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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함양작은영화관 "나무의 노래" 진재운 감독 초청 상영회
- 〈나무의 노래〉 관객과의 대화진재운 감독 초청 https://youtu.be/JF8ubnG97Kk?si=UgGCtx-RJLwg_QSK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태어나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한 여인. 그녀는 중남미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의 밀림에서 홀로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1939년생인 그녀는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땅을 사들여 “아무도 모르게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앞만 보며 걷다 보면 잠시 멈추는 일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들여 나무를 심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그 시간이 모여 숲이 되었고, 그 숲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나무의 노래〉는 환경을 말하는 영화이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숲 이야기 함양에는 위천이 흐르고 그 곁에 함양 상림과 함양 하림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숲을 하나로 묶어 ‘대관림’이라 불렀습니다. 천 년 전 최치원 선생님이 홍수를 막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조성했다는 그 숲. 지금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 있지만, 본래는 하나의 숲이었고 하나의 숨결이었습니다. 니카라과의 한 여인이 심은 숲과 함양의 천년 숲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숲을 남길 것인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지금, 함께 고요한 숲의 시간을 만나보세요. 2026년 3월 12일(목) 저녁 6:30(6:00~입장) 함양군 작은영화관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하림강변길 131, 하림공원) 관람하기 1만원 경남도민 7천원 관람문의 수달친구들 010-4740-1015 함달극장 010-9328-1183 주최: 함양 상림숲 영화제 · 수달친구들 . 함달극장 후원: 함양시민연대 · 전교조함양지회 숲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무의노래 #함양군 #지리산 #상림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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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함양작은영화관 "나무의 노래" 진재운 감독 초청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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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씻나락] "구례의 효(孝) 문화유산, 어떻게 이어야 할까" 홍영기
- [지리산인 기획 칼럼 - 뒤웅박 씻나락] 구례의 효(孝) 문화유산, 어떻게 이어야 할까 _홍영기 설날의 소박한 생각 설날과 한가위가 우리 민족의 2대 명절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며칠 전 설 명절을 지냈다. 이때가 되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사연을 간직한 선물꾸러미를 들고 부모와 친척을 뵙기 위해 귀성길에 나선다. 이른바 민족대이동,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물이 움트는 봄이 다가오는 시기의 설날은 소원과 복을 빌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가을 초입의 한가위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차례를 지낸다. 설날은 한 해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음력 초하루이고, 한가위는 한 해의 수고로움을 마무리하는 만월의 보름이다. 이 뜻깊은 명절에 가족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격려와 덕담, 위로를 나누다 보면 쌓인 오해와 갈등도 눈 녹듯 사라진다. 이렇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함께 만나 가슴에 묻어둔 조상의 묘소를 찾거나 연로하신 부모를 만난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거나,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드린 추억을 되새기는 것, 이것이 효도의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 아니겠는가. 친지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따뜻한 차 한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같이 마시는 일, 또는 팔짱을 끼고 고샅길 걸으며 마주치는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이 곧 효도의 시작일 것이다. <효경>에 신체와 터럭,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 했지만 말이다. 효 문자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효자도 「사립단지」(<삼강오륜행실도>) 국가가 앞장서서 효를 장려하다 효는 아주 먼 옛날부터 국가가 크게 권장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세기 중반 경덕왕 때 웅천주에 살던 향덕은 굶주리고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부모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봉양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국가는 그에게 큰 상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효가리(孝家里)로 바꿨다. 그리고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때 효녀 지은은 자신을 부잣집 노비로 팔아 지극정성으로 맹인 어머니를 돌봤다는 일화도 실려 있다. 이 때에도 국가는 큰 포상을 내리고, 그녀가 살았던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 향덕과 지은의 효행은 <삼국유사>에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압권은 경주 사람 손순(孫順) 부부의 사연이다. 이들 부부는 날마다 품팔이를 해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는 아이가 문제였다. 이들은, ‘아이는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다’며, 아이를 산에 묻기로 하였다. 산중에 들어가 땅을 파던 중 석종을 발견하였다. 기이한 종을 얻음은 아이의 복이라며, 다시 아이를 들쳐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기둥에 매달아 쳤더니 신비한 종소리가 대궐까지 울려 흥덕왕도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손순 역시 국가로부터 집과 곡식을 하사받는 등 큰 포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삼국유사>, 「손순매아 孫順埋兒」). 이처럼 1,200여 년 전부터 국가가 적극적으로 효자와 효녀를 칭송하고 포상한 역사적 사실을 찾을 수 있다. 구례 백성 손순흥은 ‘고려 제1의 효자’ 구례에서도 지명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예부터 효성스러운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효문화와 관련된 유적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역사에 전하는 구례 최초의 효자는 손순흥(孫順興)이다. 손순흥은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되었다. 병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구례 백성 손순흥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려 놓고 사흘에 한 번씩 무덤을 찾아가 살아 계실 때처럼 음식을 올렸는데, 고려 성종 990년의 일이었다(<고려사> 성종 9년 9월 4일자 교서). 손순흥의 지극한 효성을 파악한 고려 성종은 관리를 파견하여 곡식과 은그릇, 비단과 포목 등을 하사하였다. 또한 ‘집안에서 효자는 나라에 충신이 될 것’이라며, 관직과 품계를 내려주었다. 손순흥이 살던 마을에 정문(旌門)을 건립하고 요역도 면제해 주었다. 당시 고려는 효를 모든 일의 실마리이자 선행의 주체라 하면서, 대대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구례의 손순흥의 효행이 알려지게 되었고, 국가적 포상을 받은 것이다. <고려사절요>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니,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순흥화상도(順興畵像圖)](<동국신속삼강행실도>) 손순흥 정려비각(구례읍, 우) 손순흥의 효행은 구례 최초의 읍지인 <봉성지(鳳城誌)>(1800년)에도 실려 있다. 이 문헌에는 손순흥의 어머니 생전의 효행과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되었다는 미담이 덧붙여 있다. 1,000여 년이 지난 지금 고려 성종 때 건립한 정문(旌門)의 자취는 찾을 수 없고, 최근에 건립한 정려비각만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봉성지>에는 효자(29), 효녀(3), 효부(1) 등 33명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효자로는 손순흥이 유일하고, 나머지 32명은 모두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손순흥의 모범적 효행이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효자 정려를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효자 정려가 아홉 곳이나 된다. 고려의 손순흥을 제외하면 주로 18세기 이후 효자의 정려이다. 다만, 효녀와 효부의 정려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최여진 정려(마산면 광평) 김강철 정려(광의면 수월) 김경석 정려(산동면 탑정) 오형진 정려(마산면 상사) 이처럼 효자의 비중이 압도적이나, 어찌 효자만 많았겠는가? 효녀와 효부가 더 많았을지 모르나, 가부장제 문화에 의해 효자가 양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려를 받은 효자들은 대체로 아동을 가르치는 동몽교관에 임명되었다. 국가의 정려를 받은 효자들의 효행을 어린이 효교육의 모범사례로 활용한 것이리라. 구례의 자랑스러운 효문화 이어가려면 지금도 효행을 기리고 포상하는 행사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지사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언제부턴가 명절 연휴에 고향의 부모를 찾기보다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수백만 명이라 한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중시한 효문화를 이른바 K-Culture로 활용할 수 있다면 공동체문화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려 제1의 효자’로 칭송된 손순흥을 비롯한 구례의 효인(孝人)들을 선양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 효행을 현재에 걸맞은 내용으로 수정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하는 효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구례는 지명과 더불어 효문화 1번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구례의 효문화를 올바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려 제1의 효자’ 손순흥의 정려비각을 효사랑 공원이나 정원으로 조성하면 좋겠다. 현재 손순흥의 이름을 아는 구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내판조차 없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골목 안에 갇혀 있는 손순흥 정려각, 구례 효 문화유산의 현주소이다. 손순흥, 그를 ‘고려 제1의 효자’로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글쓴이 : 홍영기 국립순천대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다 일찍 퇴직하였다. 구례 순천 사람들과 조그만 공부 모임을 함께 하며,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주중 광주, 주말 구례를 오가는 중이나 머지않아 구례 문전재(文田齋)로 돌아와 텃밭 농사와 미뤄둔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다. 지리산人 기획칼럼 [뒤웅박 씻나락]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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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씻나락] "구례의 효(孝) 문화유산, 어떻게 이어야 할까" 홍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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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계단을 오르는 일은 숨이 차지만 회전계단을 오르는 일은 보이지 않은 뒤를 돌아보게 한다. 한 발 한 발 발자국 위로 들리는 숨소리가 계단을 오른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요양보호사교육원 강의실. 수강생 나이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수강생들은 나를 강사님이라 부르고 나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제일 뒤에 앉은 여인은 수업 시간 내내 나만 보고 있다. 부인과 함께 앉은 70대 수강생은 수업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쉬는 시간에 찾아와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들 수강생은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갑장이라 나란히 앉은 사람들, 수강생의 시험을 책임지겠다는 반장. 지병을 상담하는 여인, 멀리 옥과서 온 고운 할미는 자작시를 들려준다. 학원 원장은 70대 수강생들이 요양보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그들 마음을 담아 그들 앞에 선다. 어쩌면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리라. 강의실 한편 인체 크기의 실습용 마네킹이 누워 있다. 사람이 누워 있는 줄 알았다며 무섭다는 사람들에게 인체모형임을 설명한다. 우리 몸 안의 심장을, 양쪽 폐와 여러 장기를 보며 신기해하는 눈빛들. 그들에게 임상 사례 하나하나 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나를 거쳐 간 숱한 날들이 찾아와 강의실에 앉아 있다. 요양병원 중환자실 창가에 누워 있던 할미가 있었다. 직사각형 침대 안에 누워 눈으로 웃고 눈으로 말하던 그녀는 천사의 날개를 하고 차창에 드는 햇빛으로 와 그 겨울을 듣고 있을 것이다. 미음 한 그릇 느리게 한 수저 한 수저 넘기던 그녀가 밥인 양 하얀 휴지를 입안에 넣고 하얗게 풀어지던 날이 있었다. 입 모양 보며 저녁 별이 희미한 창가에서 “하늘 좀 봐요” 해놓고 미안해지던 날이 있었는데 작은 체구로 웃어주던 그녀의 나지막한 말이 어느 날 들릴락 말락 귀 대고 듣던 그 말이 크게 들려왔다. 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느티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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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이야기
-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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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 내가,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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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청하세요] 지리산운동, 지리산사람들, 지리산 대안문화 담은 책, /지리산 OOO/
- 지리산운동, 지리산사람들, 지리산 대안문화를 담은 책이 나왔어요.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은 무료료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닌 분들은 서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신청 기간 2월 28일까지 / 배송 기간 3월 4~6일 배송비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서, > 지리산권에 살고 계신 분들은 가까이 사는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에게 말해서 직접 받으시길 추천합니다. > 한 주소로 같이 받으실 수 있는 분들은, 한 분이 함께 신청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배송 신청 링크 : https://forms.gle/6aMwqCbaYB6CWFFp9 +++++++++ 신청 기간 이후, 신청하고픈 분은 아래 메일 주소로 메일 주세요^^ mhghg@naver.com <지리산 OOO> 땡땡땡한 세계를 상상하는 땡땡땡들의 이야기 생명의 편에 서는 사람들의 살림, 돌봄, 운동, 연대 • 지은이 : 지리산人 편집부 • 기획 : 지리산사람들 • 펴낸곳 : 니은기역 • 발행일 : 2026년 2월 4일 • 정가 : 15,000원 • 판형 128*188 • 쪽수 224쪽 • ISBN 979-11-93365-05-2 03300 #사회일반 #사회문화 #대안문화 #다른삶 #지리산운동 #일상변혁 #생태활동가 #재난과공동체 #마을활동가 #지리산생명 #마고신 #기후위기 #지리산 #섬진강 #생명의편에서기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 ㄴ니은기역ㄱ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백련마을 | @nigi.books | mhghg@naver.com | blog.naver.com/ni-gi ❚ 책소개 산은 침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지리산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당신은 어떤 OOO을 상상하고 계신가요! 이 책은 지리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귀 파기 혹은 귀 씻기 같은 작업이다. 지리산의 신호를 들어야 우리가 움직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날마다 돈, 돈, 돈 해 대는 소리로 귀가 막힌 이들을 위해, 이 책이 귀를 뻥 뻥 뻥 뚫어 줄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덜 자본주의적인 삶을 실험하는 사람들, 재난을 겪은 공동체,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시선까지 함께 엮어 ‘기후재난 이주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상을 제시한다. 조금 덜 자본주의적이고, 조금 덜 빡빡한, 다른 삶을 살고픈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실마리를 주기를 바란다. ❚ 목차 들어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지리산의 목소리에 당신은 어떤 OOO을 상상하고 계신가요 1장 지리산이 말할 수 있다면 : ‘OOO처럼 말할 거야’ 삶을 다시 꾸리는 이야기를 찾아 마고신처럼 말할 거야, 마고가 되어라 둘레길처럼 말할 거야, 걸으며 하나가 되어라 지구용사처럼 말할 거야, 지구를 돌보듯 너를 돌봐라 시인처럼 말할 거야, 부러워 마라 섬진강처럼 말할 거야, 수억 빛깔을 느껴라 2장 사람, 마을, 연결 : ‘OOO해 봐’ 우리가 바라는 삶은 혼자 만들 수 없으니까 들어 봐, 우리가 열고 싶은 판타지 먹어 봐, 반달곰을 생각하는 쌀빵과 지역 농산물 읽어 봐, 지역 온도를 높이는 책방에서 만나 봐, 천천히 가는 사람들 웃어 봐, 널 기다리는 마을 활동가와 함께 3장 재난 사이에 피어난 장미 :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어, 그래도 OOO’ 기후재난 이주 시대가 열렸다, 그래도 상상하자 산사태가 덮치고 난 뒤, 그래도 살자 재난을 당한 이웃에게, 그래도 밥 먹고 합시다 재난이 먼일 같아요? 그래도 모이자 4장 지구운명공동체 : 지리산에 인간만 사냐 ‘OOO도 산다’ 죽비를 내려치는, 복주머니란도 산다 조용히 쉬고 싶은, 따오기도 산다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멧돼지도 산다 살 곳을 잃어 가는, 여울마자도 산다 생수이길 거부하는, 지하수도 산다 5장 생명의 편에 선 몸부림 : 2025 지리산사람들, ‘OOO 덕’ 지리산산악열차 못 한다, “함께한 덕” 지리산골프장 무산 뒤 사포마을 경숙을 만나다, “당신들 덕” 산불에도 살아남은 숲, “다양성 덕” 2025 달마다 함께한 우리, “서로가 있는 덕” ❚ 출판사리뷰 -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저항이 되고 변혁이 될까. -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후위기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 - 지역 기록을 넘어,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단단한 질문이 담겨 있다. “지리산은 배경이 아니다. 말하고, 기억하고, 함께 살아간다.” 지리산이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할까? 마고신처럼, 시인처럼, 지구용사처럼, 온갖 빛깔 생명처럼 말할 지리산을 상상하며 지리산의 목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1장에 있다. 이 책은 지리산을 ‘자연’이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로 불러낸다. 시인처럼 말하는 산, 재난을 기억하는 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산. “기후재난 이후의 삶, 지리산에서 먼저 시작되다” 2장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덜 자본주의스러운 대안 문화를 만드는 이들의 사례를 몇 가지 꼽아 담았다. 3장에는 지난 산청 수해와 산사태로 재난을 맞은 이들이 이미 와 버린 재난을 드러내고, 기후재난 이주 시대에 공동체가 걸어갈 방향을 찾아 담았다.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산의 연대기” 지리산 자락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4장에는 복주머니란, 따오기, 멧돼지, 여울마자, 지하수의 마음을 짐작할 만한 글들을 넣었다. 다양한 생명의 마음을 짐작하며, 인간 중심의 서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 기록이자 생태적 에세이다. “2025를 돌아본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엮일 수 있게 든든하게 우릴 지켜 주는 지리산, 우리의 큰 산 지리산에서 벌어진 2025년 일들을 갈무리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벌어진 2025년의 이야기들은 기후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묻는다. ❚ 책속에서 24쪽 : 옛날 옛적에 마고는 세상을 창조했으나 사람들은 마고의 흔적을 지웠다. 지워진 마고를 소환한 은수, 정민, 윤채는 마고의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또, 지리산 자락 많은 분이 마고와 함께 산다. 이런 움직임이 자연을 숭배하고 존중하며 살아왔던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자연을 착취 대상으로 생각하는 물질문명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35쪽 : ‘이제 우리는 그 모든 상흔을 딛고 생명평화와 공생공락의 가치로 거듭나야 한다.’ 말 없는 지리산이 수천, 수백 년에 걸쳐 (남명 선생의 감탄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며” 묵묵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바로 이게 아닐까? 46쪽 : 숲은 제가 누군지 알게 해 줘요. 그곳에서 전 부자가 돼요. 우린 지구에 한 푼도 쥐고 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부자로 태어났음을 느껴요. 이 풍요로운 지구의 일원으로요. 마당에 모은 제 똥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자란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가 다시 제가 되고 나면 제가 무슨 일을 하러 지구에 왔는지 배우게 돼요. 75쪽 : 판타지 서점에서 타로 상담을 하고 있는데, 저는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로 외에도 휴먼디자인, 유전자키에도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91쪽 : 책방이 없는 지역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117쪽 : 두려운 일이지만, 추웠다 더웠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잦은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상적 재난에 적응하는 길은 무엇일까. 안전을 위해 더 많이 축적하고 소유해야 할까? 언제 사라져도 별로 아쉽지 않도록 가볍고 간소하게 살아야 할까? 138쪽 :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서로를 돕는 일’밖에 없는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궁금했어요. ‘동력은 뭘까?’하고요. 151쪽 : 그래서 재난 이후에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그게 재난 대응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하십시오. 뭐든지 하시고, 언제든지 만나시고, 그러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그게 재난에 대응하고 적응하기 위한 힘입니다. 162쪽 : 인간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그를 날게 만든다면,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계속 그를 날게 한다면 과연 뿔호반새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따오기도 마찬가지다. 지리산을 찾은 이 귀한 손님이 여기에서 살아 보려고 왔다가 이곳 인심을 보고 여기는 안전하지 않다며 떠나 버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171쪽 : 멧돼지가 사라진 숲을 생각해 보세요. 해로운 짐승(유해조수)이라 없어진다면 마냥 좋기만 할 것 같나요? 자동차에서 볼트 하나 빠졌다고 크게 표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나중엔 차가 설 수도 있다는 것까지 내다보며 볼트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201쪽 : 지리산은 그냥 있어 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냥 계속 아름답게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언제든 지리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세력은 또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니 싸움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야죠. 223쪽 : 지리산 OOO에 들어갈 땡땡땡이 ‘난개발’이 아니게 되려면, 우리가 채워야 할 땡땡땡은 더 뭉치고, 더 목소리를 내고, 더 자주 만날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지리산의 사람들입니다. 지리산의 편에 서 주세요. ❚ 저자 소개 지리산人 편집부 대안문화 웹진『지리산人』은 2010년 11월 종이 신문으로 시작해, 2021년 7월까지 나온 40호를 마지막으로, 종이 신문에서 온라인 잡지로 발간 형태를 바꾸어, 지금까지 계속 절기마다 독자들에게 지리산 자락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리산人』은 빼앗고 빼앗기는 약탈 자본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난 이야기를 담아 왔다. 생명의 편에 서서 공존과 연대, 순환과 자급, 돌봄과 선물, 다양성과 이해가 담긴, 지리산 정신이 담긴 이야기를 퍼뜨려 왔다. 더 많은 이가 지리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人』은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생명의 편에서. jirisan-in.net ❚ 편집자 코멘트 제작 과정에서 빠진 네 쪽(122~125)은 당신을 위한 공간이 되었어요. 빈 종이에 당신의 상상력을 채워 주세요. 당신의 땡땡땡을 넣어 주세요. 불완전한 책이라서, 빈 종이가 생겨서, 땡땡땡이 생겨서,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와 더 어울리는 모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빠진 부분은 낱장에 인쇄해 끼워 넣었습니다. 너그럽게 받아 주세요. 내지 종이는, 나무를 베지 않고, 100% 사탕수수 부산물로 만든 종이를 썼습니다. 사탕수수 종이를 느껴 보세요. ❚ 출판사 소개 ㄴ니은기역ㄱ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을 기록합니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아홉 농부가 생태순환의 삶을 담아 쓴 『살자편지』, 에코페미니스트 농부들이 자급하는 몸을 되찾자며 보낸 『벗자편지』, 반달가슴곰KM-53의 삶을 통해 야생동물과 한 터전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삼으로부터』,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숲에 살던 동식물의 목소리를 담은 『집에서 쫓겨났어』, 지키고자 하는 이의 시선을 담은 사진 에세이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등을 펴냈습니다. '지리산사람들' 회원 가입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회원가입 신청해 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vwNA7ZsGFOHTFN6aO43SgDov04v5zuLGj6EUbwdYvthcYkg/viewform 지리산사람들 누리집을 보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 누르면 볼 수 있어요. https://jiripeople.or.kr/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871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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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청하세요] 지리산운동, 지리산사람들, 지리산 대안문화 담은 책, /지리산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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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 [기후+마을] 줄어드는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우실지도 모르겠어요. 1960년대 이후 세계 물 사용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지요.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지금보다 30억 명이 더 물 부족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고요. 해마다 담수가 평균 4기가톤씩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나, 인류가 지하수 2조 1,500톤을 퍼 올려서 지구 자전축이 동쪽으로 80㎝ 기울어졌다는 연구 결과 같은 암울한 얘기는 인제 그만 듣고 싶으실 거예요. 담수 문제, 특히 지하수 고갈 문제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담수가 줄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 고갈이 늦어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해요. 물 부족 현실 속, 희망을 찾아서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환경과학과 스콧 야세코 교수 연구팀은 40개 나라 우물 17만 개와 대수층 1,700곳에서 지하수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대수층이란, 모래와 자갈과 점토 등으로 이뤄져 지하수를 머금고 있는 지층을 말해요. 눈과 비와 녹은 얼음이 지하로 스며들어 대수층이 만들어지지요. 그들이 연구한 결과 대부분 지역에서 대수층이 줄어들었지만, 지하수가 사라지는 속도가 늦춰진 지역도 있었다고 해요.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보자면,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 대수층은 2000년 이후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가 줄어들었어요. 또, 태국 방콕 분지의 대수층에서 벌어지던 담수 손실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역전됐다고도 해요. 이란의 압바스 에샤르기 분지 서부 지역에 있는 대수층에서도 수위가 복구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요, 이 외에도 스페인과 미국 일부 대수층에서도 지하수 감소 속도가 늦춰졌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떻게 지킬 수 있나 연구팀은 ‘수자원 관리’가 담수 손실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발표했어요. 예를 들어, 사우디 정부는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게 하는 등 지하수 관리 정책을 쓴 덕분에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를 늦췄습니다. 태국은 지하수를 퍼 올리는 사업자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하여 지하수가 마구잡이로 퍼 올려지는 걸 제한했지요. 지하수 감소 속도가 역전된 사례들을 통해 지하수와 지표수 관리 정책들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연구팀은 강조했습니다. 이제껏 함부로 뽑아 쓰던 지하수를 더는 무분별하게 퍼 올리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 개입이야말로 아주 중요하고 효과적인 물 부족 해결 방안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산청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하수 취수 증량 정책, 제정신인가? 그거 아세요? 산청군에 있는 4개 생수 공장 하루 취수 허가량은 5,264톤으로 국내 생수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제주 삼다수보다 약 1,000톤이나 많다고 해요. 여기에 하동까지 포함하면 6개 생수 공장에서 하루 6,364톤을 취수하는 셈인데요, 물 1톤은 보통 4인 가구가 약 이틀 동안 사용하는 수돗물 양이니, 6,364톤은 4인 가구가 12,728일 동안 쓸 물이고, 이를 지리산권에서 하루 만에 퍼 올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물을 많이 뽑아 올리는데, 얼마 전 경상남도는 여기에 더해서 하루 272톤을 더 취수할 수 있게 허가해 주었습니다.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 본사를 둔 ㈜지리산산청샘물은 하루 취수량을 기존 용량을 포함해 1,050톤까지 늘리겠다며 ‘450톤 증량안’을 경남도에 제출한 데 대해, 경남도는 앞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진행한 환경영향심사에서 272톤 증량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취수 증량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주민과 환경단체는 “특정 업체가 지하수를 싹쓸이하도록 허가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벌어졌다”며 “지하수 취수 증량 허가를 철회하라”며 경상남도에 요구했어요. 몇 해 전부터 흙탕물이 나와서 마실 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은, 환경영향조사에 주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었고, 과정도 모두 비공개되었으며, 이 조사의 비용조차 기업이 대고 있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어요. 게다가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주민 참여하에 동시 양수시험을 재진행하고, 최종심의 자료를 공개해 재논의하라”고 한 사회대통합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환경영향조사서 심의내용에 “지하수 고갈 위험”이 분명히 지적되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취수 증량을 허가하여 더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이미 전 세계 대수층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물 부족 국가인 한국은 2080년에 약 300만 명이 지하수 부족을 경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요. 물 부족 위기가 해마다 심해지는 이때, 대체 지하수를 마구 퍼 올리게 놔두는 정책들이 쉽게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대수층이 마르는 일은 개인이 물을 절약하는 일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미 물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이들이 계속 모두의 것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막는 정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합니다. 사진 : 증량 허가 결정이 나기 전, 주민과 환경단체는 여러 번 경남도청에 찾아가 ‘취수 증량을 불허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월 29일 경남도청은 한 기업이 하루에 272톤을 더 취수하도록 허가해, ‘편법과 불법으로 지하수 싹쓸이 허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글쓴이 : 홍버들 지리산인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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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지하수, 지킬 해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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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7 상이 :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⑦ 상이 :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⑧ 아랑 : 지구에 해롭지 않으면서도 하고픈 걸 하며 살고 싶은 청년에게, "주저하는 마음이 들고, 두려워도 괜찮아요. 우리 같이 해 볼래요?"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상이 도시에서 지리산으로 2011년 겨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문득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대학에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그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나는 누구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던 저에게 바깥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위 질문에 대해 한번 깊게 고민해 보자 생각하며 당시 부모님이 계셨던 도시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은 어린 동생을 혼자 중등대안학교에 보낼 순 없다며 지리산으로 귀촌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혼자 도시에 남겨진 저는 마냥 시간을 죽일 순 없었고, 무엇보다 집의 월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어머니와 연이 있던 환경단체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별생각 없이 시작한 직장생활은 일이 많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기에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료 관계도 쉽지 않았고, 혼자 지내는 도시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리산에 계신 부모님 집을 찾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몸은 도시에, 마음은 지리산에 두고 이중생활을 한 지 일 년이 조금 안 될 때,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여러 까닭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까닭은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혼자 살아갈 준비, 하루 여덟 시간씩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을 준비, 나보다 늦게 들어온 나이 많은 (남자)후배가 반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준비 등. 그리고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그 준비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해 말 잘 듣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에서 찾은 작은 자유 일을 그만두고 뭘 하면 좋을까 다시 시작된 고민에 부모님은 집을 지을 예정이니 잠깐 내려와서 도와 달라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잠시 부모님 집에서 쉬며 미래를 그려 봐야지 생각하며 2013년, 지리산 자락에 내려왔습니다. 그저 잠깐 쉬어 가야지 하며 가볍게 내려온 지역살이가 어느덧 9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비결이요? 저는 마음 맞는 또래 친구들을 제1 비결로 꼽고 싶습니다. 지역에 있는 대안 대학에서 에스페란토어 청강을 들으며 처음 친구 두 명을 만났고, 그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니 마을에서 관심을 주셨습니다. 주변의 마을 분들이 자연스레 “어느 마을에 누가 사는데 너희랑 비슷한 또래인 거 같다”는 식의 소식을 전해 주시곤 했습니다. 지역의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에 남아 제빵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 대안대학으로 귀촌하여 삶의 전환을 꿈꾸던 친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갔다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 친구, 지역에서 상근으로 군대를 다니던 친구 등 다양하지만 결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친구네에서 영화도 보고, 보드게임도 하는 등의 친목 모임이 계속 만남을 이어 가다 보니 “작은자유”라는 이름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가수 오지은 님의 노래 <작은자유>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함께함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즐겁게 지역살이를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먹고사는 이야기,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의 고충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식당 자리가 임대로 나오게 되었는데, 작은자유의 활동을 눈여겨보시던 동네 삼촌이 식당을 차려 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마침 모두가 아르바이트와 하던 일을 그만둔 상태였고,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시기였기에 긴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커뮤니티 밥집 <살래청춘식당 마지>가 탄생하였습니다. 마지 프로젝트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이 자립을 위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입소문을 타고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들에게 후원을 받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는 식당 운영을 통해 마을에서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다양한 활동과 돈벌이를 공간에서 함께하자는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여 두 해 정도 힘차게 달렸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지만, 친구 관계와 일을 함께하는 동료 관계를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하는지, 우리는 이토록 힘들게 일하는데 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지, 정말 지역에서 우리는 먹고살 수 있는지 등의 고민이 쌓여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지에서 함께했던 활동과 나눠 먹은 밥, 서로 돌봄의 구조가 최저임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걸 알지 못해 괴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는 2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환대와 변화 마지가 문을 닫고 오랜만에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직장이 있던 시내까지 편도 40분이 걸리는 출근 시간을 견디며 출근하여 주 5일 하루 8시간 자리만 지키면 꼬박꼬박 나오는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지요. 6년 만에 돌아온 직장생활은 제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을 빼고는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두 해 동안 몸담았던 회사 생활은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루 8시간을 직장에서 자리만 지키며 보내는 것이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의문부터 생애 가장 많은 돈을 벌며 ‘나에겐 이만큼의 돈은 필요 없다’는 결론까지.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제게 남았습니다. 마침 지역에서 “아주 작은 페미니즘 학교 탱자”를 운영하는 탱자 님이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와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통해 ‘공유지’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득세하기 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유지는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과 마을의 번영을 위해 각자 규칙을 가지고 운영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금송계禁松契’를 예로 들 수 있지요. 다양하게 쓰이는 소나무를 귀하게 여겼던 시대에 권세가가 마을 숲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소나무를 남벌하는 짓을 막고자 결성한 자치 조직입니다. 하지만 농촌에 살던 농민을 도시로 끌어내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권력자들은 공유지를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6세기 튜더왕조 초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종획운동enclosures이 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공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거지, 강도, 농노,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이렇게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공유 문화를 산산조각 낸 것일까. 굳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필요성이 없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어쩌면 공유지를 되찾는 일이 ‘거대한 전환’을 위한 출발이 되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때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자본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친구들 사이에 퍼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이나 그 가족만을 위한 사유지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유지로서의 숲의 개념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고 말이죠. 생태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을 위한 게더링gathering인 “지리산게더링”은 그런 제 고민에 돌파구 같은 활동입니다. 2019년 지역의 민간 중간 지원 조직인 ‘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 하동에서 댐 반대 운동을 하던 감자라는 친구와 연결되고, 생태적 삶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명 두 명 친구들이 모여 총 다섯 명의 친구들과 2020년 한 해 하동에서 게더링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 땅을 돌보며 여러 사람과 만나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며 우리와 같이 생태적 삶을 꿈꾸고 자립을 고민하는 사람,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역에 내려오고 싶은 사람, 생태적 삶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지리산게더링에 오고 난 후 도시 생활에 더욱 집중하게 된 사람 등. 그런 다양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화덕을 만들고, 물놀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연결된 삶, 순환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동에 있는 땅은 면적이 좁아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없었고, 사유지여서 함부로 농사를 짓거나 땅을 개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저희에게 선물 같은 제안이 들어옵니다. 구례에 놀고 있는 숲이 있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땅을 소개해 준 선생님의 따스한 환대와 넓은 땅에 반하여 저희는 구례로 활동지역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여성해방 마고숲밭’을 만들어 가는 일 2021년 봄, 구례의 한 숲에 퍼머컬처 농법을 배우겠다는 공통된 마음으로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어린이부터 50대까지, 지리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부터 농사를 짓고 싶지만 자기 땅이 없어서 고민하던 이까지. 함께 모여 퍼머컬처 기법의 이론을 배운 후 밭 모양을 함께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가 그린 디자인을 나누고 세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여 디자인을 정하였습니다. 자연의 모양을 본뜬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그린 여성해방 무늬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여성해방 무늬에 마고 신이 감싸 안고 있는 모양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름은 “여성해방 마고숲밭”으로 정하였습니다. 공동경작을 함께하는 사람 중에 여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만드는 바탕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직접 농사짓던 이웃 농부님이 채종한 씨앗을 잔뜩 나누어 주셔서 그 씨앗 리스트를 바탕으로 함께 심고 싶은 작물을 밭에 배치해 보고, 생애 처음으로 씨앗이 모종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숲으로 가 공동경작 친구들과 땀 흘리며 밭을 돌보고, 함께 점심을 먹고 계곡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곳에서는 늘 자신을 스스로 농부라고 소개하면서 속으론 ‘이런 농땡이 농부가 다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 풍요로운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사람이 없던 숲이 지금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공동경작 멤버들, 이명 풍물패, 숲밭에서 열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한 번씩 숲에 오는 참여자 등 다양한 친구들이 오갑니다. 저 역시 더욱 마고숲밭 가까이 살기 위해 작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차츰 ‘모두를 위한 공유지’에 한발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론 ‘함께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직면하고 있습니다. 스캇 펙 박사가 이야기한 ‘공동체 형성단계 이론Scott Peck's Four Stages of Community Development’에 따르면 신뢰와 소속감으로 시작한 ‘가짜공동체Pseudo community’는 시간이 지나며 현실주의와 만나 혼돈과 갈등에 부딪힙니다. 그 갈등을 직면하며 공동체의 공허와 마음 비워냄의 단계를 지나 신뢰를 회복하여 다시 만나게 된다면 ‘참 공동체True community’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 공동체의 단계란 단순히 도달하고 마는 이상적인 결과론적 개념이 아닌 나선형으로 순환하며 계속해서 혼돈과 갈등으로 돌아가지만 참 공동체를 지향점으로 두고 함께 바라보며 가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개념을 접하며 사람들이 한뜻으로 만나 자연스레 공동체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돈의 과정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구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지리산게더링은 다양한 갈등과 혼돈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신뢰를 잃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한 사람의 불편함도 쉬이여기지 않으며 반복해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알려 줍니다. 이제껏 사회가 돌아가던 구조에서는 기후위기를 ‘잘못된 것, 과학으로 해결해야 할 혼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공유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기후위기는 혼돈만이 아닙니다. 제가 친구들과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갈 새로운 공간은 기후위기라는 혼돈이 나선형으로 순환하여 결국 참 공동체를 찾아가게 하리라고, 서로 밥을 지어 먹으며 순환하는 삶에 가까워지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변화를 시작할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그게 저에게는 지리산게더링이고 여성해방 마고숲밭입니다. 나의 벗자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제가 한 달에 지출하는 비용을 계산해 봤을 때 50만 원(±α)이 필요한데, 사실 내 노동력을 팔아 쉽게 생활비를 벌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숲을 빌리고 집을 지은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면 농사짓기와 더불어 손작업으로 자립하는 일상을 상상하게 됩니다. 내가 직접 기른 채소로 밥을 지어 먹고 좀 여유롭게 거둔 작물은 다른 이와 바꾸어 먹을 수 있는 일상을 상상합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 내가 살아갈 집, 자연이 준 텃밭, 예상치 못하게 목돈이 필요한 순간 등등 내가 처할 환경도 상상해 봅니다. 삶의 전환을 생각할 때 내 곁에 있는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선택이 좌지우지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큰 변화는 언제나 공간과 주변 사람들의 변화와 함께했습니다. 나를 변화하게 한 모든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또 한 번 전환과 변화를 앞둔 지금 이 앞을 가로막는 환경 혹은 장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살피며, 또 옆에 있는 서로를 돌보며 지금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이 돌아가는 방향과 모양새를 담아 정리한 약속문을 공유하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여성해방 마고숲밭>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에코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숲을 우리 삶의 중요한 기반으로 여기고 함께 돌봅니다. 우리는 나이, 성별, 성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여부, 국 적, 피부색, 출신 지역 혼인 여부, 가족관계 등과 관계없이 동등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어를 쓰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느낄 때 마음을 터놓고 혼자 참기보 단 함께 나눕니다. 서로의 마음과 시도를 경청하고 존중하며, 문제에 대해서 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처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모두 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합니다. 약속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고 변화하는 방 향으로 함께 약속을 만들어 갑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이 모두의 공유지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것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폭력과 차별에 반대합니다. 비인간동물을 죽이고 착취하는 종차별주의에 반대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 다. 나이, 성별 등 위계에 의한 호칭 문화를 지양합니다. 본인 이 원하는 호칭을 서로에게 알리고, 서로를 그 호칭으로 부릅니다. 여성해방 마고숲밭은 누군가의 집이자 생활공간입니다. SNS에 이곳 소식을 올리거나 사진을 촬영할 경우 사전에 동의를 구해 주세요. 우정의 환대로 방문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자리 를 내어 줍니다. ◌ 상이 ◌ 스물한 살,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리산에 왔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6년, 친구들과 함께 구한 셰어하우스에서 3년, 합해 9년째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2015년 처음 페미니즘을 접한 뒤,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 중입니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여성회의” 위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지리산게더링”이라는 이름으로 공유지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게더링 ‘여성해방 마고숲밭’에서 함께 자급하는 농부를 꿈꿉니다. 에코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만, 기존의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의 무게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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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7 상이 :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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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2 - 하늘은 온통 푸른 색
- ■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2 - 박두규 고등학교 때, 『글내』 라는 동인지를 만들며 함께 문학을 했던 친구 중 이재형이라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이 나보다 한 수 위였던 이 친구의 글을 부러워하며 시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는 대학생 시절(한국외대 불문과)부터 번역을 하며 졸업 후에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간행하는 대부분의 프랑스 소설들을 번역해왔다. 그리고 결국은 프랑스로 넘어가 현재는 파리에 살고 있다. 그가 요번에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는 멜리사 다 코스타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 Tout le bleu du ciel』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1백만 부 이상 팔린 책이라고 한다. 나는 다 코스타라는 작가도 모르고 그의 소설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래의 이재형이 올린 글을 읽고 이 작품은 요즘 내가 삶의 화두로 생각하고 있는 ‘존재의 새로움, 새롭게 살기’에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끝에서 시작되는 삶을 위하여 이재형 1. 모든 끝은 사실 시작이었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이라는 단어 앞에서 움츠러든다. 마치 그것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패배나 단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리사 다 코스타의 소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이 단어를 뒤집는다. 이 책은 끝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깨닫는 것은 이것이다. 끝은 종착지가 아니라, 삶이 비로소 자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문턱이라는 사실. 에밀, 서른 살의 젊은 남자는 치명적인 병을 진단받는다. 인생을 다시 설계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채, 그는 조용하게 사라질 준비를 하는 대신, 뜻밖의 선택을 한다. 그는 광고를 하나 올린다. “중고 캠핑카 동행자 구함. 긴 여행. 목적 없음. 조건: 지나치게 말이 많지 않을 것.” 세상에 둘도 없는 엉뚱한 제안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마지막 시간에 ‘여정’을 입히기로 한다. 그리고 그 광고에 응답하는 한 여자, 조안. 두 사람은 서로의 과거를 절대로 묻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하나의 삶을 함께 굴려 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이 만남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또한 삶의 마지막에서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새롭고, 얼마나 넓고, 얼마나 맑은 푸른색을 띠는지 보여준다. 이 에세이는 바로 그 푸른색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이 시작이 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이 비로소 자기 삶을 회복해 가는 순간들에 대하여. 2. 인간은 언제 진짜로 ‘살기’ 시작하는가? 『하늘은 온통 푸른색』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언제부터 진짜로 살기 시작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을 미루며 살아간다. 우리는 계획과 의무, 사회적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척’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멀리 보내고 싶었던 감정이나 회피했던 상처들은, 침묵 속에서 슬그머니 무게를 늘려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한다. 그러나 병이라는 돌발적 통지가 남긴 폭력성 앞에서, 인간은 종종 다른 눈을 얻게 된다. 에밀이 선고받은 병은 다른 말로 하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유예된 시간이었다. 과연 삶을 바꾸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멜리사 다 코스타는 이렇게 답한다. 삶을 바꾸는 힘은 ‘끝에서 바라본 세계의 시선’에서 온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비로소 삶을 본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가진 것의 진짜 명징함을 깨닫는다. 에밀은 죽음을 향해 떠나는 동시에 삶을 향해 떠난다. 그가 캠핑카에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들은, 벼락처럼 의미가 생겨난다. 한 줄기의 빛, 바람의 자잘한 떨림, 나무의 냄새, 모닥불의 소리, 서로에게 말을 아끼는 낯선 사람의 동행. 이 소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생의 가장 미세하고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문학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던 세계는, 사실은 아직 단 한 번도 온전히 바라본 적 없는 순수한 푸른색이 아니었을까? 3. 멜리사 다 코스타의 문장은 감정이 아니라 ‘체온’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언어가 감정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넘어, 언어가 체온을 갖는 순간을 경험한다. 멜리사 다 코스타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그녀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절제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채워져 있다. 잔잔함과 고요함으로 밀려오는 침묵의 문장들. 폭발적인 묘사가 아닌,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사유의 파동. 독자는 이야기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숨결을 함께 쉰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의 강점은 바로 이 미묘한 정서적 진동이다. 그녀는 서정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풍경은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구조적 장치다. 기억, 후회, 상실, 용기,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 모든 것은 자연과의 동행 안에서, 풍경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밝히고 또 천천히 치유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느끼도록 만든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영혼이 스스로 정화되는 과정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구나.” 이것이 멜리사 다 코스타 문장의 고유한 힘이다. 4. 두 개의 상처, 두 개의 비밀, 그리고 하나의 길 에밀의 병만이 이 소설의 중심 축은 아니다. 그와 동행하는 조안 역시 깊고 어두운 곳에 자신의 과거를 묻어둔 사람이다. 이 소설이 단순한 ‘치유’나 ‘여행’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안은 에밀의 여행에 합류하지만, 그녀 역시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는 약속이 서로를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는 것이 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 코스타는 이 아이러니를 천천히, 그러나 매우 아름답게 풀어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장소’를 서로에게 제공한다. 이것은 자기 구원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돕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말없이 존재해준다는 사실이 어떻게 한 개인을 구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이 두 인물의 여정은 죽음과 삶, 상처와 회복, 도망과 귀환, 상실과 선택의 문제를 모두 품어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문학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손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니, 누가 우리의 곁을 묵묵히 지켜만 주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가?’ 5. 풍경이라는 문학, 자연이 인물의 내면을 대신 말하는 순간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의 가장 빼어난 문학적 특징은 풍경과 인물 내면의 동조율이다. 이 소설에서 풍경은 단지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대사의 다른 형태이며, 침묵의 서술자다. 숲의 색이 변하는 순간 인물의 감정도 달라진다. 바람이 갑자기 거세지는 순간, 인물의 갈등도 더 깊어진다. 하늘의 푸른색이 짙어지면, 생에 대한 의지가 되살아난다. 이 모든 연결은 인위적이지 않다. 소설은 풍경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만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그 절제는 오히려 독자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특히 조용한 장면들—나무 사이로 비가 스며드는 소리, 모닥불 앞에서의 침묵, 도로 위 캠핑카의 흔들림, 안개가 걷히는 새벽의 산등성이—이런 묘사들은 인물의 말을 대신해 서사적 결정을 내린다. 문학적 쾌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폭발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보이는 풍경 속에 녹아들어, 독자의 눈앞에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순간. 멜리사 다 코스타는 풍경 묘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도 자연처럼 회복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6.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질문 소설을 읽고 난 뒤 남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삶의 핵심을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다시 태어나는가.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삶의 한복판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을 건져 올린다. 한 사람의 미소, 조용한 아침 공기, 함께 타는 불빛, 누군가가 말없이 내 곁에 있는 시간. 인생은 사실 거대한 목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천천히 살아가는 법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인생은 어느 날 문득 온통 푸른색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볼 여유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7. 이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가 — 문학 독자를 위한 마지막 권유 문학을 읽는 사람은 단순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세계의 구조, 감정의 층위, 삶의 깊이를 탐색한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그런 독자를 위한 작품이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본질, 상실을 대하는 태도, 삶이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진실된 시선을 탐구한다. 문학적 완성도, 서정성, 구조적 탄탄함, 정서적 깊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읽는 동안 우리는 여행자가 된다. 에밀과 조안이 보는 풍경을 함께 보고, 그들의 침묵을 함께 들으며,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었다. 우리가 고개를 들지 않았을 뿐.’ 글쓴이 : 박두규 시인, 지리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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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2 - 하늘은 온통 푸른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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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류가 역류할 때 -자화상
- 역류가 역류할 때 -자화상 이민숙 잠을 자야 하는데 누울 수 없을 만큼 물 한 모금도 역류한다 한 시절 하늘을 향해 엄마를 향해 하물며 죽음을 향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온몸을 쳐들었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들 가슴의 뜨거운 반항만이 내 것이라고 그것만이 지겨운 중력의 억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시, 읽고 또 읽었다 끝내 진실한 무엇 같았다 진실과 역류 사이, 시와 구름 사이 허공 한 잔과 커피 한 잔 사이 친구, 세상 사는 건 시가 전부라고 하던, 고독하게 혼자 살았던 그녀는 외로움이 기막혀 한 남자를 맞이했다고 했다 시가 뭐 별거냐고...... 시가 뭐 별거냐고, 나도 따라 웅얼거린다 역류를 몰고 온 내 몸의 시, 가만히 잠들고 싶을 때 따스하게 잠들고 싶은 몸 우리 걸었던 겨울 찬 바람 오월 숲의 나무 한 그루 꽃 아니 피울 수 없는 바람, 향기, 시. 역류에 올라타며 함박꽃 꽃이파리를 흔들고 있다 ------------------------------------------------------------------------------------------------ 역류는 정상적인 순탄한 흐름을 뒤집어 흐른다는 것이다. 시 속의 화자는 건강한 삶에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위중한 병을 얻은 듯하다. 그러나 그 역류를 다시 역류하게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가슴의 뜨거운 반항만이 내 것이라고’ 하며 시에 매달린다. 외로움이 기막혀서 한 남자를 맞이했다는 시 쓰는 친구를 생각하며 시가 뭐 별거냐고 중얼거리지만, 그 시는 역류를 몰고 온 내 몸의 시라고 생각한다. 역류를 역류하게 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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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류가 역류할 때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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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와 단감
- 감은 물렁할때 먹는 무른 감과 딱딱할 때 먹는 단단한 감이 있습니다. 무른 감은 홍시, 단단한 감은 단감이라 부릅니다. 단감, 달달하다는 말인데 이 달달하다는 말을 독차지하기에는 다른 감들이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단감이 있으면 반대로 떫은 감이 있기에 홍시들이 단체로 반기를 들 것입니다. ‘나는 떫냐?’ 하지만 이 감들은 모두 언젠가는 달콤한 단감으로 변합니다.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 조금 떫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어릴적 기억에 남아있는 감이 있습니다. 단단할 때 먹는 단감인데 먹을 시기가 되어도 절반은 달고 절반은 떫습니다. 한 감에 두 가지 성향 또는 지향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삼팔선단감입니다. 한 국가에 두 국가, 같은 민족이 두 나라로 쪼개진 것과, 감의 맛이 한 감에서 갈라진다는 것이 비슷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감을 먹을 때는 반은 맛있게 먹지만 나머지 반은 버리게 됩니다. 떫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갈라져 하나만 선택한 한 민족들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이 감도 홍시가 되면 갈라졌던 삼팔선이 이어져 달콤한 감으로 변합니다. 하나의 감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은 ‘너 나이 때는 통일되서 군대 안간다’였습니다. 하지만 전 군대를 다녀왔고 통일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 때는 통일 안돼 군대 가야해’ 라고 말합니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니까.... 가을이면 먹을 만큼의 감을 따고서 높은데 남은 감들 몇 개를 남겨둡니다. 이름은 까치밥, 다른 생명들이 먹으라고 감나무마다 2~3개의 감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높아서 못 따니까 어쩔 수 없이 남겨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낭만적으로 생각해서 까치밥으로, 생명들을 배려해서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생명의 범주에는 사람도 포함이 되기에....저도 겨울에 가끔 먹기도 합니다. 까치밥이 호모사피엔스의 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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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와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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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 농가월령가 첫 시작인 1월령의 1월은 음력의 정월인데요 1월에 입춘과 우수가 든다 했어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입춘은 정월 1월에 들 때도 있고 섣달 12월에 들 때도 있다 해야 합니다. 반면 우수는 꼭 1월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섣달에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다했어요. 올해가 딱 그럴 때입니다. 입춘이 음력 12월 17일이거든요. 입춘인데도 요즘 날씨가 춥고 눈 많이 오는 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 어찌 봄이 오는 입춘일 수 있을까요? 아직도 날은 한겨울인데 말이죠.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반드시 봄이 오는 걸 모르는 건 사실 흙을 떠나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박스에 사는 사람 뿐이라고 저는 강조합니다. 흙을 밟고 사는 농부, 나아가 흙과 자연 속에 사는 미물조차도 입춘에 봄이 온 줄 알게 되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알까요? 사실 입춘만이 아니고 절기 모두는 기온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로 나누죠? 맞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나누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해 그림자로 나누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해시계, 곧 앙부일구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마다 고유의 해 각도가 있고 해 그림자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흙을 밟고 해를 등지고 사는 생명이라면 다 안다는 거죠. 실제로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밭에 가보면 봄이 온 지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정오 근방이 좋죠. 그래서 입춘날엔 꼭 봄맞이 하러 밭에 가자고 역설합니다. 이게 진짜 새해 맞이 일지 몰라요. 동지 다음날 해보다 입춘날 해맞이가 더 새날의 기운을 받는 것이지요. 새벽 일출을 보는 것보다 한 낮 밭에 드리워진 해의 기운을 받는 게 더 새해의 첫 기운이 됩니다. 그 새날의 기운을 듬뿍 담은 게 있으니 바로 입춘 냉이입니다. 입춘 냉이는 지난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애에요. 그래서 저는 입춘 냉이는 산삼보다 보약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튼 입춘 맞이를 새해 맞이로 본 조상들은 그 의례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입춘첩입니다. 새해가 되면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고 그러죠. 거기에다 색깔로 동물을 나눠부르잖아요. 올해는 병오년, 빨간말 또는 적토마의 해라고 호들갑이지만 그건 입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갑자 달력에서 신정은 아직 새날이 아니거든요. 입춘 근방엔 더불어 음력 정월 설날이 옵니다. 입춘에 앞서 오기도 하고 뒤이어 오기도 하죠. 우리의 설날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음력 정월 설날과 양력 입춘 설날이 있는 거죠. 명리학 하는 분들은 어느 게 진짜 설날이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둘 다 우리의 설날인데 다만 선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 달력의 신정 설날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실 이는 동지 설날에 근거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당시의 천문기술 상 동지날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해가 길어지는 걸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동지 열흘 후쯤을 임의로 삼은 거죠. 그럼 왜 우린 입춘을 새날로 삼았을까요? 천문 기준으론 동지가 기준이지만 동지 이후 본격적으로 추워지니 날씨 기준으로는 봄 기운이 시작되는 날, 곧 입춘을 새날로 잡은 겁니다. 입춘은 12지지로 인寅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일년이 아닌 하루에 적용하면 새벽 3시에서 5시까지가 인寅시에요. 이 인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인월에 드는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입춘에 봄이 시작되듯이 인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건 닭이 알려주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었죠. 사실 자시의 자정을 하루 시작으로 한건 좀 그래요. 저 같이 1시쯤에나 잠드는 야행성인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맞이하는 꼴이니 말이죠. 오히려 일출을 알려주는 닭 우는 시간이 하루 시작인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 인월을 정월로 삼은 게 자연스런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가 인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아직 한밤중이니 저는 여전히 섣부른 나일롱 農夫인가 봅니다. 그럼 봄은 왜 닭이 아닌 호랑이(寅)를 상징으로 표현했을까요? 곰처럼 제대로 된 겨울잠은 아니어도 겨울잠처럼 웅크리고 지내다 입춘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질러대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숲 속에 봄을 일깨워 준다고 했어요. 봄이 되면 언 땅이 풀리며 쩍쩍 갈라지는 금들이 마치 호랑이 포효소리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추워도 농부는 입춘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지개 켜며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종자 손질과 거름 준비에요. 씨앗과 흙의 생명을 여는 행위이니 이처럼 성스런 일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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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