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05(수)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눈이 녹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2미터 이상이나 쌓여 있던 눈이었다. 

파괴된 마을은 처음에는 까맣게 그슬린 지붕만 보였다. 

며칠 밤이 지나자 눈 밖으로 차츰차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녹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체들이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월에 죽은 시체들이었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 밀랍 같았다. 

날씨가 온화해지자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나자 마을 사람들은 

눈으로 시체들을 덮어 버렸다.

 

그래버는 2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다. 휴가는 계속 보류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휴가를 갈 수 있을까 그래버는 총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휴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파묻힌 사내를 파냈다. 라메르스였다. 안경을 낀 빼빼 마른 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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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쯤 떨어진 바닥에서 안경도 발견되었는데, 깨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라메르스는 죽었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이 된다. 매일매일 적과 아군들이 죽어간다.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피로 물들어간 대지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그래버는 10시에 라에의 호출을 받았다. 

"자네의 휴가 통지서가 왔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이었다. 독소 전쟁의 막바지였고 독일군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매일 전선이 독일이 있는 서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버에게 휴가증이 발급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한낮이었다. 태양은 잿빛 뒤로 흐릿하게 보였고, 눈은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올랐다. 비로소 탈출했다는 느낌, 죽음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미터 1미터 멀어질수록 1미터 1미터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다음 날 아침,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옅은 새벽안갯속으로 주변 풍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버는 이제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낯익은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당황스럽게 그리고 날카로운 기억들이 가득 찬 채로, 

그것은 귀향 자체라기보다는 귀향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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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래버는 자기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향은 자신의 기억 속에 고향은 아니었다. 

공습으로 인해 그래버의 집은 파괴되었다. 그래버는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고향 역시 죽음과 1미터도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버가 살던 하케가 18번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은 오직 정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버는 실종자 창구에 가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했지만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폐허가 된 집 정문에 쪽지를 남겨 두었다. 

 

스무 살 정도 된 처녀가 마치 강물을 따라오기라도 한 듯 불빛을 받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둥근 눈썹, 그리고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마호가니 색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버의 그녀는 같은 김나지움을 다녔다. 

"세상에… 엘리자베스 군.. 넌 줄 몰랐어. 많이 변했군"

"당신도 그래요"

"무엇 때문에요? 나보다 더 명랑한 여자를 찾으면 돼요"

"명랑한 여자 같은 것은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하죠?'

그는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그리고 입술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재빨리 사라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을 찾았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의 범죄에 제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네가 지금 한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요새는 그보다 더 의미 없는 질문을 해도 목이 달아나"

"자네가 말하는 범죄는 전쟁을 말하는 건가?"

 

"전쟁을 일으킨 온갖 것들을 말합니다. 거짓과 억압, 불의와 폭력, 그리고 전쟁과 

그 전쟁을 하는 방법도 범죄에 포함됩니다. 노예 수용소, 집단 수용소,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 말입니다."

"공범 관계라고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알고 있나? 자네는 너무 어렸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도 전제 거짓으로 

중독되어 던 거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눈앞에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나태한 마음, 무관심, 

이기주의, 혹은 절망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버는 갑자기 폴만의 눈동자가 누구를 떠오르게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그가 총살한 러시아인의 눈이었다. 

그래버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리수나무 옆을 지나 폐허와 파괴된 집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우린 결혼해야 해"

"결혼이라고? 왜죠? 그녀가 웃었다.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우린 서로 안 지도 며칠 안 되었고, 며칠 후면 난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해. 

"결혼해도 고독은 줄어들지 않아요. 오히려 더 고독해질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알폰스가 느긋한 표정으로 웃었다. "에른스트 그래버, 게슈타포가 관연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자네가 유대인 아가씨나 공산당 아가씨와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조회는 하게 될 거야. 규칙이니까!

그래버는 깜짝 놀랐다. 조사가 시작되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아침 엘리자베스는 결혼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시청에 갔다. 

 

"제기랄 무슨 일을 해버린 거야" 그래버는 엘리자베스가 게슈타포의 조사로 아버지가 

집단 수용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가 노출될 것이 걱정되었다. 

 

부모님 집 문패 밑에 쪽지가 꽂혀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그래버의 부모님은 살아 있었다. 

아기라고.. 우리 형편에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아기에 대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벽이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구멍으로 정원이 보이는 것처럼 불확실하나마 

한 조각 미래가 흔들거리면 보였다. 

 

"기차는 6시에 출발해" 그래버의 3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역에는 나오지 마, 여기서 떠나고 싶어. 역에서 울고 있는 지치고 땀을 흘리는 여자만 머릿속에 떠 올랐거든"

"알겠어요"  하지만 역에서 기차가 떠날 때 멀리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버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일 수더 있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버는 다시 복귀했다. 자신의 군대는 120킬로미터 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러시아인 포로 4명을 그래버가 담당하게 되었다.

전투가 이어졌다.

밤새 곡사포와 폭탄들이 떨어졌다. 

포로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버 저 러시아 놈들을 쏴버려 슈타인 브래너가 말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죽이려고 하는 슈타인 브래너에게 총을 쐈다.

그래버는 러시아 포로를 모두 풀어 주었다. 

 

"가! 어서 가란 말이야!!"

그는 러시아인인 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뜻밖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총을 겨누었다.

그래버는 검의 총구를 바라봤다

불그레한 꽃망울과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눈앞에 보였다. 그 풀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의 눈이 감겼다. 

그래버는 어린 나이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랑스 러시아로 6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는 병사였죠. 2년 만에  3주간의 휴가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 함께 김나지움에 다니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신을 가리키던 폴만 선생님을 만나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유럽의 모두 전쟁터였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던 전쟁터였죠,

끝없이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 진흙 같은 참혹함이 세상을 잿빛과 핏빛으로 물드리는 참혹함만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게릴라를 지키는 업무를 받습니다. 

 

그래버는 양심에 따라 그들을 풀어주죠. 하지만 그의 선행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엘리자베스와의 짧은 사랑 그리고 죽음, 전쟁은 그들을 이별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대한민국은 절 못된 선택으로 인해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져 있습니다.

 

탄핵만 되면 술술 일일 풀린 것이고 다시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악은 그렇게 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빈틈을 찾아 작은 구멍이라도 찾게 되면 뱀처럼 빠져나와 다시 독을 가득 품은 이빨을 내밀고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그래버는 자신의 전쟁에서 했던 전투에서 했던 행위들 살인 총살 그리고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명령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민합니다.. 결국 그의 양심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롭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단 하루의 평화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우리는 지금 계엄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우리의 평화는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가을의 끝 낙엽처럼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일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위대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에리히 레마르크가 1945년에 쓴 대표적인 반전소설입니다.

 “개선문”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등 쓴 전쟁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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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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