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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함께읽기9 김정희: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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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려, 어느덧 마지막 편에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희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채소와 과일은 맛이 다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타고난 특성이 다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다 다를 텐데. 그러나 세상이 정한 잣대는
하나뿐. 능력으로만 줄을 세웠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어릴 적부터 성적으로 평가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려 하루하루 버텨 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적인 삶이자 고민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좀처럼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모두가 경쟁 사회에 내몰려 남보다, 아니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한 발짝이라도 뒤떨어지면 패배자로
취급받는 게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아파트
평수에서부터 성적 순위, 직급 순위, 모든 게 경쟁으로
내몬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제각각인데. 이걸 인정해 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가 제 능력을 기를 마음의 여유도 없다.
‘언젠가는 이걸 하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 내가 잘했던 것을 하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아냐. 지금은
여유가 없어. 나중에, 나중에…….’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이라는, 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어서 그 길로 쭉
걸어왔지만, 꿈이 일상이 되니까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 있는 삶, 좀 더 다양한 세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50대 중반에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어때?’
도시에 살면서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막연히 꿈꿨다. 꿈과 희망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찮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늘 비슷한
넋두리를 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지만, 당장 뭐 해서 먹고살아.”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누구나 평생 고민하는 문제. 그
문제에 매달려 꿈도 희망도 스스로 접어 가면서 현실에
매달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 사람의 삶이
아닌가. 나 역시 막연히 꿈만 꾸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내가
여태껏 해 온 책 쓰는 일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데도,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 몸이 멀리 떠나는 게 왠지
망설여졌다.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과
치열함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말겠다며,
아주 낭만적인 세상을 꿈꾸면서 가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터전. 밤이면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 그저 온라인
검색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때마침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화성에 내 상상과
비슷한 터전, 그리고 전원주택이 셋집으로 나왔다. 화성은
반으로 갈라서 반은 동탄이라는 아파트 숲이 있고, 나머지
반인 서해 바닷가 쪽으로는 강원도권이라고 일컬을 만큼 시골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라고 했다. 농촌 풍경과 바닷가가
어우러진 마을이라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다. 옆지기에게 말하려니 좀 조심스러웠다. 그도
언젠가는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고 미루어 왔다.
돈을 더 벌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대체 그 ‘때’가 언제인지,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은 포기하고 말 것 같았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라고 당장 모든 걸 접고 가자는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 조언에 따라, 어디든 정착하기 전에 일단
셋집을 구해서 살아 보고 그다음에 정착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자는 거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고 하니.
당연히 처음부터 도시나 아파트 생활을 다 접고 산골짜기나
궁벽한 촌으로 가자고 하면 덜컥 겁나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그것도 살 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는데 당장 내려가자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면서 안 가느냐고 따지거나 대거리를
하면 서로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냥
부담 없이 가볍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가 보자고 나름 꾀를
낸 것이다. 그럼 마음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
내 제안에 옆지기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다. 찾아간 집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적어 두었던 모양보다 훨씬 큰
전원주택이었다. 집을 직접 지은 옆지기가 세상을 먼저 떠난
후에 비워 둔 집이라고 했다. 나무도 많고, 전면이 유리로 된
거실과 이층 창이 갑갑한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널찍하고
비교적 깨끗한 전원주택을 보면서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옆지기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내 의견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도 극구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였다.
여전히 우리에겐 시골에 들어와 살 용기가 부족했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살아 보자.”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한번 살아 보자고
고민 끝에 뜻을 모았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마음을 정한 김에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준비했다. 마음만
품고 도전하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서 끙끙 앓기만 할 테니까.
때는 11월 말이어서 김장이며 이것저것 겨울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이사하는 게 마음이나 생활에
안정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말이다.
시골 생활은 하루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 어쩌면
멈춰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밤과 낮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마음부터
먼저 느슨해진 탓일 거라고 여겼다. 화성시는 시골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들어간 면 소재지 마을은 바다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이고, 누가 봐도 농촌 마을 풍경이었다. 하루에 노란색
마을버스가 몇 번 오갈 정도니 승용차가 없으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도시와 아파트,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늘 시간에
쫓기듯 계획을 하고 일정을 마쳐야 하고, 시간이 아니라
분까지 쪼개 홀로 계획했던 생활에서 한결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넉넉했다. 드넓은 하늘과 탁
트인 시야, 넓고 끝없는 들판, 하늘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비록 겨울이지만 정겹기 그지없었다. 마치 꿈꾸던
세상에 성큼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마음마저 들어 일부러
겨울 들판과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왜 이런 세상을 그동안 몰랐을까.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훨씬 벗어나 어느 곳엔가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시간이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
여겼는데,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달았다. 시간 개념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고즈넉하고 한가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도
때로는 심심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싫든 좋든
서로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공동생활에서 벗어나니까 마치
두꺼운 껍데기를 벗어 버린 것 같아 가벼웠는데, 아직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라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심심함마저 즐겨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일명 ‘자본주의 병’이라는 병에 걸려서 살았던 걸까.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을 즐기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바쁘게 사는데 나만 한가하게 보내니까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을지, 지인들과 멀어지지 않을지, 책을 내는
출판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뒤처지지 않을지, 온갖 잡념이
밀려들었다. 한때는 도시에 살면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평생을 보내며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에 가까운 삶,
조금은 여유를 부리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감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변덕스럽다고 했던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불안을 처음에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다른 일을 찾아냈다.
심심할 때는 심심한 대로 그대로 멍하니 산과 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아니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집어 읽었다.
원고 쓰는 데 매여서 책 읽기를 조금은 미루어 두곤 했는데,
심심한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도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 쓰기에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나도 모르게 책 읽는 일에 소홀했다는 걸
책을 손에 잡으면서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이건 자본주의 병이야. 이제 느리게
느긋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해.’ 하면서 마음을 다독거렸다.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걸 현실에서 살려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껏 습관처럼 하루에 원고 몇 매라도 써야지
마음이 놓였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농사일이 점점 커져 일이
많아지고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삶을 사니까 피곤해서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따뜻한 팥죽 한 냄비
겨울이어서 그런지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마을에 모여 사는 집이 여덟 집뿐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살아도 별로 교류도 없고 데면데면한 도시와 달리, 시골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끼리 정이 끈끈했고 그만큼
외지인을 낯설고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마을에 들어와 사는지,
어떤 사람들이 마을에 무슨 해를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선뜻 낯선 집에 문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아마도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습관이 되어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70대가 한 분, 대부분 80대였다. 몇십 미터 뚝뚝 떨어진
아랫집이나 윗집 둘레를 산책하다가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왠지
무뚝뚝하고 마뜩잖은 듯 겨우 인사만 받아 주고는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문 앞에 낯선 양은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뚜껑을 열어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팥죽이었다. 오늘이
동짓날이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아직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인데 누가 팥죽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것도 말도 없이
조용히 갖다 놓고 갔다. 불현듯 팥죽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동짓날이 되면 그 전날 밤에
팥죽을 쑤었다. 경상도 풍습이었다. 그때는 오랜 관습으로
팥죽을 쑤면 사람이 먹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나가 담벼락을
돌며 팥죽을 던졌다. ‘고수레 고수레’ 하고 팥죽을 던지면서
나쁜 기운과 악귀가 물러나서 새해에는 집안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동지가 되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한 번도 팥죽을 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온 팥죽이
까마득히 잊힌 추억을 되살린 것이다. 내가 영천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한겨울이라도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일부러 눈을 맞으며 얼마나
좋아했던지. 엄마가 팥죽을 끓이는 동안, 우리 골목 이웃 골목
아이들까지 죄다 나와서 강가에서 눈싸움을 벌였다. 그 장면이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라 마음마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참 아련한 시절.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왔다.
냄비에 손을 갖다 대자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맛있게 먹고 나서 낡은 양은냄비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는 게 팥죽을 쑤면서
고생하신 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옆지기를
깨워 낡은 양은냄비를 내밀면서 팥죽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하니까, 부스스한 몰골로 감탄을 쏟아 냈다.
“이게 시골 인심이야. 아직 시골은 이런 인심이 남아 있었네.”
웃음을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팥죽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양은냄비 주인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윗집 할머니였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 팥죽을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동지니까 나눠 먹고 싶어서 살짝
갖다 놨어.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까 고마워.”
할머니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80대 부부를
모시고 외식도 하고, 서로 날마다 들여다보는 관계로
발전했다. 서로 음식도 만들어 갖다주고, 세상 사는 얘기도
나누곤 했다. 할머니가 좋게 소개해 주신 덕택이었을까.
마을에서는 한결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눌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번은 가뭄이 이어지는 어느 날 허리가 반쯤 고꾸라진
할머니가 휠체어에 20ℓ나 되는 물통을 얹어서 힘겹게
오시다가 길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 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얘기 많이 들었어. 마을에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할머니한테
왜 집에서 힘들게 물을 가지고 오냐고, 우리 집에 지하수가
펑펑 나오니 그걸 쓰면 되잖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이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을 들이지 않아서
아예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수를 호수로
빼서 꼬부랑 할머니네 밭에 내다 주었다. 고추와 들깨 밭이
시원한 물로 흠뻑 젖어서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넓은 밭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그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안 가! 얼마나 인색한지 밭에 물
한 번 쓰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자기들 한 달 사용하는
전기세를 몽땅 물으라고 했어. 그게 몇만 원이야.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서 앞집에 지하수가 잘 나오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지 않았어.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먼저 물을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밭에 열무 나면 뽑아 가서 열무김치 담가
먹어. 들깨도 한 가지에 한 개나 두 개씩 따서 먹어. 한
가지에서 너무 많이 따면 열매가 잘 안 열리거든.”
할머니도 내가 물을 내준 데 대해서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그제야 안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발을 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줄 알고
지냈는데 다 까닭이 있었다. 시골 생활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낭만이나 꿈같은 생활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면서 아름다워진다는 걸 갈수록 깨달았다.
윗집 할머니가 콩과 여러 가지 씨앗을 갖다주었다. 그러면서
씨앗을 심을 시기와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언제쯤에 비료를
넣어 줘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주민들의
넉넉함이 농사를 짓는 데뿐 아니라 생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을 먼저 내어 준 그 보답으로 가끔 모시고
나들이를 하면 노부부는 무척 좋아하고, 먹고살려고 일만
하느라 놀러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넋두리도 하셨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할머니는 또 밭에서 수확한 팥이며
콩이며 지인이 주었다는 액즙까지 골고루 갖다주었다.
부침개라도 부치거나 빵이라도 사 오면 약소하나마 나눠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제대로 잘 자라지 않는 작물에
관해 물어 조언을 받기도 했다. 모르는 걸 물으면 귀찮아할
줄 알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대견해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우셨나 보다. 세대를 넘어 마음을 나눌 마을
동료가 생겼다는 데서 나 역시 평화를 느꼈다.
마트에서 고르던 채소를
내 손으로 키우면서 만난 세계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트에서 사 먹던 작물을 내
손으로 키워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장을 보고 치르는 돈이
훨씬 적어지고 생활비 부담도 줄었다. 내 노등으로 키워서
먹는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흐뭇하지만, 무엇보다도 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보람을
느끼게 했다. 작은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가 매달리고,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보면 작은 씨앗 하나가 온
우주를 품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물의 성장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한 무한한 세계였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면 내가 반찬으로 뜯어 먹고,
밭에 남은 작물은 저 혼자 자라서 꽃을 피웠다. 그 사이에도
온갖 벌레들이 작물에 들러붙기도 하고, 나비나 벌들이 꿀을
빠느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식물에게는 괴로움이면서
즐거움일까. 이 시간을 보낸 덕에 열매를 맺고, 또 작은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먹거리를 길러 먹는 삶을 통해 자연 순환 원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덕에 창작 의욕이 새롭게 일어났다. 내 마음에 창작 씨앗이
들어오고, 그 씨앗은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웠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잘
참으며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고 나니까 결국은 열매를
맺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작은 생각 씨앗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어서일까.
글 쓰는 일이 보람되고 견딜 만했다.
흙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나도 모르게 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흙이 손에 묻으면서 지저분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만지다 보니까 오히려 내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그 가운데서도 행복했던 기억보다 속상하고
슬픈 일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를 슬프게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 왜 그때 바로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후회가 내 마음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럴 때 흙을 만지면 상처도
나쁜 기억도 속상했던 일도 시나브로 치유되어 갔다.
일부러 흙을 만지고 싶어 장갑을 끼지 않곤 했는데 엉뚱한
부작용도 생겼다. 면사무소에서 무인발급기로 서류를 떼려고
했는데 기계가 내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손이 거칠어서 지문이 찍히지 않는다는 말을
공무원에게서 듣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비용을 두
배나 치르고 서류를 떼곤 했다. 장갑을 껴야지 했지만 흙만
보면 맨손으로 만졌다. 내 오랜 도시의 때를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닳아서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마을 쓰레기 버리는 요일을 정해서 같이 버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분리배출도 할 수 있고, 쓰레기도 불에 태우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래도
시큰둥하기에 날씨와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냈다.
“해마다 장마 아니면 가뭄이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요. 날씨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늘 걱정하면서요.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겨울에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고요.”
“아이그, 그것 좀 태우고 버린다고 날씨가 이럴까 봐.”
어른들은 날씨와 공기와 쓰레기 분리배출 사이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괜히 어른들한테 잘난 척한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주거지를 완전히 농사짓는 시골로 옮기고
나서는 기후 문제와 공기 오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언젠가는 환경문제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는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막상 시골로 오니까 피부로 눈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심각성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
도시에서는 하늘이 좀 흐린 것쯤으로, 비가 좀 많이 내린다는
것쯤으로, 뉴스에서나 책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 보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보니까 환경이
얼마나 절실하게 나빠져 가는지 보여 불안하기까지 했다. 마을
할머니들은 밭에 뿌릴 종자 씨는 적어도 3년 정도는 잘
보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마다 장마와 가뭄이 번갈아
바뀌면서 자칫 종자도 건지지 못하는 세상이 올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쓰레기 문제다. 음식물은 텃밭에 흙을 파고 묻어서 거름으로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쓰레기는 언제 처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쓰레기 수거 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거니까 청소과가 따로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바꿔 가면서
언제 쓰레기를 거둬 가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쓰레기를 따로 버리지 않아서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게 여태껏
당연한 거라고 여겼는데 여기서는 번거롭게 전화를 걸어야
하고, 요일과 대충 시간을 잡아야 버릴 수 있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마을 할머니들한테 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빈 병은 모아 놓으면 고물상에서 가져가고, 음식물은
밭에서 썩혀 거름으로 이용하고, 다른 비닐이나 생활 쓰레기는
통에 넣고 한꺼번에 불 질러 태운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몸으로
깨달으면서 자연의 변화를 더 빨리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날씨와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는 따로라고 여기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환경문제를 처음 접한 게 90년대 초반이었다. 최열 선생님이
‘공해추방위원회’를 만들어 환경문제 시민 교실을 열었다.
지금 ‘환경연합’이 생기기 전에 생긴 시민단체였다. 아직 문학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 시민 교실 강의가 있으니
함께 공부하러 가 보자고 여럿이 의견을 모았지만 결국은
나와 후배 둘이서만 등록을 했다. 원자력, 핵폭발, 공해
문제를 다룬 강연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로 여겼다. 물론 그즈음에 대구
낙동강 페놀 사건이 한바탕 언론을 달구었지만 한 지역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보아 넘겼다.
환경문제 공부를 하러 다닌다니까 오히려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공부를 다닌다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먹자고
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환경 공부를 했다고
실천에 옮기겠다면서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지 않고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도 전기도 물도 아껴야 한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세숫비누로 감은 머리는
기름기가 많아서 찝찝해 다시 샴푸를 사용하고, 일회용품도
문명의 혜택이라며 편리한 대로 썼다. 물과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건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었지만, 다른 것은
대충 넘겼다. 환경문제를 강연이나 책을 통해 머리로만
느꼈지, 피부에 와 닿게 내 문제로 여기지 못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시골로 들어오니 내가 만든 쓰레기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서해와 가까운 곳이라 겨울철만 되면 미세먼지가
점점 더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는 게 눈에 띄었다. 눈에
보이니 그제야 심각성을 좀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는 건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한다지만 여전히 마트에서도 장을 봐야 하는데,
대파 한 단, 호박 하나를 사도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지
않나. 고기를 사도 생선을 사도 두부를 사도 비닐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어찌
쓰레기를 안 만드나.
예전에는 포장되어 나온 식품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신경을 쓰니까 포장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려고 애썼다. 비닐봉지도 처음에는 10분의 1로
줄여 보자고 했는데, 비닐 홍수 시대에 살다 보니 금세 첫
목표는 이루었다. 그다음은 20분의 1로 줄였지만, 그래도 몽땅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비닐봉지는 재활용할 수 있게
양념이나 다른 이물질이 묻었으면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
버렸다. 그런데 포장재를 깨끗이 씻느라 흘러간 물 역시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하수 처리에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쓰인다고, 게다가 분리배출한 생활폐기물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60%도 채 안 된다32고 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분리배출을 잘하는 일보다 덜 사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일체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물론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은 두 마리 시켜야 읍내에서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먹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피자, 족발, 치킨 등등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배달해서 손쉽게 먹던 습관에서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맛있게 먹던 음식을
한꺼번에 끊자니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배달을 시켜 먹던
음식에서 가끔 먹고 싶은 욕구가 솟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
왔다.
먹기가 불편해지니까 사 먹는 음식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해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는 솔직히 맛이 덜했다. 온갖 양념과 사람들 입맛에
착 달라붙게 연구해서 만든 음식을 어떻게 따라가겠나
생각하고, 건강과 환경을 챙긴 대신 중독성 있는 양념을 좀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배달 음식을 끊고 나자 이번에는 미용실에 꼭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지 또 의문이 들었다.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서
스스로 가위로 자르고 들쭉날쭉한 뒤쪽 머리카락은
옆지기에게 부탁해서 잘랐다. 내가 미용실에 드나들지 않자
옆지기도 내게 머리카락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에서 머리 자르는 기계를 사서 앞머리 쪽은 남편이
자르고, 뒤에 보이지 않는 쪽은 내가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솜씨도 늘었다. 시골에서 이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면서 장난도 치고, 얼마나 예쁜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킥킥거렸다.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
2년쯤 지나자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도시로 나가서 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시 집을 정리하고, 세 얻은 집에서
나와 완전히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쯤에 농사를 더
늘리면서 식량을 자급자족 형태로 바꾸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게 지금은 꼭 맞춰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될 수 있으면 화장을 해야
하고, 옷과 신발을 갖춰 입어야 하고, 남에게 흠 잡히지
않겠다면서 외출을 할 때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도시 생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몸에
피부처럼 배인 습관을 하나둘씩 벗어 내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쓸데없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모습 그대로
편하게 대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누가 억지로 그렇게 꾸미고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회 분위기와
스스로 만든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생긴 대로 나를 드러내기, 외모와 옷으로 평가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겉을 꾸미는 일보다 내 색깔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 그리고 화학물질로 내 몸을 망가뜨리지
않기. 내 시골살이에서 찾은 지혜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미루어 오던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만이 알고 나만이 실천할 게 아니라, 널리 알리면서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는 걸 조금이라도 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삶을 끊으려고 맘먹기까지 많은 핑곗거리와 제약 조건이
퐁퐁 튀어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럴 때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내 커리어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가는 사람들보다 중요한가? 내 식욕이 나를 지탱하는 이
지구보다 중요한가? 내 외모가 내 건강보다 중요한가? 좀 더
편리한 삶이 내 생존보다 중요한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답하기를 두려워하는 것뿐.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에서 실천을 향해 발걸음을 떼면 된다. 그러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생명을 덜 해칠 수 있고, 또
지구 환경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세상이 막막하더라도 내 존재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희망을 품어야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한
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도 더
젊어서 무슨 일인가에 원하는 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내 현실이 막막하고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라고 여겨지면, 그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이다. 결국은 환경도 나이도 경제적 형편도
내 모든 도전을 지배할 수는 없다. 환경이 힘들고 어렵고
막막하면 그 환경을 바꾸어 사는 삶에 도전해야 한다. 가만히
그대로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기만 하면,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먼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말고, 그 방향을
향해 한 발자국 먼저 내딛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김정희 ◌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에서 벗어나고파 시골을 택했는데, 그동안 머리와
마음으로만 살던 삶에서 몸으로 사는 노동을 병행하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는 삶은 건강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화>>, <<야시골 미륵이>>, <<노근리 그
해 여름>>, <<대추리 아이들>>, <<곡계굴의 전설>>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써 왔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 환경 문제에 절실함을 느껴 <<후쿠시마의 눈물>>, <<시화호의
기적>>, <<비닐봉지가 코끼리를 잡아먹었어요>>, <<별이네 옥수수밭
손님들>>, <<아마존의 수호자 라오니 추장>> 등 여러 책을 썼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글이 마음에 드신 분은,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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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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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함께읽기 8 아랑:지구에 해롭지 않으면서도 하고픈 걸 하며 살고 싶은 청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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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⑨ 김정희 :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지구에 해롭지 않으면서도 하고픈 걸 하며 살고 싶은 청년에게,"주저하는 마음이 들고, 두려워도 괜찮아요. 우리 같이 해 볼래요?"
아랑
땅은 언제부터 인간의 소유물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내가 살
집을 갖기 위해 평생 돈을 벌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된
걸까. 몇백만 년 지구 역사에서 채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을
머물다 갈 집을 ‘소유’하겠다고 내 평생을 바쳐야 한다니! 난
도저히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스무 살 이후 나는 자본주의에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해 오지 않았나 싶다.
삶 대부분을 바쳐 돈을 벌어야만 하는 현실을 벗어던지기
위한 방법을 찾고 또 찾아 헤맸다. 이것은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허브가 내게 가르쳐 준 것
어린 시절 전문직 여성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파란색
블라우스에 힐을 신고 어떤 일을 진두지휘하며 이끄는 모습.
왜 그게 멋진 여성이라 생각했던 건지, 지금 내 모습과 너무
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굽 높은 구두를 신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지금 난 개량 한복을 입고 팔에 분홍 토시를 끼고, 알록달록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쓰고 땀 냄새 풀풀 풍기며 농사일을
한다. 꽃을 따고, 허브를 수확해 말리고, 모종을 키우고, 풀을
뽑는다.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기까지는 방황하고 침잠하던
시기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 같은 감정들이 나를 지배했지만, 그런 시간을 잘
버티고 나니 기회가 왔다.
지금으로부터 여섯 해 전, 영국에서 처음 허브를 만나게
되었다. 1년 넘는 외국 생활을 하며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다가, 영국 한 작은 도시로
흘러가 허브가 가득한 정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숙식을 공짜로 얻는 대신 일을 돕고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 만난 허브가 ‘세이지’였다. 여린 색에 보들보들한
그 세이지 잎이 소화작용에 도움이 된다는 영어로 된 허브
책을 보고 날마다 세이지 잎을 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밭 곳곳에 있는 레드커런트나 블랙커런트 같은 작은
열매들을 따서 잼을 만들고 디저트를 만들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내 몸이 느끼는 불편함과
아픔을 반드시 다 약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허브를 공부하면 가벼운 통증들을 스스로 돌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둘레에 나는 풀로 제 몸을 보하는 일이야말로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 조상들이 몸을 돌보던 방법이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 슬기로운 지혜들이 왜 먼지가 가득 묻은
채 저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퍼머컬처permaculture를 만나게 되었다.
퍼머컬처란 지속가능한 농사를 바탕으로 만든 삶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자연 체계에 따라 농사짓고
에너지를 적게 써 자급하는 생활 방식 또는 순환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일을 아울러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2017년 2월
페이스북에서 퍼머컬처 디자이너 양성과정이 열릴 거라는
공고문을 마주하자 홀리듯이 ‘이건 가야 해!’ 하는 마음을
먹었고, 결국 2주라는 시간을 비우고 돈을 마련했다.
그때 내가 느낀 퍼머컬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며 나
스스로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농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목수만 숟가락이나
책상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원한다면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버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거나 교환하여 사용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퍼머컬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삶을 꾸려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당연하게 내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삶이 있었다. 왜 이제껏 아무도 나에게
이걸 알려 주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게 뭘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잘 곳과 먹거리가 해결되어야 하겠지.
농사를 짓는 일을 멋지다고 생각한 가장 큰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먹고살 거를 해결해 주잖아!’ 거기다가
식재료를 살 때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무수한 쓰레기들을
감당할 필요가 없어진다. 먹고는 살아야겠으나 먹거리를 살
때마다 딸려 오는 그 무수한 쓰레기들 말이다. 게다가 농사가
잘되거나 수확물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팔아서 여윳돈을 벌
수도 있다.
‘아지랑’, 자급으로 가는 길
살아가는 것만으로 지구에 이미 너무 해로운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나는 아주 미비할지라도 지구가 겪는 고통을 덜어
주고 싶었다. 탄소를 가두는 농법으로 땅과 미생물들을
살리고, 그 땅에서 나는 농작물을 먹고 살며 쓰레기를 덜
배출하고 순환이 이루어지는 자급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
먹거리 자급에 대한 욕망은 퍼머컬처를 만난 이후부터 무척
커졌는데, 2017년부터 2019년 서울에 사는 동안에도 옥상에서
상자 텃밭을 가꾸었고,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작은 텃밭을
빌려 농사짓기도 했다.
퍼머컬처를 만나고 공부하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2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2019년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로 오게 되었다. 마침 경상북도에서
‘도시청년시골파견제’라는 청년지원사업이 있어서, 퍼머컬처를
기반으로 한 어린이 교육을 진행하는 ‘생태감성충전소
아지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내가
바라던 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꿈같기도 하고 얼떨떨했다.
지원받는 기간 안에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무작정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무모하게 그리고
얼렁뚱땅 말이다.
퍼머컬처는 처음 2-3년이 아주 중요한데, 그때 두둑이 높은
밭을 만든 후 다년생(여러해살이 작물)을 중심으로 심고,
짚이나 우드칩이나 왕겨 같은 자연 재료로 흙 표면을 잘 덮어
주어야 하며, 무성히 뚫고 나오는 풀도 돌봐야 한다. 지난해
첫 번째 여름은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말고는 주로 밭에서
살았다. 아지랑을 시작하기 전 퍼머컬처를 2년 동안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1년 농사를 제대로 시작한 건
처음이었고 다양한 작물이 있는 만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르는 작물도 많았다. 그런데 난 그냥 했다. 모르는 건
인터넷을 뒤지며, 책을 찾으며, 도저히 모르겠는 건 주변에
물어 가며 절기마다 해야 할 농사일들을 허겁지겁해 나갔다.
무모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우선 나에겐
퍼머컬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지구를 위해, 또 온 생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퍼머컬처를 삶에서 실현하는
일이라고 믿었기에 일단 시작해 보고 싶었다. 퍼머컬처 농사는
자리 잡기까지 적어도 3년에서 5년이 걸리기 때문에 얼른
시작해 3년 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들이 먹을 채소를 자급하리라는 기대가 나를 움직이게 한
큰 힘이었다.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땅에서도
먹거리를 기를 수 있다. 그것은 반드시 농업을 공부해야
하거나 대규모 농사를 짓거나 먹거리 모두를 자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만이라도 괜찮으니 내 먹거리를 내가
생산해 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용기 그리고 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자급이 시작된다.
자급하는 길을 탄탄히 만들어 주는 채식
나에게 자급이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나는 여전히 삶을
꾸리기 위해 소비를 해야 하지만, 농사를 짓고 또 생활재
만드는 기술을 익히며 조금씩 자급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대략 2016년부터 채식을 하고 있는데, 채식을 시작하면서
더욱 자급이 절실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페스코
단계(육류만 먹지 않고, 바다 동물과 알, 유제품은 먹는
단계)로 채식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채식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험난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나마 페스코는 사 먹을 게 있지만, 2년 정도 전부터
비건 지향으로 살면서부터는 정말 스스로 요리해 먹는 게
가장 속 편했다. 지금은 비건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넓게
퍼져서 수도권 쪽은 채식인으로 살기 나쁘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지방은, 글쎄? 이 불편함 덕분에 빵이든
요리든 이것저것 더욱 시도해 보게 된다. 어느 동물도
착취하지 않고 마음 편히 먹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걸 파는
데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정이 꽤 흥미롭다. 밖에서 무엇을 사 먹으려면
불편할 때가 많고, 누군가와 만날 때도 식당을 고르기가 쉽지
않음에도 그걸 다 감수할 가치가 있다 싶게 비건을 지향하는
여정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 요리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내가, 먹는 것만 좋아했던 내가,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먹고 싶던 채식 레시피를 실현해 보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농사를 짓고 있어 재료까지 선택해 직접
키울 수 있다. 이게 바로 선순환 아닌가? 게다가 최근에는
함께 사는 강아지가 몸이 아파 자연식으로 만들어 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자급 농사를 향한 의지가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 강아지에게 줄 건강한 먹거리를 키워
내는 농부가 되어야지!’ 하는 열정 가득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자급력을 +1, +3 ‘레벨 업’ 해 나가고 있다.
생명 감각을 잃지 않는 밥벌이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내 일생을 돈 버는 일에 바치고
싶지 않았다. 내 밥벌이가 나를 살리고 지구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생명 감각을 잃지 않는 밥벌이’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밥벌이가 되기를 바랐다.
2016년 환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찾아다니며 공부하다
보니 어찌 잘 연결되어 서울에서 에너지 및 기후변화 강사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면 심장이 세상 쿵쾅거리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고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강사가 될 줄이야.
(인생은 결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현인의 말씀을 다시
새겨 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나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 늘
소비자로 살던 내가 생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러
경험을 통해 몸으로 배워 나갔다. 반드시 석박사를 해야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 신념과 열정을
품어 공부하고 또 실제로 그 현장에 뛰어들며 겪다 보면
누구에게든 자기 기술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일은 내 일이 되어있지 않을까?
나는 어린이들을 만나 교육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둔다.
감사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에 금과 은보다는 희망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생각한 선생님을 만나 생명은 귀하다고, 우리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배웠다. 겨우 한 해였지만, 그 시간
덕분에 어른이 된 내가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도 어린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비인간동물들과 인간동물이 공존하는 세상… 그러한 자연
이치들을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결과, 나는 지금 퍼머컬처를 실현하며 그 길에서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길고양이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귀한 생명임을 말하고, 밭에 쪼그려 앉아
괭이밥을 뜯어 먹기도 한다. 밭에서 수확한 허브들로 모기
기피제를 같이 만들고, 아카시아로 만든 만두를 함께 해
먹기도 한다. 한번은 어린이들과 같이 무전, 고구마전,
배추전을 구워 먹었다. 밭에서 무와 배추를 거둬 씻기부터
부침가루를 묻혀 팬에 굽기까지 아이들이 온 과정에 다
참여하는 수업이었다. 그때 한 어린이가 열심히 구운 전을
먹으며 말했다.
“아랑! 저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아이가 내뱉은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란 나는 “아직 어린데
그게 무슨 말이야.” 해 버렸다. 그러자 내가 당황한 걸
느꼈는지 아이가 “아니요, 아니요, 지금 말고 나중에 어른이
돼서 지금을 떠올리면 그럴 것 같다고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말을 한참을 되뇌었다. 너무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펐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순간을 될 수 있는 한 힘껏 자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렇게 우리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을 때
충만하고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느끼며 자랄 수
있길 바란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불을 끌 수 있다
이렇게 나는 어린 나의 친구들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을 진행하며 지구 한 생명체로 살아
나가는 길에 있다. 그렇게 세상이 요구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인 방향에서 벗어나 지구를 위한 방향으로 스스로
노선을 결정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이 여정이 절대
완벽하지는 않다. 팜유가 오랑우탄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산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라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비건을 지향하지만 간혹 어쩔 수 없는 상황엔
페스코 단계까지 타협하기도 한다.
늘 생각한다, ‘나는 죽는 날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지구와
지구의 많은 생명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겠구나’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인간동물들은 무수한 비인간동물들
서식지를 파괴하여 문명을 누리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가 쓰던 플라스틱은 지구에 남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있는 힘껏 내 생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싶다.
나는 생태학자도, 기후위기 전문가도, 과학자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에 사는 한 인간동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집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툰베리Greta Thunberg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서 불이 난 우리 집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급하는 삶도, 지구를 위해 행동하는
삶도 특별한 누군가 또는 여유 있는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알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마음을 벗어던지는 것과 나 하나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하는 마음을 벗어던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는 슬픔은 상대방도 느낄 수 있고, 지구가
느끼는 아픔은 우리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같이 나무를
심고, 채식 위주로 맛있게 먹고,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함께하면 좋겠다. 그렇게 허울과 껍데기는 벗어던지고 진짜
우리 알맹이를 함께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 아랑 ◌
아랑 또는 다혜라고 불리길 바랍니다. 강아지 토리, 고양이 우주와
함께 살며 경북 구미에서 퍼머컬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어린 생명들과 함께’ ‘어린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교육공간’이라는 뜻의 생태감성충전소 아지랑을 운영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자본주의 속 경쟁하는 세상만 있지는
않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농사, 자연, 먹거리, 비건, 퍼머컬처,
자급자족, 비인간동물을 주제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반려동물인 토리를 만나 인생 첫 전환점을 맞았고, 퍼머컬처를
만나 두 번째 전환점을 마주했습니다. 비인간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시작한 이후로, 인간동물밖에 몰랐던 세계에서 비인간동물과
공존하는 세계로 확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이 제 모습대로 살 수 있기를 꿈꾸고, 인간동물이 빼앗고
파헤친 자연 속 생명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해롭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퍼머컬처 농사를 짓습니다.
저는 무척 허술하고, 느리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하루하루 배우며
이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벗자편지>>를 통해 누구나 지구에
닥친 이 거대한 불을 끄는 일에 함께할 수 있고,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도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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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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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라는 우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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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말하면서 그 우열을 가리는 언설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크다거나 작다거나 또는 잘 생겼다거나 못 생겼다거나, 물론 잘 생겼다는 기준이 인간 중심이기도 하지만, 온갖 이유로 차별적 인식을 정당화하는 일이 이 사회에는 너무 많은 것 같다. 다름을 틀림과 동일시하는 언어적 혼선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모든 생명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라는 생명체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하찮게 거명될 까닭이 없다.
그런데 이 책 [참나무라는 우주]를 읽으면서 저자가 특정한 한 종류의 나무에 우선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에 반대를 할 수 없었다. 모든 나무와 풀, 새와 벌레, 사람을 포함한 큰 동물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까지 하나를 이루어 자연의 질서를 구성하지만 역할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래서 참나무를 심어 가꿈으로써 생태적 건강함을 회복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책은 참나무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1년 열두달 동안 참나무를 둘러싸고 수많은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마치 자연 다큐를 보여주듯이 묘사하고 있다. 가을날 어치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머금고 날아 식량을 삼으면서 동시에 그 자손을 널리 퍼뜨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봄과 여름 참나무에 기대어 경쟁하고 싸우며 때로 협력하는 다양한 벌레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미가 배경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여기에 언급되는 존재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래도 책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들이 사는 방식이 너무나 흥미롭고 신비롭기까지 해서 중간에 책을 놓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함께 산다고 하면 ‘공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참나무가 펼쳐놓은 세계에서 참나무는 그저 무대를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참나무는 강하고 크다. 빨리 자라고 오래 산다. 한없이 베풀어도 모자람이 없다. 품어안고 내놓으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넉넉한 나무다.
우리 조상들도 참나무의 가치를 알았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진짜’ 나무라는 말이 아닌가. 조상들의 생각을 유추하자면 참나무와 대비되는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둘 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다만, 좋은 소나무는 궁궐에서 관리를 했기 때문에 백성들로서는 쓰임새가 많은 참나무를 훨씬 더 친근하게 느꼈으리라고 여겨진다.
<농사직설>에서 참나무를 농사에 활용하는 법이 제시되고 있고 생강농사로 유명한 완주 봉동에서의 전통농법 역시 참나무를 멀칭에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마도 참나무만큼 토양 미생물에게 좋은 먹이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을 떠올렸다. ‘어머니 나무’는 숲의 수많은 나무들이 맺는 관계 속에서 특히 크고 나이든 나무가 다른 나무들의 성장과 치유에 깊숙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 실증을 통해서 밝혀내고 있다. 그것은 주로 뿌리를 통한 그물망, 그들을 이어주는 땅속 미생물들의 활동으로 실현된다.
참나무가 뿌리를 아주 넓게 뻗는다는 점에 비추어 어머니 나무가 될 소지가 많다. 나무는 지상부와 지하부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두 책은 함께 읽어볼 만하다. 어쩌면 참나무의 땅속 세계를 알아본다면 줄기와 잎, 도토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못지 않은 풍성함이 있지 않을까.
장 지오노의 책 [나무를 심은 사람], 이를 영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깊은 감동으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황량해진 산에 참나무를 심는다. 정성을 다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토리를 고르고 산에 오른다. 그의 노력이 산을 푸르게 바꾸고 사람들의 마음조차 변화하게 만든다. 그보다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
저자 더글라스 탈라미는 집앞 정원에, 도시의 가로에, 유원지에, 숲에 참나무를 심자고 제안한다. 다른 어떤 일보다 그것이 먼저라고 본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따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손이 닿는 한 이 책의 주장에 함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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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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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청하세요] 지리산운동, 지리산사람들, 지리산 대안문화 담은 책, /지리산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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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운동, 지리산사람들, 지리산 대안문화를 담은 책이 나왔어요.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은 무료료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닌 분들은 서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신청 기간 2월 28일까지 / 배송 기간 3월 4~6일
배송비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서,
> 지리산권에 살고 계신 분들은 가까이 사는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에게 말해서 직접 받으시길 추천합니다.
> 한 주소로 같이 받으실 수 있는 분들은, 한 분이 함께 신청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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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기간 이후, 신청하고픈 분은 아래 메일 주소로 메일 주세요^^
mhghg@naver.com
<지리산 OOO>
땡땡땡한 세계를 상상하는 땡땡땡들의 이야기
생명의 편에 서는 사람들의 살림, 돌봄, 운동, 연대
• 지은이 : 지리산人 편집부
• 기획 : 지리산사람들
• 펴낸곳 : 니은기역
• 발행일 : 2026년 2월 4일
• 정가 : 15,000원
• 판형 128*188
• 쪽수 224쪽
• ISBN 979-11-93365-05-2 03300
#사회일반 #사회문화 #대안문화 #다른삶 #지리산운동 #일상변혁 #생태활동가 #재난과공동체 #마을활동가 #지리산생명 #마고신 #기후위기 #지리산 #섬진강 #생명의편에서기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 ㄴ니은기역ㄱ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백련마을 | @nigi.books | mhghg@naver.com | blog.naver.com/ni-gi
❚ 책소개
산은 침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지리산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당신은 어떤 OOO을 상상하고 계신가요!
이 책은 지리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귀 파기 혹은 귀 씻기 같은 작업이다. 지리산의 신호를 들어야 우리가 움직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날마다 돈, 돈, 돈 해 대는 소리로 귀가 막힌 이들을 위해, 이 책이 귀를 뻥 뻥 뻥 뚫어 줄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덜 자본주의적인 삶을 실험하는 사람들, 재난을 겪은 공동체,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시선까지 함께 엮어 ‘기후재난 이주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상을 제시한다. 조금 덜 자본주의적이고, 조금 덜 빡빡한, 다른 삶을 살고픈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실마리를 주기를 바란다.
❚ 목차
들어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지리산의 목소리에 당신은 어떤 OOO을 상상하고 계신가요
1장 지리산이 말할 수 있다면 : ‘OOO처럼 말할 거야’ 삶을 다시 꾸리는 이야기를 찾아
마고신처럼 말할 거야, 마고가 되어라
둘레길처럼 말할 거야, 걸으며 하나가 되어라
지구용사처럼 말할 거야, 지구를 돌보듯 너를 돌봐라
시인처럼 말할 거야, 부러워 마라
섬진강처럼 말할 거야, 수억 빛깔을 느껴라
2장 사람, 마을, 연결 : ‘OOO해 봐’ 우리가 바라는 삶은 혼자 만들 수 없으니까
들어 봐, 우리가 열고 싶은 판타지
먹어 봐, 반달곰을 생각하는 쌀빵과 지역 농산물
읽어 봐, 지역 온도를 높이는 책방에서
만나 봐, 천천히 가는 사람들
웃어 봐, 널 기다리는 마을 활동가와 함께
3장 재난 사이에 피어난 장미 :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어, 그래도 OOO’
기후재난 이주 시대가 열렸다, 그래도 상상하자
산사태가 덮치고 난 뒤, 그래도 살자
재난을 당한 이웃에게, 그래도 밥 먹고 합시다
재난이 먼일 같아요? 그래도 모이자
4장 지구운명공동체 : 지리산에 인간만 사냐 ‘OOO도 산다’
죽비를 내려치는, 복주머니란도 산다
조용히 쉬고 싶은, 따오기도 산다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멧돼지도 산다
살 곳을 잃어 가는, 여울마자도 산다
생수이길 거부하는, 지하수도 산다
5장 생명의 편에 선 몸부림 : 2025 지리산사람들, ‘OOO 덕’
지리산산악열차 못 한다, “함께한 덕”
지리산골프장 무산 뒤 사포마을 경숙을 만나다, “당신들 덕”
산불에도 살아남은 숲, “다양성 덕”
2025 달마다 함께한 우리, “서로가 있는 덕”
❚ 출판사리뷰
-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저항이 되고 변혁이 될까.
-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후위기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
- 지역 기록을 넘어,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단단한 질문이 담겨 있다.
“지리산은 배경이 아니다. 말하고, 기억하고, 함께 살아간다.”
지리산이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할까? 마고신처럼, 시인처럼, 지구용사처럼, 온갖 빛깔 생명처럼 말할 지리산을 상상하며 지리산의 목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1장에 있다.
이 책은 지리산을 ‘자연’이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로 불러낸다. 시인처럼 말하는 산, 재난을 기억하는 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산.
“기후재난 이후의 삶, 지리산에서 먼저 시작되다”
2장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덜 자본주의스러운 대안 문화를 만드는 이들의 사례를 몇 가지 꼽아 담았다. 3장에는 지난 산청 수해와 산사태로 재난을 맞은 이들이 이미 와 버린 재난을 드러내고, 기후재난 이주 시대에 공동체가 걸어갈 방향을 찾아 담았다.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산의 연대기”
지리산 자락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4장에는 복주머니란, 따오기, 멧돼지, 여울마자, 지하수의 마음을 짐작할 만한 글들을 넣었다. 다양한 생명의 마음을 짐작하며, 인간 중심의 서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 기록이자 생태적 에세이다.
“2025를 돌아본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엮일 수 있게 든든하게 우릴 지켜 주는 지리산, 우리의 큰 산 지리산에서 벌어진 2025년 일들을 갈무리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벌어진 2025년의 이야기들은 기후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묻는다.
❚ 책속에서
24쪽 : 옛날 옛적에 마고는 세상을 창조했으나 사람들은 마고의 흔적을 지웠다. 지워진 마고를 소환한 은수, 정민, 윤채는 마고의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또, 지리산 자락 많은 분이 마고와 함께 산다. 이런 움직임이 자연을 숭배하고 존중하며 살아왔던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자연을 착취 대상으로 생각하는 물질문명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35쪽 : ‘이제 우리는 그 모든 상흔을 딛고 생명평화와 공생공락의 가치로 거듭나야 한다.’ 말 없는 지리산이 수천, 수백 년에 걸쳐 (남명 선생의 감탄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며” 묵묵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바로 이게 아닐까?
46쪽 : 숲은 제가 누군지 알게 해 줘요. 그곳에서 전 부자가 돼요. 우린 지구에 한 푼도 쥐고 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부자로 태어났음을 느껴요. 이 풍요로운 지구의 일원으로요. 마당에 모은 제 똥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자란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가 다시 제가 되고 나면 제가 무슨 일을 하러 지구에 왔는지 배우게 돼요.
75쪽 : 판타지 서점에서 타로 상담을 하고 있는데, 저는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로 외에도 휴먼디자인, 유전자키에도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91쪽 : 책방이 없는 지역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117쪽 : 두려운 일이지만, 추웠다 더웠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잦은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상적 재난에 적응하는 길은 무엇일까. 안전을 위해 더 많이 축적하고 소유해야 할까? 언제 사라져도 별로 아쉽지 않도록 가볍고 간소하게 살아야 할까?
138쪽 :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서로를 돕는 일’밖에 없는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궁금했어요. ‘동력은 뭘까?’하고요.
151쪽 : 그래서 재난 이후에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그게 재난 대응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하십시오. 뭐든지 하시고, 언제든지 만나시고, 그러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그게 재난에 대응하고 적응하기 위한 힘입니다.
162쪽 : 인간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그를 날게 만든다면,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계속 그를 날게 한다면 과연 뿔호반새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따오기도 마찬가지다. 지리산을 찾은 이 귀한 손님이 여기에서 살아 보려고 왔다가 이곳 인심을 보고 여기는 안전하지 않다며 떠나 버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171쪽 : 멧돼지가 사라진 숲을 생각해 보세요. 해로운 짐승(유해조수)이라 없어진다면 마냥 좋기만 할 것 같나요? 자동차에서 볼트 하나 빠졌다고 크게 표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나중엔 차가 설 수도 있다는 것까지 내다보며 볼트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201쪽 :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냥 계속 아름답게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언제든 지리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세력은 또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니 싸움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야죠.
223쪽 : 지리산 OOO에 들어갈 땡땡땡이 ‘난개발’이 아니게 되려면, 우리가 채워야 할 땡땡땡은 더 뭉치고, 더 목소리를 내고, 더 자주 만날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지리산의 사람들입니다. 지리산의 편에 서 주세요.
❚ 저자 소개
지리산人 편집부
대안문화 웹진『지리산人』은 2010년 11월 종이 신문으로 시작해, 2021년 7월까지 나온 40호를 마지막으로, 종이 신문에서 온라인 잡지로 발간 형태를 바꾸어, 지금까지 계속 절기마다 독자들에게 지리산 자락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리산人』은 빼앗고 빼앗기는 약탈 자본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난 이야기를 담아 왔다. 생명의 편에 서서 공존과 연대, 순환과 자급, 돌봄과 선물, 다양성과 이해가 담긴, 지리산 정신이 담긴 이야기를 퍼뜨려 왔다. 더 많은 이가 지리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人』은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생명의 편에서. jirisan-in.net
❚ 편집자 코멘트
제작 과정에서 빠진 네 쪽(122~125)은 당신을 위한 공간이 되었어요. 빈 종이에 당신의 상상력을 채워 주세요. 당신의 땡땡땡을 넣어 주세요. 불완전한 책이라서, 빈 종이가 생겨서, 땡땡땡이 생겨서,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와 더 어울리는 모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빠진 부분은 낱장에 인쇄해 끼워 넣었습니다. 너그럽게 받아 주세요.
내지 종이는, 나무를 베지 않고, 100% 사탕수수 부산물로 만든 종이를 썼습니다. 사탕수수 종이를 느껴 보세요.
❚ 출판사 소개
ㄴ니은기역ㄱ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을 기록합니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아홉 농부가 생태순환의 삶을 담아 쓴 『살자편지』, 에코페미니스트 농부들이 자급하는 몸을 되찾자며 보낸 『벗자편지』, 반달가슴곰KM-53의 삶을 통해 야생동물과 한 터전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삼으로부터』,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숲에 살던 동식물의 목소리를 담은 『집에서 쫓겨났어』, 지키고자 하는 이의 시선을 담은 사진 에세이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등을 펴냈습니다.
'지리산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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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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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7 상이 :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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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⑦ 상이 :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⑧ 아랑 : 지구에 해롭지 않으면서도 하고픈 걸 하며 살고 싶은 청년에게,
"주저하는 마음이 들고, 두려워도 괜찮아요. 우리 같이 해 볼래요?"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상이
도시에서 지리산으로
2011년 겨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문득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대학에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그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나는 누구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던 저에게 바깥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위 질문에 대해 한번 깊게 고민해 보자
생각하며 당시 부모님이 계셨던 도시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은
어린 동생을 혼자 중등대안학교에 보낼 순 없다며 지리산으로
귀촌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혼자 도시에 남겨진 저는 마냥
시간을 죽일 순 없었고, 무엇보다 집의 월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어머니와 연이 있던 환경단체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별생각 없이 시작한 직장생활은 일이 많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기에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료 관계도 쉽지 않았고, 혼자 지내는 도시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리산에 계신 부모님 집을 찾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몸은 도시에, 마음은 지리산에 두고
이중생활을 한 지 일 년이 조금 안 될 때,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여러 까닭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까닭은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혼자 살아갈 준비, 하루 여덟 시간씩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을 준비, 나보다 늦게 들어온
나이 많은 (남자)후배가 반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준비 등. 그리고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그
준비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해 말 잘 듣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에서 찾은 작은 자유
일을 그만두고 뭘 하면 좋을까 다시 시작된 고민에 부모님은
집을 지을 예정이니 잠깐 내려와서 도와 달라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잠시 부모님 집에서 쉬며 미래를 그려 봐야지
생각하며 2013년, 지리산 자락에 내려왔습니다. 그저 잠깐
쉬어 가야지 하며 가볍게 내려온 지역살이가 어느덧 9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비결이요? 저는 마음 맞는 또래 친구들을 제1 비결로 꼽고
싶습니다. 지역에 있는 대안 대학에서 에스페란토어 청강을
들으며 처음 친구 두 명을 만났고, 그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니 마을에서 관심을 주셨습니다. 주변의 마을 분들이
자연스레 “어느 마을에 누가 사는데 너희랑 비슷한 또래인 거
같다”는 식의 소식을 전해 주시곤 했습니다. 지역의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에 남아 제빵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
대안대학으로 귀촌하여 삶의 전환을 꿈꾸던 친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갔다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 친구,
지역에서 상근으로 군대를 다니던 친구 등 다양하지만 결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친구네에서 영화도 보고, 보드게임도 하는 등의 친목 모임이
계속 만남을 이어 가다 보니 “작은자유”라는 이름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가수 오지은 님의 노래 <작은자유>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함께함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즐겁게
지역살이를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먹고사는 이야기,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의 고충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식당 자리가 임대로 나오게 되었는데, 작은자유의 활동을
눈여겨보시던 동네 삼촌이 식당을 차려 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마침 모두가 아르바이트와 하던 일을 그만둔
상태였고,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시기였기에 긴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커뮤니티 밥집 <살래청춘식당 마지>가
탄생하였습니다.
마지 프로젝트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이
자립을 위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입소문을 타고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들에게 후원을 받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는 식당 운영을 통해 마을에서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다양한 활동과 돈벌이를 공간에서
함께하자는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여 두 해 정도 힘차게
달렸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지만,
친구 관계와 일을 함께하는 동료 관계를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하는지, 우리는 이토록 힘들게 일하는데 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지, 정말 지역에서 우리는 먹고살 수 있는지 등의
고민이 쌓여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지에서 함께했던 활동과
나눠 먹은 밥, 서로 돌봄의 구조가 최저임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걸 알지 못해 괴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는 2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환대와 변화
마지가 문을 닫고 오랜만에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직장이 있던 시내까지 편도 40분이 걸리는 출근
시간을 견디며 출근하여 주 5일 하루 8시간 자리만 지키면
꼬박꼬박 나오는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지요. 6년 만에 돌아온 직장생활은 제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을 빼고는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두 해 동안 몸담았던 회사 생활은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루 8시간을 직장에서 자리만 지키며 보내는
것이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의문부터 생애 가장
많은 돈을 벌며 ‘나에겐 이만큼의 돈은 필요 없다’는
결론까지.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제게
남았습니다. 마침 지역에서 “아주 작은 페미니즘 학교 탱자”를
운영하는 탱자 님이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와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통해
‘공유지’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득세하기 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유지는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과 마을의 번영을 위해 각자
규칙을 가지고 운영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금송계禁松契’를 예로 들 수 있지요.
다양하게 쓰이는 소나무를 귀하게 여겼던 시대에 권세가가
마을 숲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소나무를 남벌하는
짓을 막고자 결성한 자치 조직입니다.
하지만 농촌에 살던 농민을 도시로 끌어내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권력자들은 공유지를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6세기 튜더왕조 초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종획운동enclosures이 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공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거지, 강도, 농노,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이렇게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공유 문화를 산산조각
낸 것일까. 굳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필요성이 없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어쩌면 공유지를 되찾는 일이 ‘거대한 전환’을
위한 출발이 되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때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자본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친구들 사이에 퍼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이나 그 가족만을 위한 사유지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유지로서의 숲의 개념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고 말이죠.
생태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을 위한 게더링gathering인
“지리산게더링”은 그런 제 고민에 돌파구 같은 활동입니다.
2019년 지역의 민간 중간 지원 조직인 ‘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 하동에서 댐 반대 운동을 하던 감자라는 친구와
연결되고, 생태적 삶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명
두 명 친구들이 모여 총 다섯 명의 친구들과 2020년 한 해
하동에서 게더링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 땅을
돌보며 여러 사람과 만나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며 우리와 같이 생태적 삶을 꿈꾸고 자립을 고민하는 사람,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역에 내려오고 싶은 사람,
생태적 삶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지리산게더링에 오고 난 후 도시 생활에 더욱 집중하게 된
사람 등. 그런 다양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화덕을 만들고, 물놀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연결된 삶, 순환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동에 있는 땅은 면적이 좁아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없었고, 사유지여서 함부로 농사를 짓거나 땅을 개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저희에게
선물 같은 제안이 들어옵니다. 구례에 놀고 있는 숲이 있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땅을 소개해 준 선생님의 따스한 환대와
넓은 땅에 반하여 저희는 구례로 활동지역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여성해방 마고숲밭’을 만들어 가는 일
2021년 봄, 구례의 한 숲에 퍼머컬처 농법을 배우겠다는
공통된 마음으로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어린이부터
50대까지, 지리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부터 농사를 짓고 싶지만 자기 땅이 없어서 고민하던
이까지. 함께 모여 퍼머컬처 기법의 이론을 배운 후 밭
모양을 함께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가 그린 디자인을
나누고 세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여 디자인을 정하였습니다.
자연의 모양을 본뜬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그린 여성해방 무늬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여성해방 무늬에 마고 신이 감싸 안고
있는 모양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름은 “여성해방
마고숲밭”으로 정하였습니다. 공동경작을 함께하는 사람 중에
여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만드는 바탕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직접 농사짓던 이웃 농부님이 채종한 씨앗을 잔뜩
나누어 주셔서 그 씨앗 리스트를 바탕으로 함께 심고 싶은
작물을 밭에 배치해 보고, 생애 처음으로 씨앗이 모종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숲으로 가
공동경작 친구들과 땀 흘리며 밭을 돌보고, 함께 점심을 먹고
계곡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곳에서는 늘 자신을 스스로 농부라고 소개하면서 속으론
‘이런 농땡이 농부가 다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 풍요로운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사람이 없던 숲이 지금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공동경작 멤버들, 이명 풍물패,
숲밭에서 열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한 번씩 숲에
오는 참여자 등 다양한 친구들이 오갑니다. 저 역시 더욱
마고숲밭 가까이 살기 위해 작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차츰 ‘모두를 위한 공유지’에 한발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론 ‘함께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직면하고
있습니다. 스캇 펙 박사가 이야기한 ‘공동체 형성단계
이론Scott Peck's Four Stages of Community Development’에
따르면 신뢰와 소속감으로 시작한 ‘가짜공동체Pseudo
community’는 시간이 지나며 현실주의와 만나 혼돈과 갈등에
부딪힙니다. 그 갈등을 직면하며 공동체의 공허와 마음
비워냄의 단계를 지나 신뢰를 회복하여 다시 만나게 된다면
‘참 공동체True community’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 공동체의 단계란 단순히 도달하고 마는
이상적인 결과론적 개념이 아닌 나선형으로 순환하며
계속해서 혼돈과 갈등으로 돌아가지만 참 공동체를
지향점으로 두고 함께 바라보며 가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개념을 접하며 사람들이 한뜻으로 만나 자연스레 공동체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돈의 과정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구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지리산게더링은
다양한 갈등과 혼돈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신뢰를 잃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한 사람의 불편함도 쉬이여기지 않으며 반복해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알려 줍니다.
이제껏 사회가 돌아가던 구조에서는 기후위기를 ‘잘못된 것,
과학으로 해결해야 할 혼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공유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기후위기는 혼돈만이 아닙니다. 제가 친구들과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갈 새로운 공간은 기후위기라는 혼돈이 나선형으로
순환하여 결국 참 공동체를 찾아가게 하리라고, 서로 밥을
지어 먹으며 순환하는 삶에 가까워지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변화를 시작할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그게 저에게는
지리산게더링이고 여성해방 마고숲밭입니다.
나의 벗자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제가 한 달에 지출하는
비용을 계산해 봤을 때 50만 원(±α)이 필요한데, 사실 내
노동력을 팔아 쉽게 생활비를 벌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숲을 빌리고 집을 지은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면 농사짓기와 더불어 손작업으로 자립하는 일상을
상상하게 됩니다. 내가 직접 기른 채소로 밥을 지어 먹고 좀
여유롭게 거둔 작물은 다른 이와 바꾸어 먹을 수 있는 일상을
상상합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 내가 살아갈 집, 자연이
준 텃밭, 예상치 못하게 목돈이 필요한 순간 등등 내가 처할
환경도 상상해 봅니다. 삶의 전환을 생각할 때 내 곁에 있는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선택이 좌지우지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큰 변화는 언제나 공간과 주변
사람들의 변화와 함께했습니다. 나를 변화하게 한 모든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또 한 번 전환과 변화를 앞둔
지금 이 앞을 가로막는 환경 혹은 장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살피며, 또 옆에 있는 서로를 돌보며 지금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이 돌아가는 방향과 모양새를 담아 정리한
약속문을 공유하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여성해방 마고숲밭>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에코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숲을 우리 삶의 중요한 기반으로 여기고 함께 돌봅니다.
우리는 나이, 성별, 성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여부, 국
적, 피부색, 출신 지역 혼인 여부, 가족관계 등과 관계없이
동등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어를 쓰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느낄 때 마음을 터놓고 혼자 참기보
단 함께 나눕니다.
서로의 마음과 시도를 경청하고 존중하며, 문제에 대해서
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처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모두
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합니다.
약속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고 변화하는 방
향으로 함께 약속을 만들어 갑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이 모두의 공유지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것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폭력과 차별에 반대합니다.
비인간동물을 죽이고 착취하는 종차별주의에 반대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
다.
나이, 성별 등 위계에 의한 호칭 문화를 지양합니다. 본인
이 원하는 호칭을 서로에게 알리고, 서로를 그 호칭으로
부릅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누군가의 집이자 생활공간입니다.
SNS에 이곳 소식을 올리거나 사진을 촬영할 경우 사전에
동의를 구해 주세요.
우정의 환대로 방문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자리
를 내어 줍니다.
◌ 상이 ◌
스물한 살,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리산에 왔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6년, 친구들과 함께 구한 셰어하우스에서 3년, 합해 9년째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2015년 처음 페미니즘을 접한 뒤,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 중입니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여성회의” 위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지리산게더링”이라는 이름으로
공유지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게더링 ‘여성해방
마고숲밭’에서 함께 자급하는 농부를 꿈꿉니다. 에코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만,
기존의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의 무게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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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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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책방×지리산인] 지리산 둘레 책방지기들이 뽑은 “생태 감수성 뿜뿜 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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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들의 글 : 내가 이 책을 뽑은 까닭
봉서리 책방 (구례)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서산정길 61-3
인스타그램 @bongsuri_bookshop
『기후 여행자』 / 임영신 지음 / 열매하나 펴냄
기대하며 읽은 책입니다. 몇 년 전 <홀리 터펜>의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읽고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좀 빈약해서 아쉬웠고요. 외국인 저자의 글이어서 더 가깝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모국어 사용하는 작가가 쓴 같은 주제의 책 만나니 무척 반갑고, 기대되었습니다. 앞에 언급한 책보다 여행의 부정적 영향 조목조목 언급하고 자세하게 그 이유 지적합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그 심각성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해결책까지는 아니지만 그 영향들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지침들과 최근 움직임 부지런히 안내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 공동체 전문가의 간절함과 노력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여행과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서평 쓰면서 망설인 것 있습니다. 책 내용이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생각 때문입니다.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것 분명하나, 여행을 관광을 <지극한 경험 지향>과 <소비적 경험 지향>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방랑, 순례와 같은 진지한 여행일지라도,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 소비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약 같은 여행일지라도, 서로 날카롭게 대비되는 경험으로 현실에서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구와 분석을 위한 편의적인 구분일 뿐입니다. 관광행위는 현실에선 정도의 문제이고 언제나 넓은 회색지대 속에서 존재합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추상적인 대비는 현실에서 여행행위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단순한 윤리와 도덕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이는 관광업계엔 그린워싱에 의한 여행상품 돋보임을, 그리고 여행자엔 그러한 선택으로 윤리적 죄책감을 줄이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시기의 문제도 있습니다. 기후문제와 관광산업의 영향 관련 대중을 위한 책들은 2020년대에 그것도 최근 몇 년에 묶여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션산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조금 더 빠르지만. 기후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이슈화에 비해 왜 이렇게 늦었을까 생각합니다. 저자 <이소연>의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서문에 언급한 표현 “환경에 관심이 있는 요즘 애답게”처럼 그들에게 여행과 패션에 기후 영향을 유보하거나 몇몇 윤리적 관습으로 외면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관광은 국제적인 산업으로 넓어지고 깊어져 왔습니다. 자동차나 전기처럼. 이처럼 고도로 연결된 산업이자 문화/소비 행위를, 비판하거나 가이드 제시하는 것으로 유의미한 변화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목사님 성가대에 설교하기>. 믿음 깊은 성가대에 목사님은 처음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처럼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 강화하거나 함께 서로 격려하려는 의도로 말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였겠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혹시 안타까운 마음에 이 책을 너와 나를 나누는 윤리적 가이드로 혹은 여행이란 행위에 몇몇 도덕적 위안을 얻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따져본들 의미 없습니다.
여행과 환경에 관심 있고 민감한 분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바로 지금 실천에 의미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몇 권 읽어보지 않지만, 이만한 책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자 모시고 구례에 여행 좋아하시는 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고요. 가난한 책방이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귀한 책입니다.
『리페어 컬쳐』 / 볼프강 M. 헤클 지음 / 조연주 옮김 / 양철북 펴냄
어떤 것이 옳을까요? 옳고 그름은 있을까요?
친환경 제품 구매와 기존 제품 수리 후 계속 사용, 같은 가격 같은 연비에 덩치 큰 자동차, 소박한 개인주택과 에너지 절약형 넓은 아파트, 요즘 쿨한 친환경(을 광고하는) 상품, 버리고 다시 사는 마음과 오히려 비싼 수리비를 감내하는 마음, 소유한 물건에 부여하는 애정. 이 모두가 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여러 갈래 마음 길입니다.
저자는 문장에 드러나긴 하지만, 함부로 시비(是非)를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알려줍니다. 소유한 물건을 고치고 그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수리하는 개인에게 얻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개인들이 모여 만드는 <리페어 컬처>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합니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요즘 환경과 기후 문제들이 워낙 불거지니 재활용 재사용 관련 책들이 제법 많이 나옵니다. 몇몇 읽어봤지만 과하게 추상적, 감성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가볍게 실용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저자 <볼프강 M. 헤클>은 추상적이다가 구체적인 경험을 말하고, 감성적이다가 분석적으로 설명하며, 실용적이다가 공동체와 환경을 생각합니다. 읽다가 모르거나 지루할지라도, 아끼고 오래 쓰는 마음을 호기심 수준 이상 가지고 계신다면 권합니다. <재미있는 책>이기 보다 <읽어야 할 책>입니다.
겁많은 똥손(?)이지만, 3개월간 준비하고 부품과 토크렌치를 구매하여 낡고 오래된 자동차 수리했던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소중했던 그것 더 소중해졌고, 고치며 주변 약해진 부분과 앞으로 더 수리할 범위 계획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할 수 없이 전문가 손 빌릴 때도 원인과 범위를 알고 있어서 수리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경험자들의 적극적인 조언과 오래된 부품 찾고 안내해 준 전문 부품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작은 <리페어 컬처> 였습니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 확대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가능할까요? 희망합니다.
책의 작은 제목이 '쉽게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입니다. 물격(物格)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격(人格)을 존중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 권합니다.
찬장과책장 (남원 산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방천길 1-4
인스타그램 @jirisan.bookcase
『모든 것의 이름으로』 /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 변용란 옮김 / 민음사 펴냄
밑바닥부터 시작해 식물 무역, 약품제조업으로 성공한 휘태커 집안의 딸 앨마, 19세기 여성에 대한 편견, 차별과 역경 속에서도 넘치는 지적 호기심과 끈질긴 탐구심으로 오로지 식물학에 헌신한 앨마 휘태커의 일대기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식물과 생명을 통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 앨마의 삶은 두꺼운 소설로도 부족하고 매혹적입니다. 작가의 철저한 조사와 고증은 너무 생생하여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을 읽고 싶은 마음이 넘치게 만들어요.
1판이 나온 지 10년, 2판이 나온 지 3년이 넘었어요. 800쪽이 넘는 벽돌 소설인데요, 그 벽돌 두께의 부담스러움으로 이 좋은 책이 선택받지 못하고 잊힐까 봐 걱정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800쪽이라는 두께는 잊고 어느새 빠져들어 마지막 장을 읽고 있을 거예요.)
햇살같이 밝고 영롱한 19세기 여성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이끼 이야기 부분을 쓰기 위해 『향모를 땋으며』 『이끼와 함께』 의 저자 로빈 월 키머러에게 도움을 받기도 해서 더 반가운 책이랍니다.
『거북의 시간』 / 사이 몽고메리 글 / 맷 패터슨 그림 / 조은영 옮김 / 돌고래 펴냄
동물생태학자이자 자연탐험가인 ‘사이 몽고메리’가 거북구조연맹에서 거북이를 만나고 구조하는 이야기를 썼어요. 동물생태학자이지만 거북이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자는 책 속에서 인턴입니다. 열정적인 인턴의 눈으로 보고 기록한 거북구조대작전,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치유받는 이야기, 아름다운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책입니다.
(책 내용 중)
“어떤 동물이든 동물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람쥐를 돕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거북을 구한다면, 특히 암거북을 구하면 앞으로 100년을 살면서 계속 알을 낳을 겁니다. 거북 한 마리를 구하는 것은 결국 여러 세대를 구하는 일이지요.”
“거북의 치유 능력은 놀랍지만 대신 낫는 속도가 느려요. 하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거북이 가진 게 바로 시간이니까요.”
세상에 패배하는 거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지구에, 생명에 참 미안했고 그러면서도 쓰담쓰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판타지 (산청)
경남 산청군 산청읍 덕계로 13-14 지금부터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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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아』 ③ 사랑의 공간 /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 한병석 옮김 / 한글샘 펴냄
『아나스타시아』 ④ 함께 짓기 /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 한병석 옮김 / 한글샘 펴냄
러시아 타이가 숲에 사는 신비로운 여인 아나스타시아 시리즈 중 세 번째 이야기 <사랑의 공간>과 네 번째 이야기 <함께 짓기>를 소개합니다.
아나스타시아 시리즈를 처음 접한 지 16년은 된 것 같습니다. 귀농해 사는 이들이 이 책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지인의 서가에서 1~2권을 훑어보고는 ‘판타지 소설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주의자인 부모님을 따라 5살 때 산속의 외딴집에 들어와 살면서 논밭에 일절 약을 치지 않고 손으로 농사짓고, 겨울이면 나무를 해서 군불을 때고,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밥맛도 좋았지만, 외풍 심한 흙집은 한겨울이면 행주가 밤새 꽁꽁 얼고, 뜨거운 물로 녹여서 밥상을 닦으면 바로 살얼음이 끼어 그릇이 슝 미끄러질 정도였지요. 겨울에는 매번 뺨과 손이 트고, 수족냉증과 동상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타이가에서 거의 나신으로 생활하는 아나스타시아의 능력은 현실 같지 않았습니다. 고구마밭, 옥수수밭을 침탈하는 고라니, 멧돼지를 어떻게 막아낼지 고민인데, 다람쥐가 사람 손 위로 올라와 알밤을 까서 먹여준다고? 숲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벌거벗은 아기를 흙바닥에 내버려두고, 암곰이 젖을 먹이고 재우고 똥오줌을 치우게 하며, 독수리가 아기를 붙들고 하늘을 날아 숲을 구경시켜 주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아름답고 건강한 여인 아나스타시아는 숲속의 빈터에서 삽니다. 여느 사람처럼 집이 있지도 않고, 농사를 짓지도 않습니다. 자연이 기꺼이 베풀어주는 것을 누리며 살지요. 그런데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정보망에 직접 접속되어 있어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다른 시간대에서 일어난 일, 심지어 외계행성에서 일어나는 일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그런 시공간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자연과 공명하는 살아있는 정령이나 여신 같은데,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이 그냥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자인 블라지미르 메그레는 사업을 하다가 망한 유부남인데, 타이가 숲에서 아나스타시아를 우연히 만나 여러 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아나스타시아는 메그레가 태어날 아이의 양육에 일조하는 것을 거부하고, 도시로 돌아가 책을 쓰라고 합니다. 메그레의 생각은 과학기술 문명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아들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메그레는 화가 났지만, 아나스타시아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데 성공합니다.
<사랑의 공간>에서 메그레는 약속대로 책을 썼으니 아들을 만날 자격이 되었다고 여기고, 그들이 만났던 장소를 찾아갑니다. 그는 마을 사람 알렉산드르에게서 그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메그레의 책 때문에 아나스타시아가 사는 장소가 밝혀졌고, 결국 과학자들이 헬기로 아나스타시아를 수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렉산드르는 아나스타시아가 나타나서 과학자들에게 고인돌과 메그레 이야기를 했던 일(천리안), 푸른색 빛공이 날아와서 그들이 끔찍한 체험을 했던 일(UFO/초능력), 아나스타시아가 엄마 없는 병약한 소녀의 삶을 바꾼 일(치유 능력) 등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고, 메그레를 타이가에 데려다줍니다.
“타이가에 데려다주기는 하겠지만, 당신은 아나스타시아와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알렉산드르의 질투심 섞인 예측과는 달리, 메그레는 그녀와 재회하여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곰과 늑대와 독수리가 사는 숲속의 빈터에서 기절초풍할 육아방식으로 자라고 있는 아들. 메그레는 함부로 아들을 만지거나 안을 수도 없습니다. 아들이 그의 손길을 허용할 때까지. 아무렴, 아무리 나이가 어린 존재라도 존중하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 먼저이지요.
빈터를 찾아온 메그레에게 아나스타시아는 사람이 지닌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만물을 끌어들이고 세상을 창조하는지, 생각과 언어가 어떻게 현실화하는지, 부모가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사랑의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이어지는 4권 <함께 짓기>에는 창세기, 형상학, 고대 이집트의 신관과 아나스타시아의 조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인류가 가진 지식과 과학은 진짜 창조의 방법(형상학)을 숨기고 대중을 미혹하기 위해 신관들이 쪼개어 놓은 진리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합니다. 아나스타시아에 따르면, 사람이 본래의 신적인 창조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하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를 잉태하기 전부터 사랑으로 준비해 온 가원이 필요하며, 아이는 이곳에서 온 생명과 접촉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가원이 대대손손 보존되면 몸이 죽어도 영혼은 기억을 지니고 새 몸을 받아서 다시 가원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해요. 처음에는 집도 과기 문명의 재료를 사용하게 되고 생활도 습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세월이 흘러 첫 세대가 심었던 나무로 집을 짓게 되면, 가원은 완전히 성숙하여 사람은 에덴을 되찾게 됩니다.
아나스타시아를 처음 읽고 상상력 뛰어난 사람이 지어낸 판타지 소설이라고 짤막하게 결론을 내린 지 한참 뒤에 나도 몇 가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이 내뿜는 향기가 평소의 30배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고, 나무의 호흡이 그대로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나의 생각과 감정이 풍경과 날씨에 그대로 반영되고, 목 부근에 열매와 풀잎을 가지고 오니 먹지도 냄새 맡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맛과 향기가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얼마나 다채로운 관능으로 가득 차 있던지요! 이후 레이쥬(靈受)를 받고 나서는 수족냉증이 낫고, 한겨울에도 좀처럼 손이 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나스타시아처럼 다 벗고 살지도 못하고, 천리안도 없지만, 메그레 아저씨가 전해준 이야기가 허풍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함께 짓기>에서 아나스타시아는 아버지의 역할은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가원을 만듦으로서 사랑하는 여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에겐 아이들만 있고 가원을 함께 만들어 줄 남자는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함께 지을 사람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아무도 배척당하거나 미움받지 않고, 나를 찾아온 이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연스런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내 소유의 가원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이런 가원들이 많이 생겨서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숨통 트이는 지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찌나 과기 문명이 지독한지, 요즘은 돈이 없으면 가원을 못 만드는 상황이 되었지만요.
10월 27일에 메그레 아저씨가 한국에 와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는데, 아직 천리안과 타심통이 없어서 웹자보를 29일에야 접하게 되었어요. 사실 여태 시리즈를 완독하지 못해서, 메그레 아저씨를 만났더라도 별로 할 말이 없었을 거예요. 올해는 지리산의 독자들과 아나스타시아를 10권까지 완독하고 싶습니다.
시소 (하동)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남당길 50 시소
인스타그램 : @see.saw111
『놀자 놀자 해랑 놀자』 / 강윤자, 박은하, 손종례, 유종반 글 / 장서윤 그림 / 목수책방 펴냄
드는 봄, 부름비, 깨어날 봄, 온봄, 밝은 봄, 씨앗비… 너무 예쁜 이름이다. 이렇게 봄의 절기만 나열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의 순우리말이다.
이 책은 철든 삶으로 이끄는 절기 살기에 대한 책으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꼭 선물하고픈, 책방지기가 아끼는 책이다. 절기에 따른 나무(식물)의 삶은 사람의 삶과 무척 닮았다. 자기다움을 찾을 때, 나 다운 삶을 확장하는 성장의 팁을 나무의 성장으로도 알려주는 책이다. 책 대부분은 절기 놀이와 예쁜 그림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고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종종 노래와 시, 먹거리 등 풍성한 내용이 가득가득 담긴 귀한 책이다.
생명철학과 삶의 지혜가 담긴 놀이를 통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질로 생태 교육의 문턱을 넘게 해 준다. 『놀자 놀자 해랑 놀자』는 24절기의 안내서이자 내 삶의 텃밭이다. 무엇보다 신나게 뛰어노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해님의 다른 이름 ‘절기’는 아이들이 때에 맞게 밥을 잘 먹듯이 놀이도 때에 맞게 놀 수 있도록 지혜로운 놀이로 꽉 차 있다. 아이들이 학원과 공부에서 살짝 빠져나와 절기놀이로 항상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오래된 인생 최고의 ‘철학’, 절기 책으로 모두들 건강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한다. 책을 덮는 순간 참 잘 살았다고 느낄 것이다.
『향모를 땋으며』 / 로빈 월 키머러 지음 /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펴냄
‘자연은 내 이웃이자 선물이니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나누고 존중하라’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인디언 출신의 한 과학자가 그들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싶은 염원이 담긴 책. 『향모를 땋으며』는 이 시대 삶의 문제를 ‘향모’라는 인디언의 상징인 풀을 매개로 인간의 소비 행태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반성문 같은 책이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등교시키려고 정성스럽게 빗질하여 머리를 땋아 주던 오래된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딸 때 우리는 애정을 듬뿍 싣는다. 이처럼 이 책도 모든 이야기 속에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 제일 앞에 ‘엄마’라고 쓰인 부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인에게 제일 먼저 빼앗아서 온 것은 땅이다. 그다음 언어다. 하지만 키머러 같은 이들이 있어 조각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치유하고 복원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이 세상은 선물과 같고 모든 자연물은 인간과 동등하다는 생각과 세계관이 사라진 요즘, 이 책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과학적 세계와 토착적 세계 양쪽이 서로 조화로울 때 나 자신도 당신도 아름답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과학과 영성이 서로 얽혀 있고 어우러지는 만큼 옛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우리와 대지를 함께 치유해 준다. 다 작가의 힘이다.
“제가 땋을 수 있도록 끄트머리를 잡아 주세요.” 이 책을 읽고 모든 독자가 다 같이 끄트머리를 잡고 함께 향모를 땋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다시 한번 이 책을 추천한다. 새삼 자연과 대지의 여신이 고맙고 우리 지리산, 어머니까지 소환해 주는 작가도 고맙다. 덧붙여 언어를 없애려 한 개발주의 백인에 맞서 이런 책을 쓴 작가의 깊은 의도를 찾아가며 읽는 재미를 모두들 느끼시길 바란다.
오후공책 (함양)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한들로 67. 1층
인스타그램 : @5whobook
『흙의 숨 : 흙과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만들어왔는가』 / 유경수 지음 / 김영사 펴냄
미네소타대학교 토양학 교수 유경수가 발로 뛰며 채집한 지구 곳곳 흙 속 놀라운 이야기들을 펼쳐놓은 책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연인 흙에 대한 이야기. 흙에 관한 그의 애정 어린 수다. 결국 흙으로 돌아갈 존재, 흙을 파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한 줌의 흙이 갖는 진정한 가치, 즉 흙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지탱하고 미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근원임을 조곤조곤 일러준다.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 이다 지음 / 현암사 펴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이다가 일 년간 주변에서 만난 자연을 기록한 책.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산책길에서 만난 동물, 식물, 하늘, 날씨 등 주변 자연의 순간들을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로 정성껏 담아냈다. 가까운 길을 산책하며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느끼게 해 준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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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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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6_풀 :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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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⑥ 풀 :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⑦ 상이 :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_풀
뭐 먹고살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이십 대 초반을 보내고 중반이 됐을 때,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당시 저에게 자립이란
‘돈을 벌어서’ 먹고산다는 의미였죠. 제가 밥을 먹고 생활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어요. 그런
저에게 선택지는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까?’였어요.
그래도 뭔가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벌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지,
어딘가에 취업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지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손으로 뭔가를 하는 일, 맛있는 냄새와 빠른 출퇴근. 뭐 이런
막연한 까닭으로 빵집에서 빵 만드는 일을 시작했어요. 생전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마음만은 ‘장인’의 마음으로 새벽을
열었던 것 같아요. 주로 팥빵을 만들고 오븐에 굽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빵을 만드는 일은 꽤 재밌었고 돈을 벌며
살아가는 것도 만족스러웠어요. 그렇지만 비싸지는 인건비를
감당하느라, 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산출을 내려는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반죽은 냉동 반죽으로 자리를 대체하고 점차
‘내’가 없어도 되게끔 바뀌어 갔어요. 이런 변화를 맞으면서
빵집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러곤 갑작스레 일본 빵집과
음식점을 중심으로 우핑WWOOFing을 떠났어요.
여행 전 빵집에 다니며 빵을 하루에 수백 개씩 구웠었죠.
그렇지만 우핑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빵 만드는 온 과정을
‘몸으로’ 느꼈어요. 직원들이 여럿 있는 보통 빵집은 아주 잘
분업화가 되어 있어서 반죽을 치는 사람은 종일 반죽을
만들고, 오븐을 보는 사람은 종일 오븐을 봐요. 그래서
빵집에서 하루 열 시간 일하더라도 반죽, 성형, 굽기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보지 못하기도 해요.
우핑을 통해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반죽하고, 발효와 성형을
거쳐 제가 먹을 빵을 구웠어요. 내가 오기 전에 방문했던
다른 우퍼가 적고 간 조리법을 읽고 따라 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지만요. 염소 우리를 치우고,
버섯을 따고, 닭 모이를 주고, 요리해서 나눠 먹고 밭일을
돕고, 누군가가 해 주는 집밥들을 먹고, 지역 장터에 판매자로
참여하기도 했죠.
우핑을 하며 다양한 일을 했지만, 크게 보면 주요 일과는
먹을거리를 준비(농사와 요리 포함해)하거나 먹는 것이었어요.
제가 전날 닭장에서 가져온 달걀이 오늘 아침밥이 되고, 며칠
동안 뜯은 쑥이 모찌가 되었어요. 가시 가득한 나무에서
조심조심 꺾은 순은 두릅튀김이 되었고요. 논이 둘러싼 시골
빵집에서 밀을 키우고 제분해 빵이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또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에 대한 관심이 ‘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농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분명 전에 우리 할머니께서도 집 앞 우영(제주도 말로 텃밭)에서 쪽파를 뽑아
오시거나 고구마를 캐거나, 호박잎과 콩잎과 깻잎을 따고
고추를 따 오셔서 밥상을 차려 주셨는데, 그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는다’는 행위는 너무
당연해서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인식하며 먹은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얻는 간접 경험이
아닌, 내 눈앞에서 ‘생명’이 ‘음식’이 되는 경험을 우핑을 통해
날마다 해 오면서 그제야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인지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나니까 ‘그
음식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또 ‘그 재료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길러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반대로 농사일을 하면서는
이 아이들이 어떤 음식으로 탄생할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하며 사
먹기도 했지만, 점차 배낭에 재료들을 들고 다니며 요리해
먹었어요. 한 해 동안 번 돈을 열 달 정도 여행하면서 거의
다 쓰고 돌아왔어요. 이제 제게는 30만 원이 있었고 당장
다음 달에도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었죠.
그래도 우핑 덕분에 좋은 먹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우핑은 재밌었지만 농사를 한번 해 보는
체험이나 경험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내 방식대로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집
근처 빵집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고, 할머니의 텃밭을 빌려
작게 휴일 농사를 시작했어요. 농사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앉은키밀, 무화과나무,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심었어요.
그땐 아는 게 없어서 ‘일단 심고 보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나름 멀칭mulching을 한다고 다 익은 씨앗이 잔뜩 달린
갈대를 베어다가 밭에 뉘어놓기도 했죠. 할머니는 갈대 키울
일 있냐며 한 소리 하셨어요. 할머니는 비닐 멀칭도 안 하고,
토양살충제도 뿌리지 않고, 풀도 그대로 두고, 비료와 농약도
안 뿌리면서 알아서 한다는 손녀를 답답해하셨어요. 가끔은 저
몰래 풀도 베고, 농약을 치고 가시기도 했죠. 아무튼 돈 벌러
일을 다닐 때 텃밭은 제게 숨통이 트이게 하는 공간이었어요.
농사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착취는 어느 곳에나 있더라
다시 돌아온 빵집에서의 일. 하루에 기본 열 시간 바쁠 때는
열두 시간, 열세 시간씩 하는 노동. 물론 제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사장과 직원의 관계로 일하며 ‘착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사장님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취를 인지하기
시작하자 착취가 내 삶 모든 곳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장에서 사장님과 직원 간 착취도 있었지만, 저 또한
인정받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저 자신을 착취했던 것
같아요. 또 빵을 만들어 팔고 사는 모두는 저렴한 비닐
포장지와 일회용 컵과 빨대들을 날마다 쉽고 당연하게 쓰고
버리며 환경과 자원을 착취하고 있었어요. 착취는 고리와
고리로 연결되어 많은 다른 착취를 낳는 것 같아요.
착취당하고 싶지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솟구쳤어요. 혹시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내가 먹고 쓰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어요. 지금 이렇게 싸게
공급되는 많은 고기와 달걀, 우유가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침 착취라는 단어 뜻이
‘젖이나 즙을 짜서 취한다’잖아요. 젖소를 계속 임신시켜 젖을
나오게 해, 송아지들이 먹을 젖을 내가 먹어야 할까?
유제품들을 좋아했지만,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싶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싼값에 우유를 먹기 위해 젖소들을 끊임없이
임신시키는 구조. 더 많은 일과 더 늦은 퇴근을 강요당해도
사장님 말에 ‘네’라는 답만 할 수 있는 구조. 이 둘이 무엇이
다를까요? 해결책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은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다행히 이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안타까움과 고민이
더해지는 시간을 뒤로하고 퇴사를 선택했어요.
자급과 공유 그리고 믿음
<내일>이라는 다큐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라는 단어를
처음 봤어요. 정확하게 뭔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2021년 퍼머컬처 농사를 해 보고, 빵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곡성에서 ‘자연, 자립, 공유’라는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청년 자자공自自共’에
참여하게 되었죠. 한 해 동안 자급 농사를 기본으로
생활기술들을 배우고 익히며 지내게 되었어요. 곡성에서 지낸
한 해는 돈을 조금 벌고 조금 쓰며, 함께 이것저것 배우고, 또
각양각색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 차이를 조율하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해 보고 싶었던 퍼머컬처는 가진 것과 필요한 것 사이를
잘 연결해서 함께 잘 살아가게 하는 전략(?)이에요. 밭에서뿐
아니라 제 삶과 공동체 안에서도 공생 관계가 잘 연결되면
좋겠지만, 자자공에서 지내보니 정말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공유 공간에서 공동 생활을 하고 공동 일정을
소화하는 건 일상 ‘수행’과 비슷한 일이었어요. 나의 쪼잔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자꾸 마주하게 되죠. 누군가가 속이 좁고,
못되거나 나빠서 그렇다기보다는 함께하는 것에 서로
서툴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지내며 일을
했으니까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계속 마주하며 살아야 하기에 어떻게 그것들을 풀어
나갈지가 지난해 큰 숙제였던 것 같아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누구 한 명이 시키고 따르는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가,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자리에 오니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농사 일정을 정하는 일부터 화장실
쓰는 방식 하나까지 서로 의견을 듣고 결정하려고 하니,
끊임없이 뭔가를 조정하기 위해 회의를 열어야 했어요. 우리는
공동으로 짓는 밭에서 언제 어떤 작업을 할지 주마다
회의했는데, 결국 나중에는 방법을 바꾸어 날마다 공동 일정을
만들기보다는 구역을 나누어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어요.
자자공 생활에서 이런 수평적 결정과 삐거덕거림과 조율
과정을 겪은 덕분에, 공동체라는 게 모두가 생각을 하나로
모아 같은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이 모여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곳이어야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동생산
공동분배로 일을 하면서는 왜 공산주의가 잘 안되었는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죠. 자기 일은 그렇게 잘하다가도 공동
일이 되는 순간 책임은 증발해 버려요. 함께 쓰던 여러
호미와 낫들이 공동밭에서 유물처럼 발견되곤 했거든요.
공유라는 말은 참 아름답고 평화롭게 들려요. 위계와 사유가
곧 질서라고 배워 온 사람들이, 그 위계와 사유 공식을
벗어나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책임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하루하루 부딪침 속에서 배웠어요.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쩔 수 없어’라는 태도가 아니라요. 안
그러면 ‘모두의 것’이라고 공유되는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돼서 방치되고 고장 나 버리죠. 물건이든 생각이든
그것이 공유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가 필요해요. 이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공유야말로 내가 그토록 의심하고
꺼림칙해하던 착취 구조를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우리는 밭을 공유하고, 공간을 공유하고, 일손을 공유하고,
먹거리를 공유하고, 어떤 문제를 고민해 대안을 찾는 시간도
공유했어요. 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과 내가 가진 것 사이 괴리를
조금씩은 허물 수 있었죠.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
괴리감까지도요. 시간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해서 조금
어렵다는 것뿐, 착취를 맞설 대안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전문가 아니어도 괜찮잖아
곡성에 내려오며 내가 먹을 것들을 기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 생각에 ‘논농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끼니마다 먹는 쌀이지만 논농사는 뭔가 밭농사에
비해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할 일’이라는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자공을 하며 친구들과 작은 논에 손모를
내고 낫으로 수확하고 우여곡절 끝에 탈곡기로 탈곡해
보고서야 논농사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엿기름을
내고, 두부를 만들고, 술을 빚고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는
일도 사실 엄두를 내지 않던 일이에요. 생각해 보면 늘 먹어
왔던 것들이었는데도요. 요새는 다들 당연하게 사 먹는 것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 예전에는
누구든 해 왔던 과정들이잖아요.(‘잘하는’ 경지에 이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요.)
요 몇 해 동안 제가 가훈(?)처럼 들고 다니는 문구가 ‘잘 먹고
잘 살자!’예요. 제게 잘 먹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누군가가 주는 것을 제외해서 생각하면요. 좋은
이웃을 두고 서로 나누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지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소비함으로써 그 생산을
응원하며 먹는 방식이 한 가지고요, 내가 스스로 생산자가
되어 잘 먹는 일이 또 한 가지 방식이에요.
둘 다 이 세상에 중요한 일이지만 후자가 제게 있어서는 더
재밌는 일이에요. ‘팥빵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국산
밀과 유기농 팥으로 시간을 들여 빵을 만드는 빵집을 찾는
것도 좋죠. 찾는 소비자가 있어야 생산자들도 그런 생산을
이어갈 테니까요. 그렇지만 직접 앵두팥, 재팥, 흰팥, 비단팥,
검은팥… 갖가지 팥들을 두 알씩 땅에 심고 애들이 커 가는
것을 보고, 풀도 정리해 주고, 익어 가는 대로 따고 말리고
꼬투리를 까서 고르는 일부터 팥들을 물에 불려 두었다가
냄비에 넣고 삶는 일, 빵을 반죽하고 기다려서 구워 내는
모든 일은 참 흥미로워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누군가에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수 있어요. 저렴하게 재료를 수입해
기계로 뚝딱 만든 완제품들을 얼마든지 인터넷이나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이 시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하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시간과 돈을 아껴서 결국
얻으려 하는 게 행복이라면, 나는 돌고 돌아서 행복을 얻는
대신 내 손으로 얻는 길을 택하고 싶어요. 그 덕분에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팥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팥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지난해에 여기저기 모서리 땅에
심었는데 잘 자라 주었어요. 어떤 팥이 나올지 꼬투리마다 까
보는 재미가 있었죠.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노동자이자 소비자였을 때, ‘가격이
저렴한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했어요. 농산물 가격만 보고
싸다, 비싸다고 말했죠. 그런데 지난 한 해 농사를 지어 보고
그 노고와 시간을 알게 되고부터는 고춧가루 한 근에
20,000원이라는 가격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너무 저렴한 농산물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저렴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앞서 말했듯 저는 착취당하고
싶지도 않지만 착취를 응원하는 소비를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직접 만드는 자급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느리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생산량과 효율을 떠나, 내가 심고 싶은 다양한
것들을 심고 요리할 수 있죠. 내 가치관에 반하는 것들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성분표를 확인할 필요도 없어요.
여기 시골에서 지내며 종종 빵을 굽거나 친구들 생일 때
케이크를 구웠어요. 사 먹을 때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비건
지향 친구들을 위해 달걀, 우유,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찾기에는 더 쉽지 않았거든요. 맛은 둘째 치더라도 만드는 게
더 편한 환경이었어요. 발효종, 우리밀, 소금, 물로 식사빵을
굽고, 제주레몬, 쑥, 오디, 산딸기, 단호박, 당근, 밤, 팥… 그
철에 주변에서 구한 것들을 넣어 가며 빵을 만들었어요.
맛있을 때도 그냥 그럴 때도 있었지만 나눠 먹기에는
충분했어요. 가끔 인터넷에 기공이 뻥뻥 뚫린 치아바타나
뤼스틱, 멋지게 쿠프가 나 있는 바게트, 반들반들한 베이글
들을 볼 때면 나도 저런 멋진 빵들을 굽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덜 발효되거나 지나치게
발효된, 시큼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한 그런 빵들을 구워
내며 ‘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요. 투박한
빵에다가 근처에서 딴 산딸기로 만든 잼과 만든 땅콩버터를
곁들이면 거의 완벽한 것 같기도 하고요. (좀 아니다 싶은
애들도 어떻게든 살려 내려고 변형에 변형을 더하거나 정
아니면 퇴비통으로 가서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더 쉽게 더 잘 나온다는 수입밀을 이용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 내 둘레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굽다 보면 언젠가는
나름 꽤 괜찮은 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봐요.
지난해 가을에 밭에 조금 심어 둔 참밀, 흑밀, 앉은키밀이 잘
자라 언젠가는 이 밀로 빵을 구울 거예요.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한 빵.
밭에서는 생각보다 잘 자란 애들도 있고, 씨나 겨우 건진
애들도 있었어요. 저는 뭔가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당연하지만 뻔뻔해 보이는
마음을 가져요. 농사와 여기 생활을 시작할 때도 그랬죠.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조그마한
자신감도 생겼어요. 제가 자급을 시작하며 벗어던지는 허울은
‘완벽이라는 환상’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내가 어설프게 만든
것보다 장인이 만드는 빵, 오랜 시간 자연농을 해 온 농부의
채소들과 잘하는 목수가 만든 의자가 더 ‘좋고 완벽한
것’이라고 하겠죠. 그렇지만 제 삶에 필요한 것들은 완벽한
것보다는 내가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상 같은
것들이었어요. 제가 먹고 싶을 때, 뜨끈뜨끈한 식혜를 끓여
먹고, 두부도 만들고, 그때 나온 비지로 찌개도 끓여 먹어요.
남은 비지들을 어찌할까 궁리와 실험도 하고요. 궁금한
씨앗들을 심어 다양한 토종 참외들도 기르고 갓 딴 옥수수를
쪄 먹죠. 이런 어설프지만 하나씩 해 가는 것들이 일상을
채워 가고 있어요. 가끔은 제 실험 정신으로 만들어진 애들을
보곤 친구들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곤 하지만요.
아무튼, 이것들을 기르고 만드는 재미를 접고 다시 착취
구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농촌에 사는 것은 만능인이
될 수 있는 기회!)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에요.
농사는 땅이 있고 돈이 있는 은퇴자나 이미 어릴 때부터 해
온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빵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그런
까닭으로 제가 <<벗자편지>>에 글을 쓰겠다고 덥석 물게
되었죠.)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대단한 생산도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마음속 벽이 자급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자급. 저도 완벽하지 않지만
시작할 수 있었듯, 마음을 먹는다면 누구든 차근차근히 해
나아 갈 수 있을 거예요.
◌ 풀 ◌
밤하늘 속 어둠이 궁금해 천문학을 공부하다가 빵을 만들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터라 일단 겪어 보는
것이 답답함을 푸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뭔가
하기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편이다. 농촌에 오니 온갖
일거리가 가득하고 다 손발로 해야 하는 일들이라 아직은 즐겁게
쏘다니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궁리하는 일을 좋아한다.
어디든 있는 풀처럼 누가 애지중지 보살펴 주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그곳에 맞게 알아서 잘 살아 있고 싶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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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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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비워내는 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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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비워내는 일, 죽음
<단식 존엄사>라는 책에 대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길고 험난하다. 요양원에서 십 년 넘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가시는 분들이 많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당사자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가족들 역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고 심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치 잔칫집 같았다. 호상인 경우였겠지만 어린 나로서는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웃으며 떠들고 윷놀이를 해도 되는 일인가 의아했다. 아마도 가실 때가 되었고 모든 이들이 이 사실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가야 할 때를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식 존엄사>는 대만의 의사 딸이 자신의 엄마가 결정한 죽음의 여정을 돕고 나서 이 일을 기록한 책이다. 실제 단식 존엄사를 실행한 기간은 3주로서 책에서는 이 외에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사 이야기가 그려져 있고 다른 이를 도운 얘기, 존엄사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 등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내용들도 수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취한 의료적 처치에 대해서는 유의해서 보지 않았다. 돌아가신 분은 의사 딸이 있었기에 힘든 상황들을 쉽게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기록으로 보이지만 나로서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는 점, 가급적 의사의 조력을 받지 않고 가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이 있다. 저자 어머니의 경우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적 질환을 가지고 계셨는데 약간의 특수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21일간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일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무척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어머니가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걸 스스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 때문에 사전에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고 명료한 의식 속에서 자식들과도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스콧 니어링이 그렇게 생을 정리했는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나 역시 큰 감동을 받았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몸과 마음이 그때 건강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늦지 않은 시점을 선택해야 할텐데 쉬운 판단은 아닐 것이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때가 되면 많은 어른들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일까?
책은 부모님 삶에 대한 묘사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어떻게 가는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사람은 하나하나 모두가 거대한 우주와 같은 존재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죽음이란 우주적 사변이 아닐 수 없다. 성찰하고 깊이 고뇌해야 할 심각한 주제이다.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이 생을 비워내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볼 일이다.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이 꽤 흘러 자세한 내용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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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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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5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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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뱀사골탐방안내소 자료집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
_빨치산과 토벌부대, 그리고 사람들
2008년 5월 10일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발행
<지리산인>은 과거 지리산에 깃들었던 빨치산과 이들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회로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의 전문을 총 10회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
➊ [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 소개 + 책을 내며
➋ 빨치산이란 무엇일까요? +지도로 보는 빨치산과 토벌부대 루트
➌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1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➎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➏ 토벌부대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➐ 숙명의 대결, 토벌군 사령관 백선엽
➑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1
➒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2
❿ 뱀사골탐방안내소, 전시관을 열다
이번 시간은 <➎ 빨치산의 대표 인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빨치산의 대표 인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1948년부터 시작된 빨치산은 6년 동안 1만 회가 넘는 교전을 벌였고, 죽은 사람만 해도 2만여 명이 넘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게릴라전이었다. 이런 활동에는 여러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김지회, 박종하, 박영발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빨치산 활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이현상은 1906년 충남(당시 전북)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서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지역에서 대를 이어온 전주 이씨 양반가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고창고보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하여 중앙고보를 졸업했다. 중앙고보 재학 중이던 1925년 박헌영과 함께 공산당운동을 했고, 1926년 6·10만세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시 보성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평양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된 이현상 사진
1927년에는 휴학을 한 뒤 상해로 건너가 망명 청년들의 모임인 ‘한인청년회’에서 활동했고, 학교로 돌아와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1928년 8월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일제치하에서 총 12년간의 옥살이를 했다. 그 뒤 조선공산당이 해체되자 ‘경성컴’을 만들어 활동했고, 해방 직전 일본 경찰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 해방 후 산에서 내려와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여 남로당 연락부장, 간부부장을 맡았다. 미군정의 압박 때문에 공산당 활동이 어렵자 월북했다가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1948년 다시 서울로 내려온 그는 11월, 지리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조선인민유격대남부군사령관’으로, 치열한 빨치산 투쟁을 이끌면서 골짜기마다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한 곳곳에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다시 입산하여 1951년 7월 ‘남한 6 개 도당 위원장 회의’에서 남한 빨치산의 사령관 자리를 맡았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북한에서는 박현영, 이승엽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졌고, 그해 8월 6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열린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에서 제5지구당은 해체를 맞고, 이현상은 경남도당 평당원으로 내려앉았다. 또, 남부군의 핵심부대였던 제5지구당과 김지회 부대를 여러 지역에 분산시키면서 그는 모든 권한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1953년 9월 18일(혹은 15일, 17일), 이현상은 지리산 빗점골 합수내, 너덜겅이라 부르는 곳에서 총탄을 맞고 죽음을 맞았다. 이때 그의 나이 48세, 화개장터 앞 섬진강 변에서 화장되었다.
다음 시간에 "➏ 토벌부대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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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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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5_문홍현경: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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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⑥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문홍현경
냄새
내겐 어떤 냄새가 있다. 썩은 양파 냄새? 어릴 적부터
겨드랑이 땀, 일명 곁땀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가끔 냄새가 지나치게 날 때가 있었나 보다.
나와 친밀한 한 인간동물이 내 겨드랑이 땀 냄새를 썩은 양파
냄새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가 아닐까, 내 팔이
들썩거림을 주저하기 시작한 게.
중학교 때부터 겨드랑이 땀 냄새를 줄여 준다는 약을 바르고
다녔다. 나만큼이나 겨드랑이 땀 냄새로 고생하던 우리 엄마가
추천해 준 약이다. 뿌리는 약은 효과가 없었다. 피부에 쓱쓱
바르는 약이 효과가 좋았다. 다만 그걸 바르면 겨드랑이는
떫은 감을 맛본 혀처럼 건조해졌다.
반팔 옷을 입는 여름이 돌아오면 약을 바르기 전날 저녁에
미리 겨드랑이털을 밀어 놓고 자야 했다. 털을 밀자마자 바로
약을 바르면, 으아악! 왜 영화에서 케빈이 면도하고 바로 아빠
스킨을 발랐다가 으악 하고 소리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면도한 피부에 바로 그 약을 바르면 바늘로 콕콕 쑤시듯 엄청
따갑다. 그러니 미리 털을 밀고 피부를 진정시킨 다음에 약을
발라야만 한다. 어우 귀찮아.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들처럼 죄다 겨드랑이털을 자신 있게
내보이겠다고 선언하면 좋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소망이었다.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왜 나는
겨드랑이털을 밀어야 하지?’ ‘왜 내 소중한 몸에 한심한
화학물질을 발라야만 하지?’ ‘몸에서 양파 냄새가 나면 왜 안
되지?’
약발이 떨어진 날엔 무척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겨드랑이가 벌어질 일이 없게 팔을 딱 붙여야만 하니까.
버스나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느라 팔을 벌릴라치면 예외
없이 내 곁땀 냄새를 의식하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버스
천장 손잡이 말고 의자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다. 지하철
의자에 앉기를 포기하고 구석에 서서 가거나. 약도 안
발랐는데 그날따라 좀 끼는 브래지어나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었으면 그날은 그냥 팔 올리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어쩐 일인지 꽉 끼는 옷을 입으면 땀이 더 많이 나왔으니까.
겨드랑이 땀 냄새를 싫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를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겨드랑이털도 겨드랑이 땀
냄새도 부정해야 하는 ‘소녀’가 되어, ‘내 자신감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할 용기’는 빼앗기고 말았다.
냄새와 향기 사이
아기를 갖기 전까지 바깥일을 하는 내내 데오도란트는 내
필수품이었는데. 임신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곁땀 약을
끊기로 했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약을 바르고 싶지 않았다.
곁땀 냄새야 좀 나든가 말든가 내 아기가 더 소중했으니까.
물론 내가 계속 회사를 나가야 했다면 약을 단번에 끊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어쨌든 내 몸속에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십여 년 넘게 발라 온 약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단하자 땀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비발디 <사계-봄>이
배경음으로 깔리듯.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엄마 냄새가 좋아.”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오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겨드랑이로 코를 갖다 대려는 게 아닌가. 내
부끄러운 자리에 아이 얼굴이 들어오려고 했다.
“이 냄새가 뭐가 좋아? 엄마 겨드랑이에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나는 습관적으로 양팔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러자 작고 귀여운
눈이 조금 커지면서 입이 달싹거렸다.
“아냐, 난 이 냄새가 좋아.”
뭐? 내 겨드랑이 냄새가 좋다고? 내 곁땀 냄새가? 세상에,
사는 동안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 겨드랑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조차
싫어하는 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옷을 쥐어 코에 갖다 대고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
봤다. 별로 좋아할 수 있는 냄새가 아닌 것 같은데. 아이
후각에 문제가 있나?
A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니, 그는 좀 설득력 있는 얘길
했다.
“네 곁땀 냄새를 맡으며 16개월 동안 젖을 먹었던 애잖아.”
어, 음……. 일리가 있었다. 배고플 때마다 자기 최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에게서 늘 나던 냄새니까. 그래, 그래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허기를 채워 주던 냄새라서
아이가 좋아하는 걸까? 세상에. 냄새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내 겨드랑이 땀 냄새를
향기로 받아들였고, 같은 냄새여도 우리 사회는 ‘암내’로
규정해 가려야 할 악취로 받아들였으니.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엄마에게서 곁땀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 딸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우리 엄마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지만 우리 엄마 역시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약을 발라야만 했다. 엄마 냄새가 좋다는 아이 말
덕분에 깨달았다. ‘아, 냄새는 관계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똑. 똑. 겨드랑이에서 땀이 똑 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느껴 본
적 있습니까? 내 질문은 마치 “도를 믿습니까” 하고 다가오는
엉뚱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할 테지만 나는 무척 진지했다.
겨드랑이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걸 느꼈고 그게 설마 땀일
줄이야. 정말 과학 시간에 스포이트로 물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리듯 겨드랑이가 땀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렸다.
데오도란트 약을 끊고, 도시 삶도 끊어 시골로 내려온 내게
겨드랑이는 ‘나는 원래 이래’ 하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겨드랑이를 포장하듯 감싸던 옷 따위는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땀이 옷에 바로 흡수되지
않고 내 털을 따라 톡 하고 떨어졌다. 고드름이 녹으며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톡 하고.
내 겨드랑이가 남들보다 땀을 많이 내보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평생 겨드랑이가 내뿜어야 할 땀을 자연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막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좀
끔찍했다. 그렇게 틀어막은 땀구멍에서 나오지 못한 땀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겨드랑이에서 이렇게 땀이 똑 떨어지는
일이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면, 왜 나는 이제야 그걸
허락한 걸까.
기분이 좋았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떨어질 수 있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내가 내 몸이 하는 말을 듣게 된 게
좋았다. 내 몸이 가진 냄새를 인정하게 된 내가 좋았다.
여전히 땀이 흥건한 날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모두에겐 자기
냄새가 있으니까.
야, 너도 냄새 있어
밭에서 풀을 베면 풀 향이 진하게 퍼진다. 노린재가 놀라
자기 냄새를 뿌리고 갈 때도 있다. 토마토 곁순을 따면
토마토 냄새가 난다. 들깨 옆을 지나면 깻잎 냄새가 난다.
갖가지 꽃과 이파리에서 나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강하게
풍겨 올 때도 있다. 비가 내리고 나면 흙냄새가 진하게
올라온다. 내 둘레에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자기 냄새를
풍긴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자기 냄새가 있다.
내 몸이 내뿜는 냄새는 수많은 냄새 속에 섞인다.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 특정 냄새가 유독 거슬리게 난다고 생각지
못한다. 냄새에 굳이 집중할 필요도 없다. 한 곳을 지날 때
그곳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한 거니까. 냄새를 당연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역겨워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음식물 찌꺼기 냄새가 나면
불쾌해진다. ‘누가 예의 없게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도 제대로
안 닫고 엘리베이터를 탄 거야, 무개념이시네,’ 하면서. 치킨
배달부가 타고 간 엘리베이터는 식욕을 돋우고, 누군가
참다못한 방귀를 싸지르고 내린 엘리베이터는 숨을 참게
만든다. 공용 화장실에서는 칙 하고 인공 향수가 뿌려져
오줌과 똥 냄새를 가리려 애쓴다. 똥에서 똥 냄새가 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지만 도시 화장실에서 똥 냄새는 혐오
대상이 되고 향수 냄새는 남발 대상이 된다. 차 안에
방향제를 둔다거나 세탁할 때 인공 향이 나는 세제를 쓰는
것도 특정 냄새를 남발하는 일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냄새에
민감해야 하지? 그럴 필요가 있나? 특정 냄새는 혐오 대상이
되고, 특정 냄새는 반대로 남발 대상이 되는 게 예전에는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왜 지금 내게는 그게 이상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자급하는 몸을 잃어버리고 착취 구조에 기대 살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허세와 중독에 빠지기 시작했을 거라고, 나는 책에서
배운 문장들을 밭에서 일하며 내 언어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만들어 먹어야 하던 시절에는 땀
냄새든 똥 냄새든 특정 냄새에 굳이 민감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 볏짚 나르고 오면 볏짚 냄새가 나고, 장독에서 된장
퍼 오면 된장 냄새가 나고, 감자 심고 오면 흙냄새가 나는 게
당연했을 터. 자기 냄새뿐 아니라 온갖 자연물 냄새가 드나들
수밖에 없는 몸으로 살다가 이제는 볏짚 나를 일도, 된장 퍼
올 일도, 감자 심을 일도 없는 몸이 되자 몸에서 나는 냄새에
유독 신경을 쓰게 된 게 아닐까.
때가 되면 때에 맞는 걸 심고 기르고 거두어 먹어야 하던
몸으로 살다가 이젠 때에 맞지 않는 제철 모르는 음식들을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몇십 초 만에 데워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돈 버는 몸으로 살다 보니, 삶을 생산하느라 풍기던
냄새가 다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공적으로 만든 냄새로 채워
살게 된 게 아닐까.
정수리 냄새, 곁땀 냄새, 발 냄새 뭔 냄새 온갖 냄새에 다
시비를 걸고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구별해 내기 시작한 건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였을까.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야
한다고 광고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향수, 섬유유연제,
섬유탈취제 같은 각종 향기 나는 화학물질들, 이에 더해
방향제처럼 인공적인 방식으로 나를 다른 이와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질들 모두는 우리가 자급하는 몸을
잃어버리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옛날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 봄이면 버들강아지를 따
먹고 호루라기를 만들어 불었다. 찔레순이 돋으면 찔레
를 꺾어 먹고 찔레꽃도 따 먹었다. 초여름 보리밭 사잇
길을 걸으면 초록빛 바닷속을 걷는 것처럼 시원하고 향
기로웠다. 보리깜부기를 따 먹고 밀이삭을 따서 비벼 먹
고, 보리밭 여기저기에 종달새가 새끼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지금 20대 젊은이들은 옛날 우리들의 깨끗했던 강물을
아무도 모른다. 시냇가의 하얀 모래밭과 끝없이 깔렸던
자갈밭도, 보리밭, 밀밭도 모르고, 여름에 소 뜯기며 뒹
굴고 놀았던 풀밭에 오이풀과 수박풀 향기가 그토록 향
그럽던 것도 모른다. -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어쩌면 저절로 자연과 멀어지면서 감각도 자연스럽지 못한
쪽으로 발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말 ‘좋은 냄새’를
맡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억지 냄새를 좋은 냄새인 줄
알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세월이 흐르면 그리워지는 냄새, 내
세포와 온 감각이 반응하는 냄새, 사랑하는 존재를 떠오르게
하는 냄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냄새, 냄새라고
굳이 알아채지 않아도 되는 모든 존재가 가진 냄새… 그런
냄새를 제대로 맡아 본 경험이 없어서, 그만큼 우리 감각이
자연스럽게 피어난 경험이 없어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화학적
냄새를 포함하여 사회가 만들어 낸 틀에 박힌 이미지들만
소비하는 게 아닌지.
해 달 별을 보며 시간을 점치고, 날씨를 알기 위해 온 감각을
동원하고, 둘레 동식물 반응을 살펴 씨앗 뿌릴 날과 거둘
날을 가늠하던, 그토록 감각적이던 몸이 ‘편리한’ 도구와
‘쌈박한’ 기술에 힘입어 이토록 무감각해졌단 말인가! 감각을
써야 할 일들이 사라지면서 인간동물이 더 자극적인 냄새, 맛,
색, 형태를 찾아 지나치게 민감해질수록 지구 생명체들은 각종
화학물질과 약품, 동물 실험으로 힘겨워진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정작 더듬이를 세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일들에는 무감각해진 바람에 벌어진 거대한 위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개구리의 안녕을 묻는 일은 대지의 노모스nomos를 돌
보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가물어도, 갑자기 추워도 개
구리가 없어진다. 개구리가 몰살이면 벌레가 창궐한다.
개구리는 숲과 마을의 경계에서 살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동법칙을 일러준다. 재작년 우리 밭에 벌레가 창궐한
것도 이상하게 따뜻했던 겨울과 이상하게 추웠던 봄 다
음이다. 농사 경력 수십 년 된 베테랑 농사꾼도 겪어
본 적 없는 벌레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작년 봄에는
뽕나무가 당했다. 미국선녀벌레가 나무를 하얗게 뒤덮더
니 검게 익어야 할 오디가 하얗게 말라 버렸다. 가을에
는 잣나무가 아팠다. 잣 딸 때가 다가오는데 홍천에 번
졌다던 잣나무 재선충병이 결국 인제까지 왔다는 소식
이 들렸다. (…) 이것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들이다. - 채효정, 「창비주간논평」
우리 마을에 사는 감나무 농부들도 지난겨울 날씨가 너무
이르게 따뜻했다가 갑자기 서리가 내려 감꽃이 다 얼어
죽었다고 허탈해했다. 아흐레 동안 축구장 3만 5,000여 개
크기만큼 넓은 숲을 태운 산불은 기상 관측 이래 강수량이
가장 적은 겨울을 보낸 뒤 찾아왔고, 지지난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80일 넘게 내린 장마 뒤엔 뿌리가 썩어
문드러진 작물과 집 잃은 사람들이 황망하게 남아 모두를
슬프게 했다. 세계에서 희귀종으로 알려진 고산 침엽수종
구상나무는 잦은 태풍과 가뭄으로 한라산에서만 4년 만에 1만
2,957그루가 새하얗게 말라 죽었다 하고, 해마다 수온이
오르는 탓에 제주도 아래 바다에는 아열대성 산호 군락이
자란다고 한다. 정말로 예민하게 살피고 온 감각을 쭈뼛쭈뼛
세워야 할 일들은 바로 여기 우리 자연에 있다. 그걸 지구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온통 시멘트와 플라스틱 같은 인공물 속에서 햇볕 한 줄기
느낄 새도 없이 자라온 우리 세대는 자연에서 삶을 구할 일도,
자연을 따다가 맛볼 일도, 자연에서 뒹굴 일도 사라지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우리가 만들어 온 세상 때문에 작고 수수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무너져 왔다는 걸, 이 순간에도 계속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하나씩 벗고, 하나씩 되찾아
시골에 내려와 밭을 빌렸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땅을
빌리려니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이웃 할아버지께서 묵은 밭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읍에 사신다는 어떤 할머니네
밭이었는데, 연락을 드리자, 농사짓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더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하시며 내게 공짜로 밭을
빌려주셨다.
해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양지바른 땅이었다. 밭
한쪽엔 묘 두 기가 있었다.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으니
텃밭과 묘가 가까운 게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물을 구할 수
없었고, 가까이에 커다란 송전탑이 세워져 있었다. 또 여러 밭
사이에 있다 보니 옆 밭에서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면 우리
밭으로도 쉽게 넘어올 수 있었다. 건너편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는 자꾸 플라스틱을 한데 모아 태웠는데, 바람이 우리
밭쪽으로 부는 날엔 유독가스를 마셔야만 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나 혼자 유기농이니 자연농이니 한다고 해도
연결된 체계가 무너지면 결국 다 무너지게 될 일이다.
농사짓고 싶다고 안달 난 나를 골치 아프게 한 또 하나는,
바랭이라는 풀이다. 하도 오래 묵혀 있던 탓인지 뿌리가 깊이
얽히고설켜 밭 전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내가 기르고 싶은
작물이 뿌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을 만큼 바랭이 위세가
대단했다. 밭을 한번 다 갈아엎고 거름을 넣어 줘야 할 것
같았는데, 처음엔 자연농 한답시고, 밭 갈아주겠다는 어르신들
호의도 마다하며 경운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버텼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존버(속된 말로 존나 버티는 자)’가
승리할 테지만, 당장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어야 할 내
주제를 생각지 못했으니 미련하고 멍청했다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존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단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 친구가 내게 알려 준
표현이다. 이는 비속어를 담은 줄임말이어서 이 단어를 ‘오래
버티는 자’ 혹은 ‘오래 버티기’와 같은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를 담은 표현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 단어가 좋아 밀고 나가기로 존버하여, 이렇게
단행본에 비속어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읽는 친구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말하려 한다.
나는 존버라는 단어가 좋다. 존버는 어쩌면 무척 미련하고
멍청한 태도라고 얕잡힐 수 있겠지만, 사회가 당연하게 저질러
온 착취에 맞서 버티고, 나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또 내 둘레
생명을 위해 과감히 버티기를 선택한 자에게 존버라는 단어는
웃음기를 잃지 않은 명랑함을 선물하는 듯하다.
또 내가 지금 버티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면, 버티는
시간을 스스로 허락한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존버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존버하는 시간을
발효하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고, 우리에게는 모두 각기 가진
능력과 빛깔과 냄새대로 발효시킬 시간이 필요할 뿐, 사회가
만든 기준 따위는 존버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초록색 존버들아, 사랑해.)
아무튼, 다시 땅 얘기로 돌아와서, 밭을 갈지 않으려고
미련하게 버티던 길에서, 어떻게든 땅심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련한 짓 하나를 더 해 보기로 했다. 똥과 오줌을
분리해 모아 천연 퇴비와 액비를 스스로 만들어 보기로 한
거다. 밭에서 바로 똥과 오줌을 분리해 모을 수 있는
생태뒷간을 만들었다면 참 편했을 텐데, 재주도 용기도 없어서
일단 우리 집 수세식 화장실 구석에서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자연농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나는 여태
똥간을 오해하며 살았겠지. 평생 농사를 짓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는 오래전부터 써 온 똥간이 있었다. 그 똥간은
늘 언제나 갈 때마다 고약한 냄새를 풍겼기에 나는 똥간이
원래 다 이렇게 역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명절에 부모님 따라 시골에 내려가면 좋은 화장실을 놔두고
꼭 똥간에 가서 볼일을 보는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수세식 화장실이 생기기
전에는 하는 수 없이 나도 몇 번 똥간에서 볼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코를 찌르는 냄새와 윙윙거리는 파리들 때문에 똥
누기가 싫어질 만큼 무서운 곳이었으니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고도 똥간에서만 볼일 보는 할아버지가 이상했던 거다.
그랬던 내가 우리 집 화장실에 작은 똥간을 만들다니. 내가
이렇게 개벽하기까지는 글로 배운 농사 이론과, 글로 배운
페미니즘과, 글로 배운 갖가지 개똥철학들뿐 아니라, 몸으로
익힌 자연농부들 똥간 체험이 한몫했다. 바다 건너에 사는
자연농부 집에 머물며 농사일을 거들고 숙식을 해결하는
우프WWOOF라는 걸 했을 때, 처음 생태뒷간을 만났다.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 무척 간단하게 만들어진
화장실이어서 나중에 나도 밭을 일구게 되면 이런 생태뒷간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내 오랜 똥간 편견을 깨
준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자연농과 자급기술을 배우려고
다녔던 농사 공동체에서도 냄새나지 않는 생태뒷간을 쓰게
됐고, 묵은 똥이 좋은 흙으로 돌아가는 데 내가 거들 수
있어서 꽤 뿌듯한 경험을 쌓았다.
생태뒷간, 그러니까 똥간에서 나쁜 냄새가 안 나려면 먼저 똥
따로, 오줌 따로 모아야 한다. 보통 똥을 모아 두는 뒷간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까닭은 똥과 오줌이 한데 섞여 제대로
발효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니 참기 힘든 ‘똥 냄새’를
맡지 않으려면 똥 따로 오줌 따로 모아야 한다. 오줌만 모아
뚜껑을 잘 닫아 놓고 한두 달 묵혀 물과 섞어 밭에 뿌려 주면
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되어 준다. 따로 모은
똥에는 톱밥이나 왕겨 같은 탄소질 재료를 뿌려 두면 잘
발효되어 ‘향긋한 숲 흙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는 독일에
사는 김미수 농부가 <<살자편지>>에서 묘사한 표현인데, 그가
만든 집 안 생태화장실은 정말 숲 흙냄새가 날 것처럼 정갈해
보인다. 내가 만든 똥 퇴비에서도 좋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 살색을 살색으로 부르면 안 되듯, 똥 냄새를 똥
냄새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겠다. 같은
책에서 김미수 농부는 먹은 것이 똥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
다시 먹을 것이 되어 나를 살리는, 순환하는 삶을 생태부엌과
생태화장실에서 여실히 보여 주는데 그가 냉장고 없이 자연을
닮아 살아가는 방식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다른 삶이 어떤 형태일지 실마리를 준다.
물론 나는 농사를 책으로 배운 탓에 책에 나온 이론을
화장실에서 실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 번거로운
행위가 곧 내게 신세계를 맛보게 해 주었다.
모든 똥과 오줌은 내가 먹은 것들을 내 몸속 미생물이 잘
쓰고 남은 찌꺼기라는 사실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똥 냄새도 오줌 냄새도 달라진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고구마를 많이 먹은 날엔 고구마
냄새가 난다. 커피를 마신 다음엔 아스라이 커피 냄새가 난다.
어쩌다 고기라도 먹은 날엔 똥 냄새도 지독하고 오줌 냄새도
고약하다. 그 미묘한 차이가 신기하면서도 당연하다는 게
재미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나를 만들고 이렇게 냄새를
만든다는 걸 새삼 느끼며 혼자 기뻐했다. 게다가 내 몸속에서
사는 미생물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라는 엄청난 미생물
덩어리를 마주하게 됐다.
똥과 오줌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건데 왜 이렇게 더럽다고
느끼며, 거기서 나는 냄새는 악취라고 질색하며 살았을까.
몸이 보내는 신호, 몸에서 내뿜는 냄새, 몸이 만든 색깔도
마주하지 못하게 똥과 오줌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게 만든
역사가 미웠다.
잘 발효된 똥 퇴비와 오줌 액비를 밭에 돌려주었다. 작물과
흙 그리고 거기 사는 미생물을 위해서라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래 밭으로 돌아가 다시
흙이 돼야 했을 내 똥과 오줌이 여태껏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니. 또 그걸 처리하느라 얼마나 많은
물과 에너지를 써 왔는지. 좋은 흙이 모자라 고심해 보고
나서야 똥과 오줌이 얼마나 소중한지 진짜 몸으로 부딪쳐
깨달았다. 거름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절대 남의 집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참았다가 자기 집 뒷간에 와서 볼일을
보았다 한다. 이제야 우리 할아버지가 왜 굳이 저 무시무시한
똥간에서만 볼일을 보셨는지 알겠다. 좋은 흙이 모자랄 때마다
변기에 내린 똥이 얼마나 아깝던지. 게다가 스스로 똥 퇴비를
만들고 나니 이제는 내가 이렇게 자연에 보탬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보람을 온몸으로 느끼기까지 했다. 내가 자연을 먹었으니
자연도 나를 먹을 수 있게 잘 돌아가야지. 태어나는 것만으로
다른 생명에게 빚을 지는 우리가 그 빚을 갚을 길은 바로
이거다, 기꺼이 좋은 먹이가 되는 삶.
알다시피 지금은 똥과 오줌이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똥은 얼마든지 향긋할 수 있는데. (똥과
오줌에게 ‘존버’할 시간을 허하라!) 그럴 시간도 여유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현대인들은 좋은 흙을 만들던 지혜를
잊어 가고 있다. 몸이 기억해야 하는 자급을 위한 지혜들이
변기 물 내려가듯 사라지고 있다. 내 몸이 만드는 냄새를
가리고 억지 냄새를 갖다 뿌리는 동안 향기만 나는 쓸모없는
몸뚱이는 손을 움직여 먹거리를 기르던 지혜를, 똥과 오줌으로
흙을 살지게 하는 지혜를, 소비보다는 생산에 능했던 지혜를
다 잊어 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지혜가 없어서 시골에
내려와서도 자급하는 몸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여기 시골에서 자급하려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지혜를
익히며 조금씩 서툰 솜씨로 자급하는 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내 냄새로, 내 모습으로, 내 색깔로 살지
못하게 하던 것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화장하지
않고, 데오도란트 바르지 않고, 플라스틱 소재 생리대 쓰지
않고, 브래지어 차지 않고, 발 아픈 구두 신지 않고, 샴푸
쓰지 않고……. 이것만으로도 몸은 제 모습을 찾아 제 숨을
쉬는 듯했다.
도시에서는 화장하지 않고 밖에 나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시골에 내려와서는 자기 얼굴빛으로 사는 친구들을
심심찮게 만났다. 그 덕인지 오히려 화장 진한 얼굴을 만나는
게 어색할 때도 있다. 화장하지 않은 채 도시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어색할까. 화장한 얼굴을 기본값으로
여기던 딱딱한 생각이 부들부들 말랑말랑 옅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내 얼굴빛을 찾아
가면 된다. 페미니스트 안에서도 ‘화장’을 두고 생각이 다
다르지만, 어떤 길이 다른 생명에게 덜 해로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선크림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기사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한 생명들이 있으니…….
제 얼굴빛으로 고개를 내미는 친구들이 있어서, 날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수 있어서, 내 시각이 점점
자연 빛깔을 기본값으로 되찾아 가고 있나 보다. 후각 역시
자연 향을 기본값으로 여기게 됐는지, 인공 향을 맡게 되면
코가 아프고 목구멍에 휘발유를 바른 것처럼 불편해진다.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억지로 맞춰 놓은 ‘좋은 몸, 좋은 향,
좋은 색, 좋은 형태’라는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멀었지만.
나 혼자 자급 생활자로 돌아가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잘못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 자연
속에서 낭만을 즐기는 생태주의자로 사는 것만으로는 절대
가부장제와 기후위기를 풀 수 없다고, 책으로 나를 가르쳐 준
스승님들 문장을 몸으로 실천해 보려고 용쓰고 있다.
자연스럽게 살다 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서부터 저항은
시작한다고 믿으니까. 누군가 누리는 권리를 나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해치며 권리를 얻어야 하는 사회
자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코르셋을 벗어던져야 할 테니까.
애초에 우리에게 잘못된 기본값을 ‘정상’이라고 입력한 사회가
고장 났는데 나 혼자 말갛게 얼굴 씻고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들풀처럼 모이고 또 모여야 한다, 우리는.
강은 흐르게 두고, 우리는 멋대로 춤추네
“우리 학교 채식 급식 진짜 맛있어요.”
우리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회의를 거쳐 한 달에
한두 번 채식 급식을 하기로 했는데, 그 학교 6학년 친구가
자랑스럽게 내게 한 말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채식을
거부하지 않고 온 생명을 위해 기꺼이 움직이는 어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나라 학교 급식은 여전히 육식 위주로
한 식단이 기본값이다 보니, 지구를 위해 채식하고 싶은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김치와 밥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구조적 착취는 대체 뭐지?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수많은
학자가 경고하는 마당에, 채식 선택권조차 없는 아이들은 ‘내
미래를 왜 어른들이 다 써 버리냐’고 아무리 항의해도 정부와
기업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어이없는 그린워싱green washing과 줄지 않는
쓰레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후 재앙 소식들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 힘은 어디에 있나. 연결! 손에
손잡고 정부를 향해, 기업을 향해, 둘레를 향해 외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그 연결감, 그 작은 희망, 거기에
힘이 있지 않을까. 나 혼자만 자연스럽게 산다고 해서 온
지구에서 벌어지는 착취를 막을 수 없다는 그 사실, 그
연결감을 느끼며 얼굴빛을 한 사람들이 함께하니까.
기후위기를 무섭게 받아들인 다음부터 나는 초록 움직임이
멈추지 않게 손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살려고 애썼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기후행동 불씨가 꺼지지 않게
풀무질하는 사람으로 살려고.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한 발
한 발 자급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싶고 또 그런 이들이 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둘레 사람들에게 기후위기 비상
상황을 알리고 또 그 대안으로 채식 급식을 요구한다거나,
아나바다 공유 장터를 함께 열기도 했고 얼굴빛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요구하는 일들을 벌이기도
했다. 더 많은 친구가 자급하는 몸을 되찾는 데 함께하길
바라니까. 더 많은 이들이 자기 빛을 찾을 수 있기를, 자기
냄새를 숨기지 않기를, 자기 둘레를 지키는 데 함께하기를,
스스로 발효할 시간을 주기를 바라며.
정말 자급하며 사는 농부님들 앞에 두고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을 만큼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사회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됐다.
지금 여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은 마치 모두 강을 앞에
두고 선 사람들 같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강 건너로
가기 위해 좁은 배에 오르려는 무수한 사람들. 배에 오른
자만이 성공과 부와 명예를 누릴 거라고 믿는 사람들. 강
건너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도 그저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맹신하는 사람들. 배를 타려고 안간힘쓰다가 누군가 물에 빠져
죽어도 내 탓이 아니라고만 하는 사람들. 나에게 그리고
벗님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왜 무얼 위해 강을 건너야
하느냐고. 배를 넓히라거나, 배에 오를 기준을 공정하게
만들라거나, 배에 약자가 쉽게 오를 수 있게 고쳐 달라고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왜 강을 건너야 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사실 아무도 강을 건널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배에 오르려던 안간힘을 더는 쓰지 않기로 했고, 강을
건너야 한다는 강요된 목적을 달성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남아 땅과 땅 위와 땅 아래 사는
무수한 생명들과 연결되기를 선택했다. 땅에 남아 춤추는, 제
얼굴빛으로 땅을 돌보는 이들에게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지혜를 배우기로 했다. 외부에서 결정하고 강제하는 해법을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갈망하여 스스로 전파를 보내고 파동을
만드는 생명체로 살고 싶으니까.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초록
벗님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싶다. 그대 손을 잡고 싶다.
◌ 문홍현경 ◌
책을 좋아하여 편집자로 살다가 글로만 배운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어 탈도시를 감행했다. 지금은 기후위기 활동가이자
엉망진창 소농으로, 여전히 책 만드는 사람으로, 또 조용한 미생물
덩어리로 산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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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