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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종말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다. 겨우 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인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손이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만 그때서야 채소를 먹어 볼까 하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만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을 하며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하지만 성장기에 접어들고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하다 그렇게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모종도 이미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 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처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식당을 유지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 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레인의 지나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게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들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거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는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고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화되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는 제레미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기 때문이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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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이라면 그것도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미술이나 문학이나 뭐든 작품의 원작은 무엇일까? 소설은 이 질문을 던진다. 사진이 작품이 되었다면 그 사진의 원작은 배경으로 나온 자연? 아니면 그 속의 인물? 아니면 찍은 사람? 원작은 반드시 불태워 없애버리는 재단에 초대를 받은 작가의 여정은 흥미롭다. 실수와 사고로 일이 꼬이는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듯 초조하다.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화재를 통과하는데 과연 경험일까 상상일까도 궁금하다. 가끔 신문보도에서 접하는 뉴스이기는 하지만 많은 재산을 개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개를 싫어한다면 혹, 좋아한다면 읽는 기분이 달라질까도 궁금하다. 난 개를 키우지만 개가 신기한 동물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를 너무 좋아해서 싫다. 하필 작품의 이름의 'R의 똥'!(R은 개 이름의 첫자) 윤고은 만세!! 작품을 불태우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에서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불타고 있으니 내게로 넘어온 그녀의 작품이 원작이 되었다. 이 똥같은, 내가 끄적거리는 이런 독후감은(읽는 사람도 없고, 또 없길 바래지만) 나를 떠나 누구에게 불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쳐 박히기를 바라며 독후감은 똥통에! ** 다른 이야기 작품명: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 보관됨 생산및 밀봉 일자: 1961년 5월 이 작품은 작가의 진짜 똥이 들어있고 다 팔렸고 아직 유수의 미술관에 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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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추억
초등학교 6학년쯤 파묘하는 것을 직접 본 기억이 있다. 동네 앞산에서 놀고 있는데 아저씨 몇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봤더니 파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파묘> 다른 친구들은 모두 무섭다고 도망갔는데 호기심이 강했던 나는 상세하게 옆에서 지켜봤다. 아주 오래전 무덤인데 뼈가 그대로 있었다. 당연히 해골도 그대로였다. 머리카락도 보였다. 보는 것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그 산에 지나칠 때마다 항상 생각이 났고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그리고 생각나는 장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초장(초분)이다. 회 먹을 때 먹는 초장이 아니라 사람이 죽었을 때 나무나 땅 위에 평상처럼 만들어 그 위에다가 시체를 두고 풀로 덮어 두는 것이다. 오래전 정읍에 어느 산에서 초분을 본 적이 있다. 외사촌 형과 사냥을 갔다가 혼자 산을 돌아다니는데 초분을 발견하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초분은 삼국사기에도 나와 있는 오래된 풍습 중에 하나이고 초분에다 시체를 두었다가 살이 썩고 나면 뼈만 취해서 무덤에 묻는 방식이다. 초분이 정식 명칭이고 전라도 서쪽에서는 아마도 초장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산에서 풀로 덮은 시체를 봤다고 했을 때 동네 어른들이 초장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장면을 봤을 때가 1980년대였는데 그때까지도 초분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1970년대까지 섬이나 서해안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고 새마을 운동 이후에 금지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1980년대에도 꽤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은 결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파묘도 무섭지만 오래된 초분은 더 무섭다. 초분은 보통 2-3년 이후에는 묘를 써야 하는데 그 초분은 거의 시체가 다 보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숲에서 초분을 만났을 때 내 달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던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초분이라는 영화가 1970년대에 있었다. 이두용감독의 김희라가 주연이었다. <영화초분> [영화초분 남해 초도의 어부 소돌은 5년전 친구 살해사건으로 복역하던 중에 모친상을 당해 간수와 동반하여 7일간의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난데없이 5년전의 시체가 떠올라 미역밭에 미역이 썩자 인심이 흉흉해져서 모든 것을 소돌이의 탓으로 여긴다. 소돌의 난처함을 보고 간수는 5년전의 사건을 조사한다. 뭍으로 나가려는 젊은이와 관광개발지로 팔려는 섬의 정신적인 지배자인 당무당과, 섬과 초분을 지키려는 노인들간의 대립이 한창일 때 간수가 당무당의 부정을 당국에 알리자, 당무당은 혼령의 환영에 쫓겨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소돌의 조카 임자만이 소돌을 대신하여 섬을 지킨다.] 초분을 행하는 이유는, 마땅한 묘자리가 없어 임시로 밭 어귀나 마을 뒷산 등에 가매장(假埋葬)하고자 할 때, 죽은 사람과 묘를 쓰고자 하는 땅의 운세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죽은 사람이 초분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때 등 다양하다. 또한 음력 정월과 2월에 사망한 경우, 이 시기에 흙을 파헤쳐서는 안 된다는 속신 때문에 초분을 행하기도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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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해방일지
20여년전 일본에서 살 때였다. 나는 도쿄와 치바의 중간쯤에 살았다. 내가 사는 맨션 옆집은 주택이었다. 그 집 마당은 3평 정도였다. 어느 날 심심해서 그 3평의 공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 세어 본적이 있다. 무려 50그루가 넘었다. 저 작은 평수에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지... 그것도 아주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리고 더 작은 나무가 심겨진 3평짜리 정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땅이 있으면 양껏 심어 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300평이 조금 안 되는 땅에 집을 짓게 되었다. 그 때 생각대로 심고 싶은 나무는 다 심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나무가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겨울 마다 더 이상 공간이 없어 겹치는 나무를 잘라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도 5그루의 큰 나무를 잘라냈다. 대부분 10년 이상 큰 나무들이고 한 때는 내가 애정하는 나무들 이었지만 속절없이 잘려 나가 땔감이 되고 있다. 나는 그 일본인처럼 조화롭게 나무를 심거나 가꾸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우선 정확한 계획이 없었다. 아니 지식이 없었다. 그냥 무작정 심고 싶었던 나무를 심을 터가 있는 곳에 심었던 것이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채워진 욕망은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 어느 해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꿈꾸던 욕망을 해도 괜찮다는 그 문구가 맘에 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이 있다. 채울 수 있는 욕망이 있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인간은 결핍이 생기고 결핍은 결국 불행을 만들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만든다. 프로이트는 그 결핍이나 욕망은 꿈에서 발현되고 그것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기에 무의식 어두운 하드디스크에 꽁꽁 숨겨 두었다가 어느 날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었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거나 많이 심으려고 했던 것도 어느 한 곳의 무의식 속에 결핍에서 나타난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내 고향집엔 나무들이 많았다. 뒷마당에는 아주 큰 나무들이 많았다. 키 큰 전나무와 오동나무 복숭아 나무 그리고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는 큰 감나무였다. 그 나무를 좋아해서 자주 올라가 멀리 해지는 지평선을 바라 보곤 했었다. 저 멀리 바다를 넘어가면 뭐가 있을까?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진다고 어머니는 나무에 올라가 있는 나를 혼냈지만 나무 위에서 나는 항복했었다. 어느 해 키 큰 나무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탱자나무 울타리는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가 많은 집을 욕망했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정도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의 소비를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무를 매년 사고 싶은 만큼 심었으나 결국 점점 만족감이 떨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무를 심어서 얻는 만족감은 0에 수렴했을 때 나무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닌 것이 되었다. 지난 장날에 나가 보니 벌써 묘목이 나와 있었다. 묘목을 살펴보며 오래전 매번 장에서 묘목을 구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많은 묘목 중에 이젠 더 이상 나를 유혹하거나 내가 욕망하는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내 욕망을 채워졌음을 확인했다. 어쩌면 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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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봉 소리에 뒤집어진 크리스마스의 추억
곧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40여 년 전만 해도 특별하게 놀이가 없었던 시골마을에서 동네 교회에서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연극은 꽤 인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극은 대부분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날의 상황을 연극으로 만드는데 내가 그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교회에 다니지도 않던 내가 연극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랬다.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친구 녀석이 자꾸 교회에 가자고 하여 딱 하루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날 크리스마스 연극의 배역을 정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여관주인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는 바로 그 여관 주인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관 주인의 부인 때문이었다. 부인 배역을 맡은 아이는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모두들 부러워한 이유는 바로 그 아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딸 역할로 나오는 아이도 너무 예쁜 아이여서 모두들 부러워 했다. 결국 나는 그 역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데 모세나 동방 박사 역을 맡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날부터 학교가 파하면 교회로 달려 가서 한 달 동안이나 연습했다. 특별하게 대사도 많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연극인 데다 첫 장면이 바로 나부터 시작해서 긴장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당시 최고 미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나의 첫 대사는 "여보"였다. 막이 오르고 여관 주인이 중앙에 앉아 있으면 내가 달려가서 '여봉'하고 최대한 간지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었다. 40년 전 당시 상황에서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 '여봉~~'하면서 간지럽게 대사를 하는 것은 파격적인 대사였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연습을 한 대사도 바로 그 대사다. 사실 지금 기억나는 유일한 대사도 바로 그 여보 소리였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시골 마을의 크리스마스…. 흰 눈이 펑펑 내렸고 오후 7시가 되면 연극은 막을 올리게 되었다. 연극 의상은 아랍인들의 전통 의상인 머리에 두르는 헤자브를 해야 하는데 헤자브를 할 것이 없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보자기를 둘러 썼는데 나일론 보자기가 미끌미끌해서인지 일반 끈은 자꾸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 바로 고무줄이었다. 탄탄하게 검정 고무줄로 고리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단단히 조여맸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고 잠시 장내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막이 오르고 내가 뛰어가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당대 우리 학교 최고 미인에게 '여보옹…'이라는 대사를 해야 한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헤자브의 끝이 밟혔다. 그 순간 머리를 죄고 있던 고무줄이 총알처럼 관중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시 헤자브를 할 수도 없어 헤자브로 사용했던 보자기를 관중석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달려가서 '여봉~~' 외쳤다. 내가 너무 느글 거리는 소리로 여보 소리를 외쳐서 그런지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됐어, 역시 난 연극을 잘해"라고 속으로 흡족해 했다. 연극이 끝나고 왜 그렇게 웃었냐고 물었더니 매년 동일하게 진행되는 연극에서 내가 헤자브로 사용하던 보자기를 던져버리고 달려가는 모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대사로 웃긴 것이 아니라 보자기를 던진 것 때문에 웃겼다는 것 때문에 실망이었지만 결과는 웃겼으니 내 역할은 제대로 한 것이었다. 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렸고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면 보냈던 크리스마스 이브는 유일하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날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날의 긴장하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과 처음 여보 소리를 하면서 느꼈던 묘한 흥분과 부끄러움이 생각난다. 그때 나랑 함께 연극에서 부인으로 나왔던 동창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지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 검정 고무줄을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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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
엊그제는 영화보고 울고 오늘은 책보며 운다. 여인숙 달방에 사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마음 쓰는 작가 이강산 때문에 눈물난다. 이 사람은 아마도 천사의 변신 아니면 분신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인가. 모두가 한순간만이라도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이틀 내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면서 그 답변을 궁구하는데 몰입했다." p116 "마른 수세미처럼 생이 고갈된 자신을 살리는 이유는 죽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p123 겨울 방에 물이 어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이사람에게 눈물이 난다. 그이 다큐 사진 여인숙 펀딩에 참여해 책을 받았지만 사실 보지 않았다. 보나마나 음울하고 우울한 인간의 삶이 흑백으로 찍혀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다보니 그 사진책이 궁금해 펼쳐본다. " 행복, 희망, 자유, 평화, 인권.인간의 근원적 특성을 포괄하는 추상어들.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담긴 낱말이다. 이것을 달방 가족들이 여인숙에서 살아가는 동안 입에 담을 기회가 올까. 그것은 언제일까.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전 내내 이 화두에 집착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일이 좀더 명확해지는 듯해서 마음이 고무되었다.p102 "나는 휴먼다큐 기획 의도를 소리내어 읽었다. 사회적 소외와 외면의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고 공존과 상생, 인권과 평화를 도모함"p195 이런 사람의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또 자기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리는 그를 보며 그러기에 부부로 살아가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한때 존경했던 분은 고 제정구씨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나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 그들의 열악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제정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이강산이 그런 사람이다. "몇번을 생각해 보았으나 휴먼다큐 여인숙 촬영이 먼저가 아니었다. 나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을 우선 살리고, 그들이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 먼저였다. 그들은 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아니라 내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는게 옳다는 판단이었다."p159 내가 한때 같이 놀아줬던 소년원의 아이들과 공주치료감호소의 환자들과 카토릭워커하우스에 밥 먹으러 오던 미국인들 생각이 난다. 이들도 국가에서 주는 생활비를 받아 살아갔지만 와서 먹는 점심은 풍성했다. 또 저녁까지 가져 갈 수 있었다. 나라가 부자니 가난도 질이 다르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술과 담배가 문제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최악으로 치닫는다. "인철 아우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휘청거리며 역전 쪽으로 난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두커니 지켜보는 인철 아우의 뒷모습에 언뜻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짐승이 오보랩되엇다. 푹설로 양식과 길을 잃은 숲속의 짐승. 가슴속 어딘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 겨울, 나는 지금 어는 숲에 서 있는지, 나는 짐승인지, 인간인지,"p155 "승기 형은 운동을 핑계 삼아 여인숙 골목을 걸을 때 외에는 종일 방에 누워 지낸다. 어쩌다 맥주를 마시는 일도 잇으나 대개는 매월 생계급여 받는 날, 하루뿐이다. 맥주를 두 번 마시는 순간, 그 금액만큼의 밥을 굶어야 한다. 형이 자신을 유폐시킨것처럼 방에 누워 지내는 까닭을 나는 여실히 안다. 허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형을 비롯해 많은 달방 가족들이 외출이나 실내 운동 따위의 움직임을 최소로 줄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p238 "형이 다리가 불편한 탓에 주차장 바닥에 앉혀두고 내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흘려주는 식으로 한 시간 남짓 닦앗다. 발톱은 싯누런 무좀 기운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손톱깍기로 해결이 되지 않아서 다음주에 철사를 자르는 니퍼를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발등부터 발바닥까지 덕지덕지 쌓인 때를 벗기는 일은 하루로 부족했다. 당장은 냄새를 지우는 정도로 끝냈으나 며칠 더 닦기로 약속했다. "p303 "진실한 인간관계는 시간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p264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며 최대의 프로파간다."p269 사람은 다 인간이라 불리지만 그 시간은 다 다르게 흘러간다. 인간다운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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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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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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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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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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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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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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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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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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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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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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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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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워 하는 마음
-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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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으로
- 저자 한길사 대표 김언호가 세계를 다니며 도서관, 책방, 책이 있는 곳을 찍은 무겁고 두꺼운 사진집이다. "한 도시에는고층 건물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과 도서관과 서점입니다. 따뜻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이것이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합니다. 시민들이 일상을 드나드는 서점이 없다면 그 도시는 품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먹고삽니다.사람들은 이야기하면서 성장합니다.책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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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일기
- 김용옥 도올은 워낙 유명해서 도올이란 그의 호를 못들어 본 사람은 아주 드물거라 생각한다. 나도 그의 이름은 들어보고 그의 강의도 들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그의 목소리다.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조금만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왠지 모를 울화같은게 가슴에서 치민다. 그가 목소리까지 좋았다면 아마도 더 많은 팬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한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니 말하는 목청과 노래하는 목청이 다르긴 한가보다. 그의 저서는 100권이 넘는다. 그가 아는 것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책은 한번 낸 사람이 자꾸 내기 마련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말이다. 그가 다닌 대학은 7개 대학이고 전공한 학과는 생물학, 철학, 중국철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 한의학이다. 그러니 할 말도 많을게 당연하다. 이 책은 한달 동안의 일기 형식이라 다른 전공책과는 달리 쉽고 읽을거리가 많다. 4월 24일 부터 한달간의 기록이다. 물론 매일은 아니다. 바로 엊그제 일어난 따끈따끈한 사건에 대해 말하며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저서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한다. 그는 윤정권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당면한 문제,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같은 이슈에 대해 제대로 소리를 낸다. 또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 비교 설명하니 설득력과 재미가 함께다. 더불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린 시절부터 더듬으며 여지없이 그 잘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유명세로 그는 각계에 걸쳐 많은 소위 유명인사들을 만났는데 그 실명이 여럿 나오고 그들에 대해 대충이 아니라 깊이 있게 적고 있다. 첫날인 4월 24일은 성균관대학교교수의 시국선언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놀라웁게도 명료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국민의 공적인 복리에 기여하는 조직을 될 수 있는 대로 사유화 시켜 경쟁구조 속으로 집어넣어 효율을 높여햐 한다는 것, 남북의 관계는 북한이 정신차릴 대까지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것,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일본이 과거 침략만행을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미, 일경제,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안전한 보금자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p12)(여기서 그는 윤석열이다: 나의 설명) 이러니 지금이 난세라는 것이다. 구례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이름과 더욱 친근하지 않을까 싶다. 구례 문화원 앞에 '구례찬가'비를 그가 썼다고 하며 구례와는 인연이 깊다. 그는 지금 75세 인데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팔순 잔치에는 자신의 음악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하고 싶었는데 못해 본 것이 아마도 음악인 것 같다. 5년 후의 계획을 말하는 노인의 팔팔함은 가히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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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 다나카 쇼조는 제1회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내리 6선을 하며 ‘선거의 신’으로 불린 정치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초의 공해 사건인 ‘아시오 광독 사건’과 뒤이은 ‘야나카 마을 수몰 반대 운동’에 자신을 던진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참된 문명’의 길을 깨우친 사상가였다. 그의 시대는 불의했고, 문명을 가장한 야만이 드리운 그늘로 선뜩했다. 다나카 쇼조는 하루하루,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쉼 없이 불의를 헤치며 문명이 드리운 어둠을 밝히고자 힘썼다. 그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민중의 삶을 마음 아파했고, 참된 문명의 길을 거스르며 오로지 부국강병의 길로 내달리는 일본제국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했다. 그러나 ‘오늘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눈앞의 이웃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구하고자 애쓰는 것.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말과 사상에 비추어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이 걸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날이 조금씩, 그러나 쓰러져 그칠 때까지 시대의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을 걷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21세기를 위한 사상가, “헌법 9조(평화헌법)의 선각자” 다나카 쇼조 다나카 쇼조는 동료 의원들이 “지방의 자잘한 일”이라며 내팽개친 아시오 광독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았다. 의회에서 그 매듭을 풀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6선 국회의원 자리를 던지고는 목숨을 걸고 메이지 덴노에게 직소했다. 그리고 광독 피해 지역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마을로 들어가 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우고 함께 싸우며 서슴없이 끝까지 나아갔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는 삶. 가장 약한 것들로 가장 강한 것과 맞서는 삶. 어중간한 사람의 법이 아니라 온전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 걷는 삶. 나날이 의로움을 더해 가는 삶. 그리하여 하루하루 더 완전해지는 삶. 그래서 다나카 쇼조는 아시오 광독 사건이라는 싸움터에서 끝내 패배했지만, 그의 싸움과 사상은 지금껏 살아남았다. 끝까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싸움은 일본의 근대적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쇼조가 그 전장에서 갈무리한 통찰은 근대 문명의 본질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의 발걸음과 사유, 성찰은 사후 100년을 훌쩍 넘어 여전히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과 싸우는 이들을, 우리 삶을, 우리가 꾸리고 살아가는 국가 공동체를, 위기의 동아시아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거침없이 뻗기에 급급한 근대 문명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_ 새로운 일본을 위한 제언 이 책은 평생에 걸쳐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에 천착해 온 한 연구자가, 근대 문명이 낳은 대재앙이라 할 수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마주한 뒤, 크나큰 충격 속에서 서둘러 써 내려간 글이다. 다나카 쇼조가 돌아간 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어째서, 일본 사회는 그간 쇼조가 남긴 교훈을 새기지 못했는가. 깊은 분노와 참담함이 밴 고마쓰 히로시의 문장은 쇼조의 글을 거울삼아 동시대 우리 문명의 어그러진 단면을 서늘하게 베어 낸다.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132쪽~133쪽, 고마쓰 히로시 다나카 쇼조는 풀뿌리 민중의 삶을, 자치의 뿌리인 마을을, 가없이 베풀어 주시는 자연의 은혜로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곧 국익이고 문명이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꿈꾼 것은 부국강병이 아니라, 대국 일본이 아니라,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의 은혜로움 아래에서 사람다움을 온전히 지켜 가는 삶이었다. 저자 고마쓰 히로시는 다나카 쇼조의 말과 삶을 찬찬히 더듬으며, 바른 정치와 삶, 문명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려 보인다. 다나카 쇼조의 문장과 고마쓰 히로시의 글이 교차할 때,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구어 온 근대국가의 어제와 오늘이, 산과 강, 마을과 사람쯤이야 대수로이 여기지 않은 채 오로지 ‘성장’이라는 한길로만 부지런히 달려온 근대 문명의 민낯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후쿠시마는 어쩌면 그 당연한 결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다나카 쇼조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아버지, 다나카 쇼조와 함께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NHK for School은 2014년 총 41화로 일본 역사를 정리하면서 39화 [히라쓰카 라이초·다나카 쇼조, 시민 운동이 무르익다]에서 다나카 쇼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일본 최초의 공해 문제, 아시오 구리 광산 광독 사건과 그 해결을 위해 힘쓴 다나카 쇼조의 저항은 일본의 역사를 분명하게 가르는 중요한 변곡점 가운데 하나다. NHK가 2002년 다나카 쇼조와 아시오 광독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다나카 쇼조가 아시오 광독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마주한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고 평가했듯이, 일본의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 운동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시오 구리 광산은 1880년대부터 일본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고 생산량을 기록하며, 근대 일본의 산업과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제련 과정에서 엄청난 유독물질 연기가 쏟아졌고, 가까운 마을들이 곧 쑥대밭이 되기 시작했다. 피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유출된 광독은 와타라세 강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물난리가 날 때마다 광독을 머금은 물은 강과 잇닿은 논밭으로 흘러넘쳐 땅을 오염시켰다. 피해 지역은 도치기·군마·사이타마·이바라키 네 개 현, 1억 평에 이르렀다. 광독은 강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를, 강가에 무성히 자라난 조릿대와 갈대를, 강과 이웃한 기름진 땅에서 나는 풍성한 곡식과 채소들을, 굶주린 어미 뱃속에서 자라던 아기와 젖먹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와타라세 강이 베푸는 은혜로움에 기대어 살아가던 수많은 이들의 삶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마을 자치도 그와 같이 부서져 갔다. 일부 광독 피해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중의원의 국회의원 다나카 쇼조는 이들의 어려움과 마주했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노력에도 정부 관료들은 무거운 허리를 들지 않았다. 대국의 꿈을 향해 부국강병으로 바삐 치닫던 일본 정부는,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되도록 조용히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 의회에서 아시오 광독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6선 의원 다나카 쇼조는 결국 스스로 국회의원직을 내던진다. 그리고 아시오 광독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상소문을 메이지 덴노에게 직접 건네고자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는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무이한 ‘직소 사건’으로 남았다.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는 그날 도쿄 일대에 호외가 발행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본 전역이 아시오 광독 피해에 대한 분노와 동정으로 들끓었다.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외침을 성가셔 하던 정부는,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 사건으로 여론이 달아오르자, 더는 뭉갤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마침내 정부가 내어놓은 해결책이란 어이없는 것이었다. 자꾸만 물난리가 나는 통에 와타라세 강과 그 주변 산과 들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이 광독 피해를 입으니, 하류 일대를 유수지로 만들어 광독 물난리를 막아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신이 만들어 내려 주신 더없이 넓고 큰 권리’인 마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을 자치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나라를 망치는 일과 같다며 강하게 맞섰다. 산을 황폐하게 만들고, 강을 더럽히고, 마을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정부 역시 완강했다. 결국 예순넷의 다나카 쇼조는 노구를 이끌고 수몰 예정지 가운데 하나인 야나카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자 남은 열아홉 가구 주민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싸웠다.(야나카 마을은 메이지 중반까지 2700여 명이 살던 곳으로, 유수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땅을 팔고 떠난 주민들은 대부분 먼 홋카이도로 이주했다.) 다나카 쇼조와 야나카에 남은 주민들은 마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법률로 사람이 본래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던 터전을 빼앗아, 주린 배를 쥐고 떠돌게” 만든 국가의 폭력을, 끝내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선 덕분에, 피해자들이,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죽기를 기다리던 일본 정부의 바람과 달리 아시오 광독 사건은 역사에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의로운 패배는 힘이 있다. 역사는 거기, 그 시공간에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후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커다란 울림으로 돌아온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참다운 문명, 사람다움, 생명과 같은 보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의로운 분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시대적 격류 속에서 그의 저항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 패배의 기록은 오히려 백년도 더 지난 오늘날, 과연 참된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다.”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아시오 광독이라는 출발점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기를 생각한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뿜어져 나온 광독은 수많은 민중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시작부터 끝까지 광산 운영자의 편에 섰다. 피해 주민들이 내는 세금 총액이 아시오 광산이 내던 세금보다 더 많았음에도 그러했다. 아시오 광산에서 캐내는 구리는 대외 무역과, 무기 생산에 큰 보탬이 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경제 성장이란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는 성장을 이끄는 거대 기업의 이해를 감싸고 돌며 민중의 삶을 모른 척 짓밟았다. 수많은 이들의 피해와 고통, 절규와 눈물은 “돈다발로 뺨을 후려치”며 덮었다. ‘커 나가는 일본’을 위해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희생되어도 하는 수 없다, 하는 자세로 가차 없이 목숨붙이에 서열을 매겨 줄을 세워 온 역사였다. 그러고 보면 아베 정부는 느닷없이 나타난 ‘이상한’ 정부가 아니다. 근대국가 일본은 시작부터 꼬였다. 아시오 광독을 덮은 자들이 2차 대전의 책임과 전쟁 범죄를, 미나마타를, 후쿠시마의 실상을 덮었다. 근대국가 일본이 걸어온 역사 속 굵직한 어그러짐은 예외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 출발점에 바로 아시오 광독 사건이 있다. 길가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들에게서도 눈길을 거두지 못한 사람, 다나카 쇼조에게 매혹된 지성들 다나카 쇼조는 가장 낮은 자리, 민중의 삶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싸우고 깨치면서, 근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잠재된 비인간성·반생태성·반문명성을 날카롭게 짚어낸 사상가였다. 그러한 문명관으로 동시대 일본 지식인들과 달리 동학농민운동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봉준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물질이 모자람을 애태우거나 마다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공공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았다. 끝내, 우물도 담도 남기지 않은 무소유의 삶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일흔을 넘긴 나이로 와타라세 강 강줄기를 걸어서 훑으며, 저항운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려 벗들의 집을 차례로 돌아 야나카 마을로 돌아오던 길에, 낯모르는 이의 집 툇마루에서 쓰러졌다. 그가 마지막까지 메고 다니던 바랑에는 [신약성서], ‘일본제국헌법’과 ‘마태복음’을 한데 묶은 책, 일기장 세 권, [와타라세 강 조사 보고서] 초고, 휴지 몇 장과 강 김, 그리고 돌멩이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다나카 쇼조다운 마무리였다. 탈핵 운동에 헌신해 온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실에는 다나카 쇼조의 사진이 놓여 있다. 세계적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2018년 한국에서 자신의 특별전을 열며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다나카 쇼조의 말을 벽면 하나에 새겼다. 이 말은 오래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방정환 선생이 아끼는 후배 정순철 선생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들뜬 목소리로 들려준 문장이기도 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에서 한국 기독교계의 양심 박경미, 그리고 동학 연구의 권위자 박맹수에 이르는 걸출한 지성들의 다나카 쇼조론論에서 보듯,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곳곳에서 수많은 동아시아의 양심과 마주 울리고 있다. 출판사 리뷰 1904년 7월말, 쇼조는 야나카 마을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홓로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지 매입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야나카 마을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p16 "정직한 이에게 신이 깃든다. 철저히 정직한 이에게는 철두철미한 신이 깃들고 어물어물 정직한 이에게는 신도 어물어물 깃듭니다." 이처럼 쇼조는 에도시대 이후의 통속 도덕 속에 서 있으면서도, 정직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p46 만일 그런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불쌍하다 여기고, 듣기만 하며 가엾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피상일 뿐이다.1908년 6월 15일 p53 그래서 자본주의를 없애겠다는 큰 목적 앞에서 아무리 사고한 일로 여겨질지라도, 기노시타와 헨미가 야나카 마을 주민들을 '신의 백성'으로 삼아 '진정한 사람의 천국'을 야나카에 만들고자한 종교적 메시아주의의 숭고함을 잘 알면서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며, 쇼조는 현재를 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였다. 그리고 이러한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가 한국의 기독교인 함석헌에게서도 공통점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p61 조금이라도 사람 목숨에 해가 된다면 조금쯤은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p62 물을 맑게 하는 데도, 먼저 자연의 정화 작용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다. 가령, 바지락 한마리가 한 시간에 물 1리터를 정화한다고 한다. 강가의 갈대도 물을 맑게 한다. 바다라면 거머리말도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의 정화 작용을 넘어서는 지경까지 물을 더럽히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성물질이 엄청나게 든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폭거'를 감히 실행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원리가 작용해서, 먹이사슬에 따라 해양 생물들에게 쌓인 다음, 끝내는 인간이나 큰 물고기가 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벌써, 후쿠시마 현이나 미야기 현의 바다 밑바닥이나 바닥고기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방사성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수질 오염의 영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 p83-84 표결 결과, 국회의원 세비 증액안은 134대 125로 9표 차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쇼조는 반대 연설을 한 뜻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의원 세비 전액을 스스로 되돌렸다. 이리하여 쇼조는 의원직을 사퇴하기까지 남은 임기 (1899년 4월부터 1901년 10월까지)중에 세비를 1엔도 받지 않았다. 다나카 쇼조가 '대단한 가난뱅이'라는 것은 온 국민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것을 쇼조는 "때에 즈음한 덕의"라고 표현했댜. 지금이 어떤 대인지를 똑똑히 판별하고 시의적절한 덕의심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p95 내려다 보시는 하늘을 우러르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타락하고 국민이 감시를 게을리하면 정치인은 도둑질을 한다. 1902년 8월 .p96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p132 아아, 인민은 어리석어도 정직하고, 항상 앞뒤를 따지며 백년대계를 세운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오늘날 관리들은, 특히 상급 관리들은 백년대계커녕 일 년 계획도 없이 그저 짧은 한때에 몰두하는 욕심보들뿐이다. 그날그날 자리의 안전을 꾀할 뿐이다. 그러므로 늘 임시변통이다. 인민은 인민의 경험을 믿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p134 쇼조는 예수의 가르침을 '버리는'일과 '용서를 구하는'일 두가지로 요약하고, 나날이 그 실천에 힘썼다. p143 내가 항상 말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날 짐승, 길짐승, 벌레, 물고기, 조개, 산, 강, 풀, 나무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 세상 동식물은 무엇하나 나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없어, 이 모두가 나의 좋은 스승이다.p157 '듣는다'와 '들려준다'의 차이. 이것은 그저 교육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다. 쇼조의 야나카학은 그러한 인간 사회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161 쇼조는 올해 예순일곱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그저 남의 것을 훔지치 않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지 않고, 감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새를 죽이지 않고, 벌레를 죽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을 뿐, 이루지 못할지언정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됨됨이가 있을 뿐입니다.p162 이 저수 공사가 쇼조가 외친 치수론의 특징 가운데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수계일관의 사상'이다. 산에서 바다까지, 강상류에서 하류까지 모두 서로 밀접하게 하나로 얽힌 것으로 보고, 물길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산을 돌보는 일까지 중시하는 것이다.'치산치수'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쇼조는 "숲을 마구 베어 없애는 것은 나라를 스스로 죽이는 행위이다."라고 할 정도로,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p166 치수는 하늘이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가 능히 잘 다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오로지 삼가며 다른 존재(남)을 해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흐르는 물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할 뿐. 적어도 흐르는 물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할 뿐, 깨끗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할 뿐, 마을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서로 이 마음으로 물을 따르면, 물은 기꺼이 바다로 갈 뿐, 우리는 그저 산을 사랑하고, 강르 사랑할 뿐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것이 치수의 크나큰 핵심이다. 1909년 9월 24일 p170 산이나 강의 수명은 만억 년에 이른다. 30년이나 50년 전은 산과 강의 한순간이다. 사람의 짧은 수명이나 모자란 지식으로 생각하니 30년이나 50년을 옛날처럼 느끼는 것이다. 산은 천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또한 귀중한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의 간섭 따위는 허락하지 않습니다.p183 일본을 보라. 천연을 계발한 것은 없고 되레 천연을 망치는 일에만 급급하다. 그 동안 간신히 물질의 힘을 빌려 조그만 이익을 얻은 자가 많다. 천연이 큰 것을 모른 채, 유한한 물질에 잠시 깃든 힘을 빌려 자질구레한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그 조그만 이익조차 사사로운 것, 자연이 공공에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모른다. 이것이 지금 현재의 모습.p194 '공공하며 서로 돕고 아끼는 생활'을 통해 지역 자치와 '여럿이 어울려' '두루 행복한'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 '자연과 공생'하고 '자연이 모두에게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최대한 살리는 생활을 실천해 나간다. 이것이야말로 다나카 쇼조의 공공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224 금요일(14) 하승철 하동 군수와 인터뷰가 있었다. 군수에게 이책을 선물로 드렸다. 재미있을거라 말한다. 같은 길을 가던 가지 않던 같은 정치가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의 족적을 읽는 것은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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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 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몸살림운동은 내 몸을 바로잡아 건강을 유지하고, 건강한 몸으로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운동입니다. 사단법인 몸살림운동본부 만세협동조합(함양) 선생님들이 함께 합니다. - 언제 :집중운동(자세잡기, 교정) 8월 17일(목), 18일(금), 24일(목), 25일(금) 저녁7시 ~ 8시 30분 평시운동8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7시 ~ 8시 30분 - 어디서 : 그루터기 2층 (구례군 구례읍 봉동길 14) - 모집인원 : 10명 (선착순) - 회비 : 8월 10만원, 9월부터 3만원 * 물어보기 : 010-468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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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 책표지를 보면 놀라움과 의구심이 든다. 과연 이런 차림으로? 이런 차림으로! 그녀는 11명의 자녀와 34명의 손자, 그리고 2명의 증손자가 있었다. 남편과는 35년 살고 이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혼 할 때까지 그녀를 학대하고 구타했다. 우리 가족도 아팔레치안 트레일의 일부인 스모키 마운틴에 간 적이 있다. 차에 트레일을 끌고 트레일에서 며칠을 지내고 트레일을 걸었었다. 1955년 5월 2일 봄날 엠마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트레일에 올랐다.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바람이 부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엠마는 조지아주 오글로트 산에서 출발해 13개 주를 통과했다. 9월 7켤레의 신발을 갈아신고 14키로가 빠진 몸으로 도착점 메인주 캐너린 산 정상에 올랐다. 엠마는 손수 만든 저 보따리에 최소한의 옷과 반창고정도의 비상약, 그리고 음식을 넣었다. 당시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정비도 불량했고 쉼터도 별로 없었다. 가다 뱀에 물린 뻔도 하고 고슴도치와 잠도 자고, 큰 짐승과 곰과도 맞닥뜨렸지만 무사히 넘겼다. 어느날 무엇엔가 물려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끼고 있던 안경은 떨어지고 부서져 반창고로 간신히 붙여 사용했지만 나중에 안경마저 버렸다. 146일동안 폭우는 물론 그곳을 강타한 태풍도 만났다. 태풍에 계곡에 물이 불어나 목까지 잠길 정도로 위험했지만 다행히 두 청년과 양쪽으로 몸을 묶고 간신히 건너기도 했다. 중간에 먹을 것이 없어 야생 딸기로만 배를 채우고, 트레일에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는 낙엽을 깔고 맨바닥에서 잔 적도 있다. 음식이 떨어지고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인근 마을로 내려가 도움을 청했다. 거렁뱅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트레일 시작하는 곳에 다시 데려다 준 사람도 많지만 냉정하게 대한 사람도 있다. 엠마는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가는 곳마다 일기를 썼고 나중에는 애들에게 편지도 보냈다. 종종 시도 썼고 그녀의 고향 갈리폴리스의 한신문에 기고도 했다. 집은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책과 종이롸 작은 실타래들 머리를 다듬는 빗과 솔 반짇고리 바구니와 안락의자 시계와 음악, 성경책 부엌의 화덕과 먹을 거리들 작은 발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들고 나는 소리 마루 위에 널려 있는 자잘한 물건들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 그리고 예쁜 인형들 아이들의 옷과 잠자리 새끼 고양이는 밥을 어서 먹어야지 누군가 어두운 밤 우리를 괴롭히면 강아지는 멍멍거리며 우리를 지켜주지 엄마는 친절하고 다정해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지 그렇지만 가정의 중심은 역시 아빠 가족의 생활을 해결해주고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마음 어떤 시련이 있어도 밝은 가정이 있다면 언제나 친절함과 따뜻함도 함께 있으리 이 시를 읽으면 그렇게 맞으면서도 남편이 아빠라는 이유로 많이 참았던 것 같다. 다른 많은 여자들처럼. 내가 청소하고 단장한 나의 집 내 기운이 다할 때까지 비록 돈은 부족하더라도 모두 다 나 홀로 해내리 그녀의 강한 책임감과 가정에 대한 사랑이 읽힌다. 엠마가 어느날 사라졌지만 가족 중 아무도 그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자기가 할 일을 잘 알아서 하는 사람이고 자식들에게도 늘 그렇게 말했다"고 자식들은 덤덤이 말한다. 그녀가 트레일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지만 차츰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나중에는 그녀가 어디쯤 걷고 있다는 것이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마지막에는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더구나 그녀의 옷차림이나 장비 나이등이 밝혀지며 점점 화재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걷느냐는 질문에 자기는 자연을 사랑하고 트레일을 걸으면 아주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언덕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또 그 너며에는 뭐가 있는지도요." 엠마는 어떤 기자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고독"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디 구간이 제일 좋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야 내려오는 길이지"라고 대답했다. 엠마는 이후 2번이나 더 아팔레치안 트레일을 완주했다. 펜실베니아 베이커트레일에서 80을 보냈고 여려곳에서 장기 야영도 여러번 했다. 일흔살이 된 엠마는 애디론덱 산맥의 여석 개 봉우리에 올랐다. 71살에는 오리건주 탄생 100주년에 맞춰 95일 동안 올드오리건 트레일을 걸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계속 걸었고 캐나다에서도 걸었고....걸어 지구 둘레 절반에 해당하는 2만 2500킬로를 걸었다. 어느 숲에서 만난 인디언은 그녀에게 "숲속에서 별의별 것을 다 보며 살았는데 그중에서 할머니가 가장 이상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텃밭에서 일하고 다음날 몸이 안좋다고 아들 넬슨에게 전화했다. 평생 딱 한 번 병을 앓았던 엄마의 이런 말에 넬슨은 구급차를 불렀다. 다음날 아침 엠마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85세로 세상과 하직했다. 그녀의 묘비명은 엠마 R. 게이트우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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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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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 재밌는 책이다. 시작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저력이 있다. 저자 레티샤 콜롱바니는 프랑스인으로 3권의 책을 썼는데 모두 어려운 여건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특히 인도의 불가촉천민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첫번째 책 '세갈래길'에도 불가촉천민이 나온다. 인도에 관련된 영화나 이야기는 가끔 보고 듣는데 그 삶이 극과 극이다. 'Lion'이란 영화에 나오는 인도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사람도 아름답다. 영화 'vanaja'에서 듣는 인도 음악은 우리나라 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Born into Brothels(꿈꾸는 카메라)은 사창가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인데 화면은 비현실적인데도 아름답고 내용은 너무 슬프다. 촬영 년도가 2006년이니 20년 동안 얼마나 바뀌기는 했을까? 이 영화의 음악을 엘런(당시 자원봉사로 일했던 곳의 대장)의 아들이 작곡했다. 다큐 '인도의 딸'(2015)을 보면 '여자'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어떤지 짐작한다. 인도의 23살 의대생 조티 싱(1989-2012)이 시험이 끝난 후 남자 친구와 저녁에 영화를 관람했다. 이후 버스에 탑승했으나 남자 친구는 구타당하고 여자는 6명에게 강간 당했다. 조티는 창자까지 꺼내진 채로 버스 밖으로 던져졌다. 성폭행범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밤에 남자 친구하고 외출한 게 잘못이다. 인도 문화를 무시한거다. 여자를 음식처럼 길바닥에 놔두면 안된다. 여자는 보석보다 소중하고 다이몬드보다 소중하다. 길에 내놓으면 개가 물어간다. 남자하고 여자가 친구가 되는건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남자와 여자에 교훈을 주려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성폭행 당하는건 죽는 것보다 나쁜일이고 살아도 시체나 같다." 나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이 연을 많이 날렸다. 몇번 날려 본 것 같은데 쉽지 않았다. 바람이 잘 부는 벌판이나 언덕에 올라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바닷가다.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사람은 아직도 존재할까? 그들의 삶은 실제로 이 소설과 비슷할까? 아마도... 알고보면 어느나라나 아직도 불가촉천민의 삶을 사는 이들은 존재한다. 주인공 레나는 학교 선생이었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엄마 생각이 난다. 최고의 선생님이셨으며 내 생애 최고의 스승 나의 엄마!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엄마에게 바치겠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나 혼자 잘먹고 잘 살 궁리보다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는지 배우고 보고 겪고 나서야 한다. 궁리를 안하니 그렇지 발벗고 나설 곳이 많을텐데... 변명은 100가지나 되고 행동 할 이유는 101가지나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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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사람들이 동아리(회원모임)를 지원합니다
- 지리산사람들이 동아리(회원모임)를 지원합니다. 회원님들의 만남과 활동을 북돋우기 위한 지리산사람들의 특별한 결정!! - 지원내용 : 6개월간 매월 10만원씩 지원 요청사항 : 기획을 위해 모인 분들 외에 다른 회원님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동아리 문을 활짝 열어주세요. 1. 3명 이상의 회원님이 모여 2. 어떤 분들과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의논한 후 3-1. QR코드를 인식해 작성해주세요. 3-2. QR코드를 통한 신청서 작성이 어려울 경우 사무실에 방문해 작성해주세요. 4. 보내주신 신청서는 운영위원회 공유 후, 아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바로 지원됩니다. 사무실 주소 : 구례읍 봉서산정길 61-3 물어보기 : 010-2693-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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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사람을 멈추기 전에, 부디 제발
- 저자 강수돌은 196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경영학 분야는 물론, 경제, 정치, 사회, 노동, 심리, 교육, 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좌우명 아래 공부한 것을 ‘나부터’ 실천하고자 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생태 화장실을 사용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교수로 재직할 때 5년 동안 마을 이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자본과 권력에 굴종하지 말고 ‘나답게’ 살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흔히 말하는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탐구해 왔다. 탈(脫) 자본, 탈 경쟁의 교육, 탈 성장의 생활, 소박한 필요의 철학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갈망한다. (알라딘) 전 법무부장관 조국 사태가 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두둔했다. 그러나 그의 팬들 조차 아쉬워했던 점 한가지는 그의 말과 삶의 불일치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의 글은 좌파를 표방했지만, 그의 생활은 그가 말하는 것과 달랐다는 점이다. 말과 행동의 일치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말로는 무엇이 옳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말한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힘들다. 우리의 정치를 보면 언행 불일치의 대표적인 예를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일상이 되어야 할 그 흔하게 말하던 도덕이나 윤리를 지키며 사는 이는 종교의 수도사 정도이다. 소위 성인이라 불린 사람들은 그 좋은 부귀영화를 쓰레기 버리듯 버린 사람들이다. 성인같은 사람을 가끔 보지만 그 스스로 그런 길을 택했다기보다 어쩔 수 없어 살다보니 그 비스름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수돌교수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기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산다. 그는 미리 교수직을 퇴직하고 시골로 내려와 자기가 말했던 것을 실천하며 살려 애쓴다. 아이 셋이 있는 교수가 똥으로 퇴비를 만들며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를 외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크게 생산하고, 더 빨리 소비하는 걸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 자본의 잠식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고 간절히 외친다. "부디, 제발!" 멈추라고. 그가 쓴 이 책은 교과서같다. 교과서는 재미 없지만 지식이 넓혀지는 포만감이 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흥미가 진지하다. 한마디로 누구나 꼭 읽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교과서같이 제발 꼭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지식과 그리고 부디 제발 지켜야 할 상식이 들어있다. 부디 제발 누구나 한번씩 읽기를 권한다. 그는 자본주의 대안으로 '생태자본주의'를 말한다. 생태민주주의를 위한 탈자본 교육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노동력 교육이 아닌 인격체 교육 고교평등화, 대학 평등화, 직업 평등화 생태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 자본주의의 본질과 구조 이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전환 그는 하동 금남면에 살며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녹색평론 함께 읽기' 모임을 하동 주민과 함께 한다. 알아야 하기에 함께 공부하며, 알고 난 후에는 실천하는 삶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몰라서' 않했다, 못했다는 변명은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없다. 달리는 기차의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우리 모두는 왜 멈춰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부디, 제발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기차의 브레이크를 우리 모두 함께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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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사람을 멈추기 전에, 부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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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니멀유목민입니다
- 물건이 아니라 경험에 돈을 쓰며 삶이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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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니멀유목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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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 제목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이 신선하다. 말하자면 Z세대 스타일이다. 나같은 할매도 Z세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2부로 되어있는데 1부는 이혼한 이유이고 2부는 이혼후의 삶이다. 이혼 후 그녀는 요즘 대세 직업인 유부버가 되었다. 있는 자리에서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장 적은 투자로 돈버는 일이다. 물론 어떤 주제를 고르느냐에 따라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수가 방구석, 집구석에서 자기를 파며(dig) 파는(sell) 직업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나도 한때 유투버가 아니라 유투브에 관심을 가졌었다. '한남자가 혼자 집을 진다길래 혹시라도 누군가 참고가 될까해서 동영상을 찍었었다. 혼자 집 짓는 사람은 많지만 '목조경량주택'이라는 원서 매뉴얼대로 짓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세대, 즉 나는 PC 1세대다. 이메일과, 플로피 디스크 부터 시작해 빠르게도 변한 그 추이를 숨가쁘게 따라 왔다. 머리와 손은 굳어지고 전자의 발전은 미친듯이 가속화되어 이제 따라가기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 모든 것을 어디서도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알아온 '고학' 세대다. 이제 고학으론 따라잡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디서 딱 내가 필요한 고것을 가르쳐 주는데도 없다. 그래도 '지리산 자봉거 건축학개론 혼자집짓기'라는 타이틀로 엎로드에 성공했다. 그것도 몇년 전이다. 공사중단으로 유투브도 중단이다. 이제 일년이면 시력이 어마무시 저하되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고통스럽다. 동영상 편집은 불가한 나이다. 지팡이가 되어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앗!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암튼 그녀는 왜? 결혼 1년 만에 이혼했을까? 연애도 했다는데... 1부의 제목이 "며느라기 때려치우고 엄빠집으로 돌아왔다" 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제목은 모든 것을 말한다!) 결혼해 아내가 된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된 것이다. 요즘 풍토와 다르게 시댁과 같이,아니면 최대한 시집밀착형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내보다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남편과 아직도 가부장제의 경로를 고집하는 시부모를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잘했다! 난 모든 이혼에 찬성한다. 결혼도 이혼도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않은가.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엄빠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찾은 일은 '아넵'이란 아디로 이혼vlog유투버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한다. 요즘 '해방'이 유행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그 몫을 단단히 했다고 생각한다. 정지아 소설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아넵의 '결혼 해방일지'... 언제나 나는, 사람은 그 무엇에선가 '해방'되어야 하고 해방된 '자유인'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단 이야기다. 그래서 '해방'이야기는 모두 성공한다. 주위에서 해방된 자유인을 많이 본다. 60넘은 나의 지인 한 아즈매는 어느날 차에 자기 물건 몇개만 싣고 집을 나와 해방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 소원을 이뤘고 지금 너무 좋다고 말한다. 모든 해방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나의 해방일은 지구를 떠나는 날이나 되겠지? 2023년, 개인 우주여행을 예약하는 시대에 아직도 해방을 얘기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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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