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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다섯째 마당]
- 지리산 바래봉 기슭 면양 목장의 봄날 철쭉 개화 풍경이다. 면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철쭉들은 군데군데 남겨 놓았다. 거친 풀섶과 관목이 면양들에 의해 정리되어 잔디를 깎은 것처럼 철쭉 핀 풍경이 단정했다. [단정한 풍경(사진 류요선). 1996년 봄] 지리산 반야봉의 중봉 정상 부근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덕유산의 아침 풍경을 기다렸다. 구름 바다 위에 잔잔한 색조의 아침 노을이 펼쳐졌다. 멀리 남덕유산과 무룡산이 은은하고 가까이는 함양의 삼봉산이 고요하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원경(사진 류요선). 1997년 현충일 다음날] 지리산 바래봉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샘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자리를 잡고 야영 텐트를 쳤다. 여름날 더위를 식히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다고 이 풍경을 만났다. 얼른 텐트로 가서 사진기를 챙겨 왔다. 오른쪽 끝에 노고단이 살짝 보이고 중간에 반야봉이 높이 솟아 구름을 산록에 걸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토끼봉과 명선봉 등이 구름 띠를 허리에 두르고 한가롭다. [지리산 바래봉 기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여름 운무(사진 류요선).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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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다섯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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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안개
-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한 번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그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왜 또 그러지.. 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 불온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가 느끼는 불안이라는 것은 대충 이랬다. 갑자기 몸이 가렵고 차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거나 집 앞 현관을 나올 때 왼발이 먼저 나온다거나 하는 것 들이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면 재수가 없단 말이지.. 그는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늘 그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거래처 김 씨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와 오랜 거래를 해온 사람인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젠 가장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는 김 씨를 만나러 가는 날엔 항상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그가 불안한 모든 것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어떻게 된 것일까? 전화를 해볼까?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그는 불안한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무진시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다. 약속까지는 아직 넉넉하게 남았다.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만은 여유가 없었다. 국도를 타다가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들로 분주했다. 인터체인지를 통과할 때쯤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을 잡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여보 일어나요.. 여보..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왜 그래요. 아니.. 나쁜 꿈을 꾸었어. 꿈이라 다행이야.. 오늘 김사장이랑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서둘러 그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몸이 가렵지도 않았고 왼발부터 나가지도 않았다. 차 시동도 한 번에 걸렸다. 그의 마음은 불안하지 않았다. 그는 차 안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속도로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주유소에 기름도 채웠다.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주유한 금액을 문자를 확인하려고 보니 김 씨에게 문자가 왔다. 무슨 일이 있나... 부고.. 부고.. 김**님이 오늘 아침에 소천 하셨다는 문자였다. 가슴이 쓰라렸다. 고속도로에 오르니 안개가 가득했다. 오늘 안개는 유난하군... 푸른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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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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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 “저는 단 한번도 이 곳에 케이블카가 지어질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은 그러면 안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착공식장 안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미 슬퍼지고 있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바위와 아마 그 곳에서 부지런히 겨울나기를 준비할 야생동물들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사람은 산을 닮아 꿋꿋하고 우직한가. 이미 오랜시간 싸워왔다는 주민의 말씀이 무너지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맞네. 설악산에 케이블카? 절대 못 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느새 기세가 등등해졌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법과 연구결과를 전부 부정하고, 말을 싹 바꿔버리는 저 사람들은 사실 내보일게 없어서 저렇게 비싼 옷과 차와 경호원으로 제 자신을 두르고 착공식장에 들어가는구나. 어떻게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하냐고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시공사도 안 정해진 2시간짜리 착공식에 3억원을 편성하고, 전체 사업비 1172억원(이게 도대체 얼마여..)을 마련하려고 양양군은 위급상황에 쓰여야할 ‘지방안정화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배웠다. 산에 피는 꽃이 달라지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낮에 햇볕을 쬐고, 노을 물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 둘레길 계곡물을 만두(강아지)가 찹찹거리며 마시면 나도 옆에 앉아 얼굴 씻을 때, 우연히 푸른 논밭을 바람처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때, 또 우연히 만난 이웃이 자기네 감을 그냥 쥐어줄 때, 그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처마 밑에서 말라가는 걸 보며 나는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할 때, 반려인이 불피운 구들방 아랫목에 나란히 몸 뉘여 잠들 때. 기쁨과 행복은 오직 감사와 사랑에서 온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면 욕심 부릴 수 없다. 산에 바위가 이끼가 도토리나무가 반달곰과 산양이, 수리부엉이와 꿀벌이 오랜시간 지구에서 제 모습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에 바로 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고 싶은 맑은 풍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유리창으로 둘러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분만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그리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빼앗으며 만든 기계 속에서 아무리 즐거워해보려 해도 잠깐의 자극, 그 이상을 느낄 수는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테다. 반짝 관광지였던 곳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쓸쓸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무성한 채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과 꽃과 새들만이 그나마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단언컨대 케이블카를 짓고, 운영하고, 타는 이들은 케이블카를 막겠다고 눈물 흘린 이들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은 죽 끓듯 해도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만이 설악산을 제 모습 그대로 끝까지 지켜낼테니까. 사진. 수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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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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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 초록대문집에 산다는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방랑단은 자주 마고할미타령을 하는데.. 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어서 궁금하셨죠? 실은 저도 올해 처음 공부를 해보았습니다.올해 지리산사람들 활동가 깊은강, 윤주옥, 칩코가 마고할미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책자로 펴냈어요. 마고할미설화 유래부터 변천사, 현재 마고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리산권 단체들, 마고할미설화를 담아 재창작한 그림책까지! 마고할미에 대한 정보가 알차게 들어있답니다.책자를 읽어보고 싶으시면 자율보시 후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에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늘 열린 공간이 아니니 오시기 전 연락주세요.) 보시금은 전액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에 사용합니다. 후원계좌는 농협301-0214-8860-11(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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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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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 구례성다양성축제 아직 끝이 아니에요! 무지개코딱지들은 해마다 축제의 장터수익금 일부와 남은 후원금을 지리산권 개발반대 활동에 기부했는데요! 올해도 축제를 물심양면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기부금을 잘 전달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후원금 보내주신 분들 장소영/ 정이어린/ 똥폼/ 우물/ 강혜인/ 조아라/ 국승일/ 느림보/ 새봄여름/ 강효선/ 진명일_백지/ 탱자씨 (이외 칩코차라의 유부어묵탕을 구매해주신 분들????) > 공간과 물품 대여해주신 분들 비온뒤무지개재단/ 서울퀴어문화축제/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지리산사람들/ 느긋한쌀빵/ 두루다살림장/ 행행행 올해 축제 기부금(총400,000원)은 아래 단체들에 나누어서 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 지리산사람들 - 새벽이생추어리 사진. 나무(@fishbowl_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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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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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 -이전 게시글에 이어서 축제 공간을 어디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축제는 퍼레이드도 인가 없는 논둑길을 걸어왔다. 우리끼리 안전하게 놀기 위함이었다. 무지개코딱지들이 평소 자주 다니는 두루다살림장은 이미 산정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장터를 해왔고, 장터 기획쌤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우리 축제를 환영해주신 분들이셨다. 두루다살림장의 명성에 묻혀서 장터인 척 축제를 해버리자는 게 우리의 얄팍한 꾀였는데, 장터 기획쌤들은 아무래도 이장님께 허락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우린 또 어물쩡 다양성 축제라고 주절댈 심산이기도 했고, 속으론 성다양성축제라고 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장님은 찰떡같이 ‘티비에서 보던 헐벗은 축제’를 알아채셨고, 허락은 하겠지만 마을에서 시끄러운 말이 나오는 게 염려되니 떡이라도 돌리면 어떠냐고 해주셨다. 축제날 마을회관에 무지개떡을 돌린 이유였다. 물론 이장님의 허락도 두루다살림장 쌤들이 아니었다면 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테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세상 물정을 안 기분이다. 나쁘게 보면 쫄은 거고, 좋게 보면 신중해진 거다. 근데 또 나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축제 참여자들은 모르는 얼굴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도 우리 축제에는 처음 오셔서 그랬는지 조금은 수줍고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산내 축제에선 공연을 볼 때 무조건 강제 스탠딩석이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서도 람천교가 부서져라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내는 게 매번 일이었다(실로 퍼레이드 마지막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다.) 구례 축제는 산내의 활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올해 피날레는 퍼레이드가 아닌 강강술래로 했는데, 그게 올해 참여자들 텐션에 딱 맞아 기쁘기도 했다. 강강술래 가락에 맞춰 손잡고 돌다 보면 고요하고 부드럽게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만큼 둥글게 차오른 달님을 다들 한동안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산내라는 유일무이한 동네도 기적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올해 구례 축제를 도와주던 새로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이고, 벽장에서 나와 축제에 놀러와 준 참여자들도 기적이고, 아무 혐오세력 없이 안전하게 축제를 마친 것도 기적이고, 축제날 달이 밝은 것마저 기적이었다. 글이 길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이다. 일일이 헤아리지 못하는 친애하는 존재들이여, 내내 사랑스럽고 퀴어하소서. 나무마고할미불.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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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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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 “축제갈 때 마스크 써야 하나 싶었어요.” 이번 축제 참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례에서 처음 여는 성다양성축제는 확실히 산내와 달랐다. 애초에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우리 놀자고 만든 거였다. 더 많은 퀴어를 만나고 싶다거나,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도 없었다. 산내 축제에선 다 이미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놀러 왔다. 또 산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성다양성 축제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퀴어’란 단어를 모르실까봐 ‘성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부른 것이었는데, 산내는 대체로 퀴어라고 하면 다 아셨던 것도 같다. 오히려 ‘성다양성축제’라는 이름이 더 낯설어서, 본의 아니게 위장용 이름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구례로 축제 장소를 옮긴 것이 대단한 포부가 생겨서는 아니다. 구례에서 놀거리를 또 찾아야 했을 뿐이다. 다만 어떤 퀴어한 수다를 지껄여도 척하면 척 알아듣던 산내 친구들이 없으니, 더 많은 퀴어 친구를 만나고 싶기는 했다. 지역살이 햇수가 쌓이면서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는 소망도 스멀스멀 생겼다. 뭣도 모르던 귀촌 1년 차에는 아예 상상력이 없어서 겁대가리가 없었다. 시골에선 한 명이 어떤 사실을 알면 곧 마을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것과, 퀴어라고 하면 집주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학습한 후, 나랑 애인은 마을 길을 걸을 땐 손을 잡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례 성다양성축제는 조심성이 많아졌다. 산내라는 다 된 밥상에서 축제를 차리다 보니, 지역 퀴어축제 기획을 너무 물로 본 듯싶다. 나의 집주인은 매우 다정하고 사교적인 기독교인이시다. 환경보호에도 퍽 관심이 있어, 우리가 하는 행사를 요리조리 물으시다 지난 골프장 반대 문화제 땐 놀러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축제 준비로 정신이 쏙 빠져있자 집주인댁은 무슨 축제냐고 물으셨고, 우린 “다양성 축제요”라고 중요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셔서 한숨 돌렸는데 다음날 또 오시더니 “근데 뭐가 다양해요?”하고 또 물으셨다. “성...별, 나이, 인종, 뭐든 다양한...”하고 얼버무리니 무릎을 탁 치시며 “아하! 풍습이나 종교도 다양하고요?”라며 해맑게 덧붙이셨다. 나는 급하게 프라이빗 파티인 척 선을 그었고, 그날 우린 집 마당에서 ‘성다양성축제’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피켓을 칠할 때 집주인이 지나가실까 망을 봐야했다. 또 나는 젊은이들을 너무 납작하게 봐왔다. 내 얕은 경험상, 서울이나 산내나 또래들은 대부분 퀴어거나 앨라이였어서 내 머릿 속엔 ‘젊은이=퀴어축제 짱좋아함’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피어싱을 한 젊은 빡빡이 여성 분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하셨다고 했다. 나는 또 그분을 납작하게 보고 “담주에 퀴어 축제 놀러오세요!”하며 방방 뛰었는데, 그분은 “퀴어...가 뭐에요?”라고 물으셨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퀴얼... 퀴이얼ㄹ...”하고 몇 차례 다시 발음해주다가 결국 그가 퀴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 축제 땐 무지개공간을 섭외했는데, 이때도 퀴어를 전혀 모르거나 알지만 정중히 거절했던 몇몇의 젊은 분들에 여러 차례 내심 놀랐다. (물론 내 머릿속 공식을 강화시킨 젊은 퀴어나 앨라이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다음 게시글에 이어서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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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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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손자가 지리산으로 피신한 사연은?
-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는 삼정산(三丁山, 三政山)[1,156m] 정상의 세 봉우리는 상무주암, 문수암과 삼불주암(三佛住庵)을 거느리고 있다. 가운데 문수암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암자 앞의 산줄기에 막혀서 보이지 않고, 상무주암과 삼불주암에서는 동남쪽으로 10km 직선거리의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삼불주암 천왕봉 전망, [사진, 이완우] 이들 세 암자는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셋째, 넷째와 다섯째 암자로서 지리산 칠암자 코스의 중심 지역에 있다. 삼정산의 남쪽으로 지리산의 도솔암과 영원사가 지리산의 주능선에 가깝게 높은 위치에 있고, 북쪽에 약수암과 실상사가 지리산 북쪽의 람천의 흐름을 지켜보며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시작과 마무리 지점을 이룬다. 11월 중순의 늦가을 지리산 문수암을 거쳐 삼불사 찾아가는 산길은 낙엽 밟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 암자는 도마마을에서 2시간을 걸어와야 하므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조용한 암자이다. 법당에는 ‘삼불주(三佛住)’ 편액이 한가롭게 걸려 있을 뿐이고, 산신각과 요사채 등 사찰 전각들은 황토와 돌을 섞은 돌담 벽으로 이루어져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지리산 삼불주암 편액, [사진, 이완우] 법당 옆에는 3층 석탑이 서 있는데, 개성적인 양식이 눈에 띈다. 석탑의 1층과 2층의 탑신 네 면에는 불상, 사천왕상과 신장상 등의 부조가 있다. 1층 탑신의 전후 면에 있는 이불병좌상(二佛倂坐像)은 흔하지 않은 양식이고, 옥개석에 기왓골을 표현한 양식 기법은 거의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근에 조성한 석탑이지만 미래의 석탑 양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리산 풍경을 수십 년간 사진 찍어왔던 류요선(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씨는 20여 년 전에 이곳 삼불주암이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을 때 실상사에서 약수암과 도마마을을 거쳐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가 이 암자에 도착한 봄날 늦은 오후에 뜨락 옆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며, 그때 찍은 금낭화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금낭화(1995년 봄) [사진, 류요선] 이곳 삼불주암의 주지인 효성(曉星) 스님이 류요선 씨에 향기로운 차 몇 잔을 여유롭게 권하였다. 스님은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여 인상적이며, 비 내린 후 산자락에 피어나는 운무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표현하는 듯하다고 했다. 밤하늘의 별빛과 고요한 달빛에 환한 도량은 또 얼마나 고적하며 평온하게 아름다울까? 류요선 씨가 효성 스님에게 지리산 풍경 사진 몇 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한다. 스님은 메모지에 암자 아래의 마천면 도마마을 한 집 주소를 써서 건네준다. 이곳 암자에 오는 택배나 우편물은 아랫마을의 한 집에서 수령하여 머물러 있다가, 마을 주민이 이 암자에 올라올 일이 있을 때 가져다준다고 한다. 지리산 암자의 시간은 속세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법당 벽면 채반, [사진, 이완우] 이곳 삼불주암으로 도마마을에서 올라오는 삼정산 자락이 견성(見性) 골이다. 이 골짜기에는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속담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 수수께끼 같은 이 속담은 함축적이며 흥미롭다. 이 속담은 이 지역에 전승하는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불교 활동과 민간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7세기 중반인 신라 무열왕 때에 마적 대사가 이 지역 하천인 용유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삼정산에 문수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중기에는 인오(印悟, 1548-1623) 대사가 이 지역 지리산 영원사에서 수행할 때 함양 장터를 다니며 백성들과 소통하고 교화하면서 함께 산을 넘던 고개(오도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사진, 이완우]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삼정산 아래 기슭인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는 군자사지(君子寺址)가 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567~632, 재위 579~632)이 국왕으로 즉위하기 이전 10살의 어린 나이에 이곳에 피신하여 3년을 지냈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眞興王 534~576, 재위 540~576)이 승하하자, 진흥왕의 둘째 왕자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으로 즉위하였다.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태자(銅輪太子, ? ~572)의 어린 아들(후대 진평왕)은 숙부가 왕위를 잇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국경 지대인 지리산 자락의 함양의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진지왕이 즉위 3년만에 화백회의에 의해 폐위되고, 진평왕이 13세의 나이로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여 18세부터 친정하였다. 진평왕 어린 시절의 함양 지리산 자락 피신과 3년 후 화백회의에 의한 진평왕 즉위 등의 역사적 사건은 당시 신라 왕실의 왕권을 향한 권력 투쟁을 암시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조형물, [사진, 이완우]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 잠룡(潛龍) 신분으로 거주한 저택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진평왕은 어린 시절에 거처했던 함양 지리산 자락의 잠저에 군자사(君子寺)를 건립했다. 이곳 군자사는 조선 시대에 지리산을 유산(遊山)하는 관리나 선비들이 머물렀다가 하동암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주요 거점이었다. 진평왕이 어린 시절에 이곳 지리산 자락에 머물면서 아들 낳기를 지리산 산신에게 기원하여서 이곳 지명을 군자리(君子里)라고 한다는 지명 설화가 전해오는데, 진평왕의 아들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선덕여왕과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딸이며,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진평왕의 외손주이다. 진평왕이 이 지역에 세운 군자사의 사찰 이름에서 군자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평왕은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 관념을 확립하였으며, 자신의 직계 가족을 부처의 집안과 동일시하였다. 진평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활발한 외교 정책을 펼쳐서 진흥왕에 이어서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다졌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부조, [사진, 이완우] 군자사는 진평왕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국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때를 기다렸던 의미 있는 장소로서 진평왕의 53년 재위 기간에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명에 의해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내렸을 행렬에서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이 지역의 속담이 발생하였을 수 있다. 이 속담 속의 까마귀나 까치에서 같은 옷을 입은 단체가 줄지어 산길을 이동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지리산 삼불주암에서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 하봉을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 산 아래 견성골 산자락을 찾아본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능선, 골짜기와 계곡에는 역사와 설화들이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 천오백 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오후의 산길은 낙엽이 밟히며 버석거리는 소리와 조릿대 군락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대는 소리로 가득하였다. 지리산 삼불주암 흙집 산신각, [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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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손자가 지리산으로 피신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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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넷째 마당]
- [대성골의 바위 모임. 1998. 4. 18.] 하동 화개면의 대성골 대성교의 콘크리트 다리 난간에서 계곡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짙은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바위들이 회의하는 듯 오개오개 둘러앉아 있었다. [심원마을 용소 계곡. 1997년 5월] 심원 마을 용소 계곡의 맑은 물과 화사한 진달래꽃. 1997년 7월 29일. 1시간에 149mm의 폭우가 내려 이 계곡의 지형이 번하였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다시 만날 수 없다. [벽소령 남쪽의 쿵쿵소. 1997년 봄] 벽소령 남쪽 심정 마을로 가기 전의 쿵쿵소이다. 폭포 소리가 쿵쿵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바위 옆과 아래에 진달래꽃이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햇빛을 잘 받은 곳은 꽃이 잘 피었고 그늘진 곳은 아직 덜 피었다. 그때 심정 마을에서 민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 2~3일 더 기다리면 진달래꽃이 다 필 텐데,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더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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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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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넷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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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는 있고 놀이에는 없는 것은?
- "달빛 놀이터를 하는 금요일이 너무 기대되요" “게임은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이 되는데 놀이는 승부가 없어 맘이 편해요” 우리는 나이가 들기 때문에 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지리산산골 토지면 토지초등학교에는 달빛 놀이터라는 전래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노는 마을학교가 있다. "놀이도 배워야 하는 시대" ▲ 전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어른 아이들이 함께 놀이를 즐기고 있다. ⓒ 마을학교 지난주 일요일 전래놀이를 보급하는 아자 학교 대표 고갑준선생님과 함께 놀이를 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아이들과 학부모는 이랑타기, 진놀이, 두부놀이, 안경놀이, 술래잡기, 짝꿍 술래잡기를 배우고 함께 놀았다. 학부모들도 땀을 듬뿍 흘렸고 아이들은 녹초가 되었다. 반나절 동안 놀이에 빠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신이 나서 놀이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 놀이는 마을형과 누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배웠 다기 보다는 그냥 알게 되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 종일 이 놀이 저 놀이가 끝이지 않았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부는 때에는 고산댁 담벼락 양지에 모여 소꿉놀이를 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를 모으고 분유통을 가져다 솥단지를 만들어 밥도 하고 국도 끓여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며 놀다가 지겨워지면 밤톨 같은 돌을 주어 다가 공기놀이를 했다. 공기놀이처럼 기술이 필요한 놀이는 동네 선수들이 다 파악이 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승부의 재미를 위해 적당히 편을 만들어 놀았다. 그것도 지치면 다른 놀이를 하면 된다. 시간이 없지 놀이가 부족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놀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굴뚝에 연기가 난다. " 종구야! 너네 집 연기 난다" 밥먹으로 가야겠다. "왜 우리 엄마는 밥을 빨리하지" 불평이 따라오기 일수였지만 어쩔 수 없다. 해가 지고 여기저기 동무들 집에 연기가 모락모락 퍼지면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쉬워할 것도 없다. 내일도 놀며 되니까? 우리는 모두 시간 부자였다. 우리의 놀이는 끝이 없었지만 어제 함께 놀던 형과 누나들이 고학년이 되면 우리와 함께 놀아주지 않는 것이 그저 섭섭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나도 어른이 되었고 놀이는 점점 잊혀 갔다. 그러다가 마을하교를 하게 하면서 옛 놀이를 하나 둘 다시 하게 되었다. 좀 덜 잘 놀기 위해서 잊힌 놀이를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을 초대해서 놀이를 배우고 전래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전하는 일이 토지 마을학교가 달빛 놀이터가 1년 동한 한 사업의 전부다. 놀이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승부에 있다고 한다. 게임에는 반드시 승부가 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놀이에도 승부가 있는 놀이도 있고 없는 놀이도 있지만 승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이겨도 그만인 것이 놀이다. 술래도 승자가 아니고 숨는 아이도 승자가 아니다. 승자는 없고 재미만 있다. 더구나 놀이는 함께 해야 하고 맨날 나만 이기면 그 친구가 더 이상 놀아주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져주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맨날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다음판에는 이긴 사람 진사람을 섞어 버리면 어느새 승부는 사라지고 만다. ▲ 잘 놀려면 놀이도 배워야 한다. 놀이를 배우는 아이들과 학부모들 ⓒ 토지달빛놀이터 전래 놀이는 어른도 아이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축구를 아이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도 아이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물다. 왜냐면 체격과 능력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는 아니다. 달빛 놀이터에서 매번 하는 그물 술래잡기나 대문 술래잡기는 학부모와 유치원생이 함께 뛰어 놀면서 할 수 있다. 특별한 능력도 필요 없다. 아이들이 더 유리한 놀이도 있고 어른들이 배려해야 하는 놀이도 있지만 나이와 성별로 능력으로 인해 차별당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다는 점이 게임과는 다르다. 승부도 없고 오직 재미만 있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요? "PC게임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놀이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놀이를 하려면 혼자서 할 수 없지만 배려하지 않으면 놀이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내가 힘이 쌔고 강하다고 해서 매번 이기면 친구가 더이상 놀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힘 빼고 배려하면서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놀이입니다. 다음번에 놀아주지 않기 때문에 매번 승리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놀이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 놀이선생님- 우리의 고전 놀이는 두 가지로 보면 된다. 민속놀이는 특정한 날에 하는 대규모 놀이 예 줄다리리 강강수월래 차전놀이 같은 놀이다. 전래놀이는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성적인 놀이다. 예를 소꿉놀이, 재기차기,비석치기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토지 아이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아이들도 매번 달빛놀이터에 나가서 신나게 놀지만 집에 오면 다시 게임을 한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도 게임 시간을 포기하고 달빛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전래놀이는 맘이 편해요. 놀기만 하면 되니까요” “게임은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이기면 좋지만 지면 기분 나쁘고 매번 이기는 아이만 이겨서 기분이 별로 에요” 내 아이에게 물어보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게임은 혼자 또는 팀이 상대방과 경쟁을 통해서 승부를 결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항상 승부가 있고 패자가 있다. 승자는 즐겁고 패자는 유쾌하지 않다. 전래 놀이는 하다 보면 승부도 없고 패자도 없다. 즐겁게 땀 흘리고 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렇다고 PC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만한 시간도 없고 공간도 부족하다. ▲ 놀이에 관한 토론을 하는 놀이 선생님과 학부모들 놀이와 게임의 차이 그리고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토지달빛놀이터 우리가 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두번이라도 아이들에게 놀시간과 공간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아이들과 더불어 전래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지리산 산골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놀이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오래전엔 놀이가 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놀이를 통해 힘을 키우고 놀이를 통해 협동과 협력을 배웠다. 이를 통해 서로 돕는 품앗이와 두레를 했던 민족이 바로 우리의 민족문화였다. "전래놀이는 인공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자본이 필요 없다. 고가의 PC가 없어도 되고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가능하다" 놀이는 평등하다. 청소년 자살율 1위인 우울한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래 놀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과 관계의 미학이 필요한 시기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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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는 있고 놀이에는 없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