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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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를 시작하며
    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를 시작하며 윤주옥 2023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화엄사성보박물관,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는 ‘지리산 사찰 문화유산 기록사업단(기록사업단)’을 구성하고 문헌조사와 현지답사, 면담을 통한 채록 등을 진행하여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을 발간하였습니다. 사찰과 사찰, 사찰과 암자, 암자와 암자를 이어주던 옛길은 수행자의 순례길이기도 하고, 궁박한 산골 주민들의 생활길이기도 하며, 한국전쟁 당시 산사람들의 생사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길들은 끊어져 산에 사는 동물 발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암자터와 함께 옛길에 대한 답사와 기록이 필요하고, 사찰과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 사찰과 관계 맺고 살아온 지역민의 면담을 통해 잊힌 암자와 옛길, 현존하는 암자와 길들에 대한 기억을 채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사찰과 암자, 옛길 주변의 식생(植生)을 조사하고, 지리산 숲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은 산길을 오르고, 기와와 자기 파편을 한 조각이라도 더 찾으려는 기록사업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님과 주민을 만나기 위해 암자를 오르고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사진과 영상 작업을 마다하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록사업단은 산동에서 천은사, 천은사에서 화엄사, 화엄사에서 문수암, 문수암에서 연곡사 등으로 가는 옛길을 답사하고 기록했으며,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영역 등 구례지역 암자터 26곳을 답사하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화엄사 등에서 수행하는 스님 7명, 사찰 거주인 1명, 구례 주민 3명 등 11명으로부터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모습, 화엄사와 천은사 산내 암자, 암자터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기획연재를 시작하는 《기억 속 사찰》은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중 일부입니다. 《기억 속 사찰》은 켜켜이 쌓아둔 기억들, 장엄한 역사문화유산, 크고 작은 절에서 보고 들은 바, 큰 절과 아랫마을 사람들 등으로 나눠 연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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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0
  • 산청 남사예담촌의 봄
    산청 남사예담촌의 봄 이호신 작 (한지에 수묵과 채색, 69x275cm, 2025년) 1-2산청 남사예담촌의 봄(부분도1) 1-2산청 남사예담촌의 봄(부분도2) 나와 남사예담촌의 인연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문화유산답사회원으로 마을을 만났고 하씨 고가의 700살 ‘원정매(元正梅)’를 알게 되었으며 산청 3매(원정매, 정당매, 남명매)를 그리러 자주 마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8년 마을 전경을 그려 발표하였고 그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산청 니구산 남사마을> 200호, 167x270cm) 남사예담촌과의 인연이 성숙되어 201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촌한 이듬해에 남사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2011년)되었다. 이에 마을 홍보를 위한 화문집 『남사예담촌』의 마을 전경을 새로운 각도(마을 벌판에서 니구산을 바라보는 시선)로 그린 것이 <남사예담촌의 가을> 200호, 170x271cm, 2011년)이다. 이어 3년 후 <남사마을의 겨울 밤>(60x94cm, 2014년)도 그리게 되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마을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덧 귀촌한 지 만 15년 차로 그동안 염두에 두었던 마을 신작에 골몰했다. 마침 산청군에서 금년 (2025년)을 ‘산청 방문의 해’로 선정하였기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의 면모를 화폭에 담아 선양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마을 전경을 위해 이번에는 두루마리 형식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수차례 현장을 답사하고 밑그림을 그리며 마을 주민들의 조언을 들었다. 사계절 중 봄의 생태로 남사 8매와 문화유산인 고택을 중시하며 함께 사는 마을로 그리려 했다. 현대문명 생활로 자동차, 농기계와 주민, 그리고 관광객들도 넣어 생활산수가 되게 하였다. 마을 전경 화면은 지리산 웅석봉의 산맥을 뻗어 내린 니구산 정상에서 본 마을을 중심으로 설정했다. 원경의 산 물결인 망해봉, 집현산, 광제산 위로 떠 오른 해를 넣어 마을의 생동감과 새날의 희망을 염원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남사천은 마치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의 풍광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 그림을 통해 마을의 홍보는 물론 앞으로 새로 건축하거나 정비할 사항은 심사숙고하여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지향적 개발을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 당국과 마을 주민의 숙의를 통해 아름다운 마을의 명예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 따라서 현재(2025년) 마을의 현황을 남사천을 중심으로 <남사지역> <상사지역>으로 나뉘어 기록해 둔다. <남사지역> 남사마을 옛 담장 (국가등록문화재 제281호), 이씨고가, 정씨고가(사양정사), 최씨고가, 하씨고가, 영모재, 사효재, 경화당(마을회관), 남학재(사무실), 노인회관 정자: 남사정, 남학정, 여사정, 포구정 숙소: 예담한옥, 예다움, 옛향토집, 사양정사, 스테이예담, 다온한옥, 식당: 예담원, 예담촌참살이, 예담촌흑돼지, 왕콩나물요리집, 남사별곡 카페: 지금이꽃자리, 순이진이갤러리, 예담방아로빈, 소락방커피숍, 커피엔더블 주요식물: 이씨고가 부부회화나무, 삼신할머니회화나무, 최씨고가 회화나무, 원정매, 정씨매, 최씨매, 이씨매, 경무매, 경무송, 사효재 향나무와 은행나무, 하씨고가 감나무, 정씨고가의 단풍나무 기타: 제1주차장, 제2주차장, 제3주차장, 당산과 제례석, 마을연혁비, 물레방아, 효자정려비각, 삼백헌과 북바위, 이제개국공신교서비, 오늘화실, 예담족욕, 원정공유허비, 남사방앗간, 남사교회, 봉양사(진주강씨 재실) <상사지역> 니구산, 니구산성, 니구산전망대, 장수황씨 묘, 사상정, 망추정, 마을회관, 기산재, 기산국악당, 그네와 정자, 니사재(박씨재실), 채남정, 내현재, 소리재, 남사재와 예담재(한옥펜션), 면우 곽종석 생가와 파리장서탑, 초포정사, 이동서당, 유림독립운동기념관, 주요식물: 기산매, 면우매, 박씨매, 기산송, 니사재 목백일홍, 채남정 팽나무 세 그루, 초포정사 골목의 산수유 고목과 감나무, 내현재 길목 멀구슬나무, 상사마을회관 앞 자목련 남사천 주변: 남사와 상사마을을 잇는 두 다리, 강변 데크둘레길, 강을 건너는 징검돌 두 곳, 용소바위, 자라바위, 남사천 주변의 조류: 제비, 참새, 까치, 산까치, 물까치, 후투티, 백로, 흰뺨검둥오리, 비오리, 원앙, 왜가리, 가마우지 등 1-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 1-1 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부분도1) 1-2 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부분도2) 2-. 산청 니구산 남사마을 2005 3-남사예담촌의 가을 4-남사예담촌의 밤 60x94cm 2014년-97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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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09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5] 윤작과 혼작
    윤작과 혼작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흙에서 살며 흙을 살리고 내가 사는 제일 중요한 방법은 흙에서 먹을거리를 얻는 일이라 봅니다. 그게 흙과 소통하는 일이에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흙과 소통하는 방법으로는 경작과 채집이 있어요, 이 둘 다를 농사라 할 수도 있고 경작만 농사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론 경작만 농사일 수 있지만 우리 전통 문화에선 채집도 농사의 한 부분이었지요. 아무튼 이번 글에선 흙에서 살며 흙과 소통하는 것으로 경작과 채집을 얘기하려 하구요, 경작에선 먼저 윤작과 혼작을 살펴봅니다. 얘기에 앞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우리나라의 미개한 농법을 계몽한다는 미명으로 권업모범장이라는 기관을 만들어 자기들 농학자들을 파견했습니다. 권업모범장은 지금의 농촌진흥청 전신입니다. 그래서 농진청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농진청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정조대왕이 천도 목적으로 수원 화성을 지으며 관개용수로 서호라는 저수지를 만든 주변 농경지 일대에요. 그러니까 농진청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정조대왕이 나오니 권업모범장만 떠올릴 일은 아니죠. 아무튼 권업모범장을 통해 일본의 실력있는 농학자들이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농업을 식민정책에 맞게 식량 공출기지로 바꿔 나가려 했을 때 들어온 사람 중에 다카하시 노보루(高橋 昇)라는 농학박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좀 남달랐습니다. 조선 농법을 살펴보니 들은 바와 달리 미개한 농법이 아니라 일본 이상 가는 지혜로운 농법이라는 걸 간파한 겁니다. 그 중에 이 사람이 크게 평가한 것은 2년3작이라는 윤작법이었습니다. 조선 농부들은 2년에 두 번 농사짓는 게 아니라 세 번 지었다는 얘깁니다. 두 번 해 먹을 걸 세 번 지어먹는다고 토양이 고갈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만년 같은 자리에서 농사지어도 지력이 고갈되기는커녕 보존을 넘어 더 증진되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른바 녹색혁명, 백색혁명으로 농업을 현대화한다면서 우리 농경지 지력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보리고개를 극복했다지만 땅심은 반토막이 났으니 그게 농업 현대화일까요? * 아무튼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는 사비를 들여 함경북도에서 제주도까지 샅샅이 돌며 조선의 농법과 농민들의 삶을 살펴 본 책을 썼습니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란 책이 그것입니다. 1천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인데 사비를 들여 썼으니 바로 출간을 못하고 죽은 뒤 아들이 유고를 갖고 있다 1983년도에야 민간출판사에서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이 2000년대 들어와 우리에게도 소문이 나면서 복사판 책이 돌았습니다. 해적판이라고 하지요. 그 소식을 들은 다카하시 아들이 꽤나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농진청의 직원 한 분이 그 아들을 찾아가 선친의 유고를 우리 농진청에 기증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무조건 거절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을 겁니다. 자세한 경위는 못 들었지만 결국엔 우리 농진청에 기증하기로 결정했어요. 그걸 끝까지 설득한 농진청 직원이나 결국엔 기증하기로 결정한 아드님이나 모두 대단한 분들이다 했어요. 기증식에 저도 가 보고 유고도 살펴보고 그 아드님과도 인사 나누고 기념촬영도 했는데, 점잖고 온화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다 싶었습니다.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에게 영향 끼친 미국의 유명한 농학박사가 있었습니다. 프랭클린 히람 킹(Franklin Hiram King)이란 분으로 1909년 한 중 일 3국을 1년에 걸쳐 돌면서 이 지역의 농업을 소개한 책을 썼지요. 휴경하지 않고도 같은 땅에서 4천여년 농사지어 왔지만 지력을 고갈시키지 않고 농사지어 온 동양 농부들의 지혜를 현장을 돌며 파악한 책으로 그 중 앞의 다카하시 박사가 본 윤작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윤작 중에도 콩을 중심으로 한 작부체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지요. 거름도 만들어주면서 토양의 물리성도 좋게 해주는 콩을 중심으로 지력을 고갈시키는 작물을 혼작 또는 윤작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지력을 아주 많이 빼먹는 옥수수는 콩 밭 둘레로 심고, 물과 땅심을 엄청 빼먹는 목화는 반드시 옆에 콩을 심는 식입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로 몇 달이나 걸리는 태평양 반대편의 지역을 미국의 농학자는 왜 왔을까요? 거름도 주지않고 목화 담배 같은 지력 수탈작물의 거대한 광작(廣作)으로 토양을 망가뜨리고도 그걸 살리려 노력하기보다 서부의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미국의 농업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였죠. 킹 박사는 윤작 말고도 똥을 비롯한 모든 부산물을 퇴비화하여 땅으로 되돌리는 순환농사, 인위적인 관개시설 없이 천수답 논의 지혜로운 물관리도 소개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미 하버, 보쉬라는 과학자들이 공기 중의 질소를 인위적으로 고정시켜 질소비료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하는 바람에 이들의 아이디어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질소비료 생산은 농 기계화와 함께 단작(單作), 광작(廣作), 연작(連作)을 통한 대량 생산체제를 뒷받침하며 농업의 현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농업의 현대화는 토양의 지력도 함께 증진시켰을까요? 아니죠, 농업의 현대화는 토양의 고갈을 속으론 심화시키면서 그걸 임시로 가렸을뿐입니다. 조상들이 물려 준 지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질소비료가 효과를 본 것인데 그걸 애써 외면하다 지력의 고갈이 한계점에 도달하면 질소비료도 아무 소용 없는 때가 올 것이거든요. 땅심을 지켜주는 윤작, 혼작 인삼과 산삼의 차이를 아시죠? 인삼의 원종이 산삼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게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면 산삼이고 밭에서 인간에 의해 재배되면 인삼인 것이죠. 그런데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인삼은 같은 자리에서 잘 해야 5~6년 자라고 산삼은 같은 자리에서 몇 십년을 살고 더 오래 살면 가치가 더 높아지죠. 말하자면 인삼은 지력 수탈로 연작피해가 생겨 5~6년밖에 키우지 못하지만 산삼은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인삼은 6년간 80g 자라는데 산삼이 그만큼 자라려면 60년 정도 걸린다네요. 이 둘의 차이는 다르게 보면 자연산(야생)과 재배(양식)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산은 크게 자라지 않지만 오래 살 수 있고 재배한 것은 크게 자라지만 오래 살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크게 자란다는 것은 수확량이 많다는 것이고 오래 산다는 것은 같은 토양에서 옮기지 않고 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좀 더 따져볼까요. 사실 수확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토양을 수탈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토양 수탈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당연히 토양이 망가집니다. 토양이 작물 재배에 의해 수탈된다는 의미는 특정 작물에 맞는 토양의 양분이 편중되게 고갈된다는 것입니다. 특정 작물을 재배하여 많은 수확량을 얻으려면 단작(單作)은 필수입니다. 그에 따라 넓은 면적의 재배, 곧 광작(廣作)으로도 이어지고 계속 한 작물을 심는 연작(連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됩니다. 그리고 과도한 비료 투입과 화학자재 및 에너지도 많이 투입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장기간 재배하게 되면 토양은 산성화되기 쉽고 고투입으로 인한 염류집적도 피할 수 없죠. 더 오래되면 농사가 불가능해지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고 이미 그 전에 자연 재난에 의한 토양 유실, 침식으로 더 빠르게 망가질 수도 있어요. 반면 산삼이 크기와 수확량은 적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몇 십년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전혀 토양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수확량이 적다는 것은 토양을 별로 수탈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통합니다. 또 산삼은 군락하지 않죠. 한쪽 구석에 숨어서 몇 포기만 자생하니 찾기 힘든 걸겁니다. 작물로 비유하면 단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주변 여러 풀들과 공생하고 있는 거지요. 작물로 치면 혼작인 셈이에요. 이러니 토양이 수탈되지 않아 앉은 자리에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먹고살아야 할 식량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선 산삼 같이 구하기도 힘들고 양도 적은 것을 토양을 수탈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무조건 환영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선 단작, 광작, 연작 방식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만 그 재배방식을 오래 지속하다 토양이 고갈되 결국 아무 식량도 얻을 수 없게 된다면 다수확 방식이라고 무조건 환영할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 시대에 이런 단작 방식은 특히 취약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먹을 식량도 지속가능하게 얻으면서 토양도 고갈시키지 않는 방식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인삼과 산삼 사이에서 찾으면 됩니다. 넘쳐나도록 잉여식량이 많지는 않지만 굶지는 않을 정도의 식량을 얻으면서 토양은 망가뜨리지 않는 방식이죠.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과감히 윤작과 혼작, 그리고 채집이라고 말합니다. 말이 길어져 이의 자세한 방법에 대해선 다음 글로 미루어야 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통계자료를 보면 1922년경에는 우리 농토의 논토양유기물함량이 4.4%(밭토양3.4%)까지 올라간 때도 있었는데 점점 낮아져 2000년대에 들어와서 2.2%대로 낮아졌다. “친환경농업과 토양유기물 함량”(흙살림연구소: http://www.heuk.or.kr/info/sub1_3.asp?seq=636&boardId=info01_3&page=12&searchField=2&searchValue=&sCategory=&mode=read) ** 2014년에 같은 이름으로 국내 민속원이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였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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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05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4] 오행론으로 본 땅과 흙
    오행론으로 보는 땅과 흙 이야기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토양학을 어깨 넘어로 공부해보니 대부분 서양의 학문이라는 걸 알고 은근히 아쉬웠어요. 서양의 지질학, 미생물학, 화학, 생물학 등에 기반한 것이죠. 동양의 토양학, 아니 우리의 토양학을 찾고 싶었지만 언감생심이었죠. 풍월을 읊는 3년 넘은 서당개 수준도 못 되어 본격적인 논지는 풀지 못하고 몇 가지 문제제기와 시사 정도에서 그치는 게 이번 글이 될겁니다. 일단 간단하게 짚고 싶은 문제제기는, 서양에서 들어온 기존 토양학엔 미시적인 과학 얘긴 탁월하지만 거시적인 얘긴 부족해 보인다는 겁니다. 그 중 흙 얘기하는데 하늘 얘기가 없고 사람 얘기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아마도 서양의 학문은 나누는 데 기반한 곧 분류학에 기반한 한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합과 연계학이 빠진 거죠. 그런 얘길 이번 글에서 조금 얘길 해볼까 합니다. 오행론으로 본 땅 이야기 오행론(목, 화 토, 금, 수)은 하늘을 5가지로 나눈 얘기애요. 하늘의 주인공은 태양이죠. 동(木) 서(金) 남(火) 북(水)을 가르는 태양의 운행에 맞춘 것입니다. 중앙에 바로 흙(土)이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있는 꼴입니다. 나(사람) 있는 곳이 중심(土)이고 그 중심으로 네 개의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하늘에 따라 대지도 네 개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예가 4 대문으로 둘러싼 서울입니다. 동대문은 해가 뜨는 동쪽에 있어 오행의 목에 해당하고 그것은 씨앗의 발아 기운이고 파종의 힘입니다. 그래서 동대문의 다른 이름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의 인(仁)이 바로 씨앗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일의 씨를 행인(杏仁)이라 하잖아요. 인(仁)이란 글자는 아이를 밴 임신부의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 씨앗이라 하기에 적당하죠. 그래서 인은 씨앗, 파종 등을 뜻하고 큰 의미로는 사랑(love)에 해당하기에 널리 사랑의 기운을 흥하게 하는 문, 또는 그런 대지의 입구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이런 기운이 흥한 땅은 바로 동향이거나 동남향의 땅입니다. 제가 처음 농사지은 땅이 바로 동남향이었습니다. 위치가 그러하다보니 일출 장면이 장관이었습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동트기 전 밭에 해뜨는 걸 보려고 달려갔지요. 새 해 보러 동해안으로 가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밭에서 일출이 장관인 것은 해 자체보다도 해 뜨기 전부터 일출을 알려주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에 맞춰 흙에서 꼼지락거리는 벌레와 풀들의 몸짓들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아침의 기운이 강한 곳이 동향, 동남향의 땅이라는 거지요. 그런 땅은 아침과 오전, 계절로는 봄에 강하죠. 이런 곳의 해는 자외선이 강하고 오방색 중 파란색 부분이 강해 햇빛 파장이 짧습니다. 파장이 짧다보니 깊숙이 파고들진 못하고 잎사귀 표면에 영향을 많이 주어 줄기와 잎 생육에 좋습니다. 이런 곳에선 잎사귀 먹는 채소류와 나물류가 잘 됩니다. 봄부터 절로 올라오는 냉이에서부터 쑥까지 야생 나물류가 좋지요. 상추나 시금치 배추도 좋습니다. 제가 태어난 왕십리는 성동구에 있어 서울에서 보면 동쪽 땅입니다. 그래서인지 옛날 이곳은 4대문안 사람들 먹을 채소농사를 많이 했어요. 남대문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남쪽에 있어 오행으로는 화(火)에 해당합니다. 계절로는 뜨거운 더위의 여름에 해당합니다. 근데 이름이 왜 숭례문(崇禮門)일까요? 더운데 뜬금없이 예를 숭상할까요? 근데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덥다고 아무 데서나 옷을 확확 제껴 던지면 곤란하잖아요. 더울수록 예를 갖춰야 한다는 거죠. 또 우리의 여름은 습하면서 더워 만물이 극 성장을 합니다. 이른바 몬순기후의 특징입니다. 건조하면서 더운 유럽이나 중동지방 같은 경우는 뜨겁기만 한 태양의 화 기운 때문에 다 죽지요. 모든 게 극성장하는 우리 여름은 농번기인 것과 달리 그 지역은 여름이 농한기입니다. 암튼 이렇게 모든 게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예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성장만 할 게 아니라 완급을 조절하며 성장하라는 거죠. 무조건 성장만 하면 웃자라기만 합니다.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럴 때 예가 필요합니다. 이런 남향의 땅에선 열매나 이삭을 맺는 작물이 잘 됩니다. 고추나 오이 호박 같은 과채류나 벼나 옥수수 수수 조 기장 같은 곡식이 잘 되지요. 일조량이 풍부해 생육에도 좋지만 잘 자란 잎과 줄기의 광합성 활동으로 뿌리의 양분 축적이 활발해 그 힘으로 열매와 이삭을 많이 다는 거죠. 서대문은 독립문이 아니고, 돈의문(敦義門)이라고 있었어요. 경향신문 앞 정동사거리에 있었죠. 말 그대로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입니다. 서쪽의 기운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합니다. 서쪽의 기운은 저녁의 기운이고 계절로는 가을의 기운입니다. 농사의 입장에선 수확의 시기입니다. 금(金)은 쇠라 차갑죠. 벼를 베어 거두는 낫의 기운입니다. 차가우면서도 햇살은 따갑습니다. 곡식을 바짝 말려 겨우 내 곳간에서 저장이 잘 되도록 합니다. 의(義) 글자는 양(羊)을 내 손(手)으로 죽여(戈) 신에게 바치는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 양을 죽이든 벼를 수확하든 그 기운은 냉정해야 할 것입니다. 서향의 땅에선 과일이 잘 됩니다. 서향의 햇빛엔 붉은 빛과 원적외선이 많지요. 파장이 길어 과일이 잘 익습니다. 서향에선 아침 동트는 햇빛보다 노을이 멋있죠. 늙어서는 서향의 땅에서 사는 게 좋답니다. 아마 파장이 길고 따뜻한 붉은 기운이 차가워진 늙은 몸에 좋기 때문일거에요. 반면 젊을 때는 동향, 동남향의 왕성한 기운이 좋답니다. 역동적인 젊은 기운과 맞기 때문일 겁니다. 북쪽의 땅에는 추운 겨울의 북풍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북대문엔 홍지문(弘智門)을 두었지요. 원래 북대문은 숙정문인데 나중에 별도로 홍지문을 세웠어요. 북향의 땅은 선호하질 않았어요. 아무래도 춥죠. 그렇다고 무조건 남향을 추구하진 않았습니다. 남향에 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향 쪽이 열려 있는데 남향이 좋다고 해서 산을 향하진 않았어요. 말하자면 우리는 산을 등지고(배산背山) 살아야지 산을 마주하고 살진 않았다는 겁니다. 한번은 토종씨앗 수집하러 시골 구석을 돌다 북향을 하고 있는 집을 가 보았습니다. 남쪽에 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에 밭이 있으니 배산북향을 하고 있는 집이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뒤뜰이 좀 이상하다 싶게 넓었다는 겁니다. 주인장께 여쭤보니 뒤뜰이 남향을 하고 있어 그랬다는 거였어요.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었지요. 북향의 땅엔 아무래도 산채나 약초가 잘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식물은 음지나 반음지를 좋아하니까요. 이런 사방 중심의 오행론 세계관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악이 발달한 환경에 잘 맞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선 향에 따라 토양의 성격도 분명하게 드러나 그에 맞는 작물과 재배법이 발달했겠지요. 오행론으로 살펴본 흙 이야기 앞에선 오행론으로 땅의 공간을 나눠봤습니다. 이번엔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 토양 속에 들어간 오행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흙 속엔 크게 네 가지 있는데 하나는 물이고 둘은 공기이고 셋은 흙 알갱이이고 넷은 유기물입니다. 여기에서 흙알갱이는 오행론의 토(土)이고 물은 수(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어요. 그럼 나머지 목(木), 화(火), 금(金)은 어떻게 존재할까요? 일단 금은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미네랄이라는 무기질 양분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철(Fe)입니다. 철은 지구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토양 금속입니다. 사람이 흙에서 났다고 할 때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철입니다. 사람 몸 속 피에는 바로 철로 된 헤모글로빈이 있기 때문이죠. 하늘의 화(火)는 햇빛과 그로 데워진 따뜻한 대기입니다. 따뜻한 대기가 흙 속에 들어가 공기층을 형성하죠. 빛은 어떨까요? 빛도 흙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깊게는 못 들어가요. 표토에 닿죠.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이 한 줌 빛이 광합성세균 같은 미생물에겐 아주 중요합니다.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내주거든요. 또한 햇빛은 토양 속 지열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비닐 같은 것으로 무조건 흙을 덮어주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많은 면적일 경우 불가피할 수 있지만 도시농부처럼 소농일 경우는 소탐대실할 우려가 있지요. 비닐 덮으면 지열은 올라가요. 그러나 햇빛은 차단되죠. 미생물이 산소를 만들기도 힘들고 대기의 산소가 토양 속으로 들어가기도 힘듭니다. 목(木)은 흙 속에서 올라오는 싹의 모습이에요. 토양학에선 흙의 구성으로 공기, 물, 흙알갱이 그리고 유기물만 얘길 해요. 흙 속만 얘길하는 거죠. 흙에 뿌리내리고 흙 위로 싹을 내미는 식물을 얘기 안 하면 반쪼가리 토양학이 되는 겁니다. 표토에 닿는 햇빛 얘길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목(木)을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바람입니다. 발아를 촉진해주는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자 사랑의 바람입니다. 봄에 표토에서 살살 부는 봄 바람은 땅 속의 습기를 하늘로 끌어올립니다. 이게 씨앗의 뿌리 발육을 촉진하고 새싹과 새움의 발아를 자극하죠. 바람은 발아뿐만 아니라 작물의 생육도 촉진합니다. 작물을 심을 때 오와 열을 맞추는 것은 통풍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지요. 바람은 작물 성장에만 좋은 게 아닙니다. 토양 속 공기의 소통도 좋게 해주어 호기성 미생물 증진에도 좋습니다. 이렇게 오행론으로 토양을 보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토양학은 토양 속만 보는 게 아니라 표토를 경계로 대기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린 체계로 확대됩니다. 또한 오행론은 대지의 공간학(지리학)으로도 확장되니 비로소 토양학은 하늘과 사람과도 연결된 통합체계로 확장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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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20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구담(상) 구담은 임실 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논다랑이와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 날이었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조차 하니 더욱 오들오들했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나를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날,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 후,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은 구담이다. - 송만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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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5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연재를 시작합니다.
    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사계절'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송만규 한들 송만규(宋滿圭)ㆍ 1955년 전북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ㆍ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다.ㆍ 1993년에 〈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라는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를 계기로 붓을 잡고 창작에 집중하게 되었다.ㆍ 2002년에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장장 21m, 24m 등에 이르는 긴 그림 〈새벽강〉, 〈언 강〉 등을 발표하였으며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묵으로 담아냈다.ㆍ 20여 차례의 국내외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ㆍ 물과 강, 인간과의 호흡이라는 화두로 여러 강물을 따라 사색하며 또 다른 강물에 붓을 적시고 있다.ㆍ 저서로는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 <강의 사상>, <들꽃과 놀다>를 간행하였다. 섬진강 8장면을 사계절 총 32개의 대형 화폭으로 그려내다역사의 강,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 전체를 그려낸 최초의 대서사화라 할 만하다섬진강 600리 길을 “언젠가, 온몸이 아리도록 매서운 꽃샘추위를 안고 섬진강 강변을 종일토록 헤맸습니다. 나의 삶, 나의 존재라는 새삼스러운 화두를 잡고 물길 따라 걸어 다녔습니다.”작가에게는 추운 날 더운 날, 궂은 날도 없었습니다. 새벽의 강 풍경을 보려고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했습니다. “강 언저리에 잠시 머무르려고 했던 것이 어느덧 25년 동안 강물에 붓을 적시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오르내리며 깨닫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도랑의 물은 구담, 장구목을 지나며 이 도랑, 저 계곡에서 모여드는 물줄기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 힘차게 흐릅니다. 강물은 이곳저곳, 이 일 저 일에 구시렁거리지 않고 묵묵히 기웃거립니다. 메마른 곳, 목마른 사람은 적셔 주고, 있어야 할 곳이라면 잠시 머물다가 기꺼이 섬세하게 배려하며 낮은 곳으로 만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습니다.”섬진강을 부감하기 위해 오르내려야 했던 지리산, 작가는 또 다른 역사의식과 감흥을 불러내며 섬진강과 하나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저 아래로 굽이굽이 길게 늘어진 강줄기를 보러 오릅니다. 구름이나 안개가 산 아래를 가리지 않은 시간에 도착하려고 서두릅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고요하던 대기가 요동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남부 능선을 오르면 평사리 들녘이 광활하게 펼쳐집니다. 광양 무동산에도 수없이 올라봅니다.”“계절마다 산기슭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내리며 가슴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유난히 남아 있는 여덟 곳에 집중하였습니다. 섬진팔경의 사계절이 그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매듭을 짓고 싶었습니다.” -송만규 화백의 <강의 사상>출간 서평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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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2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3] 바람과 물, 대지의 피
    바람과 물, 대지의 피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3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물보다 공기 물 다음으로 숲 속의 흙을 살아있게 하는 건 공기와 바람입니다. 제가 앞 글에서 물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글에선 물보다 공기가 더 중요함을 말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흙에는 살아있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살아있는 공기입니다. 도시텃밭에 가보면 물 주기를 열심히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채소 잎사귀에 물 주는 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합니다. 농부는 논두렁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저도 모종 키우다보면 참 물 주는 소리가 좋습니다. 이파리에 물 닿는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마치 즐겁게 채소가 먹는 것 같지요. 그렇지만 물 좋아하길 너무 좋아하면 농사 망치기 십상이에요. 집의 화초도 마찬가지로 초보자의 제일 큰 악덕(미덕의 반대)은 물 많이 줘 물 배 터지게 하는 거잖아요. 물 많이 주면 땅 속에 공기가 부족해져 숨막혀 죽거나 과습 피해로 병들어 죽기 아주 쉽죠. 대개 밭의 경우 만병의 근원은 과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습 상태의 밭을 보면 흙 표면에 이끼가 낀 것처럼 녹색끼가 살짝 돕니다.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힌다고 흙이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흙에 물 대신 공기를 넣어주는 행위는 뭘까요? 바로 호미질입니다. 호미질은 단지 제초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호미질은 풀만 제거하지 않습니다. 풀 없는 곳도 호미질 해주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풀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풀 있는 곳 없곳 작물만 빼고 다 긁어줍니다. 그리고 작물에게 북을 주지요. 그러면 제초 외에도 공기를 넣어주는 효과와 흙 속의 습기가 날아가는 길을 끊어주어 간접적으로 물을 공급해주는 효과, 북주기를 통해 작물에게 양분을 몰아주는 효과까지 있어요. 그래서 풀을 뽑는다고 하지 않고 매준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왜 숲의 공기가 들녘 공기보다 더 살아있는 걸까요? 그 또한 답은 간단합니다. 숲의 공기는 나무들이 뱉어 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야말로 살아있는 공기 정화기에요.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그것의 결과로 산소를 잎으로 배출하죠. 뿌리에서 흡수한 물까지 배출하니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아주 쾌적한 공기를 내뿜습니다. 뿐입니까? 피톤치드라는 방어물질까지 함께 배출하니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야말로 생명의 공기인 겁니다. 원래 들녘의 논에도 나무가 있었어요.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많았지요.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면서 이 나무들이 다 사라지고 논의 경관은 벼만 남고 말았어요. 이 나무들이 논을 둘러싼 대기(미기후)를 건강하게 해 주었는데 햇빛을 가린다는 이유로 없애버린 겁니다. 나무에 관한 재밌는 시가 있어 소개해볼까 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입니다. 나무 나무가 춤을 주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춤을 추는 게 상식일텐데 거꾸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의 시이기 때문에 아마 나무(민족)의 주체성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근데 저는 말 그대로 해석합니다. 나무가 춤을 춘다는 건 공기와 물을 잎사귀로 내뿜는 모습이라고 보는 거지요. 한 여름 느티나무 밑 그늘에 가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자연 에어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요. 나무가 춤을 추니 바람이 부는 시 그대로의 현장입니다. 이런 바람은 생명을 살리는 바람입니다. 이런 생명의 바람이 풍부한 곳이 바로 숲이지요. 그렇지만 우거진 숲이 최고는 아닙니다. 숲 속 야트마한 동산 밭이거나, 숲과 들녘이 만나는 경계선, 곧 산 밑 밭이지요. 에덴동산에서 흙으로 인간을 빚고는 숨을 불어넣은 바로 그 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신의 숨, 바람 옛 사람들은 바람을 신이 숨쉬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이 화나면 무서운 숨을 쉽니다. 태풍 같이 습한 바람이거나 건조한 바람을 일으켜 때로는 물 난리, 때로는 불 난리를 가져다 주지요. 신은 성난 바람만 불지는 않아요. 곡식의 싹을 틔우고 곡식의 성장을 돕고 이삭을 영글게 해주며 마침내 긴 긴 겨울 생명을 이어주는 식량으로 남게 해 주지요. 그래서 바람을 불어오는 곳에 따라 크게 동서남북에 맞춰 네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해가 뜰 때 부는 바람이라 해서 날 새우는 바람, 곧 샛바람이라 했지요. 날을 새워 동(東)이 트는 바람이니 동풍이고 봄 바람이기도 합니다. 곡식의 싹을 틔워주는 바람이기도 하지요. 서쪽에서 부는 서풍은 하늬바람이라 해서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으로 곡식을 익게 해주는 가을 바람입니다. 남쪽에서 부는 남풍은 마파람이라 하는데 맞바람에서 왔답니다. 맞은편 남쪽에서 불고 주로 여름 장마철에 불어오므로 곡식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 줍니다. 북쪽에서 부는 북풍은 된바람이라 해서 몹시 춥고 세게 부는 뱌람이죠.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몸이 되다’는 말과 상통해 보입니다. 추우니 곡식은 곳간에서 휴면에 들어가 사람에게 소중한 식량이 되어주겠지요. 이 중 샛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어오면 높새바람이라 해서 고온건조한 바람이 됩니다. 푄 현상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다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륙으로 불다 큰 산을 만나면 해안쪽은 비를 내려주지만 산을 넘으면 습기는 말라 건조한 바람이 되어 내륙 쪽에 가뭄을 일으키고 심하면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북도 동해안 쪽에선 샛바람이라 하지만 산넘은 내륙쪽에선 높새바람이라 부릅니다. 늦봄에서 초여름, 절기로는 하지 전에 찾아오는 가뭄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보통의 바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와 계곡의 물이 뱉어내는 공기입니다. 그래서 순하고 깨끗하고 농사에 아주 좋은 바람이지요. 반면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은 바다 또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 이 바람은 세고 들녘의 온갖 것들을 쓸고 오기에 그리 좋은 바람은 아니에요. 김광석이라는 유명한 가수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말에도 이런 차이가 묘사되고 있어 재밌게 되새겨 보게 되더라구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중략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대의 머리결처럼 부드럽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도가 출렁거려 흔들린다 하잖아요. 그래서 숲에서 부는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라는 거지요. 이러한 바람은 흙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공기(기상)가 됩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직접 흙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흙이 스펀지처럼 대기 중 공기를 빨아들인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흙 속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유기물,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호기성 미생물입니다. 호기성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기본적으로 호기성 미생물들은 공기 중에도 흙 속의 산소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흙 속에 산소가 잘 들어가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지요. 그 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풍부한 유기물의 존재입니다. 유기물을 단순히 거름이나 비료라고만 이해하면 곤란해요. 유기물의 핵심은 탄소질입니다. 유기물을 정의하기를 탄소화합물이라 하지 않습니까. 유기물의 뼈대라고 이해해도 돼요. 그 뼈에 살처럼 붙는 것이 질소질 재료인데 똥이 대표적이죠. 보통은 거름이나 비료를 똥 중심의 질소질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기질비료를 말하면 대개 계분, 돈분, 우분 등 축분으로 이해하는 게 그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살이지 뼈가 아니에요. 질소질은 작물을 빠르게 잘 키울 수는 있어도 흙을 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흙에 뼈 역할을 하는 탄소질 재료를 잘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럼 어떤 게 탄소질 재료일까요? 톱밥이나 숯가루, 재 같은 재료입니다. 이른바 목질부 재료이지요. 이 중에 리그닌이라는 탄소질 재료가 핵심인데 이유는 앞에서 말한 호기성미생물이 아주 좋아하는 유기물이기 때문이에요. 이 리그닌을 미생물이 먹고 분해하면 접착제를 만들고 이 접착제는 흙 알갱이들을 몽글몽글하게 뭉쳐줍니다. 홑알의 흙 알갱이를 떼알로 만들어주는 거죠. 떼알의 흙에는 틈새가 많습니다. 그 틈새로 공기가 들어오는 거죠. 물론 물도 들어옵니다. 이 틈에 물이 공기보다 많이 들어오면 혐기상태가 많아져 호기성미생물들이 떠납니다. 그 자리에 곰팡이나 병원성 세균이 들어오지요. 그리고 흙은 병이 드는 겁니다. 물론 공기가 더 많으면 흙은 가뭅니다. 흙에 물이 모자라면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작물이 제대로 먹질 못합니다. 숲 속의 흙에는 이런 탄소질 재료가 많습니다. 나무 잔가지에서부터 낙엽까지 수도 없지요. 반면 들녘엔 숲이 적어 탄소질 재료는 적고 질소질 재료는 많습니다. 아무래도 인구도 많아 인분도 많고 목축도 많이 해 축분도 많지요. 그래서 당장은 들녘의 땅에서 농사가 잘 됩니다. 탄소질 재료는 비에 의해 숲에서 떠 내려 오지요, 질소질 재료는 많은 사람의 인분, 많은 가축의 축분까지 해서 매년 풍년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들녘의 땅엔 염류집적, 연작피해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에 아주 위험한 구조를 축적해갑니다. 토양의 생산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기후위기로 농사가 되지 않으니 식량위기가 극에 다다릅니다. 토양에 질소질이 많지 않은 숲의 땅에선 풍년이 흔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흉년도 많지 않습니다. 기후위기가 와도 피해 갈 구멍이 있습니다. 흙도 잘 견뎌 작물 피해도 덜하지만, 야생의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식물들은 작물보다 기후위기에 아주 강하지요. 힘이 세서가 아니라 적응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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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4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2]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한 동안 귀농하려는 분들께 가급적 들녘보다는 숲으로 귀농하시라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농반진반으로 했던 말이지요. 인류 역사상 인간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거의 숲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들녘의 숲이 아니라 야트막한 동산 속 숲 말이죠. 에덴동산이 그렇고 무릉도원, 샹그리라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란 책에서 저자가 그리는 곳도 숲 속이고, 하다못해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에서 그리는 이상향 마을도 산 숲속에 있었습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라도 속세를 떠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공간들 또한 거의 들녘보다는 숲 속 전원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낙향한 유학자가 쓴 대표적인 농사 책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책 제목에서 그리는 곳도 들녘이 아닌 숲이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도 대부분 산의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얘기인 것을 보면 숲 속의 삶은 인류 모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이 숲 속에서 살다 내려와 원초적 고향인 숲으로 돌아가고픈 지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숲에는 흙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왜 숲엔 흙이 살아있다는 걸까요? 그럼 숲이 아닌 곳의 흙은 살아있지 않다는 걸까요? 저는 살아있는 흙과 비옥한 흙을 구별하고자 합니다. 아마 비옥한 흙으로 치자면 당연히 들녘의 흙일겁니다. 특히 삼각주(델타)의 흙 곧 충적토가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일강 삼각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유역, 인더스 강 유역, 황하 화북지방의 토양이 대표적이죠. 이른바 4대강 문명 발원지입니다. 그 외에도 인도차아나 반도의 메콩강, 미 서부평원의 미시시피강, 남미의 젓줄 아마존강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거대 문명을 일군 강 주변의 충적토양은 강 상류지역의 숲에서 영양물질들이 흘러내려와 강의 범람으로 생긴 땅들입니다. 그러니까 강 주변 비옥한 흙도 따지고 보면 숲 속 상류에서 흘러온 것입니다. 그럼 무슨 근거로 숲 속의 흙은 살아있고 강 주변 들녘의 흙은 그렇지 않다는 걸까요? 흙이 살아있으려면 하늘과 소통해야 합니다. 하늘과 소통하는 핵심은 앞 글에서 말한 바람이고 그로 인해 물과 불이 소통을 합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물과 불은 소통하지 않고 싸우기만 합니다. 태풍이 불어 물이 불을 이기면 수재가 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불이 물을 이기면 화재가 납니다. 그러나 흙을 기반으로 하면 물과 불은 소통합니다. 물과 불이 소통한다고 하니 그 말도 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살아있는 흙의 구조를 살펴보면 바위에서 부서져 나온 흙 알갱이 고상(固相)이 반을 구성하고 그 중 반의 반을 물이 액상(液相)을 이루며 또 그 만큼의 공기가 기상(氣相)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외에 5% 이하로 아주 일부인 유기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흙을 떼알의 흙이라고 하고 입단화된 흙이라고도 합니다. 떼알이란 낱알(홑알)의 흙들이 뭉글뭉글 뭉쳐진 흙으로 특징은 틈새(공극)가 많다는 겁니다. 이 틈새가 살아있는 흙의 본 모습이고 이 틈새를 유지해 주는 게 흙 알갱이 표면에 코팅되어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액상은 물이고 기상은 하늘에서 바람이 흙에 스며든 따뜻한 불입니다. 그리고 이 물과 불이 흙에서 만나 소통한 결과가 바로 유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흙이 숲에만 있는 건 아니죠. 숲이든 들녘이든 농경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수의 기원 그러나 숲에는 남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남다른 물과 불, 물과 바람, 물과 공기입니다. 우선 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숲의 물은 어떨까요?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깨끗하죠. 왜 깨끗할까요? 그것은 산의 흙과 나무와 풀들이 뱉어낸 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이 깨끗한 것은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 암반수가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지하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많지요. 지하수엔 중금속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겁기 때문이죠.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지하수엔 철분이 많고 우라늄도 적지 않습니다. 겉으론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수 말고 맑고 깨끗한 물로 증류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물들은 겉만 깨끗하지 실제로는 위험한 물입니다. 반면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야말로 살아있고 그래서 진짜로 깨끗한 물입니다. 이런 물이 생명을 살리고 기르기 때문입니다. 물은 하늘의 비로 시작되기 때문에 물 또한 하늘과 땅의 소통의 산물입니다. 그 하늘의 물이 제일 먼저 내려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설산입니다. 만년설이죠. 굳이 설산이 아니라도 하늘의 물은 산으로 내려와 생명수로 재탄생합니다. 산에는 바로 흙이 있고 나무가 있기 때문이죠. 그 생명수가 산에서 내려오다 용출하는 곳에 에덴동산이 있고 무릉도원이 있고 샹그리라 동막골이 있습니다. 아마 페루의 마추픽추도 그런 곳일 겁니다. 우리의 전통 마을도 그 생명수가 용출하는 곳에 만들어집니다. 다만 다른 점은 산 속은 아니고 산 밑이죠. 들녘과 숲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마을을 동네라 했죠. 동은 한자로 동(洞)입니다. 골짜기죠. 동네는 같은 물을 먹는 사람들인셈입니다. 앞에서 말한 4대강 문명도 다 이런 설산이나 골이 깊은 산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문명은 강에서 발원했을지는 몰라도 인류의 근본 문명은 산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종자학자로 유명한 바빌로프는 강이 아닌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기원을 찾았습니다. (게피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세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 우리 민족의 고향이라는 백두산도 이름을 보면 원래 설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산, 바로 백두(白頭)산, 설산이란 뜻입니다. 백두산과 같은 산이 알프스의 몸블랑입니다. 몽(Mont)은 프랑스 말로 "산"이고, 블랑(Blanc)은 "하얀 색"이라는 뜻이니 바로 백두산인 것이죠. 화산이 터져 천지가 만들어졌지만 물의 기원은 변함이 없지요. 반면 4대강 유역은 비옥합니다. 산에서 물만 발원한 게 아니라 물이 각종 영양물질을 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과 영양이 풍부해 농사가 아주 잘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는 물로 볼 때는 깨끗한 물은 아닙니다. 강물은 농업용수로는 훌륭하나 식용수로는 적당지 않아 사람은 산의 골짜기 물을 직접 받아 먹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던가, 그 물이 용출되는 곳, 산 밑을 찾아 우물을 파 먹든가 해야 합니다. 그곳과 멀리 떨어진 들녘에서 그 물을 먹으려면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수로로 유명한 게 바로 로마의 수도교지요. 예로부터 치수정책의 핵심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비옥한 강 유역에서 발달한 거대 문명은 로마처럼 식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교를 설치해서 먼 산의 골짜기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었습니다. 독점한 것이죠. 중국에선 제방을 쌓아 큰 강을 다스리고 운하를 파서 지천들을 연결해 마을 곳곳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 일에 성공해 중국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이 바로 우(禹)왕입니다. 수시로 범람하는 황하의 본류를 다스리려면 제방 쌓아 막아서만 될 게 아니라 강의 지류들을 소통시켜 강물을 흐르게 함으로써 범람을 근본적으로 막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류를 다스려 본류까지 다스렸다는 것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 둘 다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지류를 통하게 해서 식용수 확보도 원활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사전을 집필한 조선 후기 유학자 서유구는 우왕보다 더 근본을 파악한 사람입니다. 본류보다 지류의 치수를 강조한 우왕의 정책을 겨우 홍수만 억제한 것으로 보고 더 근본은 밭 도랑과 밭 주변 물길 다스리는 일이라 했지요. 강의 본류가 대동맥이라면 밭 도랑은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밭 도랑을 잘 다스리면 밭 사이에 물을 고르게 대어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가 내리고 가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물을 잘 저장하면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밭을 일구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 다 하천을 관리하게 하는 것과 같다 했으니 치수의 근본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세혈관 같은 밭 도랑과 물길이 바로 강, 하천 발원지라 할 산 중턱 숲인 것입니다. 보통 땅심(지력)이라 하면 거름 또는 유기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서유구 선생은 거름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물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땅 속에 거름이 많다 해도 물이 없으면 전혀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비옥한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의 관건은 바로 물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지난해 5월11일에 게재한 '흙에서 나고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에 이어 쓰여졌다. 앞으로 안철환 선생의 후속 글을 2주 간격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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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9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2025년 새아침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계신 이호신화백의 새아침 인사 올립니다.
    • 기획
    • 지리산그림순례
    2025-01-02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함양의 겨울그림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을 올립니다. 지리산-인에 연재하는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가 어느새 4년이 지났네요. 하동, 구례, 남원, 함양에 이어 내년 산청편 사계그림을 마치면 계획한 지리산 5개 지역을 완결합니다. 2025년에 산청편 사계 그림으로 뵙겠습니다. - 이호신 삼가 - 이호신/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70x275cm 2024, 부분1 - 이호신/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70x275cm 2024, 부분2 -이호신 / 함양 금대암에서 59x72cm, 2011년 -이호신 / 금대암과 지리산 천왕봉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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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그림순례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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