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1(화)
 

 

김석봉 선생 댁 마당에 들어서니 귀여운 고양이들이 먼저 나를 맞이하였다. 40여 마리에 이른다니 이 집의 주인은 고양이들이 아닌가. 집안에서는 또 견공들이 활달하게 손님을 접대한다. 나중에 만났지만 밖에는 목욕을 마친 거위도 집안 곳곳을 활보하고 있었다. 대부분 일부러 들인 게 아니라 갈 곳 없는 처지의 생명들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들을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과 정성뿐 아니라 먹이기 위해서 투입하는 경제적 부담은 내가 상상하는 수준을 몇 배는 뛰어넘었다. 선생의 마음, 살아가는 태도가 깊숙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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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선생은 지역의 청년 작가로 활동하면서 진주교도소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재소자로 온 문익환 목사를 만나면서 생애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이때부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는데 2천년대 초반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굵직한 장면들을 이끌었다.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거쳐 2007년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함양의 이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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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오셔서 한 번도 옮기지 않고 18년째 살고 계십니다. 귀농, 귀촌할 때 지역과 집을 결정하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운명 같습니다. 그게 결심해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2년 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보잘것없었지만 내 느낌이 참 좋았어요. 집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따라서 우연히 온 것인데 너무 좋아서 집사람하고 함께 다시 한번 보고 나서 바로 계약했어요.

 

그 전에 시골에 살아야겠다는 계획은 하고 계셨나요?

우리 나이 정도(선생은 57년생이다)면 그런 꿈은 다들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내 경우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때 진주환경운동연합 상근 의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집을 사고 나니까 가서 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도배, 장판만 하고 이사를 하면서 단체 일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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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10년 넘게 준비하고서야 내려온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선생은 무의식 속에서 오랜 시간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이미 살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농사 규모가 적지는 않습니다. 농사일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은 아니예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반대 싸움 등 환경운동연합 대표로 활동하고 이후 녹색당 운영위원장까지 서울을 왔다갔다 하느라고 농사는 뒷전이었지요. 2012년 중반 서울 활동을 정리하고 나서 그때부터 전업농부로 살았어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규모가 어느 정도죠?

농사일이 운동보다는 쉬웠어요. 지금 밭으로만 2,400평 정도 됩니다.

 

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합니다. 더구나 밭농사여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논농사도 했는데 그건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모든 것을 기계가 하잖아요. 그래서 ‘이건 하나마나 한 농사다’ 생각이 들어 3년 하고 때려치웠습니다. 밭농사는 자기 의지대로 하는 거잖아요. 작은 관리기 하나하고 괭이 가지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고랑과 두둑을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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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선생께서는 수확물을 판매하는 데 힘을 쓰셨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신 적도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을 나눔으로 소진하고 계시다. 농사의 규모도 조금은 줄이셨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농사일을 결코 욕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내 삶에 부여하는 고결한 예의라 여겼다. 그랬거나 말거나 내년부턴 이 밭을 주인께 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욕심이라면 도려내기로 했고 스스로에 대한 예의라 해도 채울 만큼 채웠다 싶었다.”(선생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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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펜션인가요? 운영하고 계시죠?

펜션은 무슨(웃음), 민박입니다. 이 아래채인데 1945년 해방되던 해에 지은 집이예요. 그 사이 기둥을 보강한다거나 했겠지만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방 세 칸 짜리 민박을 하고 있어요.

 

생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여기서 살게끔 하는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고 소재이기도 했지요. 이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너무 달라서 소통이 어려워요. 농사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고. 민박 손님들과는 대화, 소통, 교류가 잘 되니까 적적하지 않았어요.

 

사모님께서 음식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계신 점이 큰 힘이 되었겠어요.

그렇죠. 시설 보고 오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음식 때문에 오는 사람은 있어요.


아들과 며느리, 이쁜 손녀딸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모습이 오늘날에는 흔치 않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바로 곁에 며느님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고 선생의 페이스북에서는 이쁜 손녀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페이스북을 훑어보면서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듯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가운데 있는 이 집이 좋았어요. 외따로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약간은 이해가 가요. 

마을기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웃들은 내 이익 이외에 공동의 이익, 마을의 이익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 벽을 허물어보려고 함께 견학도 다니고 열심히 설득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보조사업 지원금이 나왔는데 그걸 나눠 갖자는 거예요. 기가 막히더라니까. 내가 ‘우리 모두 쇠고랑 찹니다’라고 했죠. 결국 2~3년 후 접었어요.


그 아픈 기억이 있지만 선생은 여전히 마을의 일원으로서 음식도 나누고 마을행사에 참여한다. 불편함도 삶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우리 모두 함께 늘 고민하고 깊이 성찰해야 할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선생님께서 열정을 바친 환경운동을 회고하면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쉰 한 살 때 운동을 정리하고 완전히 내려왔어요. 한창 일할 나이이고 더 나이 든 분들도 열심히 하고 계시지만 나보다 더 진취적이고 잘할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우리가 했던 환경운동은 모두 옳다고 확신했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들이 모두 미래지향적이고 생태적이었나 안타까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체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태양광 발전에 힘을 쏟았지요. 그런데 그 결과 논과 밭, 숲을 파헤치고 사방에 태양광 패널이 볼썽사납게 설치되고 또 그것 때문에 길을 내는 등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주차장 등 우리 삶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환경운동의 큰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개별적인 운동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전개돼요. 예를 들어 군산에 골프장 들어선다고 함양 사람이 가지는 않잖아요? 물론 그런 운동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문명의 전환을 도모하는 어젠다를 제시하는 운동을 개발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다만 그것은 민간 차원에서는 쉽지 않지요. 전환은 지방정부나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자본이 최고인 이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목표로 정치지형을 전복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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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말씀이다. 기후위기를 향해 돌진하는 이 미친 문명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숙고하고 토론해야 할 무겁고도 뼈아픈 말씀이다.


선생은 땅을 일구고 사람을 만나고 고양이를 돌보는 모든 일상을 시인의 눈길로 갈무리해 왔다. 따스하고 애틋하다. 2020년 농사일 와중에 틈틈이 써온 글들을 엮어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을 펴냈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자연과 하나 된 삶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된다.


“볕이 쏟아지는 빈 밭에 나가 내 몸뚱이도 말려야겠다. 한 시절 흘렸던 뜨거운 눈물도 말려야겠다. 사랑도 말리고, 분노도 말리고, 그리움도 말려두면 좋겠다.  아, 눈물 나게 좋은 가을볕이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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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아래에서 새 문명을 꿈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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