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20여년전 일본에서 살 때였다. 나는 도쿄와 치바의 중간쯤에 살았다. 내가 사는 맨션 옆집은 주택이었다. 그 집 마당은 3평 정도였다. 어느 날 심심해서 그 3평의 공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 세어 본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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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그루가 넘었다. 저 작은 평수에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지... 그것도 아주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리고 더 작은 나무가 심겨진 3평짜리 정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땅이 있으면 양껏 심어 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300평이 조금 안 되는 땅에 집을 짓게 되었다. 그 때 생각대로 심고 싶은 나무는 다 심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나무가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겨울 마다 더 이상 공간이 없어 겹치는 나무를 잘라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도 5그루의 큰 나무를 잘라냈다. 대부분 10년 이상 큰 나무들이고 한 때는 내가 애정하는 나무들 이었지만 속절없이 잘려 나가 땔감이 되고 있다. 나는 그 일본인처럼 조화롭게 나무를 심거나 가꾸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우선 정확한 계획이 없었다. 아니 지식이 없었다. 그냥 무작정 심고 싶었던 나무를 심을 터가 있는 곳에 심었던 것이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채워진 욕망은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 어느 해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꿈꾸던 욕망을 해도 괜찮다는 그 문구가 맘에 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이 있다. 채울 수 있는 욕망이 있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인간은 결핍이 생기고 결핍은 결국 불행을 만들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만든다. 프로이트는 그 결핍이나 욕망은 꿈에서 발현되고 그것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기에 무의식 어두운 하드디스크에 꽁꽁 숨겨 두었다가 어느 날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었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거나 많이 심으려고 했던 것도 어느 한 곳의 무의식 속에 결핍에서 나타난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내 고향집엔 나무들이 많았다. 뒷마당에는 아주 큰 나무들이 많았다. 키 큰 전나무와 오동나무 복숭아 나무 그리고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는 큰 감나무였다. 그 나무를 좋아해서 자주 올라가 멀리 해지는 지평선을 바라 보곤 했었다. 저 멀리 바다를 넘어가면 뭐가 있을까?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진다고 어머니는 나무에 올라가 있는 나를 혼냈지만 나무 위에서 나는 항복했었다. 어느 해 키 큰 나무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탱자나무 울타리는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가 많은 집을 욕망했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정도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의 소비를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무를 매년 사고 싶은 만큼 심었으나 결국 점점 만족감이 떨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무를 심어서 얻는 만족감은 0에 수렴했을 때 나무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닌 것이 되었다. 지난 장날에 나가 보니 벌써 묘목이 나와 있었다. 묘목을 살펴보며 오래전 매번 장에서 묘목을 구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많은 묘목 중에 이젠 더 이상 나를 유혹하거나 내가 욕망하는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내 욕망을 채워졌음을 확인했다. 어쩌면 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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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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