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 산문집
맛있고 매운 안주가 가득한 위험하고 맛있는 책이다.
'오늘 뭐 먹지?' 같은
걱정은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기도 하다.
음식을 소비 할 아이들이 없다.
한 명뿐인 식구는 한 달을 굶어도 될 만큼 배에 전대를 찬 듯 저장하고 있으니 별 신경 안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살이 쪘으니 잘 먹기 보다는 어떻게 굶을 수 있는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형편이다.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은 음식을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티비도 음식채널만 보고 책도 음식 관련 책 등 너무 먹는 일에 치중해 온 것 같다.
잘 멕여야 된다는 책임감이 강해 내 손으로 한 음식을 먹는 동물(사람
포함)들에게 너무 많이 멕여 모두 과체중이다.
물론 질도 좋은 것으로 해주려 했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을 고백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권여선 이란 저자 때문인데 공선옥과 햇갈렸다.
'춥고 더운 집'에서 고생하던
공선옥의 메뉴가 궁금했던 것인가.
권여선이 적은 여러 가지 음식도 맛깔스럽고 먹음직스럽지만
그 음식을 표현하는 솜씨가 더 맛깔스럽다.
그러고 보면 음식을 소개하는 창의적인 레서피를 만들어 내는 일도 어렵지만,
이렇게 방법과 과정과 맛을 소개하는 산문이 훨씬 어려울 것 같다.
음식을 보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 꿀꺽 침을 삼키고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재료의 특이성과 맛의 표현, 그리고 그 음식을 먹게 된 역사 같은
것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권여선의 위장을 추앙하고 싶다.
그녀는 작가들 사이에 알려진 주당인 듯하다.
일단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은 거의 안줏감이다.
사실 주당 눈엔 모든 반찬이 안줏감으로 보이고 어떤 술이 어울리나 먼저 본다.
반찬에 따라 막걸리, 포도주, 중국술, 소주...를 선택하며 먹기도 전에 일차로 안주에 취한다.
우리 집에도 한사람 있어 내가 그 속내를 잘 안다.
난 영양과 맛과 건강을 생각해 만들지만 그의 눈에는 모두 안주로 보이는 것이다.
권여선 음식의 또 하나 특징은 매운맛이다.
청양고추의 그 무시무시한 매운맛을 그녀는 즐긴다.
우리 집 한 사람도 한 때는 그랬다.
청양고추를 듬북 넣어 먹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소가죽 같이 튼튼한 위장을 가진 족속들이다.
난 사람들이 고기와 즐겨 곁들이는 날 마늘을 먹지 못한다.
위가 뒤틀리며 아프다.
샐러드에 들어간 약간의 양파나 고기에 나오는 생 양파는 아주 조심해서 극소량만 먹어도 속이 아프다.
물론 술은 안받지만 한 모금이라도 먹으면 다음날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도 망치로 맞은 것보다 아프다.
술꾼의 소가죽 같은 위장이 정말 부럽다.
나의 위장은 금이 좍좍 그어진 낡은 레이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맛있고 매운 안주가 가득한 위험하고 맛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