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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 [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의 어느 봄 날, 하동 화개에 자리한 작은미술관 ‘도엔효’를 찾았다. 화개초등학교와 화개중학교 사이에 자리한 이 곳은 예전 구멍가게 자리였다. 아이들의 참새 방앗간이었을 그 곳에 이제는 하동을 찾은 여행객, 지역의 예술가, 주인장과의 찻자리가 그리운 이웃들이 한가로이 드나든다. 마을 이웃과 함께 둘러앉은 도엔효의 주인장 효원님은 향긋하게 우려낸 차의 첫 잔을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한 켠에 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고향은 함양이에요. 30년 전 서울에 살 때 학교 선배가 차를 우려서 내주었는데 맛이 아주 부드럽고 향기가 순했어요. 선배에게 ‘이 차 어디서 났느냐.’ 물었더니 하동이라고 해서 그 길로 바로 하동으로 내려와 ‘도재명차’에 갔죠. 거기서 다음날 해가 뜰 때 까지 밤새 차를 마셨는데 그 이후로 어디에 살든 5월이 되면 바람결에 차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어요.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차에 매료당했던 것 같아요. 봄에 이 곳에 오지 않으면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프곤 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봄이 가기 전에 여기 와서 차 향기를 맡고 갔어요. 그러다 29살 때 짐을 싸서 하동으로 내려왔죠.” 자연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물건들 문을 연지 12년이 된 작은 미술관 도엔효는 리넨으로 만든 옷과 소품,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지리산 자락에 사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수돗가나 강가에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다.’고 소개하는 정성어린 물건들이 참 따스하고 곱다. 도엔효에 있는 리넨 옷과 소품은 주인장인 효원님이 자연스러운 소재의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산에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잉여적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쟁이 나도 옷을 짓는 일은 필요하겠더라고요. 한 글자로 되어있는 단어들이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밥, 옷, 집, 몸 같은 것들이요. 이 중에서 저는 손쓰는 것을 좋아하니 옷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천연염색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다가 소품을 하게 되었고 옷도 만들게 되었어요. 옷은 인간의 ‘예’를 갖추는 수단이기도 해서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더 맞다 생각했어요. 옷을 만들 때 되도록 합성섬유가 들어가지 않는 천연 섬유를 사용해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버려졌을 때 어떨지 생각해요. 옷으로 인한 환경 악영향이 아주 크니까요. 겨울옷에 들어가는 털은 가끔 폴리에스테르를 쓰기도 해요. 그렇다고 동물 털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효원님이 직접 만든 옷과 소품들은 도엔효 공간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편안한 ‘배경’이 되고, 때로는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충만하다고 느껴요. 패브릭은 ‘배경’이예요. 배경만 가지고 공간을 꾸미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이나 조명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것들로 조화롭게 가꾸어나가고 있어요. 컵받침은 컵 아래에 놓였을 때 조화로운 거니까요.” ‘삶’을 닦는 일터 ‘삶’과 ‘일’의 방향성이 같기를 바란다는 효원님은 일상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살피고 매 순간 올곧게 존재하는 사람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지만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판매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살아가며 자연에 온전히 녹아든다고 느껴요.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유지되고 있다 생각하지만 작은 어려움들은 늘 있어요. 이런 일을 하면 집에 짐이 참 많은데 그럴 때 고민이 되기도 해요.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게 맞을까?’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해보게 되죠. ‘손님들이 이 옷을 사가서 잘 입으실까?’ 안 입으실 거면 사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기분 나빠하는 손님도 계시지만 저는 물건을 사서 안 입고 안 쓴다고 하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물건을 만들 때 일상에서 잘 쓰일지 늘 고민해요. 물건도 잘 써야 생기가 생기니 만물이 잘 쓰여 지면 좋겠어요. 물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손님이 오시거나 그냥 차 한 잔만 하고 가셔도 괜찮아요. 나답게 번 적은 돈으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알아차리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있어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도엔효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든 평안을 바라며 차를 내어주는 도엔효가 ‘반달곰을 사랑하는 1%가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버려도 탈이 없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 지리산과 반달곰을 사랑하는,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삶’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조용하게 사는 편이지만 목소리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참여하기도 해요. 반달곰 가게는 구례에 사시는 윤주옥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함께 하겠다고 했죠. 이런 연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깨어있다’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만물에 깨어있다면 삶의 방향이 ‘생명’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불교의 ‘연기’라는 건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나 혼자만 방 안에서 깨어있을 수 없죠. 내가 마시는 물, 공기, 물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동물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것 같아요.”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반달곰’을 좋아한다거나 ‘동물’의 개체를 지키고 서식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뜻만은 아닐 테다. 반달곰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향긋한 차 한 잔 내어주는 평화로운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마음을 담아 연대하고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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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미술관, 도엔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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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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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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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지리산人』 편집위원들과 함께 피아골로 들어요, 어릴 적 밟던 산 흙을 밟는 걸음이 무거운 것은 두렵기 때문이죠. 앞서는 걸음이 불확실해 품기만 하던 피아골 품에 들어갑니다. 숨은 항시 따라붙는 것이라 숨결처럼 달라붙는 산에서 나는 작아집니다. 쓰러져 있는 신갈나무가 병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우리는 매장에 관해 말합니다. 수목장이 좋을 것 같아요. 조장이 괜찮겠어요. 얼른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품고 기다립니다. 화장, 화장은 한 생애를 태우는 고통이지요.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앞서가는 선재님이 진달래 꽃잎을 따 먹습니다. 꽃 맛은… 진달래가 떨고 있어요. 뒤따르던 지리산도 진달래 몇 잎 따서 먹었답니다. 상추처럼 시원하고 신선한 첫맛? 바람은 듣지 못하여서 흔들거려요. 쓰러진 나무 아래 겹겹이 쌓인 낙엽 위로 이끼긴 바위 아래 돌계단이 휘청합니다. 산에서 산을 꼭 잡고 서요. 입 마른 산수국 꽃잎이 툭툭 말을 겁니다. 시는 산수국 꽃잎처럼 오가며 말을 겁니다. 지리산에 묻어둔 기억은 표고막터 거쳐 그리던 삼홍소에 빠진 산 그림자 한번 보려는데 봄이라고 부슬, 봄이라고 부슬, 비가 내려 쌉니다. 삵의 똥은 까맣게 삵의 흔적을 말합니다. 가던 길 멈추고 힘들다는데, 말하지 않아도 오르막은 힘든 법이랍니다. 진달래 숨결은 보드라운데, 산바람 할퀴고 피는 진달래라고 씁니다.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사방이 지리산이라 나는 피아골 대피소로 피해 숨을 돌립니다. 피아골을 들이마십니다. 비로소 산에 있어요. 멀리서 그리던 산에 왔어요. 하여 넘어져도 가고 넘어져도 산인 지리산에서 오던 길 다시 돌아 산을 또 내려갑니다. 그렇게 『지리산人』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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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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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 청명 즈음해 드는 명절이 한식입니다. 명절은 대부분 음력으로 따지는데 한식만 예외로 양력으로 따집니다. 동지 105일 후를 한식으로 하거든요. 근데 하필 왜 105일일까요? 맞습니다. 이게 15일 정도 간격으로 오는 절기에 맞추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동지 이후 청명까지 7개 절기가 드니 15일 곱하기 7개하면 105일이 되거든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 산에 숨어살며 나오지 않는 개자추라는 충신을 끌어내기 위해 불질렀다가 그 불에 타죽어 왕이 그날만은 불을 지르지 않고 찬밥寒食을 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게 한식날입니다. 근데 그 고사는 중국 얘기이니 잘 모르겠고요, 제가 볼 때는 봄에 농사 준비로 불 테우는 일을 한식과 청명 전에는 끝내고 조상 산소에 찾아가 잘 올라온 잔디를 밟아주거나 뗏장을 가져다 입혀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소까지 테워서도 안되지만 또 그 때되면 봄비도 오기 시작해 불 태울 일도 없을테니요. 청명과 관계된 음력 명절로는 3월3짓날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을 명절로 삼아 동네 잔치를 벌였답니다. 우리는 1월1일 설날, 3월3일 삼짓날, 5월5일 단오날, 7월7일 칠석날, 9월9일 중구절 등을 길한 날이라 해서 명절로 삼았어요. 이 날들이 전부 양(+)을 뜻하는 홀 수가 겹치는 날이라 길하게 본 겁니다. 양이 겹쳤다는 의미의 중양절이라고도 하죠. 그래 3월3짓날은 1월에 시작한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했습니다. 삼짓날이 그만큼 날씨가 봄답게 온화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래서 씨앗 파종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게 중요하죠. 말하자면 씨앗 심고 싶은 철인데요, 사람들에겐 사랑을 나누기 딱 좋은 철이기도 합니다. 아마 바람둥이 제비족이란 말도 이와 관련있을 법한데요, 그렇지만 마구 씨를 뿌려대면 쭉정이만 나올 수 있으니 제비족 같은 바람둥이는 경계하란 뜻이 담겨 있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봄과 관계된 것으로 바람이 있지요. 생각할수록 바람이란 말은 참 재밌습니다. 옛날엔 바람을 하늘님의 숨이라 했어요. 그래 하늘님이 노하시면 태풍 같은 무서운 바람이 불고 하늘님이 기분 좋으면 살랑살랑 사랑의 봄바람이 불지만 인간이 오버해 미혹한 바람을 일으키면 사단이 났던 거지요. 성경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은 다음 코에다 사랑의 숨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비슷한 얘깁니다. 청명이 되니 모든 봄꽃이 만개를 하네요. 옛날엔 순서대로 꽃이 폈는데 요즘은 경쟁하듯 한꺼번에 핍니다. 거의 제일 먼저 피는 개나리가 보통보다 일주일 늦게 피더니 곡우 즈음해서 피는 조팝꽃이 벌써 폈어요. 벗꽃은 자기 순서 기다린 듯 개나리 피기 무섭게 피네요. 올해는 음력이 늦어 개나리가 늦게 핀 듯 한데, 벗꽃 조팝꽃은 일찍 피니 늦은 음력 탓하기가 힘듭니다. 음력이 늦어 감자나 봄 채소들은 늦게 심으려는데 벗꽃 조팝꽃 일찍 핀 걸 보면 벼와 곡식들은 늦게 심는 게 능사는 아니겠어요. 문제는 서리에 약한 고추 같은 과채류들입니다. 음력이 늦은 올해 같은 경우 늦서리가 올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되도록 늦게 심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여전히 저희 밥상엔 나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늘 대용인 달래는 기본이구요, 돌나물, 씀바귀, 부지갱이도 늘 올라오는 밑반찬이지요, 잠깐잠깐 요 때만 먹을 수 있는 눈개승마 나물도 입맛을 돋구는 데 모자람이 없더만요. 제가 울릉도 미나리라 이름 붙인 전호나물도 생채로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는데 그 맛이 그만입니다. 요즘엔 원추리 나물과, 머위나물이 핫 이슈입니다. 머위나물은 살짝 비린내 같은 게 있지만 들깨가루에 무치니 그 맛은 사라지고 머위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나대요. 원추리 나물은 독이 있어 망설이다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감동이더이다. 독을 제거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대쳐야죠. 식감과 우러나는 단맛이 끝내주고 입맛을 돋구는 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어요. 청명이 다가오니 이젠 나무 순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올라온 두릅에서부터 다음 주부터는 나무 순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또 군침이 도네요. 구 기자 순, 엄나무 순, 화살나무 순, 다래 순, 오가피 순, 가죽나무 순이 순서를 기다릴 겁니다. 나무 순 중에서 최고라는 옻나무 순만 먹어보질 못했어요. 나물을 이렇게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옻순처럼 독이 있는 나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없을 겁니다. 한 번은 옻닭 백숙 먹으러 갔더니 식당에서 옻독 오르지 않게 약을 주대요. 약이라면 손사래치는 체질이라 걸리면 걸리라지 하며 약 먹지 않고 먹었는데 멀쩡했어요. 아마 이것저것 나물 많이 먹으며 내성이 생긴 것 아닌가 싶었죠. 청명엔 아무거나 심어도 싹이 잘 나지만 그래도 파종하는 날은 음력 삼짓날과 양력 절기인 청명과의 관계를 잘 살펴 잡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청명과 음력 삼짓날 사이에 파종날을 잡는 게 좋다고 보시면 됩니다. 청명은 절節이고 곡우는 중中이어서 청명은 2월에 들 때도 있고 3월에 들 때도 있어요. 곡우는 중이어서 꼭 3월에 들지만요. 그래 청명이 어느 달에 드느냐에 따라 파종 시기가 달라집니다. 방금 청명과 삼짓날 사이에 심는다 했죠. 그러니까 청명이 2월에 들면 삼짓날 전에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일찍 심고, 청명이 3월에 들면 삼짓날 지나 심어야 하니 음력으론 늦게 심습니다. 그렇지만 양력으로 보면 반대에요. 음력으로 빠르면 양력으론 늦게 심고 음력으로 늦으면 양력으론 빨리 심는다는 거죠. 말로 하니 헷갈리지만 손으로 달력 메모장에 써가면서 하면 금방 파악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명 농사일정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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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제비가 돌아오는 3월3짓날과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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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는 지역에 이용의 우선권이 있는 공공재다. 물 이용의 생태적 원칙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3)
- 물 이용의 권리와 생태적 원칙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물. 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빗물과 강물, 바닷물, 지하수의 형태로 우리 몸 밖에 존재하는 물은 대표적인 공공재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물사용의 우선권은 예로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깨끗한 샘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샘은 공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계곡수나 저수지의 물은 수원과 가장 가깝고 위치가 높은 경작지에서 먼저 사용할 권리를 가지지만, 초과된 물을 바로 아래로 흘려보내어 밑에 사는 사람이 차례대로 이용하고,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때 우선이란, 시간적 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양적인 뜻이 아닙니다. 그 물은 어차피 아래로 흘러갈 것이었므로, 양적인 우선을 주장해보았자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마실 물을 떠가는 경우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지고 갈 수 있는 양, 토기 항아리에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양을 떠갔기 때문에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사람의 수 자체가 적었지요. 인공수로가 발명되고, 금속관이 발명되고, 플라스틱관이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멀리서 물을 끌어오고, 더욱 밀집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수도관 뿐 아니라, 마침내는 여기저기 지하수 관정을 뚫고, 플라스틱 호스로 옆 골짜기의 물을 대량 끌어다가 농업용수, 산업용수로 쓰고, 급기야는 병에 물을 담아 팔기 시작하면서, 지표수와 용천수 이용의 생태적 원칙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관정과 수로를 내가 만들었으니, 이 물은 내것이야 내가 오래 살던 산동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논에는 작은 샘이 있어서 도랑에 물이 흐르지 않는 가뭄에도 그 물을 모아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위쪽에 있는 논에서 관정을 뚫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가뭄에 모내기를 하기 위해 조금씩 받아놓은 우리 논물이 몇 시간만에 쫄딱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관정을 통해 지하의 물이 빨려 들어가 지표면의 물도 사라진 것이죠. 위에서 관정을 돌리니, 우리 논의 자연샘은 싱크대의 배수구처럼 작용했습니다. 윗논 주인은 그 물을 사용해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한 다음, 여분의 물을 바로 아래인 우리 논에 내려 보내주지 않고, 플라스틱 호스를 이용해 한참 저 아래에 있는 자기 논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물을 모으기 위해 관정을 꺼버리자, 윗논 주인이 와서 쌍욕을 했습니다. “씨발새끼야,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내가 우선이야!” 하면서요. 바로 옆의 골짜기에도 우리 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가장 꼭대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옆 골짜기의 논에서는 우리 논이 있는 골짜기의 위쪽에 호스를 박고 봇도랑을 만들어 물을 끌고 갔습니다. 계곡물이 다 옆 골짜기로 흘러가서 우리 논에는 흘러들어오는 물이 없었습니다. 봇도랑을 막고 우리 논에 물을 대면, 새벽같이 와서 물을 끊어 놓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봇도랑이 우리 논보다 위에 있으니, 자신이 우선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쌍욕을 주고 받고, 홧병에 걸릴 것 같은 나날이 며칠 지속되었습니다. 문제는 우연한 죽음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그 사람이 이른 아침에 트랙터를 몰고 마을에서 논으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커브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운명의 타격이었죠. 다들 속으로 그가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서져서 못쓰게 된 트랙터는 한참 동안 그의 논 옆 길가에 방치된 채 놓여 있었고, 그렇게 우리를 괴롭혀서 물을 모아놓은 그의 논은 농사지을 사람을 잃은 채 한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결국 마을에 사는 다른 사람이 그가 관리하던 논에 늦은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악착같이 물을 빼앗으려 했을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물부족의 이유 한 가지 시골마을에 물싸움은 예사라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한반도의 벼농사는 기원전 10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높은 산골짜기라 할지라도 논이 만들어진지는 수백년이 됩니다. 논과 둠벙은 지역에서 나는 물의 양에 걸맞게 만들어진 거라서, 이례적인 가뭄이 들지 않는 한 조금씩 배려하고 아끼면 충분히 골고루 쓸 수 있었습니다. 인력으로 나무를 캐고 돌을 쌓아서 논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이므로, 애초에 물이 부족한 곳은 시도할 가치가 없습니다. 즉, 논이 있는 곳에는 원래 충분한 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산골마을에서 물 부족 현상은 이상기후 이전에 다랑논을 경지정리해 큰 논을 만들고, 트랙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습니다. 큰 논에서 트랙터로 논을 갈 때는 작은 다랑논에서 소로 논을 갈 때에 비해 한 번에 훨씬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경지정리를 해서 논이 들판처럼 너르게 된 후, 골짜기의 소농들은 다른 골짜기의 물을 끌어오고, 여기저기 관정을 뚫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관정들이 다 신고되거나 허가받은 것도 아닙니다. 농업 생산의 기계화, 규모화는 다랑논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경지정리를 안 할 수도 없었죠. 물부족은 강우량과 기후만이 원인이 아니라, 삶의 양식과 문화, 문명의 방향성, 인간사회의 규칙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현대적 생태공학과 기업이 공생할 때 그런데 이런 소농들 간의 물싸움은 생수공장과 주민의 싸움에 비하면 별일이 아닙니다. 고작 논 몇 마지기에 물을 대기 위해서 옆 골짜기 계곡물을 끌어와 쓰거나, 100m 이내의 농업용이나 가정용 관정을 무단으로 파서 쓰는 것 때문에 가까운 이웃이 피해를 볼 수는 있어도, 이 때문에 지역의 지하수가 전체적으로 고갈되지는 않습니다. 충전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표층수이고, 뽑아 써도 어차피 그 지역의 땅을 적시는 용도이니까요. 주민들의 미신고·무허가 관정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수공장에 있습니다. 생수공장은 수천년간 충전된 암반수를 사유화하고, 어마어마하게 뽑아올려 전국으로, 외국으로, 다른 대륙까지 보내 버립니다. 삼장면에 있는 또 다른 생수공장 LK샘물 대표 로라 킴 희자 제이는 재미교포 사업가로, 지리산 물을 미국의 월마트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로라 킴은 부경대에서 생태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만학도로, 사단법인 한국생태공학회의 편집이사이기도 합니다. 로라 킴과 관련된 다음 기사는 생수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기업의 썩은 현실을 보여줍니다. 로라킴의 미국 탈세에 관한 기사1: https://sundayjournalusa.com/2021/08/26/%ec%83%9d%ed%83%9c%ea%b3%b5%ed%95%99-%eb%b0%95%ec%82%ac%ec%b6%9c%ec%8b%a0-77%ec%84%b8-la%ec%97%ac%ec%84%b1%ec%82%ac%ec%97%85%ea%b0%80-%eb%a1%9c%eb%9d%bc-%ea%b9%80/#google_vignette 로라킴의 생태공학 박사 학위 취득 기사 2: https://www.pknu.ac.kr/main/51?action=view&no=331800 기업과 한몸인 생태공학이 과연 생태일지 의심스럽습니다. 학문은 때로 공유재를 사유화하는 합리화의 도구가 되고, 학위는 그 라이센스로 작용합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바꾸어내고, 투자한만큼 버는 자본주의 세상이니 당연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방심하는 사이, 기업은 공유재를 사유화하기 위한 법과 전문가들을 만들어 두었고, 스스로 생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전환 일본에서 한국산 생수가 많이 소비된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건으로 일본의 지하수가 의심스러우니,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서 온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을 거 같습니다. 프랑스 에비앙을 한국에서 사마셔도 내돈내산이니, 지리산물이 명품으로 인정받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도 K-문화의 진출로 홍보됩니다. 수원지의 주민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평범한 소비자는 알리가 없습니다. 샘과 우물, 계곡물을 사이좋게 이용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해지는 지혜와 규칙이 있지만, 현행법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미 발명된 수로와 관, 펌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도시에 밀집한 인구를 고르게 분포시킬 방법도 묘연합니다. 도시에 사람이 모일수록, 도시의 목소리만 커지고, 그나마 자연이 남아 있는 시골은 오염산업의 귀착지가 되어 황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잃어버린 공유재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슬로베니아에는 물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헌법에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생수산업이 발을 붙일 수가 없지요. 공유재를 기반으로 사적 이윤을 얻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주민의 직접적 동의를 얻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붙이지 않으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생태계는 보호받지 못할 것입니다. 수원과 가까이 사는 주민에게 물이용의 우선권이 있다는 단순한 고대의 지혜로 돌아가서, 이 규칙을 법으로 체계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4.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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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는 지역에 이용의 우선권이 있는 공공재다. 물 이용의 생태적 원칙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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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1일차)
- 섬진강길 걷기 1일차 ■ 걷기 개요 일시 : 2026년 3월 16일 (월) 총 거리 : 13km 소요 시간 : 약 3시간 ■ 걷기 인원 : 총 16명 ■ 출발지 도착까지 일정 (총 3시간) - 08:00 구례 냉천삼거리 출발 - 데미샘자연휴양림 주차장 도착 (1시간) * 데미샘 휴양림 ↔ 백운면사무소 차량 이동 (1시간) - 10 : 00 휴양림 → 데미샘 이동 (30분) * 데미샘에서 고천제 행사 (30분) ■ 걷기 세부 일정 11:00 데미샘 출발 - 데미샘 -> 백장로 -> 반송마을 (8km / 2시간) 13:20 반송마을 도착 - 반송마을 회관에서 점심 14:20 반송마을 출발 - 무등마을, 덕현교, 백운면사무소 (5km/1시간 20분) 15:40 백운면사무소 도착 - 15:40~16:20 차량 회수 (왕복) 출발 17:20 구례 도착 □ 출발지 주차장 주소 (데미샘자연휴양림 안내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1길 172 □ 도착지 주차장 주소 (백운면사무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임진로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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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젖줄, 530리 섬진강길 걷기(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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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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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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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쟁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바로 민간인 사망자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자체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어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특히 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은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환경 탓에 독감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이는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양상이 달랐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어갔다. 소련과 중국의 민간인 희생자만 합쳐도 3,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참혹했다.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학살당했고, 그중 절반인 300만이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사실 600만이라는 숫자도 거대하지만,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 등을 통해 죽인 중국인의 숫자는 이를 압도한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는 데는 다 그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전쟁 당사국으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아래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타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결국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소련과 중국이다. 두 나라는 압도적인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데이터를 보면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인 피해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도 300만 명 내외다. 이는 일본이 전쟁 초기 인명 소모가 큰 지상전보다는 비행기와 함선을 이용한 기술전을 펼쳤고,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 덕에 본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인 희생 대부분은 전쟁 막바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원폭 투하에 집중되어 있다. 그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전쟁은 라디오 속 이야기였을 뿐이다. 미국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약 2,000명에 불과하다. 본토에서 죽은 사람은 진주만 공습 당시 60여 명과 일본이 편서풍에 실어 보낸 풍선폭탄으로 희생된 6명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대부분 상선 공격에 의한 사망자였다. 미국인들에게도 전쟁은 라디오와 TV로 시청하는 스펙터클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전쟁은 더욱 멀어졌다. 입대하는 청년들이 대개 가난한 계층이다 보니, 중산층 이상의 대중에게 전쟁은 방송으로 관람하는 오락 게임처럼 변해버렸다. 수잔 손택이 지적했듯, 현대의 전쟁은 스크린 너머의 무감각한 이미지가 되었다. 권력이 설계한 무감각과 군수산업복합체 이러한 양상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발견된다. 민회에서 말을 잘하는 소피스트들은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시민들을 선동해 자신의 입지를 키웠다. 젊고 잘생긴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의 풍요로움을 화려하게 묘사하며 정복의 영광을 약속했고, 그 웅변에 취한 아테네는 무모한 침공을 감행했다가 군 대부분이 궤멸하는 참사를 맞았다. 대학 시절 자주 접했던 '군수산업복합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적 비중을 넘어선다. 이는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소비하고, 성능을 전시하며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는 고도의 전략을 의미한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이 전쟁 영상에 무감각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한 결과라고 보았다. 본토가 안전하다는 지리적 행운과 지배층의 역사 조작이 결합하여, 시민들이 타국의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무기를 소비했고, 군수 업체들은 다시 무기를 생산할 막대한 기회를 얻었다. 전쟁이 일상화되면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들조차 '공포' 때문에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오래전부터 무기 경쟁을 제로섬 게임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핵무기를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하고, 상대가 50만 대군을 유지하면 나도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서로 무기가 없다면 쓰지 않아도 될 자원이 끝없이 소비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억지력이 절실한 시대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랑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보노보보다는, 폭력으로 무리를 지배하는 침팬지에 더 가까운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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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와 화엄매
- 「섬진강 편지」 -솔거와 화엄매 꽃샘바람에 화엄 홍매 꽃잎 진다 한 달여 동안 중생들에게 환한 화엄세상 빛 나눠주고 사르르 꽃잎 지는 날 원통전 처마 밑에 놓인 화엄매 그림 한 폭, 그림 속 화엄매는 아직 꽃잎 생생하여 박새 한 마리 그림 속 가지에 날아가 앉는다 아, 솔거 화공이 화엄사를 다녀가셨구나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 이름, 솔거 *솔거 : 통일신라시대 화가로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 老松圖〉에는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혀 떨어졌는데 세월이 흘러 단청을 했더니 새가 날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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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 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냉장고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지리산 집에 있는 전기냉장고를 여름이 시작되면 전원을 켜고, 추석이 지나면 끄곤 합니다. 1년에 3개월 정도 켜는 셈이지요. 지난해에는 집 뒷곁에 약 1.5미터 깊이로 구덩이를 팠습니다. 땅굴 냉장고라 부르는데, 김치를 비롯한 여러 음식들을 보관하였습니다. 바깥 온도와는 다르게 일정히 선선함을 유지합니다. 짱입니다. 이렇게 전기냉장고를 덜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전기냉장고는 너무 많은 것을 감춥니다. 문을 닫는 순간 내부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됩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채우게 됩니다. 보이지 않으면 잊게 되고,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뒤편에서 조용히 상해 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들을 발견하고는 버리게 됩니다. 땅굴 저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곳은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버려지는 일이 줄어들며, 음식은 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 말이죠.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는 전기냉장고가 없었지만 계절에 따라 먹었고, 적으면 덜 먹거나 남으면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더 많아야 한다는 압박과, 더 편리해야 한다는 기대가 쌓이며 우리의 감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에 따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성을 가지는 물건이 전기냉장고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있으니까 쓴다.’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가?’ 사실 제가 냉장고 얘기를 하는 것은 탈핵운동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탈핵이 비움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움은 개인과 사회를 포괄하여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 비자율성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해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문제 또한 에너지와 관련된 하나의 사회적 비움의 대상입니다. 저에겐 탈핵은 수많은 비움에서의 하나입니다. 핵은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지탱하는 에너지원으로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망가뜨리는 폐해가 따릅니다. 그래서 탈핵을 비롯한 모든 비움을 이름하여 ‘탈핵비움실천’을 해보자고 다닙니다. 비워야 할 게 많은 물질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3월 말 마감을 앞두고 지방 의회 의결을 거쳐 울주군과 영덕군은 대형핵발전소를, 기장군과 경주시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유치 신청을 완료하였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수많은 사례들로 점철된 핵발전. 이를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난제를 어디에서 풀어가야 할까요? 그래서 탈핵의 수만 가지를 연상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 풍으로 치자면 ‘민중의 힘’이 살아날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게 됩니다. 신규핵발전을 가시적인 거리 행동으로 막는 만남과 순례, 피켓 시위, 기자회견, 작고 큰 집회 등의 탈핵운동도 있습니다. 더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돈과 편리’로부터의 탈출, ‘적정한 소비’로의 전환이라는 비움실천도 탈핵과 연동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냉장고 얘기를 들추었네요. 험난한 탈핵정세를 시민사회의 비움의 지혜로 극복하자는 작지만 절실한 마음으로요. 요즘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길을 나섭니다. 서울 광화문에서의 거리 행동에 나서기 위함입니다.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먼저 이동하는데, 숙소는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 공간을 이용합니다. 제가 소속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탈핵직접행동팀의 활동은 전에 말씀드린대로, 기존의 ‘광화문탈핵목요행동’에서 ‘광화문청와대탈핵행동’으로 변화했습니다.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 것입니다. 시간도 목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틀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10:30-11:00 청와대 분수대 앞 피켓 시위 11:30-12:30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피켓 시위 15:00-16:00 광화문-청와대 왕복순례, 해태상 앞 출발 광화문 광장은 젊은 세대와 직장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가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음악’입니다. 익숙한 노래를 바탕으로 가사를 바꾸어 탈핵의 메시지를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추천 받은 여러 멜로디가 아직은 쉽지 않지만, 계속 연습하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려 합니다. 00은 내 맘을 모르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아파도 계속 탈핵하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있나요 탈핵해 본 적 00을 뽑아줬는데 왜 투표권 다 줬는데 왜 모든 걸 다 줬었는데 왜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 가사를 일부 차용) 외국인에게 짧은 인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툰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몇 마디도 익혀 탈핵 의지를 전하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순례는 기도문을 시작으로, 깃발을 들거나 모형 고준위핵폐기물 통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무선 마이크와 나팔 마이크를 통해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순례단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잠시 멈춰 서서 구호를 듣거나, 현수막과 몸자보를 읽고 응원을 전하기도 합니다. 청와대에 도착하면 40초 발언문을 읽습니다. 누구나 발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에서 전합니다. 핵발전소 주변지역은 방사능 피폭지역입니다. 신규핵발전소는 피폭지역을 확대하게 됩니다. 주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규핵발전소는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의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위험 또한 높아집니다. 신규핵발전소는 대한민국을 핵사고의 위험국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정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핵사고를 막기 위해 신규핵발전소를 철회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 놀랍게도 얼마전 뉴스타파가 입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내부 문건에서는 핵발전 출력을 기존의 50%에서 80%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감발운전이라는 이러한 위험한 상태에서 체르노빌 핵사고가 났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무감증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핵사고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섰습니다. 하여 공포는 시민사회의 몫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은 아예 뒷전에 둔 ‘비국민정부’의 행태를 마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하~~ 그렇지만 주변에는 탈핵 연대의 꽃이 하나 둘씩 피고 있음을 봅니다. 엄마의 탈핵운동을 위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위트 있는 개사로 힘을 보태는 딸, 탈핵행동을 위해 원형 피켓을 만들고 바느질로 손을 보태준 원도심레츠 사람들, 순례단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녹색연합은 나팔 앰프를, 양기석 신부님은 무선 마이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주시는 비정규직 꿀잠공간과 쫑쨍이 런닝클럽의 해당화와 재희, 그리고 다양한 도움을 주시는 지리산 실상사의 수지행, 날이 좋다며 한컷의 사진을 담아주신 느티나무 현경, Burn fat not oil(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몸자보를 두른 실상사작은학교의 한형민 선생님, 따뜻한 차를 순례단에게 제공해주신 나눔문화 사람들. 이처럼 탈핵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과 연대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정한 소비’로 탈핵을 앞당기는 시민사회의 연대도 간절히게 희망하면서... 앗싸 탈핵!! 외쳐봅니다. 글쓴이 : 청명 연대! 나의 순례는 탈핵과 비움의 길, 그리고 연대의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단절, 좁은 시야, 울타리, 권력, 불투명한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연대는 좋은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순례자 청명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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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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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