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수업 일기 1 -이길 수 없는 싸움

 

박 일 환

 

 

 

넌 맨날 지각이냐?

지각 안 한 날이 더 많은데요?

그래서 잘했다는 거냐?

선생님이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남아서 벌 청소 하고 가.

청소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되나요?

오늘은 일찍 가야 해서요.

갈 데가 왜 그리 많아?

학교만 아니면 갈 데야 많죠.

그럼 학교는 왜 오는 거냐?

졸업하려고요.

졸업은 해서 뭐 하게?

지금까지 다닌 게 억울하잖아요.

억울하면 청소하고 가.

한 번만 봐주세요, 어차피 도망갈 건데.

니가 나를 좀 봐줘라.

 

헤헤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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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대화하는 학생과 선생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심리까지도 세밀화처럼 그려져 떠오른다. 나는 사실 이런 애들이 맘에 든다. 그냥 삐딱하고 순종적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자기 삶을 향한주체적 대응이 맘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응이 매우 논리적이다. 물론 그건 논리라기보다는 말대답일 뿐인데 그게 자신의 주체적 삶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맘에 든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진솔한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적 삶과 연계된 진솔함은 사실 우리 현실 사회의 삶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이처럼 진짜 교육은 학교나 교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부딪히는 현실 삶에 더 많이 있다. 그래서 교사의 교육은 수업 시간보다 수업 외의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좋은 교사란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아닐까. 교육이 무엇인가. 결국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 내자는 것이 아닌가.

달라이라마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 대목이생각나 인용해 본다. “언제고 공교육 기관들이 내가 가슴 교육(Educating Heart)’이라고 부르는 내용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기본적인 학문에 적절히 숙달될 필요를 우리 모두 인정하듯이 아이들이 학교 커리큘럼으로 사랑, 자비, 정의, 용서 같은 내적 가치들의 필요불가피성을 배우는 그런 때가 오기를 나는 희망한다.”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내적 가치들을 학교 커리큘럼으로 넣어서 가르치는 시절이 온다면 위 시 속의 화자 박일환 선생 같은 사람이 바로 적임의 교사일 것이다. ‘니가 나를 좀 봐줘라라는 말에 담겨 있는 것처럼 아이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가장 적절한 대화를 거짓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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