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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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책마을 기사

  • 숲의 우드와이드웹
    생명이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고 그 작동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항상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옛 현인들의 통찰이나 종교 역시 여기에 대한 나름의 설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을 내놓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 결과 최근 들어 특히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생명현상을 밝혀내는데 상당한 성과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은 숲과 나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생명현상을 먼저 꺼내는가? 순전히 제 주관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숲의 질서는 모든 생명의 질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존재방식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생명체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다양한 다른 생명체들과의 협력과 공생을 통해서만 존속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갈등과 투쟁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 보다 본질적인 축을 이루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책은 숲을 우드와이드웹(WWW)으로 정의합니다. 이때 나무들을 연결해주는 존재는 미생물입니다. 나무마다 처한 환경과 성장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역할들은 다양합니다. '어머니 나무'는 숲의 건강성을 이끄는 핵심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이 든 나무가 함께 있는 숲이 비슷한 나이대의 나무들만 있는 숲보다 훨씬 건강합니다. 책은 저자의 성장과정과 연구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묘사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힙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저는 마치 생명의 바다를 유영하고 온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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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0
  • 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가!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눈이 녹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2미터 이상이나 쌓여 있던 눈이었다. 파괴된 마을은 처음에는 까맣게 그슬린 지붕만 보였다. 며칠 밤이 지나자 눈 밖으로 차츰차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녹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체들이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월에 죽은 시체들이었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 밀랍 같았다. 날씨가 온화해지자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나자 마을 사람들은 눈으로 시체들을 덮어 버렸다. 그래버는 2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다. 휴가는 계속 보류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휴가를 갈 수 있을까 그래버는 총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휴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파묻힌 사내를 파냈다. 라메르스였다. 안경을 낀 빼빼 마른 병사였다. 1미터쯤 떨어진 바닥에서 안경도 발견되었는데, 깨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라메르스는 죽었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이 된다. 매일매일 적과 아군들이 죽어간다.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피로 물들어간 대지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그래버는 10시에 라에의 호출을 받았다. "자네의 휴가 통지서가 왔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이었다. 독소 전쟁의 막바지였고 독일군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매일 전선이 독일이 있는 서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버에게 휴가증이 발급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한낮이었다. 태양은 잿빛 뒤로 흐릿하게 보였고, 눈은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올랐다. 비로소 탈출했다는 느낌, 죽음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미터 1미터 멀어질수록 1미터 1미터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다음 날 아침,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버는 이제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낯익은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당황스럽게 그리고 날카로운 기억들이 가득 찬 채로, 그것은 귀향 자체라기보다는 귀향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그래버는 자기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향은 자신의 기억 속에 고향은 아니었다. 공습으로 인해 그래버의 집은 파괴되었다. 그래버는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고향 역시 죽음과 1미터도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버가 살던 하케가 18번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은 오직 정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버는 실종자 창구에 가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했지만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폐허가 된 집 정문에 쪽지를 남겨 두었다. 스무 살 정도 된 처녀가 마치 강물을 따라오기라도 한 듯 불빛을 받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둥근 눈썹, 그리고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마호가니 색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버의 그녀는 같은 김나지움을 다녔다. "세상에… 엘리자베스 군.. 넌 줄 몰랐어. 많이 변했군" "당신도 그래요" "무엇 때문에요? 나보다 더 명랑한 여자를 찾으면 돼요" "명랑한 여자 같은 것은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하죠?' 그는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그리고 입술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재빨리 사라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을 찾았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의 범죄에 제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네가 지금 한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요새는 그보다 더 의미 없는 질문을 해도 목이 달아나" "자네가 말하는 범죄는 전쟁을 말하는 건가?" "전쟁을 일으킨 온갖 것들을 말합니다. 거짓과 억압, 불의와 폭력, 그리고 전쟁과 그 전쟁을 하는 방법도 범죄에 포함됩니다. 노예 수용소, 집단 수용소,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 말입니다." "공범 관계라고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알고 있나? 자네는 너무 어렸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도 전제 거짓으로 중독되어 던 거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눈앞에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나태한 마음, 무관심, 이기주의, 혹은 절망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버는 갑자기 폴만의 눈동자가 누구를 떠오르게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그가 총살한 러시아인의 눈이었다. 그래버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리수나무 옆을 지나 폐허와 파괴된 집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우린 결혼해야 해" "결혼이라고? 왜죠? 그녀가 웃었다.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안 지도 며칠 안 되었고, 며칠 후면 난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해. "결혼해도 고독은 줄어들지 않아요. 오히려 더 고독해질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알폰스가 느긋한 표정으로 웃었다. "에른스트 그래버, 게슈타포가 관연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자네가 유대인 아가씨나 공산당 아가씨와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조회는 하게 될 거야. 규칙이니까! 그래버는 깜짝 놀랐다. 조사가 시작되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아침 엘리자베스는 결혼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시청에 갔다. "제기랄 무슨 일을 해버린 거야" 그래버는 엘리자베스가 게슈타포의 조사로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가 노출될 것이 걱정되었다. 부모님 집 문패 밑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그래버의 부모님은 살아 있었다. 아기라고.. 우리 형편에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아기에 대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벽이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구멍으로 정원이 보이는 것처럼 불확실하나마 한 조각 미래가 흔들거리면 보였다. "기차는 6시에 출발해" 그래버의 3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역에는 나오지 마, 여기서 떠나고 싶어. 역에서 울고 있는 지치고 땀을 흘리는 여자만 머릿속에 떠 올랐거든" "알겠어요" 하지만 역에서 기차가 떠날 때 멀리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버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일 수더 있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버는 다시 복귀했다. 자신의 군대는 120킬로미터 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러시아인 포로 4명을 그래버가 담당하게 되었다. 전투가 이어졌다. 밤새 곡사포와 폭탄들이 떨어졌다. 포로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버 저 러시아 놈들을 쏴버려 슈타인 브래너가 말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죽이려고 하는 슈타인 브래너에게 총을 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모두 풀어 주었다. "가! 어서 가란 말이야!!" 그는 러시아인인 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뜻밖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총을 겨누었다. 그래버는 검의 총구를 바라봤다 . 불그레한 꽃망울과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눈앞에 보였다. 그 풀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의 눈이 감겼다. 그래버는 어린 나이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랑스 러시아로 6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는 병사였죠. 2년 만에 3주간의 휴가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 함께 김나지움에 다니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신을 가리키던 폴만 선생님을 만나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유럽의 모두 전쟁터였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던 전쟁터였죠, 끝없이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 진흙 같은 참혹함이 세상을 잿빛과 핏빛으로 물드리는 참혹함만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게릴라를 지키는 업무를 받습니다. 그래버는 양심에 따라 그들을 풀어주죠. 하지만 그의 선행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엘리자베스와의 짧은 사랑 그리고 죽음, 전쟁은 그들을 이별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대한민국은 절 못된 선택으로 인해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져 있습니다. 탄핵만 되면 술술 일일 풀린 것이고 다시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악은 그렇게 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빈틈을 찾아 작은 구멍이라도 찾게 되면 뱀처럼 빠져나와 다시 독을 가득 품은 이빨을 내밀고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그래버는 자신의 전쟁에서 했던 전투에서 했던 행위들 살인 총살 그리고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명령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민합니다.. 결국 그의 양심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롭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단 하루의 평화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우리는 지금 계엄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우리의 평화는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가을의 끝 낙엽처럼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일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위대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에리히 레마르크가 1945년에 쓴 대표적인 반전소설입니다. “개선문”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등 쓴 전쟁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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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4
  • 나를 살린 풍경들
    절제의 아름다움이 담긴 책 "나를 살린 풍경들"의 저자 김인호님을 지리산 자락에서 몇번 뵈었다. 지리산에 걸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에 대해 논하는 자리, 지리산 봉우리를 향해 걸음하는 자리에서. 이런 분을 보면 지리산에 오래 산 사람들은 구도자나 시인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사람'을 생각한다. 그가 설 자리는 여긴데...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두다리로 오르 내리며 가장 세밀하고 은밀하고 깊이있는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그 이름을 들으면 마치 그 옛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갈 때처럼 설레는 노고단, 정령치, 만복대, 바래봉...이 나온다. 눈 앞에서 가물 거리고 뇌리에서 자꾸 떠오르는 여리고 순수한 그러나 매혹적인 지리터리풀, 남바람꽃, 대흥란...을 보기위해 밤잠을 설치고 새벽을 가른 그 마음이 이 책에 있다. 수많은 장면중에 고르고 골랐을 하나의 장면 하나의 마음이 책갈피 갈피에 있다. 지리산 자락을 다녀보면 나같은 이에겐 눈에 드는 모든 장면이 다 하나의 작품이다. 아무 곳이나 사진기를 갖다대도 그냥 다 작품이 된다. 그러나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절제 된 풍경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같은 곳을 바라 본 사람은 알수 있다. 이 책을 보시고 또 지리산에 드시라. 생명의 산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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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30
  • 지금 여기 전태일
    이 작은 책은 에너지-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표지와 본문 모두 검정색 하나만 사용했다. 깨끗하고 단순미가 있다. 앞부분은 민종덕, 뒷부분은 박승옥이 전태일과 관련하여 쓴 글이다. 민종덕님은 딱 한번 뵌 적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던 중 카메라를 멘 분이 나를 추월하며 올라가고 계셨다. 나는 가뿐 숨을 몰아가며 겨우 한발 한발 떼고 있는데 이분은 마치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린듯 사푼사푼 오르며 때로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하더니 눈 앞에서 학이 날아가듯 사라졌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나는 그 모습과 얼굴을 기억했나 보았다. 그 후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인지 그분의 가벼움이 부러워서 였는지 나중에 페북에서 보고 이분이 그분이었구나 알아보았다. 민종덕님은 우연히 전태일의 일기의 한부분을 보고 전태일을 자기 인생의 멘토로 삼았다고 한다. 바로 전태일 집의 주소를 외우고 그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고 그녀의 권고대로 자기의 갈 길을 정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한 번 정하면 끝까지 직진하는 분 인 것 같다. 그렇게 전태일을 만나고 전태일 처럼 일하고 전태일을 위해 일하고 상처 받고 다시 추스리며 쓴 글이다. 뒤에 박승옥이 말한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잘 처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분 스스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박승옥씨에 의하면 큰 병으로 고생했고 혼자 산을 오르내리며 마음과 몸의 병을 다 치유하신 것 같다. 내가 둘레길에서 뵀을 때의 모습은 이미 무언가를 초월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단 한번으로 기억에 남았으니 말이다. 나도 엄마라 불리지만 아마도 가장 힘든 역할이 아닐까 싶다. 처음도 중요하지만 잘 끝내야한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엄마, 에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서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일곱아들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디 엄마만 그럴까. 모든 역할이 다 어렵다. 책의 뒷부분은 박승옥씨가 썼다. 과거의 사건 전태일을 밟고 나아가 지금 여기 있는 전태일을 말하고 있다. 지금 전태일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저자 박승옥은 1980년대에 돌베개출판사 편집장, 구로노동상담소 간사, 전태일노동연구자료실 대표를 거쳐 1990년대에는 10여년을 시골에서 살았다. 2000년대 초에 민주화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시민발전 대표를 거쳐 현재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처음의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가능할까? 책 "전태일평전"개정판의 발문은 장기표가 썼다. 전태일은 물론이려니와 전태일평전의 저자 조영래를 함께 찬양한다. 내가 왜 장기표를 언급하는지는 이 책을 읽어봐야 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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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8
  • 사진에세이집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
    「섬진강 편지」 -사진에세이집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 지난 10년 동안 늘 함께였던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들을 한자리에 모아 사진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제목은 ‘나를 살린 풍경들’입니다. 지난 10년은 어머니의 죽음, 사십 년 직장의 퇴직, 암 투병 5년, 구례로 귀촌, 아이들의 결혼 등 아슬아슬하고 가파른 생의 정점인 십 년이었습니다. 그 가파른 삶의 순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섬진강과 지리산 풍경들, 그 강길과 산길에 피는 들꽃들의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95장의 풍경이 나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에도 삶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메시지로 가 닿기를 바랍니다. 어제는 출간된 책을 들고 첫서리 내린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칼바람 속에서 지리산을 지키는 노고할미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음으로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을 고했습니다. 나의 남은 시간들은 강산의 뭇 생명들과 한껏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약속도 드렸습니다. 내일은 우체국에 나가 ‘나를 살린 풍경들’을 그대에게 발송하겠습니다. 느닷없는 부탁에도 기꺼이 추천 글을 써준 이강산, 복효근 시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시인이자 사진가 김인호. 그의 이름이 입술에 닿으면 곧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저녁노을, 폭설 속 얼음새꽃. 그 셋이 찰나에 오버랩되면서 실존 인간은 사라지고 원시 자연의 몇 컷 풍광으로 눈앞에 들이닥치는 사람이 김인호다. 그 풍광의 스펙트럼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야생화 한 점을 품기 위해 몸에 밧줄을 묶고 벼랑 끝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 오랜 세월 지리산과 섬진강에 발자국을 찍어 ‘구도자의 길’을 낸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가 ‘탐매探梅’하듯 떠돈 10년의 순례 끝에 포토에세이를 묶는다. 지리산이며 섬진강의 뭇 생명이 어디 책 한 권에 담길 수 있을까만 오늘 같은 허욕의 세상에서 10년을 감내하고 ‘가장 아름다운 춤, 멈춤’의 시간을 누리는 그의 책이 반갑고 놀라워 경외敬畏라는 낱말을 감추기 힘들다. 그는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 자신을 비우고 마침내 이 책에 다다랐다. 우리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눈 앞에 펼쳐지는 ‘인간의 홍매’, 김인호의 바다에서 자맥질을 반복할 것이다. -이강산(시인․사진가) ...................................................................................................................................................................................... 김인호 작가의 사진 에세이를 본다. 읽는다. 이미지를 통한 영상미와 문자를 통한 메시지가 때로 부합하고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때로 반전하면서 감동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국립공원 1호 지리산과 아직은 청정 수역으로 남아있는 구례의 섬진강을 작품의 태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시적인 사진 이미지의 빼어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만이 그의 작업 의도는 아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고 있는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 역사와 인문학적 유산, 그 속에 펼쳐지는 사람살이의 애환, 위기의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영성적인 삶을 지향하는 철학적 사유가 사진 이미지와 버무려져 있음을 본다. 모든 참다운 예술이 그렇듯이 김인호의 이번 사진 에세이집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종국에 돌아갈 육신과 정신의 귀의처가 어디인가 묻고 있다. 작업 기간에 코로나19가 있었고 작가 개인적으로는 투병의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치유’라는 화두가 그 중심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연도 인간도 황폐화 일로에 서 있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이러한 예술적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니할 수 없다. -복효근(시인) #나를살린풍경들 #노고단 #노고할미 #지리산 #섬진강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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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4
  • 장흥과 한승원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관한 추억
    삼 년 전 호텔로비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갔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끝까지 읽고 나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재밌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외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았다. 대신 지난봄에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소설 "초의" "다산" 그리고 "추사" 세 권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한승원 작가의 고향은 장흥이다. 고등학교 때 장흥의 여학생과 펜팔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학교 생활에 관한 것과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녀는 편지에 장흥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장흥을 흐르는 강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장흥 문화원에 취직했다. 아마도 장흥 문화원 창가 너머로 그 강 탐진이 흘렀던 것 같다. "윤슬로 반짝이는 탐진을 보고 출근했다가 강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집으로 가" 그녀는 은유를 아는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몰라 사전에서 찾아봤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며, “고향 땅의 봄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은 아름답다.”와 같이 쓰입니다. - 사전- 그해 겨울 그녀는 장흥에 놀러 오라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은 12월 대학입학시험도 끝났으니 그녀를 소개해준 친구와 함께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사실 누나 집이 완도고 당시 김제에서 완도에 가려면 광주에서 강진을 거쳐 가야 했고 강진에서 장흥에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완도 보길도 누나집에 갔었다. 아마도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고 연락이 쉬었다면 강진에 가는 길에 장흥에 가서 그녀가 좋아했던 탐진강을 함께 걷고 혹시 시간이 남는다면 그녀가 일하는 장흥문화원에 가서 탐진강의 윤슬이나 노을을 함께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묻지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대학에 간 이후에는 학생운동에 빠졌고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해 다시 봄이 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아주 긴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편지엔 당시 인기가 있었던 서정윤의 시를 정성스럽게 필사해 보내주었다. 다른 내용은 없었다. 홀로서기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졌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아마도 그녀는 나를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글씨를 아주 예쁘게 써서 보내 주었고 정성이 가득했지만 나는 역시 그녀를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10여 년 전 장흥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다. 봄이었는데 남쪽의 장흥엔 눈이 내렸다. 풀코스를 신청했고 탐진강에서 출발해 긴 터널을 하나를 너머 42.195km 달렸다. 눈이 내리는 장흥에 추위는 손과 발을 꽁꽁 얼게 했다. 나는 달릴 때 추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장갑과 모자라도 쓰고 달릴 때 이야기기고 눈 내리는 날에 맨손으로 달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급수대 물은 모두 얼어 버려 마시기도 어려웠다. 겨우겨우 지옥 같은 추위와 꽁꽁 얼어 버린 몸을 끌고 지나왔던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다시 눈이 멈추고 해가 떴다. 그리고 눈이 그친 태양은 탐진의 물 위에 아름다운 윤슬을 보여 주었다. 불현듯 그녀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저기 보이는 어느 건물 창가에서 이 윤슬을 보고 있었겠구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그날 어디 장흥의 거리에서 만났어도 우리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시를 쓰거나 소설이라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 윤슬이라는 단어를 편지에 쓸 만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살고 있던 그녀가 행복하기를 빈다.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니 이 번 기회에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더불어 이젠 한승원의 딸이 아니라 한강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한승원작가의 소설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봄에 읽은 소설 3권 모두 재밌고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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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1
  • 할매당 선언
    책소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책이다.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대표로 나선 노년 여성이 쓴 흥미로운 삶의 연대기이자 구멍 많은 대한민국 헌법을 이렇게 저렇게 메워보자는 신선한 제안으로 가득한 “헌법 제안서”이기 때문이다.≪할매당 선언≫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노년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각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은 독자들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전한다. 예를 들어 권오자 님의 이야기에는 일생 겪어온 고난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나고, 홍영미 님의 글에는 주변부로 밀려난 노년 남성을 바라보는 노년 여성의 따뜻한 시각이 있다. 하나같이 많은 사람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내용들이다.또 다른 매력포인트는 이 책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이다. 책 전체에 걸쳐 여성과 노년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데, 이러한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키고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데 작은 첫발을 떼게 해줄 것이다. 목차 배성인_격려의 말선언사_할매당 출범을 자축하며권오자_전생 빚 많은 인생서현숙_책상 위에는 아직도손지영_‘할매당’ 창당을 쌍수 들어 반기며홍마리_소설 52년생 김미숙홍영미_50대 이후의 아들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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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5
  • 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잘쓰는 방법
    페이스북에 쓴 "바코드" 일본에서 살던 경험에 허구를 더해 쓴 중편 소설과 단편 소설 두 편을 더 써봤다.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은 것과 지금 연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코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두 편은 일인칭으로 한 편은 삼인칭으로 썼는데 일인칭이 역시 쓰기가 쉬운 것 같고 삼인칭으로 써보니 좀 어렵지만, 이것 역시 나름 매력이 이었다. 최근 읽어본 책 중에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프랑스 리뷰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을 한국의 출판사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가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을 읽어보고 흥미가 있어 3편을 모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모든 작가의 인터뷰를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 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 위주로 골라서 읽어봤다. 우리가 다 아는 작가들 이를테면 헤밍웨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토 에코, 파묵,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브로, 수잔손탁같은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작품은 내가 몇 권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들이다. 대부분 한 시대를 평정한 위대한 작가들이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파리리뷰 기자들은 이 작가들을 몇 번 방문해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지만, 작가가 된 이유나 글을 쓰는 방법들은 항상 질문에 있었다. 작가가 된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모두 자신의 직간접경험을 통한 것이라고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적어도 모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이 아니어도 주인공이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을 투영해서 쓴다는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든 작가가 한 마디로 초고를 작성하고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을 수정하고 더하거나 삭제하면서 쓴다고 한다. 더는 스스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완결을 짓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나도 잠시지만 세 편의 소설을 쓰면서 잠시 내가 그 상황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항상 교실에 앉으면 내 시선은 칠판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소설이나 책을 빌려 딴짓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이 버릇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항상 다른 상상들로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내가 공부를 한 시기는 딱 3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1~2개월 그리고 읍내 중학교에서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 4개월 정도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변해 가야겠다고 변심하고 공부한 그해 6월에서 11월까지다. 그렇다고 수업을 열심히 들은 적은 없었다. 국어 시간엔 역사를 역사 시간에 국어를…. 항상 딴짓만 하고 다녔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재미가 있지만 "이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 재밌는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데, 소설을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취미로는 꽤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 성인은 1년에 책 한 권 정도는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읽는 사람만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시대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멸종되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도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이나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그것도 실용적인 내용도 아닌 긴 소설이라니…. 읽힐 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에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나 현대 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수상작들의 단편을 꽤 읽어 봤다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나는 매년 발표되는 수상작을 기다려 구매했다. 꽤 재밌어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제 이런 소설들이 유튜브와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한 소설이나 무협 공상 과학이나 웹툰 아니면 실용서들이나 지식을 전하는 책들과 같이 비교해도 읽는 재미로 치면 경쟁이 안 될 것 같다. 작가들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구례 서시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이 보였다. 섬진강 책방에서 열리는 문학강연이었다. 제목이 "문학의 필요성"이었다. 역설하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찾아서 필요성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물론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잘 팔리고 많이 읽거나 적어도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시대지만 여전히 쓰는 사람을 쓰고 읽는 사람을 읽을 것이다. "아니, 아니요. 이건 행복한 꿈이랍니다. 그것은 제 소설이지요. 저는 그것을 우편함에 넣고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 어언 매큐언의 말로 끝내고 싶다. 그러함에도 쓰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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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0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 같은 걱정은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기도 하다. 음식을 소비 할 아이들이 없다. 한 명뿐인 식구는 한 달을 굶어도 될 만큼 배에 전대를 찬 듯 저장하고 있으니 별 신경 안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살이 쪘으니 잘 먹기 보다는 어떻게 굶을 수 있는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형편이다.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은 음식을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티비도 음식채널만 보고 책도 음식 관련 책 등 너무 먹는 일에 치중해 온 것 같다. 잘 멕여야 된다는 책임감이 강해 내 손으로 한 음식을 먹는 동물(사람 포함)들에게 너무 많이 멕여 모두 과체중이다. 물론 질도 좋은 것으로 해주려 했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을 고백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권여선 이란 저자 때문인데 공선옥과 햇갈렸다. '춥고 더운 집'에서 고생하던 공선옥의 메뉴가 궁금했던 것인가. 권여선이 적은 여러 가지 음식도 맛깔스럽고 먹음직스럽지만 그 음식을 표현하는 솜씨가 더 맛깔스럽다. 그러고 보면 음식을 소개하는 창의적인 레서피를 만들어 내는 일도 어렵지만, 이렇게 방법과 과정과 맛을 소개하는 산문이 훨씬 어려울 것 같다. 음식을 보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 꿀꺽 침을 삼키고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재료의 특이성과 맛의 표현, 그리고 그 음식을 먹게 된 역사 같은 것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권여선의 위장을 추앙하고 싶다. 그녀는 작가들 사이에 알려진 주당인 듯하다. 일단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은 거의 안줏감이다. 사실 주당 눈엔 모든 반찬이 안줏감으로 보이고 어떤 술이 어울리나 먼저 본다. 반찬에 따라 막걸리, 포도주, 중국술, 소주...를 선택하며 먹기도 전에 일차로 안주에 취한다. 우리 집에도 한사람 있어 내가 그 속내를 잘 안다. 난 영양과 맛과 건강을 생각해 만들지만 그의 눈에는 모두 안주로 보이는 것이다. 권여선 음식의 또 하나 특징은 매운맛이다. 청양고추의 그 무시무시한 매운맛을 그녀는 즐긴다. 우리 집 한 사람도 한 때는 그랬다. 청양고추를 듬북 넣어 먹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소가죽 같이 튼튼한 위장을 가진 족속들이다. 난 사람들이 고기와 즐겨 곁들이는 날 마늘을 먹지 못한다. 위가 뒤틀리며 아프다. 샐러드에 들어간 약간의 양파나 고기에 나오는 생 양파는 아주 조심해서 극소량만 먹어도 속이 아프다. 물론 술은 안받지만 한 모금이라도 먹으면 다음날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도 망치로 맞은 것보다 아프다. 술꾼의 소가죽 같은 위장이 정말 부럽다. 나의 위장은 금이 좍좍 그어진 낡은 레이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맛있고 매운 안주가 가득한 위험하고 맛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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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 안녕♡바오 내 친구 어린 바오밥
    내가 사는 하동에는 글 쓰는 사람이 많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시인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근처에 있는 이곳에 살다 보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인 흉내를 조금씩 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어떤 이는 진짜 시인이 되기도 하고 소설가가 되기도 한다. 신비하고 장엄하고 영롱하고...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연과 매일 마주하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심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뿐 아니라 그림, 노래, 춤 등 여러 방법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지리산 자락에 투성이다. 박남준 시인은 하동의 대표 시인이다. 그가 낸 시집은 하동도서관에 가면 즐비하게 꽂혀있다. 모두 뽑아와 읽어보면 그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만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쓸수록 마음이 맑아져 마침내 아이같이 순수해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그의 글을 읽으며 한다. 꿈을 꾸다 사랑하고 마침내 그 사랑을 찾아 떠나고 길고 힘든 여정 끝에 조우하고 입맞춤하고 품에 안고 돌아와 매일매일 돌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나무 구멍처럼 빨려 들어간다. 세상에 바오밥나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나무의 밤의 모습과 낮의 모습, 사람과 함께 있고 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누군가가 깊이 사랑하기에 그 사랑은 전염돼 함께 사랑하게 되는가. 이 사진들만 보아도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내 곁에 있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돌보는 이야기는 딱딱한 마음을 말랑말랑 녹여준다. 바오 안녕,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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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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