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첫 수선화가 피던 봄날 함양 휴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높은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은 여름이라도 되는 듯 따뜻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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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휴천면 지리산 리조트 식당]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에서 음식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흰머리가 가득하던 그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0대 소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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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의 저자 류정자 작가. 사진 김인호]

 

류정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48년생이다.

1965년에 산악회 활동을 하던 사촌 오빠와 처음 지리산에서 왔다고 한다.

 

"오빠가 지리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때는 심원마을에서 출발해서 노고단으로 갔어요."

심원마을에는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죠"

"심원마을에서 하루 쉬고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에 오르니 노고단 천지가 모두 원추리 꽃밭이었어요. “

"산을 가득 메운 원추리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았죠

"어찌나 예쁘고 곱던지 지리산이 내 가슴에 박혀 버렸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간 번쩍이는 것이다.

 

그날 그 일행은 노고단에 이틀을 머물다 내려왔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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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사진 김인호]

 

그때만 해도 그녀도 그날 이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리산에 빠져서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지리산은 노고단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가고 싶을 때는 매번 심원마을을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

 

"제 산행 방식은 좋으면 매번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인지 노고단에만 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곧이어 지리산 골골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다.

 

"결혼을 일찍 했어요"

"부산에서 살았는데 부산에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지요."

 

지리산 모임 [우리들의 산악회]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녔다.

 

저는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좋으면 같은 장소를 자주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매번 지리산에 왔지요".

"아이들은 엄마를 지리산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틈만 나면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류정자씨를 탐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리산 산행은 지리산이 좋아서

가는 것에서 지리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정적인 책이 바로 조선 시대 함양의 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

 

[김종직(14311492)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문신인 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한 이듬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와서

'유두류록(遊頭流錄)' 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1472814일부터 18일까지 45일 일정으로 13.3가운데 국립공원에 속한

노장대(함양독바위)상내봉(향로봉)미타봉어름터 4.5구간이다. 옛 문헌에

김종직 선생이 올랐던 탐방로가 지리산 전체 등산길의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유람동기, 동행인, 날짜별 기록, 사적들, 풍경, 서정적인 감정, 당시 시대상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사실 필자도 김종직의 유루류록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읽기만 했지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든지 절터라든지 이런 것에는 일말의 궁금증도 없었다.

오래된 지리산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지리산 산중에 산재 되어 있는 민가와 암자 터 등을 보면서 지리산이 품고 있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지를 통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국역본을 접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

2003년 지리산학의 정립을 꿈꾸며 결성한 [지리99] 운영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유두류록 탐구팀]을 꾸려 20여 년간 탐구산행을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오랜 탐구의 작은 결실이다. 또한 유두류록탐구와 병행하여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폐사지 탐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암자터가 100여 군데 이른다.

이 외에도, ‘세석의 청학연못’, ‘지리산의 시대를 연 달궁’, ‘지리산 고성탐구-추성’, ‘촛대봉 각자 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를 찾아서’,

대궐터 탐구’, ‘문창대는 어디인가?’, ‘천왕봉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천왕봉 각자 일월대에 대하여등 다수의 소고를 발표하면서

지리산학의 정립에 몰두해 왔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지리산과 함께 살고 있다.] - 노컷뉴스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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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99라는 사이트에 류정자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김인호]

 

그녀의 나이는 이제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리산을 오른다.

 

3년 전에 김종직 선생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마을로 이사를왔다.

류정자 선생은 두 번이나 암에 걸려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슬픈 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엄마가 지리산에 다닌다고 아들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몇 년간 지리산에 오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발견한 폐사지(사라진 절터)100여 곳이 됩니다."

"이제 이걸 정리하고 싶어요."

"책을 묶어 두면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겠지요."

 

"김종직 선생님이 류두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후세에 지리산에 오르려고 했던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게 폐사지에 관심을 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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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600년 전 지리산 산행기  저자류정자]

 

"제가 얼마 전에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여러 서적과 문헌들을 참고하고 직접 수십 번을 찾아가서 발견한

지리산 폐사지 터에 대한 기록도  저 처럼 관심있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김종직 선생님이 지리산에 올랐던 길을 복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류정자 작가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의 지리산 사랑이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랑하게 되면 자주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지리산을 사랑하다 보니 자주 갔고, 관심이 커지다 보니 책을 냈고, 폐사지를 탐구했다.

 

"내가 죽으면 지리산 골짜기 여기 저기에 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두었어요."

 

그녀는 죽어서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찐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전체댓글 1

  • 87555
깊은강

짝짝짝...
가객 선배님...
선배님이 계셔서 지리산이 조금 더 환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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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지리산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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