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작은변화포럼
김양오 (작은변화포럼 대표)
이름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회의 이름이나 행사이름 같으니. 그래도 우린 우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독립된 단체가 아니고 확고한 결사체도 아니며, 그야말로 ‘느슨한 연대’로 한 달에 한번 주제 토론 비슷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남원에 작은 변화를 천천히 은근히 오랫동안 만들어 내자는 뜻에 합의한 여러 단체가 달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벌써 4년째다.
그럼 4년동안 뭘 했을까? 처음에 2년 동안은 회원 단체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했다. 15개에서 20개 사이의 단체가 들어왔고 혹은 나갔다. 1년 이상 남원에서 활동한 건강한 시민단체라면 어떤 단체든 다 들어올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한 성격의 단체가 모였다. 마을모임, 교사 모임, 교육공동체, 농민회. 청년 단체를 비롯해 공무원 노조와 의료원 노조까지 들어와 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특히 공무원은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이 높은데 한 자리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1년동안 저녁밥을 함께 먹으면서 친해지는 시기가 지나자 드디어 이제 우리도 뭔가를 해 보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뭘 하지? 다들 답답해 하는 게 의정이었다. 의원들이 뭘 하는 지 어떻게 하는 지 직접 보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꾸렸다. 의정모니터링단.
회원 한 분이 단장을 맡고 모니터링단을 꾸려 1년동안 의회 회기 기간에 방청을 꾸준히 진행했다. 회의가 다 평일 낮 시간에 이루어져 직장인들이 참여하기가 힘들고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단장님과 몇 분이 거의 희생에 가까운 노력으로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 나갔다. 그 덕분에 의원들은 작은변화포럼의 존재를 확실히 알았고 회의에 참여하는 태도도 많이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전문 지식도 부족하고 사안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회의만 참관하는 것은 많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공부 특히 예산에 대한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거기까지 품을 낼만한 회원들이 없었다. 우린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
또 하나 작은변화포럼이 세간의 집중을 받은 활동이 있었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 기간에 후보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진행했고 그것을 유튜브로 방송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선거운동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진 후보들에게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토론회는 꽤 반가운 일이었다. 회원들은 후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깊이 토론하고 질문을 만들어 보냈다. 방송 며칠 전에 후보 캠프의 담당자들과 현장에서 방송 진행에 대한 실무 회의도 했다. 촬영팀은 남원 청년들이 만든 회사로 정했고 사전에 장소, 동선, 소품, 배경, 의상까지 신경쓰며 진짜 전문 방송국처럼 준비했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촬영, 며칠 동안 편집, 또 며칠 동안 자막 써넣기, 유튜브 송출, 홍보, 조회수 올리기까지 정말 간단하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말도 못하게 일이 많았고 시간도 매우 많이 걸렸다. 당시 대표였던 유지선회원은 토론 내용을 모두 자막 처리하느라 며칠동안 날을 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아무도 하자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증명되는 사건이었다.
2020년은 정말 다사다난했던 해다. 특히 남원은 더 그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대구 확진자들이 대거 남원의료원에 입원하면서 회원 단체들이 큰 활약을 했고 여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수해가 나서 시민단체들이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였다. 비는 그쳤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남원으로 귀농한 청년들은 큰 사기를 당해 억울하다며 유튜브를 통해 남원시청을 공격했고 급기야 남원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남원시는 여기저기 개발한다며 산을 깎고 아름드리 나무를 무참히 베어냈다. 또 남원시와 의회는 반대 의견은 한번도 듣지 않은 채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놔야 남원이 잘 살고 지리산이 산다고 신념에 차서 일을 추진했고, 춘향 영정문제, 태양광 문제를 비롯해 너무나 많은 문제로 남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021년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이 작은변화포럼에게 뭔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너네 뭐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남원이 요 모양 요 꼴인데 뭐라고 목소리 좀 내야 하는 거 아냐?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작은변화포럼은 너무나 다양한 단체가 모여 있다. 대략 스무 개의 단체장들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도 크고 문제의식의 깊이도 너무나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회의 때마다 이런 것을 다 논의하다가는 밤을 새도 모자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1년동안 함께 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우직하게 함께 가기로 하고 나머지 현안에 대해서는 그 문제에 심각성을 느낀 단체들이 모여서 성명서를 내든 뭘 하든 하기로 했다. 한 단체든 두 단체든 그렇게 하는 게 서로 부담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남원에 이런 시민단체 연합 조직이 여러 번 결성됐다 없어졌다고 한다. 1년을 넘긴 적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작은변화포럼은 남원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장 행동하지 않아서 답답해 하는 회원들도 있지만 한번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는, 그 어렵다는 연대 활동을 이렇게 오래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멀리 볼 일이다.
연합조직은 각 단체 회원들을 긴밀히 연결하고 새로운 활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시민 활동의 진보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 지향성 조직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커나가야 한다.
올 해 작은변화포럼은 ‘내가 살고 싶은 남원, 내가 바라는 남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마당을 꾸려나가기로 했다. 5-6명 정도의 구성원들이 5회 이상 만나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냥 바라는 것을 툭 던져놓고 마는 것이 아니라 회를 거듭할수록 세밀하게 토론을 진행해서 나중에는 정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끌어나가 보자는 구상이다. 필요하면 해당 전문가를 초빙해서 조언을 들어볼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팀 20개를 조직해 ‘살고 싶은 남원’에 대해 꿈을 꾸고 구체화시켜 정책으로 만들어서 내년 선거 때 후보들에게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정책이 많이 나오면 연말 작은변화포럼의 날 때 정책 박람회를 열어도 좋겠다. 좋은 꿈은 꿀수록 행복하다. 마구마구 꿈을 꿔보자.
작은변화포럼, 신박하지만 쌈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은 이 모습이 최선인 것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잘 성장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