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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종말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다. 겨우 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인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손이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만 그때서야 채소를 먹어 볼까 하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만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을 하며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하지만 성장기에 접어들고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하다 그렇게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모종도 이미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 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처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식당을 유지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 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레인의 지나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게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들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거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는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고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화되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는 제레미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기 때문이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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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이라면 그것도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미술이나 문학이나 뭐든 작품의 원작은 무엇일까? 소설은 이 질문을 던진다. 사진이 작품이 되었다면 그 사진의 원작은 배경으로 나온 자연? 아니면 그 속의 인물? 아니면 찍은 사람? 원작은 반드시 불태워 없애버리는 재단에 초대를 받은 작가의 여정은 흥미롭다. 실수와 사고로 일이 꼬이는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듯 초조하다.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화재를 통과하는데 과연 경험일까 상상일까도 궁금하다. 가끔 신문보도에서 접하는 뉴스이기는 하지만 많은 재산을 개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개를 싫어한다면 혹, 좋아한다면 읽는 기분이 달라질까도 궁금하다. 난 개를 키우지만 개가 신기한 동물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를 너무 좋아해서 싫다. 하필 작품의 이름의 'R의 똥'!(R은 개 이름의 첫자) 윤고은 만세!! 작품을 불태우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에서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불타고 있으니 내게로 넘어온 그녀의 작품이 원작이 되었다. 이 똥같은, 내가 끄적거리는 이런 독후감은(읽는 사람도 없고, 또 없길 바래지만) 나를 떠나 누구에게 불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쳐 박히기를 바라며 독후감은 똥통에! ** 다른 이야기 작품명: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 보관됨 생산및 밀봉 일자: 1961년 5월 이 작품은 작가의 진짜 똥이 들어있고 다 팔렸고 아직 유수의 미술관에 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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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추억
초등학교 6학년쯤 파묘하는 것을 직접 본 기억이 있다. 동네 앞산에서 놀고 있는데 아저씨 몇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봤더니 파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파묘> 다른 친구들은 모두 무섭다고 도망갔는데 호기심이 강했던 나는 상세하게 옆에서 지켜봤다. 아주 오래전 무덤인데 뼈가 그대로 있었다. 당연히 해골도 그대로였다. 머리카락도 보였다. 보는 것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그 산에 지나칠 때마다 항상 생각이 났고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그리고 생각나는 장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초장(초분)이다. 회 먹을 때 먹는 초장이 아니라 사람이 죽었을 때 나무나 땅 위에 평상처럼 만들어 그 위에다가 시체를 두고 풀로 덮어 두는 것이다. 오래전 정읍에 어느 산에서 초분을 본 적이 있다. 외사촌 형과 사냥을 갔다가 혼자 산을 돌아다니는데 초분을 발견하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초분은 삼국사기에도 나와 있는 오래된 풍습 중에 하나이고 초분에다 시체를 두었다가 살이 썩고 나면 뼈만 취해서 무덤에 묻는 방식이다. 초분이 정식 명칭이고 전라도 서쪽에서는 아마도 초장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산에서 풀로 덮은 시체를 봤다고 했을 때 동네 어른들이 초장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장면을 봤을 때가 1980년대였는데 그때까지도 초분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1970년대까지 섬이나 서해안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고 새마을 운동 이후에 금지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1980년대에도 꽤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은 결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파묘도 무섭지만 오래된 초분은 더 무섭다. 초분은 보통 2-3년 이후에는 묘를 써야 하는데 그 초분은 거의 시체가 다 보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숲에서 초분을 만났을 때 내 달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던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초분이라는 영화가 1970년대에 있었다. 이두용감독의 김희라가 주연이었다. <영화초분> [영화초분 남해 초도의 어부 소돌은 5년전 친구 살해사건으로 복역하던 중에 모친상을 당해 간수와 동반하여 7일간의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난데없이 5년전의 시체가 떠올라 미역밭에 미역이 썩자 인심이 흉흉해져서 모든 것을 소돌이의 탓으로 여긴다. 소돌의 난처함을 보고 간수는 5년전의 사건을 조사한다. 뭍으로 나가려는 젊은이와 관광개발지로 팔려는 섬의 정신적인 지배자인 당무당과, 섬과 초분을 지키려는 노인들간의 대립이 한창일 때 간수가 당무당의 부정을 당국에 알리자, 당무당은 혼령의 환영에 쫓겨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소돌의 조카 임자만이 소돌을 대신하여 섬을 지킨다.] 초분을 행하는 이유는, 마땅한 묘자리가 없어 임시로 밭 어귀나 마을 뒷산 등에 가매장(假埋葬)하고자 할 때, 죽은 사람과 묘를 쓰고자 하는 땅의 운세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죽은 사람이 초분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때 등 다양하다. 또한 음력 정월과 2월에 사망한 경우, 이 시기에 흙을 파헤쳐서는 안 된다는 속신 때문에 초분을 행하기도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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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해방일지
20여년전 일본에서 살 때였다. 나는 도쿄와 치바의 중간쯤에 살았다. 내가 사는 맨션 옆집은 주택이었다. 그 집 마당은 3평 정도였다. 어느 날 심심해서 그 3평의 공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 세어 본적이 있다. 무려 50그루가 넘었다. 저 작은 평수에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지... 그것도 아주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리고 더 작은 나무가 심겨진 3평짜리 정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땅이 있으면 양껏 심어 보자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300평이 조금 안 되는 땅에 집을 짓게 되었다. 그 때 생각대로 심고 싶은 나무는 다 심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나무가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겨울 마다 더 이상 공간이 없어 겹치는 나무를 잘라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도 5그루의 큰 나무를 잘라냈다. 대부분 10년 이상 큰 나무들이고 한 때는 내가 애정하는 나무들 이었지만 속절없이 잘려 나가 땔감이 되고 있다. 나는 그 일본인처럼 조화롭게 나무를 심거나 가꾸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우선 정확한 계획이 없었다. 아니 지식이 없었다. 그냥 무작정 심고 싶었던 나무를 심을 터가 있는 곳에 심었던 것이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채워진 욕망은 다시 채울 필요가 없다. 어느 해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꿈꾸던 욕망을 해도 괜찮다는 그 문구가 맘에 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이 있다. 채울 수 있는 욕망이 있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인간은 결핍이 생기고 결핍은 결국 불행을 만들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만든다. 프로이트는 그 결핍이나 욕망은 꿈에서 발현되고 그것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기에 무의식 어두운 하드디스크에 꽁꽁 숨겨 두었다가 어느 날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었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거나 많이 심으려고 했던 것도 어느 한 곳의 무의식 속에 결핍에서 나타난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내 고향집엔 나무들이 많았다. 뒷마당에는 아주 큰 나무들이 많았다. 키 큰 전나무와 오동나무 복숭아 나무 그리고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는 큰 감나무였다. 그 나무를 좋아해서 자주 올라가 멀리 해지는 지평선을 바라 보곤 했었다. 저 멀리 바다를 넘어가면 뭐가 있을까?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진다고 어머니는 나무에 올라가 있는 나를 혼냈지만 나무 위에서 나는 항복했었다. 어느 해 키 큰 나무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탱자나무 울타리는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가 많은 집을 욕망했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정도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의 소비를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무를 매년 사고 싶은 만큼 심었으나 결국 점점 만족감이 떨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무를 심어서 얻는 만족감은 0에 수렴했을 때 나무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닌 것이 되었다. 지난 장날에 나가 보니 벌써 묘목이 나와 있었다. 묘목을 살펴보며 오래전 매번 장에서 묘목을 구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많은 묘목 중에 이젠 더 이상 나를 유혹하거나 내가 욕망하는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내 욕망을 채워졌음을 확인했다. 어쩌면 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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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봉 소리에 뒤집어진 크리스마스의 추억
곧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40여 년 전만 해도 특별하게 놀이가 없었던 시골마을에서 동네 교회에서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연극은 꽤 인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극은 대부분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날의 상황을 연극으로 만드는데 내가 그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교회에 다니지도 않던 내가 연극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랬다.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친구 녀석이 자꾸 교회에 가자고 하여 딱 하루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날 크리스마스 연극의 배역을 정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여관주인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는 바로 그 여관 주인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관 주인의 부인 때문이었다. 부인 배역을 맡은 아이는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모두들 부러워한 이유는 바로 그 아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딸 역할로 나오는 아이도 너무 예쁜 아이여서 모두들 부러워 했다. 결국 나는 그 역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데 모세나 동방 박사 역을 맡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날부터 학교가 파하면 교회로 달려 가서 한 달 동안이나 연습했다. 특별하게 대사도 많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연극인 데다 첫 장면이 바로 나부터 시작해서 긴장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당시 최고 미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나의 첫 대사는 "여보"였다. 막이 오르고 여관 주인이 중앙에 앉아 있으면 내가 달려가서 '여봉'하고 최대한 간지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었다. 40년 전 당시 상황에서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 '여봉~~'하면서 간지럽게 대사를 하는 것은 파격적인 대사였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연습을 한 대사도 바로 그 대사다. 사실 지금 기억나는 유일한 대사도 바로 그 여보 소리였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시골 마을의 크리스마스…. 흰 눈이 펑펑 내렸고 오후 7시가 되면 연극은 막을 올리게 되었다. 연극 의상은 아랍인들의 전통 의상인 머리에 두르는 헤자브를 해야 하는데 헤자브를 할 것이 없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보자기를 둘러 썼는데 나일론 보자기가 미끌미끌해서인지 일반 끈은 자꾸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 바로 고무줄이었다. 탄탄하게 검정 고무줄로 고리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단단히 조여맸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고 잠시 장내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막이 오르고 내가 뛰어가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당대 우리 학교 최고 미인에게 '여보옹…'이라는 대사를 해야 한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헤자브의 끝이 밟혔다. 그 순간 머리를 죄고 있던 고무줄이 총알처럼 관중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시 헤자브를 할 수도 없어 헤자브로 사용했던 보자기를 관중석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달려가서 '여봉~~' 외쳤다. 내가 너무 느글 거리는 소리로 여보 소리를 외쳐서 그런지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됐어, 역시 난 연극을 잘해"라고 속으로 흡족해 했다. 연극이 끝나고 왜 그렇게 웃었냐고 물었더니 매년 동일하게 진행되는 연극에서 내가 헤자브로 사용하던 보자기를 던져버리고 달려가는 모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대사로 웃긴 것이 아니라 보자기를 던진 것 때문에 웃겼다는 것 때문에 실망이었지만 결과는 웃겼으니 내 역할은 제대로 한 것이었다. 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렸고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면 보냈던 크리스마스 이브는 유일하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날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날의 긴장하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과 처음 여보 소리를 하면서 느꼈던 묘한 흥분과 부끄러움이 생각난다. 그때 나랑 함께 연극에서 부인으로 나왔던 동창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지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 검정 고무줄을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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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
엊그제는 영화보고 울고 오늘은 책보며 운다. 여인숙 달방에 사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마음 쓰는 작가 이강산 때문에 눈물난다. 이 사람은 아마도 천사의 변신 아니면 분신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인가. 모두가 한순간만이라도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이틀 내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면서 그 답변을 궁구하는데 몰입했다." p116 "마른 수세미처럼 생이 고갈된 자신을 살리는 이유는 죽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p123 겨울 방에 물이 어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이사람에게 눈물이 난다. 그이 다큐 사진 여인숙 펀딩에 참여해 책을 받았지만 사실 보지 않았다. 보나마나 음울하고 우울한 인간의 삶이 흑백으로 찍혀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다보니 그 사진책이 궁금해 펼쳐본다. " 행복, 희망, 자유, 평화, 인권.인간의 근원적 특성을 포괄하는 추상어들.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담긴 낱말이다. 이것을 달방 가족들이 여인숙에서 살아가는 동안 입에 담을 기회가 올까. 그것은 언제일까.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전 내내 이 화두에 집착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일이 좀더 명확해지는 듯해서 마음이 고무되었다.p102 "나는 휴먼다큐 기획 의도를 소리내어 읽었다. 사회적 소외와 외면의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고 공존과 상생, 인권과 평화를 도모함"p195 이런 사람의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또 자기 마누라의 심정을 헤아리는 그를 보며 그러기에 부부로 살아가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한때 존경했던 분은 고 제정구씨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나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 그들의 열악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제정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이강산이 그런 사람이다. "몇번을 생각해 보았으나 휴먼다큐 여인숙 촬영이 먼저가 아니었다. 나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을 우선 살리고, 그들이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 먼저였다. 그들은 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아니라 내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는게 옳다는 판단이었다."p159 내가 한때 같이 놀아줬던 소년원의 아이들과 공주치료감호소의 환자들과 카토릭워커하우스에 밥 먹으러 오던 미국인들 생각이 난다. 이들도 국가에서 주는 생활비를 받아 살아갔지만 와서 먹는 점심은 풍성했다. 또 저녁까지 가져 갈 수 있었다. 나라가 부자니 가난도 질이 다르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술과 담배가 문제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최악으로 치닫는다. "인철 아우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휘청거리며 역전 쪽으로 난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두커니 지켜보는 인철 아우의 뒷모습에 언뜻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짐승이 오보랩되엇다. 푹설로 양식과 길을 잃은 숲속의 짐승. 가슴속 어딘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 겨울, 나는 지금 어는 숲에 서 있는지, 나는 짐승인지, 인간인지,"p155 "승기 형은 운동을 핑계 삼아 여인숙 골목을 걸을 때 외에는 종일 방에 누워 지낸다. 어쩌다 맥주를 마시는 일도 잇으나 대개는 매월 생계급여 받는 날, 하루뿐이다. 맥주를 두 번 마시는 순간, 그 금액만큼의 밥을 굶어야 한다. 형이 자신을 유폐시킨것처럼 방에 누워 지내는 까닭을 나는 여실히 안다. 허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형을 비롯해 많은 달방 가족들이 외출이나 실내 운동 따위의 움직임을 최소로 줄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p238 "형이 다리가 불편한 탓에 주차장 바닥에 앉혀두고 내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흘려주는 식으로 한 시간 남짓 닦앗다. 발톱은 싯누런 무좀 기운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손톱깍기로 해결이 되지 않아서 다음주에 철사를 자르는 니퍼를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발등부터 발바닥까지 덕지덕지 쌓인 때를 벗기는 일은 하루로 부족했다. 당장은 냄새를 지우는 정도로 끝냈으나 며칠 더 닦기로 약속했다. "p303 "진실한 인간관계는 시간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p264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며 최대의 프로파간다."p269 사람은 다 인간이라 불리지만 그 시간은 다 다르게 흘러간다. 인간다운 시간이란 어떤 시간인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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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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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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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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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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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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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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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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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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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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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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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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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워 하는 마음
-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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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요양병원
-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헤르만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체코인이 아니고 유대인이었다. 독일 국민은 아니었지만, 독일어를 사용했다. 태어나서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카프카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되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는 힘든 외판원을 하며 가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레가 되어 버리자 가족은효용이 사라진 그레고르 잠자를 처음에 보살피지만 결국 냉대하고 사라지기를 원한다. 결국엔 그는 벌레로 죽는다. 고레고르가 죽자 가족은 평안함을 느끼고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친절한 소설이 아니고 읽고 나서도 개운한 소설도 아닌 데다가 쉽게 해석되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오히려 카프가의 소설보다는 무라까미 하루끼가 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 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은 15살의 남자아이다. 그는 15살이 되자 본인의 이름을 카프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은 네 탓이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예언 탓도 아니고, 저주 탓도 아니지. DNA탓도 아니고, 부조리 탓도 아니고, 구조주의 탓도 아니고, 제 3차 산업혁명 탓도 아니야.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바람은 불지. 미친 듯이 불어대는 강한 바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있어. 그러나 모든 바람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져. 바람은 물체가 아니야. 그것은 이동하는 공기의 총칭에 지나지 않아. 너는 귀를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거야."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함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가 자신의 효용이 다하는 날이 온다. 즉 인간 존재에 대한 상실하는 순간 말이다. 그것이 언제인가? 그레고르 잠자는 더 이상 가장으로 돈을 벌지 못하자 효용이 다한다. 효용이 다하자 그동안 사업에 실패하고 무기력했던 아버지는 다시 직장을 나간다. 어머니는 하숙을 한다. 활력이 없던 가족은 가장역할을 하던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어 버리자 다시 활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레고리는 하기 싫던 억지로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무실 주변엔 구례 병원 요양병원이 있는데 가끔 병원에 갈 때 요양병원 안 병실을 보게 된다. 한 방에 4~6명의 누워 있는 사람들 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이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누군가 죽어 나가면 빈 침대엔 새로운 인간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카프카가 이 병실을 보았다면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말한 변신한 그레고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부분 가족은 요양병원에 가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가족에서 돌보기 어려우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처음에 자주 찾아가지만, 점점 방문이 줄어든다. 주말엔 항상 일이 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에서 수년을 요양병원에 있게 되면 슬슬 이제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있는 가족이 죽게 되면 홀가분한 생각을 하게 되고 밀어둔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효용을 가지고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효용이 없는 인간은 잉여 인간이 되고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다. 폐기 처분 되지 않는 방법은 병들지 않아야 하며 돈을 벌거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노인들은 공공 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바쁘다. 자신이 아직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장들이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평생 하기도 싫은 일에 매달린다.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어쩌면 폭력에 가까운 압박에 의해 어쩔 수없이 지친 하루하루를 숙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가 벌레가 되어 버리면 폐기 처리가 될 운명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레고르의 시체를 확인한 어머니는, 비로소 그의 몸이 납작하게 말라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누이동생은 이따금 아버지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가족 테이블에 앉아, 세 통의 결근계를 작성했다.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여러 달 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 소풍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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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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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한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 12월 중순인데도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였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 금대산(金臺山, 851.5m)으로 오르는 산길 길섶에는 쑥부쟁이의 연보라색 꽃이 반갑게 남아 있었다. 함양 마천면은 예로부터 지리산 가는 으뜸 관문이었으며, 지리산을 조망하는 이름난 전망대가 많았다. 오도재 위의 삼봉산과 마천의 임천(瀶川)을 내려다보는 금대산 등, 이 지역은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에서 지리산을 전망하기 좋은 지형이다. 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 위 전망(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은 임천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어서 산줄기로는 지리산 주능선에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금대산에 있는 금대암과 안국사 등의 사찰을 지리산 절집으로 기록했다. 임천강 물줄기의 근원을 지리산의 만복대 반야봉과 노고단 등의 지리산 주능선으로 보았고, 지리산의 개념을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합하여 이해한 것이다. 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은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로 알려져 왔다. 지리산에서 이곳 금대산 또는 금대암이 으뜸가는 전망대라는 의미이다. 부처가 앉는 자리인 연화대를 금대라고 하는데,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 정토에서 공덕이 으뜸인 자에게 앉게 하는 자리를 금대라고도 한다. 마천면의 임천 옆 도로에서 건너편 도마 마을의 그림처럼 펼쳐진 다랑논 논배미를 보며 금대암까지 2.5km의 임도를 올라갔다. 이 임도의 중간 지점에 안국사로 향가는 갈림길이 있다. 금대암 가는 임도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으며 산줄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금대암에 이르면 암자 앞에 높이 40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고 수령이라는 전나무가 눈에 띈다. 이 전나무가 지리산의 기상을 표상하는 듯하다. 나한전 옆에 집채만 하게 우람한 너럭바위 윗면은 천연 좌대(坐臺)로서 이곳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장엄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함양 마천면을 중심으로 활처럼 휘어져 생동감 넘치는 전망이 펼쳐졌다. 함양 금대암 앞 전망(사진 이완우) 금대암에는 도선 국사의 일화(逸話)가 전해온다. 그가 지리산 여러 곳을 돌아보며 수행하면서 이곳 금대암 너럭바위에 이르러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보았다. 그는 사흘 동안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도선 국사는 이곳에 머물러서 이 바위 옆에 나한전을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 관리나 선비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함양에서 지리산의 유산(遊山)을 출발하는 사례가 많았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 유산은 심성 수양의 실천과 탐구의 과정이었다.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두류기행록'에 의하면 그가 이곳 금대암을 방문(1489년 4월 16일)하여 승려들의 범패 수련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 승려가 물을 긷고 있었다. 뜰에는 모란 몇 그루가 있어 반쯤 시들었어도 매우 붉었다. 승려 20여 명이 뒤따르며 범패를 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금대암이 범패의 정진 도량이라고 한다. 그 법이 정일하여 잡됨이 없고, 나아가되 물러섬이 없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매진한다고 했다. 함양 금대산 능선길 암괴 천연 방장(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 지역은 신라의 정치 세력과 관련이 깊다. 태종 무열왕 때인 656년에 이 산에 안국사와 금대암을 함께 창건하였다. 이곳 금대암에서 임천 건너 내려다보이는 군자리에 있었던 군자사(君子寺)는 태종 무열왕의 외조부인 진평왕이 어린 시절 3년간 머물렀던 잠저 터이다. 군자사는 천년 사찰로 조선 시대 중기까지 건재하였고, 금대암과 군자사는 지리산 유람을 시작하는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에 선비나 관리들은 금대산 금대암에서 지리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을 내려가 군자사에 며칠씩 머물기도 하였다. 유서 깊은 천년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군사사터를 금대암에서 가늠해 본다.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유두류산기'에 그가 지리산을 유산하며 군자사에 머물렀던 기록을 남겼다. 대전(大展)과 방옥(房屋)이 모두 매우 크고 화려하다. 절 서편에는 새로 지은 별전이 하나 있는데 금빛과 푸른빛으로 화려하게 단청하였고 '삼영당(三影堂)'이라 한다. 이 당 안에는 청허(淸虛), 사명(四溟)과 청매(靑梅) 세 대사의 진영(眞影)이 있다. 금대산 정상 금대 암릉(사진 이완우) 금대산 정상은 금대암에서 0.7km 능선 길을 올라가야 한다. 함양 마천면 지역은 노출된 바위와 기반암이 검은색이 짙은 석질이 좋은 마천석 화강암이다. 산 능선에 돌출한 검은색 화강암 바위들은 품격이 출중하다. 산 능선 산길 양쪽에 집채만 한 바위가 비스듬히 맞대 산길이 천연 방장을 이루고 있다. 비바람을 피하며 머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되겠다. 금대산 산마루에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앉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가깝게 등구 마을이 보이고, 오도재가 보였다. 휴천면으로 흐르는 임천강이 보이고, 천왕봉 아래 칠선 계곡이 보였다. 지리산 천왕봉, 중봉, 제석봉에서 노고단까지 생동감 넘치는 기상으로 주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금대산 정상에서 백운산(白雲山, 903m)으로 향하는 1km의 능선 길은 돌출된 바위와 울창한 숲을 지난다. 백운산 정상은 나무들이 무성하여 지리산 조망이 쉽지 않았다. 지리산은 청산으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데, 백운산은 흰 구름이 오고 가고 있으며 한가로웠다. 금대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 구간은 지리산의 동부능선에서 서북능선까지 잘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힌다. 금대산 정상 지리산 조망(사진 이완우) 백운산에서 손에 잡힐 듯한 풍경으로 오도재와 삼봉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으로 되돌아왔다. 금대산에서 안국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지름길은 조릿대 군락 사이로 오솔길이 선명했다. 조릿대 잎이 숲속 바람에 흔들리는데, 습기 머금은 오솔길의 황토색 토양은 먼지 없이 깨끗하였다. 금대산을 내려오면서 내내 생각해 보았다. 금대산이 지리산의 드높고 맑은 기상을 품고 싶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염원이 서린 산이 아니었을까? 금대산과 금대암의 시대를 초월하여 금빛으로 빛나는 '금대(金臺)'에서 속세의 인연으로는 태종 무열왕의 사위가 되는 원효 대사의 정토 사상이 연꽃 향기처럼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지리산 여느 산줄기의 등산은 수려한 지리산 자연의 풍광에 더하여 역사와 설화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인문학적 유산(遊山)으로서 의미가 가치가 새롭다. 임천강변의 우람한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의 표지석은 지리산 제일 전망대로 여겨지는 금대산 탐방의 설레는 시점이며 뿌듯한 종점이었다. 지리방장 제일금대 표지석(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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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한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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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밤이 가장 긴 날, 동지를 지나면 음에서 양으로 흐름이 바뀌고 태양이 다시 살아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시기, 지리산 이웃들 함께 붉은 팥죽 쑤어 먹으며 세상 악귀 몰아내요. 어려운 일은 나누고 서로 등을 도닥여주어요. 길가의 풀들도 숲속의 고라니도 새해를 준비하는 때, 우리들의 새 마음을 이야기해요. 2023년 12월 22일(금) 동짓날 11:30~15:30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11시30분동지팥죽 나누어 먹어요 12시30분지리산권 5개시군 현안 공유 / 「나의 지리산 선언」 갈무리 / 2024년 나와 지리산 물어보기 010-9996-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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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지리산 화엄사 범음료] 2023 지리산동지모임 ‘다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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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 사찰에서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하였다니
- 절기로는 대설(大雪)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아침은 늦가을 같았다. 함양 마천면의 임천(瀶川)강 옆 도로에서 지리산 안국사로 올라가는 1.3km의 산길은 맑은 바람의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강 건너 도마 마을의 다랑논이 아침 안개 어린 풍경 속에 그윽하게 보였다. 지리산 임천 풍경[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851.5m) 자락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지리산을 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603~661) 때인 656년에 창건되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안정된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함양 안국사는 그 이름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무열왕의 의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지리산 안국사[사진 이완우] 함양 안국사는 조선 시대 후기에 어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한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保幼新編) 편찬하여 민간에 널리 보급한 의미 있는 곳이다. 지리산의 작은 사찰에 전해오는 이 소중한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보는 탐방을 하였다. 보유신편은 1843년에 성주 독용산성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에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곳 함양 안국사의 승려 정훈(正訓)이 1844년에 이 초간본 보유신편을 가져와서 이 지역 함양의 유학자인 노광리(盧光履, 1775~1856)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책을 세상의 의자(醫者)들이 실속 없는 책으로 보니 오래 지나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이에 재산을 털어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한마디 말씀을 적어주시어 책머리에 올리게 해 주십시오. 집집이 이 책을 소장하고 활용한다면, 어린이는 병을 고쳐서 자비의 배를 타고 장수(長壽)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곳 함양 안국사에서 1845년 칠석날에 노광리의 서문을 붙인 소아과 목판본 의서 보유신편(保幼新編)을 중간(重刊)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그런데 이 보유신편 책자는 성주와 함양의 안국사 두 사찰에서 간행되기 200년 전에 대전에서 신만(申曼, 1620~1669)이 써서 전해오던 책이었다. 논문 '주촌 신만의 보유신편 편찬과 주촌신방'(양승률, 2012)에 보유신편의 저자인 신만과 이 책이 써진 과정이 잘 밝혀져 있다. 대전 지역에는 고려말부터 그 지역의 한 유력 가문에 의해 미륵원이 건립되어 여행자들의 숙식과 의료를 제공하였었다. 이런 적선 활동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서 백성을 위해 약방문과 우리말 약초 이름을 정리하고 복용법 등을 쉽게 제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전경[사진 이완우] 신만은 병자호란 후 송시열 문하에서 학업 하였는데, 외아들이 천연두에 감염 사망하였다. 그는 향촌민의 질병과 고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용적인 의약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신만은 미륵원의 적선 전통이 의국(醫局)으로 운영되며 전해오는 대전 지역의 진잠 주촌(현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직접 약초 재배와 임상 등을 연구하고 소아의 질병 대처 방안을 많이 처방하여 보유신편을 저술했다. 이렇게 17세기 중반에 쓰인 소아과 의서인 보유신편을 200년 후인 19세기 중반에 상주의 안국사에서 간행하였고, 사찰 이름이 같은 함양의 안국사에서 지방의 유림과 사찰이 서로 소통하고 협조하여 백성들에게 필요한 의서를 간행하여 향촌에 유포하였다. 지리산 안국사 풍경[사진 이완우] 어른 열 명은 고칠지언정 소아 한 명은 고치기 어렵다. 소아는 오장 육부가 취약하고 기혈이 안정되지 않았다. 경락, 혈맥과 숨결이 가는 실과 같아서 허하기도 하며 실하기도 쉽고, 냉했다가 실해지기도 한다. 소아는 증상을 말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아픈 곳을 가리키지도 못한다. 이러한 동기로 17세기 후반에 신만이 보유신편을 집필하고, 19세기 중반에 상주 안국사와 함양 안국사에서 이 책자를 간행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소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우리나라에 안국사(寺)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사찰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들 사찰은 이름부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을 담고 있는데, 나라 국(國)은 왕조 시대에는 임금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발간한 함양 안국사에서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안국(安國)의 마음을 실천하였다. 지리산 안국사는 새롭게 전각을 건립하고 도량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찰 입구에 있는 고색창연한 4기의 부도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홍시가 매달린 낙엽 진 감나무와 색다른 대조를 이루었다.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한 소중한 역사가 전해오고 있는 함양의 안국사는 지리산의 산줄기에 잘 어울리는 마음이 넉넉한 사찰이었다. 지리산 안국사 감나무[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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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 사찰에서 소아과 전문 의서를 간행하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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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 바다의 남덕유산
- 지리산 바래봉 기슭 면양 목장의 봄날 철쭉 개화 풍경이다. 면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철쭉들은 군데군데 남겨 놓았다. 거친 풀섶과 관목이 면양들에 의해 정리되어 잔디를 깎은 것처럼 철쭉 핀 풍경이 단정했다. [단정한 풍경(사진 류요선). 1996년 봄] 지리산 반야봉의 중봉 정상 부근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덕유산의 아침 풍경을 기다렸다. 구름 바다 위에 잔잔한 색조의 아침 노을이 펼쳐졌다. 멀리 남덕유산과 무룡산이 은은하고 가까이는 함양의 삼봉산이 고요하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원경(사진 류요선). 1997년 현충일 다음날] 지리산 바래봉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샘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자리를 잡고 야영 텐트를 쳤다. 여름날 더위를 식히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다고 이 풍경을 만났다. 얼른 텐트로 가서 사진기를 챙겨 왔다. 오른쪽 끝에 노고단이 살짝 보이고 중간에 반야봉이 높이 솟아 구름을 산록에 걸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토끼봉과 명선봉 등이 구름 띠를 허리에 두르고 한가롭다. [지리산 바래봉 기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여름 운무(사진 류요선).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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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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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 바다의 남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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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나눔 완료
- [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LP판 어딘가에서 잘 쓰여졌으면 좋겠네요. 가장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네요. 필요하신 분 문자로 연락주세요~~ ===나눔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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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이야기/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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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나눔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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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가 정말 싫어
- 저자 이푸른은 학교가 다니기 싫어 때려 치웠다고 한다. 일찌감치! 아마도 초딩때? 우리 막내도 아침 8시에 집에서 나가면 10분이면 가는 학교를 9시 넘어 맨날 지각했단다. 나중에 선생이 말해줘서 알았다. 무슨 선생이 엄마가 찾아가기 전까지 연락도 안해준단 말인가. 왜 그랬냐니, 산으로 돌아가서 그랬단다. 암튼 우리 막내도 학교 일찌감치 때려치고 이 책 저자 이푸른같이 홈스쿨링을 했으면 어땠을까? 이푸른의 홈스쿨링 시간표는 운동 영어(수학) 책읽기가 끝이다. 요일마다 운동의 종류가 다르고 영어는 수학과 하루씩 교대고 책읽기는 매일이다. 아빠는 집에서 애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엄마는 직장이 따로 있다. 출판업? 개에게 시쿤둥하던 아빠가 개에게 관심과 정을 주는 이야기다. 챕터마다 제목이 재미있다. 유명한 영화나 책, 드라마의 패러디. 이푸른의 친구가 그린 그림도 재밌다. 그냥 제목보고 만화만 봐도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나는 수준이 동화책이다. 노벨수상작가 아니에르노의 '세월'을 읽다가 이 책을 순독(순식간에 완독)했다. 그녀의 세월과 내 세월이 같을 수는 없겠지. 난 그녀같이 부지런하지 않아 매 순간을 글로 남기지 못한다. 이렇게 내 세월도 가고 끝이 보인다. 앞으로 5-10년 나의 종말이 궁금하다. 사실 나도 개가 정말 싫다. 고양이도 싫다. 다 싫다. 그냥 어쩌다 우리집에 갸들과 살게 되어 같이 산다. 그나저나 우리개 호두는 술찌끼먹고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몸이 큰 두부는 비틀거리면서 기분이 좋아 이리저리 개기는데 몸이 작고 털만 많은 호두는 뻗었다.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벌써 니가 눈에 밟힌다. 어흑,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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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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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가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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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고백
- 나혜석은 (1897-1945)은 소위 '신여성'이라 불리는 여자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내 또래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겠다. 그녀는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간 그녀의 절친 김일엽의 이야기만큼이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운명(이말은 싫어하지만)이라고 해야 할까? 나혜석이 화가이며 글도 쓰고 세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여성이라 알고 있지만, 그녀가 쓴 글이나 그림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책은 나혜석이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여자도 사람이외다"인 것처럼 그녀는 여자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용감하게 발표했다. 도도히 흐르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마리 연어처럼 강물에서 튀어 올랐다. 튀어올라 다시 물을 만나지 못한 고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도 그러했다. 만일 나혜석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금의 세상은 나혜석 같은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도 사람이라고 외친 절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도 사람이다라고 괄호에 넣을 수 있는 명사는 더욱 많아졌는지 모른다. 이조시대로 끝난 것 같은 계급사회는 겉모양만 달라졌을 뿐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차별화된 사회 속에서 다시금 나혜석의 절규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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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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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요즘 책이 재미없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걸까? 아마도 후자. 이책 저책 끝까지 읽지 않고 반납만 반복했다. 이 책도 프롤로그를 읽으니 바로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십먹은 싱글여자가 부모와 같이 농사를 시작한 글이니 뭐가 재미있겠나 말이다. 난 이미 오십이 지났고 농사도 흉내를 내봤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모랑 산다니... 반납해야겠어 다시 뒤쪽을 들췄는데 '추간판 탈출증'이라 수술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아팠을지 읽는 내가 끔찍했다. 그리고 그다음 고양이와 같이 사는 이야기. 고양이가 치매들면 똥오줌 못가리고 아무데나 싼다는 것에 깜놀. 정말 큰일이다. 우리 초리가 치매 걸리면 어쩌지? 아무래도 나보다 먼저 걸리지 않을까? 같이 걸리면? 이 저자는 고양이 사랑이 지극 정성이라 그 힘든 일을 다 해낸다. 난? 최근 김양미 작가는 개 병원비가 오백만원 나와서 걱정하는 글을 페북에 올렸었다. 오백만원 이라니... 고양이나 개 요양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어쩌지? 생각 안해 봤던 건 아니지만 이 어려운 숙제를 이 책은 나에게 남겨주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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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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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박완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이분의 책을 빌려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는 별 감흥이 없어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책은 권고로 읽게 되었는데 이 번엔 달랐다. 아마도 나도 그녀의 나이가 되어 그런건 아닐까. 역시 사람은 세월따라 변하고 사람도 뭐도 단정지어 말하는 건 위험하다. 박완서의 '첫사랑'에 대한 글인데 그녀의 딸 호원숙의 글을 읽어보면 소설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 유명한 ㄱ 소설가도 사실을 거의 소설로 적어 고소에 휘말린 적도 있고, ㄱㅁㅈ ㄱㄴㄱ 소설도 거의 사실 폭로에 가까워 세간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글을 쓰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누구에게도 말할 지 못하는 마음 속의 짐이나 고민을 풀어놓는 해소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화가나면 일기를 쓰세요'라고 하지만 화가 나서 쓴 일기를 다 찢어버린 적도 있다. 매일 어떤 이유로 화가 났는데 아직도 화가 날 때는 같은 이유로 화가 난다. 결국 나의 문제일 것이다. 암튼 '첫사랑' 참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그 행위가 아니라 그 말 자체가 말이다. '첫' 과 '사랑'의 조합! 내가 쓴다면 제목을 '첫사랑'이라고 고전적이면서도 도발적이면서도 촌스러우면서도 생동감 있고 오로지 순수한 이 어휘를 그대로 쓰고 싶다. 암튼 작가 박완서는 40에 시작해 그녀 일생의 순간 순간을 많은 책에 다 풀어놓았다. 그의 글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귀한 기록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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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