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오리온공장 청년노동자 구례의 딸 고서지현을 추모하며
청년노동자 서지현 사망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구례시민사회모임
익산 오리온공장 청년노동자 구례의 딸 고서지현을 추모하며
왕해전 (청년노동자 서지현 사망 진상규명을 위한 구례시민 모임 공동대표)
“지현아! 너무 힘들면 그냥 와버려.”
“아니야 엄마, 그래도 왔으니까 힘들어도 3개월만 참아볼래”
오리온 제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현이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힘들다고 할 때 가서 그냥 데려오지 못하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오지 말고 공장에 그냥 있으라고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습니다.“라고 울부짖는 지현이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이 입사한 사십여 명의 친구들이 일주일 만에 회사를 떠났어도 마음이 여리디 여린 지현이는 쉽게 회사를 그만 두지 못했고 나이도 어리고 예쁜데 뭐한다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냐고 비아냥거리는 선배 노동자들의 언어폭력과 따돌림에 지현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본인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시말서를 강요하였고 심지어는 사내연애를 한다고 수군거리고 신체접촉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성적 농담으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 관리자들의 행위를 참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구례 청천초, 구례여중, 순천전자고를 졸업한 서지현 청년이 익산 오리온제과에 취업하고 1년 6개월 만에 ‘진짜, 어지간히 괴롭혀라. 오리온은 다닐 곳이 아니다.’ 등의 직장 괴롭힘과 따돌림, 성추행 당한 의혹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이런 지현이의 억울한 소식을 접한 지리산 구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구례출신 청년 후배들 중에서 누구라도 억울하고 잘못된 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구례의 선배 후배들이 나서서 지켜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구례의 20여개 단체 및 개인이 참여한 구례시민사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노동현장에서의 억울한 사고와 죽음이 있었다면 그 회사가 구례에 있건 타 지역에 있건 간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노동이 존중되고 노동인권이 지켜지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구례시민사회모임은 오리온제과에게는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고용노동부에게는 특별근로감독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현수막을(구례군체육회,읍체육회,재경마산면향우회등 25개 단체 이름으로) 부착하였으며, 6월 3일에는 오일장에서 구례군민들의 요구를 담은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지금은 매일 1인 시위를 읍내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사진. 구례오일장에서 진행된 “청년노동자 서지현 사망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구례시민사회 기자회견” (황영필)
연일 언론(언론보도: sbs Y 궁금한이야기 4월3일방송, JTBC 및 KBS 뉴스, 전주KBS 심층, 각언론사 5월19-20일 뉴스, 다수언론사 6월3-4일 뉴스)에 보도가 되고 여성누리꾼들은 오리온을 여성혐오기업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자체조사결과 지현이의 죽음은 개인적인 이유가 원인이었다고 하면서 다소 경직된 조직문화가 있었지만 회사의 잘못은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시민사회모임에서는 회사에게 요구했습니다. 자체조사를 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등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유가족에게 공개하고 관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또한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에는 직장 괴롭힘과 따돌림을 호소하며 생을 마친 고인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특별근로감독을 포함한 철저한 수사로 관련자를 처벌해야 된다고 촉구하였습니다.
고졸, 여성, 취업, 노동자라는 4중주의 사회적 약자였던 지현이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라는 법이 있긴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경우 조사 및 심사요청을 할 수가 있지만 단순 인사조치만 내려지는 등의 단순 권고조항이기에 괴롭힘 예방을 위해서 시작된 금지법이 있으나마나 한 법이 되어 `직장괴롭힘방치법`이라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노동현장에서 괴롭힘과 따돌림 그리고 여전히 못된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성희롱, 성추행 같은 이유로 고통 받을 때도 업무상재해 즉 중대재해가 아닌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적응력이나 인내력부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동현장에서 김용균 청년이 업무상재해로 사망한 것이나 괴롭힘과 따돌림, 성추행의 스트레스를 죽음으로 밖에 멈출 수 없었던 지현이의 경우가 본질적으로는 다른 점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따라서 서구유럽처럼 사측에 강력한 의무를 부과하고 가해자인 동료에게는 형벌이 가해져야하는 입법이 필요한 강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보도에 의하면 1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중 업무상관련 관련 사망자가 무려 487명입니다.)
노동의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유서 다섯 장에 다 못 할 청춘의 사연을 숨기고 ,직장의 이름을 적으며 선배노동자들과 회사의 부정과 불법으로 만신창이 된 인권 앞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지현이가 우리 어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지금 묻고 있습니다. 다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