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1(화)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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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체코인이 아니고 유대인이었다.

독일 국민은 아니었지만, 독일어를 사용했다.

태어나서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카프카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되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는 힘든 외판원을 하며 가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레가 되어 버리자 가족은효용이 사라진 그레고르 잠자를 처음에 보살피지만 결국

냉대하고 사라지기를 원한다.

 

결국엔 그는 벌레로 죽는다.

고레고르가 죽자 가족은 평안함을 느끼고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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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친절한 소설이 아니고 읽고 나서도 개운한 소설도 아닌 데다가

쉽게 해석되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오히려 카프가의 소설보다는

무라까미 하루끼가 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 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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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은 15살의 남자아이다.

그는 15살이 되자 본인의 이름을 카프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은 네 탓이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예언 탓도 아니고, 저주 탓도 아니지. DNA탓도 아니고, 부조리 탓도 아니고, 구조주의 탓도 아니고, 제 3차 산업혁명 탓도 아니야.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바람은 불지. 미친 듯이 불어대는 강한 바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있어. 그러나 모든 바람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져. 바람은 물체가 아니야. 그것은 이동하는 공기의 총칭에 지나지 않아. 너는 귀를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거야."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함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가 자신의 효용이 다하는 날이 온다.

즉 인간 존재에 대한 상실하는 순간 말이다.

 

그것이 언제인가?

그레고르 잠자는 더 이상 가장으로 돈을 벌지 못하자 효용이 다한다.

효용이 다하자 그동안 사업에 실패하고 무기력했던 아버지는 다시 직장을 나간다.

어머니는 하숙을 한다. 활력이 없던 가족은 가장역할을 하던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어 버리자 다시 활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레고리는 하기 싫던 억지로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무실 주변엔 구례 병원 요양병원이 있는데

가끔 병원에 갈 때 요양병원 안 병실을 보게 된다.

한 방에 4~6명의 누워 있는 사람들

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이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누군가 죽어 나가면 빈 침대엔 새로운 인간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카프카가 이 병실을 보았다면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말한 변신한 그레고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부분 가족은 요양병원에 가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가족에서 돌보기 어려우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처음에 자주 찾아가지만, 점점 방문이 줄어든다.

 

주말엔 항상 일이 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에서 수년을 요양병원에 있게 되면

슬슬 이제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있는 가족이 죽게 되면

홀가분한 생각을 하게 되고 밀어둔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효용을 가지고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효용이 없는 인간은 잉여 인간이 되고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다.

폐기 처분 되지 않는 방법은 병들지 않아야 하며 돈을 벌거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노인들은 공공 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바쁘다.

자신이 아직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장들이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평생 하기도 싫은 일에 매달린다.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어쩌면 폭력에 가까운 압박에 의해 어쩔 수없이

지친 하루하루를 숙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가 벌레가 되어 버리면 폐기 처리가 될 운명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레고르의 시체를 확인한 어머니는, 비로소 그의 몸이 납작하게 말라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누이동생은 이따금 아버지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가족 테이블에 앉아, 세 통의 결근계를 작성했다.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여러 달 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 소풍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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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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