 이종춘 회장님이 악보를 짚어가며 회원의 시조창 듣는 모습을 대하니, 시대를 거슬러 그림 속 정자에 앉아 나도 몰래 몸에서 음이 새어 나온다. 그사이 출현하는 사잇말은 해학과 리듬으로 물결친다. 구례 말이 살아 숨 쉬는 현장. 그 주인공은 당연, 회장님이다. 삼각형을 안 하고 지나 가부네 나비야 아흐 ~~~안되었어 아흐흐흐 이제 되었어 이게 속청이 제일 많아 아니 이이이라 엮음질음은 흥이 나고 필자도 흥이 나고 임실 시조창 경연대회 나갈 사람이 목청이 붉어지고 굵어지고 이제 청을 내고 삼각형을 잡아 돌려 리을을 팍 집어 돌려봐 봐 소리를 삼각형으로 불러야 하는데 매끄럽게 되지 않아 또 하고 또 하기를 반복한다. 삼각형이라니? 어떻게 목소리를 삼각형 도형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듣고 듣다 보니 알 것 같은데, 목이 말을 듣지 않아서지 그 삼각형의 소리가 제대로 나면 리듬이 꺾이고 살아난다. 한 고개 넘고 나면 소리가 또 다른 스승의 귀에 차지 않는다 너무 빨라 느긋하게 해야지 너무 빨라 그거 아니야 속청이 나와야지 왜 겉 소리가 나와 그렇제 사아아아아 빠그러졌다고, 아이가,(절레절레) 사~~~이가 안 되어 아이가, 참 장구 박을 맞추는 구순의 세월은 흥이 나고 여러 시조창을 듣고 있자니 내 목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갖은 속청 내기의 유려함이라니 온몸으로 울고 있는 소리 새의 울림이 대금연주와 함께 흐르고 있다. 온몸이 내는 옛 선비의 세계가 아직도 울려 퍼진다. 우리의 소리가 깊은 연륜의 속청 길이와 길이의 고저가 흘러가는 시간이 또 시간을 흐르게 한다. 풀어내고 풀어지는 소리 함양 대상부 대회를 앞두고 수업 시간은 긴장이 감돈다. 야물딱지게 돌려서 질음이 안 나오니까 내가 거기 봉착해있는 거야 엮음질음 할 때 내가 들어본 께 옳게 한가 말을 해봐, 무역이여 우조질음은 동유~~~ 유로다 더 올라야 해 삼각형을 잡아 돌려 리을을 팍 집어넣어봐봐 한 박을 안 했어! 다시 해봐 황학이~~ 이이이 맞아 그러케 웃삼각형! 굳어서 안 되어 못 고쳐 다시 하고 그때 가서,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애끓는 소리에 애가 타는데 구순의 어른은 웃기만 한다 딴소리가 나부러 이히이 웃삼각형을 좀 천천히 해야 돼 (소리 없이 몸을 흔들고 눈을 감고) 도둑 숨 쉬고 떨고 술을 안 주니 맥히고 그러네 술을 안 먹어도 취하고 그래 석인이~~~~~~~~~~ 음이 좀 다른 음이 나오드라 다시 한번 해볼게요 제발 좀 해! 돈 주란 소리 안 할 테니 목을 갈아야 해 필자는 입을 떼지 못해도, 우조질음도 엮음질음도 따라 한다. 새가 천상으로 오르는 듯, 날던 새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제 시조창의 풍류에, 구례를 지나간 이순신 장군의 수루에 앉아 장군처럼 그렇게 한산섬을 읊어보기를 권하면서, 용호정 시계, 축하 공연에서 연주한 “한산섬”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글쓴이 : 이촉 이촉 시인은 구례에 거주하며,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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