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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곰1% 가게 유람기]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 [반달곰1% 가게 유람기] 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원래 제가 산을 참 좋아해요. 예전에 선생님이 너는 산에 풀어놓으면 제일 좋아해, 라고 하셨는데 인연을 따라 오다 보니 도로 위에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저는 여기가 내 산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산속이라면 혼자서도 잘 논다는 오차공방의 주인장 오은주 님은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강원도에 살았다. 그러다가 화개로, 그리고 지금은 구례, 오차공방이라는 자신만의 산속에 산다. 공방이라는 산 속에서 숨을 쉬고 손을 움직여 수행하는 삶을. 공방에 울리는 만트라는 세상의 번다함을 이기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평안하고 순탄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주파수에 맞추어 흐르고 있었다. 임산부와 아이에게도 내어줄 수 있는 차 오차공방의 이름은 깨달을 ‘오(悟)’와 ‘차(茶)’의 두 음을 합쳐서 ‘오차’, 공방을 겸하는 공간이어서 ‘공방’이라는 두 글자를 더했다. 차를 깨닫는다는 건 어떤 걸까. “저는 손님들을 기억할 때 그 분이 드신 차로 기억을 해요. 한 분 한 분 사진처럼 기억이 나거든요. 가게에 와서 차를 드신 분들이 몸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 좋죠.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래도 일관되게 지켜온 건, 아이들이 오거나 임산부가 왔을 때도 내가 편안하게 내어드릴 수 있는 메뉴들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문을 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오차공방의 메뉴는 오은주 님이 블렌딩한 차들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이 뭔가 부족한 것을 표현하면 그것을 고민해 하나씩 채워온 것이 지금의 차 메뉴들. 20여 년 전 직접 차를 배운 그녀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설국차’라는 메뉴를 이야기하자면, 설국차는 높은 산에서 자란 야생국화인데, 특이하게도 잎차가 갖고 있는 약성과 맛, 수색(水色)을 지녔다고 한다. 꽃차인데 몸에 열을 내는 발효차와 같은 효능이 있어 모든 분들이 평이하게 좋아할 수 있는 메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 외에도 탄산이 없는 야생화 꽃잎에이드, 산딸기에이드, 돌배모과차, 지리산 야생녹차 등 다른 찻집에서 보기 힘든 메뉴들이 여럿 있어 오차공방만의 색을 더하고 있다. 오차공방의 유명인사, 볼 오차공방에는 이렇게 직접 블렌딩한 차 외에 유명한 존재가 또 있다. 볼, 13세의 불테리어. “볼은 빠다틱하게 지은 이름인데, 영어로 ‘공(ball)’이 우리말 공으로 하면 둥글다, 비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불테리어는 원래 힘이 좋은 견종인데, 저 아이는 힘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언젠가 멀리서부터 저를 향해 달려오는데, 직선으로 달려오다가 중간에 서있는 아이를 피해 돌아서 달려오는 걸 보고 생각했어요. 아, 저 아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그렇다면 볼은 오차공방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녀석이다. 불테리어는 공격성이 강한 맹견 중 하나인데, 볼은 이 개가 불테리어 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순박하고 우직하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했는데 원래 그런 성품이란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고 아는 손님이 오면 꼬리치며 다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알은체를 한다. 쓰다듬으면 마다하지 않고 드러누워 순순히 손길을 받아준다. 그래서 오차공방 손님들에게 인기짱이다. 볼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그림이 여럿 있는 것도 손님들이 선물한 것들이 많다. 이제는 볼에게 오차공방의 지분이 어느 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은주 님이 가게 쪽방에 들어 있어 손님이 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때는 주인을 부르러 오기도 한다니, 오차공방을 지키는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 법하다. 언제나 산과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10년을 있으면서도 오은주 님은 한 번도 지리산과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은 언제나 그 속에 있었다고. 그러니 반달곰1%에 참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안이 왔을 때 90%는 윤주옥 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분이 하시는 일이니까 지지하는 마음으로 고민 없이 수락했어요. 산을 품은 분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10%는 자연에 대한 공감이었죠.” 아니다 싶은 일은 절대 못한다는 그녀의 선택이었다. 반달곰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좋은 점을 물었더니 손님들이 가게를 지리산과 연결되어 있다고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달곰 하면 자연스럽게 지리산이 떠오르고 자연, 생태계와 연결해서 생각하니까. 게다가 처음에는 직접 반달곰1%를 소개해야 했는데, 지금은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시간이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분들은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소개하기도 한다고. 덕분에 가게도 홍보가 된다. 그러니 반달곰 1% 프로그램을 시작하길 잘했다. 은주 님의 ‘산이 숨이 되고 내가 되었고 지금은 공방이 숨이 되고 내가 된다’는 말은 그녀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우리 모두가 그녀처럼 산을 사랑했다면 산도 그 안의 생명체들도 힘들지 않았을 텐데. 모두가 그녀의 마음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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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 안철환의 '곡우 편지'
- 지난 4월20일 곡우가 지나갔습니다. 이 난의 필자인 안철환 선생이 곡우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절기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뒤늦지만 여기에 올립니다. 곡우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소장) 예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춘분이 아닌 곡우에 부활하셨을 거라 우기곤 합니다. 춘분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거든요. 올해는 곡우비가 일주일 일찍 내렸어요. 음력으로 보름이었지요. 보름엔 비 잘 안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찌뿌리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에 오기로 한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비를 흠뻑 맞았지만 그게 곡우비라는 걸 밤이 되어서야 알았네요. 봄비 잘못 맞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그 비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온화한 기운을 담고 있는 비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산을 보니 일제히 나무들에 새순이 돋은 겁니다. 그 기운이 얼마나 신선하고 상큼한지 꽃이 아무리 예쁜들 새순만 할까 했습니다. 화려한 꽃이라 해도 이내 지고 말 운명이지만 새순은 앞날이 창창한 희망을 품고 있으니 그 기운에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곡우비의 그 기운은 춘분의 기운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역동적이라 한 겁니다. 낮과 밤이 같고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하는 춘분의 기운이야말로 부활의 힘이란 건 분명하나 춘분 뒤 반갑지 않은 불청객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는 게 춘분의 뒤통수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걸 보고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를 후려 갈기며 나간다 했어요. 액이 나간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일겝니다. 곡우비가 가져다 주는 생명의 기운은 매번 감동적이지만 처음 곡우비의 신비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20여년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희 밭은 군포에서 안산 넘어 오는 영동고속도로 밑 토끼굴 지나 산 밑에 있는데 곡우비 그친 다음날 어두운 그 굴을 지나자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온 산 나무들의 새순은 생명들의 팡파레이자 세레모니였어요. 입과 눈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예수님 못지않은 생명들의 부활이라 느꼈지요. 우리나라의 봄의 부활이 감동적인 것은 모든 게 죽는 추운 겨울 때문일 겁니다.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 변함없는 녹색을 자랑하는 호주의 겨울을 보았을 때 부럽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나라의 봄은 별로 부활의 감동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너무 추워 모든 게 죽는 우리의 겨울이 역설적으로 축복이라는 걸 느낀 것도 한 참 나이 들고 나서였죠. 춘분에서부터 부활하기 시작한 기운이 곡우에 와서야 완성되는 셈입니다. 춘분을 기점으로 부활하는 생명들은 아직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꽃샘추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여전히 움추리고 있는 생명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나 곡우 때 따스한 봄비로 이젠 모든 추위가 물러가니 만물이 마지막 기지개를 켜 약동의 계절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올해 곡우는 만만하지가 않네요. 윤6월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든 해는 날이 고르지 않습니다. 양력과 음력의 편차를 억지로 맞추다보니 과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들었다는 것은 음력으로 일년이 13달이라는 건데 그러다보니 계절이 3달보다 긴 3달 열흘 정도 되는 셈입니다. 그럼 봄은 음력 4월초까지로 양력으론 5월 초순까지 봄이 되는 겁니다. 초순이면 여름이 시작하는 입하이지만 음력으론 아직 봄이라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은 곡우 지나면 냉해가 가시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아요. 한 낮에도 날이 쌀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예년에는 춘분 지나면 한낮엔 여름처럼 더웠던 것과 많이 다르죠. 올 여름은 음력 윤6월 중순까지로 절기로 입추 근방이에요 윤6월이지만 가을의 시작이 여름 끝 무렵에 드는 거지요. 그래서 가을이 빨리 오지만 아직 여름에서 빠저 나오지 못해 입추가 가을답지 못할 겁니다. 곡우는 12지지 중 진(辰)에 해당하니 음력으로 3월에 듭니다. 인(寅) 묘(卯)와 함께 진은 봄에 드는 지지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 끝에 들지요. 여름에 드는 사(巳) 오(午) 미(未) 중 여름 끝인 미, 가을에 드는 신(申) 유(酉) 술(戌) 중 가을 끝인 술, 겨울에 드는 해(亥) 자(子) 축(丑) 중 겨울에 드는 축과 함께 환절기 성격이 강한 절기거든요. 그러니까 절기로 미는 대서, 술은 상강, 축은 대한으로 환절기답게 비와 눈이 자주 내려 다음 절기를 준비합니다. 올해 2025년 곡우는 음력으로 3월 23일이었고 일진은 기미(己未) 였습니다. 음력으로 불 때 곡우가 늦게 왔습니다. 그러면 곡우 이후엔 날이 따뜻하고 온화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지요. 입춘이 설 지나 와서 이래저래 봄도 늦은데다 윤6월 들어 늦봄이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곡우(穀雨) 지나면 여름 나는 작물들은 대부분 파종할 수 있습니다. 곡식 심기에 좋은 비가 내린다는 말 그대로이죠. 벼를 비롯해, 옥수수, 수수, 콩 등 곡식에서부터 고추, 오이, 수박, 호박, 참외, 토마토 등 과채류까지 심을 수 있으나 들깨, 조, 고구마, 메주콩, 팥 등은 장마 근방에 심는 게 좋습니다. 일찍 심으면 웃자라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늦게 심는 이런 작물들은 감자나 마늘, 양파, 밀, 보리 등을 6월 중에 수확해 그 자리에 이어심는거지요. 이를 그루작물이라 하는데 앞 작물 수확 후 남는 그루(밑둥)들을 갈아엎어 심는다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앞 그루 갈아엎는 거는 그루갈이라 하지요. 고추나 가지 토마토 등 과채류 모종들은 보통 곡우 지나 심지만 올해는 입하 지나 심는 게 안전합니다. 최저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냉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곡우 근방에 논을 잘 갈아둡니다, 밭은 경칩부터 갈지만 그렇게는 못해도 곡우부터는 갈아둡니다. 보리나 밀과 이모작 하는 논은 갈 수 없겠지요. 곡우 즈음 보리가 이삭 패고 곡우 조금 지나 보리보다 일주일 늦게 이삭 패는 밀을 위해 이삭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이젠 풀들도 억세집니다. 냉이는 벌써 꽃 피고 져서 씨를 맺고 있어요. 날은 아직 춥지만 풀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제 날에 올라와 기세를 부리니, 이래저래 풀을 인간이 이기기는 힘들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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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신 화백 "지리산 하동의 빛" 전시회 보러 오세요
- 이호신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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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 열리다
- 다섯 번째,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 열리다 2021년부터 해마다 열린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이하 지구의 날 행동)이 올해로 다섯 번째 이어졌습니다. 지구의 날 행동은 2021년 ‘차 없는 거리’로 시작하여, 2022년 ‘쓰레기 없는 거리’와 ‘정책 있는 거리’, 2023년 ‘지구를 위해 함께 목소리 내기’, 2024년 ‘아이들에게도 지구에게도 안전한 길을 만들어 주세요!’를 이어서 올해는 ‘우리의 집, 지구’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구례 문척초, 용방초, 토지초 어린이·청소년이 함께 모여 구례읍 거리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어 덥고 힘들었을 텐데도 자기 집을 청소하듯 쓰레기를 주워 담았습니다. 그러고는 미리 만들어 온 손팻말을 들고 학교별 구호를 외치며 오일장까지 행진해 왔습니다. 온 거리가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오일장에서는 지구를 위한 마음을 모아 이야기 마당을 펼쳤습니다. 모든 활동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광의초와 중동초 친구들도 일부 활동에 함께하여 모두 1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지구의 날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특히 올해는 “많은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보러 와 주면 좋겠어요.”라고 지난해 후기를 말한 어린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원래 지구의 날인 22일이 아니라 오일장이 열리는 23일에 오일장 마당에 모이게 되었지요. 아이들은 지구의 날이 오기 훨씬 전부터 각 학교에서 ‘우리의 집, 지구’에 대해 생각하고 지구의 날을 준비해 왔습니다. 단지 하루 행사를 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해마다 그랬듯, 지구를 함께 돌보고 함께 살자는 마음을 가꾸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지구의 날이라는 그 하루에 커다란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이를 위해 학교와 마을의 선생님들이 미리 모여 계획을 짜고 준비해 왔습니다. 우리 구례 지구의 날이 다섯 해째 이어진 힘이 바로 이런 점인 듯싶습니다. 올해 지구의 날 행동의 이야기 마당은 지난해들과는 또 다르게 오일장 마당에 둥글게 모여 이뤄졌는데요, 생태텃밭 선생님인 상글과 동근의 살뜰한 챙김 덕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진행으로 모든 이가 둥글게 모여 축복의 노래를 부르고, 율동도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숨이, 불어오는 바람이, 딛고 선 땅이, 둘레를 감싼 환대와 응원의 마음들이 모두 이 지구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존재와 더불어 지구의 한 구성원인 우리 자신을 떠올리며, 우리의 집인 지구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집 지구가 우리를 보듬고 있다는 감각이 살아 움직인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미리 만들어 온 팻말엔 모두가 새겨야 할 글귀가 가득했습니다. “나무를 베지 마세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당장 멈춰.” 같은 훈계부터 “물을 아껴 써요, 전기를 덜 써요, 일회용품을 줄여요.” 같은 요청,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누가 나무를 베는가!” 같은 경고, 그리고 “가까운 곳은 걸어갈 거예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거예요, 쓰레기를 줄일 거예요.” 같은 의지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귀한 말들이었습니다. 기후위기를 무겁게 인식하고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을 망설임 없이 표현해 준 친구들 덕에 많은 이가 용기와 힘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구의 날 행동에 함께한 이들이 끝까지 이 마음을 잃지 않기를, 또 기후위기 앞에 모두가 자기 행동을 다시 돌아보기를, 또 나를 지탱해 온 지구를 더는 뒷전으로 내팽개치지 않기를 바라며 올해 지구의 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음 해엔 또 어떤 모습으로 지구의 날을 기억할지 궁금해집니다. (이 글은 <봉성신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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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마을] "사회 적응 거부 선언" 이하루
- 『사회적응 거부선언: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음악가이며 동물해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하루의 여행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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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7] 윤작과 혼작 더 넓게 보기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7] 윤작과 혼작 더 넓게 보기 월동작물과 다년생, 땅 살리는 지혜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월동작물과의 윤작 우리의 주식 작물은 대부분 여름을 나죠. 대표적으로 벼와 곡식류가 그렇고 고추와 열매 맺는 과채류가 그렇습니다. 여름 나는 작물이 주연배우라면 겨울을 나는 작물은 조연배우쯤 될 겁니다. 밀, 보리가 그렇고 마늘, 양파가 그렇지요. 그렇지만 조연 없이 주연 있을 수 없듯이 월동 작물 없으면 여름 작물도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월동 작물도 예전엔 주연 배우나 다름 없었어요. 대표적으로 보리밥은 쌀밥에 버금가는 주식이었습니다. 마늘도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양념 작물이죠.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마늘을 제일 많이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월동작물의 의미는 주식이든 부식이든 그것을 떠나 우리의 토양을 지켜주는 아주 고마운 작물이라는 겁니다. 일단 여름 작물 수확 후 월동 작물을 심는 것을 윤작이라 하죠. 월동 작물을 심지 않고 겨울에 땅을 방치해두면 땅이 좋아질까요? 휴경(休耕)한다고 해서 땅이 좋아질까요? 토양은 방치해두면 무조건 좋아질까요? 사실 서양의 생태주의 사상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좀 다릅니다. 우리는 방치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사람이 적당히 개입하는 게 최선이라 봤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거지요. 그래서 서양의 토양 관리법엔 휴경이 매우 중요한 반면 우리는 윤작 혼작을 잘 활용하기에 그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농업은 기본적으로 단작과 연작이 발달해 휴경이 필수입니다. 밀 농사와 방목이 더 그걸 부추깁니다. 농법 자체가 토양 수탈 농사라 토양을 정기적으로 쉬게 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휴경할 만큼 땅이 넓지도 않거니와 윤작 혼작법으로 충분히 토양의 지력을 지켜왔지요. 그 중에 핵심이 바로 겨울 농사입니다. 여름 농사만 짓고 겨울엔 사막처럼 방치해 두면 연작 효과가 생겨 토양은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토양은 여름 폭염과 폭우로 제일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토양을 망가뜨리는 것은 겨울의 혹한과 가뭄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요즘은 혹한보다 겨울 가뭄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 겨울 가뭄으로부터 토양을 보호하는 기술이 발달했는데 바로 월동작물 농사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토양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겨울 농사만 있지 않았어요. 겨울 작물을 심기 힘들 경우 제일 일반적인 것은 겨울 길목인 동지 즈음해서 땅을 깊게 가는 것입니다. 대략 20센티 정도로 깊게 갈아 엎었지요. 그럼 그렇게 갈린 표토층이 심토층을 춥고 가문 겨울 날씨로부터 보호해주는 겁니다. 일종의 말하자면 흙으로 흙을 덮어 보호해주니 저는 그걸 흙 멀칭mulching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다음으로 벼 수확 후 보리를 심지 못하는 중부지방과 그 이북 지역에선 논을 깊게 갈고 물을 담았습니다. 물로 땅을 보호하는 겁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그럼 월동작물로 땅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작물 멀칭이겠죠. 물론 조상들이 땅을 보호할 목적으로 작물을 심은 건 아니겠죠. 당연히 먹기 위해 심었을 겁니다. 토양 보호는 부수효과였겠죠. 월동 작물은 의외로 많습니다. 앞의 밀, 보리, 마늘, 양파 외에도 대파, 쪽파, 시금치도 있고요, 배추와 무도 보온만 해주면 겨울을 넘겨 봄에 새싹을 올리지요. 봄동 배추가 바로 겨울을 나고 새싹을 올린 배추에요. 우리 도시농업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월동농사를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대부분의 도시텃밭이 봄에 개장해 가을에 폐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겨울을 사막처럼 보냅니다. 그러니 도시농부의 먹거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고 토양을 살리는 환경보호 효과도 반감됩니다. 게다가 봄 되면 새로운 사람에게 땅을 분양해주니 공동체 함양도 남 얘기에 불과합니다. 매번 사람이 바뀌니까요. 저는 그래서 지속적인 경작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으로 힘을 합쳐 땅을 매입하던가, 농촌의 방치되어 있는 땅을 도시농부들이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던가 해야 합니다. 다년생과의 혼작 농작물은 일년생 식물이 대부분이죠. 그 다음으로는 위에서 말한 월동(越冬) 작물, 다른 말로 하면 한 해를 넘긴다 해서 월년생(越年生) 작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게 이른바 다년생 식물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다년생 식물은 야생 식물이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야생 식물이기에 이 식물들은 또한 자생식물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재배 과정이 없이 오랜동안 우리 땅에서 스스로 살아 온 식물입니다. 이 풀들은 오랜 세월 자연의 풍파 속에서 적응해 왔기에 우리 땅과 기후에 맞춰 왔습니다. 다르게 보면 야생 식물은 그 지역의 흙과 날씨를 가장 많이 닮았죠. 그런 식물을 먹고 살아 온 사람도 결국 마찬가지일겁니다. 반면 일년생 작물들은 대부분 귀화식물이 많습니다.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 메주콩만 빼고는 말이죠. 특히 일년생 작물 중 임진왜란 전후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들이 많아요. 고추,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이 대표적이죠. 그보다 들어온 지 더 짧은 것으로는 토마토가 있지요. 이런 작물들은 병이 많아요. 농약도 많이 치고, 물도 많이 주고, 비료도 많이 주는데다 비닐하우스 재배를 많이 합니다. 반면 야생 식물인 냉이나 쑥이나 각종 산나물 들나물은 병에 강하죠. 냉이가 고추처럼 탄저병에 걸렸다는 얘길 들은 적은 없잖아요? 이건 아마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자생식물보다는 훨씬 짧아 아직 우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환경에 오래동안 적응해 건강하고 우리 몸과 입맛에도 맞는 야생 식물보다 사람들은 왜 병에도 약한 재배 식물을 더 좋아할까요? 아마도 우리의 야생 식물엔 과채류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엽채류는 우리의 야생 식물이 훨씬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그조차 귀화식물인 재배채소가 많은 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우리 나라는 야생식물, 곧 자연산 들나물 산나물이 매우 풍부한 지역입니다. 한반도는 빙하기가 짧아 그만큼 식물의 역사가 깁니다. 또 그만큼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많았습니다. 구석기 채집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이 세계에서 한반도에 제일 많이 분포하는 것은 먹을 게 많았다는 반증이고 저는 그걸 풍부한 자연산 나물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특히 서해안에 많이 분포하는 건 조개 등 단백질 섭취원이 펼쳐진 갯벌도 큰 역할을 했겠으나 산과 숲이 많은 강원도에도 고인돌이 발견되는 걸 보면 어디에나 자생한 야생 식물, 곧 나물들이 큰 기여를 했을 거라는 거죠. 이런 들나물 산나물은 실로 없는 데가 없을 정도로 어디에나 펼쳐져 있기에 따로 밭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숲이나 밭이나 자투리 공간, 길가나 논둑 밭둑, 도랑, 집 마당과 울타리 주변 어디에나 씨 뿌리지 않았는데도 절로 자랐습니다. 우리 산천의 토양을 지켜 온 파수꾼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요. 이런 풀들을 잡초라 여기고 제초제 뿌리고 비닐을 덮고 기계로 갈아버리면 우리의 토양은 근본이 약해지고 말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자연산 나물들과 재배 채소들이 공존하는 농지 경관을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재배 채소가 자라는 두둑은 신석기 농경문화가, 고랑이나 경계지 또는 길섭에는 구석기 채집문화가 공존하는 경관이 참으로 생태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요. 말하자면 야생과 재배가 공생하는 윤작혼작의 확장이자 토양을 보호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역설합니다. 제가 이른바 사계절 내내 먹거리 생명이 살아 숲을 이루는 먹거리숲을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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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 사월 말이었다. 수달래가 예쁘게 피던 날이었다.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고 있다. 오후공책은 23년 4월에 문을 연 함양의 작은 책방이다. 같은 협동조합에 속한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따스한 사월의 오후 햇살 같은 미소를 가진 책방지기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책방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조영선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김현임 님과 정은경 님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공책? 이름이 재밌네요. 어떤 뜻인가요? > 처음에는 함양의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서 책 읽기 모임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만나 책 읽기 모임을 했죠.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죽이 잘 맞아 책 모임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책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서점을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오늘”을 만들게 되었죠. 오후공책(5 Who 함께하는 책방)은 협동조합 “오늘”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점입니다. 협동조합 오늘,은 삶에 문화, 예술, 놀이,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 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자 뭉쳤습니다. 책방은 실험을 위한 꿈의 아지트이며, 책, 먹거리, 예술, 놀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 삼아 환경, 교육, 성찰,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까 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함양이라는 산골 작은 읍에서 그것도 작은 책방으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2년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네. 맞아요. 서점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죠. 그렇다고 아무런 수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최근에는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 같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어떤 사업인가요? >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내가 지정한 서점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지역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도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방에 보조금을 주기도 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저희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고요. 지금 책 모임 다섯 개 등산 모임과 바느질 모임까지 운영하고 있죠.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책이라는 주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 이야기 마당이나 음악 주제로 모임을 하기도 하고요. 책방에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자, 이제는 산에도 가보실래요? 오후공책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 다양한 일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거든요. 다행히 서로 죽이 잘 맞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일이 하나 늘어나고 하는 식입니다. 올해는 책 문화제도 해 볼 생각이에요. 책 문화제는 어떤 일인가요? > 김현임(김) : 함양의 작은 서점이 두 곳이 있어요.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그림 책방 “퐁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 올해가 그림책의 해라서 그림책을 주제로 체험도 하고 그림책을 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후공책과 퐁당이 멀지 않아서 가는 길에 책이 있는 거리 같은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기획 중입니다. 책방은 모두가 아는 사양 사업 중 하나잖아요. 많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창업자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 정은경(정) : 저희가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책방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인문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인문학 책방 대표님 이야기를 보니 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_김현임 책방지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재밌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방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누가 봐도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요. > 정 : 음. 사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제가 책을 좋아해서 손님이 없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많이 읽기도 해서 손님이 없는 날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바쁜 일이 많아요. > 김 :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시골 책방 문을 열면서 책방으로 집 한 채 마련해야지,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이런 점은 공유된 상태였어요. 그래도 책방을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 인건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정 : 사실 조금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활발해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번잡하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재밌는 일을 자꾸 하고 싶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은 없어서 약간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거나 숲을 걷거나 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_정은경 책방지기 운영 시간은 어떤가요? 오후공책이니까 오후에만 운영하나요? >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후 8시까지 운영했는데 6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희도 사실 오후에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손님들이 오후에 열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은 주말에 다시 오시기도 합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제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어요. 저희 서점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어 가능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사람이 2번에서 3번 정도 나오면 되니까요. 뭐 함께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출동하기는 합니다만.... 힘들지는 않나요. > 정 :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아직은 뭐 할 만하고 좋아요. (책 외에도 음료와 의미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많은 책방이 책보다는 음료 판매나 기타 수익이 더 많은 경우가 있던데 오후공책은 어떤가요? > 정 : 함양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월 150에서 200권 정도가 판매돼요. 우리 책방에 책이 천 권 정도가 있어요.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통해서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합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해 분투 중이시네요. > 김 : 책방이니까 책 판매가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가롭게 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후공책만의 책 선별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진열 공간도 부족할 것 같고요. 각자의 취향이나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 정 : 음… 세 명이 한 책장씩 선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설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선택한 곳도 있고, 환경이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고른 책도 있고요. 팔릴 만한 책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운영하는 세 명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죠. 팔릴 만한 책과 취향과의 마찰이 있기는 해요.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니까요. 독립 출판사들의 책도 많은데 독립 출판사 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씩 구매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에 3번 정도 안 팔리는 책들은 반품하는데요. 반품하면 대부분 폐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 팔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요! > 김 : 제가 서점을 시작한 이후에 여행을 가면 지역 서점들을 많이 찾거든요. 책방에 들어서면 그 책방지기의 취향이 알겠더라고요. 책방이 없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저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있을까요? > 정 : 저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추천해요. 최근에 김금희 작가에게 푹 빠져 있는데, <나의 폴라 일지>라는 에세이 추천해요. 기회가 있다면 읽어 보세요. 책방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대학 때 후배 한 명이 선배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책방 해 볼까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못하고 있네요. > 두 분 모두 : 누군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력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익은 보장이 안 되지만요. 그래도 역시 좋은 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저희는 사실 아직은 만족하고 있거든요. (책방을 짓는 과정 ) 오후공책도 음료를 판매하시는데 수익은 어떤가요? > 매출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책은 이윤이 많지 않으니까 음료 판매가 아무래도 수익은 더 많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아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중요하고 책을 고르거나 읽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믹서기를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드립커피만 제공하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카페에 가면 얼음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 그래서 오후공책은 믹서기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만드는 음료나 식자재들은 가능하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합니다. 지역의 딸기를 사용해서 딸기 음료를 만들고 지역의 생강으로 생강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비닐 없는 책방, 숍인숍으로 제로웨이스트 상품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해요. 액체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 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요. 책방이나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없잖아요. 제가 보기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이는 가장 어린 나이 때일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 주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크면 책이 학습지가 되고 또 문제집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 김 :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접하는 소식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빨리 생기고 식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인간에게 적절한 속도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읽는 속도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서 뒹굴뒹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 책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문해력도 결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 정 : 저는 책을 읽는 이유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공지능이 채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주류는 못되겠지만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이 책방을 비추고 있었다. 책과 책방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양에서 작은 지역 책방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이 있다면, 그 마을엔 온기가 깃든다.” 서점 하나 없는 곳은 어쩐지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으며 살고 싶어.” 사월의 오후의 햇살이 오후공책에 따스하게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냥 조용히 무언가가 그리울 때, 따뜻한 음료와 책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은 책방이 있다. 그곳에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책방지기가 있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건네는 책이 있었다. 책이 그리운 날, 혹은 햇살 좋은 날, 책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날 향기로운 음료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책과 햇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당신도 분명,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공책 책방 여는 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추석과 설날을 빼고 매일 오픈 함양읍 한들로 67번지 글 조태용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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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 의성 산불의 모습, 도로가 있음에도 숲이 전소했다. 임도는 산불예방 큰 도움이 되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숲의 구성이다. ▲ 도로 주변으로 검게 타버린 숲의 모습(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 임도 주변의 다 타버린 숲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소나무림이다. 2025년 3월 21일 경남 하동군, 산청군, 지리산 일대에 대형 산불이 났다. 거의 동시에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났는데 2000년대 이후 최대의 산불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하동, 산청의 산불과 지리산의 산불을 보면 같은 산불임에도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하동군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의 산불의 공통점을 알아봤다. 산불이 진화되고 1주일이 지난 뒤 찾은 두양리는 지난 산불로 인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 중턱부터 능선까지, 마을 뒤편 일부 숲은 수관화(나무의 가지로 불이 번지는 상황)로 진행되어 전소됐다. 일부는 수간화(나무의 몸통까지 불에 타버림)로 진행되어 노랗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임도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도 주변의 숲이 더 심하게 타버린 경우도 있었다. “도깨비불이 산을 넘었다.”는 주민의 말처럼, 불길은 바람을 타고 도로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길 속에서도 활엽수는 하층만 그을렸을 뿐 소나무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가 크고 수관화로 이어진 지역은 대부분 하층정비(숲가꾸기)가 이루어진 소나무 숲들이었다. 전문가들은 교목층(상층부 식생, 키가 큰 나무)과 아교목(교목 아래의 식생) 관목(아교목 아래의 식생)층이 잘 이루어진 숲은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교목과 관목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패효과’라 부른다. 그 좋은 예로 같은 시각 산불이 확산했던 지리산국립공원을 보면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내원사 능임암 일대의 산불지역 산불이 지나간 지역이었지만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부의 모습, 바닥이 검게 그을렸지만 새싹이 나왔고 진달래도 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의 하층 관목은 모두 조릿대였다. 지금은 조릿대만 다 타고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능인암 위쪽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 바닥은 그을렸지만 새싹을 피워냈다. 활엽수는 불에 강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으며 인공복원보다 자연복원이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지리산국립공원구역은 겉에서 봤을 때는 산불이 났는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불이 하층만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굴참나무와 졸참나무는 새싹을 피워내고 있었고 진달래는 분혹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바닥이 검게 그을린 것만 빼면 평온해 보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층 조릿대 덕분이었다. 산림청은 조릿대 때문에 산불을 끄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층 낙엽도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많아야 5cm 정도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흙이 들어나 있었다. 산에 비탈진 지역의 낙엽은 겨울을 지나면서 바람에 날려 모두 골짜기로 모이게 된다. 100cm 이상 쌓이는 경우는 드물다. 골짜기에 모여있는 낙엽도 겨우내 내린 눈과 비에 젖어서 불에 잘 타지도 않으며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국립공원의 산불은 지표화에서 끝났으며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날아다니는 ‘도깨비 산불’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림청의 ‘숲가꾸기’에서 벗어난 국립공원은 산불에 강한 숲이 되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간섭만 없다면 자연스럽게 산불에 강한 숲이 된다는 것이 들어난 것이다. 이 명확한 대비 앞에서 산림청이 꾸준히 강조해온 ‘숲가꾸기’와 ‘임도 확대’가 모두 실패한 정책임이 여실히 들어났다. 산림청은 숲가꾸기사업으로 숲을 산불에 취약한 숲으로 만들었고 산불 위기 대응에도 실패함으로써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단 한번도 사과를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산림청장은 산불 이후 공식 석상에서 끊임없이 임도설치와 숲가꾸기를 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여야 할 말은 ‘임도 추가건설’ ‘숲가꾸기’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빠르게 피해 지역민에 대한 피해 복구가 징행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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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06:51
피아골 금낭화
「섬진강 편지」 -금낭화 비 그친 아침 피아골 금낭화를 보러 갔다. 밤사이 마을로 내려온 구름이 산 위로 돌아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오! 아!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탄화였다. 피아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피아골 피아골을 외치는지 알 것도 같다. 그 피아골에 어마어마한 금낭화 군락이 있다. 사라진 피아골 다랭이논 대신 노고할미가 내어준 선물 같다. 섬진강, 지리산 보물이 또 하나 늘었다. 선암사에서 맨 처음 금낭화를 만나던 날, 그때는 진짜 봄날이었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암사 금낭화 -김인호 이제껏 알지 못하던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부르며 만날 수 있다니 이 봄날 다 가 너 꽃잎 떨구더라도 내 마음속에 늘 환히 피어 있으리니 어디 멀리 떠나 다시 너를 찾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늘 이렇듯 피어 있으리니 내 가진 것 다 잃더라도 너는 내 맘에 남아 있을 것이리니 주렁주렁 연등 내 건 듯한 금낭화 곁만 맴도는 아, 사랑에 마악 눈뜨던 스무 살 적 마음의 한나절이여! -
김인호 04-16 00:06
거짓말, 눈물바다
「섬진강 편지」 - 거짓말, 눈물바다 ‘2025년 4월 14일 오후 4시 01분 현재 구례군 대설주의보 발효중. 강설로 인해 노고단 일주도로(천은사 입구~달궁삼거리) 통행제한 중입니다. 도로 미끄러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구례군」’ 백몇년 만의 4월 대설이라니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 거짓말 같은 4월 중순 대설주의보 재난문자를 받고 오른 노고단 길. 구름이 걷힌 오후 1시 성삼재를 출발 노고단 거쳐 4시에 내려오는데 그 사이 눈이 녹아 허물어지며 눈물을 철철 흘린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로 길은 그야말로 흥건한 눈물바다다. 눈물을 만나면 늘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든 눈물은 그렇게 난감하다. 오늘 만나 이 눈물도 때를 잘못 만나 한나절을 못 버티고 녹아내려 엉엉 울음소리까지 요란한 서럽디 서러운 눈물이다. 마을에 내려와 돌아보니 거짓말처럼 산정의 눈이 흔적도 없다. 내일은 또 무슨 거짓말 같은 재난문자를 받게 되려나! -
박두규 04-08 05:29
1m의 세상
1m의 세상 바야흐로 텃밭을 일구는 계절이 왔다. 손바닥만 한 밭이니 괭이로 파고 호미로 골라서 파종하거나 모종을 심는다. 그리고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퇴비만 뿌려 밭을 일구다 보니 지렁이를 자주 보게 된다. 괭이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땅속에 있는 지렁이를 놀라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렁이 편에서 보면 날벼락을 맞은 셈인데 어느 때는 땀도 좀 식힐 겸 지렁이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몸을 감출 때까지 앉아 쉬며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지렁이나 나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목숨이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지렁이가 하루 종일 꿈틀거리며 생명 활동을 하는 땅속 반경이 1m라고 해도 내가 하루 종일 이곳에서 밭을 일구며 보내는 삶의 반경과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저는 부지런히 저의 세계를 살았다 해도 겨우 1m의 땅속 반경을 기어다닌 것이고, 나 또한 열심히 나의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우주의 한 점인 지구별의 어느 귀퉁이에서 평생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스스로의 하루를 살다가는 객(客)일 뿐이다. 참으로 이런 허접하고 싱거운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도 마음은 충분히 여려져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아등바등 죽네 사네 하며 한 생을 살고 있지만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우주의 지구별에 잠깐 손님처럼 왔다가 하룻밤 머물고 가는 것이다. 지렁이처럼 평생 1m의 어두운 땅속 세상을 꿈틀거리다 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마음도 어느 정도 편해지고 정말 복잡하고 힘든 세상살이가 조금 가벼워지면서 주변의 풍광 또한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아무런 뜻도 없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물이나 공기와도 같은 처지가 되어, 그 뜬구름 같은 생각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벅차올라 눈앞에 펼쳐진 이 구체적으로 눈부신 봄날이 그렇게 경이로울 수 없다. 마른 가지를 비집고 올라오는 초록빛 새잎의 현실에 눈물이 나고, 온 세상을 초록 바다로 만들어 출렁이는 봄 산을 보면 이 비루한 몸뚱어리가 숨 쉬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고마울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이 이 정도 차오르면 푸르릉 날아오르는 감나무의 새 한 마리만 봐도 괜히 서럽고 아무에게나 무엇에게나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수없이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마움도 어쩌다 제 감정에 겨워 세상이 만만해지니 그러는 것이리라. 일상 속 또 다른 일상을 보는 일이 항상 그런 것이다. 그래도 사실 나는 늘 그 일상으로 건너가고 싶다. 텃밭의 지렁이가 되어 아무런 뜻 없이 종일토록 1m의 세상을 기어가고 싶은 것이다. 살아야 이승이고 죽으면 저승일 뿐이라는 말이나,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이런 심정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찰나의 한 生인데 권력과 부와 명예를 좇으며 불안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보다 눈앞의 눈부신 봄날, 존재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살기에도 부족한 세월이 아니겠나. 글을 보내는 오늘, 그렇게 기다리던 윤가의 파면 소식이 왔다. 별의별 추측과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는 불신의 사회, 억지와 비상식의 나라가 되어 대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지혜롭고 용기 있는 국민 덕분이다. (박두규.시인) -
박두규 04-07 11:54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김 해 화 새벽 세 시는 새벽이 아니그만 밥을 챙겨 묵자니 너무 이른 시간 그냥 나서자니 목숨 걸고 가야 할 길 이백 리 폭염 아래 하루 노동 천근만근 그새부터 짓눌러 오네 이러케 살아서 쓰는 거시냐고 차라리 하루 포기해버리자고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네 하루가 쌓여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쌓아도 쌓아 올려도 밑바닥 그런다고 무너지는 삶이 일어서는 삶을 뒤덮지는 못해 악착같이 견디는 하루가 내 삶의 높이 물 한 그릇 마시고 다시 물 한 그릇 마시고 새벽 세 시 캄캄한 세상으로 나선다 새벽이 따로 있나 새벽일 가는 사람들이 나서는 때가 새벽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오겠지 내가 동녘을 향하지 않아도 살몃걸음으로 찾아온 아침은 등 뒤에서 세상을 밝힐 거야 -------------------------- 김해화 시인은 철근 노동자로 살아왔고 칠순에 이른 나이에도 그 직업을 벗어나기 어려운가 보다. 그는 매일 캄캄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밥을 챙겨 먹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인 3시에 나선다. 그에게 새벽은 시간 개념이 아니다. 그들은 늘 새벽에 나서야 하고 그 시간이 새벽일 뿐이다. 그래도 더듬더듬 걷다 보면 하늘이 밝아올 거라고 말한다. 그 뚝심 하나로 버텨온듯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울분을 감추고 산다. 나는 30년 가까이 김해화를 가까이 보며 살아왔지만 왠지 그를 보면 늘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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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04-29 10:18
[기후+마을] 거리를, 마을을, 지구를 커머닝하라
거리를, 마을을, 지구를 커머닝하라 2021년 4월 22일, 구례에서는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사건’이 있었어요. 이름하여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 이 사건은 우리 구례의 길이 자동차 중심이어서 정작 사람은 자기 발로 혹은 자전거나 휠체어로 지나가기 어려운 현장임을 깨달으면서 시작했어요. 여러 날 거리를 조사한 시민들이 구례의 거리가 얼마나 걷기 어려운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곳인지를 밝혔고, 그 뒤로 생태적 교통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모였지요. 여기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해진 덕분에 아주 짧은 거리긴 하지만, 그해 구례에서 조금 더 생태적이고 조금 더 안전한 길이 잠시 만들어졌던 사건이었더랬지요. 거리는 지자체의 것? 거리는 모두의 것! 그때 시민들이 만든 길은 단지 차 없는 거리만이 아니었어요. 그건 모두의 거리였고, 모두를 위한 거리였고, 모두에 의한 거리였죠. 무슨 말이냐고요? 이렇게 걷기가 어렵고 불편한 구례의 거리가 여태 바뀌지 않은 까닭은 거리가 ‘모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길은 나라님 것, 길은 지자체 관리 아래 있는 것’으로 인식해 온 탓에 ‘길은 시민들이 바꾸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모두의 것이었던 길이 지자체나 기득권 세력의 것으로 바뀐 거지요. 힘 있는 자들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소유물이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니, 길을 어떤 주체가 지배하는 것 혹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버리면 좋겠어요. 길은 모두가 함께 돌보고 모이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장소여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2021년 구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차 없는 거리는 ‘모두의 거리’를 되찾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차가 주인인 줄 알았던 거리를 사람과 동물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시민이 거리의 역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커먼즈로 기후위기 늦추기 지자체의 길은 매연이 가득해도, 위험해 보여도, 쓰레기가 쌓여도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모두의 길이 되면 달라져요. 우리 모두의 길이니까 스스로 돌보고 가꾸게 되지요. 쓰레기가 떨어지면 누구라도 주워요. 위험한 곳이 있으면 누구라도 고쳐요. 누군가 힘겨워하면 길 가다 멈춰 도와요. 누군가 길 위에서 새 일을 시작하면 함께 맞이하고 응원해요. 또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어 길 위아래 모든 생명에게 이롭게 해요. ‘길은 모두의 것, 길은 우리의 것’이라는 마음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밑바탕이에요.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의 것을 함께 돌보고 가꾸는 이러한 마음이 더욱 주목받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를 커먼즈(commons) 혹은 커머닝(commoning) 같은 말로 불러요. 커먼즈는 우리말로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 공동자원체제, 공통재, 공통장, 공통계 같은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딱 들어맞는 한 단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겠지요. 제 생각엔,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돌보는 무언가 혹은 함께 돌보고 함께 살자는 삶의 양식을 만드는 행동을 뜻하는 듯해요. 우리 거리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지금까지 길은 차량 중심으로 쓰였고, 길의 역할을 행정기관이 정해 왔지만 길을 시민이 함께 돌보는 커먼즈로 본다면 완전히 다르게 쓸 수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길을 상상해 보세요. 차가 막고 있던 도로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어요. 도로 일부를 녹지, 정원, 텃밭, 빗물 정원 같은 생태 커먼즈로 바꿀 수도 있지요. 남성-젊은이-어른-인간 운전자 중심의 공간이던 거리를 모든 보행 약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거예요. 길의 ‘사용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거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어요. 시민, 상인, 행정이 함께 운영할 수 있겠죠. 청년들이 원하는 거리, 어린이가 원하는 거리, 예술가가 원하는 거리, 선생님이 원하는 거리가 다 다르겠지만 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거리가 탄생하도록 함께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길을 커먼즈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소비, 경쟁, 유흥의 공간’을 만들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제가 제시하고픈 커먼즈로서의 길은, ‘아는 이들을 만나 속닥거릴 수 있는 공간, 내가 직접 기른 작물이나 직접 만든 물품이나 작품 등을 가져와 팔고 나눌 수 있는 공간, 기후정의 팻말을 들고 행진할 수 있는 공간, 재난 상황에선 돌봄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자립기술을 공유하는 공간,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 청소년과 청년이 다른 삶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차 없는 거리로 끝날 게 아니라,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지속 불가능한 삶의 양식들을 반성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거리로 거듭나야 진짜 ‘모두의 길’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로 다섯 번째 맞이하는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을 주목해 주세요. 올해는 장날에 맞추어 4월 23일에 할 예정이래요. 아이들이 모여 거리 쓰레기를 줍고, 지구가 불타는 상황을 알리며 모두의 것을 모두가 돌보자고 외치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니겠어요? 23일에 거리에 나와 외쳐 주세요. 이 거리를, 이 마을을, 이 지구를 함께 돌보자고요. 어린이들에게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구에게도 안전한 거리, 나무와 새가 행복한 거리, 아이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리를 만들자고 말이에요. 구례 경찰서 로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요? 챗GPT와 함께 만든 생태적 거리 상상도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4월 청명호에 실렸습니다. -
정정환 04-22 21:02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 의성 산불의 모습, 도로가 있음에도 숲이 전소했다. 임도는 산불예방 큰 도움이 되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숲의 구성이다. ▲ 도로 주변으로 검게 타버린 숲의 모습(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 임도 주변의 다 타버린 숲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소나무림이다. 2025년 3월 21일 경남 하동군, 산청군, 지리산 일대에 대형 산불이 났다. 거의 동시에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났는데 2000년대 이후 최대의 산불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하동, 산청의 산불과 지리산의 산불을 보면 같은 산불임에도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하동군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의 산불의 공통점을 알아봤다. 산불이 진화되고 1주일이 지난 뒤 찾은 두양리는 지난 산불로 인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 중턱부터 능선까지, 마을 뒤편 일부 숲은 수관화(나무의 가지로 불이 번지는 상황)로 진행되어 전소됐다. 일부는 수간화(나무의 몸통까지 불에 타버림)로 진행되어 노랗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임도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도 주변의 숲이 더 심하게 타버린 경우도 있었다. “도깨비불이 산을 넘었다.”는 주민의 말처럼, 불길은 바람을 타고 도로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길 속에서도 활엽수는 하층만 그을렸을 뿐 소나무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가 크고 수관화로 이어진 지역은 대부분 하층정비(숲가꾸기)가 이루어진 소나무 숲들이었다. 전문가들은 교목층(상층부 식생, 키가 큰 나무)과 아교목(교목 아래의 식생) 관목(아교목 아래의 식생)층이 잘 이루어진 숲은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교목과 관목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패효과’라 부른다. 그 좋은 예로 같은 시각 산불이 확산했던 지리산국립공원을 보면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내원사 능임암 일대의 산불지역 산불이 지나간 지역이었지만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부의 모습, 바닥이 검게 그을렸지만 새싹이 나왔고 진달래도 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의 하층 관목은 모두 조릿대였다. 지금은 조릿대만 다 타고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능인암 위쪽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 바닥은 그을렸지만 새싹을 피워냈다. 활엽수는 불에 강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으며 인공복원보다 자연복원이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지리산국립공원구역은 겉에서 봤을 때는 산불이 났는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불이 하층만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굴참나무와 졸참나무는 새싹을 피워내고 있었고 진달래는 분혹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바닥이 검게 그을린 것만 빼면 평온해 보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층 조릿대 덕분이었다. 산림청은 조릿대 때문에 산불을 끄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층 낙엽도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많아야 5cm 정도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흙이 들어나 있었다. 산에 비탈진 지역의 낙엽은 겨울을 지나면서 바람에 날려 모두 골짜기로 모이게 된다. 100cm 이상 쌓이는 경우는 드물다. 골짜기에 모여있는 낙엽도 겨우내 내린 눈과 비에 젖어서 불에 잘 타지도 않으며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국립공원의 산불은 지표화에서 끝났으며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날아다니는 ‘도깨비 산불’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림청의 ‘숲가꾸기’에서 벗어난 국립공원은 산불에 강한 숲이 되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간섭만 없다면 자연스럽게 산불에 강한 숲이 된다는 것이 들어난 것이다. 이 명확한 대비 앞에서 산림청이 꾸준히 강조해온 ‘숲가꾸기’와 ‘임도 확대’가 모두 실패한 정책임이 여실히 들어났다. 산림청은 숲가꾸기사업으로 숲을 산불에 취약한 숲으로 만들었고 산불 위기 대응에도 실패함으로써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단 한번도 사과를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산림청장은 산불 이후 공식 석상에서 끊임없이 임도설치와 숲가꾸기를 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여야 할 말은 ‘임도 추가건설’ ‘숲가꾸기’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빠르게 피해 지역민에 대한 피해 복구가 징행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인데 말이다. -
정정환 04-10 16:07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 긴급 기자회견
4월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하동참여자치연대, 산청함양난개발대책위에서 경남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과 임도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문제제기와 산불 현장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인 하동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 일대의 산불은 피해가 심각했으며 불이 수관화(산불이 나무를 타고 나무의 가지까지 올라오는 상황)로 이여져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일부 주민의 집은 전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소나무 위주로 관리한 소나무림은 모두 고사한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진은 맨 아래 사진을 참고) 그러나 산림청의 숲가꾸기가 진행되지 않은 자연림임 국립공원구역의 숲의 산불은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지표화에서 멈추었으며 수목에 대한 피해도 사진에서 보듯 거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산림청은 임도가 없어서 산불진화가 어려웠고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거짓말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은 산불 대응에도 실패하였습니다. 민가로 불이 내려오는 것 부터 막아야 할 산림청은 헬기만 투입시켜 산위에 불만 잡으려 하고 있었고 이러고 있는 사이 마을에 있는 일부 집들은 불에 전소하였습니다. 여기에 책임을 느끼고 사과를 하고 지역민의 터전을 복구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산림청장은 임도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나 봅니다. 지금 임도, 숲관리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터전을 잃은 주민과 생명들 여기서 희생된 사람과 생명들, 그리고 그 가족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 먼져입니다. 산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숲이 산불에 강한 숲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산불로 활엽수는 산불에 강하며 소나무 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도깨비 산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산불관리와 숲 관리에 실패한 산림청은 숲 관리에서 손을 때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숲을 망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생명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아래는 4월 10일에 있었던 기자회견 전문입니다.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사업은 산불 방지의 대안이 아니다. 산림청은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라!!!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난 산불의 원인을 두고 산림 전문가 등은 “소나무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소나무는 죄가 없다. 산림청이 주장하는 임도 확대 주장과 관련, 상반되는 의견으로 임도 논란도 뜨겁다. 임도 또한 죄가 없다. 그럼 누가 죄인인가! 2025년 산림청은 2024년 대비 120억 원이 증가한 2조 6,246억 원 예산을 편성하고 주요 내용으로 ‘일상화·대형화되는 산림재난 대응을 위한 투자’를 한다며 과학적인 산림재난 대응체계로 국민안전 확보를 외쳤다. 많은 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산림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4월 4일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지리산사람들’회원들과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일대와 산청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불피해 지역을 찾았다. 숲가꾸기를 통해 조림이 이루어진 곳과 숲가꾸기 사업으로부터 산림이 보호되는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양상은 달랐다. 소나무 중심으로 숲가꾸기를 한 곳은 수관화(지표화로부터 발생한 불이 나무의 잎과 가지를 태우면서 수관으로 강한 화력이 퍼지는 위험한 불)가 발생,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 수관화로 상승한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현상인 비화는, 다른 곳에 옮겨 붙어 새로운 산불을 만든다. 도깨비불처럼 날아가는 불똥은 바람을 따라 최대 2km도 날아간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똥이 최대 35km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숲가꾸기를 통해 지표층이 정리된 곳은 바람의 통로가 되어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된다. 이때는 소방헬기는 물론 인력으로 진화가 어렵고 인근 주민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소나무 조림지는 산불 규모, 확산면에서 활엽수림보다 크고 넓으나 활엽수림대는 산불 확산의 방어선 역할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자체로 수분을 가지고 있는 활엽수는 지표의 낙엽만을 태우며 확산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립공원 산불피해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는 온대활엽수림의 식생 상황으로 바뀌고 있으니 숲의 생태에 맞춰 그대로 전이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인위적인 조림사업은 숲을 해칠 뿐이다. 국립산림과학원(2017)자료에 따르면, 「침엽수림은 산불에 취약한 수종으로써 수관이 하나뿐인 단층으로 이루어져 불의 통로가 쉽게 나타나고··· 이른 봄에도 수관층에 잎이 붙어 있기 때문에 활엽수림에 비해 연료의 양이 많아 수관화에 취약하다··· 수종 간 확산속도를 분석한 결과, 활엽수는 273.2m/h를 이동한 반면에 침엽수는 364.0m/h를 이동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4월 7일 하동 산불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소나무 등 침엽수는 빠른 산불을 유발하고 활엽수는 깊은 산불을 초래한다“고 했다. 활엽수가 수분함량이 많아 화재 저항성이 강하고 활엽수 낙엽 또한 무겁고 수분 함량이 많다는 사실을 산림청장이 모를 리 없다.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지중화(땅속의 이탄층이 타는)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산림청장이 말하는 ‘깊은 산불’이란 바람이 없고, 지중화가 일어나 땅속에서 계속적으로 타는 불을 얘기하는데, 정말 오래된 원시림으로 수만 년 쌓인 낙엽이 있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강도 분석 결과> 아래 표는 이번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분석 결과 피해강도를 강, 중강, 중약, 약의 4개 등급으로 구분해서 분석한 것이다.(NASA 표준 제시) 강한 피해를 입은 수림대의 92%가 침엽수림이고, 활엽수림의 비율은 약 2%에 불과하고, 6% 정도의 혼효림이 있다. 침엽수림의 거의 대부분은 소나무림인데, 산청 산불은 그 차이가 커서 96% 가까이가 소나무림이다. 중강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 또한 소나무림이 압도적이다. 경북 산불은 75% 정도가 소나무림을 포함한 침엽수림이었고, 활엽수림은 조금 늘어 10% 정도를 차지했다. 약한 피해를 입은 지역(지표화지역)은 활엽수림의 비율이 약간 높은 수준으로 정리된다. 이는 강산을 푸르게 가꾼다는 명목으로 30년간 꾸준히 숲가꾸기를 해 온 산림정책 결과, 활엽수림으로 바뀌지 못하게 만든 것이 대형 산불의 원인임을 말하고 있다. 영상 분석과 현장 경험으로 본 전문가는 중약 이상의 지역은 사람과 차량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적어도 대형산불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숲 관리의 핵심이고 시급한 방법이다. 출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 우리나라 임도는 「산림자원법」에서 정의하는 ‘산림 경영 및 관리를 위해 산림청이 설치한 도로’인 간선임도, 산불진화임도, 작업임도를 말한다. 이 임도 전체를 합치면 총 임도 길이가 나오고, 이를 산림면적으로 나누면 임도밀도가 계산되는데, 우리나라 임도밀도는 4.1m/ha이다. 산림청이 임도 확대를 외치며 비교하는 나라가 일본 24.1m/ha,오스트리아 50.5m/ha인데, 202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의원실 분석 결과 위 국가들의 임도밀도 산정방식과 기준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수치로만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산림청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임도밀도가 낮다며 임도 개설을 위해 해마다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23년과 마찬가지로 산불 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국립공원 임도설치를 주장했으나 지리산국립공원 관계자는 국립공원 내 임도 설치는 불가함을 명확히 밝혔다. 현장의 다양한 환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불 예방책의 모든 해답이 임도로 귀결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임도로 산불 초동 대응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형화된 산불에는 오히려 바람길 역할을 한다. 임도가 조성되어 탈 것을 없애면 산불을 끌 수 있다는 산림청의 말과 달리 임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이 그대로 불탄 현장을 확인했다. 산불로 불탄 집은 전부 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끄지 못했다. 임도가 있는 곳에는 불을 껐는가? 임도를 산 곳곳에 설치한다 해도 산불 현장으로 진입하여 불을 끄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현장을 보면, 국립공원이 임도가 없고 탈 것이 많아 불을 끄기 어렵다는 산림청장의 말이 거짓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산불 발생 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을로 불이 번지지 못하게 주거지를 지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조건 산불만을 끄기 위한 진화작업은 문제가 있다. 산림청 산불진화 관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과 생태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산청 주불이 잡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산불 피해현장 잿더미를 뚫고 초록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불로 많은 생명을 잃고 생태환경이 무너진 뒤에야 교훈을 얻은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산림청은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명확한 답을 하고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구성해야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의 산불현장 ▲ 지리산국립공원 구역 안의 산불현장, 피해 정도가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불이 지표면만 태우고 지나갔고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크게 확산하지 않았고 그 피해도 적었다. 굴참나무는 코르크층만 그을렸을 뿐 죽지 않았다. 공원구역안의 소나무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다른 숲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하지 않았음 하층으로 불이 지나갔으나 수관화로 이어지지 았았다. 그래서 소나무숲과 다르게 불이 산에서 산으로 넘어다니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동 옥종면 두양리 산불현장 임도가 산을 돌아 만들어져 있음에도 산불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하동 두양리 임도 주변의 산불 확산 현장 소나무는 타 죽었지만 서어나무는 하부만 불이 지나갔고 죽지 않았다. 소나무는 수관화로 불이 이어졌으며 임도 주변의 소나무임에도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산을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2025. 4. 10.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
삵 03-25 21:27
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오늘 3월 25일,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며 1144일째 천막에서 농성하는 친구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려고 전주에 다녀왔어요. 전날 정환, 아림, 삵 함께 모여 만든 '아주 멋진' 구호 팻말을 들고 전북지방환경청으로 갔답니다. (우리가 만든 팻말을 들고. 사진=지리산사람들.) 새만금신공항 철회촉구 천막농성은 2022년 2월 6일부터 주말을 뺀 날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종시에서 계속돼 왔어요. 곳곳에서 300명이 넘는 많은 분이 천막농성장 지킴이로 함께해 왔다고 해요. 지난 2월 25일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환경청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하면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세종시 국토교통부·환경부 청사 앞에서 해 오던 천막농성장을 전북환경청 앞으로 옮겨 오게 되었답니다. 전북환경청이 평가서에 부동의한다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은 철회됩니다!!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 반경 13km와 그 둘레엔 저어새, 황새, 흰발농게, 금개구리, 삵 등 법정보호종이 무려 64종이나 살고 있다고 해요. 다큐 <수라>를 보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수라갯벌은 수많은 야생동식물이 살아가는 새만금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이며 우리 지구의 소중한 일부입니다. 그뿐인가요? 계절마다 다양한 새가 찾아오는 철새들의 집이고, 동아시아-대양주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입니다. 특히 우리 지구에 5천~6천 명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의 90% 이상이 한반도에서 번식하는데, 수라갯벌엔 그들의 번식지가 세 곳이나 있고, 그 가운데 두 곳은 각각 8km, 10km 안에 있다고 합니다. 수라갯벌이 공항으로 사라진다면 이 소중한 생명들도 함께 사라질 거예요. 수라갯벌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질 거예요. 불타는 산과 들을 보세요. 사계절이 사라지는 한반도를 보세요. 먹을거리가 줄어들고 가뭄과 홍수가 잦아진 둘레를 보세요. 수라갯벌을 지키는 건 우리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아요. 오늘 우리 지리산권 시민들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까닭을 아시겠지요? 지리산과 더불어 수라갯벌이 하나라는 걸 이야기하고, 뭇 생명과 함께하는 연대의 힘으로 생태학살을 막기 위해 부동의 촉구 기자회견에 함께했습니다. 지난 2월 12일 전북지방환경청이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를 재검토(사실상 부동의) 결정한 데 이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역시 반드시 부동의 결정하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일은, 참, 힘이 셉니다. 우리는 이런 시위가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될까' 하는 물음으로 허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태껏 많은 생태학살을 막는 일엔 꼭 '연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힘을 보태 주세요. 목소리를 내 주세요. 왜 여전히 공항이 더 필요하냐고 물어 주세요. 놀고 싶다고요? 같이 놀아야지요. 자기만 비행기 타고 슝슝 놀러 다니며 편하게 지구를 망가뜨리는 게 어떻게 떳떳한가요? 왜 신공항을 짓겠다는 이들이 고개를 들고 다니나요? 이상해요. 그러니 다들 막아 주세요. 신공항도, 골프장도, 케이블카도, 무슨 무슨 막개발 모두 싫다고 해 주세요. 개발이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 알맞게 해야지요. 왜 갯벌을 없애고, 숲을 없애고, 동식물을 다 죽여서 짓겠다는 걸까요? 이상하잖아요. 그건 정말 끔찍하잖아요. 한 생명으로서 할 짓이 아니잖아요. 놀고 싶으면 함께 놀아야죠. 죽이면서 놀지는 말자고요. 수라갯벌을 그대로, 지리산을 그대로! -
버들 03-25 20:52
[기후+마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도시에서 살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공원녹지가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그러지 못한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걷기 편한 길이 많고 공원이나 녹지가 가까운 지역에 살면 신체 활동이 자연스럽게 늘고, 정신 건강도 좋아져 결국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들의 특징은 생태 친화적인 도시의 특징과 잘 들어맞습니다.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한 삶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대표적인 도시로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프라이부르크, 호주 멜버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코펜하겐은 시민의 62%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자전거 전용도로가 400km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손꼽힙니다. 자전거를 정기적으로 타는 사람들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30% 감소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코펜하겐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높고, 비만율은 10% 이하로 OECD 평균보다 매우 낮으며 천식·호흡기 질환 비율이 낮게 보고되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의 90%가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 도로로 이어져 있기로 유명한데요, 특히 남쪽의 바우젠 지구는 자동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70%가 넘는 주민이 자가용 없이 생활하며 자전거를 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구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해요. 또 40% 이상이 녹지 공간으로 공원과 커뮤니티 정원이 많아 주민들 사이 교류가 활발합니다. 프라이부르크 시민의 기대수명이 높고 당뇨병·고혈압 발병률이 독일 평균보다 낮은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멜버른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약 200만 그루 이상 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도시 나무 심기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요, 가로수를 좀 많이 심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녹지 공간을 넓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2040년까지 멜버른 곳곳에 나무 480만 그루를 심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기후변화로 인한 불볕더위와 도시 열섬 효과를 낮추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가로수를 더 많이 심어 그늘을 만들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방치된 공터를 다양한 나무와 풀이 우거진 녹지 공간으로 바꿔 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심 평균 기온이 감소하고 불볕더위 피해가 줄었으며 시민들의 건강 지표가 나아졌다고 합니다. 코펜하겐, 프라이부르크, 멜버른의 사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해마다 심해지는 불볕더위와 홍수, 가뭄에 대비하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화석 연료가 필요 없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많은 도시로 변해 가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한 도시는 인간의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길고양이와 풀, 나무, 새, 곤충 모두의 삶에도 좋으며 기후재난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길가 나무 그늘도 물웅덩이도 공원이나 녹지도 없는 도시의 길고양이를 상상해 보세요. 무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에어컨을 돌리는 동안 길고양이는 어디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요? 작은 생명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에서는 인간도 건강할 수 있겠지요.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1.)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2.) (구례읍 어느 작은 골목에 생긴 주차장 공사장.) 그럼 우리 구례는 어떤가요? 지리산과 섬진강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이나 생물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거의 없고 심지어 보행로도 잘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시 안 생활용 자전거도로는 보기 힘들고 오히려 야생동물의 서식지 근처에 관광용 자전거도로를 놓아 생태계 파괴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우리 구례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이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인가요?기후위기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나무가 있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기온이 최대 4°C 낮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볕더위에 대응하려면 나무 그늘 쉼터가 늘어야 하는데, 우리 구례는 주차장만 자꾸 늘고 있습니다. 보행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이 늘었습니다. 침수를 예방할 수 있는 흙길이나 녹지 공간 또한 부족해 보입니다. 자꾸 아스팔트로 덮고, 나무를 베고, 주차장을 늘리는 정책은 우리 구례군민의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도 좋지 않으며,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갈 우리 미래에도 좋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전 세계 여러 도시가 주차장을 없애거나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주민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부추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며, 다가올 기후재난을 예방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이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을 늘릴 게 아니라 걷기 좋은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지켜지는 도시, 불볕더위나 홍수에 대비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주차장 없는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될 수 있으면 차를 두고 다니려는 마음도 모여야겠지요.내 건강도 지키고 다른 이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주차장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내 건강을 길고양이의 건강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도시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3월 경칩 호에 실렸습니다.) -
버들 03-04 21:12
[기후+마을] 감나무에 대한 예의
감나무에 대한 예의 우리 구례는 단감과 대봉으로 이름난 고장이죠. 감 덕분에 살림을 이어가는 감 농부님들도 많습니다. 또 감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즐거운 이웃들도 많아 보입니다. 해마다 우리에게 감을 선물하는 감나무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았을까요? 고려시대인 1138년에 고욤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짧게 보아도 고려 때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감나무속 나무가 자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나무는 제법 추위를 잘 견디지만, 겨울철 온도가 영하 25°C 이하로 떨어지면 다음 봄철에 가지가 부서지기 쉽고 새순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 온대 지방인 중국 중북부, 일본, 한국 중부 아래쪽에서 주로 자라 왔지요. 그렇다면 더위엔 강할까요? 열대지방에도 감나무속 나무가 살고 있긴 하지만 감이 달리지는 않는다고 해요. 열대기후가 되면 감을 먹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마다 불볕더위가 늘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80년쯤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남도까지 아열대 기후구에 속하리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지만 울릉도 동해 연안에는 벌써 열대 어류가 나타났고, 지리산을 포함한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말라 죽어 가며, 가을에 남쪽 나라로 날아가야 할 여름 철새들이 한겨울에도 우리나라에서 먹이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서 벌써 한반도에 열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사계절 내내 이어진 이상기후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수 있음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봄철 이상고온으로 사과나무는 보통 해보다 2주나 일찍 꽃을 피웠고, 뒤이어 닥친 늦서리로 꽃들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귀해진 사과는 한 알에 5,000원이나 하여 많이들 사과 먹기를 포기했지요. 배추는 어땠나요?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가을 들머리까지 이어진 데다 선충 피해까지 겹치면서 고랭지 배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요. 지난 추석엔 어땠나요? “이렇게 더운 추석은 처음이다.” 할 정도로, 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당연히 추석 밥상 물가는 껑충 뛰었습니다. 게다가 벼멸구가 무섭게 퍼져 전국 논의 3% 정도가 누렇게 죽었습니다. 그뿐인가요, 11월 첫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려 수많은 농가 시설이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렇듯 한반도 열대화와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는 먹고 사는 일상을 어렵게 합니다. 앞으로 인류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70년대에 사과는 한국에서 사실상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식이 밥과 김치가 아닌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지구 기온이 계속 올라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권이 되면 쌀 그리고 고랭지 배추, 고추 같은 김치용 작물을 재배할 수 없으리라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 같은 아열대 기후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살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이렇게 빠른 기후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어요. 벌써 15분에 한 종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른 종들이 사라지면 현재 지구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인 인간 역시 살아남기 어렵겠지요. 참 슬프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024년 들머리에 윤석열 정부는 국내 과일값 폭등 대책으로 해외 과일 수입을 크게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해 상반기에만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모두 30만t을 무관세나 낮은 관세로 수입했습니다. 기후위기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윤 정부는 사과 대신 바나나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감 대신 망고를 먹으면 될까요? 우리 구례 농부님들은 감 농사 대신 파인애플이나 망고 농사를 시작하면 될까요? 사과나 배추를 외국에서 들여오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자고요? 계속해서 먹을거리가 없어질 텐데요? 마실 물과 잠잘 삶터가 줄어드는 이 기후재난 시대에요? 그건 마치 구례군수님의 신년사에 나오는 “1조 4천억 원 규모의 양수발전소, 550억 원 규모의 지역활력타운, 12월에 착공될 오산케이블카, 온천지구에 들어설 산수유 스카이워크와 힐링꽃길, 화엄사 야간 경관 길, 밤에도 빛날 서시천 미디어 파사드 분수, 섬진강 그린케이션”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지역을 살려 줄 것이라 믿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가져온 똑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풀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감 없으면 망고를 먹자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살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넓은 땅에서 한 작물만 키워 파는 산업형 농업과 목축으로 토양은 생명력을 잃어 갑니다. 강으로 흘러든 비료 성분은 해수면 아래에 산소가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녹조현상을 일으켜 강 생물을 죽게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뿌려진 살충제와 제초제는 벌처럼 가루받이를 돕는 생물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또 가축과 사료를 기르느라 숲을 없애고 엄청난 물을 써 왔습니다.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산업형 식량 시스템은 뭇 생명을 죽이며 오늘날의 이상기후를 불러들인 한 축입니다. 왜 이러한 대규모 산업형 농축산업이 전 세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먹을거리를 더 싸고 편하게 길러 대량으로 유통해야만 싼 임금으로 공장을 돌리고 더 소비를 부추길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버느라 밥할 시간도 내 먹을거리를 기를 시간도 없는 임금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까지 농업은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많이 키우기 위한 방식으로 생명을 죽여 오지 않았습니까? 돈만 있으면 1년 365일 삼시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삶을 뒷받침해 오느라, 돈만 있으면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골프장과 수영장을 드나드는 삶을 지탱하느라, 숲을 벗기고 물을 써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흙이 흙답게, 강이 강답게 살려면 감을 망고로만 바꾸면 안 되겠지요. 돈이 주인인 삶을 지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숲이 벗겨지고 얼마나 많은 어린이 노동자가 죽었고 얼마나 많은 종이 사라졌는지를, 이제껏 우리는 내 눈으로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그런 풍요를 고맙게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아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지구 밑에 잠들어 있어야 할 화석연료를 꺼내 펑펑 쓴 결과가, 또 돈이 되기만 하면 막개발이어도 환영해 온 결과가, 또 능력만 되면 끝도 없이 성장하는 게 제일이라고 경쟁을 부추겨 온 그 결과가 이제 불볕더위, 홍수, 태풍, 산불, 가뭄, 한파 같은 재해의 모습으로 그리고 먹을 것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감나무 덕에 살림을 이어 온 감 농부님들뿐 아니라, 수많은 나무 덕에 삶을 이어 온 우리 인간은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덕이 있다면 이제라도 기후위기를 막는 일에 함께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막개발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먹여 온 감나무에 대한, 나아가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지구를 함께 사는 종으로서의 마지막 할 일이 아닐까요.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2월 입춘 호에 실렸습니다.) -
버들 02-19 14:41
[기후+마을] 하와이 산불을 기억하십니까?
산불이 휩쓸고 가 잿더미가 된 하와이주 마우이섬 서부 라하이나의 주거지역. CNN 캡처(Patrick T.Fallon_AFP) 하와이 산불을 기억하십니까? 2025년을 맞이하는 지금, 저는 2023년 8월 하와이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때 하와이 마우이섬에 난 불은 하와이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100명이 넘게 사망했고, 실종자만 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그 불은 허리케인과 극심한 가뭄 그리고 줄어든 강우량이 섞여 벌어진 ‘기후재난’이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산불과 홍수, 가뭄, 불볕더위, 태풍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 재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와이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까닭은 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예부터 작은 불을 이용해 큰불을 잡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전통으로 불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불행히도 1800년대 식민지 이주 정착민들이 들어온 뒤로 원주민들은 쫓겨났습니다. 불을 다루던 그들의 전통은 금지되었지요. 정착민들은 하와이 숲 나무 대부분을 베어 내 중국으로 목재를 수출했습니다. 벗겨진 숲에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이나 파인애플 농장을 세웠지요. 하와이 식생에 맞게 자라 오던 토착종들은 마구 베어졌습니다. 이 농장들은 1900년대에 가격이 싼 외국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문을 닫았고, 농장주들은 목축업과 관광 개발로 눈을 돌렸습니다. 빈 농장엔 가축 먹이용으로 들여온 외래종 기니아그라스가 우거졌는데, 이 풀은 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어요. 게다가 물을 많이 쓰는 골프장과 호텔이 늘어나면서 지역의 물이 사유화되고 독점적으로 가둬지면서 담수가 말라 갔습니다. 이렇게 습지가 건조해지면서 기니아그라스는 더 잘 퍼져 나갔죠. 결국 2023년 8월 허리케인 도라가 몰고 온 강풍으로 전신주가 끊어지면서 불씨가 퍼졌고, 마우이섬은 속수무책으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소방관들은 말라 버린 소화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난을 만드는 배경이 무엇인지 보이시나요? 그곳엔 생태적 지혜를 잃어버린 개발 광풍과 생명의 식민화가 있습니다. 땅을 돌보며 살던 원주민들이 쫓겨난 뒤로 오래전부터 천천히 그러나 계속해서 단일 작물 농장과 공장식 목축업으로 숲은 벗겨졌고, 관광 개발로 물은 가둬지면서 재해와 참사를 키울 조건들이 마련되어 온 셈입니다. 섬찟하게도 이 막개발과 식민화의 풍경은 지금 우리 눈앞에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숲의 다양성을 지켜 오던 생태적 지혜는 무시되고 돈 되는 소나무만 심어 놓은 숲이 어떻게 되었나요? 작은 불씨에도 불이 쉽게 퍼져 대규모 산불로 번진 사례가 늘었습니다. 골프장을, 케이블카를, 양수댐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부끼고, 섬진강이 말라 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숲에 산악열차가 들어오고, 갯벌이 사라지고, 지역마다 공항이 새로 지어져서 무수한 생명이 쫓겨난다 해도 ‘돈이 되면’ 괜찮다 합니다. 재해를 재난으로, 참사로 키울 조건들이 우리 둘레에도 켜켜이 쌓여 가고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너무 힘들어서 개발을 부추기던 시대는 이제 갔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투자 유치 같은 허울 좋은 말들에 넘어가서 숲을 벗기고 물이 마르도록 놔두어선 안 되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지리산을 경외하며 우리나라 첫 국립공원을 만들던 구례 사람들의 생태감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골프장이든 케이블카든 들어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돈 쓰고 가면 좋잖아” 같은 말에 생태적 지혜가 묻혀서는 안 되는 기후위기 시대입니다. 아시다시피 기후위기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상기온 현상들로 큰 피해를 보았지요. 동해안 산불과 강남역 침수, 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리고 2020년 우리 구례에서 일어난 수해까지 기후위기를 떼고 설명할 수 없는 기후재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기후위기로 자연재해의 세기와 수는 더 늘어날 거라는 경고가 여러 사례로 검증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책은커녕 재해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지리산을 둘러싼 지역들은 어떤가요? 구례, 남원, 산청(함양과 단일화)은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며 저마다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남원시는 13.22km 지리산 산악열차를, 함양군과 하동군은 산 높이까지 올라가는 23.8km 벽소령 도로를, 또 구례군은 국립공원에서 겨우 170m 떨어진 숲에 27홀 규모 지리산 골프장을, 계족산 둘레엔 양수댐을 짓겠다 합니다. 지난 하와이 산불을, 그리고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기후재난을 지금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앞으로 빈번해질 자연재해가 더 큰 참사로,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바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하와이 산불 재난이 벌어지기 전 조지 그린 하와이주지사는 주택난을 들먹이며 ‘건물 건축 시 불연재나 준불연재를 사용’하도록 정한 표준법 적용을 그만뒀습니다. 그 탓에 산불은 더 쉽게 건물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지요. 이윤만을 좇는 정책들이 재난의 배경을 쌓아 오고 있다는 걸 밝은 눈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정책 결정자의 선택이 얼마나 큰 폭탄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지난 12.3 내란 사태로, 아니 여태껏 우리나라 역사상 계엄을 발동한 대통령들을 통해 넉넉히 깨닫지 않았나요? 전시 상황이 아닌데 전시 상황으로 인식한 군 통수권자는 파면되겠지요. 기후위기 비상상황인데 비상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어떻게 될까요? 내란범을 막은 주체가 깨어 있는 시민이었듯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지자체들을 막을 주체도 깨어 있는 시민일 것입니다. 지금은 기후위기 비상상황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 만나야 할 때입니다. 산과 강이 안전한 날들이 이어져야 우리도 비로소 안전할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재난을 키우는 조건들을 선택할 때가 아니라 생명과 생존을 선택할 때라는 걸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더는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금 선택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1월 두 번째 호에 실렸습니다.) -
정정환 02-17 11:43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재검토(부동의) 환영한다, 남원시는 지리산산악열차 사업 즉각 폐기하라!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재검토(부동의) 남원시는 지리산산악열차 사업 즉각 폐기하라 지난 2월 12일 전북지방환경청은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를 재검토로 결론을 내었다. 재검토 의견서의 주된 내용은 상용화 노선인 13km가 아닌 시범사업인 1km만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대한 훼손 우려와 법정 보호종의 서식(수달, 삵, 황조롱이, 애기뿔쇠똥구리 등)과 상용화 구간은 반달가슴곰의 주요 서식지로, 여기에 미치는 영향(이동의 단절, 로드킬 발생, 소음, 진동으로 인한 번식 방해 등)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끝으로 시범사업 이라는 단기 목적에 비하여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보호지역에 대한 훼손이 초래할 우려가 크므로 재검토되어야 하며 환경훼손 등의 우려가 적고 개발 여건이 적합한 다른 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었다 기자회견 전문 전북지방환경청의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부동의(재검토) 결정 환영, 지리산산악열차 사업 폐기 촉구 기자회견 지리산을 그대로, 남원시는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을 폐기하라! 지난 2월 11일, 전북지방환경청(이하 환경청)은 남원시가 재신청한 ‘지리산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이하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렸고 이를 남원시에 통보했다.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한 결과, 생태·환경적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의 훼손 등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10년 넘도록 무리하게 추진해 온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전북지방환경청의 ‘부동의’ 결정을 환영한다.환경청은 지난해 8월 8일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반려에 이어 최종적으로 재검토(부동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을 보전하고, 난개발을 방지하며, 국민이 건강과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아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환경청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번 환경청의 검토의견에 따르면, 전체 사업(노선)에 대한 개발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 등의 선행 검토가 필요하며 보호지역과 인접한 지역의 개발은 우수한 자연환경의 훼손, 지역생태계 연결성 단절, 야생생물의 서식 환경 악화 등 부정적 생태·환경 영향이 가중될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또한, 향후, 동일 또는 유사 목적의 사업 추진이 필요할 경우,개발 여건에 적합한 다른 지역을 입지 대안으로 선정하라는 제안도 했다.이는 사업 구간이 국립공원, 보호구역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와 인접한 지역이라면 국립공원과 동일한 수준의 보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웠고, 전체 사업(13.22km) 구간 중 일부(1km)를 쪼개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려는 남원시의 꼼수를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원시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 제안서를 낼 때의 사업명이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이며, 사업지역은 총 13.22km라고 명시되어있다.이는 ‘전체 사업 구간 13.22km 중 지리산국립공원 통과 길이는 9.5km로 공원계획 변경사업이며, 환경부의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대상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km부터 우선 사업하겠다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공원계획 변경과 행위허가 및 공원위원회 심의를 우선 회피하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우리는 자연공원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에서 선형사업을 분절하여 추진하는 남원시의 사례를 통해 법적 제도 개선(국립공원 내 개발사업 시행지침 수정, 환경영향평가법 개정 등)과 자연공원법상 공원시설 삭도(케이블카), 궤도(열차)는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설치할 수 없도록 법 개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또한, 전북특별자치도 특례법이 지난 12월 27일부터 시작되었다. 특례법에 따라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거쳐 도지사가 지정한 환경영향평가가 이관되면서, 친환경산악관광진흥지구 지정에 따른 환경영향평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전북특자도에서 진행하게 된다.이에 남원시의 편법 사례처럼,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할 수 없도록 견제를 통한 환경영향평가 조례 개선도 필요하다.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이며, 생물다양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기후위기시대에 지리산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하며, 훼손 없이 보전해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 하지만 최근 지리산은 개발 광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리산산악열차를 비롯해 케이블카, 도로, 골프장 등 수익을 노린 개발의 시도가 밀려온다. 이번 전북지방환경청의 부동의 결정은 지리산 개발 광풍에 경종을 울리는 귀중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리산산악열차 시범사업 부동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제 최종 마무리는 남원시와 전북특별자치도 손에 달려있다.남원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온 지난날을 철저히 반성하고 사업 폐기 선언함으로써 지리산산악열차와 관련된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2025년 2월 17일 전북환경운동연합,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지리산산악열차반대남원대책위원회 전북특자도 오은미의원, 전북특자도 오현숙의원, 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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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사월 말이었다. 수달래가 예쁘게 피던 날이었다.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고 있다. 오후공책은 23년 4월에 문을 연 함양의 작은 책방이다. 같은 협동조합에 속한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따스한 사월의 오후 햇살 같은 미소를 가진 책방지기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책방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조영선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김현임 님과 정은경 님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공책? 이름이 재밌네요. 어떤 뜻인가요? > 처음에는 함양의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서 책 읽기 모임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만나 책 읽기 모임을 했죠.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죽이 잘 맞아 책 모임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책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서점을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오늘”을 만들게 되었죠. 오후공책(5 Who 함께하는 책방)은 협동조합 “오늘”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점입니다. 협동조합 오늘,은 삶에 문화, 예술, 놀이,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 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자 뭉쳤습니다. 책방은 실험을 위한 꿈의 아지트이며, 책, 먹거리, 예술, 놀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 삼아 환경, 교육, 성찰,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까 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함양이라는 산골 작은 읍에서 그것도 작은 책방으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2년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네. 맞아요. 서점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죠. 그렇다고 아무런 수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최근에는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 같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어떤 사업인가요? >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내가 지정한 서점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지역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도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방에 보조금을 주기도 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저희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고요. 지금 책 모임 다섯 개 등산 모임과 바느질 모임까지 운영하고 있죠.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책이라는 주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 이야기 마당이나 음악 주제로 모임을 하기도 하고요. 책방에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자, 이제는 산에도 가보실래요? 오후공책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 다양한 일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거든요. 다행히 서로 죽이 잘 맞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일이 하나 늘어나고 하는 식입니다. 올해는 책 문화제도 해 볼 생각이에요. 책 문화제는 어떤 일인가요? > 김현임(김) : 함양의 작은 서점이 두 곳이 있어요.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그림 책방 “퐁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 올해가 그림책의 해라서 그림책을 주제로 체험도 하고 그림책을 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후공책과 퐁당이 멀지 않아서 가는 길에 책이 있는 거리 같은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기획 중입니다. 책방은 모두가 아는 사양 사업 중 하나잖아요. 많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창업자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 정은경(정) : 저희가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책방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인문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인문학 책방 대표님 이야기를 보니 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_김현임 책방지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재밌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방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누가 봐도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요. > 정 : 음. 사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제가 책을 좋아해서 손님이 없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많이 읽기도 해서 손님이 없는 날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바쁜 일이 많아요. > 김 :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시골 책방 문을 열면서 책방으로 집 한 채 마련해야지,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이런 점은 공유된 상태였어요. 그래도 책방을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 인건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정 : 사실 조금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활발해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번잡하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재밌는 일을 자꾸 하고 싶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은 없어서 약간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거나 숲을 걷거나 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_정은경 책방지기 운영 시간은 어떤가요? 오후공책이니까 오후에만 운영하나요? >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후 8시까지 운영했는데 6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희도 사실 오후에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손님들이 오후에 열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은 주말에 다시 오시기도 합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제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어요. 저희 서점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어 가능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사람이 2번에서 3번 정도 나오면 되니까요. 뭐 함께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출동하기는 합니다만.... 힘들지는 않나요. > 정 :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아직은 뭐 할 만하고 좋아요. (책 외에도 음료와 의미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많은 책방이 책보다는 음료 판매나 기타 수익이 더 많은 경우가 있던데 오후공책은 어떤가요? > 정 : 함양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월 150에서 200권 정도가 판매돼요. 우리 책방에 책이 천 권 정도가 있어요.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통해서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합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해 분투 중이시네요. > 김 : 책방이니까 책 판매가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가롭게 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후공책만의 책 선별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진열 공간도 부족할 것 같고요. 각자의 취향이나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 정 : 음… 세 명이 한 책장씩 선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설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선택한 곳도 있고, 환경이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고른 책도 있고요. 팔릴 만한 책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운영하는 세 명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죠. 팔릴 만한 책과 취향과의 마찰이 있기는 해요.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니까요. 독립 출판사들의 책도 많은데 독립 출판사 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씩 구매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에 3번 정도 안 팔리는 책들은 반품하는데요. 반품하면 대부분 폐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 팔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요! > 김 : 제가 서점을 시작한 이후에 여행을 가면 지역 서점들을 많이 찾거든요. 책방에 들어서면 그 책방지기의 취향이 알겠더라고요. 책방이 없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저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있을까요? > 정 : 저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추천해요. 최근에 김금희 작가에게 푹 빠져 있는데, <나의 폴라 일지>라는 에세이 추천해요. 기회가 있다면 읽어 보세요. 책방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대학 때 후배 한 명이 선배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책방 해 볼까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못하고 있네요. > 두 분 모두 : 누군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력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익은 보장이 안 되지만요. 그래도 역시 좋은 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저희는 사실 아직은 만족하고 있거든요. (책방을 짓는 과정 ) 오후공책도 음료를 판매하시는데 수익은 어떤가요? > 매출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책은 이윤이 많지 않으니까 음료 판매가 아무래도 수익은 더 많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아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중요하고 책을 고르거나 읽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믹서기를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드립커피만 제공하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카페에 가면 얼음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 그래서 오후공책은 믹서기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만드는 음료나 식자재들은 가능하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합니다. 지역의 딸기를 사용해서 딸기 음료를 만들고 지역의 생강으로 생강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비닐 없는 책방, 숍인숍으로 제로웨이스트 상품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해요. 액체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 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요. 책방이나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없잖아요. 제가 보기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이는 가장 어린 나이 때일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 주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크면 책이 학습지가 되고 또 문제집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 김 :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접하는 소식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빨리 생기고 식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인간에게 적절한 속도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읽는 속도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서 뒹굴뒹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 책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문해력도 결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 정 : 저는 책을 읽는 이유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공지능이 채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주류는 못되겠지만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이 책방을 비추고 있었다. 책과 책방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양에서 작은 지역 책방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이 있다면, 그 마을엔 온기가 깃든다.” 서점 하나 없는 곳은 어쩐지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으며 살고 싶어.” 사월의 오후의 햇살이 오후공책에 따스하게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냥 조용히 무언가가 그리울 때, 따뜻한 음료와 책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은 책방이 있다. 그곳에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책방지기가 있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건네는 책이 있었다. 책이 그리운 날, 혹은 햇살 좋은 날, 책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날 향기로운 음료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책과 햇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당신도 분명,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공책 책방 여는 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추석과 설날을 빼고 매일 오픈 함양읍 한들로 67번지 글 조태용 사진 김인호조태용 04-26 14:17 -
[지리산자락책방]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구례읍 봉서리 귀퉁이에 문을 연 작은 동네서점이 있다. 오가며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서점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900개 정도의 작은 서점이 있고, 대부분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이제 막 삼 년 차가 된 봉서리 책방은 나름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봉서리 책방 대표 장 승준 님은 오랫동안 책방을 하고 싶었단다. 서점을 시작하기전 5~6년 동안 한 번은 해야지 했는데 어느 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봉서리 책방은 개업했다. 그는 순천에 산다. 순천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오간다. 구례구역에서 내려 봄가을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요즘 같은 겨울엔 구례구역에 차를 두고 이동한다. 그가 그렇게 출퇴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엔 비용을 줄이지 않고는 서점을 오래 할 수 없어요” “작은 비용이라도 줄여서 예순 다섯까지는 하고 싶어요? 돈 안 되는 서점은 왜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책하고 친했죠. 아이들이 다 컷서 이제 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시기가 온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해도 싫증이 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책방이었죠” 사실 오래전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고요. 흔한 말 중에 취미가 일이 되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책방은 독서라는 취미와 일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해도 좋을 것 같았죠. 그리고 제 생각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책방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요. 하지만 책방 일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오래 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돈을 안 쓰고 있어요. 그래서 버스도 타고 다니고요. 돈 벌이가 적은데 많이 쓴다면 당연히 운영이 어렵겠죠. 돈을 적게 쓰고 하고 싶은 책방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제가 3년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뭐 그렇다고 전혀 수익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최소한 생활을 하고 서점을 유지할 만큼은 벌고 있어요.” 처음 책방을 하려고 준비할 때 서점을 운영하시는 한 분이 “돈 못 버는 정우성” 데리고 사는 것 같다. 는 말씀을 하셨어요. 서점이 돈은 안 되고, 모양새는 나는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라면 서점을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수익이 없다면 안 되죠. 저는 수익이 없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보니까 결과는 어떤 가요? 생각보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개업 했을 때는 5일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책만 읽다가 퇴근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역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한 두 명 찾아오시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고 싶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구례에는 그런 책방은 없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니까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뭘 하셨어요? 다른 직업도 있었을 텐데요. 책방을 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구례는 국립공원 일을 하면서 연이 있는 곳이고요. 영어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방 운영의 장점은 뭔 가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요. 책은 주제가 있고 내용이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각자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죠. 찾는 책을 찾아 주거나 절판된 책들을 찾아주는 일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봉서리 책방만의 책 선택기준이 있나요? 처음에 제가 좋아하거나 읽었던 책들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이라 고객과 소통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책방이 제 개인 서가가 되어 버리더군요.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배치하려고 합니다. 손님들이 찾을 만한 책들과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절충한 것이죠. 그리고 가끔은 저에게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정말 감사하죠. 책방 주인의 책 선택 기준까지 파악해서 추천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저도 점점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어렵기도 하고요. 만약 서점을 개업하고 싶어 하는 분이 추천 하시겠어요? 결국 결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결국 하겠죠. 그리고 서점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니 지구력이 있으면 할 수도 있죠. 그래도 그냥 폼으로 한다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적어도 서점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도의 마음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서점이 책 판매로 수익이 한정적이라서 음료나 술을 팔거나 공간 대여 같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방도 음료를 판매하고 계시고요. 음료 판매가 운영에 도움이 많이 되나요? 음료 판매로 임대료 정도의 수익이 나옵니다. 처음에 커피만 팔았어요. 그런데 커피를 안 마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커피와 차 두 종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책과 잘 어울려서 팔고 있고요. 다른 음료 두 종류도 팔고 있어요. 달콤한 청을 넣은 음료와 달지 않은 음료 이렇게요. 단 음료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출판 기념회나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대여를 원하면 빌려주기도 하고요. 독서 모임도 자연스럽게 생겨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원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도서 모임에서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 가요? 시저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고 있어요. 매번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 한 회원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더군요. 같은 책이라도 생각하는 방향은 다 다를 수 있잖아요.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책방을 방문한 분들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하시나요? 추천은 가급적 안 하는 편입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어 서요. 그리고 추천해도 관심 없는 분야가 아니면 관심도 없고요. 그래도 꼭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얇고 저렴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비싼 책을 추천하면 오해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책의 선택 기준이 주관적이 상대적이라서 추천도 쉽지 않더라고요. 만약 고객이 호기심이 있는 책이고 그 책을 제가 읽은 것이라면 내용을 이야기해 주기는 합니다. 운영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화요일이 휴무일입니다. 화요일을 빼고는 매일 12시에서 6시까지 운영해요. 처음엔 11시에 했는데 오전에 일이 있어 지금은 이 시간에 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영업시간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구례 봉서리에 책방을 내신 이유가 있을까요? 구례 사람들 중에 이 동네 안 와본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읍내가 사람들이 많은 장소가 좋지 않을까요? 처음엔 도서관 옆에서 하고 싶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봤는데, 이 책은 소장해서 줄도 긋고 싶고 그런 책을 만나면 제 책방에서 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지인을 통해서 여기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여기서 책방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동네서점이 운영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책을 많이 구매하지 않은 경향도 있지만 온라인에서 동네 책방보다 책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보통 인터넷 서점은 10% 할인 5% 적립해 줍니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그렇게 운영하기 어렵거든요. 책 마진은 보통 30% 장도니까 그렇게 하면 수익이 거의 없겠죠. 가끔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고 난 다음 책 사진만 찍고 나가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엔 대부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속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도서 정가제를 원하는 것이겠죠? 네. 하지만 요즘 분들이 도서정가제를 납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떤 제품이든 자율적으로 할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나마 지금은 10%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래도 할 만하죠. 앞으로 목표가 있나요? 제가 서점을 하기 전에 전국에 있는 서점들을 많이 찾아가 봤어요. 지속 가능한 서점은 지역 사람들이 찾고 인정받은 곳들이었습니다. 저도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3년이면 인정받은 것 아닐까요? 아직은 좀 아니고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지역 분들에게 친밀하고 함께하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몇 분의 손님들이 책방을 찾았다. 오자마자 음료를 주문하고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또 한 분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한 시간 동안 책방에 들어와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오신 손님이라고 했다. 요즘엔 책은 대부분 온라인을 구입한다. 나 역시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보통 온라인 책방에 접속하면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해서 바로 구매한다. 책을 둘러본다는 개념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책 저 책 고르기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책만 달리기하듯 고르고 배송되는 날을 기다리는 식이다. 하지만 오래전 서점에 가면 이 코너 저 코너를 돌며 책 산책을 했었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는 이제까지 대한민국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만큼의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원하면 해외 서적도 클릭 몇 번으로 구입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는 책방을 걸어 다니면 이 책 저 책 골라보는 재미는 없다. 오랜만에 책을 오랫동안 고르고 있는 분의 모습을 보니 책방의 감성이라는 것은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성을 찾는 독자라면 지금 봉서리 책방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김인호조태용 02-14 11:40 -
[반달곰1%가게유람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로컬 소품숍, 호호의 숲
피아골 겨울의 한 복판에 찾아간 호호의 숲 앞마당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마을 어귀부터 다정한 손글씨로 쓴 팻말이 ‘여기로 가면 호호의 숲입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는 정도. 겨울 풍경 속에 갇힌 마당에서 주인장을 어떻게 불러낼까 고민하던 중인데 미닫이가 스르르 열리면서 그녀가 나타났다. 호호의 숲 주인장인 류호화 님이다. 운명 같은 시작 그녀의 반가운 안내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서자 흐린 바깥 풍경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동화적인 색감의 사랑스러운 소품들로 가득한 호호의 숲을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같다고 했단다. 필자의 눈에도 이곳은 악이라고는 스밀 수 없는 순수한 동화세상 같았다. 휘둥그레 뜬 눈이 분주해지면서 갑자기 기분이 둥실댔다. 정성 담긴 사랑스러운 소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원래 이 공간은 숙박을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대나무공예를 배웠거든요. 저기 달려 있는 대나무 등은 죽예회 회원과 함께 만든 거예요. 저 등을 완성해서 저곳에 다는 순간, 아 이제 숙박을 접고 소품숍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마치 소품숍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는 듯이 그녀가 말한다. ‘호호의 숲’이라는 숍의 이름 역시 그녀의 별명인 ‘호호(년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알 만한 TV만화영화 시리즈 주인공이다)’에, 자연에서 온 것이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 자연과의 협업이라는 의미를 담은 ‘숲’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1년 7월 호호의 숲을 열었다. 처음에는 호화 님처럼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지인 10명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패브릭과 유리공예, 나무공예, 손뜨개와 자수, 그림 등 구례와 하동 등지의 작가들 60여 명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호호의 숲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있다. 자연의 사계, 그 색을 담은 작품들 류호화 님은 사실 구례에서 전설처럼 남아 있는 플리마켓 콩장의 운영자였다. 나중에는 남원, 광양, 순천 등지에서도 셀러들이 모이고 콩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가족나들이를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성공적인 자리매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8년 여의 기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알차게 꾸려오던 콩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콩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다시 판을 벌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해서 누군가 에너지 만땅인 사람이 시작한다면 박수치고 손을 더해줄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지금 호호의 숲 작가들도 실은 콩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성껏 만든 지역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리고 작가들도 호호의 숲과 함께 3년 동안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작가분들께 사계절을 모티브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고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포인트를 이야기해드리기도 하거든요. 작품에 자연의 색과 모습을 담으면서 결이 비슷해지고 공간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어온 다과상에도 겨울과 봄이 담겨 있었다.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티 매트, 벚꽃모양의 작은 차받침 역시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소품이다. 워낙 정성 들인 수공예품들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대량생산은 있을 수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의 가치는 더 귀하다. 소품뿐 아니라 차, 밤잼, 꿀 등 지역의 생산품도 판매한다. 이 날의 웰컴티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꾸지뽕차였다. 구수하고 달큰한 차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 방문하는 운 좋은 손님들은 이렇게 정성 담긴 다과상을 받을 수도 있다니, 피아골 골짜기까지 찾아오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일단 호호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의 만족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손님 중에는 호호의 숲을 통째로 서울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호화님이 직접 그리고 적어 작품을 소개하는 이름표를 사고 싶다는 손님도 있단다. 자연은 살아가는 힘이 돼요 호호의 숲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을어르신들이 이런 외진 동네에 가게를 하니 사람이 찾아올까 걱정을 했다는데, 이제는 소문이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곧잘 찾아온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기는 하지만. 또 찾아오신 손님들 중에 네댓 팀은 다른 지역에 소품숍을 내기도 했으니 호호의 숲이 주는 영향력을 알 만하다. 그런데 어떻게 피아골 마을 안에 자리잡을 생각을 했을까. “소개로 오게 되었는데, 뭘 몰랐어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제가 겁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내려오거든요. 한 번은 마당에 이불을 널었는데 저녁에 갑자기 비가 오는 거예요. 이불을 걷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 나가고 그대로 비를 맞혔어요. 그런데 4, 5년이 지나니까 어느 여름날 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고 있는 거예요.(웃음)” 이제 집 앞 수로를 허둥지둥 건너는 멧돼지 가족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산에 있는 복숭아나무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양보한 지 오래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이곳에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준비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그녀에게 힐링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소한의 다짐이 있다. 나로 인해 자연에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남들은 이쁘게 집 짓고 살라지만 내가 인공 구조물 하나 더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포장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호의 숲에서는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습자지로 소포장한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하는 다짐이다. 반달곰 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실천하는 삶에 한 발이라도 얹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 공명처럼 전해지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강은경 02-08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