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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검색결과

  • 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6일차)
    「섬진강 편지」 - 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 6일 차 일정 * 용궐산 산행이 있어 걷는 거리를 줄였음 * 장군목, 요강바위가 아름다운 강길 ■ 걷기 개요 일시 : 2026년 4월 27일 (월) 총 거리 : 13.3km 소요 시간 : 약 5시간 -점심 시간 : 1시간 제외 ■ 걷기 인원 : 총 12 명 07:00 냉천삼거리 출발 구담마을 회관 8시 도착 (1시간) 구담마을 회관 ↔ 어은정 차량 배치 왕복 (1시간) 걷기 출발 09:00 ■ 세부 걷기 일정 09:00 구담마을 회관 -> 장군목 2.5km / 40분 -장군목 휴식 20분 10:00 장군목 -> 용궐산자연휴양림 1.7km / 30분 용궐산 산행 (하늘길 코스 3.2km/ 2시간 소요) 12:30 용궐산 하산 후 점심 13:30 용궐산 휴양림 -> 구미교 (2.8km / 40분) -징검다리 건너 데크에서 점심 14:10 구미교 ->구남마을 회관 3.19km(70분) -어은정 휴식 10분 15:20 걷기 종료 □ 출발지 (구담마을회관)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덕치면 천담2길 287-4 □ 도착지 (구남마을 회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475 ■ 걷기 인원 : 총12 명 용궐산 [龍闕山] 산 이름은 산세가 마치 용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라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용골산(龍骨山)이라 불렸는데 이 명칭이 ‘용의 뼈다귀’라는 죽은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산이 살아서 생동감 넘치는 명기를 제대로 발휘하도록 하자는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중앙지명위원회를 열어 2009년 4월 용궐산(龍闕山)으로 명칭을 개정하였다.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어울릴 수 없다는 듯 서쪽 섬진강 변으로 가지를 치며 솟구쳐 있다. 용같이 우뚝 솟아 꿈틀거리는 듯 준엄한 형세를 띠고 있으며, 앞에는 만수탄[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용궐산은 순창군 북쪽에 있는 섬진강의 본류이자 상류인 적성강을 바라보고 있다. 산줄기는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 호남 정맥이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팔공산에서 마령치 방향으로 섬진지맥[섬진강 분수령]을 나누어 놓는다. 마령치를 향해 내달리던 섬진지맥은 남원 천황봉 방향으로 산줄기를 나누어 놓고, 서쪽 임실 성수산을 지나 봉화산, 응봉, 무제봉, 지초봉, 원통산을 지나며 오수천과 섬진강 원류를 가른다. 이 지맥 가운데 원통산과 무량산 사이에 적성강을 앞에 품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용궐산이 솟구쳐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매우 빼어나다. 북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덕치면 가곡리의 협곡 너머 청웅의 백련산, 덕치의 원통산이 자리하고, 동으로는 남원 보절에 있는 천황봉 너머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동남으로는 무량산이 우뚝 서고, 그 아래로 섬진강이 흐른다. 서로는 요강 바위, 자라 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품에 안은 섬진강이 장구목 마을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인다. 멀리로 눈을 돌려보면 강천산과 내장산의 연봉들이 다가오고, 북서쪽으로는 회문산과 필봉산이 섬진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용궐산은 용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많으며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용궐산의 남쪽 방향인 어치리 내룡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오르면 천연 동굴인 99개의 용굴이 있다. 세 번째 용굴까지는 사람이 갈 수 있으나, 네 번째 용굴부터는 불을 켜도 앞을 분간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용궐산 정상인 상봉에는 신선 바위가 있고, 산중턱에는 삼형제 바위, 그리고 최근까지 승려들이 찾아와서 축조했다는 절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골샘 등이 있다. 용궐산의 정상에 있는 신선 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옛날에 용궐산에서 수도하던 승려가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의 입에 물려 인근의 무량산에 기거하는 승려에게 보내서, 서로 만나서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 전쟁 때 아군들이 적군을 토벌하기 위해 막사를 설치하며 쇠말뚝을 박는 과정에서 바둑판의 형체가 사라졌다. 용궐산 서쪽 기슭에 있는 장구목은 예전에 지역 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이었으며, 그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서 장군목, 혹은 지형이 장구 형상이라 장구목으로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궐산 [龍闕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섬진강 / 김인호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5-14
  •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6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딸과 아들과 며느리 손주가 함께 하니 절간 같던 집이 떠들썩하다. 분주함은 분주함 대로 나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이런저런 사소한 즐거움이 좋다. 두텁나루숲은 오랫동안 혼자 관리해 와서 내 손이 가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누가 오면 내가 제일 바쁘기는 하지만 즐거운 비명이다. 아픈 아내는 손주를 봐주며 놀고 아이들은 서로 오랜만에 만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반가운 문자가 왔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배가 휴가 동안 구례를 거쳐 가는 일정인 듯했다. 바로 나가서 반갑게 맞이하고 술 한 잔이라도 나눠야 맞는데 나는 왠지 망설이다가 문자로 답만 하고 나가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는데 그냥 바쁘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틈이 나서 페북을 읽는데 박00 선생(페북에서 만난 분)의 글이 나를 질타하고 있었다. 과문불입지죄過門不入之罪‘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은 죄’ 라는 글이었는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문을 스쳐 지나며 벗을 찾지 않는 마음의 게으름을 옛사람들은 하나의 죄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도 마음속으로 존경한다는 선배에게. 선배는 문을 두드렸는데 나는 문을 두드리지 못한 것이다. 살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스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서로 손을 내밀어야 벗도 되고 연인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적막하다면 그것은 나의 탓일 뿐 누구 때문도 아니고 어느 무엇 때문도 아닐 것이다. 우연히 큰 배움과 깨달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해준 선배와 페친이 정말 스승처럼 고맙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5-12
  • 여우난골族
    여우난골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족(族)은 가족 친지들을 말하고 ‘여우난골’은 여우가 나온다는 곳이니 얼마나 궁벽한 곳인지 알만하다. 이 시는 명절날 여우난골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처럼 훈훈한 정취와 일가친척의 넉넉한 인정, 풍요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나는 아버지 따라 지리산자락을 넘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 시가 생각난다. 아버지 고향집은 지금 생각하면 지리산 서북능선에 있는 만복대에서 산동으로 내려오는 지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골짝 마을이었던 것 같다. 1964년 당시엔 너무도 깊은 지리산 산골마을이었다. 하루 종일 걸려서 가야하는 험한 노정인데도 어린 아들을 지리산 고향집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아비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 뒤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지리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 후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등산화와 버너, 코펠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2인용 텐트까지 구입해 야영하며 제대로 된 등산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리산에 깊숙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관련된 책도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빨치산’에 관한 소설이나 실록 등이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를 홀로 배우며 혼자서 지리산의 등산로를 섭렵했을 무렵 산행 파트너가 생겨 이후로는 주로 비등산로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나 나나 갓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지리산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매주 지리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기 전후여서 비등산로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을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분의 일 지도인 군사작전용 지도와 나침판을(GPS가 없을 때여서) 가지고 다니며 지리산 어느 곳이나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산을 다니며 오늘에 이른 나에게 지리산은 고향이면서 아버지이고 스승이며 고락을 함께하는 벗이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5-12
  • 지리산 앵초는 힘이 세다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앵초는 힘이 세다 구례 산동 지리산 앵초 꽃밭 가는 길, 산업도로 2차선 한가운데 차가 서 있다. 브레이크 등이 켜진 것도 아니고 아예 시동이 꺼진 채 세워져 있다. ‘이런 미친*’ 중얼거리며 급하게 1차선으로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늦추어 세워진 차 안을 건너다보니 운전자가 없다. 사고로구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 보니 운전자가 조수석 쪽으로 쓰러져 있고 의식은 있으나 몸을 움직이질 못한다. 119에 신고를 해놓고 달려오는 차들을 1차선으로 유도하고 있으니 20분쯤 지나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119구조대에 상황 인계를 하고 앵초 꽃밭으로 가며 생각해 보니 오늘의 인명 구조는 앵초가 일등 공신인 것 같다. 앵초가 꽃을 피워 나를 불러서 보러 가던 길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앵초는 지리산골프장 예정지에 무리 지어 피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아 지리산골프장 건설 무산에 큰 공을 세운 힘이 센 앵초꽃이다. 힘센 지리산 앵초! 앵초꽃 옆에 피어난 각시붓꽃 동봉하여 아침 편지 띄웁니다. -섬진강 / 김인호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4-28
  • 금낭화 꽃동네
    「섬진강 편지」 -금낭화 꽃동네 산골 동네 아기 울음소리 그친 지 10년이 넘었는데 금낭화 꽃동네 봄마다 까르르 아기 울음소리 그득하여 지리산 이 금낭화 꽃동네로 이사하고 싶은 아침이다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6-04-25
  • 가사가 너무 슬프네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5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아내가 아픈지 벌써 3년째다. 다행히 열흘에 한 번 통원 치료하며 병을 어느 정도 관리,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날씨가 좀 풀리니 아내는 걷기운동도 하고 봄나물도 캐면서 봄기운을 받아낸다. 나도 밭에 퇴비를 넣고 뒤집어 고르며 텃밭일을 시작했다. 감자와 생강을 심고 상추, 케일, 청경채, 아옥, 쑥갓.. 등 모종들을 시장에서 사와 심었다. 고장 난 외등도 고치고 마사토를 1톤 트럭 분 들여와 패인 잔디밭에 고루 뿌렸다. 집안일은 하다 보면 끝이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많이 달라진 일상 현실에 잘 맞춰 살고는 있으나 언뜻언뜻 어떤 결핍감에 시달리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 갇힌 듯 사는 시간과 공간 아니냐고 달래보지만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 의사는 마냥 수혈에만 의지할 수는 없게 되니 골수 이식에 대비해서 대상자를 찾는 등 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 지금까지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싶다. 20대 청춘에 만나 함께 살아온 날이 얼만데 이제야 부부의 깊은 정이라는 게 무언지 느끼게 해주는 날들이다. 같이 외출할 읍내의 오일장을 기다리는 하찮은 일상마저 사소한 기쁨으로 오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날이니 그렇다. 전에는 아내를 시에 올리는 일을 꺼렸었는데 요즘은 아내를 대상으로 쓴 시가 많아졌다. 예전 같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삶의 중심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와 관련된 시 2편을 첨부한다. ======================================= 가사가 너무 슬프네 아내를 태우고 화순 암센터 다녀오는 길 가로수 화려한 나무들은 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옆자리에서 아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가녀린 노래가 가까스로 이어지는데 ..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겨우 한 소절 중얼거리더니 가사가 너무 슬프네, 하며 몸을 차창 쪽으로 뒤척이더니 말이 없다. 아마 아내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을 것이다. 모처럼 밖으로 드러낸 아내의 마음에 나는 피할 수 없는 과녁이 되어 깊고 선명하게 박히는 화살 하나를 받아냈다. 누군가의 안으로부터 농축된 오랜 슬픔이 새어나 올 때 사람이 지극히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목까지 차오른 심정心情으로 차를 세우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차창을 스치는 가로수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사는 일의 무상無常함이야 일러 무엇하랴 어느새 두텁나루숲이 가까웠나 차창에 지리산 자락들이 가득 차 있고 저무는 빛들이 능선에 걸려 있다. --------------------------------- 아슬아슬한 세월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화려한 세상에 눈멀어 한세상 꿈속을 살며 사랑도 하며 꿈의 실상實相을 짐작해 보건만 서투른 사랑은 늘 구름처럼, 구름의 그림자처럼 시시각각 변하며 흩어지고 그렇게 형해形骸도 없이 사라지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사랑에 대한 기억 하나로 아슬아슬한 세월을 건너고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6-04-22
  • [벗자편지]함께읽기9 김정희: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려, 어느덧 마지막 편에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정희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채소와 과일은 맛이 다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타고난 특성이 다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다 다를 텐데. 그러나 세상이 정한 잣대는 하나뿐. 능력으로만 줄을 세웠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어릴 적부터 성적으로 평가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려 하루하루 버텨 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적인 삶이자 고민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좀처럼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모두가 경쟁 사회에 내몰려 남보다, 아니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한 발짝이라도 뒤떨어지면 패배자로 취급받는 게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아파트 평수에서부터 성적 순위, 직급 순위, 모든 게 경쟁으로 내몬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제각각인데. 이걸 인정해 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가 제 능력을 기를 마음의 여유도 없다. ‘언젠가는 이걸 하고 싶어. 언젠가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 내가 잘했던 것을 하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아냐. 지금은 여유가 없어. 나중에, 나중에…….’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이라는, 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어서 그 길로 쭉 걸어왔지만, 꿈이 일상이 되니까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 있는 삶, 좀 더 다양한 세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50대 중반에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어때?’ 도시에 살면서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막연히 꿈꿨다. 꿈과 희망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찮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늘 비슷한 넋두리를 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지만, 당장 뭐 해서 먹고살아.”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누구나 평생 고민하는 문제. 그 문제에 매달려 꿈도 희망도 스스로 접어 가면서 현실에 매달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 사람의 삶이 아닌가. 나 역시 막연히 꿈만 꾸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내가 여태껏 해 온 책 쓰는 일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데도,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 몸이 멀리 떠나는 게 왠지 망설여졌다.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과 치열함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말겠다며, 아주 낭만적인 세상을 꿈꾸면서 가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터전. 밤이면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 그저 온라인 검색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때마침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화성에 내 상상과 비슷한 터전, 그리고 전원주택이 셋집으로 나왔다. 화성은 반으로 갈라서 반은 동탄이라는 아파트 숲이 있고, 나머지 반인 서해 바닷가 쪽으로는 강원도권이라고 일컬을 만큼 시골 분위기가 나는 지역이라고 했다. 농촌 풍경과 바닷가가 어우러진 마을이라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다. 옆지기에게 말하려니 좀 조심스러웠다. 그도 언젠가는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고 미루어 왔다. 돈을 더 벌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대체 그 ‘때’가 언제인지,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은 포기하고 말 것 같았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라고 당장 모든 걸 접고 가자는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 조언에 따라, 어디든 정착하기 전에 일단 셋집을 구해서 살아 보고 그다음에 정착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자는 거였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고 하니. 당연히 처음부터 도시나 아파트 생활을 다 접고 산골짜기나 궁벽한 촌으로 가자고 하면 덜컥 겁나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그것도 살 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는데 당장 내려가자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면서 안 가느냐고 따지거나 대거리를 하면 서로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냥 부담 없이 가볍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가 보자고 나름 꾀를 낸 것이다. 그럼 마음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 내 제안에 옆지기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다. 찾아간 집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적어 두었던 모양보다 훨씬 큰 전원주택이었다. 집을 직접 지은 옆지기가 세상을 먼저 떠난 후에 비워 둔 집이라고 했다. 나무도 많고, 전면이 유리로 된 거실과 이층 창이 갑갑한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널찍하고 비교적 깨끗한 전원주택을 보면서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옆지기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내 의견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도 극구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였다. 여전히 우리에겐 시골에 들어와 살 용기가 부족했다. “실험 삼아 딱 1년만 살아 보자.”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한번 살아 보자고 고민 끝에 뜻을 모았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마음을 정한 김에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준비했다. 마음만 품고 도전하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서 끙끙 앓기만 할 테니까. 때는 11월 말이어서 김장이며 이것저것 겨울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이사하는 게 마음이나 생활에 안정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말이다. 시골 생활은 하루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 어쩌면 멈춰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밤과 낮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마음부터 먼저 느슨해진 탓일 거라고 여겼다. 화성시는 시골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들어간 면 소재지 마을은 바다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이고, 누가 봐도 농촌 마을 풍경이었다. 하루에 노란색 마을버스가 몇 번 오갈 정도니 승용차가 없으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도시와 아파트,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늘 시간에 쫓기듯 계획을 하고 일정을 마쳐야 하고, 시간이 아니라 분까지 쪼개 홀로 계획했던 생활에서 한결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넉넉했다. 드넓은 하늘과 탁 트인 시야, 넓고 끝없는 들판, 하늘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비록 겨울이지만 정겹기 그지없었다. 마치 꿈꾸던 세상에 성큼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마음마저 들어 일부러 겨울 들판과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왜 이런 세상을 그동안 몰랐을까.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훨씬 벗어나 어느 곳엔가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시간이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 여겼는데,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달았다. 시간 개념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고즈넉하고 한가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도 때로는 심심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싫든 좋든 서로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공동생활에서 벗어나니까 마치 두꺼운 껍데기를 벗어 버린 것 같아 가벼웠는데, 아직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라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심심함마저 즐겨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일명 ‘자본주의 병’이라는 병에 걸려서 살았던 걸까.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을 즐기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바쁘게 사는데 나만 한가하게 보내니까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을지, 지인들과 멀어지지 않을지, 책을 내는 출판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뒤처지지 않을지, 온갖 잡념이 밀려들었다. 한때는 도시에 살면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평생을 보내며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에 가까운 삶, 조금은 여유를 부리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감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변덕스럽다고 했던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불안을 처음에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다른 일을 찾아냈다. 심심할 때는 심심한 대로 그대로 멍하니 산과 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아니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집어 읽었다. 원고 쓰는 데 매여서 책 읽기를 조금은 미루어 두곤 했는데, 심심한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도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 쓰기에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나도 모르게 책 읽는 일에 소홀했다는 걸 책을 손에 잡으면서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이건 자본주의 병이야. 이제 느리게 느긋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해.’ 하면서 마음을 다독거렸다.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걸 현실에서 살려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껏 습관처럼 하루에 원고 몇 매라도 써야지 마음이 놓였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농사일이 점점 커져 일이 많아지고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삶을 사니까 피곤해서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따뜻한 팥죽 한 냄비 겨울이어서 그런지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마을에 모여 사는 집이 여덟 집뿐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살아도 별로 교류도 없고 데면데면한 도시와 달리, 시골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끼리 정이 끈끈했고 그만큼 외지인을 낯설고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마을에 들어와 사는지, 어떤 사람들이 마을에 무슨 해를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선뜻 낯선 집에 문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아마도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습관이 되어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70대가 한 분, 대부분 80대였다. 몇십 미터 뚝뚝 떨어진 아랫집이나 윗집 둘레를 산책하다가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왠지 무뚝뚝하고 마뜩잖은 듯 겨우 인사만 받아 주고는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문 앞에 낯선 양은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뚜껑을 열어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팥죽이었다. 오늘이 동짓날이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아직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인데 누가 팥죽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것도 말도 없이 조용히 갖다 놓고 갔다. 불현듯 팥죽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동짓날이 되면 그 전날 밤에 팥죽을 쑤었다. 경상도 풍습이었다. 그때는 오랜 관습으로 팥죽을 쑤면 사람이 먹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나가 담벼락을 돌며 팥죽을 던졌다. ‘고수레 고수레’ 하고 팥죽을 던지면서 나쁜 기운과 악귀가 물러나서 새해에는 집안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동지가 되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한 번도 팥죽을 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온 팥죽이 까마득히 잊힌 추억을 되살린 것이다. 내가 영천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한겨울이라도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일부러 눈을 맞으며 얼마나 좋아했던지. 엄마가 팥죽을 끓이는 동안, 우리 골목 이웃 골목 아이들까지 죄다 나와서 강가에서 눈싸움을 벌였다. 그 장면이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라 마음마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참 아련한 시절.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왔다. 냄비에 손을 갖다 대자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맛있게 먹고 나서 낡은 양은냄비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는 게 팥죽을 쑤면서 고생하신 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옆지기를 깨워 낡은 양은냄비를 내밀면서 팥죽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하니까, 부스스한 몰골로 감탄을 쏟아 냈다. “이게 시골 인심이야. 아직 시골은 이런 인심이 남아 있었네.” 웃음을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팥죽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양은냄비 주인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윗집 할머니였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 팥죽을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동지니까 나눠 먹고 싶어서 살짝 갖다 놨어.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까 고마워.” 할머니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80대 부부를 모시고 외식도 하고, 서로 날마다 들여다보는 관계로 발전했다. 서로 음식도 만들어 갖다주고, 세상 사는 얘기도 나누곤 했다. 할머니가 좋게 소개해 주신 덕택이었을까. 마을에서는 한결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눌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번은 가뭄이 이어지는 어느 날 허리가 반쯤 고꾸라진 할머니가 휠체어에 20ℓ나 되는 물통을 얹어서 힘겹게 오시다가 길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 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얘기 많이 들었어. 마을에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할머니한테 왜 집에서 힘들게 물을 가지고 오냐고, 우리 집에 지하수가 펑펑 나오니 그걸 쓰면 되잖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이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을 들이지 않아서 아예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수를 호수로 빼서 꼬부랑 할머니네 밭에 내다 주었다. 고추와 들깨 밭이 시원한 물로 흠뻑 젖어서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넓은 밭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그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안 가! 얼마나 인색한지 밭에 물 한 번 쓰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자기들 한 달 사용하는 전기세를 몽땅 물으라고 했어. 그게 몇만 원이야.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서 앞집에 지하수가 잘 나오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지 않았어.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먼저 물을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 밭에 열무 나면 뽑아 가서 열무김치 담가 먹어. 들깨도 한 가지에 한 개나 두 개씩 따서 먹어. 한 가지에서 너무 많이 따면 열매가 잘 안 열리거든.” 할머니도 내가 물을 내준 데 대해서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그제야 안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발을 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줄 알고 지냈는데 다 까닭이 있었다. 시골 생활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낭만이나 꿈같은 생활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면서 아름다워진다는 걸 갈수록 깨달았다. 윗집 할머니가 콩과 여러 가지 씨앗을 갖다주었다. 그러면서 씨앗을 심을 시기와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언제쯤에 비료를 넣어 줘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주민들의 넉넉함이 농사를 짓는 데뿐 아니라 생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을 먼저 내어 준 그 보답으로 가끔 모시고 나들이를 하면 노부부는 무척 좋아하고, 먹고살려고 일만 하느라 놀러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넋두리도 하셨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할머니는 또 밭에서 수확한 팥이며 콩이며 지인이 주었다는 액즙까지 골고루 갖다주었다. 부침개라도 부치거나 빵이라도 사 오면 약소하나마 나눠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제대로 잘 자라지 않는 작물에 관해 물어 조언을 받기도 했다. 모르는 걸 물으면 귀찮아할 줄 알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대견해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우셨나 보다. 세대를 넘어 마음을 나눌 마을 동료가 생겼다는 데서 나 역시 평화를 느꼈다. 마트에서 고르던 채소를 내 손으로 키우면서 만난 세계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트에서 사 먹던 작물을 내 손으로 키워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장을 보고 치르는 돈이 훨씬 적어지고 생활비 부담도 줄었다. 내 노등으로 키워서 먹는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흐뭇하지만, 무엇보다도 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보람을 느끼게 했다. 작은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가 매달리고,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보면 작은 씨앗 하나가 온 우주를 품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물의 성장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한 무한한 세계였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면 내가 반찬으로 뜯어 먹고, 밭에 남은 작물은 저 혼자 자라서 꽃을 피웠다. 그 사이에도 온갖 벌레들이 작물에 들러붙기도 하고, 나비나 벌들이 꿀을 빠느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식물에게는 괴로움이면서 즐거움일까. 이 시간을 보낸 덕에 열매를 맺고, 또 작은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먹거리를 길러 먹는 삶을 통해 자연 순환 원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덕에 창작 의욕이 새롭게 일어났다. 내 마음에 창작 씨앗이 들어오고, 그 씨앗은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웠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잘 참으며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고 나니까 결국은 열매를 맺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작은 생각 씨앗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어서일까. 글 쓰는 일이 보람되고 견딜 만했다. 흙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나도 모르게 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흙이 손에 묻으면서 지저분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만지다 보니까 오히려 내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그 가운데서도 행복했던 기억보다 속상하고 슬픈 일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를 슬프게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 왜 그때 바로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후회가 내 마음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럴 때 흙을 만지면 상처도 나쁜 기억도 속상했던 일도 시나브로 치유되어 갔다. 일부러 흙을 만지고 싶어 장갑을 끼지 않곤 했는데 엉뚱한 부작용도 생겼다. 면사무소에서 무인발급기로 서류를 떼려고 했는데 기계가 내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손이 거칠어서 지문이 찍히지 않는다는 말을 공무원에게서 듣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비용을 두 배나 치르고 서류를 떼곤 했다. 장갑을 껴야지 했지만 흙만 보면 맨손으로 만졌다. 내 오랜 도시의 때를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닳아서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마을 쓰레기 버리는 요일을 정해서 같이 버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분리배출도 할 수 있고, 쓰레기도 불에 태우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래도 시큰둥하기에 날씨와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냈다. “해마다 장마 아니면 가뭄이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요. 날씨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늘 걱정하면서요.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겨울에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고요.” “아이그, 그것 좀 태우고 버린다고 날씨가 이럴까 봐.” 어른들은 날씨와 공기와 쓰레기 분리배출 사이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괜히 어른들한테 잘난 척한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주거지를 완전히 농사짓는 시골로 옮기고 나서는 기후 문제와 공기 오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언젠가는 환경문제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는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막상 시골로 오니까 피부로 눈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심각성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 도시에서는 하늘이 좀 흐린 것쯤으로, 비가 좀 많이 내린다는 것쯤으로, 뉴스에서나 책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 보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보니까 환경이 얼마나 절실하게 나빠져 가는지 보여 불안하기까지 했다. 마을 할머니들은 밭에 뿌릴 종자 씨는 적어도 3년 정도는 잘 보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마다 장마와 가뭄이 번갈아 바뀌면서 자칫 종자도 건지지 못하는 세상이 올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쓰레기 문제다. 음식물은 텃밭에 흙을 파고 묻어서 거름으로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쓰레기는 언제 처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쓰레기 수거 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거니까 청소과가 따로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바꿔 가면서 언제 쓰레기를 거둬 가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쓰레기를 따로 버리지 않아서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게 여태껏 당연한 거라고 여겼는데 여기서는 번거롭게 전화를 걸어야 하고, 요일과 대충 시간을 잡아야 버릴 수 있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마을 할머니들한테 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빈 병은 모아 놓으면 고물상에서 가져가고, 음식물은 밭에서 썩혀 거름으로 이용하고, 다른 비닐이나 생활 쓰레기는 통에 넣고 한꺼번에 불 질러 태운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몸으로 깨달으면서 자연의 변화를 더 빨리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날씨와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는 따로라고 여기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환경문제를 처음 접한 게 90년대 초반이었다. 최열 선생님이 ‘공해추방위원회’를 만들어 환경문제 시민 교실을 열었다. 지금 ‘환경연합’이 생기기 전에 생긴 시민단체였다. 아직 문학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 시민 교실 강의가 있으니 함께 공부하러 가 보자고 여럿이 의견을 모았지만 결국은 나와 후배 둘이서만 등록을 했다. 원자력, 핵폭발, 공해 문제를 다룬 강연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로 여겼다. 물론 그즈음에 대구 낙동강 페놀 사건이 한바탕 언론을 달구었지만 한 지역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보아 넘겼다. 환경문제 공부를 하러 다닌다니까 오히려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공부를 다닌다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먹자고 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환경 공부를 했다고 실천에 옮기겠다면서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지 않고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도 전기도 물도 아껴야 한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세숫비누로 감은 머리는 기름기가 많아서 찝찝해 다시 샴푸를 사용하고, 일회용품도 문명의 혜택이라며 편리한 대로 썼다. 물과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건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었지만, 다른 것은 대충 넘겼다. 환경문제를 강연이나 책을 통해 머리로만 느꼈지, 피부에 와 닿게 내 문제로 여기지 못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시골로 들어오니 내가 만든 쓰레기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서해와 가까운 곳이라 겨울철만 되면 미세먼지가 점점 더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는 게 눈에 띄었다. 눈에 보이니 그제야 심각성을 좀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는 건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한다지만 여전히 마트에서도 장을 봐야 하는데, 대파 한 단, 호박 하나를 사도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지 않나. 고기를 사도 생선을 사도 두부를 사도 비닐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어찌 쓰레기를 안 만드나. 예전에는 포장되어 나온 식품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신경을 쓰니까 포장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려고 애썼다. 비닐봉지도 처음에는 10분의 1로 줄여 보자고 했는데, 비닐 홍수 시대에 살다 보니 금세 첫 목표는 이루었다. 그다음은 20분의 1로 줄였지만, 그래도 몽땅 줄일 수는 없었다. 대신 비닐봉지는 재활용할 수 있게 양념이나 다른 이물질이 묻었으면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 버렸다. 그런데 포장재를 깨끗이 씻느라 흘러간 물 역시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하수 처리에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쓰인다고, 게다가 분리배출한 생활폐기물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60%도 채 안 된다32고 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분리배출을 잘하는 일보다 덜 사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일체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물론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은 두 마리 시켜야 읍내에서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먹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피자, 족발, 치킨 등등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배달해서 손쉽게 먹던 습관에서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맛있게 먹던 음식을 한꺼번에 끊자니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배달을 시켜 먹던 음식에서 가끔 먹고 싶은 욕구가 솟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 왔다. 먹기가 불편해지니까 사 먹는 음식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해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는 솔직히 맛이 덜했다. 온갖 양념과 사람들 입맛에 착 달라붙게 연구해서 만든 음식을 어떻게 따라가겠나 생각하고, 건강과 환경을 챙긴 대신 중독성 있는 양념을 좀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배달 음식을 끊고 나자 이번에는 미용실에 꼭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지 또 의문이 들었다.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서 스스로 가위로 자르고 들쭉날쭉한 뒤쪽 머리카락은 옆지기에게 부탁해서 잘랐다. 내가 미용실에 드나들지 않자 옆지기도 내게 머리카락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에서 머리 자르는 기계를 사서 앞머리 쪽은 남편이 자르고, 뒤에 보이지 않는 쪽은 내가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솜씨도 늘었다. 시골에서 이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면서 장난도 치고, 얼마나 예쁜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킥킥거렸다.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 2년쯤 지나자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도시로 나가서 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시 집을 정리하고, 세 얻은 집에서 나와 완전히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쯤에 농사를 더 늘리면서 식량을 자급자족 형태로 바꾸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게 지금은 꼭 맞춰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될 수 있으면 화장을 해야 하고, 옷과 신발을 갖춰 입어야 하고, 남에게 흠 잡히지 않겠다면서 외출을 할 때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도시 생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몸에 피부처럼 배인 습관을 하나둘씩 벗어 내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쓸데없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모습 그대로 편하게 대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누가 억지로 그렇게 꾸미고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회 분위기와 스스로 만든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생긴 대로 나를 드러내기, 외모와 옷으로 평가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겉을 꾸미는 일보다 내 색깔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 그리고 화학물질로 내 몸을 망가뜨리지 않기. 내 시골살이에서 찾은 지혜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미루어 오던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만이 알고 나만이 실천할 게 아니라, 널리 알리면서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는 걸 조금이라도 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삶을 끊으려고 맘먹기까지 많은 핑곗거리와 제약 조건이 퐁퐁 튀어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럴 때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내 커리어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가는 사람들보다 중요한가? 내 식욕이 나를 지탱하는 이 지구보다 중요한가? 내 외모가 내 건강보다 중요한가? 좀 더 편리한 삶이 내 생존보다 중요한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답하기를 두려워하는 것뿐.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마음으로 품고 있던 생각에서 실천을 향해 발걸음을 떼면 된다. 그러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생명을 덜 해칠 수 있고, 또 지구 환경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세상이 막막하더라도 내 존재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희망을 품어야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한 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도 더 젊어서 무슨 일인가에 원하는 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내 현실이 막막하고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라고 여겨지면, 그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이다. 결국은 환경도 나이도 경제적 형편도 내 모든 도전을 지배할 수는 없다. 환경이 힘들고 어렵고 막막하면 그 환경을 바꾸어 사는 삶에 도전해야 한다. 가만히 그대로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기만 하면,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먼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말고, 그 방향을 향해 한 발자국 먼저 내딛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존재는 내가 결정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김정희 ◌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시라는 욕망과 경쟁에서 벗어나고파 시골을 택했는데, 그동안 머리와 마음으로만 살던 삶에서 몸으로 사는 노동을 병행하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는 삶은 건강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화>>, <<야시골 미륵이>>, <<노근리 그 해 여름>>, <<대추리 아이들>>, <<곡계굴의 전설>>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써 왔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 환경 문제에 절실함을 느껴 <<후쿠시마의 눈물>>, <<시화호의 기적>>, <<비닐봉지가 코끼리를 잡아먹었어요>>, <<별이네 옥수수밭 손님들>>, <<아마존의 수호자 라오니 추장>> 등 여러 책을 썼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글이 마음에 드신 분은,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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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마을
    2026-04-20

사람이야기 검색결과

  • "길없는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다" 지리산 '연하반'의 자연 보전사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4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기 전, 그 산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지리산은 단순히 헐벗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민족의 영산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리산 보전의 뿌리인 ‘연하반(煙霞伴)’의 태동기를 다룹니다. 우두성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길도 없던 지리산 주능선에 이정표를 세우고 지도를 그리며 산을 지켰던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타임코드 아래에 연하반 반지문 본문이 있으니 확인해 주세요. 00:00 인트로 01:00 소개 02:40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걸어 올라간 노고단. 08:06 연하반 - 지리산의 길을 열다 11:53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보호 선언, '연하반 반지문' 14:48 사라지는 숲을 지키기 위한 기록의 시작 19:46 지리산의 길을 만들다 -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23:12 1962년 최초의 지리산 등반지도 제작 26:24 날라리봉? 삼도봉? 봉우리의 이름을 정리하다 29:50 군인들의 불법 벌목을 적발하다 烟 霞 伴 伴 旨 太古쩍 먼 옛날에 白頭山으로부터 뻗어나린 太白山脈의 큰 줄기가 南쪽 바다 푸른 물결이 그리워 南으로 南으로 向해 줄다름 치다가 굽이쳐 흐르는 蟾津江 푸른 가람에 가로막혀 그 精氣가 우뚝 솟아 멈추어 섯다는 由緖깊고 傳說어린 智異靈山아래 風光明媚하고 山紫水明 烟霞鄕 求禮!! 여기 烟霞人들의 모임이 있으니 烟霞伴이라 부른다. 烟霞는 元來 山水 卽 自然을 뜻하는 말이니 自古로 世俗的 富貴와 功名을 浮雲처럼 여기고 俗塵을 떠나서 閑雲野鶴을 벗삼아 樂山樂水 雅游瀁氣하는 賢人達士를 烟霞人이라 부른다 이에 烟霞人의 雅趣를 憧憬하고 또한 아름다운 自然과 더부러 짝한다는 뜻에서 烟霞伴이라 名稱하게 된것이니 따라서 烟霞伴은 情熱的으로 山水를 愛好 憧憬하는 이고장 山岳人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 烟霞伴은 끝없는 大地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山水를 향해 젊음의 浪漫과 情熱을 한껏 쏟아 삶의 보람을 느껴보자는 것이며 淸淨無垢한 大自然의 純潔한 廣場에서 無言의 感化속에 天地浩然의 英氣와 高邁한 人間情緖를 길러 心身의 修養을 쌓아보자는 것이며 또한 날로 荒廢해가는 우리 나라의 自然을 愛好하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것이다 大地를 맑게 누비며 흐르는 물줄기와 山野를 덮은 原始林의 푸른숲은 人類發生의 源泉이요, 原始文化의 發祥地이며 또한 人類의 唯一한 마음의 故鄕이 였음에 想到할때 오늘의 우리民族은 祖國江山의 荒廢로 因하여 마음 둘곳없는 精神的 失鄕民이 되어가고 있음을 自覺하고 痛歎하는바 이에 우리 烟霞伴은 잃어가는 綠地帶 마음의 푸른 故鄕을 다시 찾으려는 自然愛好運動의 先驅되어 民族的 情緖運動의 줄기찬 噴水가 되고저 自負하고 이땅에 自然愛好의 烟霞運動을 저마다 고장마다 일으켜 이름 그대로 地上의 樂園 錦繡江山을 이룩하는데 寄與하고저 함이니 이 江土위에 아름다운 自然이 蘇生되여 우리 겨례가 마음의 故鄕을 다시 찾게 되는날 槿域의 삶위에 보다 瑞光 빛나리 一九五五年 五月 五日 求禮烟霞伴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연하반 #구례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지리산역사 #한국산악사 #기록 #아카이브 #자연보호 #자연애호 #노고단 #화엄사 #지리산지도 #구술사 #생애사 #지리산종주 #역사기록 #1955년 #개척사 #환경운동 #생태보전 #지리산탐사 #지리산사람들 질문하기
    • 사람이야기
    2026-05-13
  • 지리산 땅 기운이 만들어낸 차
    스님에게서 농사의 근본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차가 우리 몸을 살리는 음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덕제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차는 음식일 뿐 아니라 약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게 자란 차나무, 그 잎으로 만든 차는 좋은 맛을 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농사의 원리와 철학 역시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스님께서 내주시는 차의 맛은 아주 부드럽고 깊은 느낌이었다. 이 맛은 어디에서 올까? - 차 맛은 차밭에 있어요.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차밭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 차나무가 자라는 환경이 첫 번째입니다. 화엄사 구층암의 경우 차나무들이 대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로(竹露) 야생차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나무 이슬을 먹고 산다는 말이지요. 저의 은사 스님께서 사용한 이름인데 저 역시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 차나무와 대나무는 궁합이 잘 맞아요. 차나무는 직근성으로 뿌리가 굉장히 깊이 내려갑니다. 3m 이상 8m까지 뻗어 내려가요. 반면에 대나무는 천근성이에요.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도와줍니다. 물론 소나무 아래에도 있어요. 여하간에 대나무는 차나무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도 막아주지요. 적당한 그늘을 조성해 주는 것도 높은 품질의 찻잎을 생산하기에 유리한 여건이 됩니다. 구층암 차는 야생차다. 심어서 가꾸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아무런 관리를 안 해도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 관리라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안 합니다. 차 딸 때 걸리적거리는 가시나무나 덩굴식물 정도 손질해주고 차 씨앗이 필요할 때 외에는 거의 건드리지 않아요. 연기암 올라가는 길에 차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차를 만들기 위해서 심어본 적은 없어요. 기존에 있는 나무들 잎도 다 못 따고 있는데 뭘 더 심겠어요. 퇴비도 비료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차나무는 잔뿌리 없이 하나의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려가기 때문에 사람을 차분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비료를 주면 뿌리가 깊숙하게 내려갈 필요가 없게 되어 그 고유의 성질을 잃어버립니다. 구층암 차는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아니, 좀 더 근본적인 농사로 인증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는 농사, 그래서 땅을 살리는 농사는 인간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스님은 구층암 차와 다른 차들과의 비교를 극구 꺼리셨다. 하지만 어떤 차가 좋은 차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가지고 계셨다. - 차는 마셨을 때 속에 걸림이 없고 편해야 합니다. 차가 속쓰림을 일으키는 이유는 차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차나무를 건드리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지나 잎이 무성해지고 차 맛도 점점 떫어집니다. 원래 차는 떫지 않고 잎 자체에서 단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떫은 맛의 원인은 바로 대량생산입니다. 스님은 어떻게 차 만드는 전문가가 되었을까? 2005년부터 20년 넘는 세월 차를 만들 정도이면 이쪽 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신 것일까? - 저는 차를 잘 만든다고 얘기하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차의 성질을 빨리 알아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배추로 말하자면 좋은 배추, 좋은 배추밭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차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안 거죠. - 처음 차를 할 때 세 곳 정도를 찾아갔어요. 다들 당신들 방법이 최고라는 거에요. 그래서 어느 집을 쫒아갈까 생각했는데, 결론은 가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왜냐면 내 차가 더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이유가 뭘까? 결국 그 비결은 차밭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스님을 뵈러 간 날 마침 구층암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절 곳곳에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프코리아의 우퍼들이었다. 우프코리아 홈페이지에 제시된 우퍼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방문자와 유기농 농부를 연결하며 교육 및 문화 교류를 촉진하고 생태적 농업의 중요성을 지향하는 글로벌 커뮤니티입니다. 우프는 1971년에 설립되었으며 세계 최초 교육 및 문화 교류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우프활동은 전 세계 132개국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WWOOF Korea는 한국에서 우프 활동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삶의 방식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방문자, 즉 '우퍼'는 호스트와 일상 생활을 함께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해 배우며, 하루 절반 정도는 농장 일을 돕습니다.” 우퍼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스님께 여쭈었다. - 우프코리아를 알지 못했으면 지금까지 차를 못했을 거예요. 일반인 인건비가 하루 20만원 가까이 하는데 차를 하기가 쉽지 않죠. - 우프를 통해서 오신 분들은 함께 먹고, 자고, 공부도 같이 하고, 아침에 여기 앉아서 명상도 하고, 불교 체험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다 불교 신자는 아니에요. 카톨릭, 개신교 등 다양해요. - 국적도 굉장히 다양한데 지금은 거의 유럽인들입니다. 프랑스 식구들이 제일 많고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칼, 네덜란드, 벨기에... 공통점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이에요. - 지원자는 많은데 방이나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서 지금 15명 정도 받고 있습니다. 여건이 되면 더 받고 싶긴 해요.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여기고 생태적 미래를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프코리아는 현재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굉장히 뜻이 좋더라고요. 농약 치지 않고 자연을 살리면서 땅을 가지지 않고 자연 농법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이날 인터뷰에서 지리산 차나무 시배지에 얽힌 상이한 주장이 거론되었으나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이 말하고 있는 진실을 보는 것으로 기록을 대신하려고 한다. 석탑 안에 있는 스님상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하며, 석탑 바로 앞에 있는 석등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숭상은, 효성이 지극하였던 연기조사가 어머니에게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 사람이야기
    2026-05-03
  •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기를" 농민이 된 환경운동가 김석봉 농부가 보내는 편지
    "지리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내일을 묻다." 오늘 '지리산 사람들 TV'는 함양 마천 창원마을에서 70마리의 동물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거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김석봉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단순한 은퇴 농부가 아닙니다. 80년대 격변기를 지나며 안정된 공무원직을 뒤로하고, 환경운동의 전선에서 "환경은 모든 운동의 근본"임을 외쳤던 뜨거운 활동가였습니다.운동의 현장에서 지쳐갈 무렵 운명처럼 만난 지리산 빈집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빼빠지게 일하시는데, 나물이나 뜯으며 사는 것은 삶의 예의가 아니다"라며 50대에 시작한 농사. 이제는 70세의 노농(老農)이 되어, 돈이 되는 대규모 관행농 대신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나누어 먹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이 영상에는 단순히 산골 살이의 낭만을 넘어선 묵직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김석봉 선생님. 비 오는 날 생강 밭에서 달려와 건네준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든든한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00:00 인트로 01:03 지리산농부 김석봉 02:03 70여 생명과 함께하는 지리산 거대 가족 04:34 교정직 공무원에서 환경운동가로 09:11 운명처럼 만난 지리산 창원마을 15:03 괭이 한 자루에 담긴 농사의 예의 21:44 심각하게 다가오는 기후변화 26:13 귀농인으로 느낀 농촌의 현실 42:27 새로운 농촌을 향한 꿈, '이장 공모제' 50:08 "지금 양수발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56:09 지리산에서 띄우는 편지, "열심히 사는 이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지리산 #김석봉 #환경운동가 #생명의예의 #지리산사람들TV #귀농귀촌 #함양마천 #창원마을 #양수발전소반대 #기후위기 #다품종소량생산 #이장공모제 #지리산농부 #유기농사 #공동체
    • 사람이야기
    2026-04-26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의 어느 봄 날, 하동 화개에 자리한 작은미술관 ‘도엔효’를 찾았다. 화개초등학교와 화개중학교 사이에 자리한 이 곳은 예전 구멍가게 자리였다. 아이들의 참새 방앗간이었을 그 곳에 이제는 하동을 찾은 여행객, 지역의 예술가, 주인장과의 찻자리가 그리운 이웃들이 한가로이 드나든다. 마을 이웃과 함께 둘러앉은 도엔효의 주인장 효원님은 향긋하게 우려낸 차의 첫 잔을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한 켠에 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고향은 함양이에요. 30년 전 서울에 살 때 학교 선배가 차를 우려서 내주었는데 맛이 아주 부드럽고 향기가 순했어요. 선배에게 ‘이 차 어디서 났느냐.’ 물었더니 하동이라고 해서 그 길로 바로 하동으로 내려와 ‘도재명차’에 갔죠. 거기서 다음날 해가 뜰 때 까지 밤새 차를 마셨는데 그 이후로 어디에 살든 5월이 되면 바람결에 차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어요.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차에 매료당했던 것 같아요. 봄에 이 곳에 오지 않으면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프곤 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봄이 가기 전에 여기 와서 차 향기를 맡고 갔어요. 그러다 29살 때 짐을 싸서 하동으로 내려왔죠.” 자연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물건들 문을 연지 12년이 된 작은 미술관 도엔효는 리넨으로 만든 옷과 소품,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지리산 자락에 사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수돗가나 강가에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다.’고 소개하는 정성어린 물건들이 참 따스하고 곱다. 도엔효에 있는 리넨 옷과 소품은 주인장인 효원님이 자연스러운 소재의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산에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잉여적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쟁이 나도 옷을 짓는 일은 필요하겠더라고요. 한 글자로 되어있는 단어들이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밥, 옷, 집, 몸 같은 것들이요. 이 중에서 저는 손쓰는 것을 좋아하니 옷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천연염색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다가 소품을 하게 되었고 옷도 만들게 되었어요. 옷은 인간의 ‘예’를 갖추는 수단이기도 해서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더 맞다 생각했어요. 옷을 만들 때 되도록 합성섬유가 들어가지 않는 천연 섬유를 사용해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버려졌을 때 어떨지 생각해요. 옷으로 인한 환경 악영향이 아주 크니까요. 겨울옷에 들어가는 털은 가끔 폴리에스테르를 쓰기도 해요. 그렇다고 동물 털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효원님이 직접 만든 옷과 소품들은 도엔효 공간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편안한 ‘배경’이 되고, 때로는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충만하다고 느껴요. 패브릭은 ‘배경’이예요. 배경만 가지고 공간을 꾸미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이나 조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것들로 조화롭게 가꾸어나가고 있어요. 컵받침은 컵 아래에 놓였을 때 조화로운 거니까요.” ‘삶’을 닦는 일터 ‘삶’과 ‘일’의 방향성이 같기를 바란다는 효원님은 일상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살피고 매 순간 올곧게 존재하는 사람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지만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판매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살아가며 자연에 온전히 녹아든다고 느껴요.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유지되고 있다 생각하지만 작은 어려움들은 늘 있어요. 이런 일을 하면 집에 짐이 참 많은데 그럴 때 고민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게 맞을까?’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해보게 되죠. ‘손님들이 이 옷을 사가서 잘 입으실까?’ 안 입으실 거면 사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기분 나빠하는 손님도 계시지만 저는 물건을 사서 안 입고 안 쓴다고 하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물건을 만들 때 일상에서 잘 쓰일지 늘 고민해요. 물건도 잘 써야 생기가 생기니 만물이 잘 쓰여 지면 좋겠어요. 물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손님이 오시거나 그냥 차 한 잔만 하고 가셔도 괜찮아요. 나답게 번 적은 돈으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알아차리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있어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도엔효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든 평안을 바라며 차를 내어주는 도엔효가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 지리산과 반달곰을 사랑하는,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삶’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조용하게 사는 편이지만 목소리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참여하기도 해요. 반달곰 가게는 구례에 사시는 윤주옥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함께 하겠다고 했죠. 이런 연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깨어있다’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만물에 깨어있다면 삶의 방향이 ‘생명’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불교의 ‘연기’라는 건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나 혼자만 방 안에서 깨어있을 수 없죠. 내가 마시는 물, 공기, 물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동물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것 같아요.”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반달곰’을 좋아한다거나 ‘동물’의 개체를 지키고 서식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뜻만은 아닐 테다.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향긋한 차 한 잔 내어주는 평화로운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마음을 담아 연대하고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사람이야기
    2026-04-20

자연생태 검색결과

  • 숲의 새소리, 지리산의 노래는 공존, 평화였다.
    법계사 아래, 천왕봉이 조망되는 곳에서 요즘 숲에 들어가면 산새들의 노랫소리로 숲이 가득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숲을 울리는 되지빠귀와 흰배지빠귀의 노랫소리와 박새와 쇠박새 등 박새류의 재잘거림, 작지만 우렁찬 굴뚝새의 외침과 청아하며 숲을 느리게 만드는 큰유리새의 노랫소리와 밤이면 들리는 소쩍새와 뻐꾸기의 노랫소리는 이제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지리산 아래쪽부터 초록으로 물 들어가는 숲은 산의 높이를 느낄 수 있게 하며 봄철 첫 잎은 다양한 수종들이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봄의 끝자락에서 다시 봄임을 느끼게 해주고, 논물로 인해 탁해진 강물은 봄의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다양한 느낌과 깨달음, 편안함을 줍니다. 구태여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험들입니다. 이런 다양성의 숲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때 더 많은 생명을 품고, 다양한 생명들이 섞여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첫 잎을 내보일 때 다하게 섞여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큰산개구리의 산란시기 변화(국립공원연구원의 Rana uenoi Matsui, 2014 논문 참고) 적산온도와 산란시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섞여서 살아가는 지구에서 기후의 변화로 사라져갈 위기에 놓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두 친구는 큰산개구리와 구상나무입니다. 큰산개구리는 과거 북방산개구리로 불리던 종을 최근 개별적 종으로 분리하여 큰산개구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 큰산개구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산란 시기 변화로 산란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산란시기가 빨라져도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 것이니 적응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후변화라는 것이 따뜻한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온도 저하도 함께 벌어지기에 산란 이후 알들이 동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산개구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반도체 산단, AI센터를 이야기하며 더 많은 전기,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들을 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끝이 정해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큰산개구리 다음으로 이야기할 것은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아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상록침엽수로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과 같이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며 오직 한국에만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이 구상나무가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많은 수의 개체가 고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일대에서 많은 개체의 고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적설량의 부족으로 수분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것을 원인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2023년 치밭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 산 구상나무와 죽은 구상나무가 함께 서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그 아래서는 다시 생명이 싹트고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인한 한 종의 개체수 감소를 막아내기 위해 ‘복원’이라는 작업을 국가에서는 진행합니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겠지만...이전에 연어 기사에서 이야기했듯, 서식지에 대한 변화, 보전이 없이 특정 종의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상나무의 쇠퇴는 기후변화가 주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복원’이 아닌 기후변화를 막아내거나 늦추는 일 이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막는 과정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복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복원’이라는 작업은 다른 종을 배제하며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특정 종을 살리기 위해 흔하다고 판단되는 종을 배제한다면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지역은 빠르게 신갈나무나 사스레나무와 같이 낙엽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다 합니다. 숲은 환경에 맞춰 변화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지향하는 종은 오직 인간입니다. 숲과 강, 산은 귀한 종만의 서식지가 아닙니다. 모든 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라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구상나무를 복원하기 위해 특정 종의 배제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지리산에서 구상나무 복원은 신중해야 합니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립공원이라는 공간은 모든 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 공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정정환 _<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 자연생태
    2026-05-04

고을이야기 검색결과

  • 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최갑순* 할매 철쭉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뭘 보고 있소 서시내 보요 노고단을 보요 할매 독다리 건너던 독다리 보요 꼭 다문 입술 열고 한 잎 한 잎 띄워 보내요 꽃바람에 맨발로 앉은 보따리 꼭꼭 싸맨 가슴 풀어나 봐요 할매 꽃신 어디 두었소 꽃신 따라 건넌 시간 어디 두었소 꽃 대신 울다 피다 울다 철쭉 또 오거든 함께 걸어요 쑥부쟁이 독다리 건너 건너 광의에 가요 오늘은 서시내 깔따구가 따라와 눈을 뜰 수 없어요 할매 철쭉 빛 스카프 바뀌고 또 바뀌면 어둠 머금고 봄은 언제 올까요 * 구례 평화의 소녀상 서시내 가면, 동광 사거리 지나 당산나무가 있고 서시교까지는 포플러가 즐비한 신작로였다. 고흐 사이프러스 길이 생각나는 포플러 길. 신작로, 말만 들어도 구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시내는 뭇 생명과 함께 흐르는 구례 아이들 놀이터였다. 요즘은 섬진강 다슬기로 유명하지만, 구례말은 데사리나 고동이다. 서시내서 잡은 데사리 한 바구니 데쳐 가족들 함께, 옷핀으로 빼먹던 고동, 모래알 같아 퉤퉤 뱉던 그 초록 알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시내 둑방은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몇 해 전 수해로 둑은 더 높아져 지리산을 막고, 밤이면 가로등 번쩍이는 꽃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둑방 아래 조성된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구례 평화의 소녀상 최갑순 할매가 바위에 앉아 있다. 항상 맨발인 할매. 어릴 적 꽃신 사준다고 해 따라나선 길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그 길 가슴에 싸맨 보따리 하나 두고 앉은 할매. 할매 곁에서, 때로는 지나는 사람이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지리산과 서시내도 계절을 갈아탄다. 오늘 할매 이야기 듣다 어두워지고 밤이 온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5-01
  •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4)
    지하수의 형성 그림의 파란색과 갈색으로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는 달리, 지하수는 땅속의 동굴에 물이 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하수는 바위 속의 자잘한 공극을 채우고 있는 물입니다. 개미도 살수 없는 아주 조그만 동굴에 채워져 있는 물이라고나 할까요.깊은 땅 속에는 암반의 모든 공극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로 포화된 상태의 지층을 ‘대수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수층은 지형과 어느정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산 아래의 대수층은 산의 모양으로 살짝 솟아 있습니다. 지표면에 있는 물과는 달리, 지하수는 암석의 조그만 결정 사이사이로 흐르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바위들도 성질이 저마다 달라서, 공극이 거의 없어서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바위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에서는 물이 욕조나 바다처럼 완전히 평평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대수층의 압력 때문에 강물보다 높은 지표면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수층은 사막에도 존재합니다. 다만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죠. 이 대수층을 발견해서 개발하면,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의 저수지인 셈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사막이기에 오래전부터 화석수로 농사를 지어왔어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깊은 뿌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캘리포니아 화석수도 지나친 채수로 인해 고갈 현상이 나타난지가 꽤 되었습니다. 지리산에는 지하수가 얼마나 있고, 얼마만큼 쓸 수 있을까요? 지금 지하수가 충분할까요? 전문가들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지질학 조사를 하고, 땅에 구멍을 뚫어야 하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대수층의 깊이와 지하수의 전체 부존량을 알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유대수층(비피압대수층)의 높이를 알기는 매우 쉽습니다. 근처 강물의 수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지하수는 샘물과 강물의 지속적인 공급원입니다. 비가 온 지 한참 되었는데도 계곡과 강에 계속해서 물이 흘러가는 것은 지하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상류에 댐이나 보가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몇 년 전부터 강물이 줄어들어 수위가 내려갔다면, 이것은 지하수가 줄어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수백년간 일정한 양의 물이 저절로 솟아나온 마을의 참샘이 마르는 것도 지하수 고갈의 지표입니다. 이때 고갈이란, 대수층이라는 컵이 완전히 비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수천년간 유지되어 오던 눈금 아래로 내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지표면과 가까운 얕은 관정(자유대수층 우물)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의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눈뜨고 코베인 오래된 산골 마을들은 산의 압력에 의해 지하수가 저절로 땅위로 솟아오르는 참샘(피압대수층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음) 주위로 형성되었습니다. ㈜지리산산청샘물과 LK샘물이 위치한 삼장면 덕교마을의 참샘은 몇 년 전부터 전혀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덕교와 상류의 마을에서는 가정용, 농업용 관정에 물이 나오지 않거나 흙탕물이 나오고, 계곡물이 말라서 생활용수가 없어지는 등 지하수 고갈로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삼장 주민 장씨의 아내는 생수공장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는데, 공장의 관정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자택의 관정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고, 생수공장에서 퇴사한 후에야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장씨 뿐 아니라, 여러 주민들의 가정용, 농업용 관정에서 흙탕물이 나와서 세탁기와 펌프 모터가 파손되었습니다. 생수공장과 환경영향조사 업체는 “마을의 지하수고갈과 생수공장의 취수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산청샘물의 관정은 깊이 300미터의 심층 암반수이고,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깊어봤자 70~100m 밖에 되지 않는 표층수이기 때문에, 다른 물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3일 간 생수공장에서 상당량을 취수하면서 동시에 주민 관정 4곳의 수위 변화를 살폈을 때, 별다른 변화가 없더라는 검사 결과가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주장은 지하 100m와 300m사이 어딘가에 불투수층이 폭넓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검사에 의해 증명된 것처럼 보이죠. 과연 그럴까요? 검사 과정에서, ㈜지리산산청샘물은 주민 장씨의 집을 찾아와 영향을 조사 하기 위해 카메라 검층을 하겠다고 크레인으로 무리하게 펌프 모터를 빼내었고, 그 과정에서 관정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관이 파손되었기 때문에 흙탕물이 쏟아져 나와 제대로 된 검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산청샘물은 주민 관정 파손에 대한 피해보상조차 하지 않았고, 검사결과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하며, 지하수증량반대운동을 하는 주민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혐의없음 처리가 되었지만, 장씨의 관정은 부서진 채 그대로 있습니다. 정말로 영향이 나타난 관정 1곳은 증거 인멸이 된 것이죠.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에서 계속됩니다.
    • 고을이야기
    • 산청
    2026-04-22

기후위기 검색결과

  • 홍천 양수발전소 예정지를 다녀와서- "1년에 14.82분 가동. 오타가 아닙니다."
    “야,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저절로 쌍욕이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자기 배 불리자고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잣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내고, 산을 파헤치고, 골짜기를 수몰시키는 배은망덕한 개자식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지구 간강범, C발놈들. 이곳은 강원도 홍천 풍천리입니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초과 전기의 쓰레기장으로 예정된 곳이죠. 핵전기쓰레기장을 고운말로는 ‘양수발전소’라고 합니다. 쓰레기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만든 위선적인 이름입니다. 양수발전소는 얼마나 발전을 할까?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해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평균적으로 39일 가동, 수력발전소는 94일 가동되었습니다. 10% 조금 넘는 가동률입니다. (자료출처: https://www.khnp.co.kr/main/selectWebDisoffView.do?key=152&siteId=&seq=19602, 합계 발전량 ÷ 합계 발전용량 ÷ 24시간으로 계산) ‘가동’이라는 단어는 발전소가 발전목적으로 쓰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양수발전소는 핵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하부저수지에서 상부저수지로 물을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으며, 상부저수지에서는 끊임없이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그냥 흘려보냅니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가동이라고 할 수 있고, 환경단체들의 ‘너무 낮은 가동률’ 주장도 오해를 일으킬 만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태양광이 24시간 발전할 수 없듯이, 양수발전소도 24시간 가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퍼올리는 동시에 발전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남는 전기를 소모(저장)하기 위해 물을 퍼올리는 시간이 당연히 감안되어야 합니다. 한수원에 따르면, 양수발전소를 풀로 가동한다면 하루에 6시간(25%)이 한계라고 합니다.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하루 평균 2시간 30분 정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가동 가능 시간의 절반이 채 안되니,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여도 여전히 낮은 가동률입니다. 저기요, 오타 아닐까요? 홍천 풍천리에 건설예정인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은 얼마나 될까요? 기절초풍할 정도로 낮습니다. 한수원의 홍천 양수발전소 승인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연간 148.2M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양수건설 타당성조사 용역(홍천지점), 2022, 한국수력원자력). 이 수치는 2025년 청평양수발전소 발전량의 0.059%, 예천양수발전소의 0.014%에 불과하고, 600MW용량임을 감안해 계산하면 연간 14.82분 발전에 불과합니다. 강원생명평화기도회 박성률 목사가 이설도로건설로 엉망이 된 숲속을 안내하며 말했습니다. “보통사람이 메가와트가 얼마나 되는 건지 감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AI에게 신청서 분석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AI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전력 생산량이 오타가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GWh를 MWh로 잘못 쓴 거 아니냐고. 그래서 한수원에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가 오타가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어요.” 연간 14.82분. 오타가 아닙니다.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에 드는 비용은 1조 7천억. 이 돈을 들여서 양수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동률’이라는 단어를 치워버리고 기능의 비율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집니다. 국내 양수발전소는 전기 쓰레기장 기능이 9할, 발전 기능이 1할이며, 홍천 양수발전소는 쓰레기장 기능이 백프로에 가깝습니다. 양수발전소를 더 짓는 이유는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밤에도 낮에도 항상 초과되는 전기를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초과될 전기를 기존의 양수발전소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장이 필요해진다는 겁니다. 전기 쓰레기장 만든다고 풍천리 할머니들이 50년 전에 심어 가꾼 잣나무 11만 2천 그루를 베어내고 잣수확으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생계를 박살냅니다. 쫄쫄쫄 흐르는 시냇물을 3년 동안 받아쓴다고 합니다. 그러면 풍천리에는 개천에 물도 없겠네요? 100대 명품숲 유아숲체험장도 물에 잠깁니다. 욕이 나옵니다. "썩을 놈의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한수원 니가 뭔데? 어? 이래도 돼는 거야? 이러고도 니들이 멀쩡할 줄 알아? 천벌 받을 놈들." 나무들은 착해서 욕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인 내가 대신 욕을 해줍니다. 사람이 말을 할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말없는 나무들 대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가지 해달라고 목소리가 있는 것 아닌지. 풍천 주민들은 젊은 시절 손수 심어 가꾼 잣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싸웠습니다. 수몰되는 지역에 들어와 펜션 사업을 하던 이들에게는 보상절차가 진행되었고, 이설도로를 만드는 작업으로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이 파헤쳐졌습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실어와 불법적으로 방치하는 쓰레기장이 됐습니다. 댐 예정지 바깥에 살면서 평생을 잣숲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만큼 싸워온 덕분에 이만큼 숲이 지켜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자본의 폭력은 무자비합니다. 사치품과 쓰레기 사이에서 쓰레기장에 버려야 할 정도로 많은 전기는 왜 생산하는 걸까요? 조절이 어려운 ‘안정적’ 전력공급원인 원전에 모든 탓을 돌릴 수도 있지만, 태양력도 통제 불가능한 초과 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원전을 줄이지 않은 채 태양력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태양광과 풍력이 각광을 받자, 태초에 핵전기 쓰레기장으로 지어진 양수발전소는 신재생에너지의 배터리 역할로 홍보되었습니다. 그래도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을 폐쇄하려나 했더니 웬걸, 신규 원전을 늘이겠다고 합니다. 양수발전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방전되는 서랍 속 비상 배터리입니다. 부피가 어마어마한 이 배터리로 인해, 상당한 면적의 동식물 서식지와 인간 거주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피크타임에도 항상 전기가 남아도는 판국에, 더 많은 비상 배터리가 정말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집집마다 서랍에 비상 배터리 두세 개 갖추고 있는데, “예비 배터리는 생활에 필수”라며 나라에서 또 배터리를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기쁠까요? 집집마다 찬장에 안 쓰는 텀블러 여러 개 있습니다. 페트병 내다 버리는 건 일입니다. 넘치는 물건은 기능이 무엇이건, 새것이건 낡았건 관계없이 쓰레기입니다. 결국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자꾸 만들고 강매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와 전력망과 배터리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 쓸 그럴싸한 명분이 됩니다. “전기는 국민 생활에 필수”라고 하지요. 지나친 전기 사용으로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전력수요 피크 어쩌고 하며 겁을 줍니다. 나라에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시설들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필수이기 때문에 전기가 우선적으로 공급되며, 비상용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위 전력수요 피크를 세계종말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옛날에 사람은 전기 없이도 살았고, 전기는 인간에게 사치품이지, 필수품이 아닙니다. 필수라고 홍보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전기 덕분에 감사하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여러 사치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치품들로 세상을 채우기 위해 모든 생명의 생존에 필수품인 숲을 없애도 될까요? 과유불급이라 하였습니다. 어쩌다 정전이 되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을마다 대비하고, 어쩌다 모자랄 수도 있는 적당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365일 초과 전기를 생산하고 국토를 실리콘과 중금속의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고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경고 한 세기 동안 화석연료는 탄소 배출로, 우라늄은 중성자 방출로 지구 온도를 높였습니다. 자동차와 냉장고와 에어컨이 생존필수품이 되고, 연소기관과 전자제품이 지구 온도를 더더욱 높이는 악순환이 영구적으로 정착되었죠. 전기가 충분하고 남는다는 결론이 나자마자, AI를 ‘미래먹거리’로 부각시키며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원전과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고 떠들어댑니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요.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으로라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이 반이성의 미친 짓거리를 보면 저절로 외계인 음모론이 떠오릅니다.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질투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온통 실리콘과 중금속과 아스팔트와 방사능 쓰레기로 뒤덮고, 동식물과 인간을 멸망시키거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몇몇 인간의 뇌에 침투하여 영감과 정보와 미끼를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AI는 경험의 멸종을 불러오고, 인간 개체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 밝은 눈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메가와트인지 기가와트인지 오타 확인도 AI가 담당할 판이죠. ‘모든 것의 외주화’가 이 시대의 좌우명입니다. 돈에 미친 이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숲은 태양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저장하는 천연 배터리입니다. 인체 역시 전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발전소이며, 배터리이고, 모터입니다. 위대한 구루들은 인체를 둘러싼 전자기장을 활성화시키고 운용하는 법을 깨달으면,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시간과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육체의 모습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외주화된 것들, 모든 인공적인 것들은 본래 인간과 지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타이가의 잣나무숲에 사는 아나스타시아는 말합니다. 모든 것의 외주화와 금권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미신이나 사이비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며, 신비주의는 히말라야 설표만큼이나 멸종위기입니다. 그러나 전기가 빛과 열을 발생시키고, 식물이 빛과 열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상식입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 년에 14.82분 가동되는 양수발전소일까요? 1800ha 잣나무숲일까요? 글쓴이 : 이해성 산청 책방 "지금부터 판타지" 이끄미,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산청난개발대책위원
    • 기후위기
    2026-05-07

기획 검색결과

  • [뒤웅박 씻나락]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_달리
    침묵이 깨지고 다른 말이 자라는 동네책방 살롱드마고 우리 책방 ‘살롱드마고’에는 세 가지가 없다. 입시용 참고서나 문제집,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계발서, 평생 권위를 누린 남성 문학가들의 작품집. 대신 다른 세 가지가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생각을 전환해 주는 인문서,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장르별 도서들, 그리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한발 더 나아가게 하는 용감한 여자들의 이야기. 살롱드마고 곳곳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환대하고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책과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 왠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살롱드마고만의 북큐레이션과 지향이 공간에 그러한 색을 입히고, 힘을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롱드마고는 2015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의 활동공간이자, 마을 여성들을 위한 창작·교육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을 재구성하며 ‘협동조합마고’를 창립하고 2020년 활동지를 남원시청 옆으로 옮기면서, 살롱드마고를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게 되었다. 현재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면서 책방지기들이 추천한 초대작가들의 작품과 뉴스레터를 볼 수 있는 ‘아티스트 테이블’, 기록을 테마로 하여 필사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수 있는 ‘플레이 라운지’, CD로 청음을 하며 음악가들의 도서 큐레이션을 볼 수 있는 ‘뮤직 바’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책방의 경험과 가능성을 확장했다. 독서와 기록, 퀴어에 관한 귀엽고 개성 있는 굿즈들도 판매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살롱’은 과거 유럽에서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이었는데, 주로 귀족 여성이 공간의 주인이거나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마고’는 지리산 여신의 이름으로, 신성한 창조주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롱드마고가 그 이름들의 유래처럼 지역 여성들이 만나고, 공부하고, 각자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함께 힘을 나누고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책방이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원 같은 농촌 마을 위주의 소도시 지역에서는 문화적 갈증과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데, 살롱드마고에서 여는 글쓰기모임이나 독서모임, 타로 워크숍,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이자 실험무대가 된다. 특히 가부장적인 지역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은 책방에서 같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대화하면서 잃었던 자신의 꿈과 목소리를 되찾는다. 몇 년 전 글쓰기모임 참여소감 중 “이제 주변을 배려하느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공동체의 좁은 관계망 속에 ‘나’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책방에 와 위로와 지지를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도전과 두려움에 맞설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미국의 장애인권여성운동가 해릴린 루소는 책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침묵”이라 했다. ‘다른’ 존재와 말을 품어주는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고 충만해지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살롱드마고의 고요한 서가에서, 경청을 약속하는 모임 테이블에서, 매일 침묵이 깨진다. 그곳에 ‘다른’ 말이 자란다.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글 “지리산 여신 마고의 책방, ‘살롱드마고’에 없는 것”(2023.03.03.)을 <지리산人> 뒤웅박씻나락 칼럼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글쓴이_달리 살롱드마고 책방지기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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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웅박 씻나락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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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식] 2026 제5회 수달의 아우성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26 제5회 수달의 아우성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5월 26일~27일 함양 지리산리조트, 엄청강 일원, 함양중학교에서 문의 수달친구들 010-4740-1915 흐르는 강물처럼, 끊이지 않는 생명의 소리를 듣습니다. 단순히 깨끗한 물을 넘어, 거칠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수달의 강인한 생명력은 우리 강이 그나마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는 '세계 수달의 날', 제5회 **<수달의 아우성>**에서 그 경이로운 생명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역의 현안을 공유하고,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더불어 상생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수달친구들~
    • 소식
    2026-05-11
  • [소식]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 3 : 김해화 · 김인호 · 이원규 초대전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 3 : 김해화 · 김인호 · 이원규 초대전> ■ 3인 3색 김해화 · 김인호 · 이원규 초대전 2026. 4.30 – 5.23 ‘숨 막히는 조화(造花)의 천지에서’ ■ 작가와의 대화 및 오프닝 5.2(토) 오후 5시 갤러리빈산 마당 세 번째 특별기획전으로 야생화 사진전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문인이자 사진가인 세 작가가 각기 다른 세대의 시선으로 담아낸 야생화의 기록입니다. 평균 17년에서 길게는 40년까지, 오랜 시간 야생화와 함께해온 작가들의 깊은 시선과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창작시를 한 자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담아낸 세 가지 빛깔의 시선 속으로, 5월 2일 오후 5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오프닝 행사이후 저녁식사 및 뒷풀이에는 소정의 참가비가 있습니다. 문의는 빈산지기에게(0507-1353-0902) “갤러리빈산”은 하동 악양의 작은 시골집 외양간을 갤러리로 개조해 만든 이색적인 전시 공간입니다. 전시 관람은 전시 기간 중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며,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갤러리빈산(악양) 찾아오는 길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동상신길 8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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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30
  • [소식] 람천-임천 보살행(보듬고살피기행동) 5월 용유담으로
    람천-임천 보살행(보듬고살피기행동) 5월 물길을 걷지 않고 물가를 걷습니다 지리산 맑은 물은 기대하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강물 속 고기와 바위 자갈이 모든 생물이 보이는 맑은 강을 기다리며 걷습니다. 5월 봄바람 불어 오는 날 엄천강 용유담에서 돌게구멍 찾기 함께해요.
    • 소식
    2026-04-30
  • [모집] 지리산에 진심인 학교(지심교) 운영안내
    지리산에 진심인 학교가 개강하였습니다~! 지리산에 진심인 학교(지심교)는 지리산을 좋아하고 지리산의 생명들과, 생태, 역사에 대해 궁금하고 공부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지리산에 살고있는 각 분야(식물, 식생, 조류, 포유류)별 전문가인 분들과 함께 지리산에 대해서 공부하여 '지리산에 진심'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신청하셔서 함께 공부해요! 상세일정 봄에 만나는 지리산의 생명 흔적으로 찾는 야생동물 - 강사 : 하정옥[추적자 학교 교장,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5월 16일 오전 9시~12시 포유류 실내 강의 오후 2시~5시 포유류 실외 강의 생명 존재의 의미, 번식 - 조류의 번식생태에 대해 - 강사 : 김인철[지리산 조류학 박사,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탐조 장소: 지리산 숲에서 만나는 산새 5월 22일 저녁 7시~9시 조류 실내 강의 5월 23일 오전 7시~9시 실외 강의 지리산을 사랑한 식물(봄편) - 강사 : 정명희[식물을 사랑하는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5월 23일 오전 10시~12시 실내 식물 강의 오후 1시 30분~4시 30분 실외 식물강의 여름에 만나는 지리산의 생명 지리산 자락에서 읽는 숲 이야기1 - 강사 : 정태준[응용식물과학 박사,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8월 28일 저녁 7시~9시 식물 실내 수업 8월 29일 오전 9시~12시 식물 실외 강의 흔적으로 찾는 야생동물(여름편) - 강사 : 하정옥[추적자 학교 교장이며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8월 29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포유류 실외 수업 가을에 만나는 지리산의 생명 지리산 자락에서 읽는 숲 이야기2 - 강사 : 정태준[응용식물과학 박사,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0월 17일 오전 9시~12시 실내 강의 오후 1시~3시 실외 강의 강과 새 [하천생태계에 적응해 살아가는 조류들의 적응전략] - 강사 : 김인철[지리산 조류학 박사,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0월 30일 저녁 7~9시 조류 실내 강의 10월 31일 오전 7~9시 조류 실외 강의 지리산을 사랑한 식물(가을편) - 강사 : 정명희[식물을 사랑하는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0월 31일 오전 10시~12시 식물 실내 강의 오후 1시 30분~4시 30분 식물 실외 강의 흔적으로 찾는 야생동물(가을편) - 강사 : 하정옥[추적자 학교 교장이며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1월 21일 오전 9시~12시 포유류 실내 강의 오후 2시~5시 실외 강의 겨울에 만나는 지리산의 생명 새들의 겨울나기 - 조류의 월동생태와 생존전략 - 강사 : 김인철[지리산 조류학 박사,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2월 18일 저녁 7시~9시 조류 실내 강의 12월 19일 조류 실외 강의 오전 9시~12시 흔적으로 찾는 야생동물(겨울편) - 강사 : 하정옥[추적자 학교 교장이며 지리산사람들 전문위원] 12월 19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포유류 실외 강의 신청링크 : -->https://zrr.kr/X5eHoW 문의 : 010-2972-3398 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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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4
  • [소식] 지리산둘레길 지리산탐험대 모집
    [ 지리산탐험대로 먼저 만나는 2026 걷기축제] 지리산둘레길에서 2026년 걷기축제가 오는 10월, 산청에서 열립니다 그에 앞서 5월과 6월, 지리산을 둘러싼 길에서 ‘지리산탐험대’가 먼저 길을 엽니다. 산청을 제외하고 장수·함양·구례·하동·남원에서 각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탐험이 이어집니다. 같은 길이라도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됩니다.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고, 마음이 가는 탐험 하나, 함께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 참가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자세한 내용 및 신청 http://jirisantrail.kr/wp/?page_id=3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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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4
  • [소식] 함양 북토크 「독수리 식당을 아시나요?」
    북토크 & 환경 이야기 「독수리 식당을 아시나요?」 자연과 생명이 연결되는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2026년 5월 7일(목) 18:00 한들카페 (함양읍 용평4길 13, 한들거점센터 1층) #북토크 #지리산 #함양군 #수달아빠 #환경
    • 소식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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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없는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다" 지리산 '연하반'의 자연 보전사 - 우두성 선생님의 지리산 이야기 4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기 전, 그 산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지리산은 단순히 헐벗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민족의 영산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리산 보전의 뿌리인 ‘연하반(煙霞伴)’의 태동기를 다룹니다. 우두성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길도 없던 지리산 주능선에 이정표를 세우고 지도를 그리며 산을 지켰던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타임코드 아래에 연하반 반지문 본문이 있으니 확인해 주세요. 00:00 인트로 01:00 소개 02:40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걸어 올라간 노고단. 08:06 연하반 - 지리산의 길을 열다 11:53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보호 선언, '연하반 반지문' 14:48 사라지는 숲을 지키기 위한 기록의 시작 19:46 지리산의 길을 만들다 - 자전거 흙받이로 만든 이정표 23:12 1962년 최초의 지리산 등반지도 제작 26:24 날라리봉? 삼도봉? 봉우리의 이름을 정리하다 29:50 군인들의 불법 벌목을 적발하다 烟 霞 伴 伴 旨 太古쩍 먼 옛날에 白頭山으로부터 뻗어나린 太白山脈의 큰 줄기가 南쪽 바다 푸른 물결이 그리워 南으로 南으로 向해 줄다름 치다가 굽이쳐 흐르는 蟾津江 푸른 가람에 가로막혀 그 精氣가 우뚝 솟아 멈추어 섯다는 由緖깊고 傳說어린 智異靈山아래 風光明媚하고 山紫水明 烟霞鄕 求禮!! 여기 烟霞人들의 모임이 있으니 烟霞伴이라 부른다. 烟霞는 元來 山水 卽 自然을 뜻하는 말이니 自古로 世俗的 富貴와 功名을 浮雲처럼 여기고 俗塵을 떠나서 閑雲野鶴을 벗삼아 樂山樂水 雅游瀁氣하는 賢人達士를 烟霞人이라 부른다 이에 烟霞人의 雅趣를 憧憬하고 또한 아름다운 自然과 더부러 짝한다는 뜻에서 烟霞伴이라 名稱하게 된것이니 따라서 烟霞伴은 情熱的으로 山水를 愛好 憧憬하는 이고장 山岳人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 烟霞伴은 끝없는 大地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山水를 향해 젊음의 浪漫과 情熱을 한껏 쏟아 삶의 보람을 느껴보자는 것이며 淸淨無垢한 大自然의 純潔한 廣場에서 無言의 感化속에 天地浩然의 英氣와 高邁한 人間情緖를 길러 心身의 修養을 쌓아보자는 것이며 또한 날로 荒廢해가는 우리 나라의 自然을 愛好하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것이다 大地를 맑게 누비며 흐르는 물줄기와 山野를 덮은 原始林의 푸른숲은 人類發生의 源泉이요, 原始文化의 發祥地이며 또한 人類의 唯一한 마음의 故鄕이 였음에 想到할때 오늘의 우리民族은 祖國江山의 荒廢로 因하여 마음 둘곳없는 精神的 失鄕民이 되어가고 있음을 自覺하고 痛歎하는바 이에 우리 烟霞伴은 잃어가는 綠地帶 마음의 푸른 故鄕을 다시 찾으려는 自然愛好運動의 先驅되어 民族的 情緖運動의 줄기찬 噴水가 되고저 自負하고 이땅에 自然愛好의 烟霞運動을 저마다 고장마다 일으켜 이름 그대로 地上의 樂園 錦繡江山을 이룩하는데 寄與하고저 함이니 이 江土위에 아름다운 自然이 蘇生되여 우리 겨례가 마음의 故鄕을 다시 찾게 되는날 槿域의 삶위에 보다 瑞光 빛나리 一九五五年 五月 五日 求禮烟霞伴 #지리산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1호 #연하반 #구례 #지리산사람들TV #우두성 #우종수 #지리산역사 #한국산악사 #기록 #아카이브 #자연보호 #자연애호 #노고단 #화엄사 #지리산지도 #구술사 #생애사 #지리산종주 #역사기록 #1955년 #개척사 #환경운동 #생태보전 #지리산탐사 #지리산사람들 질문하기
    • 사람이야기
    2026-05-13
  •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기를" 농민이 된 환경운동가 김석봉 농부가 보내는 편지
    "지리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내일을 묻다." 오늘 '지리산 사람들 TV'는 함양 마천 창원마을에서 70마리의 동물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거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김석봉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단순한 은퇴 농부가 아닙니다. 80년대 격변기를 지나며 안정된 공무원직을 뒤로하고, 환경운동의 전선에서 "환경은 모든 운동의 근본"임을 외쳤던 뜨거운 활동가였습니다.운동의 현장에서 지쳐갈 무렵 운명처럼 만난 지리산 빈집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빼빠지게 일하시는데, 나물이나 뜯으며 사는 것은 삶의 예의가 아니다"라며 50대에 시작한 농사. 이제는 70세의 노농(老農)이 되어, 돈이 되는 대규모 관행농 대신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나누어 먹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이 영상에는 단순히 산골 살이의 낭만을 넘어선 묵직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김석봉 선생님. 비 오는 날 생강 밭에서 달려와 건네준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든든한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00:00 인트로 01:03 지리산농부 김석봉 02:03 70여 생명과 함께하는 지리산 거대 가족 04:34 교정직 공무원에서 환경운동가로 09:11 운명처럼 만난 지리산 창원마을 15:03 괭이 한 자루에 담긴 농사의 예의 21:44 심각하게 다가오는 기후변화 26:13 귀농인으로 느낀 농촌의 현실 42:27 새로운 농촌을 향한 꿈, '이장 공모제' 50:08 "지금 양수발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56:09 지리산에서 띄우는 편지, "열심히 사는 이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지리산 #김석봉 #환경운동가 #생명의예의 #지리산사람들TV #귀농귀촌 #함양마천 #창원마을 #양수발전소반대 #기후위기 #다품종소량생산 #이장공모제 #지리산농부 #유기농사 #공동체
    • 사람이야기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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