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목욕을 하고 싶은 멧돼지.
24년 2월 초, 엄청나게 내린 눈을 뚫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에 올랐습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도, 쥐를 쫒아간 족제비 발자국도 보면서 말이죠. 능선까지 갔었고, 눈으로 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등산로를 내려오는 길이였습니다. 눈의 무게에 조릿대가 길을 덮어 더디게 진행하는데, 저 앞쪽으로 퍼런 조릿대 무덤이 보이는 겁니다. 순간 머리가 쮸뼛 서며, 뒤 바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찍으려는 찰라 왼쪽으로 돼지 한 마리가 튑니다. 무의식중에 터져 나오는 상투적인 탄성과 함께 아래로 튀는 멧돼지를 따라 찍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다시 한 마리가 튀어 나갑니다. 이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어요. 크기는 한 100근(60킬로) 정도 나가는 돼지 두 마리가 조릿대 속에 있다가 저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 거였어요. 모르긴 해도 조릿대를 꺽어 앞으로 낳을 새끼들을 위해 산실(새끼를 낳고 일주일 정도 키울 요량으로 만든 집)을 만든 자매 멧돼지였나 봅니다. 일단 다가가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어요. 하얗게 덮인 눈 속에 퍼런 조릿대가 무덤의 봉분처럼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야생동물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봤다면 그저 무심코 지나칠 일이나, 여러번 봐왔던 터라 한눈에 멧돼지 산실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둥지를 헤쳐 내부도 보고 싶었으나 출산을 앞둔 예비 어미 멧돼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그러면서 바로 드는 생각이, 여기에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하러 와야겠다 였어요. 이중 한 마리가 드나들면서 출산을 할 것이고 곧 새끼들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선 거지요. 산실을 본 반가움과 바로 내려와야 하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자리는 가보지 못했어요.
(사진1. 멧돼지가 두 마리가 튀어나갔던 조릿대로 만든 산실)
어려서 동네 잔치에 돼지를 잡으면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차고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을 이발소에 가면 큰 어미돼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커다란 액자도 붙어 있었구요. 오래전이라 액자 속의 새끼들이 정확하진 않아도 열 마리가 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는 거의 열 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다 치고, 숲에 있는 멧돼지도 새끼가 많지만 집돼지보단 적게 낳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먹이를 찾는 멧돼지보다는 사람의 보살핌 속에 먹이 걱정 없는 집돼지의 새끼가 더 많을 거라는 건 다들 이해 하실겁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돼지를 잡으면 젖꼭지를 세게 되는데, 눈앞에 보이는데도 정확하게 셀 수가 없는 겁니다. 뒷다리 쪽으로는 톡 튀어나온게 정확하나, 가슴쪽에 있는 건 거의 형태만 있지 제 구실을 할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희미하거든요(가짜 젖꼭지). 언제 한번은 대략 7쌍(14개) 정도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돼지는 야생의 멧돼지를 가축화 시켰기에 서로 교배가 가능하니 젖꼭지 수도 같아야겠으나 야생의 혹독함을 겪으며 집돼지보다 새끼의 수도 줄었으니 젖꼭지도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집돼지와는 달리 멧돼지는 산실에서 일주일 정도 키운 뒤 거의 밖에서 생활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약한 새끼들은 도태되거나 천적에게 먹히겠지요. 물론 안락하진 않으나 사람의 관리를 받으며 크는 집돼지에 비해 태어나자마자 혹독한 자연에 맞서야하는 멧돼지니의 입장에서는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맞겠지 싶습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암컷들이 공동육아를 하며 야생에서 남는 법을 배우겠지요.
산에서 조사를 하다보면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낙엽이나 흙을 긁어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주둥이(코)로 밀고 다닌 흔적입니다. 땅속에 있는 지렁이나 벌레 등을 닥치는 대로 먹고, 밤이나 도토리를 찾아 먹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산 아래 밭에 고구마를 세 고랑 놓았는데, 아침에 산책 다녀온 집사람이 고구마 고랑이 다 뒤집어져 있대서 가보니 멧돼지 짓이더라구요. 딱 고구마 밑이 들 때를 기다려 그렇게 다 먹어치운 거죠. 가끔 칡을 파먹은 흔적도 보이는데, 고구마처럼 녹말 성분을 좋아해서입니다. 식물성이 기본이지만 닥치는 대로 뱀까지 먹는 잡식인 멧돼지는 논에 들어가 분탕질을 하기도 하고, 과수원의 사과를 따먹기도 해서 농사꾼에게는 최고의 미운털이 박힌 동물이기도 하지요.
(사진2, 고구마밭을 파헤친 흔적)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조사를 하다 임도로 떨어졌는데 저쪽에서 인기척이 나 가보니 올무에 걸려 발버둥치는 멧돼지가 있더라구요. 얼마나 벗어나려 애를 썼는지 올무 반경의 흙이 밭을 갈아놓은것첨 보였습니다. 무조건 앞으로만 향하는 야생동물의 습성이 상악골(코와 붙어있는 윗니)에 걸린 와이어가 더 조여오며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인거지요. 그때 드는 생각이, 이걸 지자체에 신고를 하나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고 제 갈길을 가나였어요. 신고를 하면 예전엔 마취를 시켜 올무를 제거한 다음 다시 자연으로 돌려 보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거든요. 2019년부터 발생한 ASF(아프리카 돼지열병)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은 엽사를 보내 무조건 사살하고 샘플(양성반응이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뽑는 피) 채취하고 끌고 내려오던지 아니면 석회뿌리고 묻어버리는 식입니다. 그대로 두고 오면 올무를 놨던 사람이 와서 어떻게든 요리를 하겠지요. 제가 어떻게 했냐구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인월 금계 구간에 전라북도 남원 산내를 넘어 경상남도 함양 마천의 경계에 등구재가 있습니다. 마천의 창원마을쪽 등구재 바로 아래 조그마한 소류지가 하나 있습니다. 전에 소류지 주변에서 멧돼지가 풀을 뜯어 만든 산실도 본적이 있는 터라, 기다렸다가 멧돼지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쌀쌀했으나 소류지 뚝방에 메트리스를 깔고 납작 엎드려 건너편 물이 내려오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한참을 기다렸어요, 돼지가 갑자기 보이는 겁니다. 하도 오래 엎드려 앞만 보고 있었더니 잠시 놓쳤던 거겠지요. 돼지가 천천히 나타나는데 해도 넘어갔고, 앞을 가린 나뭇가지로 시야는 안좋았으나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느긋하게 자리를 뜨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머리와 등을 제외한 몸에 물이 묻어 있더라구요. 돼지는 사람처럼 피부로 열을 발산하는 구조가 아니라 열을 식히는 방법으로 진흙목욕을 선호합니다. 충청도 어느 산에는 봉분이 죄다 패여 있는 겁니다. 비가오면 돼지가 위에서 목욕을 하고 벌건 황토를 주변 소나무 여러 군데에 묻혀서 이동한 동선이 보일정도로 말이지요.
우리가 티비에서 보는 고라니나 담비, 멧돼지는 멋짐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죽게 되면 털속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진드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요. 체온이 식어 숙주로서 역할을 못하게 되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거든요. 멧돼지가 진흙목욕을 하는
이유는 더워서도 있지만 몸에 붙어있는 진드기 영향도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흐르는 시냇가에 들어가는 것보다 물이 고여 자작한 진흙을 선호하지요. 뒹굴며 체온을 식힘과 동시에 몸에 흙이 달라붙게 만드는 겁니다. 어느정도 굳어지면 주변에서 송진이 베어나오는 나무를 찾아요.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이라 부르는 일본잎갈나무 등. 튀어나온 엄니(송곳니)로 상처를 낸 다음 송진이 흘러나오면 거기에 몸을 문지르는 겁니다. 가려운 곳 순으로 긁어대것지요. 이렇듯 몸을 비비는 나무를 멧돼지 베개목, 또는 비빔목이라 불러요. 멧돼지 물통(진흙목욕을 한 곳) 주변에는 대개가 비빔목이 있답니다. 어떤 나무는 얼마나 비벼댔는지 빙 둘레 수피가 다 벗겨져 죽어가는 나무가 있을 정도입니다. 송진의 테르펜 성분이 항균작용을 하는걸 아는 모양입니다.
(사진3, 멧돼지 물통과 비빔목-흙탕물이 있는 걸로 보아 목욕한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강릉 산불이 있었던 곳에 조사를 갔을 때 일입니다. 다 타서 시커멓게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소나무 숲에 멧돼지가 쉬거나 잠을 잔 흔적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층식생이 다 타고 없는 곳에 쉼터 자리에만 주름조개풀이 보이는 겁니다. 숲 가장자리에 사는 주름조개풀의 끈끈한 열매가 멧돼지 털에 붙어 거기까지 이동한 것이죠.
(사진4, 인천의 국립생물자원관 생생채움관에 멧돼지 산실을 설치하고 있다)
이땅에 맹수가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몇 안되는 야생동물들은 거의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중 멧돼지는 사람 말구는 천적이 없을 정도로 생태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죠. 그러나 농사꾼들에게 눈에 가시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로 파리목숨이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고기가 귀한 시절에는 훌륭한 단백질원이였으며, 농사꾼에겐 홀대받을 지언정 알아주는 이 적어도 묵묵히 숲을 가꾸는데 일조한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를 막기위해 설치한 펜스로 의도치않게 다른 야생동물의 통행까지 막아 민폐를 끼치게 된 멧돼지.
멧돼지가 사라진 숲을 생각해 보세요. 유해조수라 없어진다면 마냥 좋기만 할 것 같나요? 자동차에서 볼트 하나 빠졌다고 크게 표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나중엔 차가 설 수도 있다는거까지 내다보며 볼트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 추적자 학교 하정옥 / 글.사진
추적자학교 하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