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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참교육 키즈의 생애 1편 "봄날"
1편 봄날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벚꽃처럼 피어올랐다. 수현은 날아오는 화염병이 강진 앞에서 터지는 것을 봤다. 화염병이 터지자, 강진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 강진은 떨고 있었다. 수현이 강진에게 달려가 불을 껐다. 부지에 불이 붙어 있었다. 강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체포조가 강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도망쳐” 수현은 강진의 손을 잡고 교문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잡힐 뻔했잖아.” 교문 안으로 들어와 확인해 보니 불탄 바지가 찰거머리처럼 강진에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지를 떼자, 강진의 피부와 함께 벗겨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억… 강진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 가자… 아프지…. “ “아…. 괜찮아…. “ 강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괜찮아…. 아파 보이는데….” 그해 강진과 수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말이 없고 얌전하던 강진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을 본 수현은 많이 놀랐다. 그럴 놈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집에서 학교까지 강진을 부축했다. 화상에 심해서 혼자 걷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학교 근처에 살았다. 수현은 자취방에서 강진이 사는 곳까지 매일 걸어갔다. 그렇게 수현은 강진과 벚꽃이 질 때까지 함께 걸었다. 꽃이 지자, 강진은 혼자 걸었다. 강진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강진은 고등학교 때 친구보다는 책하고 가까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향할 때 강진은 조용히 교실에 남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국문과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은 국문과가 아닌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운동권 서클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그날 처음 집회에 나갔다 화상을 당한 것이었다. 강진의 다리에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남았다. 강진이 혼자 걷게 된 이후 그들은 한동안 보지 못했다. 수현과 강진 둘 다 서클 활동에 빠져 있었다. 강진이 가입한 해방문학 동아리는 말만 문학 동아리지 “운동권 양성소”라고 불리는 유명한 동아리였다. 강진의 권유로 수현은 그 서클에 가본 적이 있었다. 서클 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수현이 지하 서클 방을 열고 들어가자 5~6명의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벽에는 사회과학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만나러 왔는데요?” "네가 수현이냐?" "네" "강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다며? "네……. 뭐…. 그런 그것은 아니고 그냥 참교육 운동할 때 강당에서 연설을 좀 하기는 했습니다." "대학생들 집회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너 나경이를 안다며?" 네…. 나경은 수현이 고등학교 때 만난 선배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경찰서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했었다. 경찰서 앞에서 집회가 자주 있었다.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수현은 시위대를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그날도 경찰서 앞에서 집회하던 날이었다. "야. 너 고등학생 아니야?" "네…. 그런데요. 고등학생이 여기 나오면 어떡해…. 나경은 어린 수현이 걱정되었다. 잡히면 너 고생한다. 그럼, 누나는요. 잡히면 고생 안 하나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상황이 달라…. 뭐…. 저는 달리기 잘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딱 보니 잘 달리지 못해 경찰에게 잡힐 것 같은데요. 야. 너 누나를 뭐로 보는 거냐. 누난 절대 안 잡힌다. 왜요? 누나는 변신하면 되거든. 나경은 가방 안에 가발과 다른 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나경과 수현은 그 후로 몇 번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 사실 나경를 만나기 전에도 수현은 대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일명 운동권 필독서를 사서 읽고 있었다. 철학에세이, 공산당 선언, 강철군화, 전태일 평전, 그람시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연이 그런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대학생 형이 준 책이라면 수현에게 친구가 빌려준 책이 시발점이 되었다. 해직한 선생님들이 만든 거꾸로 읽는 교과서와 세계사를 읽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의 글을 공부해야 하지. “역사는 누구 입장에서 쓰는 거야? 왕의 역사와 백성의 역사는 다른 것 아닐까? 새장에서 태어난 새는 나는 자유를 모르지만, 새장으로 잡혀 온 새는 언제나 하늘을 마음껏 날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수현은 스스로 교실과 교과서라는 새장안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수현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나경 선배와 몇 번 만나면서 막연하게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어쩌면 수현에게 나경과 학생 운동은 대학에 입학해야 할 유일한 이유 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꿈은 노동운동가였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힘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들어 힘을 키우고 불의 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멋있어 보였다. 가난한 농부들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싸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권리와 임금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 것 처럼 보였다. 수현은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해방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교실안에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고 3학년때 수현은 고향 마을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수현이 살던 마을엔 논과 들뿐이 시골 농촌 마일이었다. 아이들 부모는 농민이었고 모두 하나 같이 가난했다. 수현은 매주 토요일 밤에 아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이런 모임을 꼭 해야 해요?” “왜 우주야?” “이상해?” “아니" “오빠가 이상해 보여?” “아니”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려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서 살면 잘 수 있잖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우주는 수현보다 두 살 어린 옆집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수현을 좋아했다. 모임을 만들자고 하자 가장 반기던 아이였다. 매일 밤 마을회관에 모이던 아이들만 15명 이상이었다. 수현의 모임의 회장으로 매일 밤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거나 매주 주제를 만들어 토론하는 모임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매주 모여서 함께 논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임을 좋아했었다. 수현은 아이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나경을 만나고 나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하게 되었다. "수현아! 우리 서클에 가입하지 않을래" "친구 강진도 있고…. "전 이미 가입한 서클이 있어요. "아. 그래. "서클 두 개 가입한다고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근데 선배님들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우리….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 학생 운동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거든…. 네…. 수현은 서클에서 나왔다. 그때 강진이 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아. 오랜만이다. 우리 서클에 왔구나. 같이 들어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해 줄게. 아니야…. 이미 만나고 왔어…. 그래…. 우리 서클에 가입할 거야? 아니야. 왜? 생각이 좀 달라…. 그래…. 나중에 보자.” 강진이 가입한 서클은 총학생회 간부를 주로 배출하는 유명한 서클이었다. 수현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이 서클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진이는 알고 가입한 것일까?” 강진이 학생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수현은 믿을 수 없었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참교육 선생님들의 부당해고에 분노에 강당에서 연설했을 때 수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진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가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강진의 인생이니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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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의 아침
「섬진강 편지」 -노고단의 아침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만복대 너머 덕유가야까지 왕시루봉 내려 섬진강 남해까지 구례읍 너머 백아무등으로 사방팔방 번지는 아침빛 어리석은 이도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 저 구름과 빛이 그려내는 아침 풍경을 모시러 새벽길 걷는 구도자의 길 허락하는 동안 이 길을 묵묵히 걸으리라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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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 화백의 2024년 새해인사
지리산 산내 숲에 숨은 듯 드러나지 않은 한울아비 소낭구 하나 천녀의 별빛으로 우리를 깨우는 우주나무여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아, 우주여 마음이여 빛이여 사랑이여 -불기 2566년(2022) 우주나무를 박두규 글 짓고 이호신 그림 지리산-인에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있는 이호신화백께서 지리산 그림 두 폭을 2024년 새해인사로 전해오셨습니다.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그림순례’는 하동, 구례, 남원 순례를 마치고 새해에는 함양 순례를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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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섬진강 편지」 - 첫눈 어제는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가 그를 찾았는데 오늘은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 그가 나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도 싫지 않은 그대 같은 첫눈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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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운동
지리산 운동에 대하여 ‘지리산 운동’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좀 낯설지만 지리산 권에 있는 많은 단체나 소모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영역의 사회 변혁적 활동과 삶들을 하나의 큰 지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지리산 공동체’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 마디 거들까 한다.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은 크게는 군부독재라는 반정부 투쟁 속에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조직력을 가지고 명확한 하나의 전선에 복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는 국면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주체들이 흔들리면서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전(반정부 투쟁 당시)의 운동은 당장 눈앞의 위중한 현실(열사들과 동지들의 죽음 등) 속에서 오로지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비민주, 반인권 반통일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현실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국적 상황을 보면 집단적, 지역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운동의 폭이 좁아지고 조직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많은 단체와 소모임 또는 개인적 활동까지 포함해서 ‘지리산 운동’이라고 명명해본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여타운동과 크게 두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는 넓게 보면 ‘대안적 삶 운동’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역 주민들도 있지만 귀농, 귀촌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영역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대안문화, 대안문명 찾기라는 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크게 보아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라는 자본 중심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리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근대 500년은 모든 삶이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근대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온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 뒤에 숨어 있던 인간의 탐욕이 근대화라는 명제 속에서 자연의 순환 질서를 깨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구체적 일상 속에서 일정부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성이 피폐되고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 삶의 목표는 선과 진실로부터 멀어졌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사회생활은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생명경시와 함께 개인의 평화 또한 심하게 위협받게 되었다. ‘지리산 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가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근본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 문명을 꿈꾸는 대안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리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의 구조를 바르게 변혁하려면 ‘인간의 본래 심성을 되찾는 운동’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들이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심성을 되찾는 노력을 통해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확장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의 변혁은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은 사업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디가 식민지 상황에서 벌인 사탸그라하(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 그러했다. 간디는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해방은 영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도 자신으로부터 해방(절대자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회의 변혁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제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함께 확장되어야 진정한 변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디는 종교를 통해 확장된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토대로 비폭력 투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운동방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는 성찰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단군시절에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사회적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다. 본성을 꿰뚫어 공덕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 심성을 되찾는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독이 가능하다. 성통공완이나 샤타그라하 모두가 개인의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인식하고 진행시킨 높은 의식의 사회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완성의 노력과 사회적 실천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를 바르게 고치고 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그만한 역량과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동’은 지금껏 우리 변혁운동사에서 특별히 거론된 적이 없는 ‘개인의 자기완성’이라는 측면을 사회적 실천운동과 동등한 무게로 병행시키는 운동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리산 운동’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과 사회적 실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운동 방식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과 방식으로 풀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자연 중심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에 두고 풀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리산 자체가 모든 생명의 집합체인 것처럼 그래야만 개인과 전체의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한 토대에서의 사회적 실천이 올바른 사회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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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에 형성된 다랑이논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그 어느 곳보다도 생태 보전 가치가 큰 곳이다. 골짜기 마을의 식량 자급을 위해서뿐 아니라, 소규모 댐 역할과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 등을 가진 이곳이 대규모 골프장 건설로 훼손되면 그 환경적, 예술적, 경제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다랑이논과 그 주변 숲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시급해 보여 환경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지리산골프장 건설 논란으로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으로 지리산골프장 건설 예정지 바로 밑에 자리하여 농약, 제초제 등 오염원으로부터 훼손 위기에 놓인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으로 만인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산비탈을 타고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들어진 다랑이논 논두렁의 포근한 곡선은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농업문화 유산이다. 그런 까닭에 봄이면 모내기를 마친 무논에 저녁 노을빛이 내려앉는 풍경과 황금빛 일렁이는 가을 다랑이논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작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포마을 다랑이논은 식량자급 뿐만 아니라 수달과 팔색조가 살고 있는 인공습지로서의 환경적 가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예술적 가치, 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역사문화경관이다. <지리산-인> 신문에서 “사포마을 다랑이논의 사계 사진전”을 계획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아쉬움을 온라인 사진전으로 대신해 본다. -섬진강 편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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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첫눈 소식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 눈 소식 여기저기 눈소식입니다. 지리산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첫눈이 왔습니다. 눈은 소통의 메신저입니다. 영문자판에 한글로 '눈'을 쳐보세요. 'SNS'입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첫눈을 핑계로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눈이 오면 누나가 많이 생깁니다. 설악산 눈 와? 전화를 하면 설악산 누나가 생기고 대둔산 눈 와? 전화를 하면 대둔산 누나가 생깁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얀 세상, 첫눈 소식을 전합시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 올라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올랐는데 살을 에는 칼바람에 20분을 못 견디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라! 새삼 깨달으면 지리산길 설설 기어 내려온 첫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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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큰 죄
- 인생의 가장 큰 죄 오래 전 일본의 명상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출가 수행자인 칫 따란잔 아난다와(칫 다다지)의 인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인도의 아쉬람 여행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국제 명상 컨퍼런스, 그리고 홍콩의 아시아권 명상 행사 등을 다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명상이라기보다는 명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해외여행 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녔을 뿐이다. 칫 다다지는 한국 사람인데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경제학자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이런저런 국영 연구소를 다니며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우연처럼 인도에 가서 출가 수행자가 되신 분이다. 인도의 아난다마르가 수행공동체에서 줄곧 수행하며 지금은 아난다마르가의 다다(스승)의 단계에 올라 세계를 떠도는 지구인으로 현재는 주로 중국의 충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난하다. 단체로부터 생활비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나름의 일만 열심히 한다. 그 나름의 일은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스스로 개체의식을 밝히도록 도와주고 사회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사상과 철학의 핵심인 네오휴머니즘과 프라우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생명평화결사에서 일할 때 이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온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도에 있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난다마르가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생명평화결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한 생을 살며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근본 문제를 구체적 일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완성을 위한 명상과 같은 구도행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일하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반복적인 하루 일상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는 살면서 별난 하루가 아니더라도 매 순간 감동과 감격 속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 매 순간 감동과 감격으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에게 명상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걸러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현실적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영역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영역을 꾸준히 넓히고 다지는 것이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으며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다.’라는 구절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낭비인지, 무엇이 낭비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 우선 최선을 다해 명상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을 나서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고 가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인생길을 가며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칫 다다지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어디로’나 ‘어떻게’의 정답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 현실을 소화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일상은 중요한 현실이지만 쉽게 그 속에 묻히게 되는 자신의 한계를 항상 조망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어떤 힘 또한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칫 다다지에게는 그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명상을 배우며 마음속으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예를 다하려 애썼다. 그는 수행이 깊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격이 없고 매우 친절했다. 나는 그와 친구처럼 부담 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가 이 짧은 생에 친구이고 스승이 되어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큰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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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큰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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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당신
- 완벽한 당신 역사는 대부분 권력과 부와 사랑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권력은 폭력이고 부는 탐욕이며 사랑은 치유와 정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마다 또 다를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목숨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 그리고 자신의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날이 많다 보니 똑같은 경험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과 그 상대가 처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서로 오해가 생기고 갈등과 반목의 관계가 만들어져 살아온 것이다. 개인은 물론 가정과 가정, 국가와 국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도 말하자면 상대에게 마음을 쓸만한 여유도 없이 우선 바쁘게 나만 챙기며 살아온 것이다. 말은 늘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서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일단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나 학자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아는 것이라고는 우주라는 실제 공간의 실제 현실에 비추어 보면 허공의 먼지만큼이나 사소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산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니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고 의식에 매몰되어 사는 것을 불가에서는 치(痴),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세상의 실상, 그 실재(實在)를 살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 사물과 그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내가 생각한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니 나는 그냥 이렇게 살겠다고 한다. 나아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생명을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가치를 가지며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는 말이다. 덧붙이면 현실은 전도몽상의 어리석음에 있지만 본래 성품은 그렇지 않고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 때부터 삶의 목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야기해 온 것 같다. 본래면목을 꿰뚫어 알아 세상에 공덕을 쌓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는 말로 읽힌다. 붓다도 모든 사람은 다 부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결과적 발언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어렵기 짝이 없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이런 경지는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다 제정신이 돌아와 잠깐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자들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겸손을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의 모두라고 앞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어리석음의 대열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이런 어리석은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 하니 겸손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겸손의 자리는 상대방이 완벽한 존재라는 그 본성을 보고 받아들일 때 자연히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겸손의 경지를 몸이 알아서 할 때 소위 우주적 관점에서의 완벽한 당신, 완벽한 상황이라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겨우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본래 완벽한 존재이고 그 존재가 사는 현실이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겸손을 바르게 알고 또 언제나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어떤 상황이라도 완벽하다./ 오늘밤 떠들며 술 마시는 내가/ 내일 아침 졸지에 이승을 떠난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꽃망울 주렁주렁 올라온 어느 봄날/ 느닷없는 눈사태가 설중매를 만들 듯/ 그래, 그런 거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필연이고/ 세상살이가 이토록 처연하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이 완벽한 나, 완벽한 현실을/ 늘 아니라고, 아니라고 불평하는 것도/ 사실은 완벽한 것이지. (졸시 「완벽한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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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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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가는 나이
- 숲에 들어가는 나이 나는 좀 우울했다. 한 달만 넘기면 어느덧 50수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살아온 세월이 되짚어지면서 나의‘미래’라는 것도 이내 곧 바닥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내 어느 구석엔 무수한 날들의 까마득한 미래가 있고, 밤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20대의 열정과 치기도 다 빠져나가지 않았는데 50이라는 숫자에 의해 나는 갑자기 노인의 대열에 들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듯하였다. 12월의 하루하루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이 답답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무엇이 없나 하는 차에 지인으로부터 단식하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장소는 제주도라 했는데 돈 들여 따로 관광도 할런지라 오랜 술로 찌든 속도 좀 다스릴 겸, 또 다가오는 50수의 중압감도 날려 보낼 겸, 마음은 어쩔망정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에서 쌩쌩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옷을 잔뜩 껴입어서 그런지 춥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무슨 상념에 잠길 것도 없이 한참을 그저 멍멍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를 건넜다. 추자도를 지나니 멀리 한라산의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에 멀리 한 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현실감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제주로 향하는 나의 현재가 구체적 감각으로 다가왔다. 제주에 닿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제주단식이 생의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설렘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5일 단식 기간 내내 나의 화두는 50이라는 숫자였다. 인도에서는 50대와 60대 정도의 나이를 ‘바나플러스’라고 했다. 그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인데 나이 50이 되면 숲에 들어 명상을 해야 하는 나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20대 정도까지가 세상에 나갈 공부를 하는 기간이라면 3,40대 정도가 세상에 나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고 5,60대 정도가 세속의 부와 명예 등 그동안 쌓은 것들을 다 버리고 숲에 들어 명상을 하는 나이였다. 이후는 숲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단식에서 나는 무슨 특별한 깨우침을 얻거나 삶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다만 스승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단식의 방장 어른으로 참여하여 같이 단식을 하셨는데 나의 단식은 오로지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단식 기간 내내 그냥 조용히 우리 모두의 흐름을 타고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식 기간 중에 특별한 좋은 말씀이라거나 감동적인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별다른 말씀도 없이 조용히 우리와 함께 흐름을 타고 계실 뿐이었는데 선생님과 같이 있는 동안에 나는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많은 감화 감동이 내 안에서 저절로 일었다. 이 특이한 체험은 나를 내내 긴장시켰고, 나의 심란했던 50수를 설렘으로 맞을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선생님 같은 분이 바로‘숲의 세월’을 보낸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50수를 맞는 단식을 통해 일단은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퇴계를 읽으면서 그도 학생기와 출세기를 거쳐 50세에 관직을 스스로 그만두고(임금이 강하게 말렸으나 끝내 도망간다) 도산서원이라는‘숲’에 들어가 심경(心經)에 몰입했으니,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쌓았던 권력과 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만은 확실했다. 나도 숲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퇴계가 그랬듯 나의 현실에서‘숲’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귀촌하여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숲’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인들은 시인이‘숲’에 들면 어떻게 저자거리의 번뇌와 갈등을 시에 담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키워온 무절제의 욕망과 그렇게 굳은 일상의 습(習)을 도려내고 싶은 것뿐이었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내면의 간절함이 있었고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내 안에서 주먹처럼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문학을 좇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숲에 드는 일은 단순히 세속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나’라는 에고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며 생명이 가지는 우주적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50고개를 넘으며 숲에 들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에 들어 몸과 정신과 영혼까지도 자본에 절어 있는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박두규. 시인.) ▣ 이 글은 산문집「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2017년 간행)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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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가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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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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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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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 지리산에서 실상사가 갖는 의미는 아주 각별하다. 지리산 생명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숙 진지함보다는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는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웃 같은 절집으로 느껴지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위태로울 땐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 지리산의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역할을 자임해 온 것도 실상사였다. 이 가을날, 지리산 운동의 심장 그 실상사가 지리산프로젝트란 이름을 달고 울타리 없는 미술관이 되었다. 그림, 사진, 설치미술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실상사 곳곳을 장식하면서 문화 불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우주예술집'이란 제목으로 시작된 지리산프로젝트는 해마다 진행되다가 코로나 등으로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올해 '정의도 빛나고 평화도 빛나라'란 주제로 독일과 일본 작가를 포함해 스무 명의 작가들이 참여, 실상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켜 9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작품들을 전시했다. 지리산프로젝트 김준기 예술감독은 “지리산프로젝트2023은 한국 근현대 역사가 만들어 낸 이분법적인 진영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들에 집중해보고자 한다”면서 “이는 동시대 사회와 예술의 최전방에 위치한 정의와 평화를 다루고자 함이며, 정의의 추구는 곧 평화의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실천의 과정으로서 지리산의 생명 평화 사상과 결합한 다양한 예술 형식을 새로이 모색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번 지리산프로젝트2023의 스태프로 참여한 실상사 수지행은 “실상사를 찾는 분들이 언제부턴가 실상사에 문화재 말고도 볼 것이 많아졌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면서 “절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과 치유의 쉼터로 예술이 가진 성찰의 힘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법문이고 절은 불교 신자들에겐 신행의 공간이자 모든 사람에게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를 배우고 현재의 삶을 치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프로젝트는 “천년고찰 실상사에 스며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에 더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는 10월 29일 “윤리와 예술의 관점에서 본 정의와 평화”란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를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필자가 지리산 운동에 발을 디디면서 숱하게 찾았던 실상사였지만 지리산프로젝트2023으로 또 다른 실상사로 다가왔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으면서 실상사의 문화재와 더불어 저 멀리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산 주 능선과 천왕봉도 작품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산청에서 실상사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 그 길을 수없이 오가면서 엄천강 따라 펼쳐진 가을 풍경 또한 그대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감히 주장한다. 끝으로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마감하면서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나 산악열차 그리고 골프장 건설 등 시대착오적 개발사업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지리산 전체를 커다란 예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궁리를 해 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자료 출처 : 지리산프로젝트2023 리플렛) 이번 지리산프로젝트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던 실상사 수지행이 엄혁용 작가의 “‘책 피어오르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의 구름, 나무와 책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선재집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데 담 너머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과 함께 천왕봉이 조망된다. 김화순 작가의 “불어라, 생명평화의 바람”은 보광전 뒤 숲속에 걸려있는데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뒷모습으로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불타는 산과 녹아내리는 빙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를 업은 포대기에 그려진 인드라망 생명평화 문양에 눈길이 먼저 간다. 실상사 목탑지에 설치된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 코스모스”, 우주의 정원에서 빛나는 별들은 우리가 바라본 먼 세계이며, 인간이 가진 사유의 우주 또한 투영된 자신의 셰계와 연결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저 목탑지 바로 옆에는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소가 자리하고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팽나무를 배경으로 설치된 홍경태 작가의 “설계”는 인간관계의 의미로 출발하는 격자구조의 철근은 이어짐과 끊어짐 그리고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주는 지지대의 역할이고 내부의 편지 봉투 형상의 상자는 상호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 절집 주련은 대부분 한자로 새겨져 있지만 실상사 천왕문에는 한글 주련이 있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안상수 교수님의 글씨로 한글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주련을 지나는 필자의 어린 길동무들, 지리산 칠암자길 중 영원사에서 출발해서 실상사까지 여섯 암자를 걸어온... 실내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선재집에는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방석이 놓여져 있다. 그 방석에 앉으면 선재집 출입문을 통해 보광전과 천왕문 그리고 저 멀리 천왕봉까지 일직선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이런 풍광을 만날 수 있겠는가. 칠성각 앞 반송 아래에서 “평화를 지키는 고양이 심바”는 권군 작가의 작품으로 이곳을 가상의 산신각 자리로 정하고 지리산을 지키는 호랑이 대신 시대적 현상을 반영해 고양이 심바가 그 역할을 하도록 위치시켰다. 심바의 두 눈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두 눈 사이의 하트 형상은 사랑과 평화를 뻗어나가게 하는 전류와 파동의 중심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선재집 벽면에 걸린 선무 작가의 “손에 손 잡고”는 여덟 명의 어린이가 각각 다른 국기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선이 없다는 의미의 ’선무‘는 탈북 작가의 가명인데,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들의 경계를 해제시키는 것,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이 선무 작가의 메시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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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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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투명한 우수
- 내 마음의 투명한 우수 강영환 별이 보일 때까지 하늘을 갈고 닦아라 그대 가슴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별이 돋을 때까지 슬픔을 갈고 닦아라 투명한 네 마음을 보아라 어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침을 갈고 닦듯이 그대 발바닥에서 풀이 돋고 그대 팔목에서 곁가지가 뻗을 때 슬픔은 드디어 별이 되리니 그때, 투명한 네 길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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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투명한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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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마음 속 어머니, 지리산
- 오랜 마음 속 어머니, 지리산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스스로 고립된 만큼의 세월이 산의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해마다 수수꽃다리며 때죽나무 같은 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났다 그리하여 지리산 어느 산길에서 동자꽃 한 송이를 만나도 우리는 그 아름다움의 탄식 뒤에 숨어있는 오랜 그리움을 읽어내야 한다 -지리산 동자꽃 / 사진 김인호 지리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를 품어온 산이다. 그 옛날 더 이상 산 아래 세상에서 버틸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왔다. 절망의 끝에서 차마 버릴 수 없는 목숨 하나 이끌고 이 산에 들어왔다. 그들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 스스로의 어둠을 풀었고 산은 그들의 어둠을 품어 주었다. 지금도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자들이 지리산에 온다. 세상사람 모두가 등을 돌려도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오랜 마음 속 어머니처럼 부르지 않아도 항상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품에 안아준다. 그 사무치는 그리움이 깊을 대로 깊어 산 빛 너울이 아프다. * 그래서 우리는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른다. 실제로 그 품이 넓어 3개 도에 걸쳐 있으며 14억 5천 6백만 평이라고 한다. 이 산 속에 나무며 짐승이며 꽃이며 벌레들 그 무수한 생명들이 하나로 어울려 있는 생명공동체가 지리산이다. 그리고 이 지리산 자락 골짜기마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과 자본의 폭력과 병든 도시를 외면하고 귀촌한 사람들까지 하나의 지리산이 되어 잘 어울려 살고 있다. 그들은 산이 거느린 어머니의 품성을 배우고 숲의 모든 생명들과 하나로 어울려 산다. 인간의 이기적 산물인 자본의 풍요와 편리함에 묻히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이런 이들이야말로‘지혜智慧로운 이인異人’이며 지이산智異山의 사람들이 아닌가. 지리산은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다. 지리산의‘지리’한자 표기는 智異, 智利, 知異, 地理, 地利, 地而 등 다양하지만 현재 쓰고 있는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은 쌍계사에 있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 대공탑에 보인다. 이 탑의 비문은 신라 정강왕 2년(887)에 최치원이 썼는데 '지리산(智異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고려시대의『삼국사기』나『삼국유사』, 조선시대에 편찬한『고려사』에도 다른 한자 표기와 함께‘지리산(智異山)’표기가 나온다고 하니‘智異山’표기가 그래도 오랫동안 일관되게 쓰인 듯하다. 그리고 특히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문수도장으로 부르며 지혜의 문수대성이 이산에 머물며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깨우치는 도량으로 삼았다 하여 지리산의‘지리’는 ‘大智文殊舍利菩薩’에서 智와 利를 빌려 智利山이라 하나 이는 후대에 불가적 입장에서 불린 것이라 보인다. 이처럼 지리산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느 상황에서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다. 지리산은‘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는데『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맥이 지리산에서 멈추었다 해서 두류(頭流)로 한다고 했다. 또 도교적 입장에서는 봉래산(蓬萊山)으로 불린 금강산과 영주산(瀛州山)으로 불린 한라산과 함께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렀는데 신선들이 산다는 신령한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이외에도 오행사상과 함께 오악(五嶽)의 개념이 생겼는데 동서남북과 중앙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그 오악 중 지리산은 남악(南嶽)이어서 남악산이라고도 불렀으며, 불복산(不伏山)이나 반역산(反逆山)이라는 이름은 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명산을 찾아 기도할 때 유독 지리산만 거부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지리산은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며 빨치산의 활동 근거지가 되면서 토벌작전이 벌어지던 시기에는 좌익과 우익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적구산(赤拘山)이라고도 불렀으니 지리산은 세파에 흔들리며 많은 이름들을 남기게 되었다. * 그 옛적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나 고승대덕의 길을 가려는 이들, 그리고 도망쳐 숨어들어온 노비,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거리의 사람들, 혹은 동학 이후 성을 바꾸고 숨어든 자들, 이런저런 사람들이 제각기 사연 하나씩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온 곳이 지리산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좌우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빨치산이 되었고 하나의 조국을 꿈꾸며 목숨을 의탁한 곳이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은 그렇게 어느 자식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를 품는 어머니였다. 해방 이후 지리산에는 빨치산의 역사가 강하게 새겨졌다. 그 시절, 빨갱이 가족이라는 것 때문에 시달리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 산으로 올라온 노인도, 어린 조카도, 남편을 찾아 올라온 아내도, 아내 등에 업힌 간난아이도, 산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모두가 빨치산이 되었다. 그리고 빨치산의 역사는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다. 만델라가 27년 옥살이 하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 교도소에는 30년 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빨치산들이 수두룩했었다. 살을 도려내듯 추웠던 그 겨울 지리산, 토벌대가 올라오면 ‘나무 하나 군인 하나’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병력이 올라왔다고 한다. 토벌대와 총격전이 벌어지고 도주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돌고 돌아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해서 널브러져 있는 토벌대와 동지들의 시신을 만나기도 했다. 꽁꽁 얼어붙은 죽은 동지의 입 속에 남아있던 밥덩이를 꺼내 먹으며 달려야 했던 절망의 시절이었다. 한 달이면 보름도 넘게 굶으며 배고픔과 추위 속에 쫓겨야했고 잠깐 쉬며 앉아 있다 출발하면 움직이지 않는 동지들이 있었다. 어깨를 흔들면 앉은 채로 쓰러지던 벗들, 숨을 멈추는 마지막 순간 산 아래 늙으신 어머니 얼굴이라도 한번 떠올렸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빨치산들은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북으로 올라갈 수도 산을 내려갈 수도 없었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그들은 희망도 절망도 모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지리산만이 그들을 품어주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남과 북 누구 하나 그들의 생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그들을 버렸을 때에도 지리산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 된 조국을 꿈꾸는 일이 그토록 서럽고 사무치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을 끝까지 품어준 것은 지리산뿐이었다. 그들에게 눈보라 몰아치는 지리산은 환한 미소를 짓는 늙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다. * 산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늘 그곳에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 속의 시간과 그리움을 데리고 산은 늘 그곳에 혼자 있다. 하지만 언제나 외로운 건 우리다. 우리가 세파에 흔들리며 외로울 때면 산은 늘 푸른 대답을 먼저 보내온다. 다만 우리가 그 오랜 침묵의 답변을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산처럼 스스로 침묵해보지 못했고 갈등과 대립, 경쟁의 일상 속에서 산의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수천 년 역사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절망을 안아주고 품어준 산이다. 지리산에 가서 하루라도 그 숲의 숨소리에 자신을 맡기면 번잡한 현실의 고민들을 잊게 하여 스스로의 깊은 고요 속으로 침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 순례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현실살이의 바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우리가 어리석은 생각으로 현실 속에서 헤맬 때 스스로의 지혜롭고 선한 마음을 깨닫게 해주는 스승 같은 산이다. 피폐해진 몸을 살려내고 잃어버린 자애로운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산이며 현실사회의 바른 역사와 삶에 대한 지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산이다. 이 모든 것이 지리산이 가진 어머니의 사랑과 자비의 품성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지리산의 이러한 품성은 모든 것을 품어내고 삭여내어 새살을 만드는, 그렇게 끝없는 생명력을 분출하는데서 생겼으며 그것은 산을 이루고 있는 모든 생명들의‘어울림 삶’에 다름 아니다. 크고 작은 능선과 계곡들의 어울림, 그 속의 작은 숲길과 고라니와 딱따구리와 구상나무나 얼레지 같은 꽃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까지 인드라망처럼 촘촘하게 엮긴 생명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사랑과 자비의 힘인 것이다. 동과 서가 어울리고 남과 북이 어울리며 온 누리가 하나 되는 세상은 이 모든 생명들의‘어울림 삶’으로부터 비롯되며 그 속에서 진주처럼 만들어진 결정체, 바로 사랑과 자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리산은 그런 상징이 되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끝> 『불광』(2022.1) -지리산 주능선 /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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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마음 속 어머니,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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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인사
- 「섬진강 편지」- 2022년 새해인사 눈 내린 섣달그믐 숲에 들어얼음새꽃의 말을 듣고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강건하시라' 세밑한파답게 추웠던 밤들을 건뎌낸얼음새꽃들도 꽃잎 위의 눈을 녹여내고새날맞이 준비를하고 있습니다 새 날입니다. 코로나의 터널이 생각보다 길지만저만큼 빛이 보입니다터널의 끝입니다 만날 준비를 합시다.산과 강이 만나고 꽃과 나비가 만나듯서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떨리는 첫마음으로 뜨거운 악수를 나누며 그렇게 우리 새롭게 만납시다 새 날입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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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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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지상 사진전
- 「섬진강 편지」 - 2021년 선정 지상 사진전 사진을 고르다보니 2021년 한 해는 노을이 유난스러웠다 내리 사흘 아침저녁으로 붉어 그 불길함에 뒤척이기도 했다. 5월 초하룻날에는 느닷없이 상고대가 피어 노고단 털진달래가 꽁꽁 얼어버리는 기후이상 현상을 보여 주었다 섬진강에서 물닭을 처음 만났고 지리산에서 대흥란과 영국병정지의를 새로 사귀었다 노고단의 꽃들은 변함없는 선연한 꽃빛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폐암 수술을 하고 2년이 되어 가는데 지리산과 섬진강 품에서 무탈하게 살아냈으니 큰 복을 누린 것이다 계획했던 대로 2020년 구례수해피해 사진집을 펴내서 좋았고 '나는 구례다' 벗들과 함께 구례 11개 마을을 돌면서 126명 어르신들 사진을 촬영해서 액자에 담아드린 일이 참 좋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마을 어르신들 모습을 담아드리고 싶다 지리산 아래 마을 섬진강 건너 골짜기 얼음새꽃 피었으니 소학정 매화 곧 피것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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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소나무
- UFO 소나무 이상인 한때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이 있던 지리산 벽송사 옛 대웅전 자리 앞에 수령 600년 된 도인송 한 그루 새벽녘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음을 내며 화들짝 깨어난다고 한다. 그것은 하늘로 통하는 우주 정거장 푸른 UFO가 둥근 깃을 펼치며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묻힌 영혼들을 이쪽과 저쪽을 가리지 않고 하늘로 실어 나르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두 아름이 넘는 소나무 등걸 속에는 서로 화해한 영혼들이 타고 올라가는 물관부의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작동하고 검은 옷을 입은 밤새들이 날아와 비행접시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과 소리들은 야음을 틈타 너무도 은밀하게 이루어져 누구에게나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고 하니 나도 한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열고 몇 날 며칠을 기도하듯 기다려 소나무 등걸 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 둥글고 푸른 우주 정거장, 이 세상의 표가 필요 없는 UFO를 타고 싶다 ▶ 이상인 약력 ◀ - 1992년 『한국문학』시, 2020년 『푸른사상』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 시집 『해변주점』 『연둣빛 치어들』 『UFO 소나무』 『툭, 건드려주었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순천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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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 성찰을 위한 숲길-지리산 둘레길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봄날, 문득 산과 들 또는 한적한 강둑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누구나 할 것이다. 도심의 번다한 일상을 빠져나오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의식의 세계 너머에 있는 생명의 본질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라는 생명이 봄이라는 순환적 시간에 순응하려는 몸짓 같은 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만큼 억지를 부리며 사는 생명들도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높은 곳으로 역행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강물처럼 지구상의 자연과 모든 생명들은 순리대로 살아가지만 유독 인간만이 자연을 거스르고 순리에 역행하며 산다. 어쨌든 우리는 이 화사한 봄날,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의 발현에 순응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자연의 착한 자식이 되어 걸어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태생부터가 좀 다른 데가 있다. 2004년 도법스님이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시작하면서 지리산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때 스님은 자본주의 물질문명 속에서 영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이 이 지리산 숲길을 걸으며 참된 자신을 회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지리산 주변의 사회단체들과 힘을 모아 ‘지리산 숲길’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산림청과 지자체를 설득하여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지리산 둘레길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산책길이나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명상과 성찰을 위한 숲길이며, 이익과 탐욕으로 점철된 자본문명을 벗어나,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며 서로가 존중하고 섬기는 모두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기획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 깊이 숨겨져 있는 마을과 마을이 서로 오가던 길이고, 수령 300~600년의 당산 나무들이 곳곳에 있는 길이고, 원촌 총각이 숲속으로 나무하러 가서 탑동 처녀 만나고 오던 숲길이고, 파장 술 한 잔에 취해 넘던 고갯길이고, 삽 들고 물꼬 보러 가던 농로이고, 강바람에 천렵하던 강변길이다.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퇴적되어 있는 길이고, 삶의 순정성이 풍경으로 박제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둘레길은 전남, 전북, 경남에 3개 도에 걸쳐 5개 군을 아우르고 있으며 얼추 300km에 이른다. 2012년 3월 현재 16개 구간으로 되어 있으며 앞으로 3개 구간이 완성되면 지리산 둘레 전체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지리산 둘레길의 당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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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온 편지3
- ☐지리산에서 온 편지 3 지리산, 비트 산행 어린아이는 엄마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엄마, 코끼리는 왜 코가 길어?” 또는 “엄마, 바다는 왜 푸르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니 애가 못 알아들을 것이고 아니 그런 지식도 별로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할까? 그건 당연히 그것이 이상하고 또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에 눈 뜬지 갓 4,5년 된 생명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이상하고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뿐이다. 그러니 외출하거나 여행을 할 때면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낯선 이 세상은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울까? 매일매일 주변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면서 아직은 낯선 세상을 사니 그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울까? 하지만 많은 어른들에게는 늘 똑같은 풍경에 반복되는 세상이고 그래서 지겨운 세상일뿐이다. 다시 말하면 새롭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은 여행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처럼 새로운 세상, 낯선 세상을 보며 세상을 새롭게 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똑같은 세상을 늘 새롭게 볼 수 있고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그건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옛 시에 ‘깨달음’이란 선시가 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이 시를 보면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에나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그래서 깨달음은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일상의 현실에 있다는 것과 그 일상을 새롭게 보고 또 새롭게 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지겨운 일상(현실)을 새롭게 볼 수만 있다면 세상은 신기롭고 즐거울 것이고 그렇게 늘 새롭게 현재의 일상을 살아낸다면 그런 행복이 어디 있으며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낯선 곳에서 삶의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니 깨달음의 대리만족 쯤이나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사실 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도 국내나 해외여행을 별로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마음의 변화나 위로나 생활의 어떤 새로움이 필요할 때면 혼자서 훌쩍 산으로 간다. 가까운 산이 지리산이니 늘 지리산을 다닌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한때 한 몇 년은 작고한 박배엽 시인과 함께 지리산의 비등산로를 주로 다녔다.(그때만 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들어서기 전후여서 단속이나 벌금이 없었다) 그 길들은 한국전쟁 전후의 빨치산들이 주로 다녔던 길들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는 나무꾼이나 장꾼들이 다녔던 길이고 현재는 고로쇠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길들이다. 그 지리산의 낯선 지능선이나 지계곡을 혼자서 자주 탔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지리산은 전북, 경남, 전남, 3개도에 걸쳐있는 넓은 산이어서 한번 헤매기 시작하면 요샛말로 장난이 아니다. 지금이야 GPS가 있지만 그때는 나침반과 지도 한 장 믿고 그냥 갔다. 그리고 사라진 길의 흔적을 더듬어 산을 타는 동안은 모든 걸 다 잊을 만큼의 긴장과 두려움이 함께 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면의 깊은 어디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생명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일상에서 데리고 사는 크고 작은 두려움들을 말끔하게 지워주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 지리산을 오르며 즐겨 찾아간 곳은 산사람(빨치산)들의 비트(비밀아지트)였다. 물론 처음에는 빨치산 출신 장기수 어른들이나 관련자들의 도움을 얻어서 찾아 다녔다. 비트라고는 하나 무슨 문화유산처럼 특정의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현상 비트나 박영발 비트, 구례군당 비트는 그래도 그 흔적과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 외의 환자트나 무기, 식량 등을 숨겼다는 비트들은 그저 이 근처였다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빨치산이라고 불렸지만 나는 그들이야말로 하나의 통일조국을 꿈꾸고 진정한 인간해방을 꿈꾸었던 한국전쟁 전후 당대의 역사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가 그렇듯 모든 빨치산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역사라는 큰 흐름에서 조망한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열심히 산을 찾던 8,90년대만 해도 시대적 상황 탓도 있었지만, 산을 오르며 비극적인 역사와 이데올로기보다는 빨치산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사람들의 삶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를 사는 시인의 몫이기도 하고 지리산을 오르는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리산 연작시를 썼고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모든 걸 담고자 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죽은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 조국 해방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존재의 고독에서 오는 근원적 그리움까지 지리산은 그 모든 그리움을 내장하고 있는 산으로 그려지기를 바랐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 오랜 마음 속 벗처럼 / 부르지 않아도 항상 / 푸른 대답을 보내오고 / 그리움이 깊을 대로 깊어 / 산빛 너울이 아프다. // 미친 눈보라, 갈 곳 없는 어둠에 묻혀 / 사십 년 징역을 곱게도 사는구나. / 물빛 하늘 얼굴들 / 살아서는 부둥킬 수 없었던 / 그리움 곁으로 가고 / 홀로 남아 / 상처 깊은 짐승처럼 / 우우우 웅크린 / 산. // 그대는 / 눈부신 억새꽃 바람결로 스미고 / 깊은 숲 그늘 돌 틈 / 철쭉으로 피어나 / 우리들 일상의 /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 다하도록 / 스스로가 다하도록 내려올 수 없어 / 산이 되었던 그대. // 우리 곁을 떠나간 벗들은 / 저 산 되었지. / 헐벗어 눈 덮인 저 산. / 그래, 바라던 조국을 만나 / 풀씨는 맺었나, / 슬픔은 없더나. // 저 산처럼 서야지. / 산이 거느리는 핏빛 그리움으로 / 살아남아야지. / 밤마다 이빨 빠지는 꿈을 꾸며 / 가버린 벗을 생각는 일은 / 이제 그만 두어야지. / 깊은 숲 그늘 바람, 숨 죽여 울면 / 아직도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졸시「지리산1-序」전문> 지리산 비트 산행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을 가는 것이기도 해서 어떤 묘한 비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것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그 비등산로의 산행은 삶의 근원적 두려움과 외로움의 맨얼굴을 직접 만나게 해주었고 시종일관 긴장감과 어떤 설렘을 주는 신선한 것이어서 참으로 각별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립공원법이 정비되어 비등산로 산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연구 목적이나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 갈 순 있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정해진 탐방로만을 다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리산을 오르는 일은 새롭다. 나무며 벌레며 새, 동물들, 그 모든 생명을 품은 산은 그 생명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모두 새롭고 신선하기 때문이다. -남부군 비트터 -남부군 학습장 -남부군 이현상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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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온 편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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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심비우스
- 섬진강 편지 / 호모 심비우스 확진자가 발생하여 보건소에서 나왔으니 전 주민은 지금 회관에 나와 검사를 받으라는 이장님 방송에 집집마다 문을 닫아걸고 며칠째 얼어붙은 마을 밤눈 내린 아침, 조심스레 마을을 빠져나와 눈석임물 흐르는 숲 골짜기에서 얼음새꽃을 만났다 햇꽃이다. 해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진다 꽃 피는 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꽃이 철없어서가 아니라 겨울에도 속옷 차림으로 사는 우리가 지구의 온도를 너무 덥혀 논 까닭이리 축축하게 젖은 마스크를 벗고 몇일만에 큰 숨을 내쉬고 몇 송이 햇꽃과 인사를 나누느라 추위도 잊었다 낙원이 따로 있겠는가 맘껏 숨을 쉴 수 있고 언 땅을 뚫고 나와 시린 계곡을 환히 밝히는 햇꽃들이 반짝이는 지금 이 골짜기가 낙원 아니겠는가 호모심비우스, 그대 지금 이 낙원 숲의 품으로 오시라 이 햇꽃 앞에 가만 무릎을 꿇어 보시라 바람꽃자리 기억을 더듬어 낙엽을 들춰보니 고물고물 변산바람꽃 새싹들이 춥다고 옹알이를 한다 조심조심 낙엽 이불을 덮어주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상그러워 그럴까 하얗게 빛나는 노고단이 오늘은 어쩐지 더 가차와 보이고 벗을 데려다 주고 돌아 나오는 폐가 돌담 너머 산수유 열매도 역광을 받아 오늘은 더 붉어 보인다 *호모심비우스 : 생물학적 용어로 '공생'을 말한다. 전 인류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기를 염원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섬진강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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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구례 섬진강 수해 사진집 『나는 구례다』 발간
- 「섬진강 편지」 - 2020년 구례 섬진강 수해 사진집 『나는 구례다』 발간 2020년 8월 8일 아침, 마을 앞까지 밀고 들어온 섬진강물을 보고 집으로 달려 들어와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구례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지인들과 함께 구례의 수해 흔적, 그리고 복구 현장을 기록하기로 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 채 한 해가 지나갔고 흩어져 있는 사진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싶었다. 촬영한 사진 컷 수가 너무 많아 부득불 그 많은 사진 중에 가장 긴박했던 2020년 8월과 9월의 사진들만 우선 한자리에 묶어둔다. 여기 싣지 못한 사진들은 군에서 발간하는 백서나 섬진강 수해 구례군민대책본부에서 묶어낼 다른 기록물에 유용하게 쓰이게 되리라. 『나는 구례다』는 단편의 기록집이지만 꼭 필요한 곳에 가서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란다. 함께 해준 「나는 구례다」 팀원들 모두 애쓰셨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책 출간을 흔쾌히 맡아준 '詩와 에세이'사의 양문규 시인! 고맙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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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구례 섬진강 수해 사진집 『나는 구례다』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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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 산청 -석연경 천년을 달려 산청에 다녀올까? 님을 만난 첫 봄 산청은 찬란이었지 산청이 가까운 것 같은데 어디던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인가 천상의 햇살인 듯 밝고 맑아 눈부셔 한적한 오솔길도 빛을 뿜어내는 신비 나도 님도 세상도 환하디 환한 충만 저절로 비밀스런 웃음이 나오는 곳 아으, 우리는 육만 가지 통삼매에 들었던 것인데 번갯불 타고 내게 오렴 같이 가자 산청으로 석연경 밀양 출생, 2013 『시와 문화』시, 2015 『시와 세계』문학평론 등단 시집『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푸른 벽을 세우다』가 있음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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