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KakaoTalk_20230321_135230139.jpg

디자인.칩코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산달에게>


산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련이에요! 목련님을 닮았다니 입에 바른 말이라도 기쁘네요. 백목련의 겨울눈은 털이 보송보송하고 엄지손가락만큼 커다란데요. 전 그 겨울눈만 봐도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답니다. 구례는 꽃이 셀 수 없이 피었어요. 매화, 살구, 산수유, 명자나무, 생강나무, 히어리, 목련… 며칠 전엔 냉이 좀 캐다 먹으려 했더니 벌써 꽃대가 다 올라온 거 있죠. 저처럼 빈틈투성이 농부는 구례 같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면 봄에 눈코 뜰 새가 없어요. 


이틀 전은 햇살이 좋아 섬진강 쪽으로 산책을 하다 이웃 할아버지를 만났는데요. 할아버지께서 냅다 “감자도 안심고 어딜 돌아댕겨?”하면서 호통을 치셨어요. 감자 심는 철에 농부식 인사인가 봅니다. 감자를 안심고는 어딜 돌아댕길 수 없는 것이죠. 결국 어제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감자를 심었어요. 제 씨감자들은 작년에 제가 키운 분들인데, 너무 작아서 제 콧구멍에도 들어갈 지경이에요. 올해는 방울토마토보다는 컸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어요. 


산달! 제 어릴 적 별명은 똥개였어요. 사실 가족들은 아직도 저를 가끔 똥개라고 부른답니다. 동네 어린 개가 똥을 초코파이인양 야무지게 먹는 것을 보면 절로 탄식이 나오는 제게, 이 별명은 어디가서 말하기 썩 명예롭진 않은데요. 실은 제가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하도 많아, 이웃집 할머니께서 ‘똥개들은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하니 똥개라고 부르면 낫는다’는 특별처방을 내려주신 유래가 있답니다. 그후 마법처럼 잔병이 덜했대요.


어릴 적 전 제가 정말 똥개인 줄 알았던 것도 같아요. 코딱지도 잘 먹고 종이나 흙도 먹으면서 컸어요. 엄마랑 아빠 몰래요. 그러다 어느 봄즈음에 뒷산 너머 마을로 언니랑 놀러갔다가 길을 잃었어요. 그때 제가 글쎄, 냄새로 집을 되찾아왔어요. 아까 이 근처에서 꽃냄새가 났고, 그 다음에 공사장 냄새, 그 다음에 개울가 물비린 냄새… 냄새를 지도 삼아 그걸 거꾸로 셈하면서 되돌아 온거죠. 그날 저녁 언니가 가족들에게 ‘내 동생이 정말로 똥개가 됐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어요. 그날만큼 기분이 우쭐했던 적도 없을 거예요.


이번 주제가 ‘잊을 수 없는 향기’에요. 전 이날이 꼭 색이 바랜 필름사진처럼 기억이 나요. 어떤 냄새였는지 선명하진 않은데 괜히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요즘도 구례의 봄꽃이 핀 낡은 마을길을 돌면, 꼭 서울 신림동의 그 판자촌으로 돌아가 있어요. 아마 그 판자촌은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재개발이 됐을 법한 동네였으니까요. 2020년도 섬진강 수해 이후, 구례군은 제방을 높인다고 모든 지천마다 벌겋게 파헤쳤어요. 강변을 걸으면 꽃냄새나 개울가 물비린 냄새는 없고 공사장 흙먼지 냄새만 나요. 포크레인을 피해 떠난 물살이들은 저처럼 냄새로 이곳을 기억하다가는 길을 영영 잃을 지도 모르겠어요.그들의 집도 ‘재개발’된 셈이니까요.


제 이야기가 길었어요. 실은 산달이 바쁘고 지친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는 웃긴 얘기라곤 똥이나 코딱지 얘기 뿐인가 봅니다. 다음 번엔 좀 더 세련된 유머를 고민해볼게요. 그렇지만 설사 다음 번에도 또 방구 얘기 따위를 해도 웃어주기로 해요. 저는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제 편지를 읽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한 편지를 썼다는 산달의 답신이 오기를 응원할게요. 


지난 경칩편지의 이야기를 아주 소중하게 읽었어요. 누구에게나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외투를 벗기는 건 햇살이라고 믿다가도, 책을 읽고 문득 세상에 실망하고, ‘네가 너라서 좋아’라고 말하기를 연습하는 이야기요. 치열하면서도 애타게, 또 스스로 엄격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기를 실패하지 않은 이야기 말예요. 전 산달이 스스로를 잘 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자신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거든요. 산달은 자신을 선명하게 마주하고도 흔들리지 않아보여요. 


지난주에 구례 옆동네 하동에서 큰 산불이 났어요. 주민이 집에서 태우고 남은 잿가루를 산에 퇴비삼아 주시던 게 원인이 되었죠. 숲의 존재들이 무사한지 어제 모니터링을 갔는데요. 산불 현장을 가본 것도, 산불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숲엔 그새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지리산은 소나무만 남기고 키 작은 활엽수를 모조리 잘라내는 인공수림이 아니라서 피해가 적었다고 해요. 활엽수는 불에 타지 않는 물기둥과 같아서, 불기둥과 같은 소나무를 작은 물기둥들이 용사처럼 지켜준 거죠. 도리어 낙엽 카펫을 한 차례 걷어낸 셈이라 그 아래 햇빛을 못보던 씨앗들이 새롭게 자라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요. 


전 이 다행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달의 이야기가 겹쳐 보였어요. 어떤 순간에 우리는 ‘내가 알던 세상이 완전히 엉터리였군’하고 느끼곤 하잖아요. 모든 걸 과감히 불태워야하는 순간이 오죠. 산달이 하나하나의 죽음을 가슴에 새겼듯이요. 그런데 건강한 숲에서 그런 대소멸이 찾아오면, 도리어 새로운 생태계가 열리는 문이 돼요. 산달이 하나하나의 삶도 가슴에 새긴 것처럼요. 숲 바닥이 온통 잿가루인데도, 재를 살짝 걷어내면 바로 아래 낙엽은 타지도 않은 채였어요. 전문가 분은 숲에 오히려 잿가루 거름을 뿌린 효과일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전 산달의 지난 이야기가 끝내 성벽을 무너뜨리는 나팔소리가 될 거라고 믿어요. 우린 대소멸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기로 해요.


고단한 새벽까지 산달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주어서 고마워요. 꽃샘추위가 반짝 찾아오는 춘분이에요. 산불이 난 다음날, 춘분다운 강한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쳐서 산불을 크게 막아냈죠. 대소멸 속에서도 지구는 절기에 따라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산달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세요. 햇살을 쐬면서 꽃 같은 하루를 보내는 일이요!


감자 심고 돌아댕기는 덕복희가

 

 

 

<굳건한 믿음으로, 복희에게>


복희, 봄볕 듬뿍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저는 오늘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연희동의 궁동산을 올랐어요. 이 좋은 날에 앉아만 있자니 몸이 찌뿌둥해서 안 나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그래서 무턱대고 길을 헤매다보니 샛노란 개나리님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나리님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서울의 도시 한복판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봄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일부러 꽃을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제게 선뜻 찾아와주었어요. 참 감사했어요.


봄기운에 떠오른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 옛적에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가 있었대요. 그 나무는 자신에게 꽃을 주지 않은 땅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어요. 꽃을 가지지 못한 나무의 슬픔이 온 산에 퍼져 땅에서는 더 이상 어떤 식물도 꽃을 피울 수가 없었대요. 그러니 봄도 오지 않았구요. 오직,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던 작은 옹달샘 속 연꽃만이 피어났어요. 아무도 없는 산에서 홀로 피어난 연꽃은 나무에게 말했어요. “내가 당신의 꽃이 될 테니, 더 이상 땅을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산에 봄을 돌려주세요.” 말을 마치고 연꽃은 자신의 꽃봉오리를 나무에게 모두 주었어요. 자신을 희생해 꽃을 내어준 연꽃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나무는 슬픔을 거두고 연꽃에게 받은 꽃봉오리를 잔뜩 피워내 산에 봄을 돌려주었답니다.


눈치 채셨나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무 위에 피어난 연꽃, 목련이에요. 목련은 그래서 봄이 오기도 전에 자신이 꽃을 피움으로써 봄을 불러내요. 꽃을 재우고 나서는 다시 연꽃에게 꽃봉오리를 돌려주었는데, 그래서 연꽃은 봄이 다 가고 난 여름에 그제서야 자신의 꽃을 피운답니다. 방금 막 지어내 봤는데 좀 허접하죠? 목련을 가장 좋아한다는 복희에게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지난 편지에서 복희의 웃음 선물을 정말 기쁘게 받았거든요. 보답하고 싶었어요. 아직 얼어붙은 산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려준 목련처럼 복희의 이야기들이 저를 그렇게 깨워내요. 목련을 닮았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랍니다. 


복희는 목련 향을 맡아본 적 있나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목련이 한 그루 있었어요. ‘한빛’이라는 이름의 학교였는데요. 2층에 있는 교실에서 내려다보면 만개한 목련의 정수리가 보이기도 하구요. 밤에는 환한 전등이 까만 밤의 학교 가운데에서 목련을 비추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요. 우리는 풀벌레 소리 들리는 봄밤에 하아얀 목련 꽃 아래 벤치에 앉아 새 학기 새 친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어요.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목련 꽃을 따오라고 해서, 꽃잎 하나하나를 뜯어가면서 문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 새로이 한빛에 온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 그런 방법을 생각해내셨겠구나 싶어요. 참 특이하죠? 


그래서 그런지 제게 한빛의 봄은 목련 향으로 남아있어요. 목련 향이 나기 시작하면, “아, 이제 또 새로이 시작이구나”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그때의 모든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아요. 다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학교라는 공간이 이렇게 설렘 가득한 공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껴보았을 뿐이에요. 아, 제 표현력을 탓해야겠어요.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럼에도 꽃이 피고 걸친 옷에서 사락사락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저는 가끔 그 향기를 맡아요. 그리고는 그때 그 마음으로 오늘이 살아져요. 


사실 한빛을 나와서는 그 감각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고, 세상을 다른 렌즈를 통해 바라보다보니 한빛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많은 친구들이 한빛을 ‘애증의 공간’이라고 부르고는 했어요. 저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곳에서 나와버린 저로써는 그곳이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라 답답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세상의 아주 일부만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게 참 아쉽고,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그 곳을 미워하는 것이 저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곳에서 다투고 서러워하고 웃고 설레면서 자랐거든요.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그 모든 것들이 이미 제 삶 속에 많이 녹아들어 있어요. 그 안에서 우린 충분히 멋지고 또 아름답게 최선을 다했어요. 이따금씩 저의 공동창조자들을 생각해봐요. 가족들,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동물들과 식물들, 흙, 물, 공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나의 동지들. 그것들이 때때로 저를 아프게 했을지라도 저는 그들 틈에서 부대끼며 숨을 들이쉬었던 거죠. 제가 내쉰 숨은 또 누군가에게 들이마실 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이 모든 들숨과 날숨들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정성을 담아보는 것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스로를 누구보다 다정하게 사랑해버리는 것을요. 복희,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나를 미워하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그렇다고 세상 밖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는 일은 결국 나를 만들어온 세상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일이에요. 그럼으로써 우리가 변화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어떤 숨은 서로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숨은 서로를 붙잡아주기도 해요. 서로가 서로를 구해내기도 해요. 


얼마 전에 지리산에 들렀어요. 이 산 어딘가에 복희가 살고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밤새 내린 봄비 뒤 찾아온 냉이님과 쑥님을 찾아냈어요. 비릿한 흙 냄새와 냉이 향이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봄은 참으로 향기의 계절이에요. 허겁지겁 손에 흙이 잔뜩 묻는 것을 개의치 않고 잔뜩 소쿠리에 담았답니다. 그걸로 냉이밥과 쑥전을 만들어 먹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땅을 밟고 나무가 자라나고 꽃이 터지는 소리를 듣었어요. 복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산에 산다는 것은 쉴 새 없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풀들을 매일매일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더군요.


저는 그래서 실컷 웃을 수 있었어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미워할 겨를이 없더라구요. 복희,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절기래요. 춘분이 지나고나서부터는 낮이 밤보다 길어져요. 해님이 점점 더 친절해지니 우리는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어요. 해님이 보여주는 그들을 빈틈없이 담아보려면요! 늘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해내는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그러면서 저 자신도 사랑해볼래요. 복희는 잘 웃고 있나요? 씨감자가 앞으로 복희를 얼마나 웃게 할 지 기대돼요. 유머와 애정어린 이야기 듬뿍 전해줘서 고마워요. 제 서툰 이야기가 복희를 웃게 할 수 있기를 늘 바라요.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곧 우리 웃음의 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런 믿음이 있다면 삶을 힘차게 뛰어다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복희는 제게 그 믿음에 설득력을 부여해줘요. 함께 지금 이 순간의 봄볕을 잘 기억해보자구요. 또 다른 봄을 불러올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요.


봄볕에 취한 산달이

태그

전체댓글 0

  • 9434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춘분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