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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의섬진강탐조] 3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 다양한 날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3월 20일은 무슨 날일까요? 바로 참새의 날입니다. 그것도 세계 참새의 날! 세계 참새의 날은 인도의 환경단체인 '네이처 포에버 소사이어티(NFS)'와 프랑스의 에코시티 액션재단이 2010년 참새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지정했고 합니다. 흔한 참새를 무슨 이유에서 날까지 지정했을까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참새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여서 흔하게 서식하는 새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참새는 농경지의 감소와 도시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서식지 감소, 유리창 충돌, 로드킬,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한 교란)로 인해 개체수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2023 야생동물 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참새의 서식 밀도는 1997년 제곱킬로미터당 183.6마리였으나 2010년 95.4마리까지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후 2016년 135.2 2020년 166.0마리로 늘어났다가 지속적인 감소 추세로 돌아서 2023년 139.4마리로 집개 되었습니다. 2020년대비 19% 감소한 것인데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점은 82년도의 참새 서식 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469마리였다는 것입니다. 2023년도 대비 약 3배 이상 감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자료 : 국립생물자원관 ‘2023 야생동물 실태조사’ 분석 자료 발췌 이렇게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참새만이 아닙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흰뺨검둥오리는 2021년 제곱킬로미터당 66.7마리에서 2023년 56.5마리로 15.4% 감소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청둥오리는 13.4% 감소하였고 어치의 경우도 10.9% 감소하였고 박새도 15.6% 감소하였습니다. ▲ 자료 : 국립생물자원관 ‘2023 야생동물 실태조사’ 분석 자료 발췌 ▲ 어치는 산속의 농사꾼입니다. 어치가 물어 나르는 도토리와 각종 씨앗으로 숲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치는 수다꾼입니다. 심심하면 고양이소리, 염소소리, 다른 새들의 소리를 따라합니다. 흔하다고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참새와 박새, 어치, 청둥오리의 개체수 감소는 그냥 종 하나가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에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감소율이 높은 참새는 곡식도 먹지만 식물에 붙어있는 진딧물과 같은 벌레도 잡아먹기 때문에 참새 개체수의 감소는 농가의 피해로도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우리가 뭘 해야 할까요? 우선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참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엇이 위협이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선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유리창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리창 충돌은 참새만이 아니라 모든 새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단체와 기관의 협력으로 해결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야생화된 고양이와 그리고 농경지 감소가 있습니다. 새대가리? 실제로는 지혜로운 새들 참새는 둥지를 만들 때 둥지에 생 ‘쑥’을 섞습니다. 쑥은 해충을 방지해 주고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실제 둥지를 만드는 참새들이 쑥을 물고 들어가는 모습들이 관찰되곤 합니다. 이처럼 새들은 지혜로운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더 이상 새대가리라는 말을 놀리는 말로 사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둥지를 만들기 위해 식물의 뿌리를 물고 왔습니다. 참새는 인가 주변 처마 밑이나 전봇대의 틈새 등 인가 주변을 둥지 장소로 선호합니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천적을 쫓아주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봄은 현재 진행중 레이첼 카슨이 DDT 사용으로 인해 침묵의 봄이 올 것이라 경고하였습니다. 이에 경각심을 갖고 DDT 사용을 금지하였지만 이젠 다른 문제가 침묵의 봄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리창 충돌과 서식지 감소와 농경지 감소, 그리고 야생화된 고양이와 서식지 파괴, 로드킬 등... 이제 우리는 다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봄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진 봄을,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닌 봄을 맞이할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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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의섬진강탐조] 3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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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의추적자학교] 진흙목욕을 하고 싶은 멧돼지.
- 진흙목욕을 하고 싶은 멧돼지. 24년 2월 초, 엄청나게 내린 눈을 뚫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에 올랐습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도, 쥐를 쫒아간 족제비 발자국도 보면서 말이죠. 능선까지 갔었고, 눈으로 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등산로를 내려오는 길이였습니다. 눈의 무게에 조릿대가 길을 덮어 더디게 진행하는데, 저 앞쪽으로 퍼런 조릿대 무덤이 보이는 겁니다. 순간 머리가 쮸뼛 서며, 뒤 바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찍으려는 찰라 왼쪽으로 돼지 한 마리가 튑니다. 무의식중에 터져 나오는 상투적인 탄성과 함께 아래로 튀는 멧돼지를 따라 찍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다시 한 마리가 튀어 나갑니다. 이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어요. 크기는 한 100근(60킬로) 정도 나가는 돼지 두 마리가 조릿대 속에 있다가 저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 거였어요. 모르긴 해도 조릿대를 꺽어 앞으로 낳을 새끼들을 위해 산실(새끼를 낳고 일주일 정도 키울 요량으로 만든 집)을 만든 자매 멧돼지였나 봅니다. 일단 다가가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어요. 하얗게 덮인 눈 속에 퍼런 조릿대가 무덤의 봉분처럼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야생동물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봤다면 그저 무심코 지나칠 일이나, 여러번 봐왔던 터라 한눈에 멧돼지 산실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둥지를 헤쳐 내부도 보고 싶었으나 출산을 앞둔 예비 어미 멧돼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그러면서 바로 드는 생각이, 여기에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하러 와야겠다 였어요. 이중 한 마리가 드나들면서 출산을 할 것이고 곧 새끼들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선 거지요. 산실을 본 반가움과 바로 내려와야 하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자리는 가보지 못했어요. (사진1. 멧돼지가 두 마리가 튀어나갔던 조릿대로 만든 산실) 어려서 동네 잔치에 돼지를 잡으면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차고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을 이발소에 가면 큰 어미돼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커다란 액자도 붙어 있었구요. 오래전이라 액자 속의 새끼들이 정확하진 않아도 열 마리가 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는 거의 열 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다 치고, 숲에 있는 멧돼지도 새끼가 많지만 집돼지보단 적게 낳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먹이를 찾는 멧돼지보다는 사람의 보살핌 속에 먹이 걱정 없는 집돼지의 새끼가 더 많을 거라는 건 다들 이해 하실겁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돼지를 잡으면 젖꼭지를 세게 되는데, 눈앞에 보이는데도 정확하게 셀 수가 없는 겁니다. 뒷다리 쪽으로는 톡 튀어나온게 정확하나, 가슴쪽에 있는 건 거의 형태만 있지 제 구실을 할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희미하거든요(가짜 젖꼭지). 언제 한번은 대략 7쌍(14개) 정도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돼지는 야생의 멧돼지를 가축화 시켰기에 서로 교배가 가능하니 젖꼭지 수도 같아야겠으나 야생의 혹독함을 겪으며 집돼지보다 새끼의 수도 줄었으니 젖꼭지도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집돼지와는 달리 멧돼지는 산실에서 일주일 정도 키운 뒤 거의 밖에서 생활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약한 새끼들은 도태되거나 천적에게 먹히겠지요. 물론 안락하진 않으나 사람의 관리를 받으며 크는 집돼지에 비해 태어나자마자 혹독한 자연에 맞서야하는 멧돼지니의 입장에서는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맞겠지 싶습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암컷들이 공동육아를 하며 야생에서 남는 법을 배우겠지요. 산에서 조사를 하다보면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낙엽이나 흙을 긁어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주둥이(코)로 밀고 다닌 흔적입니다. 땅속에 있는 지렁이나 벌레 등을 닥치는 대로 먹고, 밤이나 도토리를 찾아 먹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산 아래 밭에 고구마를 세 고랑 놓았는데, 아침에 산책 다녀온 집사람이 고구마 고랑이 다 뒤집어져 있대서 가보니 멧돼지 짓이더라구요. 딱 고구마 밑이 들 때를 기다려 그렇게 다 먹어치운 거죠. 가끔 칡을 파먹은 흔적도 보이는데, 고구마처럼 녹말 성분을 좋아해서입니다. 식물성이 기본이지만 닥치는 대로 뱀까지 먹는 잡식인 멧돼지는 논에 들어가 분탕질을 하기도 하고, 과수원의 사과를 따먹기도 해서 농사꾼에게는 최고의 미운털이 박힌 동물이기도 하지요. (사진2, 고구마밭을 파헤친 흔적)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조사를 하다 임도로 떨어졌는데 저쪽에서 인기척이 나 가보니 올무에 걸려 발버둥치는 멧돼지가 있더라구요. 얼마나 벗어나려 애를 썼는지 올무 반경의 흙이 밭을 갈아놓은것첨 보였습니다. 무조건 앞으로만 향하는 야생동물의 습성이 상악골(코와 붙어있는 윗니)에 걸린 와이어가 더 조여오며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인거지요. 그때 드는 생각이, 이걸 지자체에 신고를 하나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고 제 갈길을 가나였어요. 신고를 하면 예전엔 마취를 시켜 올무를 제거한 다음 다시 자연으로 돌려 보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거든요. 2019년부터 발생한 ASF(아프리카 돼지열병)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은 엽사를 보내 무조건 사살하고 샘플(양성반응이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뽑는 피) 채취하고 끌고 내려오던지 아니면 석회뿌리고 묻어버리는 식입니다. 그대로 두고 오면 올무를 놨던 사람이 와서 어떻게든 요리를 하겠지요. 제가 어떻게 했냐구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인월 금계 구간에 전라북도 남원 산내를 넘어 경상남도 함양 마천의 경계에 등구재가 있습니다. 마천의 창원마을쪽 등구재 바로 아래 조그마한 소류지가 하나 있습니다. 전에 소류지 주변에서 멧돼지가 풀을 뜯어 만든 산실도 본적이 있는 터라, 기다렸다가 멧돼지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쌀쌀했으나 소류지 뚝방에 메트리스를 깔고 납작 엎드려 건너편 물이 내려오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한참을 기다렸어요, 돼지가 갑자기 보이는 겁니다. 하도 오래 엎드려 앞만 보고 있었더니 잠시 놓쳤던 거겠지요. 돼지가 천천히 나타나는데 해도 넘어갔고, 앞을 가린 나뭇가지로 시야는 안좋았으나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느긋하게 자리를 뜨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머리와 등을 제외한 몸에 물이 묻어 있더라구요. 돼지는 사람처럼 피부로 열을 발산하는 구조가 아니라 열을 식히는 방법으로 진흙목욕을 선호합니다. 충청도 어느 산에는 봉분이 죄다 패여 있는 겁니다. 비가오면 돼지가 위에서 목욕을 하고 벌건 황토를 주변 소나무 여러 군데에 묻혀서 이동한 동선이 보일정도로 말이지요. 우리가 티비에서 보는 고라니나 담비, 멧돼지는 멋짐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죽게 되면 털속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진드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요. 체온이 식어 숙주로서 역할을 못하게 되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거든요. 멧돼지가 진흙목욕을 하는 이유는 더워서도 있지만 몸에 붙어있는 진드기 영향도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흐르는 시냇가에 들어가는 것보다 물이 고여 자작한 진흙을 선호하지요. 뒹굴며 체온을 식힘과 동시에 몸에 흙이 달라붙게 만드는 겁니다. 어느정도 굳어지면 주변에서 송진이 베어나오는 나무를 찾아요.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이라 부르는 일본잎갈나무 등. 튀어나온 엄니(송곳니)로 상처를 낸 다음 송진이 흘러나오면 거기에 몸을 문지르는 겁니다. 가려운 곳 순으로 긁어대것지요. 이렇듯 몸을 비비는 나무를 멧돼지 베개목, 또는 비빔목이라 불러요. 멧돼지 물통(진흙목욕을 한 곳) 주변에는 대개가 비빔목이 있답니다. 어떤 나무는 얼마나 비벼댔는지 빙 둘레 수피가 다 벗겨져 죽어가는 나무가 있을 정도입니다. 송진의 테르펜 성분이 항균작용을 하는걸 아는 모양입니다. (사진3, 멧돼지 물통과 비빔목-흙탕물이 있는 걸로 보아 목욕한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강릉 산불이 있었던 곳에 조사를 갔을 때 일입니다. 다 타서 시커멓게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소나무 숲에 멧돼지가 쉬거나 잠을 잔 흔적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층식생이 다 타고 없는 곳에 쉼터 자리에만 주름조개풀이 보이는 겁니다. 숲 가장자리에 사는 주름조개풀의 끈끈한 열매가 멧돼지 털에 붙어 거기까지 이동한 것이죠. (사진4, 인천의 국립생물자원관 생생채움관에 멧돼지 산실을 설치하고 있다) 이땅에 맹수가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몇 안되는 야생동물들은 거의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중 멧돼지는 사람 말구는 천적이 없을 정도로 생태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죠. 그러나 농사꾼들에게 눈에 가시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로 파리목숨이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고기가 귀한 시절에는 훌륭한 단백질원이였으며, 농사꾼에겐 홀대받을 지언정 알아주는 이 적어도 묵묵히 숲을 가꾸는데 일조한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를 막기위해 설치한 펜스로 의도치않게 다른 야생동물의 통행까지 막아 민폐를 끼치게 된 멧돼지. 멧돼지가 사라진 숲을 생각해 보세요. 유해조수라 없어진다면 마냥 좋기만 할 것 같나요? 자동차에서 볼트 하나 빠졌다고 크게 표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나중엔 차가 설 수도 있다는거까지 내다보며 볼트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 추적자 학교 하정옥 / 글.사진 추적자학교 하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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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의추적자학교] 진흙목욕을 하고 싶은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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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의섬진강탐조] 모든 것을 품어주는 지리산과 섬진강
- ▲ 섬진강을 찾아온 가창오리의 모습. 생명들의 터전인 산과 강, 자연은 모든 것을 차별 없이 품어줍니다. 어쩌면 차별은 인류만 가지고 있는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약육강식, 강자만 자연에서 살아남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관찰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맹급류나 육식성 생명은 종 분류상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하지만 맹급류가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무리지어 다니는 새들은 어쩔때는 맹급류도 무서워서 도망치게 만들곤 합니다. 호랑이도 다 자란 멧돼지를 잘못 건드리면 죽을수도 있다고 하니 강자가 늘 이긴다는 법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서로 뭉치고 연대하는 것이 더 강하고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뭉쳐있는 단위가 또 다른 권력이나 힘, 강자가 되는 것 아니냐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결과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불규칙하고 비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은 곡선이지만 인간만이 직선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직선을 말하는 것이 아닌 곡선의 미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 수달이 동자개를 먹고 있습니다. 가시가 있어서 먹기가 까다로운지 한참을 실강이를 벌였습니다. ▲ 마당을 나온 거위가 큰기러기와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덩치가 더 큰고 색이 다르지만 친구가 되었습니다. ▲ 앞에 있는 친구가 큰기러기 그 뒤가 거위입니다. 위에 있는 친구는 큰고니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보이던 ‘마당을 나온 거위’는 큰기러기와 친구가 되어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큰기러기는 1월부터 30마리 이상이 찾아와서 섬진강 일대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마당을 나온 거위’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요즘보면 항상 2마리가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무리는 날 수가 있어서 먹이를 먹으러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지만 친구인 거위가 날지를 못하니까 본인도 날아가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무리가 돌아오면 거위를 데리고 무리에 합류해서 함께 다닙니다. 종 분류상 서로 가까운 관계이긴 합니다. 보통 거위가 흰색이어서 고니를 조상으로 알고 있는 분도 있는데 실제로는 ‘개리’가 거위의 조상입니다. 개리는 기러기류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거위와 혼동되기 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개리의 영어 이름도 ‘Swan Goose’입니다. ‘백조거위’인 것이죠. 그래서 개리는 먹이를 먹는 습성도 고니와 비슷하다 합니다.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백조의 순우리말이 고니인데 고니인 이유는 곤~ 곤~ 하고 울어서 곤이>고니로 지어졌다 합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백조’는 혹고니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고니의 이름만큼은 잘 지어준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봄꽃 축제의 소식이 들리는게 봄이 오고는 있나 봅니다. 야생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철새들이 하나 둘 떠나겠지요. 외눈박이 말똥가리도 고향을 찾아 떠날것입니다. 2025년의 겨울을 기다리며 부디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 꿈을 이루고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 외눈박이 말똥가리입니다. 2022년부터 관찰되고 있는데 왼쪽눈을 다쳤습니다. 3년간 계속해서 섬진강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올 겨울에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PS. 3월 10일 섬진강을 잠시 돌아봤는데 고니 한 마리가 혼자서 수면 위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왜 혼자일까?’ 하고 쌍안경으로 보니 ‘마당을 나온 거위’였습니다. 이제 자연에 적응하였는지 수면위를 날아가는 정도는 할줄 아는가 봅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박 속았습니다. 잘 살아갈 것 같아 기쁩니다. ▲ 수면위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호사비오리, 물 위서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물 위를 달려야 합니다. 땅에서는 치고로를 단단한 바닥이 있지만 수면은 그렇지 못해서 빠르게 달려야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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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의섬진강탐조] 모든 것을 품어주는 지리산과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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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 「섬진강 편지」 - 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지리산 산불 소식 때문일까, 이맘때면 자리다툼까지 하던 사진작가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 꽃구경 나온 이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 화엄사 홍매 그늘이 훤하네. 언제나 꽃이 볼만하겠냐 물어오지만 요사이는 두서없는 날씨 탓에 꽃 피는 때를 예측하기가 어렵구만. 예년 같으면 진즉 피었을 3월 19일까지 한 송이도 피질 않아 애태우더니 3월 21일부터 20도를 넘는 날씨가 5일 계속되자 사흘 만에 꽃들이 한꺼번에 확 피었다네. 지난해에는 3월 8일에 피기 시작해서 만개까지 8일이 걸렸는데 올해는 단 3일 만에 확 피어버린 것이네. 그렇게 일시에 피다 보니 꽃빛도 꽃송이들도 탈모가 시작된 내 머리처럼 듬성듬성 휑한 것 같네. 화엄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의 꽃들도 미친 듯이 피어나네. 하룻밤 사이에 윗집 모란이 피고 옆집 살구가 피고 아랫집 앵두가 피니 벌들이 과로사 하겠네. 두서없는 횡설수설 문장으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편지 같은 날들. 여드레째 지리산불은 오늘도 다 꺼지지 않고 지리산을 태우고 있네. 문명의 이기심이 불러온 이상기후 때문에 모든 생명들이 곤혹스러운 날들이네. 그나마 산불은 눈에 보이는 만큼 물로라도 끌 수 있다지만 보이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 마음속 이는 천불은 어찌 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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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2편 "도쿄에서의 결혼생활"
- 도쿄의 8월, 뜨거운 태양이 나경의 머리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경은 서둘러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요." 나경은 역이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긴시쵸 역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서 생활 한지도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경은 남편과 함께 도쿄에서 살았다. 남편은 긴신초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수현과 헤어지고 다시 돌아온 일본에서 나경은 재일 한국인과 만나 결혼했다. 나경의 아버지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 오라고 했지만 나경은 가지 않았다. 한국은 그녀에게 선택과 고민, 갈등의 땅이었다. “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겁니다. 전 일본에서 살겠어요!” 나경의 남편은 일본에 있는 한국 벤처기업에서 일했다. 한국 회사가 일본으로 진출하고 나서 일본 담당자가 되었다.. 함께 일할 알바생을 찾았고 나경은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했다. “나경씨 퇴근 하고 술 한 잔 해요?”라고 물었을 때 나경은 좋아요. 라고 짧게 답했다. 나경은 당장 누군가라도 만나야 했다. 그것이 지금은 남편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수현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나경은 필요했다. 남편은 수현처럼 키가 크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수현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랬을 까? 나경은 오히려 좋았다. 둘은 1년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식 조건으로 유일하게 나경이 제안 한 것은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경의 남편은 나경이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경은 예쁜 여자였다. 나경의 남편 영진은 스타벅스 안에 앉아 있는 나경을 바라보면 생각했다. 저 예쁜 여자가 왜 나를 선택 했을까? “영진씨!” “여기요!” 나경이 반갑게 영진을 불렀다. 당신이 무슨 일이야? 점심 시간에…. 사무실까지 찾아오고…. 집에 있기 심심하고 당신도 보고 싶어서 왔어요! 당신도 한 잔 해요? 점심 시간이 얼마 안 되어서… 이 근처 식당도 붐비고.. 밥먹으러 가자… 그래요. 밖으로 나오자 여전한 정오의 태양이 둘을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먹어요. 당신 카레 좋아하잖아? 여기 카레 맛집이 있는데.. 아. 그래요. 둘은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나경은 카레를 먹는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저 사람이 수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수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나경의 멍한 눈을 영진이 보고 있었다. 저 여자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진은 나경이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나경이 같은 집안에 나 같은 남자가 맞지도 않고 자신과 나경을 비교해 봐도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진은 나경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사무실에 들어 온 날 자신이 살면서 처음 가까이해 본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에게 술을 먹자고 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일을 핑계로 만나자고 했는데 나경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준 것이다. 그리고 둘은 결혼까지 했다. 영진이 교회에 가자고 했을 때도 나경은 순순히 따라 갔었다. 영진이 다니는 한인 교회는 교인이 50명이 안 되는 작은 교회였다. 영진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교회에서 있을 때 영진은 평화를 얻었고 마음은 고요했다. 나경은 영진의 권유로 교회에 따라가고 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교회가 끝나면 함께 밥을 해먹거나 차를 마셨다. 함께 김치를 담기도 했다. 지루한 일본 생활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영진은 이런 나경을 보면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경이 교회에 가지 않는 다고 하면 영진은 화를 냈고 나경은 결국 다시 교회에 갔었다. 나경도 가다보니 익숙해졌다. 익숙한 것은 편안한 것이다. 편안하고 무언가 선택하지 않는 삶 그것이 나경이 일본에서 구원한 삶이었다. 한국은 선택해야 했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는 삶이 나경이 원하는 삶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래야 했다. 수현을 떠나 일본에 왔던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었다면 나경은 일본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나경이 받아 드린 그 하나의 사상 때문 이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혼자 행복한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라는 것 바로 이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그날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경은 부유한 집안의 딸로 편안하고 아늑한 삶을 선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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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2편 "도쿄에서의 결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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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깽깽이풀
- 「섬진강 편지」 -고운사 깽깽이풀 사흘 연속 25도를 넘나드는 고온이 계속되더니 꽃들이 두서없이 일제히 피어난다. 마당 살구나무가 하루 만에 일제히 피었다. 숲의 꽃들도 천불이 인듯 피어난다. 가슴에만 천불이 이는게 아니었구나! 소식이 없어 애태우던 화엄사 홍매도 하룻사이에 붉게 피어났다. 섬진강변 숲에서 깽깽이풀 꽃을 보고 왔는데 경북 의성의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되었다는 속보가 뜬다. 고운사는 딱 한 번 찾아갔지만 늘 지워지지 않는 절집이다. 깽깽이풀 꽃을 피워놓고 나를 불러주었던 곳이다. 야생화 포토포앰 『꽃앞에 무릎을 꿇다』 표지사진인 고운사 깽깽이풀 곳곳의 산불로 전국이 초비상 상태이다. 산청에서 시작된 지리산 산불도 벌써 엿새째인데 불길이 다 잡히지 않았다. 사진 속의 고운사 깽깽이풀 꽃에게 소원해 본다. 보우하사 어서 비를 내려 주시길!! -섬진강 / 김인호 #지리산산불 #고운사깽깽이풀 #의성산불 #고운사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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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깽깽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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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1편 "운명"
- 나경은 수현이 잡혀가는 모습을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경은 이 상황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수현을 집회에 데리고 다니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경은 자신이 고등학생인 수현을 집회에 만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지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수현 선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경선배 지숙은 흐르던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나경은 자신을 원망하면 대답했다. “구속 될 거야…. 수현은” 수현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가 붙었다. 수현은 경찰 유치장에서 10일 보냈고 결국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날 잡힌 학생들은 수현 말고도 50여 명이나 되었지만, 검찰에 송치된 것은 수현이 유일했다. 검찰은 수현에게 집시법 위반과 화염병 소지죄로 최고형인 3년 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초법인 점을 고려해야 징역 2년 형을 선고했다. 나경은 아버지에게 수현이 징역형을 면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2년형을 1년형으로 감형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항소심에서 수현은 감형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경은 수현에 감옥에 가자 도쿄로 돌아갔다. 남은 학업을 하기로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수현을 구속하는 한국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다. 자신이 수현을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이 그녀를 더 이상 한국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다시는 수현을 만나지 말아야 해…. 나를 만나면 수현은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지숙은 군대 2년을 기다리고 만난 수현이 복학하자마자 감옥에 가 버리자 더 이상 수현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더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수현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체념했다. 지숙은 이제 졸업을 해야 하고 취업해야 한다. 더 이상 수현만 바라보고 살 수도 없었다. 그녀 앞에도 해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그날 수현에게 머리통을 맞고 기절했다. 강진을 진압하려고 했던 신병은 강진이었다. 강진은 첫 집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언제나 뒤에서 학생들을 조직하는 일을 조용히 해왔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전경으로 차출되었다. 그가 배치받은 곳은 자기 고향이었다. 그날 수현이 앞에 있는 것을 강진은 봤다. 강진은 어떻게든 수현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의 분대가 수현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강진은 수현을 어떻게든 도망치게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강진은 수현이 휘두르는 쇠 파이프에 맞고 기절했다. 수현은 쓰러진 전경을 끌고 가는 전경들이 강진의 화이바를 벗길 때 그 전경이 강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은 그래서 더 이상 항소하지 않았다. 수현도 교도소에 나오면 노무사가 되어 볼 생각을 했다.학교에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현은 노무사 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지숙에서 노동법 책을 부탁했다. 책을 펼치자, 지숙이 쓴 글이 보였다. 수현 선배! 그동안 고마웠어요" 생활 잘하세요. 안녕 수현은 아버지가 산재 처리를 받았다면 후유 장애와 산재로 발생한 질병은 회복될 때 까지 병원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노동법 책을 보고 알았다. 더구나 산채 처리를 받았다면 산재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임금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본인이 노동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후회했다. 출소후 수현이 학교로 돌아 왔을 때 학교에는 수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교수실이 되어 버린 과학생회실, 텅 빈 서클룸, 먼지 쌓인 사회과학 책들…. 주차장이 되어버린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 대자보 대신 붙어 있는 토익 학원 홍보안내문…. 학교엔 지숙도 나경도 강진도 없었다. 지숙은 고향 여수에서 공무원이 되었다. 나경은 일본에서 결혼했다. 강진은 여전히 전경으로 복무 중이다. 수현은 지숙이 선물해 준 노동법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현이 도서관에서 나오자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다. 도서관 앞엔 코스모스가 피어있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벼가 익을 때구나….” 함께 논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던 생각이 났다. 수현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따스한 눈길이 그리웠다. 학생회관 앞 공중전화에 전화카드를 넣었다. 엄마! 저 지금 집에 가려고요. 두시 차에요. 수현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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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1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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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 도쿄의 봄은 매화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이어졌다. 나경은 일본에서 생활이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학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가라는 과에 입학했고 그저 그런 학점을 받았다.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도쿄에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경은 종종 군대에 있는 수현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면 수현과 함께 걸었던 그길과 그시절이 생각났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수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도 나경처럼 학생이었다.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은 니시하라이근처였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아라강을 산책했다.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했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의 치열함과 다른 일본 생활의 나른함이 주는 평화가 좋았다. 역사 민중 독재 권력 해방 이런 단어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지금이 나경은 좋았다. 아라강은 이타마현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스미다강(隅田川)과 나뉘어 도쿄만으로 흐르는 길이 173km 강이다. 일본에서는 강폭이 가장 넓은 강이었고 수도 도쿄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었다. 나경은 여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면 야구하는 아이를 보러 오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때로는 조깅하거나 이자카야에서 남편과 술 한잔하는 평범한 생활을 꿈꿨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경은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그가 좋았다. 하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경은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수현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 수현을 만나야겠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수현은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집회장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한때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귀퉁이에 쌓여 있는 먼지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은 달랐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학내 분위기는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은 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과거의 방법에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학부제였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회였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회를 찾아오기 마련이고 학생회 활동이나 엠티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만든 5.31일 교육개혁안으로 학과가 사라지고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학생회 역시 힘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학부제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현이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운동권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귀한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응원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처럼 거리투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수현은 학생회실 캐비넷의 자신이 집회 때마다 들고 다녔던 쇠 파이프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배 아직도 학생운동 같은 것을 해요?” 후배들의 이런 질문에 수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현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 질 때 나경이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오랜만이야" “잘 있었지!" 나경은 어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수현은 오랜만에 나경을 만난 것이 좋았다. “선배 잘살았어요?” “어, 너는" “네 저도 군대 제대하고 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지숙이도 잘 있어?” “아… 네 지숙이도 잘 있죠?” “우리 같이 술 한잔하자” 그날 밤 지숙과 나경 수현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끝없이 술을 마셨다. 각자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지숙은 나경에게 물어야 할 말이 있지만 묻지 못했다. 수현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맥주에서 소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끝을 모를 그들의 관계처럼 길고 깊었다. 다음날 새벽 수현은 일찍 잠에서 깨었다. 오늘 오후에 집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는 가두집회였다. 총학생회는 다시 한번 학생운동의 불꽃을 살려보기 위해 가두 투쟁을 결정했다. 오후 1시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민중가요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문선대의 공연이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문선대의 공연이 끝나자 풍물패들의 힘찬 연주가 시작되었다. 집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학생회장과 투쟁국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로 나서려고 합니다.” “그 동안 움츠렸던 우리 청년 학생들의 각오를 다시 보여줄 때입니다,” “남한 사회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고, 미군은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김영상 정부 타도하고 평화통일 이룩하자" 여기저기 집회가 그리웠던 고학년들과 처음 집회에 참가해 본 신입생들 이렇게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을 꽉 채웠다. 수현은 전날부터 집회에 사용할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후 2시 수현과 사수대 그리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경찰과 전경 그리고 백골단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수현은 언제나처럼 제일 앞 자리를 잡았다. 점점 시들어가는 학생운동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리기라도 하듯 전경과 사복 체포조, 페퍼포그까지 대동해 교문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여러 번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허용하지 않았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과 교통 통제를 위해 교문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주 경찰은 여러분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안전한 학내에서 집회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교문 밖으로 나오게 되면 경찰은 여러분을 즉각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웃듯이 사수대가 교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물러가라" 수현이 맨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지숙은 멀리서 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언제나 같구나.. 지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자신이 떠날 때와 변하지 않은 한국 현실이 느껴졌다. 도쿄에서 보내는 동안 나경은 학생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민당 독재라고 해야 할 만큼 일본은 2차대전 패망 후 자민당 일당 독재였다. 다른 정권이 정권을 잡은 적도 없다. 일본의 정치는 자민당으로 시작해서 자민당에 의한 자민당의 정치였다. 하지만 68년 전공투 이후 일본에서 학생운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경은 이런 상태가 좋았다. 해야 할 일이 없고, 선택해야 할 일이 없다는 현실이 좋았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시대의 현실을 외면해도 미안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경은 항상 선택해야 했다. 지숙은 수현이 오늘 집회에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투경찰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학생들이 교문 100미터 정도 나오는 것은 적당히 봐주고 시작했다. 이 정도 거리는 집회 신고를 하면 대부분 받아 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문 앞에서부터 막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만의 나름의 유효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더 나오면 전경들이 밀려오고 그렇게 되면 뒤로 갔다가 나왔다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공연도 하는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경들은 학생들이 교문을 나오자 마자 입구부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늘 전경들이 이상해요” 수현도 오늘 전경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학생 지도부는 대오를 뒤로 미루어 교문 안으로 들어와 회의를 시작했다. 총학생회장 수철은 대오를 뒤로 미루자고 했다. 오늘 밀리면 내일도 없다고 투쟁국장이 말했다. 수현은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 번 밀어 보고 적당한 선에서 오늘 집회를 마무리 하자.] 100미터가 안 된다면 50미터라도 밀고 나서 그 자리에서 집회를 이어가자고 했다. 오늘 처음 집회에 온 신입생들도 있는데 이렇게 밀린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집회에 나온 신입생들은 뒤로 가세요. 선배들이 앞에서 뚫어 보겠습니다.” 수현은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멀리서 수현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경찰 수사과장은 김충선은 학교 앞 5층 빌딩 옥상에서 수현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야…. 오늘 저놈 좀 놈 잡아" 수사과장은 수현을 잡고 싶었다. [저놈이 오래전에 우리 전경 아이 하나를 죽일 뻔한 놈이잖아….군대 가서 안 보이더니 … 다시 쳐 나왔네. 저놈은 오늘 반드시 잡아야해..]다시 교문을 열고 사수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바로 전과는 다르게 뒤로 살짝 빠지기 시작했다. ‘자!! 우리 한 번 쭉 밀고 나가봅시다" “통일운동 가로막는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학생들 300여 명이 전경들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화염병 줘!” 전경들은 수현을 앞에 두고 쥐 앞에 고양이처럼 이야기했다. “야 신병 네가 잡아봐….”“너도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며….” “잘 되었네” 신병 하나를 전경들이 수현 앞으로 밀었다. 수현은 갑자기 전경이 자신을 잡으려고 앞으로 나오자 전경의 전투모를 내리쳤다. “윽"하고 전경이 뒤로 밀려났다. “야. 이 자식아 이것도 못 해….” 그 순간 수십 명의 전경이 수현을 공격했다. 수현은 질질 끌려갔다. 수현의 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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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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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바위
- 「섬진강 편지」 -소원바위 겨우내 찾지 못했던 사성암 소원바위를 찾아 소원을 한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욕심을 내어 두 가지 소원을 올렸다. 강 건너 숲에 들어 꽃 앞에 엎드리니 작은 개울물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언 땅을 뚫고 꿈틀대는 새싹들! 얼어붙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땅이 녹아내리고 뭇 생명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누가, 누가 천심 민심을 거스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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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애도하며
- 물고기를 애도하며 제임스 테이트 스텐리는 회사를 하루 쉬면서 온종일 수족관 속의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바닥을 다니는 작은 메기에게 그가 말했다. “찌꺼기를 빨아들여. 전부 삼켜버려.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그리고 연필 물고기가 헤엄쳐 지나가자 그는 “휘갈겨 써. 쓰고 또 써. 나에게 한편의 소설을 써보이란 말야” 또 천사고기가 지나가자 스텐리는 말했다. “넌 천사는 아니지만 운전 하나는 잘하는구나.” 그러고 난 뒤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떠나 참치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아니, 그는 한입 한입 맛을 음미하면서 아이러니 속에서 뒹굴었다. 그리고 수족관 앞 의자에 다시 와 앉았다. 한 떼의 작은 네온 물고기가 그를 즐겁게 했다. “너희는 이 수족관이 뭐 타임스퀘어라고 생각해?” 스텐리가 소리쳤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다음 날 아침 스텐리는 어제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무섭게 당황했고 물고기들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스텐리는 바로 물고기들의 물고기다움을 조롱했던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게 있을 수 없었다. ------------------------------------------- 이 시는 산문시의 형식으로 쓰여진 미국의 제임스 테이트(1943~2015)라는 시인의 시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서로 다르다. 누구나 자신만의 형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진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한 생명이 가진 자신만의 정체성은 누군가에게 조롱받거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키가 작다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가 하나의 공동체에서 전체의 룰을 어겼거나 해악을 끼쳤을 때는 당연히 제지당해야 하고 약속한 벌을 받아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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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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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三毒
- 삼독三毒 한세상을 살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옥을 살다 간다. 어쩌면 죽어야만 그 감옥을 벗어날 수 있다. 한 生을 살며 오직 ‘나’라는 자신만을 살다 가는 것이다. 붓다는 모든 중생은 삼독三毒을 벗어나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삼독이야말로 나의 감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니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그리고 스스로 갇혀 있는 나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탐貪, 진嗔, 치痴삼독三毒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탐이다. 잘못된 탐심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대통령직 파면을 자초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어떤 사람을 보면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살아야 한다는 존재 욕구를 본능적으로 갖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본능적인 존재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탐이 아니다. 탐은 이것을 이탈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무는 싹이 튼 그 자리에서 햇볕과 물과 바람만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한 생을 살다 간다. 이처럼 모든 생물은 그 한계를 넘지 않고 사는데, 인간만이 그 한계를 넘는 탐심을 가지고 있다. 작금의 자본주의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자본의 토대 속에서 과학기술문명이 진행되면서 많을수록 좋다는 물량주의, 빠를수록 좋다는 속도주의, 나와 나의 이익이 먼저라는 개인 이기주의 같은 자본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탐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현대인들의 탐욕은 생존경쟁의 삶 속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이며 부끄러워할 무엇도 아니라는 듯 당위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탐욕은 물질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이 오히려 삶의 균형감을 더 잃게 한다. 힌두의 수행 계율 중에 ‘샨토샤’라는 것이 있다. 자신에 주어진 삶의 조건과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그것에 ‘만족하라’는 계율이다.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어떤 삶의 조건에 갇히게도 된다. 멀쩡한 사람으로 살다가 갑자기 암 환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날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것인데, 살아 있는 이승의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라’는 것이다. 살면서 나이를 먹고 어느덧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며 ‘무상無常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느껴본 자라면 이 말을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숨 쉬며 존재하기만 해도 고맙다고 느끼는 만족의 순간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만족이 손에 잡히는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만족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으려면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손쉬운 것이다. 이것은 포기하고는 다르다. 할 수 없으니까 그냥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탐욕을 절제하는 높은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탐욕에 대한 집착을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다. 담배를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쉽게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진리라는 것은 높고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단순하고 쉬운 것이기도 하다. 이 탐욕을 벗어날 수 있다면 비로소 한 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밖에 나와 그 넓은 새로운 세상을 살며 삶의 자유로움과 생의 기쁨과 존재의 고마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삼독의 하나인 탐貪을 벗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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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三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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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9편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 수현은 3학년에 진학하지 않았다. 수현은 나경이 떠나고 난 이후에 학교에 관심이 멀어졌다. 3학년에 진학하지 않고 군대에 가기로 했다. 논산 훈련소로 떠나는 수현을 마지막까지 바래다준 것은 지숙이었다.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지숙은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너 선배가 입대하는 것이 그렇게 좋냐?” 뭐.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선배 좋아하는 후배들도 많고 이제 만나지도 못하니까” “저는 그게 더 좋은데요.” “선배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제가 매주 편지 보낼게요.” “전 왠지 선배에게 편지 쓸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매일매일 제 편지 기다리면서 힘내세요.” 수현은 지숙의 그런 행동이 밉지 않았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 것이 좋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더 이상 학교에 있으면 수현은 더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현이 생각한 학생운동과 직접 경험해본 학생운동과는 차이가 컸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수현은 통일운동만 하는 총학생회나 학생회가 맘에 들지 않았다. 통일이라니….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면 되고 남한은 근본 문제는 통일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노동문제나 농민 문제에 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논산 훈련소 신병교육대에 들어간 수현은 4주 훈련을 마치고 부산 69사단에 배치되었다. 나경과 함께 걷다가 본 그 부대였다. 2년 6개월의 군 생활은 수현에게 별다른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격리되어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맘이 편해졌다. 복종의 즐거움인가? 수현의 고참이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누구누구의 지시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매번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군대 생활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주는 묘한 해방감에 익숙해졌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무력감과 함께 선택의 고민이 사라지는 해방감도 준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쯤 도착하는 지숙의 편지도 수현의 군 생활을 위로해 줬다. 편지는 별 내용이 없었다. 현재의 학교 상황 지숙의 생활 그리고 안부,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지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수현에겐 편지가 오는 날에 대한 기대감과 제대할 날이 가까워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지숙은 매주 수현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을 즐겼다. 편지지를 고르는 일, 그리고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가는 일이 지숙에게는 수현과 자신을 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행위의 반복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지숙은 생각했다. 수현은 경계근무를 서는 날이면 바다를 보며 지숙과 나경에 대해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도쿄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지숙은 또 어찌 보내는 것일까? 첫 휴가 때 만난 지숙은 예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강진의 문학 써클에 여전히 가입되어 있었지만 깊이 활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진은 여전히 집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강진은 벌써 3학년이 되었고 학내에서 신망 있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수현은 여전히 세상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알 수 없었다. 그날 부대에 복귀하기 전날 밤 지숙과 수현은 함께 술을 마셨고 함께 여관에 갔다. 수현이 지숙의 몸을 만졌을 때 지숙은 수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선배 나 사랑하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새벽에 여관을 나와 콩나물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수현은 지숙과의 관계 이후에 지숙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경과 함께 밤을 지새운 날 수현은 나경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련한 마음만큼은 보내지 못했다. 그날 밤 나경과 관계했다면 수현은 나경을 사랑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경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그날 밤 수현과 자신이 더 이상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수현은 사랑했지만, 아버지가 도쿄에 가라고 할 때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더는 수현과 자신이 더 깊은 관계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수현이 군대 있는 동안 지숙은 자주 면회를 왔다.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여관에 가서 매번 두세 번 관계했다. 매일 같은 패턴이었고 지숙은 수현이 여전히 좋았다. 수현도 지숙이 좋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수현이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강진은 군대에 입대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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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9편 선배 머리 깎으니까 진짜 군인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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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루귀 숲
- 「섬진강 편지」 -청노루귀 숲 5cm 저 여린 청노루귀 꽃밭 다녀가는 이 숲에서 유일하게 신발 신은 이기적인 동물 내 발자국이 너무 커서 미안하다 봄 숲에서는 23g 아기참새 종종종 발걸음처럼 내가 가벼워져서 가벼웠으면,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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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루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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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 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오늘 3월 25일,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며 1144일째 천막에서 농성하는 친구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려고 전주에 다녀왔어요. 전날 정환, 아림, 삵 함께 모여 만든 '아주 멋진' 구호 팻말을 들고 전북지방환경청으로 갔답니다. (우리가 만든 팻말을 들고. 사진=지리산사람들.) 새만금신공항 철회촉구 천막농성은 2022년 2월 6일부터 주말을 뺀 날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종시에서 계속돼 왔어요. 곳곳에서 300명이 넘는 많은 분이 천막농성장 지킴이로 함께해 왔다고 해요. 지난 2월 25일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환경청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하면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세종시 국토교통부·환경부 청사 앞에서 해 오던 천막농성장을 전북환경청 앞으로 옮겨 오게 되었답니다. 전북환경청이 평가서에 부동의한다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은 철회됩니다!!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 반경 13km와 그 둘레엔 저어새, 황새, 흰발농게, 금개구리, 삵 등 법정보호종이 무려 64종이나 살고 있다고 해요. 다큐 <수라>를 보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수라갯벌은 수많은 야생동식물이 살아가는 새만금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이며 우리 지구의 소중한 일부입니다. 그뿐인가요? 계절마다 다양한 새가 찾아오는 철새들의 집이고, 동아시아-대양주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입니다. 특히 우리 지구에 5천~6천 명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의 90% 이상이 한반도에서 번식하는데, 수라갯벌엔 그들의 번식지가 세 곳이나 있고, 그 가운데 두 곳은 각각 8km, 10km 안에 있다고 합니다. 수라갯벌이 공항으로 사라진다면 이 소중한 생명들도 함께 사라질 거예요. 수라갯벌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질 거예요. 불타는 산과 들을 보세요. 사계절이 사라지는 한반도를 보세요. 먹을거리가 줄어들고 가뭄과 홍수가 잦아진 둘레를 보세요. 수라갯벌을 지키는 건 우리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아요. 오늘 우리 지리산권 시민들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까닭을 아시겠지요? 지리산과 더불어 수라갯벌이 하나라는 걸 이야기하고, 뭇 생명과 함께하는 연대의 힘으로 생태학살을 막기 위해 부동의 촉구 기자회견에 함께했습니다. 지난 2월 12일 전북지방환경청이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를 재검토(사실상 부동의) 결정한 데 이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역시 반드시 부동의 결정하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일은, 참, 힘이 셉니다. 우리는 이런 시위가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될까' 하는 물음으로 허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태껏 많은 생태학살을 막는 일엔 꼭 '연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힘을 보태 주세요. 목소리를 내 주세요. 왜 여전히 공항이 더 필요하냐고 물어 주세요. 놀고 싶다고요? 같이 놀아야지요. 자기만 비행기 타고 슝슝 놀러 다니며 편하게 지구를 망가뜨리는 게 어떻게 떳떳한가요? 왜 신공항을 짓겠다는 이들이 고개를 들고 다니나요? 이상해요. 그러니 다들 막아 주세요. 신공항도, 골프장도, 케이블카도, 무슨 무슨 막개발 모두 싫다고 해 주세요. 개발이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 알맞게 해야지요. 왜 갯벌을 없애고, 숲을 없애고, 동식물을 다 죽여서 짓겠다는 걸까요? 이상하잖아요. 그건 정말 끔찍하잖아요. 한 생명으로서 할 짓이 아니잖아요. 놀고 싶으면 함께 놀아야죠. 죽이면서 놀지는 말자고요. 수라갯벌을 그대로, 지리산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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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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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도시에서 살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공원녹지가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그러지 못한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걷기 편한 길이 많고 공원이나 녹지가 가까운 지역에 살면 신체 활동이 자연스럽게 늘고, 정신 건강도 좋아져 결국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들의 특징은 생태 친화적인 도시의 특징과 잘 들어맞습니다.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한 삶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대표적인 도시로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프라이부르크, 호주 멜버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코펜하겐은 시민의 62%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자전거 전용도로가 400km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손꼽힙니다. 자전거를 정기적으로 타는 사람들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30% 감소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코펜하겐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높고, 비만율은 10% 이하로 OECD 평균보다 매우 낮으며 천식·호흡기 질환 비율이 낮게 보고되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의 90%가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 도로로 이어져 있기로 유명한데요, 특히 남쪽의 바우젠 지구는 자동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70%가 넘는 주민이 자가용 없이 생활하며 자전거를 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구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해요. 또 40% 이상이 녹지 공간으로 공원과 커뮤니티 정원이 많아 주민들 사이 교류가 활발합니다. 프라이부르크 시민의 기대수명이 높고 당뇨병·고혈압 발병률이 독일 평균보다 낮은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멜버른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약 200만 그루 이상 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도시 나무 심기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요, 가로수를 좀 많이 심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녹지 공간을 넓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2040년까지 멜버른 곳곳에 나무 480만 그루를 심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기후변화로 인한 불볕더위와 도시 열섬 효과를 낮추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가로수를 더 많이 심어 그늘을 만들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방치된 공터를 다양한 나무와 풀이 우거진 녹지 공간으로 바꿔 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심 평균 기온이 감소하고 불볕더위 피해가 줄었으며 시민들의 건강 지표가 나아졌다고 합니다. 코펜하겐, 프라이부르크, 멜버른의 사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해마다 심해지는 불볕더위와 홍수, 가뭄에 대비하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화석 연료가 필요 없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많은 도시로 변해 가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한 도시는 인간의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길고양이와 풀, 나무, 새, 곤충 모두의 삶에도 좋으며 기후재난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길가 나무 그늘도 물웅덩이도 공원이나 녹지도 없는 도시의 길고양이를 상상해 보세요. 무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에어컨을 돌리는 동안 길고양이는 어디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요? 작은 생명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에서는 인간도 건강할 수 있겠지요.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1.)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2.) (구례읍 어느 작은 골목에 생긴 주차장 공사장.) 그럼 우리 구례는 어떤가요? 지리산과 섬진강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이나 생물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거의 없고 심지어 보행로도 잘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시 안 생활용 자전거도로는 보기 힘들고 오히려 야생동물의 서식지 근처에 관광용 자전거도로를 놓아 생태계 파괴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우리 구례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이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인가요?기후위기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나무가 있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기온이 최대 4°C 낮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볕더위에 대응하려면 나무 그늘 쉼터가 늘어야 하는데, 우리 구례는 주차장만 자꾸 늘고 있습니다. 보행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이 늘었습니다. 침수를 예방할 수 있는 흙길이나 녹지 공간 또한 부족해 보입니다. 자꾸 아스팔트로 덮고, 나무를 베고, 주차장을 늘리는 정책은 우리 구례군민의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도 좋지 않으며,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갈 우리 미래에도 좋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전 세계 여러 도시가 주차장을 없애거나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주민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부추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며, 다가올 기후재난을 예방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이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을 늘릴 게 아니라 걷기 좋은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지켜지는 도시, 불볕더위나 홍수에 대비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주차장 없는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될 수 있으면 차를 두고 다니려는 마음도 모여야겠지요.내 건강도 지키고 다른 이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주차장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내 건강을 길고양이의 건강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도시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3월 경칩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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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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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지 가격은 얼마나 할까?
- 우리 나라 농지 가격은 지역적 차이가 아주 크다. 농지은행에 따르면 국내 토지 평균 거래 가격은 18만8천원 정도다. 중위 가격은 12만원 정도이며, 대부분 지역이 10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라고 한다. 한국의 전제 농경지는 약 150만ha 돈으로 환산하면 500조에서 800조 정도로 예상된다. 그러면 가장 가깝고 경제 수준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농지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의 경우 순 농업 지역의 경우 평당 32,000원이고 가장 비싼 지역인 6만 원 정도다. 생각보다 아주 저렴하다. 비슷한 소득 수준의 한국의 농지 가격이 3배에서 6배 정도 비싸다. 일본은 버블 시대인 90년대 초반 가격에 비해 50% 정도 하락했다. 도시 주변 가격은 8만 원에서 17만 원 정도라고 하니 아주 저렴하다. 쉽게 말하면 부산이나 서울 대전 근교의 농지 가격이 17만 원 정도이고 구례 같은 순 농업지역은 비싸야 3- 6만 원 정도라는 것이다. 더구나 도시 근교의 농지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30년 전에 비해 2~3배 이상 하락했다. 일본의 농지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쌀가격의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두 번째는 농지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없고, 농업 후계자가 없으며,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은 쌀이 없어서 난리다. 미국의 농지가격? 미국의 농지 가격은 뉴욕 근처의 로드 아이랜드 농지 가격은 23,700원으로 가장 비싸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농업지역인 캘리포니아가 14,800원 미국 중부는 1,000원 2천 원 정도이며 평균은 1,500원 정도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의 농지 가격은 평당 12,000원 정도다. 임대료는 얼마나 될까? 유럽 평균 임대료는 1ha(약 3천 평) 30만 원 정도이며 한국은 평단 천원에서 이천 원 정도이고 평균 1ha 300만 원 정도로 유럽 평균의 10배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토지 평균 가격은 평당 3만 8천 원 정도이고 폴란드는 4,300원이며 그 외의 농업지역은 2천 원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은 대만을 제외하고 전 지구상에서 농지 가격이 가장 비싼 나라다. 대만은 경자유전의 법을 폐지했다. 그 후로 토지에 집도 짓고 건물도 짓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기타 나라의 농지와 다르다. 이런 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니 가격이 비싼 것도 당연할 것이다. 우리나라 농지도 모두가 명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싼 임대료와 비싼 농지 가격을 지불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 한국의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있다. 더구나 소작이 불가능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만 임대차와 위탁경영이 허용된다. 1950년대에 우리나라 소작인 60~70%였다. 그 후에 농지를 배분한 기준이 대략 3천 평 정도이고 우리나라 평균 토지 소유도 이 정도다. 농업의 세대교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농지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제 2천평에 농지를 구입 하려면 평균 3~4억 정도다. 이 돈을 투자해서 빌린 돈을 상환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농지 집적화와 농업 규모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도 아주 크다. 농지 집적화는 말 그대로 농지가 분산되지 않고 한곳에 집중해 있는 것이다. 2천평을 구매했는데 500평씩 4곳에 5분 거리에 있다고 하면 농지의 효율은 극히 낮아질 것이다. 규모화 역시 힘들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토지 분배를 시행한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며 대만은 중국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넘어온 국민당이 민심을 위해 토지분배를 실시했다. 땅이 없던 소작농이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토지생산성이 늘고 잉여농산물이 생기고, 자본이 축적 되면서 이 자본으로 자녀 교육에 투자하거나 작은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대만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많은 나라들 필리핀 베트남, 인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토지 분배를 시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필리핀이 가난한 나라가 된 가장 큰 이유다. 해방 이후 한국의 농지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1980년대에 이미 3-4만 원 정도로 기억된다. 현재는 15만 원 정도로 상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 농민은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시골 어디 가나 젊은 청년 농부가 60대 중반이다. 그 땅을 구입할 사람도 없고 이어받을 자식도 없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농지 가격이 비싼 이유는 규모와 집적화를 시도하거나 아직은 젊은 전혀 젊지 않은 농부들이 땅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벼농사는 기계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명의 농부가 3-5만 평까지 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구상 가장 비싼 임대료와 농지 가격 이것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최근 부동산에 따르면 한국의 농지 역시 판매가 둔화하고 있고 매매가 안 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시골에 살고 있고 가끔 주변의 땅이 나오면 구매를 해볼까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1000평에 1억 5천 정도 가는 땅을 구입하겠는가? 아미년 1년에 임대료 300만원 주고 그 땅을 빌릴 수 있겠는가? 1000평에 1억 5천을 주고 땅을 구매하기 보다는 은행에 이자를 얻는 것이 더 편안한 일이다. 땅 가격이 오를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생각으로 오를 만큼 올랐고 더 오른다고 해도 그 땅을 구매 해줄 농부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의 농업이 망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임대료와 높은 농지 가격에 있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희망도 없다고 본다. 어떤 청년 농부는 2천평에 3-4억을 주고 구매한 땅에서 그 빚을 상환하고 농사짓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농지 가격이 일본처럼 6만원 정도이거나 유럽의 2-3만원 정도라도 사실 농사를 짓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볼 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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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 「섬진강 편지」 - 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지리산 산불 소식 때문일까, 이맘때면 자리다툼까지 하던 사진작가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 꽃구경 나온 이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 화엄사 홍매 그늘이 훤하네. 언제나 꽃이 볼만하겠냐 물어오지만 요사이는 두서없는 날씨 탓에 꽃 피는 때를 예측하기가 어렵구만. 예년 같으면 진즉 피었을 3월 19일까지 한 송이도 피질 않아 애태우더니 3월 21일부터 20도를 넘는 날씨가 5일 계속되자 사흘 만에 꽃들이 한꺼번에 확 피었다네. 지난해에는 3월 8일에 피기 시작해서 만개까지 8일이 걸렸는데 올해는 단 3일 만에 확 피어버린 것이네. 그렇게 일시에 피다 보니 꽃빛도 꽃송이들도 탈모가 시작된 내 머리처럼 듬성듬성 휑한 것 같네. 화엄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의 꽃들도 미친 듯이 피어나네. 하룻밤 사이에 윗집 모란이 피고 옆집 살구가 피고 아랫집 앵두가 피니 벌들이 과로사 하겠네. 두서없는 횡설수설 문장으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편지 같은 날들. 여드레째 지리산불은 오늘도 다 꺼지지 않고 지리산을 태우고 있네. 문명의 이기심이 불러온 이상기후 때문에 모든 생명들이 곤혹스러운 날들이네. 그나마 산불은 눈에 보이는 만큼 물로라도 끌 수 있다지만 보이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 마음속 이는 천불은 어찌 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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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 십리 벚꽃길
- 지리산 화개 십리 벚꽃길 20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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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네의 사사롭지 않은 사토리 4-1. 청정 차황에 골프장이 웬 말이냐
- 안녕하세요. 지리산 산청 소식을 전하는 포네입니다, 요즘 산청에 연일 비보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리산케이블카의 꾸준한 추진 소식에 이어, 차황면 골프장 추진, 양수발전소 유치 주민설명회까지. 어제(3월 21일)는 지리산 자락에 대형산불까지 일어났어요. 가장 핫한 소식인 산불은 제쳐 두고, 20일에 골프장 예정지인 차황면 우사리 산 40번지 일원에 가서 야생동물(포유류) 조사를 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정지 맞은편 철수마을 주민들이 환경단체의 자문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지리산케이블카반대산청주민대책위원회 최세현 대표, 민영권 집행위원장, 진주환경운동연합 정은아 사무국장과 함께 3월 11일 철수마을을 방문하여 현재 상황을 들었습니다. 차황면은 친환경 메뚜기쌀 재배단지인데,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지하수 고갈과 농약 피해, 산림훼손이 우려됩니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떠올랐습니다. ◦골프장 예상 규모는 27홀로, 1일 1,800톤의 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경사도가 급하기 때문에 지하수 함양률이 낮아 개발가능량이 829톤/1일 (남산, 정수산, 효염봉을 이은 약 10 제곱킬로미터의 집수구역 기준. 철수마을 포함)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가 이미 1일 200톤 이상입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서식지. 주민들에 의하면, 수달, 담비, 삵, 수리부엉이가 흔히 목격된다고 합니다. ◦입목축적 기준 초과. 산지관리법은 전용하려는 헥타르당 입목축적이 산림 기본 통계상의 관할 시군구의 헥타르당 입목축적 이하일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사리 산 40번지 일원은 송림이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송림개발(주)가 예정지를 몇 년에 걸쳐 사들여 작년 7월 ‘군관리계획(관광휴양형 지구단위계획) 입안제안서’를 제출했고, 군에서는 11월 군관리계획 입안 제안에 대하여 반영을 결정했습니다. 2월 11일에 주민설명회도 있었는데, 주민들 대부분이 화가 나서 중간에 나와 버렸다고 합니다. 군에서는 절차상 할 일은 하였다는 식이지요. 이런저런 상황을 듣고, 용역업체에서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하기 전에 미리 반대 측 주민 쪽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생태조사를 진행하여 이의제기를 위한 든든한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일에 야생동물 추적 전문가인 하정옥 님과 정정환 님이 오셔서 마을 주민 세 분과 동행해 예정지를 조사했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직접 목격할 필요는 없고, 흔적(배설물)을 찾으면 된다고 합니다. 목표로 하는 생물은 법정보호종 삵, 담비, 수달, 하늘다람쥐. 먼저 예정지 아래 시내에서 수달의 흔적을 찾습니다. 주로 교각 아래의 돌 위에서 똥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안전지대에서 똥을 누는 수달. 예정지 입구에 오동나무가 있었습니다. 목질이 부드러워서 딱따구리가 구멍을 잘 팝니다. 까막딱따구리가 살고 있을까요? 오늘의 목표는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입니다. 딱따구리 둥지에 하늘다람쥐가 잘 산다고 합니다. 나무 아래에 쥐똥이 떨어져 있으면 하늘다람쥐 똥이라고 합니다. 족집게 도사일까요? 쥐똥이 발견되었습니다. 담비의 똥을 찾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중간에 고라니, 노루, 멧돼지, 오소리, 족제비, 다람쥐, 청설모의 흔적도 보았습니다. 노루가 비빈 흔적이 있는 나무들과 쉬어간 자리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담비의 똥은 어디에? 담비는 능선을 따라서 잘 이동하며, 능선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위에 흔적을 남겨서 영역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돌은 별로 없어서 나무 위를 열심히 보고 다녔습니다. 심봤다! 드디어 찾은 담비 똥. 고욤의 씨앗으로 족제비와 구별됩니다. 이제 삵의 흔적만 찾으면 됩니다. 근처 주민의 개가 삵을 잡아 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삵은 드러난 산길에 똥을 잘 눈다고 합니다. 오래된 임도를 찾아 걸었으나 하얗게 변색한 개똥만. 꼭대기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반대편에 대규모로 벌목한 자리가 있더군요. 산꼭대기에 서 있는데, 주민들이 도에 제기한 민원이 군으로 내려와 주민대책위 대표에게 답신이 전달되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현재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산을 내려오며 임도에서 삵의 똥 발견.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그 임도에 많이 있더군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보람찬 산행이었습니다. 동행한 주민 한 분은 오부면 파출소에서 오래 근무하시다 퇴직한 경찰이었습니다. 정찰대원으로 근무하며 산청 곳곳, 야산 곳곳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보람찬 산행은 여태까지 없었다고. 저도 톰 브라운의 <추적자Tracker>를 어렸을 때 읽었는데, 저자인 톰 브라운이나 인디언 할아버지, 추적자를 만나서 야생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로망이었죠. 꿈은 이루어지나 봅니다. 30년 뒤 야생이 멸종위기가 될 때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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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네의 사사롭지 않은 사토리 4-1. 청정 차황에 골프장이 웬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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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함께하는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
- 구례에서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을 시작했어요 "비폭력대화 워크북을 기반으로 이론보다는 체험중심의 연습모임입니다. 원래 14회를 만나는 것이 정석이지만 긴 호흡으로 만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상반기에 기초반(5회기)을 몇 차례 운영하고, 나중에 심화반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욕구, 나의 이름이 되다 모임 이끔이 꼬리의 알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첫 모임을 나갔습니다. 내가 꼬리를 선생님으로 대하니, 그는 자기도 이 모임에서 함께 배워 나가므로 자기를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좋은 생각이라고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는 모임에서 얻은 새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지요. 첫 모임에 함께한 모두가 새 이름을 얻었어요. 이끔이의 안내에 따라 각자 '비폭력대화 연습'을 통해 얻고 싶은 욕구가 무엇인지 욕구 카드를 골랐는데, 재미있게도 내 욕구가 나의 새 이름이 되었지요. 그에 따라 꼬리는 '기여'가 되었고요, 저는 '이해'가 되었답니다. 당신의 욕구를 잘 듣고 말해 볼게요 첫 모임이라서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몇 번 마주친 사람들도 있고, 꽤 자주 만난 사이도 있었어요. 서로 만난 적이 없거나 자주 만나지 않던 사이인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각자 자기 욕구카드를 고른 까닭을 짝에게 설명하였어요. 5분 동안 내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저는 생각보다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서로 5분씩 10분이 지난 뒤 우리는 각자 자기가 짝에게서 들은 말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 짝꿍의 욕구에 대해 소개하는 나의 말을 가만가만 듣던 내 짝꿍은 다른 사람이 자기 욕구를 말해 주어서 충만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 역시도 가슴이 벅차더군요. '다른 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의 욕구를 말해 주었더니 상대방이 참 좋아하는구나, 가족과도 그런 대화를 해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책에만 갇히지 않는 대화 모임에 오기 전에 주제 도서인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 책을 읽고 왔지만, 역시 대화를 실전에서 써먹기는 참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치만 이렇게 만나서 연습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서로 잘 들어 주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비폭력적이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연습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스스로 평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첫 모임에서 이야기한 모두의 각자 욕구가 잘 풀리면 좋겠어요. 우리가 비폭력대화 모임을 통해 나눈 서로의 얘기는 쉿- 비밀이에요. 그러니 얘기는 여기까지. 여기저기 고을마다 비폭력대화가 오가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치겠습니다. ((* 참고로 우리가 모인 장소는 구례 북카페 '시파푸니'로 쓰이던 곳인데, 3월부터 회원제 공동사무실 겸 셀프카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이름은 '둥둥'(가칭)으로 부르고 있지요. 혹시 구례에서 회원제 공동사무실을 찾고 있는 분이 있다면, 둥둥을 참고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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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6] 단작과 윤작&혼작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6] 단작과 윤작&혼작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흙을 죽이는 단작 농경의 시작은 아마도 곡식 농사였을 거라 추측합니다. 곡식 농사로 비로서 잉여식량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상추 배추 같은 채소 농사로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보기에는 적절치 않잖아요? 과일도 그렇고 가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령 채소와 과일은 채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고기도 수렵으로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이런 먹을거리는 잉여식량이 생기기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럼 왜 곡식농사가 농경의 시작이라는 걸까요? 처음 야생 곡식을 발견한 사람은 저는 남자일 거라 추측합니다. 왜 그럴까요? 곡식류는 벼과식물이 많고 벼과는 자가수분 식물들이어서 군락하는 특성이 있어요. 군락하려면 아무래도 들녘이 유리합니다. 자가수분 식물은 남의 꽃가루가 아닌 자기 꽃가루를 받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 같은 벌레에 의존해 수분하지 않고 바람 불어 꽃가루가 떨어지면 밑에 있는 암꽃이 받아 수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충매화가 아닌 풍매화라고 하지요. 벌이나 나비 같은 동물에 의해 수정하면 씨가 여기저기 골고루 퍼질텐데 바람에 의해 번식하다보니 멀리 퍼지질 못해 군락하게 된 걸겁니다. 야생 곡식이 군락하기 좋은 들녘은 아무래도 강가에 가깝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숲과 가까운 언덕 움막 주거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강가 들녘으로 사냥이나 천렵 나갔을 때 발견한 게 야생곡식이었을 거라는 거지요. 게다가 채소는 매일매일 돌보며 수확해야 하기에 주거지 근처에서 재배했을 것이고 그래서 여성에게 적합했을 겁니다. 반면 곡식은 한꺼번에 특정 시점에 수확해야 하기에 매일 가보지 않아도 되었을 거니 수렵 나갈 때 돌보거나 날 잡아 한꺼번에 수확하러 가도 되니 남자들에게 적합했을 거라 보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곡식에 의한 농경 혁명으로 잉여식량이 생기기 시작하자 여러 사회적 변화들이 동반되었습니다.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 중심으로 권력이 만들어졌겠지요. 거기에서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인 얘길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 곡식 농사는 자연스럽게 단작 농사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바로 군락 특성 때문일겁니다. 또 들녘을 좋아하는 특성도 영향을 주었겠지요. 그럼 단작을 얘기하려는 거는 왜일까요? 단작이 바로 토양을 망가뜨리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작물은 한 땅에서 한 종류만 심게 되면 그 종류만 좋아하는 생물들이 모여듭니다. 미생물도 벌레도 기타 생명들도 단순해져요. 뿐입니까? 한 종류만 심으면 땅 속으로 뻗어가는 뿌리도 단순해지지요. 길이도 비슷할 거고요, 뿌리를 통해 내뱉는 작물의 대사물질도 단순해지고, 작물의 생산활동으로 뿌리에 축적되는 양분도 단순해집니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토양은 점차 토양의 남은 유기물을 고갈시켜 갑니다. 유기물이 없어진 토양은 바람과 폭우 등으로 쉽게 침식, 유실됩니다. 그러면 토양의 보수력도 말라가고 결국 사막화의 길로 가는 거지요. 물론 단작을 하면서 화학비료도 주고 퇴비도 주면서 임시방편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임시방편일 뿐 아닐까요? 기후위기 시대에 이 문제는 머지않아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큽니다. 단작은 연작, 광작으로 이어진다 했지요. 연작, 곧 같은 종류의 작물을 계속 이어서 심게 되니 위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지요. 게다가 광작, 곧 같은 류의 작물을 드넓은 땅에서 재배하게 되면 한 지역이 사막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한번은 스페인의 올리브 최대 단지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가보았는데 온 세상이 올리브만으로 덮여있는 곳을 몇 시간이나 달리는 겁니다. 경관이 너무 지루해 잠밖에 잘 일이 없는데 저는 자못 긴장하고 최대한 눈과 카메라에 경관을 담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곰곰 보니 두 가지가 안보이대요. 바로 새와 사람이 보이질 않는 거에요. 아~ 저건 올리브가 만든 사막이구나 했지요. 사람이 만든 거겠지만요. 이런 삶은 결국 지구를 사막의 별로 만들고 말 거라는 경고를 준 영화가 있지요. 바로 인터스텔라라는 에스에프 영화입니다. 끝없는 옥수수 밭 넘어로 엄청나게 밀려오는 흙먼지 폭풍이 결국 지구를 살 수 없는 별로 만든다는 암시를 준 영화지요. 이 거대한 흙먼지 폭풍은 193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미국 서부의 얘기에요. 서부에서 발생한 흙먼지 폭풍이 뉴욕이 있는 동부까지 날아갔다 하지요.* 근데 단작은 흙만 망가뜨린 건 아니에요. 단작은 나를 위해 농사짓는 게 아닌 남을 위해 농사짓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남에게 팔기 위해 농사짓기 시작했다는 거죠. 잉여식량이 부로 축적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빈부격차와 계급, 계층 갈등,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아마도 단작은 만악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게다가 단작은 붙박이 정주 사회를 고착시켰을 겁니다. 단작을 유지하려면 안정된 노동력을 유지해야 했을테니요. 사실 사람도 철새처럼 더울 때는 높은 곳이나 북쪽으로, 추울 때는 낮은 곳이나 남쪽으로 이동하며 사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기후 변화가 오면 자기들 체질에 맞는 기후 환경으로 옮겨 가며 살면 기후 위기도 별 문제는 아닐텐데요. 먹을거리도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먹게 되면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도 큰 문제는 아닐 것 같고요. 땅도 망가뜨리지 않으니 사실 환경파괴도 없을 겁니다. 그럼 왜 단작은 땅을 망가뜨릴까요? 앞의 글을 읽으신 분들은 벌써 아실 겁니다. 단작하는 인삼은 땅을 망가뜨리지만 야생에서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산삼은 땅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한 거 기억나시죠? 그렇다고 산삼처럼 키울 수 없으니 우리는 인삼과 산삼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한 겁니다. 저는 그게 전통적으로 이어온 윤작, 혼작 방식이라고 봅니다. 또 서두가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흙을 살리는 윤작, 혼작 드디어 본론입니다. 그럼 어떻게 윤작, 혼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윤작, 혼작하는 농부는 소농이라는 점을 짚고자 합니다. 대농이 윤작, 혼작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농은 늘 단작에 유혹을 받지요.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 윤작, 혼작을 나름의 방법으로 실천하는 대농도 있긴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그런 분들을 소개할까 합니다만...... 윤작, 혼작하는 방식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다른 성격의 작물을 이어심거나 섞어심어 그를 통해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일입니다. 그 중 윤작은 한 작물을 재배해 수확하고 나면 다른 작물을 심어 재배하는 걸 말합니다. 벼 수확하고 나서 보리를 심는 이모작 방식이 대표적이죠. 벼와 보리는 같은 벼과 식물이라 비슷할 수 있지만 벼는 여름을 나고 보리는 겨울을 나는 점에서 다르죠. 생육 시기가 다르니 서로 경쟁할 일이 없어요. 또한 보리는 한 겨울 토양을 한파와 건조로부터 보호해줍니다. 당연히 겨울의 매서운 북풍도 막아주지요. 저는 이를 작물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작물을 심어 토양을 보호하는 거죠. 또 대표적인 윤작으로 마늘과 들깨를 이모작 하는 재배입니다. 마늘엔 고자리파리라는 해충이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놈이 들깨 향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들깨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으면 고자리파리를 못 오게 할 수 있는 거지요. 윤작 중에 재밌는 이름으로 그루갈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자로는 후작(後作)이라고 합니다. 한자를 보면 뒤에 심는다는 뜻을 쉽게 알 수 있죠. 말하자면 앞의 작물(전작前作)을 수확하고 나서 심는다는 것입니다. 근데 순 우리말인 그루갈이가 이해하기 좀 난해하죠. 말 자체를 보면 그루는 식물을 베고 남은 밑동입니다. 갈이는 그 밑동을 갈아 엎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앞 작물의 수확 후 남은 밑동을 갈아엎어 후작물을 심는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혼작은 토양을 망가뜨리는 작물을 토양을 보호해주는 작물과 함께 심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옥수수나 목화처럼 거름을 많이 먹는 작물은 토양에 거름을 만들어주는 콩과 함께 심는 겁니다. 옥수수는 식량이 아니고 한여름 장마철 한 때 먹는 군것질 먹거리라 많이 심지 않으니 콩 밭 둘레로 심었어요. 목화는 옷이나 이불을 해 입어야 하는 필수 작물이어서 군것질 용 옥수수처럼 조금 심을 수 없었으니 콩 한 줄 심으면 목화 한 줄 심는 식으로 좀 더 많이 재배했지요. 대표적인 혼작 방식으로 인디언 세 자매 농법이 있어요. 옥수수 콩 호박을 혼작하는 건데요, 콩은 질소를 고정해 비료를 많이 먹는 옥수수와 호박에 도움을 주고, 호박은 넓은 잎으로 그늘을 드리워 풀 발생을 억제하고, 옥수수는 지주 역할을 합니다. 그 말고도 시간 차를 이용한 의미도 있지요. 짧고 빨리 자라는 옥수수를 먼저 심어 여름 중에 수확을 하고, 두번째 심은 콩은 옥수수와 함께 집중적으로 자란 뒤 옥수수 수확하고 난 후엔 꽃 피워 콩 코투리를 맺고 영글어 갑니다. 호박은 자칫하면 콩을 덮어 그늘을 드리울 수 있기 때문에 콩을 먼저 심고 콩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 호박을 심습니다. 심는 위치도 콩 바로 옆이 아닌 옥수수 옆에다 심어 옥수수 대를 타고 올라가게 하여 콩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혼작 방식엔 시간 차를 이용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세 자매 농법엔 우리식도 있습니다. 고추를 주 작물로 심고 부작물로 들깨와 수수를 심는 거에요. 고추를 줄 지어 심은 후 들깨를 2미터 간격으로 드물게 심고 수수는 3미터 간격으로 더 드물게 심는 겁니다. 들깨의 향은 고추 열매를 구멍 뚫고 들어가 속을 파먹는 담배나방 애벌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수수는 키가 크지만 잎은 그리 넓지 않아 고추에 그늘을 드리우진 않으면서 뿌리의 길이도 다르고 좋아하는 양분도 달라 고추와 경쟁하지 않아요. 오히려 서로 궁합이 맞아 좋은 작용을 한다네요. 그런 식물간의 작용을 아레로파시(Allelopathy), 곧 타감(他感) 작용이라 합니다. 물론 경쟁적인 타감작용도 있습니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발사하여 자기를 방어하기도 하고 서로 협력하기도 합니다. 요즘엔 토마토를 바질과 함께 심는 게 많더라구요. 혼작도 유행이 있는가 봅니다. 토마토는 대파와도 좋습니다. 그래서 혼작을 하려면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는 작물 관계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윤작, 혼작 말고 재밌는 작부체계가 있는데 바로 간작, 곧 사이짓기입니다. 사이짓기로 재밌는 사례로는 봉동생강 재배법이 있습니다. 전북 완주의 봉동은 최초의 생강 시배지로 유명하죠. 재밌는 것은 생강을 보리밭 사이에다 심는다는 겁니다. 보리를 심을 때 생강 심을 자리를 대비해 줄 간격을 미리 좀 넓게 심습니다. 그리고 보리를 수확하기 한 달 전쯤 보리 줄 사이에 생강을 심습니다. 보리를 이삭만 수확하고 남은 보릿대를 생강에 덮어줍니다. 생강은 습기를 잘 유지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심으면 때가 늦고, 보릿대를 덮어주기도 힘들죠. 간작은 이런 식으로 시간 차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벼와 보리를 이모작하는데 남부지방은 벼 수확 후 보리 심는 게 자연스러운데 중부지방은 좀 추워 벼 수확 후 심으면 늦을 수가 있어요. 그럴 때 벼 수확 전 사이에다 보리를 심는 거지요. 다음 글에선 다년생 나물과 유실수 및 특용수와 혼작하는 법과 채집에 대한 얘길 들려드리겠습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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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6] 단작과 윤작&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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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왕시루봉 봄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 蟾津 5景 - 왕시루봉의 봄 -왕시루봉 봄, 2016. 140*200, 장지에 수묵채색 왕시루(상) 섬진강은 혼자가 아니다. 높고 낮은 산들과 더불어 흐르고 있다. 그 중 지리산이 품고 있는 남원, 구례, 하동을 싸안고 흐른다.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웅대함을 지닌 영산(靈山), 지리산! 그런 만큼 1967년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되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킬로미터가 넘는 주능선에 반야봉,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20여개가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산속의 산’을 안고 있고 15개의 지능선과 계곡들이 있는 그야말로 산괴(山塊)이다. 어느 산악인의 고백처럼 지리산은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왕시루봉이 있다. 정상부분이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고 커다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왕시루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과의 인연은 토지면 파도리 부터 이다. 1990년대 초, 왕시루봉 별장의 산사람 함태식 선생을 찾아서 문학인들과 함께한 산행이 시작이다. 그날 낯선 경험을 했다. 화장실에서 용변 후에 재를 뿌린다. 그러면 냄새가 제거 된다고 하던데 그런가보다. 습기 찬 여름인데도 개운하다. 선생은 주변 환경으로 안내 한다. 그 이후 나는 밤낮 구분 없이 몇 번을 오르내렸던가! 두 세 시경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탄다. 택시로 갈아타고 토지면 왕시루봉 입구까지 간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 쏟아지는 별빛과 헤드랜턴에 의존하고 더듬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이곳에는 반달곰, 멧돼지가 서식하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서로 피해의식이 있다. 배낭에 놋쇠로 만든 종을 매달아 소리를 내고 가끔 헛기침으로 경계하면서 오른다. 섬진강을 가장 높은 위치에서 멀고 길게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여러번 찾은 곳이다. 어둠이 걷히면서 청아한 새벽 공기에 은빛의 물길이 그려진다. 지리산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깊숙함 속에 환희가 있다. 겹겹이 쌓여진 산과 하나 되어 유유자적한 강물까지도 의연함을 자아내는 신새벽을 맞이한다. -송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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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왕시루봉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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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붕어섬의 봄
- 蟾津 1景 - 붕어섬의 봄 붕어섬 (상) 글쎄, 듣고 보니 금붕어 모양새다. 꼬리를 살짝 틀어 재치고 힘 있게 돌진하는 기세가 있어 보인다. 이 붕어섬이 있는 본래의 지명은 외앗날이다. 그런데 유유히 흐르던 섬진강이 아픈 시련을 맞게 되었다. 1928년, 이 강이 갖고 있는 수자원을 유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해 호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를 마주하는 협곡에 높이 40m의 댐을 만들었다. 남류하던 섬진강물중 일부는 땅속에 파이프라인을 뚫어 숭어가 노는 서해안으로 흐른다. 그 물은 동진강을 따라 가보면 광활한 호남평야, 개화도의 메마른 논바닥을 적셔줄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이후 수력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졌다. 거기, 댐 아래로 처음 낙하하는 곳에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가 있다. 그러면서 삶의 근거지인 논과 밭, 다니던 길과 집들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고 이곳은 졸지에 섬이 되어버렸다.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는데 오가는 이들이 금붕어를 닮았다하여 붕어섬으로 불리어져 함께 쓰인다. 댐으로 만들어진 이 저수지 이름을 지을 때 이 지역에서는 ‘구름과 바위의 전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니 운암호’라 불리워지기를 원했으나 중앙정부에서 옥정호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근처에 옥정리(玉井里)라는 마을은, 조선 중기에 이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이 곳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玉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마을이름을 옥정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옥정호 때문에 임실군 운암, 강진, 신평, 신덕면과 정읍시 산내면 등 2군 5개면이 물에 잠겼고 2만 명 가량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중에 상당수는 부안군 계화도 간척지 등 낯선 땅으로 옮겨졌다. 붕어섬 (하) 붕어섬은 아리고 아린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실향민들의 양보와 배려의 결실물이다. 그러나 자연은 붕어섬을 외로이 물에 가둬 놓지만은 안했다. 관심 있는 수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함께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즐기며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 옥정호이다. 또한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갈 수 있도록 13km 이르는 물안개길이 있다. 옥정호가 손에 닿을 듯 말 듯,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만들어 낸 트래킹 코스다.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꾸며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마음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쉴만한 공간이다. 옥정호는 뒤편으로 오봉산이 병풍처럼 싸안고 있어서 더욱 포근함을 안겨준다. 그 산에 15분가량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호수 가운데 붕어섬이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함께 지내던 이웃들은 떠났을지언정 이른 봄이면 새 희망의 기운이 솟는다. 갈아엎어 붉은 색조를 띠는 밭두렁에서는 뭔가를 이뤄낼 듯이, 새 생명을 암시하듯이 아침 햇살에 따뜻한 훈김을 뭉실뭉실 피어 올린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함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 같은 곳이다. 여명이 동터오를 새벽녘에는 그야말로 승경이다. 가을 날 기온차가 생길 때면 전망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방에 둘러쌓인 산과 그 안에 안겨있는 호수가 어우러져 펼쳐지는 혼미한 기상 쇼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녘의 햇살은 섬진강 발원지인 저 멀리 진안 마이산의 두 귀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호수에 비춰온다. 지자체에서 관광개발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외앗날에, 붕어섬의 지느러미 하나도 소실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장자(莊子)의 조탁복박(彫琢復朴)이란 말이 호수위에 어른거리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던가. -송만규 화백의 '강의 사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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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붕어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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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을 시작하며
- 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를 시작하며 윤주옥 2023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화엄사성보박물관,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는 ‘지리산 사찰 문화유산 기록사업단(기록사업단)’을 구성하고 문헌조사와 현지답사, 면담을 통한 채록 등을 진행하여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을 발간하였습니다. 사찰과 사찰, 사찰과 암자, 암자와 암자를 이어주던 옛길은 수행자의 순례길이기도 하고, 궁박한 산골 주민들의 생활길이기도 하며, 한국전쟁 당시 산사람들의 생사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길들은 끊어져 산에 사는 동물 발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암자터와 함께 옛길에 대한 답사와 기록이 필요하고, 사찰과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 사찰과 관계 맺고 살아온 지역민의 면담을 통해 잊힌 암자와 옛길, 현존하는 암자와 길들에 대한 기억을 채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사찰과 암자, 옛길 주변의 식생(植生)을 조사하고, 지리산 숲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은 산길을 오르고, 기와와 자기 파편을 한 조각이라도 더 찾으려는 기록사업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님과 주민을 만나기 위해 암자를 오르고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사진과 영상 작업을 마다하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록사업단은 산동에서 천은사, 천은사에서 화엄사, 화엄사에서 문수암, 문수암에서 연곡사 등으로 가는 옛길을 답사하고 기록했으며,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영역 등 구례지역 암자터 26곳을 답사하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화엄사 등에서 수행하는 스님 7명, 사찰 거주인 1명, 구례 주민 3명 등 11명으로부터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모습, 화엄사와 천은사 산내 암자, 암자터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기획연재를 시작하는 《기억 속 사찰》은 『기록과 기억 1 지리산 구례지역 사찰』 중 일부입니다. 《기억 속 사찰》은 켜켜이 쌓아둔 기억들, 장엄한 역사문화유산, 크고 작은 절에서 보고 들은 바, 큰 절과 아랫마을 사람들 등으로 나눠 연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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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획연재 《기억 속 사찰》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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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산청 남사예담촌의 봄
- 산청 남사예담촌의 봄 이호신 작 (한지에 수묵과 채색, 69x275cm, 2025년) 1-2산청 남사예담촌의 봄(부분도1) 1-2산청 남사예담촌의 봄(부분도2) 나와 남사예담촌의 인연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문화유산답사회원으로 마을을 만났고 하씨 고가의 700살 ‘원정매(元正梅)’를 알게 되었으며 산청 3매(원정매, 정당매, 남명매)를 그리러 자주 마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8년 마을 전경을 그려 발표하였고 그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산청 니구산 남사마을> 200호, 167x270cm) 남사예담촌과의 인연이 성숙되어 201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촌한 이듬해에 남사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2011년)되었다. 이에 마을 홍보를 위한 화문집 『남사예담촌』의 마을 전경을 새로운 각도(마을 벌판에서 니구산을 바라보는 시선)로 그린 것이 <남사예담촌의 가을> 200호, 170x271cm, 2011년)이다. 이어 3년 후 <남사마을의 겨울 밤>(60x94cm, 2014년)도 그리게 되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마을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덧 귀촌한 지 만 15년 차로 그동안 염두에 두었던 마을 신작에 골몰했다. 마침 산청군에서 금년 (2025년)을 ‘산청 방문의 해’로 선정하였기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의 면모를 화폭에 담아 선양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마을 전경을 위해 이번에는 두루마리 형식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수차례 현장을 답사하고 밑그림을 그리며 마을 주민들의 조언을 들었다. 사계절 중 봄의 생태로 남사 8매와 문화유산인 고택을 중시하며 함께 사는 마을로 그리려 했다. 현대문명 생활로 자동차, 농기계와 주민, 그리고 관광객들도 넣어 생활산수가 되게 하였다. 마을 전경 화면은 지리산 웅석봉의 산맥을 뻗어 내린 니구산 정상에서 본 마을을 중심으로 설정했다. 원경의 산 물결인 망해봉, 집현산, 광제산 위로 떠 오른 해를 넣어 마을의 생동감과 새날의 희망을 염원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남사천은 마치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의 풍광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 그림을 통해 마을의 홍보는 물론 앞으로 새로 건축하거나 정비할 사항은 심사숙고하여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지향적 개발을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 당국과 마을 주민의 숙의를 통해 아름다운 마을의 명예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 따라서 현재(2025년) 마을의 현황을 남사천을 중심으로 <남사지역> <상사지역>으로 나뉘어 기록해 둔다. <남사지역> 남사마을 옛 담장 (국가등록문화재 제281호), 이씨고가, 정씨고가(사양정사), 최씨고가, 하씨고가, 영모재, 사효재, 경화당(마을회관), 남학재(사무실), 노인회관 정자: 남사정, 남학정, 여사정, 포구정 숙소: 예담한옥, 예다움, 옛향토집, 사양정사, 스테이예담, 다온한옥, 식당: 예담원, 예담촌참살이, 예담촌흑돼지, 왕콩나물요리집, 남사별곡 카페: 지금이꽃자리, 순이진이갤러리, 예담방아로빈, 소락방커피숍, 커피엔더블 주요식물: 이씨고가 부부회화나무, 삼신할머니회화나무, 최씨고가 회화나무, 원정매, 정씨매, 최씨매, 이씨매, 경무매, 경무송, 사효재 향나무와 은행나무, 하씨고가 감나무, 정씨고가의 단풍나무 기타: 제1주차장, 제2주차장, 제3주차장, 당산과 제례석, 마을연혁비, 물레방아, 효자정려비각, 삼백헌과 북바위, 이제개국공신교서비, 오늘화실, 예담족욕, 원정공유허비, 남사방앗간, 남사교회, 봉양사(진주강씨 재실) <상사지역> 니구산, 니구산성, 니구산전망대, 장수황씨 묘, 사상정, 망추정, 마을회관, 기산재, 기산국악당, 그네와 정자, 니사재(박씨재실), 채남정, 내현재, 소리재, 남사재와 예담재(한옥펜션), 면우 곽종석 생가와 파리장서탑, 초포정사, 이동서당, 유림독립운동기념관, 주요식물: 기산매, 면우매, 박씨매, 기산송, 니사재 목백일홍, 채남정 팽나무 세 그루, 초포정사 골목의 산수유 고목과 감나무, 내현재 길목 멀구슬나무, 상사마을회관 앞 자목련 남사천 주변: 남사와 상사마을을 잇는 두 다리, 강변 데크둘레길, 강을 건너는 징검돌 두 곳, 용소바위, 자라바위, 남사천 주변의 조류: 제비, 참새, 까치, 산까치, 물까치, 후투티, 백로, 흰뺨검둥오리, 비오리, 원앙, 왜가리, 가마우지 등 1-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 1-1 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부분도1) 1-2 산청 남사마을전경 스케치(부분도2) 2-. 산청 니구산 남사마을 2005 3-남사예담촌의 가을 4-남사예담촌의 밤 60x94cm 2014년-97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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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화백의 지리산그림순례] 산청 남사예담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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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 「섬진강 편지」 - 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지리산 산불 소식 때문일까, 이맘때면 자리다툼까지 하던 사진작가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 꽃구경 나온 이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 화엄사 홍매 그늘이 훤하네. 언제나 꽃이 볼만하겠냐 물어오지만 요사이는 두서없는 날씨 탓에 꽃 피는 때를 예측하기가 어렵구만. 예년 같으면 진즉 피었을 3월 19일까지 한 송이도 피질 않아 애태우더니 3월 21일부터 20도를 넘는 날씨가 5일 계속되자 사흘 만에 꽃들이 한꺼번에 확 피었다네. 지난해에는 3월 8일에 피기 시작해서 만개까지 8일이 걸렸는데 올해는 단 3일 만에 확 피어버린 것이네. 그렇게 일시에 피다 보니 꽃빛도 꽃송이들도 탈모가 시작된 내 머리처럼 듬성듬성 휑한 것 같네. 화엄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의 꽃들도 미친 듯이 피어나네. 하룻밤 사이에 윗집 모란이 피고 옆집 살구가 피고 아랫집 앵두가 피니 벌들이 과로사 하겠네. 두서없는 횡설수설 문장으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편지 같은 날들. 여드레째 지리산불은 오늘도 다 꺼지지 않고 지리산을 태우고 있네. 문명의 이기심이 불러온 이상기후 때문에 모든 생명들이 곤혹스러운 날들이네. 그나마 산불은 눈에 보이는 만큼 물로라도 끌 수 있다지만 보이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 마음속 이는 천불은 어찌 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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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매 소식을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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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깽깽이풀
- 「섬진강 편지」 -고운사 깽깽이풀 사흘 연속 25도를 넘나드는 고온이 계속되더니 꽃들이 두서없이 일제히 피어난다. 마당 살구나무가 하루 만에 일제히 피었다. 숲의 꽃들도 천불이 인듯 피어난다. 가슴에만 천불이 이는게 아니었구나! 소식이 없어 애태우던 화엄사 홍매도 하룻사이에 붉게 피어났다. 섬진강변 숲에서 깽깽이풀 꽃을 보고 왔는데 경북 의성의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되었다는 속보가 뜬다. 고운사는 딱 한 번 찾아갔지만 늘 지워지지 않는 절집이다. 깽깽이풀 꽃을 피워놓고 나를 불러주었던 곳이다. 야생화 포토포앰 『꽃앞에 무릎을 꿇다』 표지사진인 고운사 깽깽이풀 곳곳의 산불로 전국이 초비상 상태이다. 산청에서 시작된 지리산 산불도 벌써 엿새째인데 불길이 다 잡히지 않았다. 사진 속의 고운사 깽깽이풀 꽃에게 소원해 본다. 보우하사 어서 비를 내려 주시길!! -섬진강 / 김인호 #지리산산불 #고운사깽깽이풀 #의성산불 #고운사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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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 십리 벚꽃길
- 지리산 화개 십리 벚꽃길 20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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