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회 적응 거부 선언" 이하루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
사회적응 거부라고 했지만 이 분은 적응을 너무 잘 하는 분인 것 같다.
세계를 다니며 어느 공동체에도 자연스레 스며들고 사람들과 친화력이 대단하다.
그녀가 사회라고 말했을 때 사회는 분명 소수가 아닌 다수가 속해 있는 사회가 맞다.
그 다수가 속한 사회는 동물을 학대하고 먹이로만 다루는 사회다.
그녀가 동물의 수를 셀 때도 사람의 수를 셀 때 쓰는 '명'을 쓴다.
돼지 한명, 개 한명같이.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참으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녀는 덤스터 다이빙이나 레인보우 게더링들과 어울렸다.
숲속이나 바닷가, 공원같은 곳에서 해먹이나 침낭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동은 히치하이크를 했는데 6년간 거리는 44,048km 였다.
그녀는 세계 곳곳에 가족을 만들었다.
부적응이 아니라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
다만 그녀가 거부하고 싶은 세계는
이미 다수가 적응해 소위 사람들이 사회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그녀는 그 사회에 거부를 선언하고
그 틀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너무 신나고 즐겁게 산다.
나는 현대사회에서 가축으로 지정되 소, 돼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왔으며, 일하지 않기를, 집없이 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평생 외면하며 살 수도 있었단, 진실을 마주할 여러 번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수많은 특권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살아가기로 했다.
문득 가난과 고통의 기억, 여러 구금시절에서 머물렀던 시간, 여성으로 자라며 겪은 온갖 부당한 대우와 시건, 성 정체성의 혼란, 성폭력과 강간 피해경험, 그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가 오히려 나의 고유한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깥으로 만 표출되던 분노의 에너지를 서서히 내면으로 돌려 피해 경험자로서, 관련된 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며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보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힘차고 담대하게 연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나는 이것을 '당사자의 경험권력'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이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찾아나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해방이자, 스스로를 위한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응 거부선언> p20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