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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검색결과

  • 노고단 첫눈길
    「섬진강 편지」 -노고단 첫눈길 천왕봉 보다 조금 늦게 오셨다. 노고단 첫눈, 첫눈 길을 밟아 노고단에 올라 시린 발가락을 어르느라 동동거리며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11월에 2번의 문상을 다녀왔다. 외사촌형과 몽피다. 그 이들에게 좀 더 따뜻했어야 했다. 지리산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따뜻함에 대해 묻고 묻자.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12-02
  • 가을강빛
    「섬진강 편지」 -가을강빛 새벽길 모처럼 좌회전을 합니다. 마을 앞 첫 신호등에서 우회전은 지리산, 좌회전은 섬진강 영하의 날씨라 물안개를 기대하고 좌회전을 합니다. 풍경 하나가 생의 길을 바꾸기도 합니다. 저에겐 섬진강이 그렇습니다. 가을강빛 담아 보냅니다.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11-22
  • [벗자편지] 함께읽기 4_똥폼: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❹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똥폼 비가 그쳤어. 구름이 동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무겁고 어두운 구름. 먹구름이 파란 하늘에 잠시 자리를 내어 주면 나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하늘을 봐. 한 줄기 햇살 사이로 들려오는, 여치인지 귀뚜라미인지 메뚜기인지 스무 해를 살고도 여전히 분간 못 하는, 곤충들의 울음소리. 이제 가을인가 봐. 어제 텃밭을 정리했어. 대파는 두 줄 남기고 다 뽑고, 지난해에 먹다 지쳐 제풀에 올라온 토마토는 그냥 두었어. 팥 이파리는 무성한데 열매도 실할지. 주말엔 호박넝쿨을 거둬 내야겠어. 무씨를 뿌려야 하니까. 정리된 밭은 말끔하겠지만 그만큼 또 쓸쓸하겠지. 실은 날이 갈수록 붉어지는 토마토와 보랏빛 선명한 가지를 볼 때마다 뒤로 물러날 여름을 실감했지. 순간을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오지 않은 시간을 끌어당기는 버릇을 난 아직 어쩌지 못했어. 이맘때가, 그러니까 월말 공연을 끝내고 다음 달 공연을 시작하기 2주 전까지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니? 좀 쉬고 있는 거야? 네가 처음 달마다 공연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속으론 많이 걱정했어. 다시 머리가 아프면 어쩌나, 몸에 기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관객과 한 약속이니 지키려고 또 얼마나 애를 쓰려나.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생각이 많았어. 다만 한 가지, 공연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하겠다는 선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더라. 도망, 가고 싶니? 산내에 내려온 지 이제 꼭 스무 해가 되었어. 절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다”던 최승자의 시를 읊조리며 살았고, 나머지 절반은 단전에 잔뜩 힘을 넣고 ‘버텨 보겠어’를 주문처럼 외우고 살았지. 가끔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이 마을의 성평등 감각과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성인지 감수성에 거품을 물기도 했어. 시골은 단언컨대 남성에 최적화된 거주지다. 기본값 ‘남 성’이 그 어느 곳보다 활성화되는 장소다. 이 때문에 마 을회관은 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누워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는 거실 혹은 방 중심의 남성 공간 과 그 남성을 위해 밥을 짓고 상을 차리는 여성들이 분 주하게 움직이는 주방 공간. 귀농 후 첫해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별분업의 현장을 수용하며 살았다. 고무장갑, 호미, 목장갑, 앞치마 4종 세트를 상시 휴대하며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 이다. - 정상순, <정상순의 브런치> 2021. 1. 기억나니? 그때마다 우리도 저들처럼 힘을 갖고 싶다고, 동등해지자고 두 손을 불끈 쥐기도 했지. 마을 노동이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니 가사노동이 부불노동unpaid labor인 까닭을 생각해야 했어. 동시에 가사노동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건지, 충분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 왜냐면 결국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니까. 게다가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가족 아닌 다른 이의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주 노동자일 테니까. 우리는 백만 이주 노동자와 함께 살고 있고 이미 그들 없이는 농사도, 돌봄 노동도, 공장 노동도, 택배 노동도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마침내 다시 생각해야 했어. 스무 해 전 너와 나는 왜 이곳으로 왔는지. 우리가 꿈꿨던 것은 생태적이고 자립적이며 조화로운 삶이었어.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망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삶을 원했지. 그러나 생태적이며 자립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밑 빠진 항아리를 채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우리가 생각하는 자립이 누군가가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다시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난해에 한 환경운동가가 내게 물었어. 나는 우선 그 사람 질문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하던 중이었는데 교육 시간 내내 이분이 보인 태도는 호의적이지 않았거든.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만족하는 주의 혹은 주장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배제하는 것으로 개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이제 제가 질문하신 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을 네가 이어받았다고 생각해. 질문, 하고 싶니? 「월간정상순」 4월호에서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린 서로를 돌보는 것’이라 선언한 순간이 그랬어. 아픈 사람을 무능력한 존재로 보는 사회, 아프지 않은 몸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 생산하지 않는 존재를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사회에서, 능력이 무엇인지, 정상적인 몸이 무엇인지, 생산성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니까. 아팠지만 내 인생이 총체적으로 망가진 건 아니었어. 그 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나를 망가진 무엇으로 대했 지. 그러지 않고서야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느니, 생리 통이 줄어들게 임신을 하라느니 저런 말들을 저토록 쉽 게 내뱉을 수는 없었을 거야. 너도 반찬 맡기고 빨래 맡기고 그렇게 의존하며 살면서 왜 나만 그렇게 독립적 이길 요구하니? 대체 의존적이라는 게 뭐니, 독립적이라 는 게 뭐야? - 「월간정상순」 4월호 5월호는 필수노동인 가사노동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위치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질문했지. 임신, 출산, 양육의 시기를 거쳐 노동시장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여성들에게 경단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에게 왜 경단녀냐고, 경단녀 아니고 경력 보유 여성, 경보녀라고 소리쳤어. 무엇보다 ‘남자들을 따라잡는 그 길’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는 여성들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졸라 열심히 일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란 말은 마요/ 그런 말은 당신 말고 내 몫이니/ 누구 덕에 먹고 사나 생각해 봐/ 돈 벌어와 으스대면 가장이니/ 가장이 란 살림하는 사람인 걸/ 이제부터 가장은 너 아닌 나/ 가사노동자라네 (…) 백만이주노동자를 밟고 섰네/ 돌봄 가사 농사 택배 공장 노동/ 남자들을 따라잡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나/ 다른 길 만드세 - 「월간정상 순」 5월호 6월호는 고기 이전에 생명이라는 존재들의 호소 즉, ‘단 한 번만 멈춰 서자’는, ‘단 한 번만 돌아보자’는, ‘먹히기 위해서 사는 삶은 없다’는 비인간동물들의 피를 토하는 호소였어. 단 한 방울의 피도 손에 묻히지 않고 남의 살점을 입에 넣을 수 있는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지. 우리는 붉은 피를 손에 묻힌 도살장의, 상업적 어선의 저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얼굴 가진 동물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소가 돼지가 닭이 그러하듯 우리는 동물입니다. 당신도 그러합니다. - 「월간정상순」 6월호 7월호는 마을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 마을 주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어.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숨어 있어야 해?’라는 대사를 곱씹었다는 관객도 있었지. 현식이 엄마 얘기 들어 주지 마. 그 얘기 듣고 여기 와 서 옮기지도 말고. 니가 뭔가 중간에서 해 보고 싶을 수 있는데, 지금처럼 현식이 엄마 말 나한테 전하는 거,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냥 살던 대로 사 는 거야. 그러다 너 제풀에 지쳐서 나도 할 만큼 했는 데 중간에 끼어서 내가 제일 힘들다느니, 내가 피해자라 느니 그런 말 하게 된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어. 내 딸이, 그리고 내 딸 친구들이 지금 어떤 지옥에 있을지 상상이 안 되면 그냥 가만히 있어. 그래도 꼭 무슨 말 이 하고 싶거든. 현식이 엄마한테 가서 말해. 현식이 공 부시키라고. 똑같은 짓 다시 안 하게 공부시키고, 제대 로 된 처벌 받으라고. - 「월간정상순」 7월호 8월호는 ‘가난한 자 뒤에 서서 세상을 망치고 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었지. 왜 세상은 점점 살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이 되어 가는지, 우리가 함께 살 만해지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누가 세상을 망치나. 가난한 자 뒤에 서서. - 「월간정 상순」 8월호 곧 선보일 9월호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난민을 다룰 거라고 들었어. 그래, 9월호에서만큼은 몇 해 전, 예멘 난민에게 보였던 미숙함과는 다른 환대의 언어와 행동이 넘실거린다면 좋겠어. 돌아, 보고 싶니?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에코페미니즘에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시골에 내려와 살아 보니 농사가 요구하는 집약적 노동을 대부분 여성이 감당하고 있더라. 그런데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철없이 과거를 복원하거나 과거로 회귀하자며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아 답답했지. ‘돌봄 노동이 중요하다는 건, 그래 알겠다고. 근데 나더러 평생 재생산노동에 뼈를 갈아 넣으라는 거야? 페미니즘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별화된 노동에서 겨우 벗어났어. 근데 뭐야, 이건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이나 해. 평생 애도 안 키우고 살림도 안 해 본 거 같은 사람들이 말만 번지르르하네.’ 내 마음속 저항은 어마어마했어.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생태주의자 흉내를 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 하루를 비닐봉지 씻어 말리는 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지역으로 내려와 도시와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을 때, 생태적으로 자립적으로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나에겐 페미니즘적 사유가 없었어. 도시나 지역이나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패배감이 더 컸던 시간도 있었지. 그런데 마침내 페미니즘적 사유를 하게 됐을 때, 귀농을 결심했을 때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나를 발견했어. 난 여전히 권리 투쟁 중이었거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욕망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남녀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지, 여성 혐오와 여성을 향한 폭력이 멈추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살피지 못했어. 결국 너와 내가 왜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 까닭을 금세 잊고 말았어. 그리고 오랫동안 굳이 그 까닭을 다시 묻지 않았어. 한 달 전쯤 같은 마을에 사는 인터뷰 집단이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어. 간단한 소개를 듣고 싶다기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을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라고 대답했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부캐가 많잖아. 닉네임도 여러 개고.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부캐도, 어떤 닉네임도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을 주민’이라는 말을 능가할 답을 찾지 못했달까. 며칠 전엔 지역 에코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초대됐는데 또 “어떻게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 내 대답은 같았어.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들이 꺼낸 질문은 줄곧 너와 내가 우리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었어. 지난해, 몸이 몹시 아프던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어. 원래 생각이 많은데, 아파 누운 시간이 많아지니까 정말 생각이 많아지더라. 내친김에 묻고 또 물었어. 나는 왜 도시 삶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지금 왜 이곳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는지. 응답, 하고 싶어 땅을 살리고 씨앗을 살리는 일이 여성으로서 네 몸을 소외시키지 않는 일이며 재생의 에너지와 재생산 권리 (능력)를 되찾는 일에 다름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임신 출산 육아 노동을 고된 노동으로만 여기 지 않고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임을, 다른 노동의 가 치에 견주어 하위에 속하는 노동이 아님을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하여 임출육의 기간 이후에 찾아올 상대적 자유를 배우자 따라잡기에 허비 하지 않고 캐롤 엠쉬윌러Carol Emshwiller의 놀라운 소 설 「애들」의 여성들처럼 남성들에게 “우리처럼 살라” 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 <정상순의 브런치> 2020. 11. 아마도 지금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이 사회에 깔린 구조적 모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일 거야. 모순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일 거야. 페미니스트로서 인식한 가부장제의 모순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음을 똑똑히 알고 그 시스템에서 모두가 벗어난, 해방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내가 해방이라는 말을 쓸 줄 이야)일 거야. 그래서 나는 보다 작은 원으로 둘러앉고, 보다 작은 모임을 꾸리며, 보다 작은 극장에서, 보다 적은 수의 관객과 마주하는 너를 응원해. 더 작게 모이고, 더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더 적은 양에 만족하는 일로 너는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벗겨 내고 있잖아.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지 못한 나는, 너에게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 여전히 힘이 필요한 순간들을 느껴.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동등해지기 위해 힘을 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어. 세상 어떤 존재도 누군가를 위한 쓸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 권리에 대한 주의나 주장만으론 바꿀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유, 함께 사는 해방된 삶에 대한 원대하고 창대한 상상. 만약 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이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키우기 위해서일 거야. 내가 잘 살기 위한 권리가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해방의 투쟁, 이것이 스무 해를 이곳에서 살아 내며 너와 내가 함께 가게 된 길임을 믿어. 해가 졌어. 구름이 별을 가릴지도 모르지. 한낮에도 하늘은 무겁고 흐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면 다시 아침이 온다는 걸 알아. 낮에는 뵈지 않는 달과 별이 늘 거기 있다는 것도 알아.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오늘은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나를 좀 봐주려고 해. 이번만큼은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돌보려고 해. 그러지 않으면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테니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는 함께 평화로울 수 없을 테니까. 함께 평화롭기 위해 나는 네 손을 잡을 테니까. 이윽고 우린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있을 테니까.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우린 먹구름 속에서도 별과 달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 똥폼 ◌ 산내 사는 ‘마을 사람’. 공연 플랫폼 ‘월간 정상순’에서 한 달에 한 번 뛰놀고, 농한기 마을극단 ‘떼아뜨르 마고’, 페미니즘 공연예술단 ‘아무튼, 유랑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만끽 중이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착취를 꼬집는 「월간정상순」 8월호는 똥폼이 보내는 이번 편지와 주제가 맞닿아 독자들을 <<벗자편지>>에 전문을 실었으나, <지리산인> 지면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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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1
  •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4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지리산뱀사골탐방안내소 자료집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 _빨치산과 토벌부대, 그리고 사람들 2008년 5월 10일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발행 <지리산인>은 과거 지리산에 깃들었던 빨치산과 이들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회로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의 전문을 총 10회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 ➊ [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 소개 + 책을 내며 ➋ 빨치산이란 무엇일까요? +지도로 보는 빨치산과 토벌부대 루트 ➌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1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➎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➏ 토벌부대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➐ 숙명의 대결, 토벌군 사령관 백선엽 ➑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1 ➒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2 ❿ 뱀사골탐방안내소, 전시관을 열다 이번 시간은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을 함께 보겠습니다. 알립니다. 책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 글 가운데 '반란군'이라는 표현처럼,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지리산인>의 역사 인식과 다른 점이 있음에도, 빨치산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독자들께 빨치산 역사에 더 다가갈 기회를 드리고자 역사적 자료로서 이 책을 인용하여 싣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좀 더 나은 자료를 찾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지리산 빨치산, 조직력을 갖추다 그러자 국군은 반란군 토벌을 위해 10월 21일 광주에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10개 대대를 동원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토벌부대는 10월 27일까지 순천과 여수를 탈환하고 진압작전을 벌였는데, 반란군 패잔병 350여 명이 광양 백운산과 지리 화엄사골, 웅석봉 같은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듬해인 1949년 4월 9일 지리산 뱀사골 반선마을에서 반란부대장인 김지회와 홍순석이 사살되면서 여수, 순천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잔여부대원들은 빨치산(야산대)에 합류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정규군의 형식을 갖춘 빨치산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진 : 1952년 2월, 빨치산의 습격에 대비하여 요새 같은 방어 태세를 갖춘 경찰서) 이들은 지휘관이 되어 구빨치산을 이끌었다. 이때 빨치산의 대표 인물인 이현상이 등장했다.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이현상은 지리산 빨치산의 정치위원으로 참가했는데, 스스로 지리산으로 지원해서 반란군 잔여세력을 기반으로, 부근의 야산대와 반란에 동조했다가 도피 중인 민간인을 모아 ‘지리산 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 1949년 7월부터는 공식 명칭을 ‘제2병단’이라 했는데, 이것이 지리산 빨치산의 시작이었다. 격렬했던 투쟁 1950년 6월 25일 전쟁과 함께 빨치산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현상이 이끄는 구빨치산은 지리산을 떠나 월북을 결심하고 북상하던 중 전쟁소식을 들었다. 이 부대는 다시 낙동강전선으로 배치받아 활동했는데, 9월 15일 유엔군과 한국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 북으로 후퇴하던 이현상의 구빨치산은 다시 당의 지령을 받고 남하하여 1951년 5월 중순 덕유산 송치골에서 도당회의를 열어 ‘남부군’이라는 대규모 군사조직 체계로 개편했다. 이때 빨치산의 조직총책인 이현상이 남부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들 남부군 850여 명은 남쪽으로 진군하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에 자리잡았다.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로를 잃어버린 북한의 정규군, 인민위원회 주도세력, 우익세력의 보복이 두려웠던 사람들이 다시 산으로 모여들게 되는데, 이때부터 ‘한국전쟁기의 빨치산(산빨치산)’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규모 군사조직체제롤 개편한 남부군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강력한 유격투쟁을 전개했다. 주로 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게릴라전에서 대낮에도 전면전을 불사하는 전투를 하게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이 일대에는 2만여 명이 모여들어 남한 내의 인민공화국 지대가 만들어졌다. 이때 지리산은 ‘빨치산의 왕국’이라 부를 정도로 그들의 세력과 규모는 대단했다. (사진 1952년 1월 14일, 전주교도소로 이송되는 빨치산들 역사 속으로 저물다 빨치산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자 1950년 10월 11사단이 창설되어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만한 모든 곳을 제거한다는 ‘견벽청야’ 작전을 통해 토벌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부군 창설과 함께 위기감을 느낀 유엔군 사령부는 1951년 11월 26일 남원에서 백선엽을 사령관으로 하는 ‘백야사(백선엽 야전전투사령부, Task Force Paik)’를 창설하여 이듬해 3월까지 군인과 경찰합동으로 대대적인 동계토벌작전을 벌였다. 이때 빨치산은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 사살되거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약 2개월 뒤 지리산 빗점골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빨치산 5명과 함께 사살되었다. 이후 1954년 2월 27일 전남도당부위원장 김선우가 백운산에서 전사하고, 도당의 지도자들이 죽음을 맞았다. 산속으로 뿔뿔이 도망친 빨치산은 정부의 끊임없는 항복 유도 방송과 추격전으로 점점 소멸되었다. 1955년 7월 1일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편성되었던 토벌부대 또한 빨치산 소멸과 함께 해체했다. 그리고 1963년 11월 12일 새벽, 산청에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생포되면서 빨치산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사진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과 이홍이가 가지고 있었던 무기 치열했던 빨치산의 역사는 저물었지만 지금도 그들에 대한 연구와 평가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현대사의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의 겨울산을 누비며 그들은 무엇을 주장하고,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지금 그들이 살아 있다면 현 시대를 향해 무어라고 토로할 것인가? 지리산은 그들의 못다 이룬 꿈마저도 조용히 품어주고 있다. 다음 시간에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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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1

사람이야기 검색결과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5] 서울, 청주, 대전, 공주, 홍천 순례길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 5] 반가운 사람들 : 11월 가을날에 서울, 청주, 대전, 공주, 홍천. 이렇게 10여 일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 1. 서울에서 새만금 신공항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 인월터미널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에서 한 분과 인사를 건넸는데, 산내에서 식당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중간 휴게소에서 후쿠시마 몸자보와 순례, 최근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볼일이 있다던 그녀는 조용히 저의 손에 후원금을 쥐여 주셨습니다. “나도 요즘 모임에서 기후 관련된 책을 읽고 있어요. 순례에 쓰세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마음이 진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경복궁에 도착하여 해당화를 만났습니다. 해당화는 새만금 신공항 저지를 위한 ‘새 사람 행진’에서 만난 동지입니다. 행진 중에 ‘흥진단’이라 하여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 뭉쳐서 신나게 다녔는데 기획팀장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항상 열의가 넘칩니다.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활짝, 점심으로 막걸리를 사주겠답니다. 마주 앉아 한 잔씩 가볍게 들이키며, 당일 일정을 간단히 공유하고, 저로서는 생소한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을 보러 갔습니다. 사진들은 오래된 얼굴들, 묵묵히 살아온 모습과 흔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11월 12일 오후 4시. 국민소송인단과 백지화공동행동의 주최로 ‘새만금 신공항 집행정지신청 인용촉구 기자회견’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렸습니다. 2개월 전 9월11일, 서울행정법원의 기본계획 취소 판결이 이뤄지면서, 신공항 사업에 대한 모든 절차를 중지시켜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전북의 지자체와 정치권으로 인해 아직도 인용되지 못하고 법원에 묶여 있는 중인데, 오늘이 2차 심리기일입니다. 국토교통부는 판결에 대해 불복하여 항소했으며, 전북의 행정기관은 중단된 전북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서 검토에 대한 협의 진행과 실시설계인가 및 착공을 서둘러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에 사업 중단 없이 법적, 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후 법정으로 이동하여 한 시간가량 심리를 공청했는데, 판사와 변호사의 말이 저로서는 무척 어렵게 다가옵니다. 평소에 관련 자료들을 읽고는 합니다만.^^;; 새만금 신공항 대책위에서는 환경행정소송에서 기본계획이 취소된 사례도, 이에 따른 집행정지 신청 사례도 처음이라며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 치밀하게 투쟁하자고 말합니다. 집행정지의 지연은 회복할 수 없는 수라갯벌의 피해와 국가재정과 행정적 낭비,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입니다. 신속한 인용 판결로 이를 막아내야 할 텐데, 2차 심리를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적절한 시기에 판결한다고 합니다. 11월 13일, 증산역에서 출발하여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집회장까지 8km를 걸었습니다. 원안위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신청한 고리2호기 계속 운전을 위한 운영변경허가를 심사하는 날이라 기자회견과 종일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사전에 발언 요청이 있어, 준비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정부가 42년 된 노후 핵발전소인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 의견을 배제하고, 비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안전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선택과 희생으로 지켜온 결과이며,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핵발전의 위험을 배워왔습니다.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며, 인근 주민의 고통, 장기간 사라지지 않는 방사성 폐기물, 후쿠시마 사고의 지속된 영향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핵발전소를 더 가동하려는 것은 결국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정부, 한수원, 원안위의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관련 심사를 폐기하며, 투명한 탈핵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탈핵은 과격한 변화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안전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길은 분명하며, 탈핵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주요하게 ‘민주’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결국 6명의 재석위원 중 5명의 찬성으로 계속운영 허가로 의결되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으로 2029년까지 만료되는 9기의 수명연장 중단도 위태로워졌으며, 노후핵발전소의 잦은 사고가 말해주듯, 380만 명의 인근 주민들과 미래세대의 안전에 대한 위험 수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 자본과 정권의 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원안위의 결정은, 핵 시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역사적 퇴행입니다. 대다수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실용주의로 포장된 반민주적인 폭거입니다. 이날 ‘광화문 탈핵목요행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집회는 매주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됩니다.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이순신 동상 주변을 돌며 시민들에게 알리고 다녔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문구 방향에 신경 쓰며, 눈인사와 미소를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부끄러움이라는 게 없나 봅니다.^^;; 집회를 마친 후 초록교육연대와 지역에서 온 동지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활동가분이 저에게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면 더 공부가 필요하다.”며 탈핵신문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탈핵신문읽기’가 이렇게도 이어질 수 있다니... 기뻤습니다. 이 집회에 참여한 동지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연대로 현장은 굳건해진다. 연대가 희망이다.” 2. 청주에서 율량동 엄마 집에서 모임이 있는 가경동 ‘가로수 도서관’까지 6km를 걸었습니다. ‘청주탈핵신문읽기’는 여럿이 옹기종기 월1회 신문을 읽고 토론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자연스레 걱정과 질문이 흘러나왔습니다. 첫 번째 화제는 345KV 송전탑 문제였습니다. 충북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퍼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공유하며, 각 지역의 우려와 대책위 구성여부, 이후의 대응방법을 더 알아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특히 용인 반도체 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방 농촌이 또다시 부담을 떠안는 현실에 모두가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송전탑을 세우는 문제를 떠나, 다들 이런 거대 송전탑이 왜 필요한지부터 질문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고리2호기 수명연장 승인 이야기로 넘어가 절차가 너무 졸속이었다는 비판, 기사에서 언급된 지역주민들의 생존권과 보상요구를 보며, 탈핵운동이 주민들의 현실문제와 어떻게 만날 수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핵잠수함과 핵재처리 관련기사에서는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플루토늄의 핵무기 전용 가능성,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를 고온의 녹은 소금 안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재처리하는 기술)이 정말 국제적으로 허용된 기술인지, 핵잠수함 연료 승인과정, 국내 건조여부, 미국의 입장, 그리고 이것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언론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부분을 함께 정리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 탈핵은 마라톤입니다. 가즈아^^;; 썬자는 주거 복지와 관련된 새로운 일을 선택했고, 꾸렁은 여성단체 활동을 합니다. 저는 탈핵순례자로 길 위에 있고, 준석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여행탐험가입니다. 여기는 준석의 공간 행복까페.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을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잔잔한 온기가 흘렀습니다. 지난 만남에서 ‘사회주택’을 언급한 꾸렁의 한마디가, 우연히도 잠깐 들린 썬자의 새로운 일터 공간에서 펼쳐 든 책에서도 관련 글을 보았는데, 결국 저는 소개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뭐라도 통하는 부분이 있긴 있구나... 준석이 준비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서로에게 말을 걸었고, 각자의 길 위에서 담아온 이야기들이 이미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짓 뉴스레터’ 16호를 읽은 뒤, 산남동에 새롭게 이사한 배움터 ‘이짓’ 공간을 향해 8km를 걸었습니다. 이번 16호가 주목한 것은 방송사들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부정’과 ‘부당해고’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2025년 APEC이 남긴 네 개의 장면, 노조법 개정은 비정규노동자에게 좋은 기회, 한걸음 더 전진을! 새벽배송 논란 등입니다. 새 공간에서 만난 공간지기 선지현 동지에게 ‘이짓’의 뜻을 묻자, 그녀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며 ‘삶과 노동을 잇는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노동, 기후, 탈핵 등 다양한 의제를 자연스럽고도 과감하게 연결해 낼 수 있는, 제가 아는 가장 빠르고 능숙한 매개자이기도 합니다. ‘이짓 뉴스레터’가 매번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대전에서 지역화폐 ‘두루’를 사용하는 지역공동체 ‘원도심레츠’로 가기위해 대전복합터미널에 내려 3km를 걸었습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탈핵신문읽기’와 ‘수요 밥상’에 스태프로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2층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평소에는 각자의 일로 자주 오고 가지 않더라도, 모였을 때의 열기는 대단합니다. 저로서는 이를 통해 공동체의 느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달 발행된 탈핵신문의 내용을 나누고, 따뜻한 차를 마신 뒤, 저녁 ‘수요밥상’을 위한 준비로 분주해집니다. 당뇨에 좋은 잎을 손수 챙겨다 주는 나무늘보, 맛있는 커피 내림을 도맡는 우리소리, 대화에 참여할 듯 말 듯 조용히 섞이는 그림, 그리고 저, 마지막 맛을 책임지는 웅장한 셰프 왜가리가 움직입니다. 언제라도 꽃봉오리가 터질 듯 환하게 피어날 것 같은 꽃사슴과 저는 설거지가 척척 맞는 팀입니다. 회원님들 이름은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차분한 에너지의 부영, 밝고 경쾌한 은득이 떠오릅니다. 맛과 정성이 듬북한 음식, 북적북적한 공간에는 웃음이 넘쳐납니다. 식탁이 차려진 입구에는 언제나 처럼 탈핵신문이 놓여있습니다. 4. 홍천에서 석록과 함께 노동가요를 즐겁게 부르던 추억을 떠올리며, 홍천군 영귀미면을 향해 순례를 나섰습니다. 석록은 월간‘탈핵신문’ 편집 일을 하며, 고향인 이곳 홍천에서 별도로 직장을 다닙니다. 집으로 가기 전 횡성에서 만나, 식당을 하시는 둘째 언니가 요리해주신 ‘여울아구찜’을 맛보니 강원도에 들어섰음이 더욱 실감 났습니다. 내어주는 따뜻한 방과 차 한 잔은 먼 길의 피로를 풀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석록이 출근한 후 서로 이야기했던 텃밭 꾸미기 작업. 농기구를 챙기고 장화를 신은 뒤, 흙 위에 밑그림을 그리며 삽질을 시작했습니다. 놀고 있는 야옹이와 까뮈를 보니 지리산 쏭이가 떠올랐습니다. 3분의 2쯤에서 마무리하고, 홍천 양수발전소 금요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홍천군청까지 12km 길을 나섰습니다. 오후 4시 집회. 이곳에도 발언 요청을 미리 받았는데, 대략 이러합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주민들과 마주하니 마음이 아리면서도, 뜨거운 눈빛에 연대의 힘을 느꼈습니다. 100년 잣나무 숲과 함께 살아온 풍천리 주민분들의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외침은 정당합니다. 그 목소리를 짓밟고 강행하는 양수발전소 건설은 희생의 강요, 투명성 없는 폭력입니다. 건설계획은 즉각적으로 취소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파타고니아 겨울 상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오늘의 연대는 저에게 다시 한번 확신을 줍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삶을 지키는 일은 함께 나서야만 가능하다고. 다음 날 석록이 저에게 건네준 김치와 김치재료, 땅콩, 호박... 이 꾸러미도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땅과 손,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이야기였습니다. 모두가 시간과 공간을 건너 흐르는 하나의 연속선 속에 놓여있습니다. 삶의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며, 우리가 자연과 타인, 자신과 맺는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임을. 이러한 이어짐과 연결의 감각은 오랫동안 잔잔히 울릴 것 같습니다. 5. 순례를 마치며 그 여정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서울에서의 딸과 보낸 데이트 같은 시간들, 딸이 요리한 밥을 얻어먹으니 기분 짱이었습니다. 이제는 4급 치매를 앓고 계시는 엄마의 돌봄, 미처 알지 못했던 지난날 엄마의 슬픈 삶이 아려옵니다. 그리고 언제나 다정하게 반겨주는 청주의 친구, 햇살, 락기, 유별이도 만났습니다. 공주에서는 새로 이사한 왜가리 집에 머물며 수납장 조립도 하고, 지난 속초 순례에서 만난 라고마 까페 주인장 꿈씨, 몸자보 글귀를 언급한 왜가리 친구 퀼트대표님과의 식사와 대화도 생생합니다. 공주를 떠날 때 왜가리를 통해 전해준 꿈씨의 작은 쪽지 메모와 후원, 따뜻한 마음이 저의 품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찬바람이 쌩쌩 12월이네요. 연결과 만남, 그리고 밝은 연대를 알리고자 하지만 여전히 울뚱불뚱한 이 글을 감내하시고 읽어주시는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함께 만들어가는 연대의 불꽃으로 따뜻한 사회가 꼭 이뤄지리라 믿습니다. 겨울 추위 잘 이겨 내시고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앗싸 탈핵!! 글쓴이 청명 "연대! 나의 순례는 탈핵과 비움의 길, 그리고 연대의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단절, 좁은 시야, 울타리, 권력, 불투명한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연대는 좋은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글을 실을 수 있도록 마음의 손길을 내 주신 ‘지리산인’에게 찐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순례자 청명으로부터
    • 사람이야기
    2025-12-05
  •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람 – 성심원 원장 엄삼용 알로이시오와의 만남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람 – 성심원 원장 엄삼용 알로이시오와의 만남 사람들에게 왜 이곳에 와 사느냐고 물으면 지리산이 거기에 있어 왔노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기에 있어 와 보니, 여기에 지리산이 있는 사람도 있다. 성심원 원장인 엄삼용 알로이시오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늘 밖에서 노동복 차림으로 일을 한다. 넓은 성심원 이곳 저것을 고치고, 수리하고, 풀을 뽑고 하는 일과가 종일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심원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마주쳐도 그가 원장 수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은 정식 수사복 차림으로 카페(성심원 카페 나루터)에 들어섰다. “신부님 뵙게 돼서 기쁩니다”하는 인사에 자신은 신부가 아니라 수사라고, 그렇게 호칭을 정정하면서 ‘예수님’과 ‘사부님이신 프란체스코 성인’을 따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수도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 때는 정식 수사복을 입었노라고. 성 프란체스코와 작은 형제회 “ 프란체스코 성인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분이셨어요. 작은 형제로 살고자 하는. 이분의 유언에 보면 ‘우리는 무식하였기에 모든 이에게 복종하였습니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사실 뭐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형제로. 대중 속에 아울러서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제 뒤에 있는 이 벽화는 수도사이신 작가분이 제작하신 건데, ‘태양의 찬가’라는 주제로 한 거거든요. 프랑스코 성인의 정신은 ‘만인의 형제’, 그러니까 ‘우주적 형제’입니다. 만인, 만물, 만성. 그리고 여기 보이지만. 태양을 형제라고. 형님인 태양, 누님인 달. 어머니이신 땅. 물, 불. 이런 것들을 크게 인격화하셨습니다. 성인은 ‘광활한 자연 속에서 ‘나란 존재가 정말. 이렇게 미약하고 작다’라는 걸 아마 느끼셨던 것 같아요. 저희 수도회 정식 명칭은 ‘작은 형제회’인데, ‘작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 저흰 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죠. 우리는 한계가 많고 유한하고 사실은 부족함이 많잖아요. 인간일 뿐이기 때문에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그래서 이분은 사제는 안 되셨어요. ‘작은 형제로 살겠다’고 그러셨고 형제들에게도 이 점을 강조하셨지요.” 성심원 –우린 ‘800년전 이태리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의 제자 시대를 막론하고 한센인은 가장 혐오스럽고 배척받는 대상이었다. 프란체스코 성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나환자를 만났는데, ‘정말 몸과 마음이 역겨웠고 도저히 쳐다볼 수 없어’ 피했다. 성인은 한센인들에게서 ‘그 안에 계신, 버림받고 소외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으로 해석하고, 모든 걸 다 버리고 집을 나와 나환자들 곁으로 갔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가 출발하게 된 어떤 모태와 같은 원형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한센인들과 함께하는 작은 형제들의 삶이 되었다. 성심원은 그런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한센 마지막 세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버림받고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늘 생각하게 하는 곳이 바로 성심원이다. 성심원에 ‘한 번 안 와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프란체스칸(프란체스카 성인을 따르는 가족들, 수도자, 사제, 평신도)에게는 성심원이 아주 중요한. 회개 생활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다. “우주 만물을, 자연을 인격적으로 우리가 대하지 않잖아요. 우린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하고 차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데, 이분은 800년 전에 이미 인격적으로 다 하느님이 주신 피조물로, 나와 똑같이 그 동등한 관계로 보셨던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에 따르면 종교도 남녀노소,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열린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거죠.” 성심원은 그런 식으로 만인에게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 공공재로 쓰여지길 지향한다. “이 곳은 여러분들의 도움과 특히 우리 한샘 어르신들의 애완과 피땀이 들어간 그런 장소이기 때문에, 만인들에게 개방된 공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같이 갖고 가는 공간이에요.” 성심원 원장이 되기까지 그가 처음 성심원을 접한 것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성심원으로 봉사활동을 오고부터였다. 그렇게 접하게 된 성심원에 감동을 받아 여름 휴가 때, 겨울에 이렇게 자주 방문하게 되고, 그러다 수도자 생활을 결심하고, 수도원(프란체스코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 수도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반대 많이 했죠. 제가 큰아들인데, 아버지한테 얻어맞기도 해보고. 고모는 제사 지내러 집에 왔다가 그 얘기 듣고 졸도해 버리시고,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반대하니까 왜 역작용이라는 게 있잖아. 고집 피우는 거. 하도 고집을 피우니까, 반대하시던 어머니께서 먼저 허락해주시고, 누나들과 남동생도 찬성해주고, 그래서 들어오게 되었지요. 누나는 ‘너 친구 좋아하고 그러는데, 수도원 생활 견디겠나? 들어갔다 나오겠지’ 아마 그리 생각한 것 같아요” (웃음) 평생 구도자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한센인,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려운 일이다. 그 또한 7년 정도의 수행 기간 동안 수도원을 나가려고 갈등한 적도 많았다. 가끔은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고, 가정을 갖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내다 보니까 뭐, ‘어쩌다 어른’ 그런 말 있잖아요. 어쩌다가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책임도 이렇게 맡겨져 있는 거예요.” 평범한 듯,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그에게서 가장 낮은 데로 내려온 수도자의 쉽지 않은 결정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자격이 없어도 성심원의 책임을 맡고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책임이 주어지는 까닭에,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가 부임해 옴으로써 그에게는 천직으로 제2의 성소 같은 곳이 되었다. 30년 전에 다리를 건너 우연히 봉사를 왔던 성심원에, 7년 부원장으로 일을 하였고, 강릉의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다, 이제는 다시 성심원에서 원장으로 3년째 일을 하고 있다. 원장이라는 책임을 짊어진 수도자 책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무게를 이기는 방법을 그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고, 여기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최고 중요하고, ‘즐기면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낮에는 원장으로서 많은 활동을 해야 하기에, 그에게는 새벽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아침 일찍 그날 미사에 읽게 될 성서를 읽고, 복음 내용을 미리 읽는다. 그리고 기도실(경당)에서 묵상하고 기도를 드린다. “미사하고 나면 이제 기도를 잃어버리죠.(웃음) 저는 신자들이 너무 시도 때도 없이 막 이러는 거 싫어요. 놀 때는 놀고 밥 먹을 때는 밥 맛있게 먹고, 자꾸 심각한 표정을 짓지 말고, 그게 사람을 은근히 얽매이게 하는 것 같아요. 사고도 -너무 이건 개인적인 거예요.- 기도할 때만 딱 하고 나머지는 그냥 자유롭게 알아서 하느님이 해주시겠지. 이런 걸 믿고 하는 게 중요해요” 1년에 한 번, 일주일 넘게 연피정(관상수도)을 하게 되는데, 거기에 그냥 푹 빠져버리고, 모든 것의 동력과 원천이 되는 힘을 얻는다. “마음속에 있는 게 말로 나오고, 시각으로 나오고, 그걸 또 보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관상’이라는 말을 이렇게 하는데. 시대 증표도 못 읽으면 기도 헛하는 거죠. 시대가 뭘 원하는지, 앞으로 비전이 뭔지, 이런 것을 보고자 기도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냥 나 혼자 그러는 게 아니라 이걸 통해서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갖는, 비전을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비젼-열린 공동체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그는 스스로도 말하듯이 ‘일을 만들어서’ 한다. 성심원 공간이 ‘만인의 유익한 공간’이 되도록, 골프장, 카페를 6월에 개장했다. “성심원은 약간 고립된 그런 면이 있어요. 또 한센 정착촌이고. 지금도 산청에 계신 분들 중에는 ‘여기 갈 수 있는 곳이냐’고 묻는 분들도 의외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카페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성심원은 지리산 둘레길 종점이자 시점이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아 경관도 빼어나고, 앞에 강도 흐른다. 그래서 지어진 곳이 성심원 입구의 카페 ’나루터‘이다. 옛사람들이 나루터에서 오가며 사람들을 만났듯이, 이곳이 많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나루터 역할을 했으면 하는 원장의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그는 또한 ‘탈시설’을 추진한다. 장애인들이 사회와 격리돼서 고립된 이곳에서 일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지역사회로 많이 내보낸다. 장애인들도 처음에는 시설 생활만 하다 나가니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안 들어오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에 많이 내보내고 그들의 일자리와 잠자리도 마련해주어야 하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살 곳뿐만 아니라 취미생활 여가 생활. 종교 생활 이런 것들도 하나하나 지원해 주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이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여서, 연결해 주고 잘 돌아가도록 코디하는 일들을 하다 보면 일이 아주 많아진다. 나루터와 애환 초기 성심원이 생길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서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나룻배가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쫓겨,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세상과 단절된 지리산 자락으로 숨어들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애환을 나룻배에 싣고 건넜을지 안타까웠다. (강을 건너던 마지막 나룻배) “옛날에는 한센인들 가면 학살 당하고 그랬거든요. 여기도 마찬가지였어요. 곡갱이 들고, 삽 들고 쫓아왔던 거지요, 위협하려고요. 쫓아내려고 정착 못하게. 파출소 이런 데서도 묵인하고. 여기는 산이 높고 각도가 있고, 앞에 강이 흐르니까 외부에서 해코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여기 지리산에 자리 잡은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저 산으로 숨었대요. 쳐들어오니까. 그리고 밤에 내려와 밥 해먹고 쉬다가 해 뜨면 또 도망가는 거예요. 초기에는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다행히 신부님 수녀님들이 같이 사니까 종교적인 힘도 있었어요. 교회에서 관심도 갖고 그러면서 이 자리에 정착을 하게 된 거죠.“ 지리산, 어머니의 산 지리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종교 연대도 가능한 거라고. “실상사하고, 저희하고, 이제 목사님들하고, 동호인들하고 있는데. 이게 다른 데 같으면 안 됐을 거야. 지리산이니까 되는 거야. 그래서 자연은 위대한 거죠. 품어주고. 어머니 산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인들도 어떻게 보면 절대 신념체계인데, 자연스럽게 서로 모이게 되고 나누게 되고, 또 공동선을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분들이 어우러져 좋은 생명평화 공동체가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진 세대가 들어와 지리산 종교위원회도 세대교체가 되야 하는데, 그렇게 되도록 저는 명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냥 무슨 일 있을 때 그래도 모일 줄 아는 거예요. 종교인들이 모이고, 큰 힘이 나오지는 않아도 유연한 조직이기 때문에 좋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죠.”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의 공동체를 위해 성심원 현재 한센인은 70명이고 장애를 가지신 분은 50명 정도 된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고. 한센 어르신들이 고령화되고 병들면 한센도 중증 장애인이 된다. 따라서 전문 인력이 필요해지고, 24시간 돌봄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분들을 돌볼 수 있는 요양원이 없어, 성심원이 장애인시설로 인가 받아,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어르신들을 돌보게 되었다. 그러다 지역에 중증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따로 없어서 성심원에서 장애인들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빌라 가정식으로 된 건물에 가정집처럼 개별적으로 살 수 있는 시설을 늘리고, 침상생활과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베란다 설치, 통유리 설치, 넓은 식당 등 시설 개선을 해나가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면 해서 건축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건축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앞으로 한센이 점점 줄어들어서 없어진다면 성심원은 앞으로 장애인 시설로 변화할 것인지 물어 보았다. “아니오. 저는 장애인 시설은 딱 이걸로 됐다고 보고요. 나머지는 저런 공간들을 노인주택이나, 청년 주택이나, 다양하게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야죠, 요즘 의료인들이 들어와서 살고 싶은데 마땅한 거주 공간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좀 풀어가고, 다양하게 남녀노소 거기에 맞게 구조도 세팅돼야 됩니다. 따라서 건축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동선이라든지. 제가 최근에 북해도를 다녀왔는데.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가 있다고 그랬고, 제주도 갔을 때 이타민 준(유동용)미술관을 일부러 가봤거든요. 정말 이래서 건축이 중요하구나. 아무 생각 없이 만드는 것과. 인간학적인 고려, 여러 가지를 생각했죠, 이런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은 환경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거기에 세팅돼 버려요. 자연스럽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존중되면서도, 절묘한 깊이. 그런 것들이 중요하거든요.” 일반인들에게 시설을 내주면 초기 수도원의 정신과 어긋난다고 생각하거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100 프로 그런 분들로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이제 한센이나 장애인뿐만 아니라 통합 마인드로 가야 된다’고 대답했다. ‘이주민 중에 집도 절도 없는 분들에게 개방되는 공간처럼 사회에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모든 분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그것이 초기 프란체스코 정신’이라고. 마을과의 연대 그리고 청년 그는 의료협동조합과의 연대를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의료협동조합과의 인연은 30년 가까이 한방 침구 봉사를 했던 김명철 원장이 ‘의료 협동조합’을 결성할 때 장소 구하기가 어렵자, 선뜻 무상으로 공간을 내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성심원은 한때는 한센 가족들 600여 명이 살다가 급감하면서–현재 70명/ 평균연령 80세-남는 시설이 생겼다. 처음 의료협동조합이 들어올 때는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이라 누가 올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효가가 컸다. 성심원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든 어쨌거나 인지도가 높고, 환경적으로도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살아난 것이다. 의료 사업이 들어와 지금은 제일 역점사업이 되었다. 의료 협동조합 안에 건축가, 도시 재생가 등 많은 인재들이 있는 까닭이다. 성심원은 이분들과 마을회의를 하면서 ’마을 공동체 사람살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장애, 비장애인들이 같이 살아감‘을 추구하는 원장은, 이미 구축된 의료 인프라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내년에 가정의가 들어오면 성심원 내에는 한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방도 함께 있게 된다. 또한 성심원 내 100여 명 넘게 숙식도 가능한 센터를 활용하고, 좋은 자연환경을 이용한 산책 공간도 만들어 이를 확장한 힐링 치유마을을 구상 중이다. 또한 마을 공동체에는 무엇보다 청년마을이 중요하다고 알로이시오 원장은 생각한다. “시골은 어느 마을이나 청년들이 없잖아요, 그런데 산청은 의외로 청년들이나 외지에서 자연이 좋아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귀농 귀촌 청년들이 의외로 자립 구조가 없는가 봐요. 이분들의 조합원이기도 한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창고 하나만이라도 좀 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좀 주시면 좋겠다‘고. 같이 회의를 하다가 저는 깜짝 놀랐죠. 아니, 그런 걸 산청군이 아직까지 안 해주고 있어? 못 해주고 있어? 너무 뚜렷한 거죠. 그래서 저희 이제 빈 공간 하나를 일단 쓰라고 해서 목공실은 만들어 놨어요. 지금.” 청년들이 정착을 하려면 자립구조가 우선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자신들의 생업들이 없으면 정착이 쉽지 않아진다. 지금은 가끔 모임을 하고, 목공 프로그램을 하는 정도지만, 내년에는 청년들 자립구조를 만들어 주는 일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저희가 논과 밭들도 많고 해서 ‘퍼머 컬처’라든지 좀 다양하게 여기 청년들 또 어린이들 거주 환경도 만들어야 된다고 작년에 세미나를 했지요.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이동식주택 이런 것들을 시범적으로라도 구비를 해야 되겠다고” 작지만 큰마을 성심원 마을 공동체 성심원 상주 인원은 약 200명 정도 된다. “우리 어르신들하고 장애인분들. 또 저희는 직원 숙소가 안에 있어요. 봉사자들과 장기 봉사자들도 저희가 숙식을 다 해결해드려요. 그리고 저희 수도자들, 저희들하고 또 수녀님들이 있고. 의료 협동조합 외에도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약 200명. 상시적으로 200명 정도면 작은 마을이 아니죠.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많이 들 오시죠.(웃음) 의료협동조합 조합원들이 1500명이면 사실은. 어마어마한 규모죠” “목화장터 밴드에 보면 인원이 지금 몇 천 명, 한 5000명? 큰 시장이에요. 물론 빨리빨리 지나가긴 한데 웬만한 정보나 소통 구조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괜찮죠.” “조합을 할 정도면. 나름대로 의식도 있으시고 각자 자기 영역에서 발언권도 있으시고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뭐 좋은 의미의 정치 세력화도 저는 필요하다고 봐요. 맨날 밑에서 세상이 왜 이래 뭐 해봐야 나만 죽어, 나만 죽고 정서적으로 피폐해지고.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죠.” 마을 회의는 한 달에 두 번, 혹은 세 번 열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김명철 이사장(의료협동조합 대표)와 박인자(경영 이사) 그리고 산청청년모임 ‘있다’, 성심원 원장, 과장 이렇게 핵심만 모인다, 거기에 더하여 마을 공동체 전문가, 건축가, 행정 쪽 일을 도와주시는 분 등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참여하여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느슨한 조직’이라고 표현했다. 변화와 도전 그리고 난제 성심원은 원장, 부원장 그리고 수사 8분이 계신다. 수사들은 각자 책임과 역할이 있다. 원장은 성심원 전체와 시설, 어떤 형제 신부는 교육회관, 교육센터를 맡고 있다. 풍연마트, 카페 책임자, 본당 신앙생활을 맡고 계신 외국 할아버지 신부님. 이렇게 요소요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수사들 외에도 봉사자, 고용직원 들도 함께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간다. “성심원 원장이 키를 갖고 있어요. 저죠 말하자면 (웃음) 왜냐하면 리더의 마인드와 비전이 조직을 좌우하기 때문에, 재정과 인력을 관리하는 원장의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 현재의 현실에 가장 이슈되는 것을 보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현재 원장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어려움은, 저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크게. 비전에 대한 공유? 뭐 이런 것들? 저는 장애인 쪽 일을 많이 해왔는데. 우리 복지 쪽에서 보면 직원분들이 한센 어르신 케어 지원해 주는데 오랜 세월을 하다 보니까 모든 게 다 그쪽으로 길들여져 있어요. 장애인 같은 경우는 아직 젊고 여러 가지 해야 될 일들이 많고. 그런데 이쪽은 상대적으로 좀 신경이 덜 가고 경험도 좀 부족한 그런 상태였죠. 그래서 아직 장애인 지원에 대해서는 시작 단계라 변화와 혁신을 이해시키고, 직원들과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겠죠.” 원장이 부임하여 많은 부분들에 변화를 가져왔다. 제도 혁신과 시설 개선에도 주력했다. “사는 데도 약간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봐요. 도전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라고 생각하죠. 자꾸 나아지려고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변화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힘들어하고 하는 것 때문에 그걸 설득하기가 굉장히 힘들지요, 제가 지금 협회에서 제일 힘들잖아요.(웃음) 제가 중앙협회. 경남협회장이거든요. 중앙협회 이사하고 정책위원장도 했는데. 협회나 천주교도, 신부님들하고 저하고 막 옥신각신하죠. 그런 것 때문에 나보고 ‘탈시설주의자’라고. 제가 망하자는 게 아니고 더 잘해보자고 그런 건데, 모임 현장에서 뭔가 변화가 안 이루어지면 전국 장애인 차별철폐 연대. 박경석 씨나 이런 분들하고도 개인적으로 소통을 해요. 같이 세미나도 해보고 그랬는데 원론적으로는 맞다. 그걸 부인할 수가 없죠. 시민으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방법적으로 현실 여건을 보면서 해야 되는 문제가 있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많이 해버리니까. 근데 뭐 시설도 죄는 없어요. 법대로 하는 거니까. 이건 국가 책임성에 관한 문제지.” 일상이 어울림 축제가 되는 마을 성심원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어울림 축제(음악회)는 올해로 11년차를 맞이했다. 한센인과 장애인, 봉사자들과 주민 모두가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축제로, 올해는 특히 3월 산불진화에 애쓴 진화 대원들과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장애인분들도 다 나와서 같이 인사 나누고, 참여하여 축제를 치루고 나면 성심원은 한층 더 조용해진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이런 일시적 축제와 소통의 장이 아닌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든다고 한다. “일상이 축제처럼. 마을을 이루며 살아야지요, 제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를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식당이 카페테리아처럼 중앙에 있더라고요. 그냥 장애인들도 그냥 자기 원할 때 와서 밥 먹고 식사하고. 또 방문하시는 분들, 직원들, 그런 분들이 자유롭게 거기서 만나는 거예요. 제가 여기 와서 그런 데를 만들까 했는데, 일단은 카페가 조그맣지만 그런 장소가 되고. 미래적으로는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안에 있는. 따로따로 먹지 말고. 자기 편한 때 와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하고. 소통과 교류의 장이죠” 성심원을 늘 개방된 열린 마을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청년 마을’로, 그리고 구상 중인 ‘문화예술 마을’로 이어진다. 상시적으로 전시회를 열기 위해 미술관을 유치하거나 경남도립미술관 분관을 둘레길에 설치하거나 하는 등으로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강에서 래프팅하던 사람들이 올라와 쉬어가는 카페(나루터)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리산 둘레길 성심원 코스에는 산티아고의 ‘야고보 사도의 순례길’처럼 12기도처와 성상들이 놓여있다. 가톨릭 정체성에 맞게 기도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카톨릭 그리스도교 문화를 체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놓인 것이라고 한다. 봉사를 하고 싶다면? ‘여기 와서 자원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지금도 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 또한 책임성이나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해주는 봉사가 필요하다. 단시간 봉사도 물론 할 일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봉사하더라도 관리나 일의 책임성 부분이 어렵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직원들이 해버리게 된다. 성심원에는 장기 봉사자들도 10명 넘게 있다. 그 분들은 요소 요소에서 안정적으로 자신의 맡은 부분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숙식을 여기서 하면서 한 달 정도가 아니라 1년 이렇게 봉사하게 되면 직책이 주어지게 되는데, 그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성심원의 바람 “이런 작업들은 성심원만의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서로서로 좋아서. 좋고 같이 활용할 수 있고. 같이 만들어가야 힘도 나고 지속 가능하고 발전적으로 될 수가 있으니까 함께 해주셔야 된다고 기대하죠. 우선 종교부터 더 많이 소통 구조를 만들어 소통하고, 공감대를 이루어 같이 만들어 가는 거예요. 일단 의료협동조합이라는 큰 자산이 있고, 지리산 권역의 종교나 실상사도 함께하고 있고. 지리산 권역의 다른 지역들하고도 계속 연계를 해서 같이 해나가길 바랍니다. 이제 큰 힘을 발휘하려면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큰 차원에서 제도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제도화시키고 교구에서 같이 하게 되면 엄청난 힘이거든요. 지역과 함께하고 지역을 섬기는 종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냥 자기들만의 종교뿐이 안 되는 거죠” ‘성심원의 식구들과 같이 친구가 되어주시고. 성심원을 잘 이용해주면 좋겠다’는, 그래서 ‘더욱 파급력이 큰 공간이 되도록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원장의 말을 끝으로 긴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쳤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산’ 지리산을 오가며, 가장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마음(성심)’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람들도.
    • 사람이야기
    2025-11-11
  • [지리산골프장무산 환영 인터뷰] “우리가, 지리산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지리산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 뒤, 사포마을 경숙을 만나다 2023년, 지리산 자락 숲의 아름드리 수만 그루가 잘려 나갔다. 시뻘건 흙이 다 드러났다. 마구잡이로 베어진 나무들이 물길을 막아 계곡물은 뿌옇게 변했다. 100평 넘게 있던 야생화 앵초 군락지도 쓸려나갔다. 27홀 규모 지리산골프장 개발 욕심으로, 축구장 30여 개 넓이 숲이 나무 무덤이 된 터였다. 바로 그 숲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포마을이 있다. 예부터 아름다운 다랑논으로 이름나 전국 사진작가들이 찾는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그 마을에 경숙이 살고 있다. (가을 사포마을과 다랑논 Ⓒ김인호) 마을에 뭔가 큰일이 나겠구나 경숙은 평소 마을 뒤 숲을 자주 올라다니지 않았다. 마을 일에도 나서고 싶지 않았다. 나이를 먹은 뒤 귀촌한 이 마을에서는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일들은 그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경숙은 마을 숲에서 주검처럼 널브러진 수만 그루 나무 시신들을 보자,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동네 분이 저기 위에 숲에 나무가 다 베어졌다고 그러시길래, 저는 가볍게 생각했어요. 누가 좀 와서 몇 그루 베어 갔는가 보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분 표정이 너무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올라갔어요. 나무가 너무너무 베어져 있는 거예요. 순간 아, 뭔가를 하는구나, 하고 느꼈죠. 그러면서 흐릿하게 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 골프장을 하려는 거구나.” 8만 6천 평 숲이 벗겨졌다. 그러고 150만 제곱미터, 45만 평 숲에 골프장을 짓겠다니. 구례군은 골프장 예정지 바로 옆이 지리산국립공원이라는 점도 예정지에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멸종위기야생생물 수달과 담비와 삵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골프장의 농약과 제초제가 다랑논과 섬진강으로 흘러들 거라는 점도,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지 지리산골프장을 밀어붙였다. (사포마을 뒤 지리산 자락 숲에 마구잡이로 베어진 나무와 벗겨진 땅) 혼자 싸울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경숙은 그날 이후로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다. “아,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가 과연 이거를 싸워낼 수 있을까? 우리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저 골프장을 막지, 하고 별생각을 다 했어요. 처음엔 나밖에 싸울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동네 분들이 함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내가 평소에 동네 분들이랑 어울리지도 않았고, 또, 예전에 사회운동을 해 보면서도 느낀 건데, 항상 아픈 사람들만 아프지, 방관자들은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착취하는 사람은 끝까지 착취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치만, 내가 이 싸움을 나만을 위해서, 내 뒷마당엔 안 돼 같은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사포마을은 오래전 이곳을 일군 주민들의 땀이 빚은 마을이다.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 돌과 흙을 이고 지어, 한 사람 한 사람 몸뚱이로 일군 다랑논 마을이다. 경숙은 이런 피눈물 나는 삶의 터전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상황을 도저히 가만둘 수 없었다. 세수를 들먹거리며 제 욕심이나 차리려는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경숙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싸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늘그막을 보내려고 마련한 집을 다 팔아 그 돈으로 변호사라도 불러야 하는 게 아닌지, 이 적은 돈으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경숙이 불타오르자, 그의 신랑 일용이 한마디 했다. “그이가 저보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마을 사람들과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함께 동네 분들을 만나러 갔죠. 그런데 동네 분들이, 그 어르신들이, 제 말에 무척이나 공감해 주시는 거예요.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이 마을에 골프장이 웬 말이냐고 그러면서 예전에 골프장 반대하며 싸웠던 이야기도 해 주셨어요. 참 힘을 많이 받았지요.”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사포마을이 골프장 싸움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에도 사포마을 어르신들은 앞장서서 지리산골프장에 반대했다. 당시 어르신 여섯 분이 사업주 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민들이 소리 높여 골프장을 막아낸 곳이 바로 이 사포마을이다. 그런데 또 ‘이놈의 지긋지긋한 골프장’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지금 군수와는 말이 전혀 안 통하니까, 다른 정치인들한테 연락했어요. A는 자기가 힘이 없다고 하고, B는 자기가 돈이 없다고 하고. 그때 참 실망했죠. 우리 구례 정치인 중에서 군수랑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봉성신문>에 연락하게 된 거예요. 그때 발행인이었던 안상술 선생님이 참 제 말을 다 들어 주시고, 힘이 돼 주겠다고 하셔서, 그때 제가 정말 집에 와서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지리산사람들과 윤주옥 대표도 알게 되고, 대표님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돈도 안 되고 아무도 돌보지 않으려는 산을 발 벗고 나서서 지키려는 사람이라 정말 믿음이 갔어요. 아, 이제 뭔가 실마리가 있겠구나, 우리 지역에 이런 분들도 있구나.” 경숙은 뜻이 맞는 마을 분들과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2023년 4월 11일 ‘지리산골프장 개발을 반대하는 구례사람들’ 모임이 시작됐다. 뒤이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고, 여기저기 언론사 취재가 이어졌다. 또 6월엔 마을에서 하지축제를 열어 지리산 숲과 다랑논을 지키자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 뒤로도 여러 사람이 파괴된 숲에 와 슬픔을 나누고 저항 의지를 다잡을 수 있도록 숲과 사람들을 연결했다. 각지 시민들이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뜻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감사원에 구례군 감사를 청구하고, 경찰에 불법 행위를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2023년 10월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에 사포마을 다랑논이 환경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여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솔직히 저는 이 싸움이 질 거라고 한 번도 생각 안 했어요. 왜냐하면, 이거는 나의 뒷마당도 아니고, 내가 땅 투기용으로 사놓은 땅도 아니고, 그냥 지리산이잖아요. 지리산을 파헤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죠. 지리산이 우릴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온 정성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주민들도 있고, 지리산사람들도 있고,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혼자서만 싸우려고 한 게 교만이었구나.” 경숙은 혼자가 아니었다. 산을 그대로, 강을 그대로, 들을 그대로 두자는 이들이 세상에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인생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경숙) 지리산골프장 사업 무산 소식, 그리고 2025년 10월 19일, MBC는 구례군이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본다는 취재 영상을 내보냈다. 지리산골프장 사업이 엎어졌다! 주민과 시민의 승리다. 사업자 사이에 토지 다툼이 있어 2026년 초까지 마쳐야 할 인허가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사회는 산주가 이사로 있는 사업 시행자가 사업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사업 초기부터 여러 근거로 제시했지만, 구례군은 시행자와 MOU를 맺으며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래 놓고 이제 ‘사실상 무산’이라며 산주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겠다고 한다. 소중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숲은 파괴되고, 지역 공동체는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싸우게 된 일은 누가 책임질 셈인가. “피눈물 나는 삶의 터전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면서 세수 운운하던 군수! 자기 잇속 챙기려고 지리산권을 엉망으로 만들고 군민들 갈라치기 했으면 사죄해야죠. 돈 되면 산을 파헤쳐도 괜찮다고 여기저기 지리산골프장 환영 현수막 걸던 토호 세력들도 반성해야죠.” 사업 무산 소식이 들렸지만, 경숙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리산골프장을 밀어붙이려던 세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있었다. 마음 졸이며 보낸 지난 시간도 되돌릴 수 없었다.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지 않더라 골프장에 찬성했던 어떤 이는 지리산골프장을 시민들이 막아 낸 게 아니라 그저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되어 무산된 것뿐이라며, 지리산골프장을 막은 시민들의 승리를 애써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우리 시민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사포마을 주민들을 포함하여 지리산골프장에 반대한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골프장 반대 운동에 나선 덕분에 사업이 무산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지리산골프장을 만들려던 세력이 편하게 골프장을 만들 수 없도록 그들이 가는 길에 자꾸 돌을 던지고, 돌다리를 하나씩 뺏어서 편히 건너지 못하게 만든 것이 바로 시민들의 힘이다. 사포마을 주민들이 더 갈라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한 것도 시민들의 힘이며, 지리산 자락에서는 어떤 난개발도 쉽게 벌일 수 없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 것도 시민들의 힘이다. 사포마을을, 그리고 지리산 숲을 모두가 함께 지킨, 우리의 승리다.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냥 계속 아름답게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언제든 지리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세력은 또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니 싸움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야죠. 모진 노동으로 손가락이 휘고 허리가 굽은 우리 어르신들이 더는 시위에 참여할 일이 없게, 마을이 힘을 키워야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말에, 싸움을 계속할 거라는 경숙의 눈빛이 빛났다. 다만, 이제 이 싸움은 지난 싸움과는 다른 방식일 것이다. 경숙은 마을을 소중하게 가꿔서 아무도 훼손할 생각조차 못 하게끔 할 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뭉쳐서 마을의 힘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마을에서 공동체 모임을 열어 여러 사람이 숲과 연결되도록 재미난 일들을 꾸려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나는, 정말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여기서 호미질하다 죽을 거예요. 선거철마다 돈봉투 돌리고 또 그걸 받고 하면서 비리를 눈감고, 개발업자들만 배불리는 난개발 사업에도 환영 현수막 걸고, 무슨 빵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사람들 볼 때마다 절망했었거든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우리 사포마을 주민들이 끝까지 지리산을 지키려고 싸웠기 때문이고, 또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을 지키려는 시민들 덕분에 희망을 봐서예요. 이렇게 막아냈잖아요. 우리 다음 세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이어지게 우리 마을에서 뭔가를 해 보면 좋겠어요.” (2023년 지리산생명 하지축제 때 숲을 함께 지키자며 모인 사람들 Ⓒ지리산인) 돈의 편이 아니라, 생명의 편에 서자 경숙은 노자산 골프장을 반대하는 시민들이나 산청 차황면 골프장을 막으려는 시민들과도 계속 연대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경숙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듯, 자신 역시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힘을 주고 싶어 했다. 또,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두고 갈라졌던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다리를 놓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지리산골프장 사업을 찬성한 분들도 속으로는 지리산이 그렇게 망가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상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러셨을 거고요. 골프장에 찬성했던 마을 분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이제 마을이 하나로 다시 뭉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지리산인> 독자들에게 경숙이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스스로 싸움에 나설 수 없다면, 그 뜻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싸움에 나선 사람들에게 ‘우리도 숲을 좋아해요, 강을 좋아해요, 우리도 함께할게요.’ 하고 말해 달라고. 회원이 되어 주고,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이라도 해 달라고. 그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말이다. 정말로, 더 많은 이가 생명의 편에 서 주기를 바라며, 자빠진 지리산골프장 사업 결과에 마음 깊은 ‘꼬소함’을 보낸다, 다신 보지 말자.
    • 사람이야기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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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살행 - 람천, 임천 보듬고 살피며 걷기 행동, 후기 두 편
    보살행(람천, 임천 보듬고 살피며 걷기 행동)을 다녀오신 분들의 글을 전합니다. 두 번째 보살행과 세 번째 보살행 이야기입니다. 람천-임천 물이 왜 이렇게 아파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은 맨 아래 '관련기사'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보살행 두 번째 걸음 > 11월 8일(토) 9시 30분, 지리산둘레길 인월센터에 20명이 모였습니다. 이날은 양미희샘의 안내로 몸살림 동작으로 몸풀기를 하였어요. 이어서 쓰레기를 줍기 위해 장갑과 쓰레기봉투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두 번째 걷기 날도 많은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우리의 걸음으로 강과 길과 논과 밭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졌기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길 걷기에 앞서 ‘자연놀이터 그래’에서 사전답사를 해주셨습니다. 그래 회원님(^^)들께서 함께 해주신 덕분에 준비된 코스를 따라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어요. 또 그래님들께서는 중간중간 만나는 식물과 동물 친구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어요. 자주 보지만 잘 몰랐던 식물, 동물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걸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물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걸을수록 그 냄새는 더 심해졌어요. 천둥오리, 논병아리 등 천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뿌연 물 위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강 주변으로는 가깝게 혹은 멀게 축사가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돈사, 우사, 계사 등 종류별로 있었어요. 돼지 축사 바로 옆까지 가서 주변을 관찰해 보기도 했습니다. 폐수가 흘러나오는 곳을 살펴보고, 주변 땅 색깔은 어떠한지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폐수가 나오는 물길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 수로가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되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자연정화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 전체에 분뇨냄새가 진하게 났고, 물은 탁했습니다. 축사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과 만나는 지점에는 거품이 떠 있었고, 강 주변으로는 배추, 사과, 토마토 등이 함부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거름으로 만들어쓰면 될 텐데, 왜 강에다 불법 투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비료, 퇴비를 저렴하게 보급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더 이상 옛날처럼 힘들게 거름을 만들어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논에서는 커다란 기계가 엄청난 양의 비닐로 짚더미를 둘둘 말아 공룡알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젠 예전처럼 짚을 논에 넣어 퇴비로 만들지 않는다고 해요. 짚이 돈이 되기 때문에 판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닐이 엄청나게 사용된다는 것을 목격하고 다들 놀라고 가슴 아려했습니다. 비밀의 정원처럼 어떤 작물이 자라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비닐하우스도 걷는 내내 볼 수 있었어요. 평지라 걷기 편안한 천변 길은 우리 외엔 걷는 사람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모습이 우리 농촌의 현실인걸까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홍보관’까지 걷고 홍보관 앞에서 점심도시락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날이 쌀쌀해 신강샘이 준비해주신 컵라면과 커피가 정말 꿀맛이었다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사는 바로 근처에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이 있는데도 와보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와 보았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가야고분군도 보고 홍보관에서는 관련유물도 보았습니다. 남원에 고분이 무려 100개나 있고, 유곡리, 두락리에만 40개가 있다고 해요. 해설사님의 안내가 있어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아늑한 홍보관에서 보살행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선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 되었기에 공유해 봅니다. 가장 어린 참가자인 자우는 ‘쓰레기 줍기가 재미있었다. 끝말잇기도 재미있었다. 내가 이겼다!’고 소감을 나누어주었어요.^^ - 오늘 걸었던 길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처음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많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고분군도 한 번 와 보고 싶었는데 덕분에 와 볼 수 있었다. - 축사에서 냄새가 많이 났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내는 비교적 물이 맑은데, 누런 물이 흘러 나가는 장면을 보니까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을 시멘트로 벽을 만들어 놓았는데, 풀이 자라게 했으면 물 정화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여기를 누가 걸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동네와 좀 떨어져 있기도 하고 냄새도 나서 동네 사람들도 걸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전북삼천리길’이라는 팻말이 계속 붙어 있었다. 팻말은 작년 말, 올해 초에 설치했다고 하는데 길만 자꾸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나? 있는 것을 손대지 않고 잘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강을 가까이서 보니 오염이 많이 되어 있었다. 강 바로 옆에 축사가 있고 축사에서 나온 물이 슬러지처럼 떠다니기도 해서 건강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신의 몸이나 집은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왜 확장이 안 되는 것일까?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텐데 왜 확장이 안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을 안고 걸었다. 조금씩 이런 이야기들은 해 나가고 싶다. - 차로 다닐 때에는 편안한 시골마을 풍경이었는데 발로 걸어다니니까 이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료로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축사가 물에 폐수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니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물이 우리 집 앞을 흐른다는 것을 직접 걷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 하천들이 다 직선으로 정비가 되어 있었다. 원래 모습대로 구불구불했으면 수생식물들도 자라고 자연적인 정화도 더 잘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선화했던 나라들 중에도 다시 그것을 부수고 예전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하지 않을까? 중간중간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보가 굉장히 많던데 지금은 역할을 거의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보들을 다 없애버리면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 보살행도 함께 해요! 보살행 첫번째 걸음에서는 소수력발전소가 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대정리 합수지점에서 맑은 물과 오염된 물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두번째 걸음에서는 축사가 물과 삶터에 미치는 영향을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수많은 비닐하우스를 보며 우리 농촌마을의 풍경은 어떠해야할까?를 고민하게 하기도 했구요. 세번째 걸음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고, 또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요? 조금 울적한 모습을 보게되긴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발로 꼭꼭 밟으며 걸은만큼 마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세번째 보살행은 운봉지역을 걸어요. 2000년에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서어나무숲'도 갑니다. 서어나무숲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약200년 전에 조성한 인공숲이라고 해요. 숲해설사님을 모시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날, 이야기손님을 모시고 '동학이야기'도 듣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의 시공간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될 것 같아요?! ^^ < 보살행 세 번째 걸음 > 11/22(토), 아침 기온은 차지만 파란 하늘과 햇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운봉 서어나무 숲에서 황산대첩비지까지 근 8km 를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보살행엔 특별히 완주에서 온 전북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상윤님, 서천에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여길욱님, 구례에서 온 <지리산사람들> 정정환님이 함께 했습니다. 첫출발지인 서어나무 숲에서 정계임님의 고향사랑을 담아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계임님이 어렸을땐 훨씬 숲이 크고 마을 아이들이 뛰노는 자연 놀이터였데요. 그 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주위 밭을 만드느라 주변 지대가 높아지고, 흐르던 천도 오염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될 정도로 독특하고 소중한 숲이랍니다. 숲 해설이 끝나니 수달아빠님이 방송 카메라와 함께 등장했어요!?! 보살행이 수달아빠를 주인공으로 해서 <6시 내고향>에 나온다네요. 하루종일 방송카메라와 인터뷰에 응대하며 분주하게 걸었어요. 손수 만든 몸자보를 가방에 붙이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림공원까지 걸으며 보니 그래도 둘레길코스라 나름 정비가 잘 돼 있어서 지난 보살행때 보다는 천이 맑아 보였고 냄새도 덜 났어요. 물론 바람 방향에 따라 중간중간 양계장 냄새가 나긴 했지만요. 천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청둥오리, 흰빰검둥오리, 논병아리, 가마우지, 물닭 등등을 만났어요. 중간엔 전선줄에 나란히 앉았다 날아오르는 철새 떼까마귀도 봤습니다. 까마귀는 다 텃새인줄 알았는데 철새도 있다니!?! 정정환씨가 좋은 망원경을 가져와서 보여 주고 자세히 설명도 해주셔서 흥미로웠습니다. 곧 정정환씨의 책도 나온다니 기대가 됩니다. 서림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갑오토비 사적비 앞에서 신강님에게, 동학농민항쟁때 박봉양이 민보군을 일으켜 동학군을 퇴치한 사건에 대해 들었어요. 부농이었던 양반계급이 동학농민군과 일제에 대해 모순적 입장을 취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비애감 같은 게 들었어요. 덧붙여 실상사에 있는 것과 비슷한 두개의 석장승(방어&진서)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원래 장승이 아니라 ‘벅수’라고 불러야 한다네요. 신강님은 겉으론 헐렁해 보여도 참 아는 게 많고 깊이도 있는 진짜배기에요. 설명 후 두번째 코스를 걷기 시작했어요. 점차 갈수록 천은 탁해지고, 수초 옆으로 녹조류가 보였습니다. 생활하수(음식물 쓰레기), 축사의 폐수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지난 아영때와는 달리 운봉은 지대가 넓어서 축사는 하천 가까이에 있기 보다는 멀찍히 떨어져서 오히려 훨씬 대형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천 가까이에는 거의 건축물에 가까운 대형 하우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어요. 파프리카와 딸기 등을 재배한다고 합니다. 목적지인 황산대첩비지에 도착해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었어요.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한 기록을 선조때 비로 세웠고, 일제때 비를 깨부수고 기록을 긁어냈답니다.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뒤 깨진 거북돌을 다시 맞추고 오석(烏石)으로 비신을 다시 세웠답니다. 참가자들 일부의 소감만 정리하자면, 람천-임천 살피기에, 탐조활동에, 역사해설에, 쓰레기 줍기에, 방송 촬영 협조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지만 유익하고 알찬 시간이었고, 천이 점점 더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걷고 있자니 속상하고 안타까웠으며, 10년전에 예산을 들여 제방공사를 한다고 시멘트로 다 발랐으나 결국 천이 흐르며 다시 수초가 자라고 구불구불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걸 보면, 인위적인 작업보다 하천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 등등 입니다. 그럼, 다음 보살행을 기대하며 이만 끝! 람천-임천 물 살리기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지리산 살래장 밴드에 보살행 후기를 올려 주신 '세연정'(두 번째 보살행 후기) 님과 '날개'(세 번째 보살행 후기) 님의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인 드림
    • 고을이야기
    • 남원
    2025-12-05
  • 12. 3 내란 1년, 200차 산청촛불행동
    12. 3 내란 1년, 200차 산청촛불행동 산청군 신안면사무소 앞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산청촛불행동이 12월 3일 12.3 내란청산을 요구하는 200번째 집회를 가졌다. 1년전, 윤석열 전대통령의 뜬금포 계엄에 잠 못 이룬 산청사람들은 그날 이후 매주 수요일 신안면사무소앞에서 이어오던 집회를 시국대회로 전환하여 윤대통령 탄핵과 체포, 내란세력척결, 김건희 특검, 산청군수 이승화와 군의원들의 국민의힘 탈당, 산청의 난개발 사업(지리산케이블카, 차황골프장, 삼장면 샘물공장 취수증량 등)의 철회를 요구해 왔다. 이날 참가자들은 응원봉과 직접 만든 개인 팻말 등을 들고 내란과 외환 청산, 사회대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기후전환 대책 수립, 교사-공무원 정치 기본권 보장, 농어촌기본소득 선정지역 확대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비상계엄 1년을 회상했다. 또한 수해구호품 사적사용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산청농협조합장, 공무원 갑질로 경질된 산청읍장 철저 조사, 남강댐 문제 등 지역의 현안을 큰 소리로 알렸다. <내란-외환 관련 구호> 1. 내란수괴 윤석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라!! 2. 내란외환 극우세력 완전 청산하자!! 3. 내란의 힘, 국민의힘 해체하라!! 4. 국민의힘 소속 신성범, 신종철, 이승화, 산청 군의원들 즉각 반성하고 사퇴하라!! 5. 조희대 탄핵, 내란전담 재판부 신설하라!! 6. 내란외환, 12.3 비상계엄 1년 민주주의 지켜내자! <사회대개혁 지역현안 관련 구호> 1.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검찰 몰아내고, 검찰개혁 실현하자!! 2. 국민주권시대,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3.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하라! 4. 보편적 복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 선정 지역 확대하라! 5. 내란외환, 12.3 비상계엄 1년 민주주의 지켜내자! 6. 반민주, 반통일 독재의 도구,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7. 겸업 금지 위반, 하나로마트 임대 의혹, 수해 물품 사적 사용 의혹, 조창호 산청농협조합장을 즉각 수사하라! 8. 이대로는 못살겠다. 전 산청읍장 갑질 철저히 조사하고 징계하라!! 9. 이승화 군수는 차황 골프장 건설 철회하라! 지리산케이블카 철회하라! 삼장 지하수 증량 반대한다! 10. 산청 수해 원인 제공 남강댐, 수자원공사는 책임져라! <성명서 전문> 불법 계엄 1년, 다시 광장의 힘으로 내란외환 완전 청산, 자주와 통일, 민주와 평등의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가자! 12.3. 불법 비상계엄이 있은 지 오늘로 1년이 되었다. 대통령이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경찰청장이 위헌적 계엄에 경찰을 동원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계엄이 내란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내란수괴 윤석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변호인단과 이를 용인하고 있는 재판부와 같이 여전히 내란을 옹호하고, 내란동조 세력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는 세력이 있다. 내란외환에 대한 심판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 조속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철저한 내란외환 진상규명과 주요 종사자에 대한 사면 없는 처벌을 요구한다. 여전히 계엄을 두둔하며 동조하는 국민의힘은 공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내란외환을 부정하고 극우세력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은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내란과 외환에 맞서 연대와 평등의 광장을 열었던 시민들은 윤석열 탄핵을 넘어 불평등과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내란외환 청산도 사회개혁도 더디기만 하다. 곳곳에서 불안과 걱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불법 계엄 1년은 기념과 자화자찬의 시간이 되어선 안 된다. 정부와 국회, 책임 있는 기관 단체는 광장 시민의 요구이자 시대의 사명인 내란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부여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성찰하고 약속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불법 계엄 1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기후 위기 최전선에서 생존을 위해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이 있다.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세종호텔 앞 철탑에서 300일째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가 있다. 노조법 2,3조는 통과되었지만, 폭우와 폭염 속에 속도 경쟁을 강요받으며 일하다 죽어가는 플랫폼 노동자가 있다. 거대자본의 경쟁 속에 눈물짓는 영세자영업자가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한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존재들이 있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폭력을 행사하는 극우세력에 맞서 민주사회, 평등사회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지만 여전히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난개발에 맞선, 불평등한 세상에 맞선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불법 계엄 1년,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윤석열 퇴진을 걸고 2022년부터 시작한 산청촛불행동은 오늘로 200차를 맞았다. 오늘 계엄 1년을 맞아 다시 광장의 힘으로 내란외환의 완전한 청산과 평등사회, 자주와 통일의 사회대개혁 실현을 결의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마지막 구호만 3번 크게 외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 내란외환 옹호, 국민의힘 해체하라! - 사법부는 내란외환 세력 신속하게 처벌하라! - 이재명 정부는 내란외환 청산, 사회대개혁 조속히 이행하라! 반민주 반통일 독재의 도구,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기후재난 근본 대책 수립하고 농정대전환 실현하라! - 차별 없이 평등한 권리, 모든 노동자에 근로기준법 적용하라! - 나중 말고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난개발 기후 위기 차황 골프장, 지리산 케이블카, 삼장 지하수 증량 중단하라! 이대로는 못살겠다. 전 산청읍장 갑질 철저히 조사하고 징계하라! 겸업 금지 위반, 하나로마트 임대 의혹, 수해 물품 사적 사용 의혹 조창호 산청농협조합장 사퇴하라! 산청 수해 원인 제공 남강댐-수자원공사는 책임져라! 2025년 12월 3일 내란외환 완전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산청촛불행동 참가자 일동
    • 고을이야기
    • 산청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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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
    AI(인공지능) 시대와 대안적 삶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 하동군민) 사진: Unsplash의Matthew Henry 2025년 10월 말, 경주 APEC 회의장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이가 있다.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다. 대만 출신으로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 기업의 대표가 되었으니 얼핏 ‘인생 성공’처럼 보인다. 그가 영웅처럼 된 것은 ‘26만 장 GPU’ 때문이다. 그는 APEC 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 앞에서 최신 GPU 26만 장 공급이라는 “깜짝 선물”을 약속했다. GPU란 그래픽처리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즉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략 자산인데, AI 개발에 필수품이라 한다. 그런데 말이 선물이지 GPU 하나가 약 1억 원짜리 상품이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먹거리’랍시고 AI 경제에 사활을 거는데, 그 핵심이 바로 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의 문제기 때문! 한국이 26만 장의 GPU를 확보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GPU 확보국’이 된다며, 모처럼 정부, 재벌, 국민이 웃으며 함께 손뼉을 친다. 이 26만 장의 GPU는 정부가 최대 5만 장,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그룹이 각기 5만 장씩, 네이버클라우드가 6만 장을 사용할 것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 회사마다 AI를 활용한 공장이나 상품을 만들 모양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계획처럼 진행되면, ‘국민주권정부’ 아래 온 국민의 삶이 좋아지는 것인가? AI 경제가 발달하면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민행복 사회’가 될 것인가? 내 대답은 불행히도 ‘아니올시다!’이다. 왜? 그 이유 중 딱 한 가지만 집중해 보자. 그것은 바로, 전력 문제다. 왜 그런가? 우선, AI 시스템은 자체 학습과 추론 수행 시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컴퓨팅 능력이 요구되어 ‘데이터센터’ 안에 탑재된다. 따라서 AI 확대는 결국 데이터센터의 소모 전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물론, 가솔린 자동차에 대한 ‘친환경적’ 대안으로 부각된 전기자동차(EV), 각종 빌딩의 난방·냉방 장치, 산업의 전기화 등도 전력 소비 증가 요인인데, 여기서는 AI와 직접 연결된 데이터센터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최근 발간한 ‘Global Energy Review 2025’에서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2년 기준 460TWh에서 2026년에는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보았다. 또, 글로벌 에너지 인텔리전스 기관인 Rystad Energy는 한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전기자동차(EV), 난방·냉방 등 전력 수요 확대 요인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최대 30%까지 급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2022년 9월 기준 147개소에서 2029년엔 784개소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역시 1.8GW에서 2029년 41.5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갈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커질 터인데, 핵발전소 하나가 1G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보면 향후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7개의 핵발전소가 필요(7GW)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100만 가구’에 맞먹는 전력 소비를 한다고도 한다. 그 정도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처럼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6~700개나 추가 건설될 경우, 국내 데이터센터의 필요 전력량은 약 50GW까지 늘 전망이다. 이를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분(약 7%)까지 고려하면, 1GW급 핵발전소를 약 53기나 추가 건설해야 할 판이다. 최근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대안처럼 부상되나 여러모로 대안이 아니다. 요컨대, AI 경제를 계획처럼 만들어가려면 50GW 이상의 전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추가 생산할 것인가? 우선,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에너지 구성은 거칠게 보아 화석연료(석탄, 가스) 전기가 약 60%, 원자력 전기가 약 25%, 신재생에너지 전기가 약 15% 차지한다. 화석연료 발전은 기후위기를 부르는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기에 더 이상 증가할 순 없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눈감고’ 화석에너지를 계속 쓰려고 한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핵쓰레기’ 문제로 더 이상 불가하다. 지금도 한국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암 유발 물질)인 사용 후 핵연료봉이 약 2만 톤, 개수로 약 230만 개나 쌓이고 있어 아주 골칫덩어리다. 향후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한다는 건 거의 ‘자살 테러’ 수준이 된다. (원래 사용 후 핵연료봉은 고준위 방사선이 반감기가 될 때까지 지하 500미터 이하에서 무려 10만~30만 년 동안 묻어 두어야 할 정도다. 이는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이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토록 길기 때문이다. 국내엔 그런 저장소가 없다. 저장소 하나 건설에도 무려 30년 이상 걸린다.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신재생에너지인데, 그 비중이 기껏 20% 정도인 게 현실이다. 결국 화석에너지와 온실가스, 기후위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결론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신규 데이터센터 중 약 85%가 수도권에 지어질 계획이란 점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전력 공급처인 발전원이 전국 각지, 특히 동·서·남부의 해안(풍력, 태양광 발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력의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과 들, 마을을 지나는 ‘전력계통’(송전선, 송전탑, 변전소, 전력망 등)을 깔아야 한다. 그래서 이미 부안, 임실, 곡성 등지에서 ‘대책위’ 중심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일례로, 11월 10일 오전 곡성군청 앞에서는 ‘초고압송전탑/변전소 전면백지화를 위한 곡성군대책위 출범식 및 투쟁선포식’이 열렸다.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송전탑변전소 건설사업 결사 반대, 주민을 들러리 세우는 입지선정위원회 해산 등이 주요 구호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다행히 지리산권, 섬진강권, 남해안권은 AI 경제와 연동된 데이터센터나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향후 전력 소요량이 폭증하게 되면 하동화력발전소나 지리산양수발전소 외에 또 다른 부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사회 전반이 갈수록 더 강한 고에너지 시스템으로 변한다면 이들 지역 역시 그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된 대안은 ‘조금 먹고 조금 싸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우리들 역시 그런 시스템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감수성으로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 속에 있을 것이다. 소농 공동체, 읍면 자치, 생태 마을, 협동조합 등이 구체적 사례다. 지리산과 섬진강, 다도해는 (인간이 오염,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주거 공간과 휴양처를 선물한다. 자연 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조심스레 감사하며 산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 요컨대,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이 자기 파멸적인 AI 경제에 대한 대안이다. ‘젠슨 황의 GPU’ 없이도 행복한 삶은 얼마든 가능하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 기획
    • 뒤웅박 씻나락
    2025-11-14

소식 검색결과

  • [소식] 김태랑 연구자의 '2025 지리산 연구 공유회'
    <2025 지리산 연구 공유회> 2025년 4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지리산과 지리산운동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공유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다룹니다. “지리산운동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지리산 활동가들은 지리산과 어떻게 얽혀 있을까?” “지리산-주민 얽힘은 오늘날 사회생태적 격변 속에서 지리산운동을 어떻게 나아가도록 할까?” “<양반새>의 생태관찰은 지리산과 지리산운동의 미래를 어떻게 보여줄까?” "그 과정에서 지리산은 우리에게 어떠한 힘을 주는 존재일까?” *이런 분들을 환영해요! -지리산을 사랑하고, 사랑하고픈 분들 -지리산과 지리산운동에 대해 입이 근질거리는 분들 -인간 너머, 다종 연구의 사례가 궁금한 싶은 분들 -지리산운동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하셨던 분들 *공유회는 발표자의 발표와 이야기 나누기, 두 차례로 구성됩니다. 김태랑 @forwarideal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는 석사과정생이자 젊은 연구자, 에코-퀴어-페미니스트입니다. 지역의 대안적 틈새, 지역생태운동, 인간 너머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현장과 학계의 구분을 넘나드는 협력적 연구를 지향합니다. 2025년부터 <지리산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리산과 지리산운동, ‘양수댐을 반대하는 새들의 모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시: 2025년 12월 15일(월) 오후 4시~5시 반(1시간 30분 내외) *장소: 호이요(구례읍 북교길 7) *문의/신청: 010-3444-2257으로 문자 주세요 *현장에서 음료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문자로 신청해 주세요~~
    • 소식
    2025-12-04
  • [소식] 현윤애 작가 그림전시, "다정히 엿보다-시절인연"
    "인연의 결을 따라, 시절인연" 구례 지리산에 자리한 화엄사성보박물관에서 2025년 연말, 따뜻한 시선으로 지역과 사람, 풍경을 담아온 화가 현윤애의 그림전시 《다정히 엿보다–시절인연》을 열었습니다. 2025 화엄사성보박물관 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12월 9일부터 2026년 1월 11일까지 진행되며, 겨울 산사의 고요한 정취 속에서 삶의 순간을 다정히 포개어 담아낸 작가의 원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을 잠시 멈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조차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그런 순간을 포착한다. 단순한 구조물이나 경관이 아니라, 화엄사의 결을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자리를 찾아내고, 그 자리에 머문 시선과 마음까지 그림에 담아낸다. 그곳은 풍경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하다. 화엄사의 시간과 공간, 그 틈을 가장 조용히 비추는 자리를 알아차리고, 그곳에 스며든 마음을 다정히 담아 낸 풍경. 화엄사가 전하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고 가는 인연들이 자연의 숨결처럼 조용히 흐른다. 그림 속 풍경에는 머무는 이 하나 없어도 따뜻한 온기가 스며 있고, 그 남겨진 자취들은 삶의 결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가 아닌 ‘느긋이 물러서서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의 마음에 균형과 조화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바로 길 위에서 얻은 삶의 지혜라 말한다. 작가는 “지리산 자락에서 마주한 다정한 풍경과 이웃의 마음은 늘 작가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그 따뜻한 기억들이 스케치북에 한 장 한 장 쌓여, 그림이 되었다”며 일상의 풍경 속에서 피어난 인연들을 조용한 시선으로 포착해 왔다. 한편, 전시를 기획한 심지혜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한 해 한 해 시간을 더해 살아간다는 건, 결국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아 ‘다정히’라는 형용사가 지닌 시선을 새롭게 일깨워준 전시이며,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화엄사의 풍경과, 곰살 맞은 눈으로 담아낸 작가의 온기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한다. ‘추운 겨울에도 송림은 푸르고 사사자삼층석탑이 서 있는 언덕에서 화엄사를 바라보며 고요에 잠긴다. 지나간 과거의 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 현재의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제 먼 길을 찾아온 다정한 벗들과 소중한 시절인연을 함께 나누고 싶다.’ - 현윤애 작가노트 중, 2025 2025 화엄사성보박물관 초대전 현윤애 작가 그림전시 <다정히 엿보다, 시절인연> 전시기간 : 2025.12.9(화)~2026.1.11(일) 10:00~16:30 월요일 휴관 작가와의 대화 : 2025. 12. 12(금) 15:00시 전시장소 : 화엄사성보박물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주최 화엄사 주관 화엄사성보박물관 갤러리척 로컬리티: 기획 화엄사성보박물관 부관장 강선정, 독립학예사 심지혜 진행 큐레이터 조미영 서정아아, 에듀케이터 김우영 [전시문의] 현윤애 작가 (010-2600-0733) 심지혜 학예사 (010-6747-4240) 12월 12일 금요일 오후 3시에는 작가와 직접 만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있어요! 지난 5월 주프랑스한국문화원 특별전 『제주, 바다와 함께 살다』에 초청되어 소개된,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풍경과 인연을 담은 작품 일부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지리산인>> 독자님들도 현윤애 작가님 그림전시 보시며 다정한 시절인연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 소식
    2025-12-01
  • [소식] 1129 전북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해 주세요
    "지리산사람들"은 1129 전북기후정의행진 추진위원으로 함께합니다. 11월 29일 전북기후정의행진에 함께 참여하여 기후정의로 가는 길을 함께 만들어요. 1129 전북기후정의행진으로 전북을 살리자! 전국을 살리자! 세계를 살리자! ① 새만금 상시해수유통 ② 새만금 신공항 철회 ③수백 km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④국립공원 난개발 중단 ⑤노후핵발전소 패쇄, 햇빛 바람 에너지로 전환 ⑥지역정체성 파괴 도심 난개발 중단 ⑦시대착오적 만경강 수변도시 철회 ⑧기후위기 시대 농업과 먹거리를 공공재로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모입니다! “1129전북기후정의행진 함께 합시다!” 기후위기·생태위기를 넘어 정의로운 전환을 향해 전북도민의 목소리가 다시 광장으로 모입니다. 일시: 2025년 11월 29일(토) 오후 2시 (오후 1시~ 사전부스 운영) 장소: 전주 서학예술광장 전북이든 전남이든 경북이든 경남이든 기후위기 앞에 경계선은 필요 없지요. ^^ 지리산사람들 드림
    • 소식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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