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02(목)
 

 성찰을 위한 숲길-지리산 둘레길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봄날, 문득 산과 들 또는 한적한 강둑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누구나 할 것이다. 도심의 번다한 일상을 빠져나오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의식의 세계 너머에 있는 생명의 본질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라는 생명이 봄이라는 순환적 시간에 순응하려는 몸짓 같은 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만큼 억지를 부리며 사는 생명들도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높은 곳으로 역행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강물처럼 지구상의 자연과 모든 생명들은 순리대로 살아가지만 유독 인간만이 자연을 거스르고 순리에 역행하며 산다. 어쨌든 우리는 이 화사한 봄날,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의 발현에 순응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자연의 착한 자식이 되어 걸어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태생부터가 좀 다른 데가 있다. 2004년 도법스님이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시작하면서 지리산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때 스님은 자본주의 물질문명 속에서 영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이 이 지리산 숲길을 걸으며 참된 자신을 회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지리산 주변의 사회단체들과 힘을 모아 지리산 숲길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산림청과 지자체를 설득하여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지리산 둘레길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산책길이나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명상과 성찰을 위한 숲길이며, 이익과 탐욕으로 점철된 자본문명을 벗어나,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며 서로가 존중하고 섬기는 모두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기획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둘레길은 지리산 자락 깊이 숨겨져 있는 마을과 마을이 서로 오가던 길이고, 수령 300~600년의 당산 나무들이 곳곳에 있는 길이고, 원촌 총각이 숲속으로 나무하러 가서 탑동 처녀 만나고 오던 숲길이고, 파장 술 한 잔에 취해 넘던 고갯길이고, 삽 들고 물꼬 보러 가던 농로이고, 강바람에 천렵하던 강변길이다.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퇴적되어 있는 길이고, 삶의 순정성이 풍경으로 박제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둘레길은 전남, 전북, 경남에 3개 도에 걸쳐 5개 군을 아우르고 있으며 얼추 300km에 이른다. 20123월 현재 16개 구간으로 되어 있으며 앞으로 3개 구간이 완성되면 지리산 둘레 전체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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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의 당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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