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산청 청소년 수련관 앞에는 2020년에 건립한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건너편 조산공원과 산청중, 고등학교를 바라보는 소녀상의 어깨 위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쉬고 있어요. 소녀상 옆에는 빈 의자가 있어서 간혹 조산공원까지 산책을 가면 소녀상 옆에 앉아 숨을 돌리기도 해요. 소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자면,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녀가 긴 세원 한자리에 머물며 자라나는 산청 아이들과 해가 뜨고 지며 반복되는 계절들을 지켜줄 거 같아요. 참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누군가 소녀에게 목도리와 모자, 양말을 신겨 주었어요. ‘함께평화회원이 아닐까 합니다.

 

산청 평화의 소녀상(사진 김현하).jpg

사진:김현하

 

함께평화는 소녀상 건립을 위해 모인 산청 주민들이 소녀상이 세워진 후에도 평화와 인권을 위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건립위의 정신을 이어받아 결성한 단체입니다. 소녀상 건립 과정에서 정치적인 틀을 떠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마음이 모이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함께평화는 만 원 이상을 1회 내면 회원 가입이 됩니다.

창립 이후로 함께평화는 산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묘소 정비, 교육 프로그램, 평화감수성 워크숍, 함께평화 영화제(8)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영화제 준비 모임과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우명달 할머니는 산청 금서면 지막리에 살고 계셨습니다. 312일은 할머니의 기일입니다. 함께평화에서는 작년 이맘때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를 정비하고, 익명의 기부자가 보낸 후원금으로 묘비를 세웠습니다. 묘소로 가는 길을 김우명달 할매길이라고 이름을 붙였고요. 이 길은 산청 평화의 소녀상에서 출발하여 경호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 금서로 넘어가 묘소가 있는 지막마을까지 이어집니다. 도보로 2시간 가량 걸린다고 하네요. 10시에 다 같이 소녀상 앞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했습니다.

 

우리 나비 만세 (사진 김현하).jpg

우리 나비 만세 (사진: 김현하)

 

할매길 걷기 2(사진 김현하).jpg

평화에 대한 글귀가 적힌 리본을 달고 걷는 사람들 (사진: 김현하)


할매길 걷기(사진 김현하).jpg

(사진: 김현하)

 

 

길을 걸으며 아는 이들과 인사와 근황을 나눕니다. 오늘의 이야기손님인 채수영 활동가(샨티학교 교사)에게 할머니를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봤어요. “그건 묘에 가면 이야기해 줄게요~ 지금 다 얘기하면 나중에 할 말이 없어.”

경호강변을 따라 걸으며 경치를 구경했어요. 30분쯤 걷자, 아이가 힘들어해서 햇살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7, 10살 어린 소녀들과 함께 함께 뒷좌석에 탔어요. 조수석에는 토종 씨앗 할머니 임봉재 선생님이 타고 계셨어요. 자라나는 새싹부터 노년까지,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는 여성들이 한 차를 타고 갑니다.

 

소녀들 (사진 포네).jpg


 

마음씨 좋은 분들이 나눠준 사탕, 딸기를 먹었어요. 사람들이 걷는 길은 좁아져서 큰 도로로 갔네요. 매화와 진달래가 피는 시골길을 걷고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먼저 묘에 가서 쑥을 캐기로 했어요.

지막마을회관에서 보존사업팀장 성춘기 씨 차로 바꾸어 타고 먼저 묘소로 갔습니다. 춘기 씨는 쇠스랑과 삽, 괭이를 차에서 내려 입구에 쓰러져 있던 팻말을 다시 세우고, 묘소 주변을 도닥였어요. 그동안 저는 아이들과 함께 옆 무덤에 난 쑥을 캤습니다. 일곱 살 이안이가 어찌나 야무지게 쑥을 캐던지. 어린 소녀들과 햇빛 쬐면서 시간 보냈네요.

 

 쑥을 캐다가 장화를 터는 이안이(사진 포네).jpg 

표지판 (사진 포네).jpg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 소리가 들립니다. 두세 명씩 도착하여 묘소에 모였습니다.

김우명달 할머니와 할아버지 묘 앞에 상을 차려놓고 묵념을 했습니다.

오늘의 초대손님인 채수영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을 순서입니다. 수영씨는 김우명달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 할머니를 찾아뵙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아들처럼 여기셔서 장례를 치를 때 영정사진을 들기도 했대요. 돗자리를 옮기는 문제로 아이와 투닥거리는 바람에 할머니랑 어떻게 만났는지를 못 들었어요. 이런.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들은 부분만 남깁니다.

 

초반에는 옛날 일을 물어봤었는데 할머니가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걸 힘들어하셔서 굳이 그걸 캐묻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해서 더 묻지 않았어요.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위안부 중 천명 정도가 귀국했고, 그중 200명 정도가 지원 사업을 할 때 등록을 했는데, 김우명달 할머니도 아마 정대협에 연락을 하면 진술 기록이 남아있을 겁니다.

할머니들 중 하동 사는 정서운 할머니, 그리고 아직 살아계신 길원옥 할머니, 이 두 분 할머니가 참 기억에 남아요. 이 두 할머니는 성찰적인 말씀을 많이 하세요. 일본에 대한 뭐랄까, 피해 내지는 원수, 복수 이런 느낌보다는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아이와 여성이라는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시고, 어디 가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 일본의 만행은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식으로든지 여성과 아이들이 제일 큰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장례 치르고 난 후에 제가 진주를 떠나서 멀리서 살다 보니까 여기 방문도 못했는데, 여러분들이 계속 이어서 방문하고 계시니까 너무 기분 좋고, 덕분에 제가 또 여기까지 오게 돼서 정말 고맙습니다.”

 

젯상에 올릴 술을 받는 채수영 활동가 (사진 포네).jpg

 젯상에 올릴 술을 받는 채수영 활동가 

 

산청에는 위안부 할머니가 세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산청에 살면서도 존재를 몰랐었네요. 지막마을은 김우명달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만나서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할머니가 조용하고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지, 아픈 과거를 가진 분인 줄 몰랐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지만, 할머니가 피해자로 등록을 한 덕분에 우리가 오늘 평화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 수 있겠지요. 그 삶을 살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수초가 핀 묘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햇살이 내리쬐는 옆 무덤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함께평화에서 준비한 김밥과 떡, 딸기로 다 같이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했는데, 저는 쑥스러워서 처음 참가한 입장임에도 발언을 하지 않았어요. 함께해서 좋았다고 아들이 어린이 대표로 말해 주었어요.

 

김우명달 할머니 묘 앞에서 (사진 푸른).jpg

(사진: 푸른)

 

평화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평화로우려면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할 텐데, 세상이 평화롭지 않아서 내 마음도 평화롭지 않죠. 내가 깨달았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깨닫기 전에는 정말로 깨달은 게 아니랍니다. 내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는 어느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겠죠. 세상을 내 맘에 드는 단일한 문화와 체제로 통일하는 것과, 다양성을 수용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것 중 어느 것이 세계평화를 향하는 길일까요.

함께평화에서는 매년 8월 기림 주간에 영화제를 엽니다. 작년에는 아이들과 원지 작은 영화관에서 <말 없는 소녀><너에게 가는 길>을 보았어요. <말 없는 소녀>는 원가족 안에서 위축된 소녀가 친척과 살면서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였고,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부모 자조 모임에 관한 다큐로, 자녀의 편이 되어 투쟁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였어요. 성 다양성 퍼레이드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종교단체 사람들의 악마 같은 표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표정과 목소리가 나의 평화감수성에 상처를 줬지만, 이분들은 자신들의 평화가 성소수자 때문에 깨졌다고 여기겠지요. 다양한 문화, 언어, 태도, , 사랑, 외모, 나이를 수용하는 건 만만치가 않고, 존중받기 위해 투쟁해야 하므로 그 과정이 평화롭지만은 않지요. 평화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니, 정말 평화는 뭘까요.

올해는 814~15일에 제3회 함께평화영화제가 열립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임(영준이모)에서는 벌써 몇몇 영화들을 선정하여 시사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올해는 어떤 영화들이 우리의 상처받은 평화감수성을 치유해 줄까요? 함께평화 영화제에 오셔서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일지, 어떻게 평화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요.

 

 

함께평화 후원계좌: 농협 351-1227-8665-03

문의: 햇살(사무국장) 010-5571-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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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꽃 닮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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