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는 두 손을 비워두세요
칩코(지리산 방랑단)
사람 다섯과 개 하나가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차들은 그들 옆을 지날 때 구경하듯이 조금 속도를 늦춘다. 옷차림새가 비범하다. 어르신들 말을 빌리자면, '머스만줄 알았는데 가스나'거나 '가스난줄 알았는데 머스마'인 외관이다. 빡빡 머리가 둘이라 스님인 것도 같고, 인도나 태국 따위의 어디 외국에서 온 것도 같다. 개는 허스키나 늑대처럼 생겼지만 진도 믹스라고 한다. 말을 걸어보니 지리산 방랑단이라고 소개한다. 무전으로 여행하며, 지리산의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채집한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전여행이라니. 코로나도 말썽인데 얻어먹고 얻어 잔다니. 그런데 어쩐지 볼살들은 통통하다. 의외로 잘 먹고 다니는 모양이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러서 활짝 웃는 이가 더 하얘보인다.
그 중 한 사람을 조명해보자. 두 빡빡머리 중에 조금 더 머리가 허옇게 밀린 사람이다. 파란색 누더기 바지를 입었다. 가시나무 한번 스쳤다가는 죽 찢어지고 말 정도로 헤졌다. 한번은 구멍을 기우러 어느 집에 실과 바늘을 동냥하러 갔다. 상냥한 주인집 어르신은 바지 꼴을 보시더니, 그냥 새 바지를 한 벌 주셨더랜다. 바지는 거절하고 반짇고리만을 받아든다. 핫핑크색이라서 그랬던가... 휴지 조각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녀도 나름의 취향이랄 게 확고하다. 궁상맞은 취향의 주인은 칩코다. 칩코는 헌 옷만으로도 충분하다. 돈 벌 생각도 많지 않다.
칩코는 엄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엄마 집에 친구를 데려갈 때면, 한 가지 꼭 해명을 해주고 마는 것이 있다. 집 현관문에 붙은 종이다. 종이엔 노란빛 오만원권 사진과 함께 "돈은 나와 하나다"라는 다소 노골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친구가 그걸 안봤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중앙에 붙어있다. 약간 부끄럽다. 오해를 여기서 풀자면, 엄마가 그 종이를 붙인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 엄마는 칩코의 마음수련 스승이자 도반이다. 엄마는 칩코가 누군가나 어떤 것을 미워할 때면, 그와 너 자신이 결국 하나임을 알라고 했다. 둘을 분별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마 돈이었다. 엄마는 돈과 친해지기 위해 그런 사진과 문구를 적은 것이었다.
칩코의 현관문이 있다면 무엇을 적었을까? 돈은 아닐 것 같다. 돈에 관심이 없고, 일단 돈으로 사고 싶은 게 없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쿨해보여서 마음에 들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 방랑단을 선뜻 시작할 수 있었다. 칩코는 평생 돈이 없는 축에 속했지만, 정말 한 푼도 없이 살아 본 적은 처음이다. 방랑은 참으로 멋졌다. 매일 기적같은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에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 볼 식당이나 민박에서 탁발을 받기도 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조차 없는 호의를 경험했다. 돈 없이도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하다니! 당최 돈이 왜 그리 새침하고 콧대 높은지 모르겠는 나날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숨겨진 빈틈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방랑단들은 사라진 숲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다닌다. 함양의 오도재는 대규모 특화 단풍숲을 조성하기 위해 축구장 80개 면적의 숲을 없애버렸다. 남원은 육모정에서 정령치를 지나 달궁까지 이르는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구례에서는 야생의 숲을 빼앗기고 철창에 갇혀 사는 반달가슴곰과 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방랑단들은 기억산책에서 이 이야기들을 전하며, 많이 울기도 울었다. 우리는 베어진 나무가 되어 보기도 하고, 갇힌 동물이 되어보기도 했다. 칩코는 그러던 중 한 가지 통찰에 이르렀다! 아픈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정이 다 돈, 돈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단풍숲도, 산악열차도, 반달가슴곰과 소들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이 이미 있지만,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칩코는 희한했다. 돈이랑 엮일 일도 없던 사람인데... 칩코가 찾아다니던 이야기들은 죄다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칩코와 돈이 무슨 징한 인연이 있는 것인가. 칩코는 그제야 별 관심도 없던 돈이 밉다. 칩코는 엄마의 현관문에 붙은 종이를 떠올렸다. 어떤 것이 미워질 때면 그와 나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라던 엄마의 말. 방랑을 하며 행복했던 이유가 뭐람! 돈을 바라지 않고도, 사람들은 베풀 줄 알았다. 식은 밥 주기가 미안하시다면서, 밥을 새로 지어주던 마음들. 한 데서 어떻게 자느냐며, 빈 방을 청소해 내어주시던 마음들이 있었다.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줄 안다고 했던가. 칩코는 분에 넘치는 베품들을 받으면서, 조건없는 베품이란 어떻게 줘야하는 것인지 배웠다. 돈을 미워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뿐! 이는 숲의 방식이기도 했다.
숲에서는 셈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솔향을 품고 멀리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나뭇잎 새로 듬성듬성 쏟아지는 햇살줄기, 고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이 모든 것들이 눈부신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저 내어줘 본 사람이라면 알았다. 소유란 무용한 것.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을 없애면, 소유는 무용해진다. '내 것'을 내려놓을수록 세상은 더욱 넓어진다. 그래서 소유는 두려움의 다른 말.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두려움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숲은 넓어지고, 다양한 존재들을 품게 된 걸까. 저 멀리 숲 속을 걸어가는 지리산 방랑단이 보인다. 칩코는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숲의 방식으로 방랑할 것. 두려움 없이 더 넓은 세상을 사랑할 것. 아아 숲의 선물들을 정중히 받으려면, 두 손을 언제나 비워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