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유람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로컬 소품숍, 호호의 숲
피아골 겨울의 한 복판에 찾아간 호호의 숲 앞마당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마을 어귀부터 다정한 손글씨로 쓴 팻말이 ‘여기로 가면 호호의 숲입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는 정도. 겨울 풍경 속에 갇힌 마당에서 주인장을 어떻게 불러낼까 고민하던 중인데 미닫이가 스르르 열리면서 그녀가 나타났다. 호호의 숲 주인장인 류호화 님이다.
운명 같은 시작
그녀의 반가운 안내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서자 흐린 바깥 풍경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동화적인 색감의 사랑스러운 소품들로 가득한 호호의 숲을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같다고 했단다. 필자의 눈에도 이곳은 악이라고는 스밀 수 없는 순수한 동화세상 같았다. 휘둥그레 뜬 눈이 분주해지면서 갑자기 기분이 둥실댔다. 정성 담긴 사랑스러운 소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원래 이 공간은 숙박을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대나무공예를 배웠거든요. 저기 달려 있는 대나무 등은 죽예회 회원과 함께 만든 거예요. 저 등을 완성해서 저곳에 다는 순간, 아 이제 숙박을 접고 소품숍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마치 소품숍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는 듯이 그녀가 말한다. ‘호호의 숲’이라는 숍의 이름 역시 그녀의 별명인 ‘호호(년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알 만한 TV만화영화 시리즈 주인공이다)’에, 자연에서 온 것이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 자연과의 협업이라는 의미를 담은 ‘숲’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1년 7월 호호의 숲을 열었다.
처음에는 호화 님처럼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지인 10명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패브릭과 유리공예, 나무공예, 손뜨개와 자수, 그림 등 구례와 하동 등지의 작가들 60여 명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호호의 숲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있다.
자연의 사계, 그 색을 담은 작품들
류호화 님은 사실 구례에서 전설처럼 남아 있는 플리마켓 콩장의 운영자였다. 나중에는 남원, 광양, 순천 등지에서도 셀러들이 모이고 콩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가족나들이를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성공적인 자리매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8년 여의 기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알차게 꾸려오던 콩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콩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다시 판을 벌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해서 누군가 에너지 만땅인 사람이 시작한다면 박수치고 손을 더해줄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지금 호호의 숲 작가들도 실은 콩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성껏 만든 지역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리고 작가들도 호호의 숲과 함께 3년 동안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작가분들께 사계절을 모티브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고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포인트를 이야기해드리기도 하거든요. 작품에 자연의 색과 모습을 담으면서 결이 비슷해지고 공간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어온 다과상에도 겨울과 봄이 담겨 있었다.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티 매트, 벚꽃모양의 작은 차받침 역시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소품이다. 워낙 정성 들인 수공예품들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대량생산은 있을 수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의 가치는 더 귀하다. 소품뿐 아니라 차, 밤잼, 꿀 등 지역의 생산품도 판매한다. 이 날의 웰컴티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꾸지뽕차였다. 구수하고 달큰한 차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 방문하는 운 좋은 손님들은 이렇게 정성 담긴 다과상을 받을 수도 있다니, 피아골 골짜기까지 찾아오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일단 호호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의 만족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손님 중에는 호호의 숲을 통째로 서울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호화님이 직접 그리고 적어 작품을 소개하는 이름표를 사고 싶다는 손님도 있단다.
자연은 살아가는 힘이 돼요
호호의 숲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을어르신들이 이런 외진 동네에 가게를 하니 사람이 찾아올까 걱정을 했다는데, 이제는 소문이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곧잘 찾아온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기는 하지만. 또 찾아오신 손님들 중에 네댓 팀은 다른 지역에 소품숍을 내기도 했으니 호호의 숲이 주는 영향력을 알 만하다. 그런데 어떻게 피아골 마을 안에 자리잡을 생각을 했을까.
“소개로 오게 되었는데, 뭘 몰랐어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제가 겁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내려오거든요. 한 번은 마당에 이불을 널었는데 저녁에 갑자기 비가 오는 거예요. 이불을 걷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 나가고 그대로 비를 맞혔어요. 그런데 4, 5년이 지나니까 어느 여름날 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고 있는 거예요.(웃음)”
이제 집 앞 수로를 허둥지둥 건너는 멧돼지 가족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산에 있는 복숭아나무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양보한 지 오래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이곳에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준비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그녀에게 힐링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소한의 다짐이 있다. 나로 인해 자연에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남들은 이쁘게 집 짓고 살라지만 내가 인공 구조물 하나 더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포장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호의 숲에서는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습자지로 소포장한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하는 다짐이다.
반달곰 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실천하는 삶에 한 발이라도 얹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 공명처럼 전해지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